근육조선 513화
2부 27장 9화 한편 조선에선
유성룡의 금주 귀환 경로에 합류하였던 미주인 사절단은 넉 달의 기나긴 항해를 마친 1594년 1월이 되어서야 목적지인 조선의 한양에 당도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기나긴 항해에 몸이 쇠약해졌음에도 이들의 눈은 조선의 풍경을 담으려 애썼다.
“이게 다 나무로 만든 움직이는 산(배)이라니요. 저희가 타고 온 움직이는 산 보다 훨씬 커다란 녀석도 있는데 조선에서는 이런 물건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습니까?”
“마음대로 만들지는 못한다네. 자네들이 보고 있는 일천이백 돈(1,080톤) 급의 대장선은 아국 전체에 여섯 척 밖에 없으며 조금 더 큰 배인 대형 순주선은 예순 척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 하였지.”
미주인들의 놀라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독한 겨울 추위야 반쯤 사막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추위였지만 자신들의 통나무집과 견줄 수도 없이 거대한 건물들을 보면서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도성까지 들어온 미주인들은 정돈된 길거리와 거대한 벽돌집, 그리고 이가 시릴 정도로 새하얀 옷을 입고 다니는 조선 사람들을 보면서 손가락질까지 하였다.
이들의 놀라움과 달리 조선 사람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보고 놀라지 않자 황당한 마음에 물어보았다.
“저희가 이렇게 머나먼 길을 와서 놀라울 지경인데 조선 사람들은 왜 저희를 보고 놀라지 않습니까?”
“그야 아국에 미주인들이 처음 당도한 것이 칠십여 년 전이기에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네들이야 모르겠지만 저기 돌아다니는 덩치 큰 사람은 신농도 출신이라네.”
뺨부터 시작된 문신이 목 아래까지 내려가 흉측해 보였지만 그 문신이 사라질 정도로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래 부산물을 팔아대는 신농도 상인도 있었으며, 길거리에서 죽어라 뛰어다니는 검은 옷을 입은 코가 크고 하얀 사람(신부)도 있었다.
도성에 처음 올라온 시골 촌뜨기가 된 미주인들을 보며 실실 웃은 배흥립은 저 멀리서 후끈한 열기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지자 잠시 대열을 멈추었다.
길 한구석에 미주인들이 멈추자 입신체비장에서 막 뛰쳐나온 입신체비사들이 도성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갔다.
“이 추운 겨울에 얇은 옷 한 겹만 입은 전사들이 뛰어다니다니! 저들이 대전사님과 같은 전사들입니까? 오히려 체격이 대전사님보다 더욱 큽니다!”
“관찰사 대감께서는 훨씬 많은 단련을 하여 정제된 몸이니 갈 길이 먼 사람들이지. 자네들도 아국의 문물을 배우고 가르침을 얻으면 저런 몸이 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마침내 경복궁에 닿은 미주인들은 지시에 의해 조회가 치러지는 안마당에 집결하였고 풍악이 울리며 이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연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자네들이 올 것이라는 빠른 배편을 통해 미리 전달받았으나 직접 보는 것보다는 못하군. 하나같이 담대한 전사들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혹여나 아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괘념치 말고 고하도록 하여라.”
“어…… 없습니다! 대추장 대리님을 보내신 위대한 대추장께서 저희를 이렇게 맞이하여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나 또한 너희들의 용기에 감탄하였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맹수를 잡는 데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하였는데 그러한 용기를 아국까지 오는데 쓸 줄은 몰랐구나. 이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배를 불리도록 하라!”
난생처음 입어보는 비단에 솜을 누빈 옷을 입은 미주인들은 그 감촉에 황홀해 하였고 이어지는 산해진미는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물건들이었다.
여기에 이연은 모두에게 접시를 하나씩 내어주며 말하였다.
“아국에 복속하기로 청하였으니 복속의 증표를 전함이 마땅할 것이다. 갖은 심사(心事)를 하여 복속의 증표를 정하였으니 승자기(본차이나)라 하여 아국에서 새로 만들어낼 그릇의 첫 시제품을 내려 주겠다.”
“눈처럼 하얗고 얼음처럼 차가운 그릇이라니 돌을 깎아 만든 그릇입니까?”
“돌을 깎아 만든 그릇이 아니니 염려하지 말도록. 또한 각자의 그릇을 비교하여 크기가 다른지 확인해 보거라.”
손바닥보다 조금 큰 본차이나를 각자 비교해 본 미주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는 크기와 형태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든 물건을 자연에서 만들어내는 이들이라 완전히 같은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구리 화살촉마저도 균일한 크기가 아니고 조금씩 크기가 뒤틀리고 달라지니 모든 물건은 각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틀에 찍어내 구워내는 공정을 거의 다 개선한 본차이나 그릇의 오차는 거의 없었다.
