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95화 (495/573)

근육조선 495화

2부 26장 6화 소재는 많을수록

다시 업무를 실시하려 하는데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석 달 주기로 보내오는 지원 물품을 담은 선단에서 상왕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운이 참 좋게도 내가 미주로 출발할 시기를 피해 돌아가셨기에 계획이 틀어지지 않았다.

돌아가실 때 남겼던 유언도 전해졌는데 ‘늙은 몸이 조금만 더 견뎌보았으니 할 일은 다 하였다’라는 말이었다.

이를 전한 내관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말하였다.

“상왕전하께서는 여섯 달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실 정도로 쇠해지셨지만 이를 남에게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심지어 주상전하가 만나 뵙기를 청할 때마다 기력을 억지로 북돋워 앉아 계셨으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상왕께서 그렇게 지내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소. 신하로서의 실책이자 과오이니 그 깊으신 뜻을 위해서라도 이번 과업을 반드시 성공할 것이오.”

상왕인 자신이 노환으로 급격히 쇠해졌음을 나타내면 나라의 일이 중단되며, 심지어 죽을 경우엔 국상이 시작되고 관료들을 미국으로 보낼 수 없기에 온몸을 불살라 억지로 기력을 유지했으리라.

이미 항구에서 소식이 전해져 백성들이 상복을 입은 채로 관아 앞에 나와 곡소리를 내며 죽음을 애도하였지만 관찰사로서 해야 할 일을 알기에 길거리에 방을 붙이고 명령을 내렸다.

“상왕전하께서 승하하셨으니 이는 국상(國喪)이 아니겠는가. 모든 관원들과 백성들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스물일곱 날 동안 음주가무와 도살, 그리고 혼인을 중단하며 애도의 뜻을 표시하라.”

아직 조선 초기의 관습이 남아 있기에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역월제(易月制)를 사용하였다.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하여 27일 만에 삼년상을 마치는 것이다. 왕실은 5개월 동안 국장을 준비하지만 백성과 신료들은 여기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금주의 백성들은 개방적인 태도와 다르게 세상을 떠난 상왕에 대한 애도를 확실히 표시하였다.

집집마다 밤이 되기가 무섭게 등잔이 꺼지고 더 이상의 술판이 벌어지지도 않았으며, 관청 또한 애도를 위하여 정시 근무만 하고 퇴근하였다.

지금까지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래 산 임금이 세조, 본래 역사의 단종이었는데 83세를 살았지만 평종은 85세에 사망하였기에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 놀라울 지경이다.

시호(諡號)는 앞 자가 평(平)으로 정해졌는데 이 시호는 결코 나쁜 시호가 아니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송한필은 이 시호에 대해 흡족해하며 찬사를 보냈다.

“평종대왕께서 나라를 다스릴 적에는 수많은 외적을 압도하고 균형을 유지하였기에 언제나 평안한 세상이 되었으니 합당한 시호지요. 비록 역적 윤가놈이 나라를 어지럽혔지만 이는 평종대왕께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 또한 그리 알고 있네. 듣자 하니 평종대왕 시절에는 미주인들과의 관계가 원활하여 탐험대를 심곡산맥(로키산맥) 너머로 보낸 적이 있다 하였지.”

그래 보았자 단 한 번 보냈을 뿐이고 아메리카 원주민과 접촉하지도 못하고 돌아왔으며 다음 탐험대를 준비할 무렵에 윤원형이 천연두를 퍼트려서 탐험이 중단되었다 하던가.

송한필은 돌아가는 배에 오르기 전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그나저나 이놈의 귀향길이 참으로 험난할 것 같군요. 대감께서 오실 때에는 왜국의 강역인 하이지(북해도)에서 출발하여 넉넉잡아 두 달이면 충분하였지만 돌아갈 때는 아닙니다.”

