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07화 (507/573)

근육조선 507화

2부 27장 3화 옛 친구를 만나니

미국의 땅에 놀랐지만 더 놀랄 것도 있었다.

관아를 만들라 한 장소에 가 보니 한옥의 형태이지만 원시림의 목재를 활용한 거대한 이 층 기와집이 보였다.

심지어 기둥 형태가 미주인들이 자주 깎아대는 토템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관아를 만들 줄은 몰랐는데. 기둥이 하나같이 장승의 외형과 흡사한데 이런 단단한 목재를 가공하여 관아로 탈바꿈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대감께서 명하신 대로 제가 하였습니다. 미주인들과 대화가 통하지는 않아도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며 사정사정하는 이들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요.”

“역시 자네로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니 넉 달 만에 이런 관아를 만들 법하다네.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윤광영이 세운 관아는 물론이요 아직 덜 마른 목재로 마을을 만들었으니 일만 명의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질긴 아까시나무 가지로 세살창을 만들었으니 이는 미주 특유의 건축 문화가 될지도 모른다. 나도 완성된 관아에 편액(扁額)을 하나 만들었다.

“이토록 풍요로운 땅이니 요순(堯舜) 임금의 요(堯)자를 따서 동요(東堯)현이라 칭하겠네. 훗날 현이 아니고 주(州)로 승격되면 이 고을의 이름을 땅의 옛 주인인 파야야 부족의 이름을 빌어 다시 정하면 되겠지.”

참으로 풍요로운 고장이지만 관찰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생활이야 편하지만 다들 주먹구구식으로 개척을 하는 상황이니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해야지.

나는 임시 푸줏간에서 마구 도축되고 있는 버펄로들을 확인하고 명령을 내렸다.

“푸줏간은 당장 강가로 옮겨 흙이 피와 내장에서 떨어져 나온 분변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게. 가급적 판석을 촘촘하게 깔고 영회(시멘트)로 덧씌워 스며든 것이 썩지 않도록 하게나. 그리고 이 소금을 당장 꺼내서 들소고기를 충분히 절이게.”

“소금을 꺼낼 필요는 없습니다. 북서쪽에서 거주하고 있는 미주인들이 교역상품으로 암염을 가져왔으니 이를 빻아서 들소고기를 절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럼 당장 통에 넣고 절여서 염장고기를 만들고 볕에 말려 육포를 만들어두게. 맛이야 많이 떨어지겠지만 올 겨울에도 고기를 입에 넣으려면 비축해 두어야지 방법이 있겠는가.”

사실은 이 고기를 더 나아갈 개척민들의 식량으로 쓸 생각도 했지만.

사람들이 내 명령을 듣고 바삐 움직이자 박승종은 내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추가적인 지시를 내렸다.

“단순히 절이거나 말리기만 하면 맛이 떨어지고 오래 보관할수록 단단해져서 먹기 곤란해진다네. 그러니 볕에 말리며 훈제를 하여 어느 정도 소금기를 줄이도록 하게나.”

“퇴우당(박승종의 호) 나리께서 지시하신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런데 무슨 나무로…….”

“나무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네. 여기 산더미처럼 쌓인 옥수수 속대로 훈제를 하면 옥수수 속대의 단맛이 고기에 들어차고 향긋한 내음이 진동을 하지 않겠는가.”

미각에는 일가견이 있는 허균이 옥수수 속대를 한아름 들고 바닥에 내려놓자 박승종도 미소를 짓더니 이 옥수수 속대를 재료로 훈제 작업을 하였다.

마을 한복판에서 훈제를 하는 연기가 퍼져 나가자 달달한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이리저리 지시를 내려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옥수수를 적치할 임시 창고를 만들고 소와 곰의 도축 장소를 강가로 옮겨서 모조리 진행하였다.

뼈만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이건 들소곰탕으로 만들면 충분하겠지.

새로운 손님이 방문하였으니 잔치가 열렸다.

아직 생활이 정립되지 않아서 마을 외곽의 벌판에 대충 나무를 잘라 만든 상을 마련해 놓았지만 풍족한 환경인지라 순식간에 음식이 차려졌다.

그리고 여기서 허균의 새로운 음식이 빛을 발하였다.

“고소하고 맛있다. 이거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가?”

“이 친구 두부장을 섞어 구운 옥수수에 푹 빠져 있군. 유락을 만드는 법도 익혀야 하지만 두부장을 만들려면 일단 콩을 길러야 하는데…….”

