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96화
2부 26장 7화 인력이 생겨난다
쓸 만한 인재와 아까시나무를 운 좋게 습득해서 기분이 좋아졌는데 내 표정을 본 성양진은 후원이 마음에 들었다 여겼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관찰사께서도 후원을 아름답게 여기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일대에 속한 치치맥족의 사람들을 불러왔으니 어서 논의를 실시하시지요.”
논의를 실시하라는 말에 어리둥절했는데 그의 뒤에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다.
외모를 보아하니 원주민 특유의 갈색 피부와 큰 코가 돋보이는 사람들이니 분명히 치치맥 사람들이리라. 하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다.
“아직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치치맥족의 사람들이 당도하였다고? 이들이 각 부족을 대표하여 나와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들인가?”
“본래 저희와 중미 일대의 원주민들은 지극히 우호적인 관계였으니 가능한 일이지요. 이미 강주 인구 중 삼분지 일이 치치맥을 비롯한 중미의 사람들과 그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미 일대의 원주민들은 조선을 신의 사자라 여기고 식인과 인신공양을 일삼는 아즈텍 제국을 물리치는데 협력했다.
하지만 훗날 부임한 임사홍이라는 작자가 조선 본토와의 연락이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닿는다는 점을 악용해 버렸다.
그는 더욱 많은 황금을 모으기를 원해 각지의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억누르며 상잔(相殘)하도록 이간질을 벌였다.
그리고 조선의 세력이 아닌 스페인의 원정대가 오자 진상을 알아챈 원주민들이 반역을 일으켰다.
“조선에서 또 무슨 욕심을 부리려 하십니까. 저희는 조선과 친할 뿐 조선의 아래에 있는 이들은 아니니 지나친 욕심은 화근을 불러올 겁니다.”
“욕심을 부리긴 하겠으나 답례도 확실하게 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결국 임사홍이 저지른 일의 결과가 이거다.
본래 역사의 멕시코 남부는 스페인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으며 복속을 청한 북부 원주민조차 반항하며 동맹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려 하였으며 언제나 주는 만큼 받기를 청하였다.
하지만 내가 주는 물건은 그런 과오를 넘어설 수 있는 물건이다. 나는 파이우토 부족 감염자를 통해 새로 받아낸 우두 고름을 담은 병을 내밀며 말하였다.
“철죽(鐵竹)이라 칭하는 튼튼한 대나무를 원하며 조선이 동쪽을 개척하는 동안 방해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그 대가로 영원히 두창에 걸리지 않는 법을 전수할 것이네.”
“튼튼한 대나무라 하셨습니까? 혹여나 과두아(guadua) 대나무를 말하는 겁니까? 그 대나무가 쓸모는 있습니다만 중요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인지요?”
“아주 중요하다네. 가급적 마흔 자(13.9m)가 넘는 거대한 녀석들로 보내주면 더욱 좋겠군.”
어린 시절 회령군에게 배울 때에도 철죽이라 불리는 대나무의 존재를 들은 적이 있었고 조식도 이 철죽의 잎으로 만든 댓잎차를 나에게 먹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금주 관찰사로 부임하고 철죽이 어떤 녀석인지 알게 되었다.
금주에 옮겨 심은 철죽은 상대적으로 추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크기가 작아지고 픽픽 죽어 나가서 몇 그루만 감영 후원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었지만 이 괴물 같은 대나무는 본래 땅에서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란다.
직경이 보통 대나무의 2배가 넘는 1/3자(11.5㎝)에 달하고 길이는 상부를 제외해도 마흔 자가 넘어가는 거대 품종이다.
강도(剛度)조차 일반적인 대나무와 비교해도 2배 이상 강하니 건물을 지어도 충분한 괴물들이지.
강도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 이 대나무를 이용한다면 사막배의 선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개척지에 임시로 만들 목책이나 막사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
치치맥 사람들은 난감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그 대나무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높은 산 속까지 사람을 보내 대나무를 벌채하고 다시 강을 통해 바다까지 흘려보내야 하지요. 제법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두창을 몰아내는 병이라니요?”
이미 몇 번이고 해 온 일이기에 우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치치맥 사람들은 이를 듣고는 참 신기한 병도 다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설명이 끝나고 이들의 표정이 급변하였기에 쐐기를 박으려 하였다.
