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02화
2부 26장 13화 아파치 전쟁(1)
가장 선두에 서서 토마호크를 던진 전사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비록 조선이 쓰는 신비한 돌(강철)보다는 못해도 자신이 전력으로 던진 토마호크에 맞으면 살가죽이 꿰뚫리고 근육이 찢겨 쓰러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토마호크를 바로 뽑아내더니 자루를 악력으로 바스러트리고 아예 발치에 있던 다른 도구를 챙겨 온몸을 뒤로 젖히며 던지려 하였다.
투창을 던지는 자세라 여겼지만 웬 주먹 크기의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투창이 아니라 덩어리라니 전투곤봉이군! 몇 대를 맞아도 버틸 수 있다!’
그는 반사적으로 배에 힘을 잔뜩 주고 턱을 굳히며 양팔을 올려 얼굴을 보호하려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번 치러온 전쟁에서 돌을 매단 전투곤봉에 수없이 맞아온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버틸 수 있다 여겼다.
그러나 순간 천지가 뒤집어지며 세상이 붉게 물들어 오르고 숨이 막혀왔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어 팔을 휘적거렸지만 그의 오른팔 뼈는 완전히 부러져 팔뚝이 달랑거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작살질 몇 번으로 거대한 상어를 죽이는 강덕만이 전력을 다해 던진 10근 공령은 그의 팔뚝을 무너트리고 얼굴을 강타하여 코뼈를 주저앉혀 버렸다.
하지만 공령은 하나만 날아오지 않았다.
아파치 부족들이 전쟁에 사용하였던 전투곤봉의 세 배, 토마호크의 열 배 이상 무거운 공령들이 높은 모래언덕 위에서 날아들자 적중한 전사들의 사지가 꺾이고 자빠졌다.
삽시간에 예순 명의 전사 중 열 명이 쓰러지자 나머지는 퇴각을 택했다.
“저 괴물들이 무기를 던진다! 어서 활과 투창을 챙겨와!”
“내가 뭐랬어! 조선 놈들은 강하니까 아예 활과 투창으로 죽이자고 했잖아!”
“이렇게 괴물일 줄은 몰랐지! 세상에 토마호크를 맞고 싸우러 오는 놈들이 어디 있었냐고!”
조선군의 뒤를 밟는 것은 성공하였다. 조선군이 방심한 틈을 타서 움직이는 집(사막배)을 움직이는 덩치들을 기습하는 것까지도 성공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실책은 제대로 된 기습을 위해 전투곤봉과 토마호크만 챙겨온 것 하나였다.
모래언덕에 접근하려고 몸을 납작 엎드린 채 기어왔기에 걸리적거리는 투창과 활은 저 멀리 버려두고 왔던 것을 후회하는 전사들이었다. 저들은 자신과 같은 피륙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고 맹수에 준하는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멀리에 모아둔 투창과 활이 보이자 전사들의 입가에 미소가 샘솟았다.
상대는 덩치가 크니 자신들을 따라와도 한참 뒤에서 허우적거린다 생각하고 창을 바로 집어 들어 던지려 하였다.
“내 창은 곰도 일격에 꿰뚫는데 네놈들이 버틸 수 있는…… 으아아악!”
“우리가 느리다 생각했나! 머저리 같으니!”
덩치가 크면 느리다는 속설은 근육의 양이 적고 지방의 양이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폴리네시아인은 입신체비로 신체 능력을 키워서 순간적인 속도는 느려도 가속을 받으면 어중간한 사람보다 뜀박질이 빨랐다.
미리 준비한 천축봉(인디언 클럽)을 들고 달려온 강덕만의 모습을 본 아파치 전사는 반사적으로 창을 찔렀지만 창대가 수수깡처럼 박살 나 버렸다.
그리고 사람의 몸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리며 그의 두개골이 으스러졌다.
“다 때려죽여! 크게 물러서는 놈은 활을 쏠지도 모르니 더 철저히 죽여!”
활을 들고 있는 전사들은 화살을 메겨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폴리네시아인에게 손목에 잡혀 허공을 날아 바닥을 뒹굴었다.
세상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민족에 속하는 폴리네시아인의 힘은 무거운 입신체비기구를 무기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파치 전사들도 싸움은 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무기를 챙기지 못해 대역기봉을 휘두르던 뱃사람에게 무기가 박살 난 아파치 전사 두 명이 달라붙어 대역기봉을 움켜쥐었다.
“지금 나와 힘겨루기를 하자는 게냐! 아주 좋구나!”
“이게 곰이냐 사람이냐! 우리는 두 명인데 말도 안 돼!”
“돼!”