“내가 공무원 선발에 관한 장계를 보낸 서적이 지금쯤 여송(필리핀)에 닿아있을 것이니 별도리가 있겠는가. 자네도 넉 달 가까이 걸려 돌아갈 것이니 이를 감내해야지 별수가 있겠나.”

송한필을 배웅하였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놈의 편도항로 때문에 올 때는 편하지만 갈 때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무지막지한 거리를 주파해야 하는 법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품은 물론이요, 공무원 시험의 허가유무를 장계가 닿고 조정에서 이를 처리하고 다시 배를 보내려면 총 육 개월이 걸린다.

결국 석 달 뒤에야 뭐라도 할 수 있겠지.

* * *

점검 차 잠시 강주(康州: 샌디애고)목의 동헌에 들렀다. 개척 경로의 최전선이기도 하며 조선에서 불리기를 중미국, 현대에는 북부 멕시코 일대를 점거한 부족과도 협의를 할 필요성을 느껴서이다.

“보시다시피 강주 일대는 없는 것이 없는 도시입니다. 동쪽으로 가면 산악과 사막이 펼쳐지며 중앙은 평야 그리고 해안에는 금주보다 더욱 드넓은 백사장이 일품이지요.”

“참으로 좋은 땅이네만 여러 문제가 들끓는다고 들었네. 가만히 보니 길거리에 중미주인(멕시코 계열 원주민)들이 자주 보이는군. 그리고 군관들이 제법 많은걸.”

“남쪽으로 삼백 리만 내려가면 중미국의 강역입니다. 치치맥(熾治脈, 치치멕: Chichimec)이라 칭하는 이들은 아국과 온건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온건함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지요.”

강주를 담당하는 목사인 성양진은 본래 역사에서 사육신에 속해 후손이 아예 몰살당한 성삼문의 후예였다.

본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인물을 대하지만 그런 인물이 한둘이겠는가.

그는 군기가 삼엄한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미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금주의 병사들이 기강이 해이한 데 반해 강주의 병사들은 철저한 훈련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치치맥이나 서반아의 군인들이 들이칠 수 있는 곳이기에 삼엄한 경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무백(茂白: 이순신 장남 이회의 자) 그 친구가 여기에 왔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일대의 병사들의 수효가 많지 않으니 따로 각출할 방법이 없겠구려.”

“오히려 병사가 부족한 실정이라 관찰사께서 도움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파치라 불리는 족속들이 슬슬 주변을 오가며 상인들의 대오를 위협해 물건을 강탈하려 하니 이를 어르고 달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성양진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내 표정 또한 일그러졌다. 살인죄를 저질러 들판에 목이 잘려 버려질 놈들을 살려서 돌려보냈더니 저렇게 말썽을 부리는 것이다.

오로지 조선과 조선의 편을 택한 원주민들이 자신들을 범죄자로 대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터트리고 있겠지.

그들의 심보에 이마에 핏줄을 세울 정도로 분노해 있자 성양진은 내 표정을 보더니 내 마음을 풀어주려 하였다.

“관찰사께서 원하시는 대로 치치맥 부족에 속한 이들을 소집할 것이니 후원에서 잠시 숨이라도 돌리십시오. 여름이 아니라 경치가 조금 부족합니다만 가을에도 보기가 좋습니다.”

“내가 수많은 관아를 들른 적이 있지만 그렇게 경치가 좋다니 궁금하군. 어디 한번 봅시다.”

강주 관아의 후원은 계획적으로 설계하였는지 복잡한 형태의 호수 위에 누각까지 떠 있었다. 여기에 주변의 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는데 은행나무가 아닌 조선시대에서 처음 보고 현대에서는 자주 본 나무였다.

“이 나무는 대체 어디서 가져온 나무인가? 내 난생처음 보는 수목인데 가을에 은행처럼 노란 낙엽이 맺히다니 참으로 신비하면서 아름다운 나무로군.”

