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06화
2부 27장 2화 평범한 작황
백상선에 올라 돌아오는 길에도 농부들은 새벽같이 밭으로 나와 개간을 시작하였다.
우선 옥수수 농사를 지어두고 힘이 남으면 마을을 만들며 밭을 일구어 두라 지시하였는데 이런 옥토에서는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하였다.
“농토를 만들다 벌채한 목재는 저 구석에 쌓아두도록 하게! 당장 집을 만들어야 하니 조금 뒤틀리더라도 양지에서 말려야 한다네!”
가장 바삐 움직이는 사람은 윤광영이었다. 그냥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세상 사는 경험을 쌓았으니 더 빨리 경험을 쌓아보라 하였고, 아예 내가 임시로 머물 관아까지 만들라 하였다.
관아는 물론이요, 돌이 많거나 바위가 있어 농토로 만들기 힘든 땅은 즉석에서 마을로 탈바꿈하였다. 배산임수고 뭐고 일단 천막생활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삼대에 걸쳐서 토지를 늘릴 수 있다 했으니 이런 풍요로운 농작물을 기반으로 아이들을 대여섯 명씩 낳고 마음대로 토지를 사들여 늘리겠지.
백상선을 타고 돌아가다 더위가 거세져 잠시 휴식을 취하니 주변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인사를 올렸다.
“관찰사님께서도 더위에 지치신 것 같은데 더위는 하주도보다 훨씬 심하군요. 대신 밤이 되면 서늘해지니 겨울이 제법 추울 것 같습니다. 겨울에 입을 두꺼운 옷이 필요하겠는데요.”
농토를 개척하는 사람들도 점심이 되어 무더위가 찾아오자 나무그늘 아래에 모여 휴식을 취하였다.
내가 그리 격식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니 같이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한겨울에는 열흘에서 보름 정도 물이 어는 날이 있다더군. 대신 석 달 정도만 지나면 다시 얇은 옷을 입어도 괜찮아진다 하였으니 큰 염려는 말게. 그런데 이런 기후라면 벼농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모작이 너끈히 가능합니다. 날이 풀리자마자 모내기를 시작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수확하며. 아주 무더운 여름에는 논을 잠시 놀려 두었다가 벼가 타지 않을 정도로 더위가 꺾이면 충분하겠지요. 잘만 하면 삼모작도 가능하겠군요.”
“삼모작이라 하였는가?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모내기로 미리 벼를 키워두니 빨리 자라는 조생종은 석 달 정도 자라면 수확할 수 있습니다. 대충 3월에 벼를 심고 6월에 거둔 다음 바로 옥수수를 심어 9월에 다음 벼를 심어보지요. 정 안 되면 마지막에 심는 녀석은 보리로 해도 충분할 겁니다.”
벼, 옥수수, 그리고 보리의 삼모작이라. 내가 알기로 일본에서 축복받은 일부 농토는 벼와 메밀, 그리고 보리로 삼모작을 하는데 여기서는 메밀 따위는 필요가 없는 축복받은 땅이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면 미국으로 이주하는 백성들이 얼마나 많을지 고민이 앞설 수준이었다.
한편 이 광경을 목격한 코만치와 아파치의 전사들은 풍경 자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경외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하였다.
“숲을 저렇게 일구어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백 척의 움직이는 집에서 수없이 많은 전사들이 내려 숲을 농토로 바꾸는데 잘못하면 자연의 분노가 내릴지도 모릅니다.”
“아국은 오천여 년 동안 농사를 지어왔으니 큰 문제는 없게 조처를 취하였다네. 조만간 코만치의 땅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며 아파치는 그 대신 유목(遊牧)생활을 하게 배려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심곡강에 다시 들르니 주변의 아메리카 원주민인 기지기직 부족이 내가 만든 다리를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크기가 작고 나무와 밧줄로 만들어도 엄연한 조교(弔橋: 도개교)이니 이를 신물로 떠받들 수준에 이르렀다.
