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92화
2부 26장 3화 사람을 다루려면
나대용은 신들린 듯이 자를 비롯한 기구를 가져와 내 도면에 첨삭을 반복하다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아예 새 종이를 꺼내 자신이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는지 나와 대화를 나누며 손을 놀려댔다.
“일단 배는 물이 스미지 않게 하니 목재를 쓰거나 수피(樹皮: 나무껍질)에 기름을 발라 붙이는 등의 처리를 거칩니다. 하지만 이 배는 뭍에서 움직이는 배가 아닙니까?”
“자네가 제대로 보았다네. 뭍에서 바람을 받아 움직이는 배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판재를 모조리 걷어내고 가급적 하부를 튼튼하게 두며 외곽은 짐이나 사람이 쏟아지지 않게 틀만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돛대로군요.”
나야 그냥 배를 뭍 위에 올려뒀을 뿐인데 아예 재주가 있는 사람이 달라붙으니 달랐다.
어중간하게 올려만 둔 돛대의 끄트머리를 아예 바퀴 근처까지 내려놓더니 사막 배 뒤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받침대를 마련해 두었다.
“돛대는 이론상 배 뒤에서 밧줄만 당겨 조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물에 빠지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으니 불가하였지요.”
“하지만 이 배는 뭍에 있으니 사람이 뒤에 설치한 받침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달리는 말처럼 높은 곳도 아니니 설령 떨어진다 하여도 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돛대의 형태도 수정해야 하고…….”
어느새 한 시진 가까이 흘렀고 배의 크기도 월등하게 커졌다. 나야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카누 수준의 배에 두 쌍의 바퀴를 붙였지만 나대용이 만든 배는 바퀴가 세 쌍이나 되었다.
“참으로 기묘한 물건이로군. 그나저나 앞바퀴의 폭이 조금 작은데 이는 어떻게 된 건가?”
“다른 두 바퀴는 방향을 조절할 수 없게 하였지만 맨 앞의 바퀴 한 쌍은 대역기봉을 축으로 삼은 더욱 큰 바퀴입니다. 그러니 이를 움직여 방향을 조절하게 만들었지요.”
도면을 찬찬히 뜯어보니 돛대를 조작하는 인원이 6명이고 총 승선 인원은 30명에 달하였다. 더군다나 짐을 적재할 공간도 충분해 보였다.
나대용은 자랑스럽게 이 사막 배의 성능을 설명하였다.
“돛대가 두 개에 돛이 도합 네 개가 있으니 어중간한 배보다 더 많은 바람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바퀴가 세 쌍이고 늑철(판스프링)을 하부에 두어 충격을 받아내게 하였지요. 그리고 짐 또한 더 많이 올릴 수 있습니다.”
“보통 이 크기의 수레는 짐을 석 돈(2.7톤) 정도만 올릴 수 있네만 더 많은 짐을 올린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소 여섯 마리가 달라붙어야 하는 수레일세.”
“설계상으로 다섯 돈(4.5톤) 정도는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바람이 얼마나 거셀지는 모르지만 지나치게 빠르면 돛을 조금 접으면 충분하지요. 아마 말이 뜀박질하는 속도(시속 20㎞)는 꾸준히 나올 겁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이야기긴 하지만 그 정도면 대단한 운반수단이다.
일하는 사람 한 명은 약 1㎏의 음식과 3리터의 물을 마시는데 결국 30명의 사람이 아무 보급 없이 이 배로 40일 가까이 움직일 수 있다.
더군다나 말은 엄연한 생물이라 하루 동안 150리, 약 60㎞를 움직이는데, 이 사막 배는 3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으니 낙타와 비교해도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이론상의 도면일 뿐이니 나대용도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였다.
“실제로 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조금 무리하여 보았습니다. 여기서 여러 형태를 만들어 속도와 크기를 세부적으로 조절해야 하지만 그 고된 작업을…….”
“자네가 해야지 어느 누가 하겠는가. 나는 뭍에서 멀쩡히 서 있는 건물에 통달할 뿐이지만 자네는 선박 설계에 있어서는 내가 보아온 어떤 사람보다 재능이 넘쳐난다네.”
