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03화 (503/573)

근육조선 503화

2부 26장 14화 아파치 전쟁(2)

나바호족의 마을에 머물러 거점을 만들고 어느 정도 물자의 보급을 한 뒤 배흥립과 합류하여 출발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대충 보름 정도 걸릴 일이라 계산하였고 실제로는 13일 만에 기본적인 시설을 만들어 버렸다.

아직 자연이 파괴되지 않은 시대이니 나바호족의 영토에서 조금만 숲으로 들어가면 말 그대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더군다나 나무도 질이 좋은 미송(美松)이었다.

“관찰사님께서 명하신 대로 목책을 설치하고 각종 주택과 시설을 지어두었습니다. 아직 임시로 지어두었지만 후일이 되면 제대로 집을 지을 목재까지 준비해 두었습니다.”

소나무나 참나무야 일 년가량 말려야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있지만 미송은 워낙 좋은 목재라 생나무를 대충 말려서 집을 지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시설을 완성하고 보니 서부극에 흔히 나오는 마을, 십자로를 두고 수많은 주택이 양옆에 즐비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서부 개척시대에도 효율성만 추구했는데 나 또한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니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겠지.

공무원들답게 규정에 맞게 제법 튼튼한 건물을 지었다. 아직 진액이 새어 나오는 미송을 쓰다듬고 발로 걷어차 봤는데 그리 흔들리지 않아 만족스러워 절로 칭찬이 나왔다.

“미주의 소나무는 제법 단단한 나무인데 잘 베어냈군. 나바호 부족민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모두 농사꾼이니 새로운 작물에 푹 빠져있습니다. 아국에서 가져온 콩은 물론이요, 고슬고슬한 보리의 맛에 취해 있더군요. 다만 쌀밥만큼은 구미에 당기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그나저나 백기 이 친구는 대체 뭘 하다가 보름이 넘게 장계도 보내오지 않는단 말인가. 여기서 한 달을 지내도 충분하지만 소식이 너무 늦는걸.”

기본적인 실력은 되는 사람인 데다 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함께 보냈으니 함정에 빠져도 일을 그르치지는 않았으리라 여겼다. 아마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파치 부족을 소탕하다 힘이 빠져서 뒤늦게 장계를 보내리라 여겼다.

만에 하나 배흥립의 분견대가 전멸하였다면 큰일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마침내 22일이 지난 시점에서 배흥립이 보낸 전령이 도착하였다.

“배 중군(中軍: 관찰사 휘하의 정3품 무관)님께서 장계를 보내오셨습니다.”

“대체 뭘 하느라 보름하고도 이레가 지나서 장계를 보내온단 말인가. 혹여나 아파치 부족의 함정에 빠져서 일을 그르쳤다면 큰일인데. 아니군, 이미 함정에 빠졌어.”

장계의 서두에는 ‘리판이라는 무리의 계략에 빠져 엉뚱한 마을을 공격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순간 욕설이 나올 뻔했지만 생각해 보니 배흥립이 당할 만한 계략이었기에 넘어가기로 하였다.

야간을 틈타 기습하고. 추격대를 다시 상대하다 엉뚱한 마을까지 흔적을 이어놓고 다른 장소로 도망치는 계략이라니.

일어날 법한 상황이라 가벼운 징계만 내리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내용을 읽자 팔에 힘이 절로 들어가며 장계가 구겨지기 시작했다.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대규모 토벌? 전쟁의 규모를 더 늘려?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사태의 수습을 위해 치리카후아라는 부족을 앞세워 아파치의 저항 세력을 모조리 토벌하겠다는 계획을 자랑스럽게 적은 내용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이제이라는 말이 있지만 배흥립의 방식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여기서 치리카후아 부족이 아파치를 통일하게 만들면 당장의 문제만 해결할 뿐이다.

한 부족에 힘을 모조리 결집시키면 훗날의 화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욕심은 절대 제어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다고 치리카후아 부족에게 적당히 힘을 실어주면 분노의 화살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원한을 품고 개척단을 약탈할 것이니 당장의 화근이 된다.

해결책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모조리 토벌하는 것 하나인데 그런 답을 내렸다간 주상전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다.

“주상전하께서 나를 아무리 신뢰한다 해도 일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한 토벌을 진행한다면 조정에서 말이 나오지. 미주의 군권을 쥐고 있더라도 전쟁을 일으킬 권한은 없어!”

나는 전쟁을 하러 온 것이 아니고 적대세력을 억누르고 개척을 진행하러 여기 온 것이다.

