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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99화 (499/573)

근육조선 499화

2부 26장 10화 출발

장엄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함선의 형태를 보아하니 경기수영에서 사용하던 대장선부터 이제 도태될 준비를 하는 구형 순방선(300톤급 함선)까지 말 그대로 금주만을 선박이 가득 메워 버렸다.

하지만 모든 준비는 마친 상태이다.

이들이 임시로 머무를 집은 물론이요, 배 위에서 시달려서 생겼을 질병을 막아낼 의원들도 소집해 두었다.

나는 이번 작업을 담당할 이회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백(茂白: 이회의 자) 자네가 알아서 통솔하리라 믿고 있겠네. 백성들을 뭍으로 올리게!”

“관찰사께서 말씀하신 바를 충실히 시행할 것입니다. 다들 움직여라!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가는 의압으로 다스리겠다!”

이회는 이순신의 장남 아니랄까 봐 수군 병사들을 조선 기준으로 정예병으로 만들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이회 아래에서 혹독하게 훈련된 수군 병사들은 순식간에 접안을 위한 나룻배를 끌고 배를 항구에 대고 입항 작업을 시작하였다.

“배에서 줄을 서서 내리게! 자네들이 줄을 질서정연하게 설수록 뭍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으니 노약자와 아이들을 먼저 내려두도록 하게!”

오십 척의 배가 한 척씩 정박하여 사람들을 쏟아냈는데 머나먼 하주도에서 이주한 것을 감안해도 상태가 좀 좋지 않았다.

이번 선단의 책임자인 이억기는 나에게 인사를 올리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본래 규정대로라면 배수량 석 돈(墩: 2.7톤)마다 사람 두 명을 태워야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한 돈 조금 넘는 배수량마다 한 명을 태웠습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하였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 생긴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법이지. 다음 선단은 조금이라도 수효가 줄어들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네. 그나저나 몇 명이 오고 몇 명이 죽었는가?”

“물갈이를 심하게 하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죽은 사람이나 갑판에 나왔다 물에 빠져 죽은 삼십여 명이 전부이고 나머지 구천칠백여 명은 멀쩡히 옮겼습니다.”

집을 미리 이천오백 채나 지어두길 잘했다. 아무리 경목조 구조라 해도 다섯 달 만에 지을 수량은 아니었는데 공무원을 많이 뽑아둔 덕분에 이들의 첫 실무 작업을 겸해 모든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여섯 분야의 공무원을 뽑았는데 건축, 토목, 그리고 각종 자재를 계산하기 위한 산학의 세 직렬들은 첫 실무과정을 정말 화끈하게 치러서 다들 기진맥진하였으나 어떻게든 일이 해결되었다.

하지만 다음 작업도 남아 있다.

“의원들은 어서 이들의 환후를 판단하고 혹여나 전염병이 의심되는 이들을 격리하게! 머나먼 곳을 건너왔으니 반드시 끓인 물을 마시게 하여 물갈이로 인한 병을 방지하도록!”

의과에 합격한 제대로 된 의원 한 명당 의학 직렬 공무원 다섯 명이 달라붙어 보조하니 이들 또한 제대로 된 경험을 축적하리라.

모든 사람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며 배불리 먹게 하니 순식간에 닷새가 지났다.

“바쁘다 못해 혼이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들이 개척에 나설 의향이 있을지가 궁금하군요. 혹여나 기력을 되찾는 대로 바로 개척에 나서실 의향이십니까?”

“그런 식으로 사람을 호되게 다루면 아니 되는 법이네. 백성들의 의향을 물어보고 이에 맞는 정책을 행하는 것이 관찰사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를 보조하기 위해 금주로 잠시 올라온 성양진의 말 대로 이들을 속여서 당장 개척에 나서도 상관은 없었다.

이들은 내 말 한마디면 1,000㎞에 달하는 대사사막(애리조나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행에 기꺼이 합류하리라.

하지만 나 하나만 믿는 사람들이기에 더더욱 속일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분류가 끝나고 닷새 정도 휴식시간을 더 준 뒤에 대표 여럿을 선발하여 의견을 수렴하려 시도하였다.

주민들의 통솔에 바쁜 상황일 텐데 나를 만나게 된 대표들은 아예 절을 올리며 나에게 감사를 표시하였다.

나도 이에 응하여 관아 인근에 있는 기와집을 빌려 논의를 시작하였다.

“관찰사께서 저희를 만나보기를 원하시니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배 위에서 한 달 넘게 고생하며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금주에 오고 보니 참으로 평온한 고장이군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애 대감께서 계신다면 황무지가 옥토가 될 것이니 염려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살던 하주도보다 형편이 나은 것 같습니다.”