대역기봉을 움켜쥔 두 아파치 전사를 밀어 자빠트린 뱃사람은 120㎏에 달하는 체중을 모조리 실어 그들의 몸을 짓밟았다. 단 세 방에 늑골이 부서지고 얼굴이 짓뭉개진 전사들은 피를 토하며 절명하였다.
무기를 맞댄 아파치 전사들은 삽시간에 도륙당했다. 처음 두 방에 어설프게 만든 돌창이나 전투곤봉이 박살 나고 다음으로는 아파치 전사들의 몸이 박살 났다.
강덕만은 벌써 두 명의 전사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명령을 하달했다.
“모두 죽여라! 항복하면 모를까 싸움을 원하는 놈들이니 마나를 흡수하라!”
“죽여라! 입신체비로도 마나를 쌓을 수 있지만 싸움에서 죽인 놈도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조선에 귀부하여 신농도인이 되고 식인 풍습이 사라졌지만 전쟁에서 마나를 흡수하는 사상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예 다 죽이려는 모습을 본 윤광영은 일방적인 학살극을 중단시키기 위해 강덕만을 뜯어말리려 하였다.
“잠시만!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다 죽이면 놈들을 추적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저 뒤에 적당히 싱싱한 놈들 있으니 윤광영 자네는 돌아가서 놈들을 포박하게!”
“사지가 꺾인 놈들이 싱싱하다니 당신들은 대체 어떤 싸움을 해온 겁니까!”
상어에게 팔뚝이 물린 순간 코를 두들겨 패서 팔을 구한 사례를 자랑하려던 강덕만이었지만 그걸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잠자코 세 번째 희생양의 두개골을 부수고 영혼을 하늘로 올려보낸 강덕만은 이미 수세에 몰린 적을 보고 코웃음을 쳐댔다.
“놈들이 도망간다! 도망가는 놈들은 마나를 다 내놓고 도망가니 더 이상 추격하지 마라!”
“맞는 말씀입니다! 네놈들 마나 잘 먹고 돌아간다! 돌아가서 우리 하바이이 사람의 무서움을 세상에 알려라!”
거의 기어가다시피 도주하는 아파치 전사들의 몰골을 본 강덕만은 코웃음을 치며 뒤에서 달려오는 조선군 기병을 보내주었다.
이들은 기습을 확인한 순간 역공과 추격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수많은 기병들이 아파치 부족의 뒤를 쫓았다.
다음 날 해가 밝자마자 돌아온 추격대는 싸움을 벌였는지 간혹 활에 맞거나 창에 찔려 붕대를 감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이우토 부족의 전사는 배흥립에게 보고를 올렸다.
“밤에 놈들을 추격하다 역으로 기습을 당하였지만 격퇴하고 서른 놈 정도 베었습니다. 마침내 흔적을 확인하였는데 정신이 없었는지 흔적을 그대로 남긴 채 멀리 도주하였습니다.”
“흔적이 멀리까지 이어졌다면 마을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군.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부상을 당한 병사들과 말을 사막배에 태우고 바로 진군한다!”
배흥립은 말에 올라 이미 확인한 아파치 전사들의 흔적을 가장 앞서 추격하였다. 하지만 나흘 동안 이어진 흔적이 애매한 곳에서 끊어지고 배흥립은 가장 앞에 나서서 천리경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경험에 의거한 답이 나왔다.
“저 앞에는 협곡이 있군. 더군다나 이 주변으로 올수록 수풀이 점점 많아진다는 말은 어느 정도 커다란 샘이 있거나 가느다란 물길이 흐른다는 말이네. 놈들이 마을 근처에서 흔적을 지웠지만 너무 늦었어!”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희 파이우토 부족도 이런 땅이 보이면 부락을 만들고 한동안 머무릅니다. 그럼 당장 공격에 나서실 겁니까?”
“두말해야 잔소리밖에 더 되겠나? 협곡을 포위하라! 놈들이 도망칠 구석을 만들지 말고 공격하라! 협곡을 타고 도망치는 놈들이 있겠지만 부락을 무너트리는 것이 중요하다! 천리경으로 살펴보니 삼백여 호의 부락이라 어느 정도 큰 세력이구나!”
정신없이 일대의 지형을 확인하고 지도를 메우는 윤광영의 충실한 모습을 본 배흥립은 그에게 전쟁까지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윤광영이 어설프게 말을 몰아 자신을 따라오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표정을 확인하였다.