이연은 자신의 그릇도 가져와 대어보고는 말하였다.
“세상에 짝이 맞는 것은 본래 한 몸인 것 외에는 없는 법이다. 이를테면 조개껍데기를 서로 다르게 맞춰보아도 결이 다르고 크기가 다른 법이 아니겠느냐.”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한 가마에서 구워낸 그릇임에도 모두의 크기가 일치하였으니 한 몸이었던 물건과 마찬가지라 나도 심히 놀라 증표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를 대대손손 전수하여 훗날이 되어도 한 몸인 사람처럼 움직일 증표로 삼으라.”
훗날이 되면 이들도 진실을 알아차릴지도 모르지만 그때쯤 되면 조선의 지배권이 확고해질 것이니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 이연이었다.
조만간 양산된 본차이나 그릇이 미주인들에게까지 들어가려면 몇 대는 지나야 하리라.
모두의 그릇을 맞춰보고 오차가 없음을 확인한 미주인들은 배 위에서 배운 조선의 법도대로 큰절을 올리며 이연을 자신들의 지배자이자 대추장으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청원을 말하였다.
“이미 대추장 대리께 말씀을 드렸지만 저희 모든 부족은 조선의 군주께서 저희 모두를 통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대추장 직위에 오르시어 모두를 다스려 주십시오.”
“또한 저희 코만치 부족의 대전사 자리를 조선에 바치고 싶으니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전사를 임명하여 분쟁과 변란에서 저희 코만치를 통솔하여 주십시오.”
“마음만큼은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 좀 더 아국을 돌아보도록 하여라. 혹여나 아국의 제도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느냐. 너희들을 앞으로 삼 년 동안 가르칠 것이니 먼저 배움을 시작하라.”
생글생글 웃는 이연이었지만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보내온 서신에 미주인들의 대추장이라는 자리로 임명받았다 하니 그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미주인들에게 숙소를 배정하고 이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준비하는 와중에 논의가 열렸다.
이연은 용상에 앉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였다.
“유성룡을 관찰사로 보내면서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바이나 보통 사람이 십 년에 걸쳐서 행할 일을 일 년 만에 행하니 놀랍다 못해 기가 찰 지경이구나. 내가 미주의 대추장이라는 직위에 올랐다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유성룡이 일을 해보았자 금주 일대를 개척하고 영향권을 조금 넓히는 수준에서 오 년의 임기를 모두 채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를 보내고 2년이 되기도 전에 여덟 개의 부족이 복속하고 수많은 발견이 이어졌다.
이미 조정의 관료 가운데 여유 인력은 모조리 파견할 준비를 마쳤고 1594년 6월이 되면 이들이 미주에 도착하여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기 시작하리라.
개중 가장 중요한 대추장 직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니 영의정인 이이가 나와서 말하였다.
“신 이이 아뢰옵나이다. 미주인들은 추장이라는 이를 백성들이 선출하오니 한낱 촌부(村夫)에 불과하옵나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모여 선출한 추장들이 다시 뜻을 합쳐 대추장이라는 직위를 창설하였으니 이를 받아들이지 마시옵소서.”
이이의 말은 정론에 가까웠다. 조선의 임금은 명나라에 서신을 보내 고명(誥命)의 절차를 밟아 즉위하는 자리였다. 이 절차는 조선 건국 초부터 사실상 통보나 다름없긴 하여도 동양 일대의 국제질서에 의거한 방침이었다.
미주의 대추장 지위를 얻으려면 명나라에 상세한 사항을 전달받은 서신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추장보다 높은 직위를 명나라 황제가 겸하게 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며 미주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게 되리라.
이이는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탰다.
“물론 오 년 동안 칩거한 명국의 황상께서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염려는 없사오나 미주에 대한 정보는 새어나가면 아니 되는 법이옵나이다. 잘못하면 미주로 이주하고자 청하는 명국 사람들에 의해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사옵니다.”
“황상께서는 오 년 동안 칩거하지 아니하셨다. 그저 지나친 정무에 지쳐 사람을 만나보기 꺼리는 것이니 그러한 말은 자제하도록 하여라.”
또다시 오 년 동안 태업을 벌인 만력제라지만 조선에 보낸 무한한 신뢰와 은혜만큼은 저버릴 수 없는 이연이기에 이이의 말을 제지하였다.
이이가 고개를 숙이자 이연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더니 자신의 의견도 내놓았다.
“탐학(貪虐)한 명국 상인들을 고려하면 합당한 말이기는 하구나. 명국에 사신을 보내 고변하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소문이 명국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대추장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주인들이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조선 상인들은 기본적인 활동 영역이 넓어서 한 장소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장사가 실패하거나 시세가 틀어져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장소에서 벌충할 수 있으니 지나친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반면 명나라 상인들은 한 자리에 터전을 마련하고 수를 불려 나가며 일대의 상권을 휘어잡고 매점매석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명나라 상인들이 저지를 패악과 미주인들의 신뢰 가운데 한쪽을 택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다들 고민하였지만 한 관원이 나서서 말하였다.
