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91화 (491/573)

근육조선 491화

2부 26장 2화 좋은 부하들

할 일이 정해졌으니 바로 움직이기로 하였다. 사실 미주 관찰사로 부임한 사람이 대부분 할 일이 없기는 한 것이 이 땅에서는 세금을 거두어보았자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미곡을 보내봤자 바닷바람에 삭아버리고 선창에서 바닷물을 머금어 절반 이상이 손상된다. 결국 시장을 열어 거기서 세금을 걷고 각종 광산을 개발하여 조정에 일정 수준의 공납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일단 개척단이 먹을 미곡을 준비하려면 세율을 올릴 필요성이 있다네. 지금은 농민들에게 일 할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이를 일 할 오 푼으로 올릴 것이네. 애초에 이 일대의 세율이 이 할이었나?”

처음에는 이 할로 시작했지만 굳이 곡식을 쌓아둘 필요가 없어서 줄였다 하던가.

송한필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래도 규정은 억지로 지켰다는 듯이 시선을 탁자로 내리며 답하였다.

“이 할을 거둬가고 일 할을 잔치를 열어 좋은 음식을 먹이거나 아예 소주를 대량으로 증류해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원성이 커질 텐데 이를 어떻게 무마하시겠습니까?”

“조정에 장계를 올려 다음 배편으로 당밀주를 잔뜩 가져오게 하세나. 어차피 주세(酒稅)가 부과되어 판매량이 줄어든 당밀주가 여송 일대에 지천으로 쌓여 있을 걸세. 소주를 우려낼 곡식을 비축하고 당밀주를 돌려주면 될 걸세.”

미국에도 사탕수수를 재배하지만 필리핀처럼 럼주를 대량으로 만드는 거대 농장은 없다더라.

어차피 소주를 마시나 럼주를 마시나 알코올은 다 같은 해악을 불러오니 큰 문제는 없겠지.

송한필도 큰 문제는 없다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나를 따라서 미주에 배속된 군관이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재능 하나는 검증된 사람들이었다.

“백기(伯起: 배흥립의 자) 그리고 무백(茂白: 이회의 자) 자네들은 기강이 해이해진 병졸들을 엄중히 다스리게. 내 금주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것인데 미주의 병졸들은 하나같이 기강이 흐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네. 이를 규정대로 다스리게나.”

내가 높은 사람이 되었다고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다. 변방으로 갈수록 중앙과 멀어지게 마련이지만 군대는 반대로 중앙의 지원을 받지 못하니 최소한 전투태세만큼은 잘 갖춰야 한다.

하지만 알카트라즈 섬, 이 시대에는 금각도(今閣)라 불리는 섬에 있던 수군들은 우리가 접근하여도 느릿느릿 대응하였으니 여기에 해적선 열 척 정도가 기습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으리라.

먼저 수군에 속한 이회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답하였다.

“제가 비록 수군의 장교이지만 초병이 천리경을 들어 항시 바다를 주시해야 하는데 선단의 돛대는 물론이요, 선체가 보일 지경이 되어서야 대응하다니 이는 한심한 작태가 아닙니까.”

“자네 부친께서 이 광경을 보았다면 공좌로 벌을 내리지도 않고 바로 하옥하여 형무소로 보내 버렸을 것이라네. 자고로 큰일을 하기 전에 집안부터 다스려야 하는 법이 아닌가.”

“저 또한 절실히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관찰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북방 병졸들의 군율을 적용하여 엄중하게 다스리겠습니다.”

둘 다 내가 엄선한 무관들이니 문제는 없겠지. 배흥립은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 북방에서 근무하던 무관이었는데 지난 왜변에서 북방에 근무하느라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자이다.

하지만 선천적 무골이라 훈영제식법만 익힌 무인이 삼대운동 900근을 달성할 정도로 온몸에 근육이 넘쳐났다.

임차손보다는 좀 부족하지만 이 친구도 무골로는 손색이 없으니까.

그리고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회는 이순신의 장남이다. 이순신 기준으로는 아직 멀었다 하는데 이순신의 기준이니까 보통 사람이 아니겠지.

하지만 병사의 수는 부족하니 여기에 추가를 좀 해야겠다.