어느새 조선의 말을 배운 인디언들도 잔치에 끼어들어 들소고기를 먹어치우고 허균이 자신 있게 만든 두부장 옥수수, 현대의 콘치즈와 비슷한 물건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만드는 법을 물어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덕만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들 육질(단백질)을 거침없이 먹고 곡분(탄수화물)을 잘 먹지 않는군요. 이런 이들이 닭가슴살에 맛을 들이면 입신체비를 가르치기는 아주 편하겠습니다.”

“이들은 수렵 생활을 하는 이들이니 당연하지. 대충 보니 식사의 칠 할을 고기로 충당하니 입신체비를 하면 삽시간에 체격이 비대해진다네.”

“식사의 칠 할을 고기로 하고 나머지 삼 할을 저런 미식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면 십여 년 정도가 지나면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이들도 많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좋겠지. 새로 개척할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잔치는 이틀이 지난 뒤에야 막을 내렸고 백상선이 돛을 부풀리고 남동쪽을 향해 진로를 정했다.

* * *

수풀이 우거지고 관목이 많은 땅이라 사막배도 가다 서기를 반복하였고 한 달이 걸려서야 가까스로 해안에 닿았다.

아직 고니시는 오지 않았지만 우리의 도착을 환영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부족이었다.

“이미 파야야 부족의 사람들을 통해 소문을 들었습니다. 땅을 가꾸어 모든 부족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식량을 만들어낸다 하였으니 부디 저희의 땅을 일구어주십시오.”

“그러하면 더 할 말은 없겠군. 일전에 거래한 대로 땅을 얻어내는 조건으로 일 할의 수확량을 제공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그럼 여기에는 뭘 심어야 할까.”

남쪽에 거대한 만을 끼고 있는 유역을 받았는데 여기가 현대의 휴스턴인가 하는 장소이리라.

이미 첫 개척단을 통해 소문을 들은 하주도 출신 농부들은 땅을 헤집으며 토질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강 하구에 쌓인 퇴적물을 감안해도 토질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이 땅은 첫 개척단이 머무른 장소보다는 토양이 덜 비옥한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일등전 최상위에 불과한 땅이니 약간 부족하군요.”

“모든 땅이 그토록 풍요로우면 미주에 살 수 있는 인구가 명국의 인구보다 많아질 것이네. 하지만 일등전에 아쉬워하다니 자네들이 정녕 농부인가?”

“아닙니다! 바다가 가까우니 생선으로 배를 채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보리와 메밀을 심어 작황을 판가름해 보겠습니다.”

토질이야 조금 부족하지만 농사를 지으면 무조건 성공할 땅인 데다 해안을 끼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땅이었다. 여기에 바다가 풍요롭다 못해 물산이 넘쳐날 수준이었다.

특히나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을 좋아해 덮어놓고 바다를 조사하겠다며 나선 허균은 해산물을 한아름 짊어지고 돌아왔는데 유럽에서 가끔 보던 녀석이 섞여 있었다.

“그물을 던지니 그물 가득 커다란 가재가 잡혀 왔습니다. 닭새우와 달리 커다란 집게가 있으니 맛이 궁금합니다. 관찰사님께서는 혹여나 맛을 알고 계시는지요?”

“그건 서역인들이 랍스터라 부르는 녀석이라네. 물에 삶으면 맛이 없지만 반으로 갈라서 기름을 두르고 구워 먹으면 맛이 아주 좋더군.”

금주의 노비들도 닭새우를 먹기 싫어한다는 말이 떠올라서 쓴웃음이 나왔지만 허균은 이를 바로 뜯어 회를 만들어 내놓았다.

유럽에서는 운송이 힘들어 죄다 버터 범벅으로 구워냈지만 이렇게 먹으니 별미이긴 하다. 머나먼 바다를 보니 저절로 시구가 읊어질 지경이었다.

“참으로 풍족한 땅이라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을 서로 나눠 가지지 않고 고스란히 가진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겠지만 이는 참으로 험난한 일이겠지. 당장 동쪽에서…….”

“관찰사님! 동쪽에서 괴이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아국의 병사들을 만나자 대표로 보이는 사람 단 한 명만 다가와서 이자를 포박하여 압송하는 중입니다!”

배흥립 대신 병사들을 통솔하는 이회의 급한 보고가 들려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페인 원정대인가 아니면 아메리카 원주민인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만나봐야 하리라.