심지어 밧줄을 엮는 기둥 앞에 아메리카 원주민 특유의 장승, 현대로는 토템 폴(totem pole)이라 불리는 화려한 조각상을 세우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오자 추장으로 보이는 이들이 인사를 올리고 청원을 하였다.
“저희가 본래 강을 건널 때에는 배를 타고 건너거나 짐이 물에 젖을 것을 염려하고 건넜어야 했으나 대전사께서 이런 다리를 만들어주신 덕분에 강 좌우의 사람들이 편히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쓰려고 만든 다리이니 그리 마음에 두지는 말게. 강이 범람하면 다리가 무너질지도 모르니 조만간 더욱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줄 것이네.”
“그러하면 더욱 고맙지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저희의 땅에는 수없이 많은 나무가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없이 지혜로운 대전사님을 따라 이런 문물을 만들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이들에게는 농사도 뭣도 알려주지 않고 길만 빌려달라고 하였지만 알아서 복속을 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기지기직 부족 소속 젊은이들을 일행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나아갔는데 서쪽으로 갈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전사께서는 조선이라는 곳의 대추장 대리 자격으로 방문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저희 메스칼레로는 대추장님을 만나 인사를 올리고 이 황소라는 짐승을 더욱 많이 가져가고 싶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행해왔던 농사는 자연의 은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농토에 몇 배나 되는 곡식이 번성하니 저희 나바호 부족에게 대추장님께 나아가 인사를 올릴 기회를 주십시오.”
지나가는 길에 존재하는 모든 부족들이 진정한 대추장인 주상전하에게 인사를 올리고 싶다 하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한 부족마다 대충 쉰 명씩의 사람을 보내왔으니 이들 모두를 데리고 강주(샌디에고)에 가까스로 돌아왔다.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미주인(아메리카 원주민)이 제법 많이 따라왔는데 이들은 왜 여기에 왔습니까?”
“주상전하를 대추장이라는 직위로 추대하였으니 직접 만나 뵙고자 청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법이 아니겠는가. 아국으로 보내야 하는 사람들인데 모두 영창 접종을 하지 않았으니 당장 영창 환자에게서 받아낸 고름을 접종시키게나.”
강주 목사인 성양진도 나와 함께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준비하는 사람이라 피로가 깊었지만 햇볕에 타들어 간 내 얼굴을 보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업무를 도왔다.
이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율도상회 상인들과 함께 고니시가 방문하였다.
“고니시 자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네. 내가 모든 일을 시행하려 하였지만 내 힘으로는 닿지 않는 일이 있어서 자네 상회를 모조리 소집하여 거래 하나를 성사시켜야 한다네.”
“이미 준비를 마쳤지만 참으로 난해한 거래를 성사하라 말씀하시니 저도 장계를 받고 식은땀이 다 났습니다. 세상에 중미국에서 철물과 마소(馬牛)를 사들여 뱃길로 옮기라니요.”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네. 개척을 위해서는 철물이 필요한데 금주(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발견한 철광산은 아직 소출이 부족하여 사막배를 만들 철물을 얻는 것이 전부라네. 또한 소와 말도 잔뜩 필요하겠지.”
텍사스 일대에 철광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산을 찾을 때까지, 혹은 금주의 광산에서 여유분의 철광석이 쌓일 때까지는 남쪽에 있는 중미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멕시코 중부까지 내려가며 철물과 소 그리고 말을 사들이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와 텍사스로 향하느니 아예 대서양 방면으로 배를 타고 나아가는 것이 빠른 형편이다.
하지만 이미 국제 협정을 어긴 상황이기에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혹여나 서반아의 함대를 만나 개척이 들통나면 곤욕을 치를 수도 있으니 최대한 해안에 근접하여 움직이게나. 만에 하나 이번 일이 들키면 외교 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네.”
펠리페 2세와의 협정 내용은 콜로라도 산맥 넘어 강 하나의 유역(流域)까지를 영토로 삼겠다고 했는데 여기는 개척지보다 한참 서쪽에 있는 심곡강 인근이다.