“또한 미주인(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지만 반발을 일삼는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니 백성들을 속오군(束伍軍)이라는 제도로 묶을 것이네.”

“참으로 옳으신 방침입니다. 변란이 일어났을 때 왜인들이 아국에서 그토록 고생한 이유가 백성들이 한 몸이 되어 대응한 덕분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들이 쓸 무기가 문제로군요.”

“보총을 찍어낼수록 기준에 미달한 보총 덕분에 장총통이 넘쳐나는 법이니 변란이 끝난 이후엔 장총통이 남아날 지경이 아닌가. 장총통을 가르칠 이들도 조만간 아국에서 건너올 걸세.”

천주교의 전례가 허용된 이후 불교계를 달래기 위해 미주에 스님들이 오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왜변에서 상당수의 스님들이 장총통을 들고 싸운 적이 있었다.

이들이 불교도 가르치겠지만 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던 이들이니 사용법 하나만큼은 충실하게 가르쳐 주겠지. 이쯤 되면 부유한 미주의 상황과 맞물려 아무나 총을 쏘아댈지도 몰랐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다.

다음으로는 내의원에서 파견된 허엽의 차례였다.

“듣자 하니 영창(우두)의 고름은 최소한 석 달이 지나도 병을 옮길 수 있다 들었네. 미리 준비한 영창 환자의 고름을 서둘러 백성들에게 퍼트려 두창이 퍼지지 않도록 하게나.”

조선이 발견한 우두는 가장 효과적인 외교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다.

특히 천연두 내성이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해서 내가 조선에서부터 준비한 방법도 있었고, 허엽은 이미 수천 명에게 우두를 접종한 사람이기에 믿을 수 있는 의원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호인(호주 원주민)들이나 북인들과 같은 체질인 미주인에게 영창을 퍼트려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품에 넣어둔 이 물건이 두려워 잠을 설칠 지경입니다.”

“그건 가장 나중에 쓸 물건이니 가만히 넣어 두게나. 애초에 윤가놈의 악행에 호되게 당한 미주인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네.”

허엽이 가져온 물건은 일본에서 입수한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한지에 발라 굳힌 녀석이었다. 혹여나 퍼져 나가지 않도록 종이를 작은 유리병 안에 넣고 다시 도자기에 넣어 밀랍까지 발라서 절대 새어나가지 않게 꽁꽁 싸맨 녀석이지.

천연두건 우두건 공통점이 있으니 그건 환자의 체액이 몇 달 이상 보관되어 있어도 전염성을 가진다는 거다.

하지만 그 기간까지는 몰랐기에 허엽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하지만 두창을 담은 고름이 완전히 삭아버린다면 그것도 문제로군. 혹여나 그 고름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알고 있는가?”

“전에 천축의 의서를 본 적이 있는데 천축의 수묘법은 삼 년 동안 땅에 묻어둔 고름을 콧속에 넣는다 하더군요. 그러니 제가 보관한 두창의 고름도 여섯 달 이상은 버틸 겁니다.”

빨리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싶어 시선을 여기저기 돌리던 신주랑이지만 허엽이 소매에서 밀랍 덩어리를 꺼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신주랑도 할 일이 있었다.

신주랑이야 내 부관이기도 하지만 품계가 정3품 당상관이다. 먼바다 건너의 조선 조정에서 저런 높은 품계를 얻었으니 미주인들의 우상이 되었으리라.

허엽의 이야기도 끝났으니 다음은 외교 문제로 넘어갔다.

“혹여나 두창이 새어 나올지 모르니 다시 가죽으로 감싸 땅속에 묻어두게나. 그나저나 창산(蒼山: 신주랑의 호) 자네 부친께서는 노환이 깊으실 뿐 아직 살아 계신다고 들었는데.”

“제 선자(先慈: 돌아가신 어머니의 높임말)께서도 조부모께서도 역적 윤가놈의 난행으로 돌아가셨지만 부친께서는 돌아가시지 아니하셨습니다. 다만 일전에 서신을 받으니 노환이 깊어져 농사 추장에서 물러나셨다 들었지요.”