처음에는 설계에 재주가 있는 내가 달라붙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자고로 관리자가 더 뛰어난 실무자를 내버려 두고 직접 일하는 경우가 있던가?
미주의 최종 관리직인 관찰사 직위이니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실무자에게 명령을 내리면 족하다.
물론 개척단과 함께 움직이며 일선 사항을 지시해야겠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고.
“제가 말입니까? 지금 업무도 제법 많은데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아닐세, 자네 방에 놓인 물건들만 보아도 선공감의 여느 관원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다루지 않는가. 더군다나 방 뒤를 보니 목재가 제법 쌓여 있는데 모두 이음을 연구한 목재들이로군.”
나대용의 표정이 창백해지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다 결국 장롱에 닿았고 흔들리는 장롱에서 선박 모형 하나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헝클어진 갓을 고쳐 쓴 나대용은 그제야 자신이 뭔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자네를 보면 젊은 시절에 내가 떠오를 지경이라네. 엄연한 관찰사와 관원의 사이이니 많은 것은 바라지 않겠네. 그저 젊은 시절에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열심히 일해주게나.”
“하지만 제 몸은 하나가 아닙니까?”
“그럼 두 배로 열심히 하면 되는 법이지. 그렇지 않아도 도성에서 데려온 목장(木匠)들은 경목조 주택을 대량으로 만들기 전에는 사소한 업무에 종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니 쓸모가 있겠군.”
나대용의 어깨를 토닥이며 열심히 일해보자고 중얼거리고 나왔는데 바닥에 걸터앉아 바로 도면을 그리는지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젊음은 좋아 저런 방식으로 일도 할 수 있으니까!
* * *
새 관찰사로 부임하고 세금을 다소 늘린다는 소식, 정확히는 기존에 감면되던 세금을 본래대로 되돌리겠다는 이야기를 하니 백성들이 제법 반발의 목소리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반발을 순식간에 사그라트리는 방법이 있었다.
“줄을 서게!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하는 명약은 한가득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미주에는 간혹 천연두가 돌아 관찰사를 비롯한 관원들이 골머리를 썩는 형편이었다. 조선에서 들어오는 천연두는 없지만 비위생적인 서양인들이 맥시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천연두를 옮기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임하면서 우두 접종을 실시하였고 백성들은 천연두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너 나 할 것 없이 감영 앞으로 몰려와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리고 선두에 선 허임은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였다.
“내가 왜국까지 나아가 이 약을 시험해 보았는데 이미 두창을 앓는 이도 닷새 내에 일어날 수 있으며 멀쩡한 사람도 평생토록 두창에 걸리지 않게 하는 명약이라네. 어서 팔을 내밀게.”
“약이 아니고 침도 맞습니까?”
“약만 먹으면 두창을 억누를 수없는 법이니 침까지 맞아야 하는데 제법 큰 대침이니 따끔할 걸세. 그리고 팔뚝에 힘주지 말게나.”
조식이 미주에 와서 감탄한 것이 입신체비를 너 나 할 것 없이 즐긴다는 점이라 하였다.
입신체비에는 충분한 단백질이 필요한데 이 땅은 지나치게 풍요로운 땅이라 마음대로 가축을 기를 수 있었다.
여기에 입신체비를 익힌 관원들의 도움을 얻어 기초적인 삼대운동을 즐길 수 있었고, 이는 풍요로운 식생활과 더불어 모든 백성들의 근육을 키우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그 근육이 화근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세상에! 힘을 빼라 하지 않았는가! 장침이 안에서 부러졌으니 이를 어쩌면 좋나. 당장 째야 하니 주정(알코올)을 가져오게.”
“이보세요! 잠깐! 오늘 의압(벤치프레스) 하는 날인데!”
우두 고름을 몸속으로 넣기 위해 흠집을 낸 장침이라 근육의 수축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백성들에게 먹이는 환약을 매만지자 의원이 귓속말을 건넸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영창과 두창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예자문집(성경)이라는 서책을 보니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었네. 의도가 좋으면 사소한 문제는 해결되는 법이니 그냥 영창 접종을 실시하게.”
아직 영창이니 두창이니 하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미주의 백성들이기에 약간 속임수를 썼다.