“혹여나 문제라도 있는가? 관찰사께서 재주가 있는 사람이 경험이 일천하다 하였는데 경험을 쌓을 기회로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자네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은가.”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멀리서 보아도 부락이 참 한적하군요. 며칠 전에 대열을 습격한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여러 계파로 나뉘어 있다네. 개중에는 아예 약탈을 하지 않고 사냥만 하는 이들도 있고 주변 부족과의 사이를 원활히 유지하려고 아주 먼 거리에서만 약탈을 행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경험이 부족한 윤광영이었기에 당장 떠오르는 말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건너온 사막의 험악한 환경을 떠올리고 답을 도출하였다.
하지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으니 자신감 없이 눈을 내리깔며 답하였다.
“험준한 사막에서 사냥을 거듭하였기에 무력이 뛰어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거의 정답이네. 이들의 무력은 제법 뛰어나서 돌창과 돌화살로 곰을 잡아대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험악한 장소에서 살아온지라 약탈과 전쟁에도 거리낌이 없다네. 이들을 복속시킬 방법이 없는 게 참 아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전쟁을 금하면 아니 된다니 말이나 되는가.”
이들을 조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유성룡은 물론이요, 조선의 정책은 복속한 부족의 자기보호 이상의 폭력행위를 금지하였다.
아파치 부족들은 이를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여겨 격렬히 반발하였고 배흥립 또한 여러 부족을 방문하였지만 완곡한 거절이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자 배흥립은 아쉬운 마음으로 하늘을 보더니 명령을 내렸다.
“전군 진군하라!”
태반이 기병인 조선군은 차츰 빠르게 마을로 접근하였다. 이윽고 외부에서 경계를 하던 아파치 전사가 조선군을 확인하고 버펄로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며 경고를 보냈다.
“적의 습격이다! 적이 습격해 왔으니 어서 나서라! 조선 놈들이다!”
제법 큰 규모의 부족이었는지 나팔을 불자 이백여 명에 달하는 전사들이 마을에서 뛰쳐나와 무기를 들려 하였다.
하지만 기병인 조선군은 순식간에 마을의 목책을 넘어트리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마구 날뛰었다.
“노약자와 아이들은 죽이지 마라! 창과 활을 들고 저항하는 놈들만 죽여라!”
“며칠 전에는 참 반가웠다! 화살을 맞은 등이 아직도 쑤시는데 네놈들 오늘 한번 죽어봐라!”
갑주를 입고 번뜩이는 강철 창을 휘두르는 조선 기병은 아직 신석기 문명에 머물러 있는 아파치 전사들을 삽시간에 유린하였다. 돌화살은 갑주에 박힐 뿐 치명상이 아니었고 돌로 만든 창날은 강철 창날과 충돌하자 대번에 박살 났다.
간혹 정당한 교역이나 약탈로 얻어낸 철검을 들고 달려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수는 극소수였다.
삽시간에 유린당하는 마을을 천리경으로 확인한 배흥립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지만 윤광영은 천리경으로 확인하더니 배흥립의 팔을 잡으며 외쳤다.
“우리가 속았습니다! 이 마을은 아무리 보아도 우리를 습격한 마을이 아닙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흔적이 이어져 있고 저렇게 전사들이 많이 나오는 마을이며 심지어 제대로 된 날붙이까지 있지 않은가? 자네가 보기엔 뭐가 문제인가?”
“저들이 기습을 하고 도주하였다면 마을에 경고를 보내 우리를 마을 밖에서 상대했을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일흔 명이 넘는 적을 죽였는데 삼백여 호에 불과한 마을의 전사가 저렇게 많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는 함정입니다!”
한 호(戶)에는 대부분 한 명, 잘해야 두 명의 장정이 있으니 저 마을에서 나올 수 있는 전사의 수는 400여 명에 불과하고 두 번의 손해를 감안하면 300명 이하이리라.
윤광영의 조언을 들은 배흥립도 수상하다 여겨 사막배에 묶여 있는 포로의 머리채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한쪽 팔만으로 상대를 들어 올리고 목에 칼날을 들이밀며 협박하였다.
“여기가 네놈들의 부락이 맞더냐! 네놈들이 우리를 현혹하여 다른 부락으로 인도한 것이냐! 지금부터 싸움을 중단하고 네놈을 부락 한복판에 버려둘 것이다!”
“아닙니다! 여기는 우리와 매번 다투는 치리카후아(Chiricahua) 지파 중 하나인 길리노(Gileño) 계파의 마을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개놈의 새끼들! 사람 새끼들이라고 아주 제대로 우리를 엿 먹이려 작정했군! 전투를 중단하라! 당장 전투를 중단하고 퇴각하란 말이다!”
