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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501화 (501/573)

근육조선 501화

2부 26장 12화 동쪽으로(2)

나바호 부족과의 첫 만남은 아파치의 방해로, 다음 시도는 부족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불발로 돌아갔다. 대신 나바호족에게는 주변 부족을 통해 우리가 접촉을 원하고 있음을 알린 것에 불과하다.

우리를 맞이해 수십 명 정도 집결한 나바호족의 앞에 사막배가 계속 도착하자 나바호족은 우리의 숫자에 질려 뒤로 슬슬 물러나려 하였다.

명백히 공포에 질려 있는 모습이기에 멀리서 배에 내린 다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올렸다.

“참으로 반갑네. 머나먼 서쪽의 나라 조선에서 주상전하의 명을 받아 백성들의 사민(徙民)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는 서애 유성룡이라 하네. 남, 북 파이우토와 소손이 그리고 유토 부족의 대추장 대리를 겸하고 있지. 자네들의 힘이 필요해 여기까지 왔다네.”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주변 부족을 통해 정보를 받았겠지만 엄연한 첫 접촉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 저 뒤에 있는 백상선을 쳐다보기를 반복하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한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저는 하얀 곰 부족의 추장입니다. 대추장 대리께서 타고 온 물건을 멀리서 보니 나무로 엮은 산이 밀려오는 것 같아 무서움에 몸서리를 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힘을 가지신 분이 어찌하여 저희의 힘을 빌리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역에 나선 다른 원주민들도 나바호족의 언어는 번역하기 힘든 언어였는지 더듬거리면서 말을 전했다.

아무튼 뜻이 통하니 다행이지만 할머니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정녕 이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있을 줄도 몰라서 무서울 뿐이며.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오로지 땅을 원한다는 말이 더더욱 무서울 뿐입니다.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메리카 원주민 할머니가 공포에 질려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순박한 모습에 잠시 마음이 약해졌지만 필요한 물건을 꼭 얻어내야 하는지라 딱 잘라 말하였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힘을 조금 빌리고 싶군. 앞으로 수많은 이들이 이 대사사막(애리조나사막)을 횡단하려 하니 한가운데 있는 나바호의 영토에서 물을 얻어가고 싶을 뿐이네.”

이 사막배를 사용하면 물 보급 없이 사막 횡단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매우 고된 여정이다. 아무리 잘 보관한 물이라도 사막의 더위에 시달리고 열흘이 지난 지금은 슬슬 맛이 탁해지기 시작했다.

설령 물을 잘 보존했다 쳐도 만에 하나 모래폭풍을 만나거나 기타 자연재해를 만나 며칠의 일정이 틀어지면 식수가 고갈되어 위험한 상황이 되리라.

하지만 촌장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답하였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물을 퍼간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의 샘은 말라비틀어질 것이며 물길은 가로막힐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모조리 굶어 죽겠지요.”

“그렇다면 왜 저 물골…… 아니, 이 이야기는 되었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니 잠시 마을을 돌아봐도 괜찮겠나.”

“이미 산을 뭍으로 올려 움직이신 분이니 저희의 마을을 보셔도 만족하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오로지 몇 대 전 선조님을 통해 남쪽의 사람들에게 자연의 은혜를 땅에서 얻는 방식을 택했을 뿐입니다.”

모두 다 마을에 내리면 난장판이 일어나니 나와 관원들 그리고 아직 480척이나 남은 배에서 내린 몇 명의 농민 대표들이 나바호족의 생활 방식을 살펴보았다.

솔직하게 말해 이들의 의식주는 별 볼 일이 없었다.

“저 집은 간혹 산골 깊숙이 있는 토옥(土屋: 흙으로 두껍게 벽을 쌓은 집)과 흡사하군요. 이렇게 더운 지역에서는 제법 쓸 만한 집이겠지만 차라리 통나무를 쓰겠습니다.”

“사람도 적고 가축도 없으니 제언(堤堰: 저수지)을 쌓지 못하였겠군요. 물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가 멀리멀리 사막까지 내려가니 물이 부족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관찰사님. 제가 비록 흙을 파먹고 살지만 한마디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세 작물을 한 자리에 심어 서로를 북돋우게 하는 방법임은 한눈에 보아서 알 수 있지만 그 이외의 방식이 모두 부족합니다.”

금주 출신 농민이 이야기를 하자 흥미가 동했다.

사실 나바호족의 농사 솜씨라는 것이 형편없다. 나름 독창적인 세 자매 농법을 제외하면 농사를 오로지 이론으로만 아는 내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어설픈 땅에 어설프게 밭을 만들어 두엄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밭갈이도 제대로 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으니 세 자매 농법이 아니라면 먹고 살 곡식도 충당하지 못하리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금주 출신 농민은 옆의 친한 사람에게 보여주듯 밭을 계획하였다.