“미주의 가장 큰 고을인 금주가 마음에 드니 참 다행이로군. 자네들의 말 대로 미주는 살기 좋은 고장일세.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으니 이 지도를 보도록 하게.”

몇 번의 수정과 미주인들을 통해 자료를 받은 신주랑의 도움으로 심곡산맥, 아마 현대에는 로키산맥이라 불릴 거대한 각 부족의 세력관계까지 나타낸 거대한 지도가 펼쳐지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 이게 뭡니까? 저희가 도착한 금주는 고작 콩알만 한 땅이 아닙니까? 땅이 이렇게 넓으면 아무데서나 정착해서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주에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하지만 동쪽으로 나아갈수록 사막이 많아진다네. 특히 대사산맥(시에라 산맥)과 심곡산맥(로키산맥) 사이의 땅은 모조리 황무지와 사막이지. 하지만 심곡산맥을 넘어가면 광활한 초원과 거대한 강이 넘쳐나는 곳이 된다더군.”

“그렇게 말씀하시니 땅이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군요. 하지만 관찰사님께서 저희가 농사를 짓고 몸을 눕힐 땅 정도는 마련해 줄 것이니 어디에 문제가 있겠습니까?”

다들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다행이지만 이제 본론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현대의 텍사스 인근을 지목하며 내가 원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이니 저 머나먼 동쪽에 있는 거대한 평원과 옥토를 원한다네. 그러니 자네들과 함께 이 땅을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군.”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이 지도 크기로 보건대 최소한 사천 리는 넘는 거리가 아닙니까?”

“사천 리가 아닐세. 내가 계획한 경로에 따르면 칠천 리(2,800㎞)나 되는 머나먼 여정이지.”

이미 파이우토와 유토 부족을 통해 정찰대를 보내서 확인한 경로이며 기본적인 진행 방식도 마련해 두었다.

총 거리는 조금 늘어날 수도 있고 조금 줄어들 수도 있지만 천 리 이상 차이는 나지 않을 거다.

지나치게 머나먼 여정이라 다들 내 눈치를 보면서 뭐라 말을 하지 못하였다.

예상한 상황이니 여기에 머물러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계획에 응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자네들도 사람이니 강요하지는 않겠네. 이 금주 일대를 개간한다 하면 자네들 한 가구에 각자 한 결의 농토를 만들 수 있게 하며 정착까지 걸리는 십 년 동안의 세금을 면제하겠네.”

“조건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한 결의 땅이라니 조금 부족하겠군요.”

“하지만 계획에 응하면 해당 지역에 있는 부족들이 내어준 땅을 고스란히 줄 것이네. 삼 대에 걸쳐 토지를 마음대로 늘릴 수 있으며 세금이 면제될 것일세. 물론 일반 세금이 면제되고 군포(軍布)와 환곡은 걷어야 하겠지만 일 할 이하일세.”

“이미 먼 길을 건너왔는데 다시 먼 길을 건너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땅마저 비옥하면 농토가 아니고 대농장을 경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삼대에 걸쳐 군포와 환곡을 제외한 세금을 면제한다는 말은 조정에서는 별 소득도 거두지 못하지만 각 가족이 대농장을 경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은 금주를 비롯한 조선 영토의 백성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말이었다.

어차피 조상부터 가꿔서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대충 농사를 지어도 되는 땅이 있으며 안정적인 기반 또한 마련되어 있는 형편이니 자원자가 천 명에 불과하였으니까.

대표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제반 사항을 물어보았다.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짐을 짊어지고 아무리 날래게 움직여도 한도가 있습니다. 기껏해야 하루 오십 리(20㎞)를 나아가는 것이 전부인데 다섯 달이나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설령 우마차라 하여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대책은 마련해 두었네. 험한 곳에서야 불가하지만 평지나 황무지에서는 하루에 사백 리(160㎞)를 나아갈 수 있는 사막배를 이백여 척이나 준비해 두었지. 한번 보게나.”

시종은 내 표정을 주시하다가 창문을 활짝 열었고 창밖에는 드넓은 금주 일대의 평원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 계획한 대로 손짓을 해서 관원에게 신호를 보내자 저 멀리 있는 평원에서 사막배가 출발하였다.

바닷바람을 받아 한껏 돛을 펼친 사막배들이 질주하며 평원을 가로지르자 대표들 사이에서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뭍에서 사막배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단은 아직까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사막배의 상세를 말해주었다.

