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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97화 (497/573)

근육조선 497화

2부 26장 8화 이주 사유는 왜노자

왜변이 끝나고 5년이 지날 무렵 옛 큐슈의 영토인 하주도와 육주성은 그럭저럭 제대로 된 모습을 되찾았다.

만력제가 공식으로 양도하였기에 조선의 영토가 되었으며 모든 백성을 조선인으로 대우하기로 하였으니 큰 다툼은 없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있었지만 만력제의 어마어마한 성은으로 이를 무마할 수 있었으며 패전 이후 하주도의 정비에 투입된 원정군 출신 보인들이 기존의 시설을 보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로 인한 문제가 시작되었다.

“염병할! 이제는 쌀 여섯 섬에 은자 다섯 냥이라 하였소?”

본래 하주도의 미곡 시세는 쌀 1석당 은 1냥이었으나 최근 들어 폭증한 곡물생산량으로 그 규칙이 깨어지기 시작하였고 쌀 시세는 걷잡을 수 없이 내려갔다.

심지어 율도상회 소속 미곡상도 냉정하게 답하였다.

“이제는 시세가 더 내려갈 예정이니 어쩔 도리가 없구려.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농사만 짓는데 어쩌겠소?”

“나라님께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하십니까? 경상도에 쳐들어온 죗값을 치르는 놈들이 일을 다 마쳤으면 돌아가야지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못 들어보셨소? 농사를 열심히 짓는 것이 세상의 으뜸인데 열심히 지어서 쌀의 시세를 떨군다면 오히려 좋아하시지 않겠소? 그러니 나도 답답할 지경이오.”

“뼈 빠지게 한 결 다섯 마지기의 논에 농사를 지었더니만 이게 뭔 꼴이람.”

작황이 제법 좋아서 쌀을 36석이나 수확하였다 좋아했지만 여유분의 쌀 24석을 팔고 보니 은 20냥으로 돌아왔고 하주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농부의 눈에는 시름이 가득 차올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쌀의 가격이 2할 가까이 폭락하기에 이르렀으니 자식들에게 겨울 솜옷을 입힐 여유도, 두툼한 솜이불을 새로 사들일 여유조차 사라졌다.

짤랑거리는 은전을 움켜쥔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푸념을 내뱉었다.

“이래서야 뭘 어쩔 수 있겠나.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신세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 쌀을 팔아보았는데 은자 20냥으로 돌아왔소이다.”

“작년보다 시세가 내려갔네요? 이렇게 되면 농토를 더 늘려야 하는데…….”

“농토를 더 늘린다 해도 땅값이 금값인데 어떻게 늘리겠소? 예전에는 땅 한 마지기(1/15결)를 사들이는 데 은자 한 냥이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은자 두 냥이 넘어가지 않소.”

그 말을 들은 아내도 답답했는지 집안에 있는 돈 궤짝을 꺼내 여유 자금을 확인해 보았다.

나름 잘사는 집이어서 제법 많은 돈을 비축해 두었지만 기껏해야 농사꾼이 모을 수 있는 돈은 은자 열 냥에 불과하였다.

“이래서야 땅 다섯 마지기도 못 사들이겠는데요. 애초에 왜국에서 온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고 엉덩이를 붙이고 사는 것이 문제라니까요.”

“그 왜노자(倭勞者: 외국인노동자 + 왜인)들은 왜 안 돌아가는지 몰라. 처음에 일 할 때에는 급료를 받는 대로 비축해서 근면하다 생각했는데 시일이 지나니 우리의 목을 죄는구려.”

농부가 한숨을 내쉬며 담뱃잎을 곰방대에 담으려다 내려놓았다. 공식적으로는 을유왜변(乙酉倭變)이라는 전쟁에서 사로잡힌 일본군 포로는 일반병과 보인으로 구분되었다.

병사들은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전선에서 소모되거나 북방에서 노역을 하고 포로로 팔려나갔지만 보인은 아니었다.

그들의 죗값은 오로지 주인을 따라 병사들의 수발을 들어준 것에 불과하였다.

보인 가운데 사만 명은 하주도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며 조선 표준 임금의 7할에 해당하는 급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보인들이 전후 처리가 끝났음에도 하주도에 남기를 원하였고 이들의 명칭은 왜노자로 굳혀지기에 이르렀다.