소화제로 쓰는 환약 여섯 알을 먹이고 진짜 면역력을 제공하는 우두 고름을 바른 침을 꿰는 방식이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약효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몸 곳곳에 여러 개의 부스럼이 생겨날 걸세. 하지만 그 부스럼이야말로 약효가 확실히 돌아다닌다는 증거이니 염려하지 말게.”
“관찰사께서 이런 좋은 약을 내리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 감사함은 머나먼 서쪽에 있는 주상전하께 절을 올려 표시하게나. 나는 그저 약을 가져온 사람일세.”
한번 좋은 점이 생겨나니 내 행적 모두를 좋게 보는 것 같았다. 한때 미주 관찰사로 부임하였던 조식이 평가하기로 성품이 유순하고 긍정적이나 번잡한 일을 즐기지 않는 이들이 미주의 사람들이라 하였다.
그 말대로 긍정적인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며칠 뒤 시장을 돌며 물가를 알아보려 하였는데 한 아낙네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인사를 올리고 자신의 사소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 남편이 군관이었는데 해가 중천에 뜰 때가 되면 군복으로 갈아입고 창이나 휘적거리며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관찰사 대감님께서 데려오신 장교분이 사람들을 매섭게 다뤄 날이 바짝 서 있더군요.”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나. 아국에서는 미주에 거주하는 이들이 둔하다는 소문이 많이 퍼져 있는데 이제는 아니게 되었으니 내가 기쁠 지경이군. 그나저나 지나치게 가깝지 않은가?”
“네? 뭐가 가깝다 하십니까?”
조선에서라면 서로 모르는 사람은 서로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지만 아낙네는 별생각도 없다는 듯이 반걸음 거리까지 다가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처럼 서로 멀찍이 떨어진 사람도 있고 아주 가까이 붙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말투도 조금 사투리가 섞여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니 답이 나왔다.
“혹여나 미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가?”
“삼 대째 이 고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조부님께서 미주에서 태어나신 분이시니 당연한 일입니다. 증조부님께서는 한보 대감님 댁의 머슴이라 하였는데 여기 정착했다 하더군요.”
“과연. 미주의 풍속이 점차 아국과 달라진다 하였는데 이유가 있었군.”
같은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옷을 입고 있으며 같은 문화권에 속하지만 조선이 북미를 개척한 지 백 년 가까이 지나서 점차 문화가 틀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니 조식의 말이 계속 떠오르며 쓴웃음이 나왔다.
“하긴 내 빙장어른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조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였지만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의 생활도 달라지는 법이야. 전체적으로 개방적인 사람들이 되었군.”
“네? 개방적이요? 한양이라는 데에서는 대체 어떻게 합니까?”
“그야 높은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두 걸음 뒤에서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네. 하지만 그런 당당한 모습도 좋으니 무례한 일은 아닐세.”
“제가 법도도 뭐도 모르는지라 참으로 무례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아낙이 자신이 실례를 저질렀다 생각하며 얼굴을 붉히고 사과하였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미주라는 땅을 개척하고 백 년이 지난 상황이다.
머나먼 미주까지 왔는데 머슴 출신이건 방면된 노비 출신이건 고려시대 뿌리 깊은 호족의 후예이건 서로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였으니 격식을 따지지 않고 개방적이지.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어서 자료를 하나 가져다 달라 하였다.
“여기서 향시에 합격한 이들의 명단과 그 수효를 기록한 장부를 챙겨오게.”
“네? 향시는 아직 일 년 가까이 시일이 남아있는데요?”
“군말할 필요 없으니 빨리 가져와 주게나. 이런 세상에, 서류가 뭐 이리 적은가?”
예전에 장인어른인 조식과 나눴던 대화가 있었다. 미주의 사람들은 거리낌이 없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지만 학문에 능통하지 않고 번잡한 일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북미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인 금주에도 양반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형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향시 응시자 자체가 적었다.
“사람이 육만 명이나 있는데 향시 응시자 이백 명을 채우지도 못한다고?”
대충 50년 전에 나온 향시 결과는 참 막막할 지경이었다.
응시정원 200명에 응시자 109명, 그리고 합격자는 20명인데 대다수가 조선 기준으로는 부모가 욕을 먹을 수준의 답안이었다.