“농사 추장이라면 아국으로 따질 적에는 농조에 속한 이가 아닌가. 비록 나라와 한 부족을 같게 볼 수는 없지만 영향력이 지대한 명사(名士)로군.”

“제가 속한 마이두족이 윤가놈이 퍼트린 두창은 물론이요, 마진(痲疹: 홍역)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니 두 병을 모두 극복하신 부친께서는 외교 추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분이시지요.”

신주랑 아버지의 존함(尊銜)이 구르는 독수리, 조선식으로는 전조(轉雕)라 하던가. 구르는 독수리건 일하는 개미건 상관없으니 신주랑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자네는 당장 부친께 나아가 그동안 행하지 못한 효도를 충실히 하게나. 또한 마이두족에 속한 부족장들과 주변 부족들에게서 사절을 소집하여 금주에서 회견을 열 준비를 하게.”

“관찰사께서 명하신 바를 충실히 시행하겠습니다!”

“자네가 많은 사람을 불러올수록 두창을 막아낼 영창을 더욱 넓게 퍼트릴 수 있다네. 그러니 이를 항상 명심하고 가급적 많은 사절들을 불러오게나.”

외교적 문제도 끝났고 당분간 내릴 지시사항은 모두 끝났다. 창문 틈새로 불어온 바람에 마침내 탁자 아래로 떨어진 선박 모형을 다시 집어 들고 나도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그럼 나는 이 도본(도면)을 작성한 사람으로서 사막 배를 만들 방법을 모색하겠네.”

금주에는 엄연한 항구도 있었고 미국을 오가는 수많은 선박들이 수리와 보수작업에 몰두하며 간혹 새로 만들어지는 배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미주로 좌천된 이는 내가 현대부터 알고 있던 위인이었다.

톱밥냄새와 먹물냄새가 진동하는 방 안에 들어가니 한 관원이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였다.

헛기침을 하니 그제야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얼굴을 뜯어보다 크게 인사를 올렸다.

“관찰사 대감을 뵙습니다! 저는 금성 나 씨의 일원인 시망(時望)이라 합니다. 호는 체암(遞菴)이며 이름은 대용이지요. 부족하지만 금주 조선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내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이 있었다네. 전함사에 군기시 출신인 젊은 기인(奇人) 한 명이 있는데 온갖 목업(木業: 나무 모형)을 만들고 다듬으며 급기야 사고를 일으켰다고.”

“당시의 일을 떠올리니 부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용골을 조립하여 사용하면 값싸고 좋은 배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물 위에 올리니 대번에 쪼개져 버리더군요.”

나대용은 나도 아는 사람이긴 하다. 휴가를 즐기는 와중에 사고 소식을 들었는데 군기시의 괴짜가 용골을 조립하여 사용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고 급기야 400돈(360톤) 크기의 배를 시험하였다고.

하지만 직선 항해는 잘되던 배라 내구성 시험을 위해 좌우로 격렬하게 회전을 거듭하니 용골의 이음이 풀려나서 침몰해 버려 선원들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하더라.

나대용도 당시의 일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그나마 수군에 속한 이들이 이십 리(8㎞)를 자맥질로 움직일 수 있어서 죽은 사람은 없지만 이후로 단단히 찍혀서 미주로 발령되기를 자처하였습니다.”

“자헌(子獻: 김지의 호) 어르신이 젊은 시절 벌인 행적과 흡사하군. 그분도 젊은 시절에 사고를 제법 일으키시다가 급기야 손이 상하였다네. 그래도 사람이 죽지 않아 다행일세.”

소문만 들었을 때에는 김지와 비슷한 부류라 생각했는데 이 친구도 선박 하나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괴짜 중의 괴짜이다. 본래 역사에서 거북선 개발을 주도했다 하는데 여기서도 배에 미쳐 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대용의 책상 위를 보니 예전에 전함사에 임시로 근무했던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다채로운 모형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개중 참 길기만 한 배가 있어서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 배는 꽁치처럼 아주 가늘고 날렵한 배로군. 배율로 보건대 길이는 대장선과 맞먹는 일백팔십 자에 폭은 순방선과 흡사한 스물다섯 자에 불과해. 이런 배를 왜 설계했는가?”