“염병할 놈들. 본래 땅으로 돌아가면 세금이 오 할이 넘는다 해서 아예 안 돌아가고 하주도에서 돈을 벌 만큼 벌고 돌아가겠다고? 돈을 번다는 놈들이 급료를 그렇게 적게 받아?”

하주도에 남은 왜노자들은 대부분 지주들의 아래에서 소작농 생활을 하기를 자처하였다.

실제로는 소작농조차 아닌 머슴에 불과하였지만 이들은 필사적으로 일하였고 심지어 기존에 지주들의 일감을 받던 사람들을 밀어내기에 이르렀다.

실질적 노동 인구는 20만 명에 불과한 큐슈에서는 4만 명에 달하는 값싼 인력이 생겨난 격이었다.

본래 품앗이를 해서 돈을 벌어야 했을 아내도 굳은살이 사라져 가는 손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사는 곳에서 머슴 일을 하면 죽지 못해 살지만 여기서 살면 밥이라도 푸짐하다 하지 않습니까. 일이 생기는 대로 달려드니 왜노자들 모습을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할 지경입니다.”

조선 기준으로는 7할을 지급하였지만 일본의 값싼 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표준 임금의 1.5배에 달하는 거액이 되었으니 근로 의욕도 넘쳐났다.

더군다나 이들이 보강한 수리시설은 대지주들의 농업 형태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값싼 노동력과 충분한 수리시설로 인해 지주들은 땅을 사들여 대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니 이 근거는 유성룡이 한양 인근에 세운 신도시에 기반을 두었다.

경지를 직사각형으로 정비하고 철저한 통제하에 농사를 지으면 효율이 급증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대농장 경영은 합법적인 행위이기에 조선의 법으로도 금지하지 못하였고 지금의 관찰사인 정여립조차 지주에 대한 세금을 늘려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기에 농부는 마당에 침을 뱉으며 거대한 농장을 노려보았다.

“앞으로 십 년 정도만 버티면 왜노자들도 나이를 먹어서 돌아갈 것이니 어떻게든 버텨봅시다. 그때가 되더라도 쌀값이 안 올라가면 내가 힘을 써서 저 농장에서 큰애랑 같이 일해볼 것이니 숨통이 트이겠지.”

“우리 둘째 시집은 어떻게 보냅니까? 그때쯤 되면 장성할 셋째 장가도 보내야 하는데요.”

농부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입술을 씰룩거렸지만 더 근면히 일하고 더 싼 가격에 일한다는 사람을 쫓아낼 방법이 없었다.

사실 왜노자를 쫓아내려 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몇몇 사람들은 왜노자를 구타하려 하였지만 그들은 험난한 전국시대를 견뎌온 이들이었다. 역으로 두들겨 맞고 제압당해 관아로 끌려가기에 이르렀으니 무력으로도 답이 없었다.

농부는 한숨을 내쉬며 동전 몇 개를 소매에 넣으며 문밖으로 나섰다.

“잠시 벗들과 탁주 한 잔이나 하고 오겠소. 많이 마시진 않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농사가 끝나면 청주를 마시던 자신이 탁주나 홀짝거리는 신세가 되자 더욱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도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번에 논두렁이 무너지며 찬물이 들어와서 모가 싹 넘어지지 않았던가. 그래서 전통을 털어 은자를 꺼내게 생겼다네. 자네 형편은 어떠한가?”

“나도 비슷한 신세이지. 그놈의 왜노자들 때문에 삶에 여유가 사라지기에 이르렀네.”

탁주 한 잔이 뱃속으로 들어가나 농부의 얼굴이 붉어지며 술기운이 올라왔다.

폭락하는 쌀값에 고통스러워했지만 한 사람은 태연하였기에 농부들의 시선이 쏠리며 질문이 시작되었다.

“미치노스케였나? 자네 땅이 작황이 영 좋지 않던데 올해 겨울은 넘길 수 있겠는가.”

“저. 저요? 문제 엄습니다! 본래 제 살던 땅 세금 네 할 넘어습니다. 조금 굽으면 됩니다.”

“우리 세금은 본래 삼 할이라고! 삼! 할! 더군다나 대농장이 늘어나는 걸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지주들에게 땅을 팔아버리는 사람들도 있더구만! 그리고 사람이 왜 굶어! 배부르게 먹어야지!”