“어차피 두창에 걸리지 않게 만드는 병을 퍼트리려면 높은 산에 거주하는 각 부족을 만나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과정에서 보이는 대로 철죽을 모아서 보내주게.”
“정말 두창이 걸리지 않는다 하셨으면 아예 대나무를 마음대로 길러서 수출해 볼 의향도 있습니다. 당장 저희의 땅에 있는 과두아 대나무 숲을 벌채하여 일만 개 정도를 보낼 것이나 더 많은 물량은 시일이 걸릴 겁니다.”
“시일이 얼마나 걸리겠는가? 내 임기가 앞으로 사 년 조금 넘게 남았는데 지나치게 지체되면 아니 된다네.”
“과두아가 십 년 동안 자라면 성장이 끝나니 난감하군요. 하지만 조선에서 과두아 대나무를 원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대가로 이 영창을 퍼트리면 어떻겠습니까? 최소한 매년 오만 그루는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치치맥 부족은 조선의 선물을 자신들이 퍼트려서 영향력과 권위를 얻기를 원하였고 이는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모든 질병은 유입경로를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
멕시코 일대에 우두를 계속 퍼트려 인간 방벽을 만들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데, 스페인의 영향을 받는 중남미 일대에 우리가 나설 수도 없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 줘야지.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병임은 명시하라 하였다.
“대신 아국에서 발견한 영길리국의 두창, 영창이라는 병임을 명시하고 퍼트리게나. 일이 틀어져 다른 질병이 퍼졌다면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바로 사람을 보내서 과두아 대나무를 있는 대로 수집해 보내지요.”
이제 필요한 소재를 거의 다 모았으니 조정에서 개척민을 선발해 보낼 시기인 육 개월 뒤, 1593년 4월에 맞추어 나도 개척민을 엄선하여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면 충분하리라.
순식간에 거래를 마친 나를 보고 감탄하는 성양진은 물론이요,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멀뚱멀뚱하게 쳐다보는 윤광영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는 윤광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내가 이 친구의 호적을 다른 파평 윤씨 소속으로 옮길 것이니 자네도 알아 뒀으면 좋겠군. 비록 노비 신세는 아니지만 머슴으로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
“저 또한 반가운 일입니다. 이 친구가 자질이 뛰어났지만 그놈의 조상을 잘못 둔 덕분에 재능을 살리지 못하여 아쉬울 뿐이었지요. 자네도 고생이 참으로 많았네.”
성양진이 손을 내밀자 윤광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계속 숙여대며 감사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이 친구가 생각보다 더 뛰어난 인재라는 것이 드러났다.
“고…… 고생이라니요! 목사님께서 제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낮에는 머슴 일을 하고 밤에는 서적을 읽을 수 있게 충분한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자네가 이렇게 근면할 줄은 몰랐다네. 이거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군.”
비록 입신체비는 부족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만족스러운 인재이니 앞으로 잘 쓸 수 있겠지.
졸지에 윤원형의 손자를 받아들이게 된 파평 윤씨 소속 노인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은자를 좀 먹이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호적을 고쳐 버렸다.
* * *
더 가볍고 강도가 높은 과두아 대나무를 사용해 사막배를 양산하기 시작하자 문제가 제법 많이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말을 비롯한 짐승의 힘이 아닌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자동차이니 지금까지 없는 교통수단이었다.
개척단에서 사용할 사막배 오십 척의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지금도 조작에 실패한 사막배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다 결국 옆으로 넘어지기 시작하였다.
“어이쿠! 또 넘어진다! 팔 꺾이지 않게 조심하라고!”
“염병할! 말이었으면 눈치를 채고 속도를 늦췄지! 돛을 안 감고 뭘 했어?”
강덕만을 비롯한 하와이 출신 폴리네시아인들은 자신들의 배에서 따온 돛을 개조한 돛을 사용하니 가속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지만 조선 사람들에게는 폴리네시아인들의 돛의 조작이 난해하였다.
그나마 감속을 실시한 배였지만 어쩔 수 없이 백사장 위에서 옆으로 뒹굴고 사람들이 튕겨 나왔다.
부드러운 백사장이기에 사람들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불운한 부상자가 생겨났다.
“이런 세상에. 어깨뼈가 빠졌으니 집어넣어야 한다네. 치료가 끝나도 석 달 동안은 이 팔에 힘을 주지 말고 가급적 얌전하게 생활하게나.”
“잠시만! 의원니이이이임!”