배흥립에 대한 처분은 나중에 내리기로 하고 이 멍청이 내버려 둘 수 없으니 서신을 바로 작성하였다.

“어쩔 수 없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삼아 아파치 부족을 두 갈래로 분열시키고 나바호족을 키워서 아파치를 억누르는 방법 외에는 없겠어. 그리고 또 문제가 이놈의 코만치 놈들인데…….”

한참을 생각한 끝에 가까스로 대략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성공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로 이어지겠지만 실패한다면 개척 계획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그리고 성공 확률을 올리기 위해 나도 나서야만 했다.

“지금부터 코만치라는 놈들의 영토로 나아갈 것이다! 모두 출발할 준비를 하도록!”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비전투 인원까지 전선에 내보내야 하니 답답하지만 기껏해야 십만 명 정도의 인구인 아파치 부족이 눈앞의 일만 명의 사람들과 덮어놓고 싸우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만에 하나 전투가 벌어지면 백성들만큼은 지켜야지 별수가 있겠나.

* * *

배흥립의 휘하에는 차례차례 치리카후아 전사들이 집결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비용 무기들도 모두 지급해 내세울 것이라고는 사막배 외에는 없었지만 사막배를 본 전사들은 사기가 올라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집이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전사들이 움직이는 집 위에서 화살을 쏘며 달려든다면 리판 놈들은 질겁하여 모조리 도주할 겁니다!”

“자네는 대체 뭔 소리를 하는가. 사막배는 얼기설기 엮은 목책보다 못한 녀석이라네. 이런 녀석을 가장 앞에 둔다면 강궁(强弓)에 판재가 꿰뚫려 사람이 다친다네.”

“네? 이런 나무를 꿰뚫는 화살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노련한 전사가 틈을 노린다면 모를까 보통 화살은 나무판에 촉이 바스러질 것입니다.”

역관(譯官)이 전해준 이야기를 들은 배흥립은 사막배와 이들이 사용하는 병장기를 번갈아가면서 확인하였다. 아직 철기문명에 접어들지 못한 아파치 부족의 화살은 돌로 만든 촉을 사용하니 이런 목판을 꿰뚫을 수 없었다.

조선의 병법을 기준으로 전략을 세웠기에 사막배는 보급 및 비상시 농성을 위한 거점으로 후방에 배치하였지만 이런 세상이라면 전방에서 돌격시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거대한 집이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여도 결국 직선으로 움직이는 표적이니 반격을 당하면 손해가 막심하리라.

배흥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끼고 아낀 나팔총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자네들은 아국에서 사용하는 병기 가운데 큰 소리를 내고 멀리까지 날아가 사람을 죽이는 병기를 알고 있지 않던가. 이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천둥새의 소리를 담은 막대기라 알고 있습니다. 소리가 들리면 한 명이 반드시 죽으며 곰조차 단숨에 죽이는 위력을 지녔으나 크고 둔하여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지요.”

마이두나 호파를 비롯한 조선의 영토 주변에 사는 부족들은 보총을 비롯한 화약병기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지만 아파치 부족은 아니었다.

이들이 조선과 접촉한 사례는 기껏해야 강주 외곽의 농장이 약탈당한 사례 외에는 없었으니 화약병기를 제대로 알 방법이 없고 오로지 소문으로만 들을 뿐이었다.

배흥립은 나팔총을 머리 위로 들어 쏘아버렸다.

“으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다!”

집결한 치리카후아의 전사들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화약병기의 폭음에 머리를 숙이고 주변을 살피며 겁에 질렸다.

단 한 발의 나팔총이 이런 효과를 보여줄 줄은 몰랐던 배흥립은 마구 웃어대며 나팔총을 하나 더 꺼내 쏘아버렸다.

“천둥새의 소리를 담은 막대기입니까? 지금 누가 죽었습니까? 천둥새의 소리가 퍼지면 반드시 한 명이 죽는다 하였는데 대체 누구를 죽이신 겁니까!”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염려하지 말게나. 그나저나 새로운 병법을 만들어볼 것이니 다들 듣도록 하게. 새로운 병법의 이름은 충격과 공포라네.”

새로운 병법을 전령을 통해 다른 분견대로 퍼트린 배흥립은 진군에 박차를 가하였다.

배 앞에 묶어둔 리판 전사의 길 안내를 받아 세 번째로 무너트릴 마을 근처에 도착한 배흥립은 천리경으로 벌판을 보며 감탄하였다.

“이틀 전에 상대한 마을은 허둥대다 당했는데 네놈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구나! 저 벌판에서 적도가 달려온다! 사막배를 앞세워라!”