“저는 잘 모르게씁니다. 다이 아니 대지주님 땅 팔라 하시는데 팔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쟁의(爭議)를 일으켜 대지주를 견제하거나 쌀값을 올릴 수 있게 작황을 조절할 수 있겠지만 육주성 출신들은 워낙 험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 재주가 없었다.

그나마 변해 버린 생활에 잘 적응하고 빠르게 친해지려는 모습을 보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결속력을 발휘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농부들은 한숨을 내쉬며 추억을 떠올렸다.

“저 멀리 보이는 성형요새인지 경사요새인지 만들 적에 기억나던가? 서애 대감께서 온갖 일을 시키셨는데 당시에는 죽도록 고되었지만 만들고 보니 쓸 만하지 않았던가.”

“이 친구야. 내가 보인으로 일했는데 당시 등길랑이라는 왜장의 병력들이 아예 곤죽이 되는 모습이 아직까지 떠오른다네. 그나저나 지금 관찰사께서는 서애 대감님의 제자시라면서?”

“제자는 아니고 한때 서애대감님의 부관이라 하였네. 존함이 여립(汝立)이라 하시던가? 그런 영민한 분도 대책이 없어서 대지주의 세금을 조금 늘려 견제하는 것으로 끝났다네. 서애 대감께서 계셨다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유성룡이 있었으면 뭔가 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농부들을 휘감았다. 남쪽의 육주성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십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몰려왔을 때 정말 세상이 끝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같이 몰려오던 왜병들은 힘도 쓰지 못하고 도륙당하였다. 더군다나 전쟁 이후 살 곳이 사라진 이들을 순식간에 받아들인 덕분에 숨통이 트이지 않았는가.

당시를 떠올린 농부들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술을 모조리 비웠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서애 대감의 모습이라도 되새기고자 하는 마음에 감영 근처로 자연스럽게 발을 옮겼다.

“대감님께서 어디에 계시던 저희는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서애 대감님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은혜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살기 힘들어도 대감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을 것입니다.”

감영 근처에 있는 작은 신사는 전쟁이 끝나고 백성들의 손으로 개수되었다.

기존에 모시던 신토(神道)의 신들의 상징도 모조리 철거하고 오로지 유성룡을 위한 신사로 탈바꿈하였다.

승리의 흑룡세를 취하는 유성룡의 석상에 인사를 올린 농부들이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최근 들어 율도상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고니시 유키나가 또한 유성룡을 모신 신사에 방문한 것이다.

“고 실장(室長)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내 성은 고니시고 이름이 유키나가라네. 그놈의 고 서방부터 고 과장에 고 실장까지 조선 사람들은 고 씨로 알고 있으니 성을 갈아타야 할지도 모르겠군. 매우 평안하니 염려하지 말게.”

율도상회는 상회 소속 상인들의 규모에 따라 대리(代理)에서 시작하여 과장(課長), 그리고 실장(室長), 마지막으로 부장(副長)으로 직급이 올라간다.

고니시 정도의 직책이면 한 지역에서 손에 꼽는 규모의 거래를 성사할 수 있는 사람이자 일대의 귀감이었다.

유성룡이 고니시의 필사적인 증언 덕분에 침략을 미리 알아챌 수 있었다며 칭찬하였고 이는 곧 신용이 되어 빈털터리가 된 그를 순식간에 거상(巨商)으로 올릴 기반이 되었다.

인사를 마친 이들이 밖으로 나왔으나 감영 담벼락에는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렸다.

“새로운 방이 붙었군. 지금은 수확이 끝난 음력 시월이라 방이 붙을 이유가 없는데.”

입신체비를 익혀 체격이 비대해진 고니시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길을 텄고 농부들도 방 앞에 섰다.

단어는 일본의 말을 사용하지만 문법은 조선의 말로 변한 이들을 위해서인지 두 언어를 혼합한 정음(正音)으로 구성된 방이었다.

-조정에서 새로운 강역을 넓히는 일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한다. 머나먼 동쪽에 미주라 하는 거대한 땅이 있으나 근래에 들어 서반아를 비롯한 구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땅?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주상전하께서 왜 이런 방을 붙이셨지?”

“자네들 모두가 조선 백성이기에 조선 백성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 하였네.”

붙여진 방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미주라는 땅을 새로 개척할 인력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하던 농부들이지만 세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마련되어 있었다.

“만약 농지를 물려줄 후손이 있다면 그 후손의 세금을 십 년 동안 면제한다고?”