잠시 뼈를 맞추는 비명 소리가 들리고 기본적인 치료를 마친 환자들이 빠져나가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찼다.
하지만 사막배를 점검하던 나대용은 한숨을 쉬며 도면을 수정하였다.
“이래서야 무게를 더 늘려야 버티겠는데. 결국 철죽으로 선체를 만들어 가벼워지면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마련이네. 광영 자네에게는 뭐 좋은 생각 없는가?”
“제가 보기에는 바퀴가 좀 작은 것 같습니다. 앞바퀴는 대역기봉을 사용하고 더욱 두텁고 큰 바퀴를 두어 사막배의 방향을 돌릴 수 있게 하였는데 차라리 모든 바퀴를 크고 두껍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자네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 같네. 바퀴가 커질수록 안정적인 법이나 조금 느려질 게 분명하군. 하지만 상부의 무게가 가벼워지니 축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걸세.”
이제 둘의 논의는 내가 함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벌써 업무에 적응한 윤광영은 빠른 속도로 나대용과 친해졌으니 마치 삼촌과 조카 사이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의 지식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더욱 큰 바퀴가 끼워진 사막배는 그럭저럭 잘 움직였지만 여전히 돛의 조작이 미숙하였다. 가만히 보니 돛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금주 출신이라 대부분 입신체비에 능한데 오히려 돛에 끌려다니는 꼴이 되었다.
최소한 삼대운동 600근을 달성한 뱃사람들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는 돛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대용도 입술을 짓씹으며 고뇌하였고 나도 궁금증이 밀려왔다.
“저 사람들 왜 저러지? 시망(나대용의 자) 자네는 돛을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가?”
“저런 거력이 필요할 줄은 누가 알고 있었겠습니까. 제가 배를 연구하며 신농도인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하바이이(하와이)라는 섬에 사는 신농도인만큼 힘이 드센 이가 없군요. 돛의 크기를 조금 줄여서 조작을 편하게 해야겠습니다.”
“내 벗인 노이네와 견주어도 아이와 어른만큼의 차이가 있겠군. 저 친구들은 대체 뭣 때문에 신농도인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힘을 가졌을지 참으로 궁금하다네.”
신농도인이라 불리는 폴리네시아인은 기본적으로 지방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지방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근육이 공존하여 절육(커팅)이 힘들 뿐이지 삼대운동 평균을 따지면 조선 사람들보다 100근 이상 우수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신농도의 평균보다도 훨씬 강한 이들이 하와이 출신이었다.
내가 보건대 저 돛을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삼대운동 800근은 달성해야 하는데 이는 체격이 좋은 신농도인도 엄청난 노력을 해야 달성하는 경지이다.
저 멀리서 돛의 기본 조작법을 가르치는 강덕만을 비롯한 하와이 출신 사람들이 강습이 끝났는지 손을 털고 퇴근할 준비를 갖추었다.
궁금증은 바로 풀어야 하니 이들에게 다가갔는데 이미 소역기를 하나 씩 들고 팔을 풀어대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이 많았군. 그나저나 자네들의 힘이 여느 신농도인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으며 아무나 삼대운동 구백 근을 돌파할 수준인데 대체 왜 그렇게 힘을 길렀나? 참으로 근면하기가 이를 데 없으니 입신체비사의 모범이나 마찬가지일세.”
“선조들이 하바아이에 발을 들일 무렵 제가 사는 카우이이 섬의 와이알레알레 산(Waialeale) 기슭에 있는 신성한 돌을 하바이이로 옮겼다 하였습니다. 이후 이 돌을 다시 옮기는 사람은 나하 일족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였지요.”
일종의 설화 때문에 힘을 기를 수 있는 입신체비에 몰두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긴 조선에서도 여러 민속 설화가 있고 대부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장정을 우대하는 설화이니 전 세계에 공통된 이야기겠지.
강덕만은 가슴을 펴며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 나하 일족은 마우이의 직계 후손이었기에 위대한 마나가 온몸에 흘렀고 혼자서 돌을 옮겼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나는 천천히 흩어지기에 이르렀고 저희는 마나를 축적하는 입신체비를 대신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 돌이 얼마나 거대하기에 마우이의 힘이 필요하다 말하는가. 자네들이 마우이라 부르는 사람의 환생이 아국에서도 있었다고 하던데 혹여나 삼대 운동 이천 근은 필요한 거석인가?”