이를 대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고니시는 목소리를 낮추어 답하였다.
“반드시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야 어렵지 한번 개척하면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나 암초에 의해 물품이 상할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나는 고 부장, 아니, 고니시 자네만 믿겠네.”
고니시의 도착까지 대충 석 달은 걸릴 예정이니 나도 텍사스까지 나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금주로 돌아가니 예상대로 방금 전에 도착한 하주도 출신 이주민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으며 조정에서도 사람을 보내왔다.
“주상전하께서 조금 늦었지만 저를 비롯하여 미주에서 근무하였던 관원들과 젊은 관원들을 소집하여 관찰사 대감을 도우라 명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예전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이이첨을 시작으로 대충 스무 살 내외의 젊은 관원들이 인사를 올리며 나를 맞이하였다.
행정력은 많을수록 좋은데 엄연히 소과와 대과를 거친 관원들이라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이쪽은 퇴우당(退憂堂: 박승종의 호)이며 여기 이 젊은 친구는 교산(蛟山: 허균의 호) 입니다. 다들 인사를 올리게나.”
“새로운 땅에서 오래 근무할 젊은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이 놓인다네. 그러하면 모든 일은 나아가면서 알려주도록 하고 바로 출발 준비를 하세나.”
다들 대부분 겁에 질려 있는데 박승종은 아예 공포에 물들어 발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그나마 당당한 사람은 허균 단 한 명이었다.
대체 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하니 마음 하나는 놓이지 않겠는가.
실책을 저질러 문책을 당할 배흥립은 귀국하는 선단에 미주인 사절단과 함께 올라 돌아갔다.
그리고 첫 개척단을 출발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해 둔 오백여 척의 사막배와 새 백상선을 이끌고 개척에 나섰다.
* * *
1593년 음력 9월, 나바호족의 영토에 만든 거점에서 물건을 정비하니 보름 간격으로 들어오는 정기 보고 가운데 네 번째 보고서가 도착했다.
먼 거리라 걱정이 많았지만 제법 잘 적응하고 있었다.
“수확을 보름 정도 남기고 작황은 매우 좋음이라. 풍족한 땅과 더운 기후에서 옥수수 농사가 실패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농사가 성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이후의 일이 더 중요하다네.”
이후의 일이라 하자 다들 어깨를 움찔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지만 아직 할 일이 산더미 같으니 당연히 일을 해야지.
하지만 허균만큼은 환히 웃는 얼굴로 내 말에 답하였다.
“이후의 일이라 하시면 당연히 어중간하게 만든 옥수수밭 대신 논을 만들어 벼를 기를 준비를 마쳐놔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저 또한 절실히 통감하고 있습니다.”
“교산(蛟山) 자네의 말이 맞네. 옥수수 농사야 잡초를 대충 뽑아도 되고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잡곡일세. 농군은 뜨뜻한 밥을 뱃속에 넣어야 제힘이 나는 법이니 당연히 벼를 길러야 하네. 수확량 또한 벼가 월등하니 결국 벼가 답이라네.”
“물론이지요. 듣자 하니 새로 얻어낸 땅의 작황이 지극히 좋다던데 백설기를 쪄서 고명을 잔뜩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겠습니다. 여기에 미주에는 어떤 생선이 살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허균은 다른 것은 몰라도 농사나 음식과 관련해서 제법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를 나누기 적절하였다.
이제 스물이 넘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박식하니 대화 상대로 적당했고 더욱 즐거운 일이 있었다.
“제가 겸암(謙菴) 대감님을 만나 뵌 적이 있으며 요리를 만드는 법을 사사받은 적 또한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자질이 뛰어나다 하시며 온갖 비법을 전수해 주셨지요.”
“형님께서 자네에게 음식을 만드는 비법을 가르쳤다 하였나? 이거 자네가 중인이었다면 후일의 대령숙수(待令熟手) 자리가 정해져 있을 것인데 하필 문관이라니 아쉬운 일이로군.”