“어디까지나 이론이긴 합니다만 배의 종횡비(縱橫比: 길이와 폭의 비율)가 가늘어질수록 물살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더 많은 돛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사용하는 배 보다 두 배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폭이 좁으니 짐을 얼마 올릴 수 없지 않은가. 보아하니 배수량이 잘 해봤자 오백 돈(450톤)에 불과할 것 같군. 두 배 빠르게 움직이고 절반의 짐을 적재한다니. 더군다나 돛이 많으면 선원도 많이 필요한데 이들의 식량도 문제일세.”

“하지만 서신을 전할 때는 물론이고 낙타나 양타(알파카)같이 물 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짐승을 옮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배를 여러 척 만들어서 시험을 해야지요.”

김지도 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화포를 찍어내려다 주상전하께 제지를 당했는데 나대용도 같은 부류였다. 나대용의 말에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 예산이었다.

지금 나대용이 시험하고 있는 꽁치 같은 배는 길이가 아주 길다. 즉 용골과 돛을 비롯한 부재를 대장선에 준하는 크기로 구해야 하는데 배 예산의 절반은 이 두 부재가 잡아먹는다.

즉 이 배는 속도를 담보로 삼아 돈 잡아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인 배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조선에서 쓰이는 각종 목재 이음 방식에 대한 시험도 병행하고 있었다.

“아직도 조립식 용골에 매달려 있는가. 하긴 대장선을 넘어서는 거대한 선박을 만들려면 언젠가는 조립식 용골을 사용해야겠지. 대장선에 쓰일 용골용 재목은 여송(필리핀)에서도 구하기 힘든 형편이라네.”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습니다. 시험해볼 수 있는 이음을 모조리 시험해 보았는데 일전에 실패하였던 맞짜임(전통건축에서 기둥을 조립하는데 쓰는 이음)보다 나은 이음이 없습니다.”

“맞짜임도 실패하였다고? 맞짜임에 쇠나 구리로 촉을 대고 맞추면 가장 강한 이음인데.”

나도 한옥에 관해서는 잘 알고 현대에서 한옥을 설계할 때 아예 상세 도면까지 첨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옥은 물론이요, 조선에서 쓰이는 가장 강력한 이음법도 소용이 없을 줄은 몰랐네.

나대용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여기에 철판을 대고 튼튼한 소라못(나사)을 박아 더욱 강하게 만들었지만 목재가 뒤틀리는 것을 막을 수 없더군요. 이래서야 제 살아생전에 조립용골만 알아볼 것 같습니다.”

“그럼 방법은 하나로군. 다른 나라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답일세. 구주에는 서반아를 제외하고도 다른 나라도 여럿 있지.”

“다른 나라라 하셨습니까? 대감께서 어떤 나라를 염두에 두시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영길리라네. 영길리는 섬나라인지라 큰 배를 만들 재목을 구하기 힘들다 들었네. 하지만 그런 섬에서도 커다란 배를 만들어 바다 위를 떠다니니 아마 그들 나름대로 용골을 조립할 방법을 마련해 두었을 걸세.”

이쯤 되면 알아서 해결책을 찾겠지. 조만간 호주에서 이 머나먼 금주까지 다녀올 영국 사람을 찾아야 하겠지만 그건 나대용이 알아서 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나대용에게 진짜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여기까지 내가 찾아온 이유는 배를 만들기 위해서라네. 엄연히 따지면 뭍에서 움직이는 배이기도 하고 마차와 닮아있기도 하지만 자네가 보기엔 어떠한가?”

책상 위에서 바람을 받아 굴러가는 사막 배 모형을 보자 나대용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그 구조를 판단하였다. 그러더니 이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이대로 만들면 화사첨족(사족, 뱀 그림에 발을 그리다)과 마찬가지이며 뱀의 눈이 없는 꼴입니다. 당장 도본부터 시작하여 모조리 뜯어 고쳐봅시다.”

관찰사가 만든 작품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참 대단한 기술자가 맞는 것 같다.

나대용은 아예 잘 깎아둔 연필 여러 자루를 가져오더니 내가 만든 설계안을 마구 변경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1592년 기준 미국 지도를 첨부했습니다. ???는 작품을 읽어본 분이면 다 아실 그 사람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