“조선 사람을 불러서 확인해 보았는데 그가 말하기를 최소한 석 돈(2.7톤)에 달하는 무게라 하더군요. 수양자라 불리는 분이라 하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돌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영직이의 기록을 보아서 알고 있는데 2.7톤의 돌이 흙바닥에 있다면 그걸 밀어서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을 무게다. 그나마 다른 바위 위에 올려 있다면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게 한계고.
하지만 강덕만을 비롯한 이들은 팔뚝에 힘을 주며 말하였다.
“목표는 수양자라는 분이 달성한 삼대운동 일천이백 근입니다! 마우이의 화신이라 불리셨던 분이니 최소한 대등한 수준이 되어야 왕위를 노려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친구도 나하 일족 소속이고 저희 모두 다 나하 일족의 후예입니다. 그러니 왕위 경쟁자라 할 수 있겠지요!”
왕위 경쟁을 입신체비로 하다니 비극적인 일이라 봐야 하나 아니면 평화로운 방식이라 봐야 하나.
그러고 보니 참 순수한 목적으로 입신체비를 하는 이들이기에 쓸 만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저 구석에서 바퀴를 다듬는 윤광영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올바른 자세에서 올바른 힘이 나오는 법일세. 자네들 모두 입신체비를 가르친 경험이 없으니 제자를 한 명 두어 올바른 자세를 교정하는 방식을 익히게나.”
“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아무렴요!”
갑자기 근육과 지방이 얽힌 덩치에게 둘러싸인 윤광영은 일을 더 해야 한다며 뭐라 말을 하였지만 저 멀리서 퇴근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니 입신체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나야 입신체비 이전에 잔업을 해야 하고. 얼마 전에 개척단에 응모할 농부들을 모집하였는데 응모자가 일천 명에 불과하였다.
내 예상은 이천 명이 넘어갈 거라 했는데 원인은 분명하였다. 금주는 살기 좋아도 너무 좋은 고장이었다.
“아니, 이래서야 뭐 개척을 할 수 있겠나. 하긴 등 따시고 배부르면 눌러앉고 싶은 법이니 예상 범위 이내였는데 천 명은 너무 적은걸.”
기술자, 현장 관리자, 실무자 그리고 최종 관리자를 비롯한 군인까지 모두 소집하였는데 개척단 응모자가 지극히 적은 황당한 현실이었다. 이래서야 강제적으로 사람을 동원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러면 민심이 흐트러지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사람이 부족하다. 조정에서 보낼 개척민이 잘해야 이천 명에 불과한데 이를 감안해도 삼천 명이라니.
인원 부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나를 찾았다.
“관찰사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하던데 정기 연락선이 아닌 사설 선박을 타고 당도하였습니다.”
“사설 선박을 탄 사람이 이 저녁에 왜 나를 찾아온단 말인가. 기껏해야 상인이 분명한데.”
새 항로가 개척되자 상인들도 가끔 무역을 위해 금주를 찾아오기는 했다. 그래 보았자 배 몇 척을 보내는 것이 전부이고 필요한 상행을 끝나면 나에게 인사나 올리고 돌아가는 것이 전부이니까.
하지만 나를 찾아온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고니시 자네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 듣자하니 율도상회에 소속되어 명성을 떨치던데!”
“제가 왜 여기에 왔겠습니까. 서애 대감님께 미리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어서 왔습니다. 조만간 하주도에서 사람들이 끝없이 건너올 것이니 미리 대비하라는 말씀이지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고니시의 말을 듣고는 황당함이 치솟아 올랐다. 분명 하주도의 사람들은 히데요시의 침입 이후 조선의 백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법이 제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개척단에 응할 자격도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끝없이 건너온다는 말이 문제였다.
고니시는 숨을 가다듬더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건너올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최소 일만 명이 미주로 이주하기를 청하였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관찰사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니 자신들의 목숨을 다시 관찰사님께 맡기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나 때문에 그 머나먼 태평양을 넘어 새 땅으로 온다는 소리야? 대체 왜지?
이 황당한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이 궁금했다.
#작가의 말
다음 화는 일본 사정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 큐슈 북부인 하주도에서 이주를 택한 사람의 수는 삼만 명이 넘어갑니다.
조정에서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보내려 갖은 애를 쓸 수준이지요. 이 원인은 성룡이가 히데요시를 만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