요리사로 두각을 드러낸 형님은 얼마 전 사옹원 제조(提調: 정2품 관직)로 임명되어 아예 궁중의 요리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스페인에서 파견한 신부와 함께 방문한 요리사들도 소집하여 새로운 요리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형님이 소집한 이들은 최소한 미각이 뛰어나거나 미식을 즐기는 이들이고 대감들조차 기준에 미달하면 당장 거부당하기 십상이었다. 젊은 허균이 여기에 들어갔다면 형님의 그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허균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게 말했다.
“겸암 대감님께서도 제 부족한 재주를 칭찬해 주시며 경험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후일 자신의 뒤를 이어 사옹원에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여러 음식을 만들어보라 하셨지요. 그리하여 이런 물건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건 계란장(마요네즈)이 아닌가? 이런 흉물을 왜 여기에 가져왔는가?”
“제가 대감께서 창안한 계란장을 여러 번 맛보고 맛을 가다듬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물건을 만들어냈으니 한번 드셔보시지요.”
대체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허균이 꺼낸 물건은 마요네즈였다.
내가 앙리 3세의 기름범벅 프랑스 요리를 정면에서 박살 내기 위해 만든 입신체비의 적이자 흉물이지.
하지만 색상이 흰색에 가깝고 슬쩍 찍어 먹어보니 느끼하고 시큼한 맛 대신 담백하고 고소하며 시큼한 맛이 감돌았다. 칼로리로 따지면 1/4 정도 하겠지만 맛은 절반 정도이니 제법 놀라운 녀석이다.
허균은 내 표정을 보더니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계란장은 고소한 기름과 노른자의 맛을 시큼한 틀 안에 담은 녀석입니다. 고소한 맛은 두부와 참깨 가루로 대신하고 기름을 최대한 줄여보았지요. 이 녀석이 바로 두부장입니다.”
“이거 제법 놀라운 물건이로군. 비록 물기가 많아 질감이 다르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계란장을 대신하여 여기저기 쓰일 수 있을 것일세.”
“그러하면 두부를 데치고 꼭 짜내서 물기를 줄여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입신체비를 행하는 사람도 절육 기간이 아닐 경우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계란 노른자가 들어가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로군.”
이쯤 되면 이 친구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각 하나는 대단하고 재주 또한 좋다. 일단 보름 정도 같이 지내본 결과 문장도 뛰어나고 언변이 대단한 데다 감각 또한 좋은 편이었으니까.
물론 단점도 있었다.
“머나먼 산을 건너고 물을 건너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였으니 참으로 기쁘지만 이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칠 방법이 문제로군요. 입신체비를 익힐 때마다 세금을 감면하면 어떻겠습니까?”
“입신체비를 강요하는 행동은 사람으로서는 행해서 안 될 일이라네. 이득을 주어 강권(强勸)하는 방식이라면 모르겠지만 세금으로 억누르는 일은 위정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조정에서 최고로 신임받는 관료이자 업무 지옥으로 사람을 몰아넣는다는 악명이 자자한 내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보통 사람 앞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안 보아도 뻔하였다.
허균의 재주보다 몇 배는 거대한 자만심이 계속 부풀어 오르니 언젠가 호되게 탄핵당하고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리라.
내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허균이 계속 말을 할 것 같아서 바둑판을 꺼내고 입을 다물게 만들 준비를 하였다.
“이미 다녀온 길이니 계속 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나와 같이 입신체비바둑이나 둬보세.”
“관찰사 대감과 함께 입신체비바둑을 두다니 이거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누님께서도 바둑을 제법 두시는데 매형께서는 입신체비만 잘하셔서 아쉬운 참이었지요.”
“누님과 매형이라 하였는가? 자네 누이의 호가 난설헌(蘭雪軒)이 맞는가?”
“이거 누님의 명성이 자자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누님께서는 재주도 좋으시고 입신체비도 잘하시지만 바둑은 좀 아쉬운 감이 있었지요.”