하지만 괴이한 사람이라는 이회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진한 피부색의 아메리카 원주민과 달리 내 앞에 서 있는 남자의 피부색은 훨씬 옅었다. 동양인이라면 시커멓게 변했을 얼굴이지만 서양인 특유의 얼굴형이 남아 있는 데다 지나치게 그을려 기미가 잔뜩 피어있었다.

얼굴 형태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인데 외모가 지나치게 변해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유성룡의 어마어마한 기억력 덕분에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세스페데스 아니시오? 오추세(플로리다)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게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시커먼 신부복은커녕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간혹 입고 다니는 얇은 갈대섬유로 만든 옷과 버펄로 가죽 망토를 겹쳐 입었으며 평상시에도 굴리고 다니는 묵주는 현지에서 새로 만들었는지 투박한 모습이 엿보였다.

손의 굳은살은 물론이요 머리카락과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해 더벅머리에 고슴도치 같은 수염이 나 있었지만 엄연히 세스페데스였다.

그는 한동안 스페인어를 말 해본 적이 없는지 기억을 되살리며 더듬거리다 내 정체를 알아차리고 답하였다.

“외모가 거의 변하지 않았으니 가까스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조선에 계실 서애 유께서 어찌하여 누에바 에스파냐의 영토에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참으로 다행입니다.”

“나 또한 이역만리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오. 자네들은 뭘 하는가? 당장 제대로 된 의복을 만들 준비를 하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주게나. 그동안 어떻게 지내온 거요. 설마 계속 선교 활동을 한 거요?”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세월이 육 년이나 흘렀지만 제 믿음은 변하지 아니하였으며 주님께서 많은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세스페데스는 협정을 모르니 스페인의 영토라 인식하고 있겠지.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동안 죽도록 고생했을 세스페데스를 좀 사람답게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펠리페 2세가 합류시켰다던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옷을 벗으시고 몸을 석감으로 씻으시구려. 그나저나 같이 온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소?”

“같이 온 사람들은 펠리페 2세께서 보내주신 시종과 인부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사 년 전에 본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자신들은 선교 활동을 도우라 하였지 방랑하라는 명령을 들은 적이 없다 하더군요.”

내 이럴 줄 알았다. 하긴, 플로리다에서 일을 도우라는 사람들이 이 머나먼 텍사스까지 올 이유가 없으니 돌아갔을 것이고 세스페데스도 말리지 못했으리라.

세스페데스는 내 표정을 보더니 자신의 몸을 더듬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제복은 주름이 많은 코트 형태라 길이만 맞춰서 많은 단추를 달면 되니 만들기도 편하지.

세스페데스는 내 호의를 알아차리고 몸을 박박 씻고 돌아와 몸의 치수를 재었다. 하지만 치수를 재는 몸의 근육이 예전과 다름없었다.

“대체 그 몸은 어떻게 된 거요? 외모가 변할 정도로 지독한 고생을 하였으면서 내가 보아왔던 체격과 전혀 다르지 않구려. 아무리 나라 하여도 육 년 동안 돌아다녔다면 몸이 축났을 것인데 아예 변하지 않다니?”

내가 극단적인 입신체비를 해봐서 잘 안다. 사람은 표준 근육량까지는 근손실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표준 근육량을 넘어선 체형을 유지하려면 식사와 입신체비를 모두 철저히 해도 모자란 수준이다.

내가 배를 타고 유럽을 다녀오며 근손실에 시달렸지만 세스페데스는 무려 육 년 동안 선교 활동만 했던 사람이니 표준 근육량도 지키기 힘든 상황이리라.

자신의 몸을 쓰다듬은 세스페데스는 성호를 긋고 태연히 답하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입신체비의 규정을 모두 지키려 하였으나 생각보다 고된 선교 활동을 벌여서 어쩔 수 없이 규정을 하나둘씩 어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돌을 엮어 만든 역기로 삼대 운동이나 하는 형편이지요.”

“그게 말이나 되나? 분명 자질이 있는 사람이지만 생활이 어긋나면 근력이 쇠퇴하기에 마련일세. 심지어 나이도 마흔이 넘지 않았는가? 그러하면 삽시간에 근손실이 시작될 것인데.”

“제가 근손실을 겪지 않은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총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침 제대로 된 대역기가 있으니 한번 측정이나 해야겠군요.”