“각 배에는 미곡으로 사십 석에 달하는 짐은 물론이요, 사람 서른 명을 태울 수 있으며 바람만 있다면 하루에 사백 리를 나아갈 수 있지. 이 배를 오백 척을 준비하였다네.”

“이런 배가 오백 척이나 있다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겁니다. 하루에 이백 리만 나아가도 한 달 정도면 동쪽에 있는 대평원에 도달할 수 있겠군요.”

“물론 그 여정이 쉬울 것이라 생각하지는 말게. 중간에 제대로 된 사막은 아니지만 사막 근처에 있는 황무지를 통과해야 하며 아국을 여전히 불신하고 노략질을 일삼는 미주인들이 제법 있다네.”

“노략질을 일삼는 미주인들이라 하셨습니까? 관찰사님께서 하주도에 계셨을 적에 십만 대군을 도륙한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략질이나 하는 도적 따위야 단숨에 소탕하시겠지요!”

히데요시야 머리 좀 굴리다가 내가 몇 년 전부터 만들어둔 방어선에 제대로 당한 거고 아파치와 코만치는 소규모 부족으로 흩어져서 습격하니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

하지만 미주인들과 함께 정찰에 나선 군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아직 말도 없고 제대로 된 제철기술도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

나는 어느 정도 결론을 낼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치를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건물 밖을 걷자 대표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가며 목소리가 차츰 높아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거의 사라질 때쯤 들어가자 대표들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정리된 의견을 말하였다.

“저희는 관찰사님을 따르고 싶지만 나이가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이주민 가운데는 칠순을 넘긴 노인부터 배 위에서 태어난 아이까지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개척에 나선다면 불민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내가 말리고 싶을 지경이네. 환갑이 넘은 사람은 개척단에 합류할 수 없지 않겠나.”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저희 가운데 자식이나 손자가 열 살 아래인 사람들이나 나이가 환갑이 넘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금주에 남겨두겠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개척에 합류할 겁니다.”

이 시대의 백성들은 평균 16세쯤에 혼인을 올린다. 몸이 완전히 성장하는 것은 최소한 15세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 무렵 혼사가 오가고 다음 해에 혼인을 올린다.

그러니 보통 한 가족에는 50대 중반의 할아버지, 30대 중반의 아버지 그리고 10대 초반의 아들이 있는 상황이 일반적이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환갑이 되기도 전에 지병으로 숨을 거둔다.

제법 합리적인 결론이 나왔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논의를 정리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이라는 말이 걸리는군. 일단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전하여 정말 개척단에 합류할 사람만 설득할 수 있도록 시일을 주겠네. 다만 절대 강요하지는 말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강요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노약자가 개척단에 합류하는 것을 만류해야 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표들이 돌아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처음에는 살기 좋은 금주에 눌러앉아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미 먼 길을 건너왔다는 이유로 다시 먼 여정에 나서려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열흘 정도가 지나자 하주도 대표들이 답을 보내왔다. 열흘 동안 설득에 매진하였는지 그들의 눈 아래가 죄다 검게 물들어 있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예 연판장(連判狀)을 내민 이들도 있었다.

“도합 이천삼백여 호 가운데 천칠백 호가 관찰사님을 따라 개척에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식이 장성한 이후 개척단에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수효가 더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왔는데…….”

“자네들은 여기 왜 왔는가? 금주에 거주하는 백성 가운데 개척에 합류하기로 한 이들은 기껏해야 일천여 명에 불과하였는데?”

“관찰사님께서도 너무하십니다. 저렇게 마른 사람들을 어찌 개척단에 보내자 하십니까? 저들과 씨름도 해 보았는데 허리를 당기는 족족 넘어지니 그 험난한 생활을 어찌 버티겠습니까?”

의외로 잠잠히 있던 금주의 백성들이 자극을 받아 개척단에 합류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정든 고장을 벗어나 험난한 땅을 개척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섣불리 응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사람들. 엄밀히 따지면 하주도 백성들은 조선 평균치이지만 미주 백성들의 체격은 조선 평균보다 크기는 하다.

이들 기준으로 작고 왜소한 사람들이 먼 길을 건너와 개척에 나서겠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의견 또한 수렴하여서 명부를 정리하였다.

“그러하면 금주에 거주하던 백성들 이천오백여 명에 하주도에서 건너온 이들 육천칠백여 명이 개척에 나설 계획이로군. 이미 일만 명을 넘어서 삼만 명의 개척을 실시할 물자가 준비되었으니 서둘러 개척에 나서겠네.”

“개척은 누구에게 위임하시겠습니까? 혹여나 강주 목사님께 일임하실 생각이신지요.”