배흥립이 당황한 눈으로 부락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기병에게 유린당하여 길리노 계파의 수많은 전사가 죽어 나간 시점이지만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윤광영의 조언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모면하였지만 조선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방으로 도망친 길리노 사람들의 증언으로 아직까지 중립상태인 수많은 아파치 부족들이 조선에 원한을 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동부 개척의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되리라. 지형지물을 잘 아는 아파치 부족은 이주민들을 습격하고 약탈을 일삼을 것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길리노 계파에서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추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면담을 위해 마을 밖으로 나왔지만, 이들은 성이 나다 못해 아직까지 무장을 갖춘 채 배흥립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나마 추장은 욕을 하지 않았지만 성이 나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요! 우리는 조선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을 짓밟고 불을 지르다니! 수많은 전사들이 죽어 나갔는데 대체 무슨 이유요!”
“이놈이 우리를 기습하고 마을로 도망쳤기 때문이오. 덕분에 당신들의 마을을 기습하게 되었고 이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소. 이 빌어먹을 놈! 어서 사과하지 못할까?”
“리판(Lipan) 놈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당신이 사과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법이오? 짓뭉개진 우리의 터전이 스스로 복구되는 법이오?”
추장의 말에 먼저 잘못을 저지른 배흥립도 땀을 흘리며 변명거리를 준비하였다.
솔직히 말해 당장에라도 마을을 쓸어버려 후환을 막고 싶었지만 이런 협곡을 기어올라 도주한다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개놈의 리판 새끼들! 네놈들이 당당하게 맞서 싸우지 못하니 이런 짓을 저지르지!”
“으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저 멀리서 전사들에게 에워싸인 채 구타당하는 리판의 전사를 확인하자 배흥립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새로운 답을 도출하였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추장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그럼 우리가 죽인 사람을 애도하고 터전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법인가? 이 모든 문제는 너희들의 무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실책이 아닌가!”
“그게 대체 뭔 소리인가!”
“네놈들이 일대를 지배할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런 짓을 저질렀겠는가? 아예 아국에 복속할 뜻도 품지 못하고 적을 압도할 힘도 없으니 이런 일을 당하지! 두들겨 맞고 복수하지 않는다니 이것이 전사들이란 말인가! 네놈들은 세상에 뭘 하려 태어났느냐!”
배흥립은 제3의 답을 도출하였다. 이미 일어난 일을 수습하기보다 원한의 화살을 쏘아 조선과 길리노 계파를 상잔(相殘)시킨 리판에게 원한을 돌리는 방식이었으며 참으로 단순무식한 해결책이 아닐 수 없었다.
전사들이 돌아보자 배흥립은 호탕하게 외쳤다.
“너희 부족에게 입힌 피해를 우리가 변상해 주마! 네놈들이 원하는 모든 부족을 함께 소탕해 줄 것이니 전사라면 나와 함께 나설 것인가! 아니면 은자나 받고 굴욕을 감내할 것인가! 이에 응하지 않는 네놈들이 정녕 전사인가!”
“우리는 전사이며 이 사태의 원흉인 리판 놈들을 몰살시킬 것이다! 다들 창을 들어라!”
“그런 창이 어디에 쓸모가 있다고! 이 친구들에게 예비 병기를 지급하게!”
“다들 멈추게! 우리가 리판과 싸운다 하여도 아파치에는 다른 계파들이 넘쳐난다네!”
“그럼 그 계파를 모조리 쓸어버려야지요! 추장께서 말리셔도 저희는 갈 겁니다!”
추장이 뭐라 하건 전사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확인한 배흥립은 아예 예비용 무기를 내어주었다.
원한을 풀 상대를 만난 길리노 전사들도 배흥립이 지급한 병장기를 받아들고 잘 갈려진 창날로 수풀을 베며 처음 사용하는 강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우리를 기습했던 놈들을 사막배의 맨 앞에 매달도록 하라! 놈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밧줄을 잘라 사막배로 짓뭉개 버리고 말을 잘 들으면 마을의 생존자로 남겨줄 것이다!”
“잠시만! 조선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부족이 있습니다. 저희 길리노 계파는 치리카후아에 속해 있으니 치리카후아의 수많은 전사들이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럼 그들을 모두 소집하게! 전쟁을 일으키려면 제대로 일으켜서 놈들의 뿌리를 뽑아야지! 관찰사께는 전령을 보내 전쟁이 길어질 것임을 알리게!”
배흥립이 속한 조선군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수많은 치리카후아 휘하의 계파들과 만나고 이들을 흡수하여 칠천 명이 넘는 군세로 탈바꿈하였다.
그리고 원한의 화살을 맞을 리판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오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말
아메리카 원주민의 각 부족은 하나로 뭉쳐 있지 않습니다. 파이우토나 유토처럼 어느 정도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파치처럼 제법 많은 계열로 나뉜 경우도 있지요.
기본적인 관계는 부족 > 지파(支派) > 계파(系派) 순서로 설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