이게 무슨 나무인지는 잘 알고 있다. 둥그스름한 계란 형태의 잎사귀를 지녔으며 두툼한 가시가 줄기에 빼곡하게 나 있으니 아까시나무 외에 뭐가 있겠는가. 아카시아 말고 아까시나무다.

하지만 이걸 조선 사람이 알 길이 없으니 누군가 설명해 주기를 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후원의 낙엽을 쓸고 있던 머슴이 뛰어와 설명을 늘어놓았다.

“오십여 년 전 평종(平宗: 상왕 이호) 대왕의 치세 초기에 동쪽으로 다녀온 탐험대가 가져온 녀석입니다. 당시에 탐험대의 대장이었던 돈재(遯齋: 성세창의 호) 대감이 주변 십 리에만 다가가도 향기가 올라오니 이를 마음에 들어 씨앗을 받아왔다 하였지요.”

자세히 보니 나무가 두 종류였다. 둘 다 아까시나무에 속하기는 하지만 하나는 줄기에 마름쇠 같은 흉측한 가시가 돋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까시나무이다.

머슴은 이를 지목하면서 설명을 더욱 많이 하였다.

“하나는 돈재 대감께서 칭하기를 성(盛)가시목이라 하였는데 이 녀석은 꽃이 주렁주렁 열리며 그 향기가 십 리 밖에서도 진동합니다. 다른 하나는 졸(拙)가시목이라 하였는데 좀 더 곧게 자라지만 꽃이 적게 피지요. 하지만 참으로 골치 아픈 나무입니다.”

“골치가 아프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놈의 가시목이 관아 뒷마당에 마구잡이로 씨앗을 뿌려 싹트니 제가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나무뿌리를 수천 번은 잡아 뽑았습니다. 이 가시목들이 숲으로 퍼지면 숲 전체가 가시목으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그럼 확실한 아까시나무이다. 어마어마한 꽃을 피워 꿀 생산도 벌충할 수 있으며 가시로 인한 가공 난이도만 해결한다면 목질(木質)도 우수하며 토양 황폐화도 막아낼 수 있는 나무의 정점과 같은 녀석이다.

현대에는 일제 강점기에 심어진 나무라 하여 천대받지만 이거보다 좋은 물건이 없다.

상대적으로 영양이 부족한 땅에서는 마구잡이로 뿌리를 내려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땅이 비옥해지는 순간 다른 나무에 밀려 사라지니까.

그럼 씨앗이 있을까 궁금하였다.

“혹여나 이 나무의 씨앗을 받아둔 것이 있는가? 두엄도 낙엽도 적은 후원에서 마음대로 뿌리를 내린다면 아무 땅에나 심어도 마음대로 번성하지 않겠는가.”

“제가 조금 모아두기는 했는데 관찰사께서 이를 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 나무의 가시를 잘라내고 창호를 만드니 제법 쓸 만한 나무이기는 하군요.”

“이 튼튼한 가시목을 잘라 창호를 만들었다고?”

아까시나무는 질기고 튼튼한 나무이다. 목재 자체는 어떻게든 사용하더라도 줄기는 가시도 많고 힘들어 뭘 만들어 보지도 못하고 땔감으로나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걸 가공하는 노력을 생각하니 이 머슴이 보통 사람 같지는 않았다.

“자네 정도의 끈기라면 어디서라도 대성(大成)할 수 있겠는데 왜 이런 곳에서 머슴이나 하고 있는가. 보아하니 자네는 하는 일치고는 박식하고 끈기도 넘친다네.”

“이게 다 조상을 잘못 둔 덕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역적 윤가놈의 후손입니다. 정확히는 손자이지요.”

윤원형의 손자가 왜 여기 있나?

윤원형은 역적으로 거열형을 당했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본 가까운 친척들은 모조리 처벌받았으며 먼 친척들은 대부분 성씨를 갈아치우고 은거하였다.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머슴은 다시 한숨을 쉬고 말하였다.