“부모를 봉양한다면 친부모는 당연하고 시부모까지 이주시켜 준다 하였네! 여기에 땅은 마음대로 개척할 수 있다 하였는데?”

“마음대로 개척한다는 점이 문제로군. 개간할 땅을 받았는데 잘못해서 모래땅이나 황무지를 개간하게 되면 쫄쫄 굶다 이역만리에서 말라 죽게 생겼다네.”

조건은 좋았지만 지금까지 일궈온 농토를 버리고 새 땅을 개간해 보라는 말은 농부들의 삶을 뒤엎어 버리라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주도 출신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이름 석 자가 맨 아래에 적혀 있었다.

“미주 관찰사 유성룡…… 서애 대감께서 왜 거기 계시나!”

“정말이네! 서애 대감님의 존함 석 자가 떡 하니 적혀 있지 않은가!”

서애 대감님이라는 말이 퍼지자마자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방으로 다가갔다.

흥분이 지나쳐 짓밟혀 죽는 사람이 생길까 나졸들이 사람들을 물리쳐 떼어놓기에 이르렀으나 이들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일이야 좀 고되겠지만 그분 아래에 있으면 떡이 굴러오고 술이 들어오는 법이지! 그분의 손길이 닿은 땅은 황무지도 옥토가 되고 평지도 요새가 되는 법이야!”

“더군다나 새로 개척한 땅이니 쌀을 수확하는 대로 비싸게 팔 수 있지 않은가! 아니지! 서애 대감님이라면 쌀을 금으로 바꿔 오실 분이라네!”

“내가 아는 서애 대감님이라면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일은 할 수 있을 걸세. 이거 상인으로 대성하려면 더욱 큰 거래를 성사해야 하는데 저 사업에 끼어볼까.”

고니시조차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실장 직위에 불과해 다른 대륙을 오가는 거래를 성사해 본 적이 없는데 인맥을 앞세우면 미주 담당 부장 자리를 꿰찰지도 몰랐다.

심지어 멀뚱히 있던 미치노스케조차 여기에 참가하려 하였다.

“정말 그러케 훌륭한 다이묘십니까? 와타시도 갈 수 있는지요.”

“자네는 아마 불가할 거라네. 조건 중 하나가 조선의 글은 몰라도 말을 익힐 것이라 적혀 있군. 우리야 조선에서 통용되는 단어만 외우면 말이 완전히 통하지만 자네는 아직 부족하다네.”

2대 전 왕인 환종이 제정한 법에 따라 ‘아국에 귀의하고 싶은 뜻을 품은 자는 아국의 말을 배우고 아국의 풍습을 따르면 아국 사람과 다를 바 없다’라는 대전제가 법률로 정해져 있었다.

하주도 출신 사람들이야 단어만 익히면 이 조건을 충족하지만 육주성에서 이주한 이들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깨가 축 처진 미치노스케였지만 다른 농부들은 오히려 그에게 거래를 제안하였다.

“내 장남은 두고 갈 것인데 녀석이 혼인을 하여도 땅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네. 자네에게 내 땅 다섯 마지기를 은자 다섯 냥에 팔 것이니 채무는 장남에게 천천히 갚게나.”

“이거 나도 자네에게 땅을 팔려 했는데 자네 허리는 괜찮겠나? 세 마지기에 불과한 땅이지만 보리 하나는 잘 자라는 땅이라네.”

자신들의 자식이 쓰고 남는 땅은 육주성 출신에게 처분하는 방식으로 해결한 하주도 백성들이 감영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토지 거래 장부와 재산 처분을 비롯한 수많은 업무에 시달린 정여립이 보름 뒤, 책상 위에서 혼절할 무렵 첫 이주민이 선발되었다.

조정의 예상은 일천 호, 오천 명을 예상하였지만 이 수를 아득히 넘긴 삼만 명의 이주민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주를 개척할 유성룡이 부담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

문 : 우리의 급료는 왜 조선 기준 7할입니까?

답 : 세금 먼저 떼야지!

본래 대농장 경영은 조정에서 호족 세력 억제를 위해 갖은 수단으로 처벌한 행위이지만 여기서는 노동력이 노비가 아닌 일본산 노동자입니다.

지금은 조정에서도 개입하기 힘들지만 10년 지나고 왜노자들이 모두 다 돌아간 이후가 문제입니다. 노비를 사들여 대농장을 이어가면 철퇴가 떨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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