바둑을 두며 허난설헌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남편인 김성립은 학문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여 가까스로 생원시에만 합격하고 입신체비에 몰두하여 집안이 쓸쓸하다 하던가.
허균 본인도 입신체비가 부족하지는 않지만 바둑 실력은 당연히 나보다 부족하고 입신체비도 부족했다.
삽시간에 상체의 힘이 고갈되어 대자로 뻗은 허균을 보며 혀를 차대니 이윽고 개척단이 처음으로 만든 농토인 파야야 부족의 땅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수많은 미주인 전사들이 땅에 줄을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곰이나 버펄로 혹은 사슴을 짊어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나를 보자 경외감을 가득 담아 인사를 올렸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마을에 들어가 벌어진 꼴을 확인하였다.
“이 들소는 일천백사십 근(730㎏)이니 거래대로 그 두 배의 옥수수를 내어주겠네! 이 곰은 오백 근이 조금 넘으니 세 배의 옥수수, 도합 스물세 석일세!”
“정말 감사하다. 우리 가족 이거 좋아한다.”
이미 옥수수의 수확이 끝나 마을 한가운데는 말 그대로 옥수수의 산이 쌓여 있었다.
새 개척단에서 쓸 옥수수를 감안하면 이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여섯 달을 버틸 식량이 필요한데 여기 쌓여 있는 양만 따져도 식량을 채우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옥수수는 아직 제대로 해체하지도 않은 들짐승들과 교환되며 마구잡이로 팔려 나갔다.
심지어 내가 오고 나서도 거래가 끊어지지 않아 어처구니가 없어 물어보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옥수수를 사사로이 팔아치우다니 이러다가 식량이 부족할지도 모르지 않은가? 자네들은 대체 뭔…….”
“지금 옥수수가 너무 많이 수확되어서 다 썩어 문드러질 지경입니다. 조청을 쑤고 술을 만들며 마음대로 쓰려 하여도 답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더군요.”
“대체 얼마나 생산되었기에 이런 방식으로 소비하는가. 밭 한 결에 옥수수는 낱알을 다 털어냈을 때 기준으로 보통 열 석에 잘해야 열다섯 석이 생산되지 않던가!”
“한 결에 평균 스무 섬 이상이 소출되었습니다. 저희가 개척한 땅 삼천여 결에서 소출된 옥수수만 칠만 석에 파야야 부족에게 땅값을 지불하고 남은 옥수수가 육만 석에 달합니다. 그러니 삼 할 정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팔아치워도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많이 수확된 옥수수 가운데 좀 썩은 녀석은 두엄 안에 박혀있을 수준이었다.
임시로 부설된 마을 창고에는 잘 말린 옥수수가 그득그득 쌓여 있었고 옥수수로 떡을 찧어 먹으려다 실패했는지 수제비를 쑤어 먹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말이 육만 석이지 무게로 따지면 거의 육천 톤에 달하니 낱알이 붙어 있는 옥수수 기준으로는 한 결당 3톤 정도는 생산되었으리라.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옥수수로 또 다른 거래가 성사되었다.
“자네 쌀 한 섬과 옥수수 석 섬을 바꾸면 어떻겠는가?”
이쯤 되면 옥수수로 다이아몬드를 교환해도 되겠다!
막 도착한 하주도 출신 이주민들은 신이 나서 옥수수를 받고 식량으로 지급받은 쌀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게 미국의 땅이란 말인가?
#작가의 말
옥수수의 수확량은 현대의 품종개량과 개량된 품종을 감당할 정도로 뿌리는 질소 비료를 기반으로 했을 때 1결, 1헥타르당 한국 기준으로 5톤 정도를 생산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1결당 12톤을 생산하며 이마저도 생산량 조절을 위해 적당한 수준에서 밭을 통째로 뒤엎어서 줄인 수치이지요.
아직 현대는 아닌지라 수확량을 1/4 정도로 감소시켰습니다. 그런데도 2만 명이 6개월을 먹고 남을 수준의 수확을 거둬 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