내가 사용하던 대역기에 공령을 더욱 끼워 넣은 세스페데스는 가볍게 몸을 풀고 오랜 간만에 잡아보는 대역기봉의 감촉에 감탄하며 삼대 운동 측정을 시작하였다.

공좌, 의압, 그리고 시거를 각기 360근, 250근, 390근을 성공하였으니 삼대 운동 일천 근인 진양근을 달성하였다.

상식을 벗어난 모습만 보이니 이쯤 되면 근손실도 겪지 않는 근육의 수호성인이 될지도 몰라 고민할 지경이었다.

내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스페데스는 성호를 긋고 하늘을 보며 기도를 올리더니 새로 만들어진 신부복으로 갈아입고 침착한 표정으로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실은 서애 대감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아래에 있는 신도들은 스페인에서 알게 모르게 퍼져 나간 질병을 피하여 여기까지 머나먼 길을 오게 되었는데 저도 한계에 봉착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질병이라 하면 천연두나 홍역 정도겠지. 홍역이야 사망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치료하면 되고 천연두는 우두로 극복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세스페데스의 표정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닌 듯하기에 역으로 물어보았다.

“한계에 봉착하였다니 이해할 수 없구려. 천주교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도가 되었다는 말이오? 애초에 선교라는 것은 수백 명만 신도로 만들어도 큰 성공이라 알고 있소이다.”

“여러 부족을 거치며 선교 활동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문물을 퍼뜨리고 농사를 짓는 법을 알려주며 이후에 입신체비를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였지요.”

6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문물을 퍼뜨리고 농사를 짓는 법, 심지어 입신체비까지 가르쳐 줬다고? 신실한 신부인 세스페데스가 아니었다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호통을 쳤을 소리다.

하지만 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하여 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일만 명이 넘을 지경입니다. 여러 부족에서 합류한 이들이자 하나같이 농사의 기초를 알고 입신체비의 기본을 지키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는데 농사가 실패하여 식량이 부족해진 형편입니다.”

“일만 명이라 하였는가? 그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모았단 말인가? 이동할 적에 식량은 어떻게 충당하였고 관리는 어떻게 하였는지 궁금하구려.”

“봄이 되면 다른 부족의 영토에 찾아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문물을 퍼뜨리고 입신체비까지 퍼뜨렸지요. 그리고 가을에 추수를 마친 뒤 다시 서쪽으로 향하였습니다. 질병이 덮쳐올 때마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지요.”

풍족한 땅에서 한 해를 먹고살 식량을 얻을 수준의 농사를 한 뒤에 이를 짊어지고 머나먼 길을 이동하면 이론 상 육 년을 버틸 수는 있겠지. 하지만 흉년이 들거나 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내 표정을 보았는지 세스페데스는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병을 피해 움직일 때마다 문제가 도처에 넘쳐났습니다. 간혹 다른 부족이 우리를 습격하여 곡식을 약탈하려 하였으며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기도 하였지요.”

“그러하면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갔을 것이네.”

“약탈이 올 적에는 입신체비를 익힌 강인한 전사들이 역으로 그 부족을 털어서 식량을 벌충하였지요. 흉년이 들었을 적에는 웬 메뚜기 떼가 한 달 내내 출몰하더군요. 강화도에서 자주 먹던 메뚜기가 떠올라 닥치는 대로 잡아 구워 먹어 한 해를 버틸 수 있었지요.”

흉년이 시작되면 먹을 것이 없어진 메뚜기 떼가 이동하는 경우가 있고 이러면 흉년에 병충해까지 겹치며 식량이 바닥나는 참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출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기적이다. 이쯤 되면 세스페데스의 앞길은 기적이 함께 하였으리라.

#작가의 말

세스페데스의 기적 목록입니다.

- 십자가에 박힌 못을 잡고 다섯 시간을 버팀

- 고문 도구의 밧줄이 알아서 끊김 (힘으로 끊음. 겁에 질려 기적이라 함)

- 거대한 악어를 때려잡음 (근육으로 가능함. 하지만 기적으로 인식)

- 단 육 년 만에 일만 명의 신도를 만듬

- 육 년 동안 시달렸는데도 근손실이 없음 (근육적으로 불가능)

- 식량이 떨어질 무렵 메뚜기 떼가 덮쳐와 굶주림을 모면함.

총 기적 6스택, 근육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3스택이 적립되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