“신 정여립 아뢰옵나이다. 미주의 대추장은 백성의 뜻에 의하여 선출된 추장이라는 이들이 다시 의견을 모아 선출한 자리이옵나이다. 이 자리는 물려받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선출에 의한 자리이니 명국에 사신을 보낼 이유는 없사옵니다.”
“명국에 사신을 보낼 이유가 없다 하였는가? 계속 이야기하여 보아라.”
“신이 조사해 본 바로는 미주인들은 세습하는 위정자(爲政者)가 없으며 모든 부족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모아 가장 빼어난 사람을 추장이라는 대표로 선발하옵나이다. 이는 아국의 이장(里長)과 흡사한 지위이옵니다.”
인구로 따지면 이장과 흡사한 자리가 미주인들의 추장이었다.
민의(民意)를 모아 선출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까지 듣자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여립은 더욱 목소리를 높여 주장에 박차를 가하였다.
“결국 오롯이 민의가 거듭 모여 선출한 대추장은 천자(天子: 황제)와 대치되는 자리이오니 알릴 필요도 없으며 알릴 이유도 없사옵니다. 그저 주상전하께서 대추장 자리를 겸임하시면 충분한 일이옵나이다.”
대추장 자리를 알릴 필요도 없이 멋대로 얻어도 좋다는 과격한 언사가 끝나자 이이는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제자였던 정여립을 노려보았고 다른 이들도 목소리를 높이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이연은 웃음을 참으며 말하였다.
“일전에 자네가 저술한 서적을 읽은 적이 있었다. 천하는 모두가 소유하는 것이니 백성이 곧 주인이고 모두를 임금으로 모시고 섬길 수 있다 하였지. 참으로 황망한 서적이라 널리 퍼지지 않았지만 그 뜻이 미주인들에게 있었구나.”
“신은 그저 미주인들이 알려준 자신들의 정치(政治)제도에 대하여 아름다운 글귀를 취하고 부정한 글귀를 없앤 부족한 서적을 저술하였을 뿐이옵나이다.”
본래 역사에서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이라는 공화정과 흡사한 제도를 주장한 정여립은 미주인들과 접촉한 이후 이들의 민주적인 정치체계를 접목시켜 더욱 발전된 서적을 저술하였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하여 아예 묻혀 버린 서적이었지만 미주인들의 대추장, 민의가 모이고 모여 선출한 자리가 생겨나자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연은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자신의 뜻을 정하여 답하였다.
“지금부터 미주인들의 민의를 받아들여 미주의 대추장이 겸할 것이니 이견을 제시하지 말도록 하라. 또한 미주인들을 올바로 다스려 훗날 세자가 보위에 오를 적에 새로운 대추장직을 역임할 수 있도록 힘을 쓸 것이다.”
이연의 앞에 놓인 깃털모자는 코만치 대전사의 상징이자 관찰사 유성룡이 받은 선물이었다.
잠시 눈치를 보다 익선관을 벗은 이연은 깃털 모자를 쓰고 서서히 올이 빠지기 시작한 흰머리수리의 깃털을 매만지더니 재차 지시를 내렸다.
“아국의 강역은 넓으며 수많은 물산이 소출되니 이 모자를 새로 만들어 돌려주도록 하여라. 또한 이 모자를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관찰사들에게 하사하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또한 유성룡이 지나치게 넓힌 강역에 대하여 함구하도록 하여라. 훗날 서반아와의 영토분쟁이 재개되었을 때 적당한 선물을 보내고 약간의 이득을 주어 무마시키면 될 것이다.”
아직 유성룡이 발견한 광산에 대한 보고가 전해지지 않은 시기였지만 비옥한 텍사스의 흑토지대만 따져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땅이었다.
이연은 깃털 모자를 쓰고 미주인들을 만났고 이들 모두가 절을 올리며 새 대추장에 오른 이연을 진심으로 환영하였다.
* * *
의정부에 석 달 만에 집결한 십조 휘하 관원들은 하나같이 퀭한 눈빛을 보이며 정기 보고를 준비하였다.
국왕 이연의 경험이 찰 대로 차 찬밥 신세가 된 의정부였지만 각 분기별로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는 호랑이와 같은 엄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었다.
영의정 이이는 미주인들에게 조선의 실상을 가르치며 온갖 일을 통솔하기 위하여 출석하지 않았지만 좌의정 구사맹은 평소의 온화한 성품은 온데간데없이 목소리를 낮추며 쏘아붙이듯이 말하였다.