“자네 이 밭 좀 한번 보게나. 여기에 물골 하나만 탁 틔우고 옆으로 조금만 밭을 줄인 다음 두엄을 잔뜩 뿌리면 좋지 않겠는가? 여기는 논을 만들고 여기는 밭을 만들어야지.”

추장이 증언하기를 농사를 남쪽에 있는 이들에게 몇 대 전에 배웠다고 하는데 이건 농사를 지은 역사가 깊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들에게 기술도 가축도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논쟁이 시작되었다.

“물골을 하나만 내면 쓰겠나. 물골을 두 개 내어서 자그마한 논 세 개로 만들면 적당하겠군. 자고로 새하얀 흰쌀밥보다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쌀을 많이 길러야지.”

“흰쌀밥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보리를 섞은 밥이건 옥수수를 섞은 밥이건 든든하게 먹고 배를 불릴 수 있어야 한다네. 물론 쌀이 기본이어야 하지만 일단 많이 먹어야지.”

“잡곡밥이 많아봤자 뭘 하나? 새하얀 백미로 밥을 지어 밥통에 잠시 앉혀 식힌 다음 김이 사그라질 때쯤 한 그릇을 퍼서 위에 젓갈을 얹어 먹으면 세상사는 보람이 있지!”

“자네 그 입 다물게! 밥은 갓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녀석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걸세. 그런 식으로 밥을 먹었다간 보리알이 씹히지도 않고 입술 밖으로 튕겨 나가겠는데?”

한때 기괴한 아리랑을 부르며 친구가 되었던 미주 출신 농부와 하주도 출신 농부가 기세를 높이며 언쟁이 시작되었다.

다들 이유를 몰랐지만 이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아는 내 입장에서는 말리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쌀에 미친 민족이다. 엄밀히 따지면 밥이라는 포괄적 주식(主食)에 미친 민족이고 쌀이 섞여 있다면 잡곡밥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대신 갓 지어서 아주 뜨끈뜨끈한 밥만 제대로 된 밥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하주도 사람들의 근본인 일본인은 오로지 흰쌀밥에 미친 민족이다. 내가 하주도 관찰사로 있으며 가끔 본 경우인데 형편이 어려워도 오로지 흰쌀밥만 먹으려 한다. 이들은 흰쌀밥만큼은 조선인보다 더욱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언쟁을 넘어 마침내 서로 멱살을 잡고 엎어트릴 기세가 되자 둘을 적당히 중재하려 하였다.

둘 옆에서 헛기침을 하니 둘 다 고개를 푹 숙이며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했다.

“관찰사 대감님께 실로 무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제 사소한 의견을 털어놓았어야 하는데 이런 험한 일을 하다니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저 또한 잘못하였습니다. 어느 땅이건 기를 수 있는 작물이 있는데 하주도에 있을 무렵부터 들어온 버릇이 이런 무례한 행동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되었으니 물어볼 것이 있네. 여기는 제법 큰 부족인지라 일천 명 정도가 한 자리에 거주한다네. 만약 이 부족들의 농지를 자네들 기준으로 다시 만든다면 몇 명을 먹여 살릴 수 있겠는가?”

“저희만으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지역인지라 사람들이 여럿 필요하겠군요. 이번에 새로 선발된 공무원이라는 분들과 함께 땅을 돌아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내가 나서도 될 일이지만 공무원들에게는 실무 경험이 필요했다.

내가 지시를 내리자 공무원들은 하얀 곰 부족의 땅을 한 바퀴 돌아보고 얼마의 농작물을 산출할 수 있을지 결론을 도출하였다.

최종적인 결론은 매우 긍정적으로 나왔다.

“가축이 충분히 있어 제언(堤堰: 저수지)을 만들 경우 칠천 명 정도를 먹여 살릴 수 있으며, 다섯 호 건너 한 호씩 소가 있어서 밭을 갈 때 쓸 수 있다면 오천 명 정도가 나올 겁니다.”

“그럼 적게 잡아도 이 땅에서 다섯 배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뜻이군. 추장을 불러 다시 면담을 시작할 것이니 어서 자리를 마련하게.”

논의가 재개되었고 공무원들이 나서서 작성한 마을의 간략한 지도와 향후 개발 계획이 담긴 새로운 지도를 내밀었다.

지도의 의미는 몰라도 형태로 보아 마을임을 짐작한 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설명을 시작하였다.