“위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금주 일대에는 다른 관원들이 업무를 대행할 것이니 내가 직접 나서야 하지 않겠나. 나는 모든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네. 그동안의 대소사는 모두 창산(신주랑의 호)이 해결할 것이네.”

부친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관찰사 대리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신주랑이 나에게 인사를 올리며 감사를 표시하였고 관찰사가 직접 움직인다는 말에 백성들의 환호성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자고로 모든 위업(偉業)에는 상징이 필요하다. 일대를 정복한 왕이 거대한 비석을 세우고 건물을 세우며 자신의 위업을 만천하에 드러내듯이 나 또한 이 개척단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을 준비하였다.

다시 닷새가 지나 백성들이 사막배에 개척에 필요한 물자를 올리기 시작할 무렵 그 상징을 공개하였다.

일반적인 사막배의 두 배에 달하는 길이를 가진 초거대 사막배가 모습을 드러내자 신주랑은 자신이 모르는 물건을 보자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거대한 사막배가 있다니요! 바퀴가 열여섯 개에 달하지 않습니까!”

“만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지만 백상(白象)선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쁜 일일세. 이 백상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렬이 길을 잃지 않는 이정표가 될 것이네!”

이미 유토 부족과 파이우토 부족의 도움을 받아 몇 번이고 사막배의 시험운행을 해 보았는데 평지가 아닌 사막에서는 간혹 앞에서 일으킨 먼지로 길을 잃는 사막배가 생겨났다.

그걸 방지하고자 거대한 돛대를 가진 사막배를 만들다 보니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이 탄생해버렸지만 모래폭풍이 불면 이 거대한 백상선의 돛대도 보이지 않는다더라.

하지만 백상선에는 다른 장치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 백상은 일반 사막배의 네 배에 달하는 짐을 올릴 수 있고 내가 항시 머물며 집무를 수행할 자리로 쓸 것이네. 여기에 거대한 연을 매달아 모래폭풍이 몰아쳐 대열이 흩어져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 걸세.”

거대한 연이 풀려나와 바닷바람을 받아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개척단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빗발쳤다. 사실 지나치게 크고 둔해서 속도를 높이려는 나대용의 필사적인 노력이었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나대용과 나 외에는 없다.

거대한 백상선을 목격한 백성들은 그 위에 올라탄 나를 바라보면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심지어 백성들은 내 눈길이 스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숙여댔다.

“저걸 봐! 관찰사님이 날 보셨어! 하주도에서 요새를 쌓을 적에 내 손도 잡아주셨다고!”

“너 말고 네 뒤에서 공령을 올리는 뱃사람들을 보고 계신 거야!”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라서 뭔 문제가 생길 것 같지만 고된 행군을 시작하면 저런 힘도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법이다.

나는 대열의 맨 앞에서 사막배 대신 기병을 통솔 중인 배흥립에게 마지막 확인 작업을 실시하였다.

“백기(배흥립의 자) 자네가 마지막으로 아파치라는 부족을 만나보고 왔다 하네. 혹여나 우리에게 복속할 의사를 표시한 적은 있던가?”

“그 치(痴)들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우리의 개척단이 오면 모조리 도륙할 것이라 기세를 드높였습니다. 심지어 제가 돌아올 때에도 습격을 시도하였으나 모조리 격퇴하였지요.”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는 이들은 매로 다스려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백성들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자네가 선발대로 나서서 아파치 부족을 몰아치게!”

아파치는 정말로 답이 없었다. 다른 부족과 같은 조건으로 세 번이나 설득하였는데 여전히 행패를 부리겠다 말하니 내 인내심도 한계에 봉착하였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쯤 되는 위인이야 칠종칠금(七縱七擒) 정도로 인내심을 품을 수 있겠지만 내 인내심은 평범해서 ‘참을 인’ 자 세 개에서 끝나는 수준이다.

사실 배흥립이 모조리 도륙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내가 말리는 형편이니 말은 다했지.

일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의 앞에는 배흥립이 필사적으로 조련한 일천 명의 기병들과 그 보조 인력들 그리고 각지의 원주민들이 소집한 병사들이 나서서 아파치족을 비롯한 적을 물리칠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사람들이 탑승하자 출발 명령을 내렸다.

오백여 척에 달하는 사막배가 갈고리를 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면을 박차기 시작하였다.

바닷바람을 받아 점점 부풀어 오르는 돛이 사막배의 속력을 높이자 환호성이 주변을 메웠다.

첫 목적지는 나바호족이라 불리는 이들의 거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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