이레 동안 두 개의 마을을 무너트린 배흥립은 다시 명령을 내렸고 어딘가 손상되어 축이 어긋난 사막배가 삐그덕거리는 굉음과 함께 대열의 앞으로 나아갔다.

리판 전사들은 사막배가 사람의 뜀박질보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자 전의를 상실하며 돌격을 멈추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사막배로 달려들려 하였다.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투창이 날아들고 화살이 쏘아졌지만 사막배 위에는 궁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원거리에서 일방적인 손실만 입자 리판 전사들은 어떻게든 사막배에 올라타려 하였다.

하지만 하와이 출신 뱃사람들이 이를 저지하려 하였다.

“놈들이 온다! 다들 작살 들어! 단번에 꿰뚫어 버려!”

강덕만을 비롯한 하와이 출신 뱃사람들은 캘리포니아 만에 서식하는 상어를 잡아 부를 축적하였다.

이들의 근육은 어지간한 상어는 작살질 몇 방에 급소를 찔려 즉사시키는 작살 솜씨를 자랑했고 그 작살이 사람에게 날아들었다.

단번에 배가 꿰뚫린 전사가 허물어지자 작살에 묶인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그 시신이 배 측면에서 질질 끌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강덕만은 다시 작살을 던지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또 명중했다! 어서 배 위로 끌어올려라!”

“이얏호! 상어 잡는 작살로 사람을 잡아보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 미친 새끼들! 네놈들은 모두 미쳤어! 사람을 그런 식으로 죽여!”

사막배의 맨 앞에 묶여 길을 안내한 리판 지파의 전사가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에게 날아온 것은 동료의 화살이었다.

화살을 허벅지에 맞은 그를 가볍게 들어 배 안으로 던져 버린 강덕만은 두 번째 작살을 던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작전대로 한다! 돛을 더욱 크게 펼쳐라! 놈들의 목책을 단번에 부숴 버릴 것이다!”

사막배는 속력을 늦추지 않고 목책을 향해 돌진하였다.

야생동물과 사람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목책은 한 점에 가해진 거대한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물론 사막배의 앞도 부서지며 축이 뒤흔들리며 거센 충격이 배를 강타하였지만 조선군이 받은 충격의 몇 배나 되는 공포가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전사들이 대응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놈들을 몰아내라! 저 거대한 집을 불태워 아악!”

“지금부터 나팔총을 마음대로 쏘아라! 화살을 쏘고 작살을 던져 놈들을 도륙하라!”

간혹 화살이 곡사(曲射)로 날아들어 갑판 위에 있는 병사들을 적중시켰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튼튼한 갑옷을 입은 이들이었기에 잠시 고통에 신음할 뿐 다시 무기를 집어 들고 총을 쏘고 화살을 날리며 공격에 나섰다.

총성이 들릴 때마다 리판의 전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더듬었고 사막배는 아예 목책을 돌파하고 마을 한복판으로 진입하였다.

바로 뒤에선 창기병들이 난입하여 창을 들이대는 전사들의 무기를 박살 내고 창대로 후려치며 이들을 제압하였다.

끝없이 가중되는 혼란의 쐐기는 신호탄을 발사하기 위한 완구(碗口)가 장식하였다.

화약만 잔뜩 넣어 포성만 요란한 대포이지만 리판 부족의 전의는 그 굉음 여러 방에 꺾여 버렸다.

“항복하겠습니다! 항복! 저희가 대체 뭘 잘못하였기에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뭘 잘못했느냐고? 네놈들이 치리카후아와 아국을 상잔시키려 하였기에 그 보복을 행할 뿐이지. 네놈들의 처분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치리카후아의 전사들에게 일임할 것이다.”

배흥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치리카후아 전사들이 몰려와 리판 부족을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이들도 엄연히 아파치 소속인지라 전쟁과 약탈에 능숙한 이들이었고 노예 제도가 존재하는 부족이었다.

하지만 치리카후아 전사들을 지켜본 배흥립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집을 약탈할 때마다 조선에서 받은 창날을 들이밀며 고함을 쳐댔고 집에서 거둬들인 금은보화를 모조리 조선 병사들에게 건네주기까지 하였다.

윤광영도 이들의 행동을 살펴보다 배흥립에게 간언하였다.

“저 친구들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선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원한을 아국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윤광영 자네가 한 말이 옳은 것 같다네. 아무래도 훗날이 되면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모든 잘못은 아국이 저질렀다고 말할 것이 분명해. 너희들은 뭘 하는 거냐! 군문에 속하는 이들이 사사로운 약탈에 가담해서야 되겠는가!”