“내가 당신들이 사는 모습을 확인해 보니 아직 개선할 곳이 차고 넘쳐나더군. 농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나서기만 하여도 지금의 다섯 배나 되는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저희는 오로지 자연이 내려준 은혜를 땅에서 기르는 법을 익혔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자네들이 농사를 시작한 시기는 기껏해야 삼백 년 전이지만 아국은 최소한 오천 년 전부터 농사를 지었다네. 그러니 자연을 다스리는 법이 더욱 능숙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의 기술을 주겠네.”

실제로 한반도의 농사 역사는 일만 년이 훌쩍 넘어가겠지만 이 시기에 아주 옛날을 표현하면 대충 오천 년 전이라 뭉뚱그려 말하는 법이었다.

이 거래는 나쁜 거래가 아니다.

조선의 개척단이 가끔 들러 물을 가져가도 일 년 마실 물을 모조리 가져가겠는가? 기껏해야 여기 있는 물의 1할 정도만 가져가리라. 그럼 단순 계산으로도 4,500명이 먹고살 수 있다.

내 계산을 이해했는지 촌장은 물론이요, 마을의 원로들이 서로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나는 여기에 쐐기를 박으려 더욱 많은 혜택을 약속하였다.

“자네들뿐만이 아닐세. 하얀 곰 부족을 시작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부족들에게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낼 것이며 이 사람들이 오 년 동안 일하며 농토를 새로 정비하고 새로운 곡식을 퍼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된다면 우리 모두가 배를 굶을 일이 없을 것이며 아파치가 곡식을 약탈하여도 감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놈의 아파치족이 나바호족을 털어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농작물까지 털어갈 줄은 몰랐다.

이들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지금이야말로 완벽하게 우리의 편으로 만들 차례이다.

“내 부관이 아파치 부족을 소탕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향하였네. 조만간 아파치 가운데 약탈을 일삼는 무리를 징벌할 것이며 이 땅을 자네들 모두 배불리 먹고 즐길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네.”

“그런 위대한 분을 고작 촌장인 저 혼자서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주변의 부족들을 모조리 소집할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배흥립의 부대가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을 때울 필요도 있었다.

각지에 있는 나바호족의 농경지에 조선 관원들이 파견되고 다른 부족의 추장들과 돌아오기를 반복하니 우리가 처음 방문한 하얀 곰 부족의 마을에는 모든 나바호의 추장들이 집결해 버렸다.

“조선의 임금이라는 분을 대추장으로 맞이할 것이며 조선의 휘하에 있는 네 부족 연합에 가입할 것입니다. 저희에게 자연에서 더욱 많은 작물을 얻을 수 있는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수렵생활을 하는 다른 부족이야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농사를 짓는 나바호족 입장에선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연판장(連判狀)을 받아내며 답하였다.

“복속을 청하였으니 기꺼이 맞이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부터 자원하는 이들은 오 년 동안 나바호족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농토와 각종 시설을 만들도록 하게. 공무원 가운데 응하는 이는 있는가?”

머나먼 미시시피 유역에서 마음대로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이니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아주 간단하게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종의 출장근무니 급여를 더 많이 줘야겠지.

“나바호족에게 농사를 가르치면 매년 은자 스무 냥을 주겠네.”

이 말 한마디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 벌떼같이 몰려든 사람 가운데 공무원을 각기 1인, 농부를 각기 10인씩 나바호족의 마을에 파견 근무시키는 형식으로 거래를 완수하였다.

문제는 배흥립이 20일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식량이야 4개월 이상을 비축해 두고 움직이니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 * *

유성룡의 본대와 분열한 배흥립의 분견대는 사막배와 함께 천천히 아파치족의 영토를 헤집고 있었다.

하지만 사냥에 능숙한 파이우토, 소손이 그리고 유토 부족 청년들도 아파치 전사를 추적하는 데 실패하였다.

“이놈의 자식들 바위를 밟고 움직이는데요. 저 멀리서는 모래 위로 이동한 것 같은데 바람이 불어서 발자국이 모조리 지워져 버린 것 같습니다.”

“벌써 닷새나 지났는데 아직도 꼬리를 잡지 못하고 놓쳤단 말인가. 물이야 비어버린 마을에서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이놈들은 어디로 숨었단 말인가.”

메마른 모래 위로 침을 뱉은 배흥립은 더위로 인해 끝없이 솟아오르는 땀을 훔치며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벌인 도발만 따져도 아파치 부족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놈들은 명백히 자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대로 사막에서 헤맨다면 어느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대열이 분열되거나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들을 기습할 것이 분명했다.