“와 답안 봐라 세상에. 향시 응시하려면 사서삼경을 달달 외워야 하는데 가장 기초인 대학(大學)조차도 제대로 못 외운 답안이 합격자라고? 정원 20명에 이런 놈이 끼어들어? 그리고 향시는 봐놓고 도성으로 올라와서 초시를 안 봐?”
개판으로 답을 써 놓고 합격한 사람이지만 도성으로 오지도 않았다. 20명의 합격자 가운데 4명만 도성으로 올라와 시험을 보았고, 나머지 16명은 그냥 향시 합격만 하고 놀아버린 것이다.
조식이 부임하여 제법 힘을 썼는지 응시자가 200명에 근접하였고 답안의 수준도 조금씩 높아졌다. 심지어 조식은 채점조차 까다롭게 하였는지 합격자도 8명에 불과하고 죄다 향시의 기준을 맞춘 합격자였다.
그나마 송한필이 조금 더 힘을 썼지만 그게 전부다.
“이래서는 곤란한데. 과거제도가 실무능력이 아닌 인적성과 어휘력 및 기초 지식 유무를 판단하는 시험이지만 내가 믿고 쓸 인재가 없다면 어떻게 하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는데 참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미주의 인구가 꽤 되니 단순한 노동력이야 언제든지 쓸 수 있다 생각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중간관리직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이들의 성품을 고려해 볼 때 조선에서 악착같이 관직에 오른 사람이 미주인을 다룬다면 마찰이 생기기 쉬웠다.
참 답답한 와중이지만 생각해 보니 이 땅에도 실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어서 나라가 제 꼴로 돌아가리라.
“그래, 현대에서도 경력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경력직 채용을 할 때 실무 능력을 우선으로 판단하고 이후 인성 검사로 걸러내지! 그럼 나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내가 비록 관직을 내릴 권한은 없지만 사람을 뽑아 다룰 권한 정도는 있다.
그렇다면 규정을 좀 변경해서 업무에 능통한 실무자를 뽑고 이후 사서삼경을 주입하면 주면 충분하리라.
“애초에 기본적인 근육이 있는 사람들이니 근면육연화기억술로 사서삼경을 강제 주입하면 효과도 좋을 거고. 아무나 삼대운동을 하는 땅이 여기 말고 어디에 있겠어?”
“네? 아무나 삼대운동을 하는 땅이라 하셨습니까? 서애 대감께서는 대체 뭔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제가 시망(나대용의 자) 그 친구의 방에 다녀왔는데 오한이 다 돋을 지경입니다.”
아직도 불이 꺼질 줄 모르는 나대용의 방에서 돌아온 송한필은 내 표정을 보며 겁에 질렸지만 학문에 능통한 송한필이 꼭 끼어들어야 할 일이 있었다.
어차피 신주랑이 돌아오려면 몇 달은 걸릴 테니 그동안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 보자.
“미주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할 거요. 관원을 선발할 권한은 없지만 이를테면 공무(公務)원을 선발하는 시험이라 하면 되겠지.”
“그걸 왜 하필 저와 함께 만들려 하십니까! 낮에는 업무를 인계하고 밤에는 시험 문제를 만들다니요! 그게 사람이 할 일입니까?”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니 크게 염려하지는 마시구려. 정 여의치 않으면 업무는 알아서 터득할 거요.”
각 관청의 보고서는 물론이요 업무를 망라한 서적을 가져와 계속 쌓아대자 송한필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보다는 일종의 기술 자격증 시험에 가까우니 모든 업무를 분류하고 각 분야에 맞춘 시험을 준비해야 하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아 있으면 제대로 된 개척을 할 수 없다.
내년쯤 시행될 새로운 개념의 시험. 공무원 고시(考試)라는 향시와의 다른 개념의 시험을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조선의 과거시험이 가지는 한계는 인적성과 어휘능력 검사 이후 실무 능력 평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시대 기준으로는 제법 괜찮은 인재 선별 방식이지만 간혹 인적성과 어휘를 통과하고 실무능력이 비참한 사람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인 성룡이 덕분에 관직에 오르지 못하여도 일단 정식 관원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공무원 시험이 생겨나게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