“네? 중군님께서 약탈이라 하시니 이상하십니다! 저희는 엄연히 이들이 건넨 물건을…….”

“환종대왕께서 정하신 국법에 의거하여 사사로이 물자를 착복(着服)하는 행위를 엄금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금은보화를 모조리 치리카후아 전사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국법에 의거하여 네놈들을 참(斬)할 것이다!”

임사홍 사건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환종은 경국대전을 수정하기에 이르렀고 병사들의 약탈은 완전히 금지되었다.

다만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지휘관이 약간의 금품을 모아서 분배하는 경우에는 허가되었다.

한 주먹씩 받은 금품을 내어놓기 싫어하는 병사들이지만 배흥립은 눈을 부라리며 자신 앞에 쌓인 금을 가리켰기에 방법이 없었다.

마을에서 약탈한 모든 금은보화가 쌓이자 배흥립은 치리카후아 전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조(前朝: 고려)의 충신인 최영장군이 말하기를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하였네. 나는 군기를 지켜야 하는 몸이기에 황금 따위는 돌덩이보다 못 하게 여기니 알아서 가져가게나.”

“이러실 줄은 몰랐는데요. 아무튼 저희가 알아서 잘 거둬들일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적잖이 실망한 눈길을 보내는 치리카후아의 전사를 본 배흥립은 콧방귀를 뀌며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다들 복수라는 명분으로 신나게 약탈을 해댔으니 이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하였다.

하지만 배흥립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드디어 만나 뵙게 되는군요! 신호용 화포를 쏘신 덕분에 가까스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관찰사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관찰사께서 명을? 혹여나 내가 너무 늦었단 말인가?”

“관찰사님께서는 이미 출발하셨기에 무슨 이유로 명령을 보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유성룡이 개척단과 함께 출발하였다는 말을 들은 배흥립은 눈썹을 찌푸리며 명령서를 읽어보았다.

전쟁을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는 내용을 보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지만 가급적 많은 적을 한 자리에 모으라는 지시도 적혀 있었다.

[자네가 이이제이(以夷伐夷)를 택하였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개중 가장 하책인 무력 동원의 방식 불과하다. 이이제이는 모든 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알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니 할 일이 아직 남았음을 명심하도록.]

서신을 곱게 접어 모닥불에 태운 배흥립은 목을 가다듬으며 치리카후아 전사들을 돌아보았다.

이미 약탈할 만큼 약탈하여 만족한 이들이 돌아가려 하였지만 배흥립은 머나먼 동쪽을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네. 저 머나먼 동쪽에는 아파치라 불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으니 거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남은 리판 놈들이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더 동쪽으로 향하면 우리와 사이가 안 좋은 데다 아직 조선과 만나지 못한 메스칼레로(Mescalero) 지파의 영역이지요.”

“사이가 안 좋다 하니 잘되었군. 아국에는 발본색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쁜 일의 근원을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는 말인데 자네들도 동참하세나.”

“네? 메스칼레로 녀석들은 저희보다 두 배는 큰 규모입니다! 더군다나 놈들의 뒷배는 평야에서 사는 놈들에다가 더 나아가면 코만치 놈들도 있는데 이 감당은 어찌하실 겁니까?”

치리카후아 부족의 전사들이 배흥립을 뜯어말리려 아우성을 쳤지만 때는 늦었다.

약한 모습을 보인 순간 배흥립은 칼을 꺼내 들며 병사들에게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아직 아파치 족속들을 모조리 토벌하지 못하였다! 더욱 동쪽에는 메스칼레로라는 이들이 살고 있으며 코만치라 하는 아국의 동맹! 나바호 부족을 공격하는 도적들이 살고 있지 않더냐! 그러하니 더욱 동쪽으로 진군한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어차피 아국의 개척을 위하여 복속시켜야 할 놈들이니 이번 기회에 쓸어버려야 합니다! 백기 장군님의 말씀 들었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3할가량이 남은 아파치의 잔당과 아파치의 인근에 있는 코만치 부족을 한 번에 복속시키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 남아 있었다.

미리 정해진 땅으로 유성룡의 본대와 배흥립의 분견대가 동시에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사람이고 사람답게 행동하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에게 책임 전가하기, 남 탓하기, 원한 돌리기, 그리고 혐오 유발하기 등등이지요

하지만 역사가 깊은 조선도 아니고 머나먼 조상님들부터 이런 행동을 저질러 온 사람들이기에 어설픈 수작은 통하지 않습니다. 취미활동으로 하는 사람과 전문가의 차이겠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