“선친께서 여섯 살 무렵에 윤가놈이 양친 모두를 잃은 선친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윤가놈의 행적이 발각되고 가장 어린 양자인 선친께서도 연좌로 처벌을 받게 되었지요.”

“본래 연좌로 인한 처벌은 지나치게 어린아이에게는 면제된다네. 가까운 친척에게 의탁하여 다른 가문의 호적에 들어가는 선에서 처벌을 마쳤을 것인데.”

“하지만 윤가놈이 거열형을 당하고 관계된 모든 사람이 처벌을 받은 상황이니 어느 누가 선친을 받아들였겠습니까? 다행히도 당시 관찰사께서 관아에 머물게 하였지만 그놈의 역적 자식 딱지는 떨어지지 않더군요.”

생각해 보니 여섯 살 어린아이였던 이 친구의 아버지가 의절(義絶)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기나 했을까.

머나먼 미주에서 다시 천애 고아 신세가 되었으니 의지할 사람도 따로 없으리라.

머슴은 하염없이 빗자루를 놀리며 말하였다.

“제 선친께서는 역적 자식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셨고 저 또한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이를 떼어낼 수 없는 신세더군요.”

“하지만 자네는 영민하지 아니한가. 혹여나 사서삼경은 어느 정도 익혔는가? 그리한다면 향시를 보아 도성까지 나아가 신분을 올릴 수 있을 것인데.”

“대부분 익혔습니다만 향시 시험장에 나아가서 제 이름 석 자를 시작으로 선친, 그리고 역적 윤가놈의 이름을 적자, 시험을 볼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과거시험은 증조부까지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그놈의 윤원형이라는 석 자를 적자마자 시험을 포기하였으리라.

하지만 머슴 신세로 사서삼경까지 떼었다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끈기가 넘치고 머리까지 좋은 사람이 스무 살 내외이다? 이러면 무조건 성공할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이 머슴은 억울한 피해를 입고 있으니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끌어들여야겠지.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그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내가 보기에 자네 선친께서 덮어쓴 오명이 자네의 뛰어난 자질을 억누르는 것 같군. 그러하니 자네에게 제안 하나를 하겠네. 자네의 호적을 가까운 파평 윤씨 소속으로 옮겨줄 것이니 내 아래에서 일이나 해보지 않겠는가.”

“네? 저는 역적의 후손인데요?”

“당시의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 역적의 후손이라는 누명이 씌워졌을 뿐 자네는 본래 명문가인 파평 윤씨의 후예로 자리 잡았어야 할 사람이야.”

잠시 고민하던 머슴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절을 올렸으나 나는 이를 받기도 전에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머리 좋고 끈기 넘치는 부관감 하나를 구했는데 이러면 쓰나?

그런데 이름이 궁금하기는 하였다.

“그럼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호나 자는 있는가?”

“호나 자는 없고 이름 석 자만 있습니다. 파평 윤씨의 광영(光英)이라 합니다.”

“자네의 이름대로 앞길에 광영이 남아 있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나. 일을 정리하고 금주로 와서 내가 준비한 관직에서 힘쓸 준비를 하게.”

윤광영이라, 쓸 만한 사람을 하나 더 건졌으니 더 많은 인재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친구가 만든 창호를 보니 그 질긴 아까시나무 가지를 엮어서 아주 촘촘한 세살창을 만들었다.

내가 건축을 전공했지 실내건축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기에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일단 윤광영이 수집한 아까시나무 씨앗도 조선으로 보내고 사방으로 퍼트리면 이 친구의 이름 석 자에서 윤원형의 그림자를 지울 수단도 되리라.

#작가의 말

아까시나무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말을 시작으로 각종 누명을 뒤집어쓰고 마구잡이로 벌목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봉업계가 피해를 입었지요.

이후 타격을 입은 양봉업계가 늘어나자 아까시나무는 조림사업 대상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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