“삼 년 전 영창이라 하여 두창을 막아내는 새로운 질병이 아국에 들어와 호조와 수(需)조, 그리고 예조, 세 관청이 협력하여 영창을 널리 퍼트리고자 하였네. 그 경과가 심히 궁금하니 어서 보고하게.”
“호조판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호조는 이미 호구조사를 마쳤으며 모든 사람에게 영창 접종을 할 작정으로 갓 태어난 아이들의 조사도 마쳤나이다. 아국의 인구는 일천이백칠십만 명에 달하며 아이들을 합할 경우 일천육백만에 육박합니다.”
정여립의 보고를 들은 구사맹은 생각보다 더욱 많은 인구가 생겨나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하주도에 이주한 사람들이나 북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감안하면 오히려 인구가 늘어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다.
이윽고 수조판서 이원익도 보고를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창 접종을 행하고자 몰려드니 영창 고름이 부족해질 지경이라 미리 사람을 보내 호패에 있는 번호를 찍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정음으로 남겨 명부를 작성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라?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도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무엇인지 궁금하군.”
“아국에서 정음을 읽을 줄 아는 식자(識字)의 비율이 삼 할 팔 푼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훨씬 적었습니다. 일전의 조사에 의하면 도성에 있는 장정을 대상으로 물어보았으니 높게 나왔지만 각 지방을 따지니 아니었습니다.”
유교가 근본 사상인 조선에서는 나라의 발전은 물론이고 백성들을 가르쳐 교화(敎化)시키는 것을 중점으로 삼는 법이었다.
구사맹 또한 학문을 퍼트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사람이기에 심각한 표정으로 이원익을 바라보았고 그는 통계를 담은 서적을 내밀며 말하였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는 것을 글을 안다고 따졌을 때에 남성은 삼 할, 여성은 이 할에 불과한 이가 글을 알더군요. 더욱 많은 이들을 가르치고 교화하여 최소한 도성 일대에서 오 할의 사람들이 정음을 익히도록 가르쳐 지방에서도 글이 통할 수 있을 겁니다.”
“일전에는 삼 할이 넘는다 하여 만족하였건만 실질적으로는 이 할 오 푼이라니 갈 길이 멀고도 험하군. 주상전하께 청하여 조만간 실시될 연금제도로 더욱 많은 이들을 가르칠 방도를 모색해 보겠네.”
이원익이 던진 업무 폭탄에 직격탄을 맞게 된 예조판서 정창익은 앞으로 쏟아질 업무를 생각하며 눈을 부라렸지만, 정론 중의 정론을 이야기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눈을 내리깔고 보고를 시작하였다.
“영창 접종은 작금에 이르러 삼 할가량 진행되었으며 앞으로 십 년 이내에 모든 접종을 마칠 예정이오니 큰 문제는 아니옵나이다. 다만 다섯 살 아래의 아이들은 영창 접종을 받으면 온몸에 부스럼이 치밀어 오르니 접종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하면 아예 호적에 있는 이들만 접종을 실시하면 되겠군. 다음은 병조판서가 보고하게.”
병조에서는 모든 장졸들을 우선하여 영창을 접종한 사례를 보고하고 외국에서 전해온 소식을 하나하나 전해주었다.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구사맹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든 소식이 하나 있었다.
“어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호주 일대에서 무역을 실시하는 영길리의 해적들이 매가(昧街: 메카)라는 지역을 약탈하였다고? 그놈들이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군.”
“듣자 하니 수십 척의 선단이 몰려들어 매가의 외항을 불태우고 내부로 진격하여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 오고 길거리를 불태웠다 하였습니다. 세조대왕께서 오사만국에 보복을 행할 적에 가장 중요한 매가 만큼은 넘어갔다 하였는데 여기가 침략을 당했다더군요.”
“매가는 회회교(이슬람교)에서 섬기는 목한묵덕(마호메트)이 창설한 도시라 아국으로 따지면 종묘와 마찬가지인 장소라 하였네. 여기를 침략하는 것도 모자라 불태웠다면 조만간 회회교도의 진노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로군.”
이번 사태는 오스만 제국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이슬람교도가 성지로 인식하는 메카가 공격당했다면 인도를 지배하는 무굴제국도 똑같이 분노하리라.
구사맹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병조판서 자네는 당장 주상전하께 가서 보고를 올리…… 내가 같이 갈 것이니 당장 움직이게! 호주 북방에는 좌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머무르고 있으니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 줄 것이지만 어명을 보내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는가.”
수습이 실패하여 거대한 전쟁으로 번지면 조선도 손해를 입으리라.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면 이순신의 역할이 절실하였기에 구사맹은 입술을 짓씹으며 편전으로 달려갔다.
#작가의 말
조선 문해율이 25% 내외인데 전 세계 국가를 따져보면 최정상인 프랑스 문해율이 대략 20%에 불과합니다.
지금 목표로 삼는 50% 문해율은 1750년경 영국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