해가 저문 사막이 삽시간에 추워지자 배흥립은 적을 유인하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적도를 유인한다. 초병들은 가급적 사막배와 말 주변을 에워싸고 강덕만 자네에게 부탁이 하나 있으니 들어줄 수 있겠는가? 적을 유인하려면 자네들이 필요하다네.”

“네? 백기 어르신! 강덕만은 엄연한 뱃사람입니다! 입신체비만 익힌 사람인데 어찌하여 적을 유인하는 데 쓴다 하십니까?!”

윤광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배흥립을 말렸지만 강덕만은 별꼴을 다 보겠다는 듯이 윤광영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 거대한 힘에 억눌린 윤광영의 귓전으로 강덕만의 한숨과 푸념이 이어졌다.

“자네는 머리가 잘 돌아가면서 지식이 부족하니 여기서 맨몸으로 강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럼 저희는 입신체비나 하면서 적을 유인하겠습니다.”

“잠시만! 이런 사막 한복판에서 입신체비를 한다니요! 정신이 나가셨습니까!”

윤광영 입장에서는 미친 짓이었다. 사막은 밤이 되면 물이 얼 정도로 추워지니 입신체비로 땀이 솟으면 바로 감기에 걸리거나 쓰러지리라.

하지만 강덕만은 태연하게 사막배에 있던 공령을 꺼내며 말하였다.

“자네야 모르겠지만 우리 신농도인이야말로 최고로 싸움을 잘하는 민족이라네. 전쟁이야 많은 수가 모인 적이 없으니 단합이 안 되어 일으킬 수 없지만 싸움은 아니지.”

“최고로 싸움을 잘하는 민족이라니요? 어차피 싸움 실력을 결정하는 것은 몸을 단련하여 생긴 힘과 무기에 대한 숙련도가 아니었습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러한데요.”

강덕만에게 목덜미를 몇 번이고 잡혀봤기에 그의 완력은 알고 있었지만 싸움실력과 힘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윤광영은 기본만 배운 입신체비 내용을 떠올리며 강덕만을 재차 설득하였다.

“입신체비는 효심을 나타내기 위해 튼튼한 몸을 만드는 방식이라 싸움 실력은 늘어나지 않는다 했습니다. 하지만 훈영제식법은 싸움을 위한 몸을 만드는 방식이라 들었습니다.”

윤광영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과 숙련도를 키울 수 있는 훈영제식법이야말로 개인의 무력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라 여겼다.

하지만 강덕만을 비롯한 하와이 출신들은 고개를 저었다.

“훈영제식법이건 입신체비건 가장 중요한 건 기반이라네. 조선 사람들이야 근육이 늘어나는데 우리 신농도인은 근육과 지질(지방)이 같이 늘어난다네. 그럼 날붙이를 맞아도 급소가 아니면 버텨낼 수 있는 법이야.”

폴리네시아인은 지방을 축적하고 근육이 늘어나는 유전자가 강한 인종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보디빌딩을 해도 근육이 드러나지 않아 기피되는 체질이지만 단순한 몸의 크기와 근육량으로는 전 세계 어느 민족을 따져도 적수가 없는 이들이었다.

아예 사막 모래톱 위에 올라서서 횃불까지 켜놓은 태연하게 입신체비를 실시하는 모습을 보자 윤광영은 더 이상 말릴 생각도 못 하고 주변을 살펴보며 경계하였다.

그 모습을 본 강덕만이 푸근한 미소를 짓는 것과 동시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강덕만의 등판에서 피가 솟구쳤다.

야음을 틈타 만만한 폴리네시아인들을 기습한 아파치 전사의 토마호크였다.

“끄어윽! 아픈데!”

“어르신! 저기 적이다! 저기서 도끼가 날아왔다!”

비록 짐승의 뼈를 자루로 삼고 잘 갈려진 돌을 날로 삼았지만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소리로 보건대 어중간한 사람의 등뼈까지 닿았을 위력이었다.

하지만 강덕만은 코웃음을 치며 토마호크를 뽑아 악력으로 바스러트리고 명령하였다.

“얘들아! 일단 공령을 던져라!”

다시 몇 발의 토마호크가 적중하였지만 팔과 몸통의 근육으로 받아낸 뱃사람들은 나약한 병기 대신 자신들이 가장 익숙하게 사용하는 무기를 들었다.

최소한 열 근(6㎏)은 될 법한 공령이 그들의 손에서 쏜살같이 날아가 아파치 전사들을 같아하였다.

하지만 이건 전투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작가의 말

죽은 원균은 폴리네시아인 기준으로도 지방이 지나치게 많다 여길 체형입니다. 최소한 지방을 10㎏ 정도는 빼야 평범한 몸매로 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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