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90화
2부 26장 1화 당도(當到)
다테 마사무네가 개설한 북해도의 항구에서 마침내 조선의 북미 개척 선단이 출발하였다.
다테는 이번 사업으로 이득을 빨아먹기로 작정하였는지 우리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모든 물자를 대려고 혈안이 되었다.
“조선의 함선은 언제 보아도 담대하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나저나 이 배가 언제쯤 돌아옵니까? 저희가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 보급 준비까지 하겠습니다.”
“이 배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소이다. 항로가 편도 항로이다 보니 여기서 출발하고 돌아오는 길은 여송 일대로 정했으니 괜한 준비는 하지 마시오.”
“그게 말이나 됩니까? 회항(回航)을 하지 않는다니요?”
항구 관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게 현실인데 뭘 어쩌겠는가. 일본에서 팔 수 있는 물자는 식량과 신선한 물이 전부인데 이걸로는 손해는 안 봐도 큰 이득은 없을 거다.
내 휘하에 배치된 미주 개척단의 인원은 함선 20척과 병사 1,000명 그리고 각종 장인 및 전문 업무를 수행 가능한 인원 500명으로 시작하였다.
얼핏 보면 매우 적어 보이지만 이유가 다 있었으니 미주의 현 상황 덕분이다.
“미주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인 금주(今州: 샌프란시스코 일대)에는 이미 사천 호에 달하는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 이주민이 조금 늘어난 덕분이지요.”
“회주(回州: 밴쿠버 일대)와 강주(康州: 샌디에고) 일대에 백성들이 제법 늘어났다 하였네. 하긴 미주에 이주한 이들은 자식을 다섯 명씩 낳을 정도로 편안히 살고 있다 하였지.”
미국 서해안은 이미 육십여 년 전부터 개척이 시작되어 제법 많은 이들이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한 해 오백 명 단위로 이주하였지만 기본적인 인구 증가율도 매우 빨랐다.
개척하는 땅마다 비옥한 지역이며 미곡을 세금으로 거두어보았자 쓸 방법이 없기에 사실상 방임주의 정책을 표방하는 지역이니 당연히 인구 증가율이 월등하였다.
지난 호적조사 보고서를 보면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을 추산하니 상상외로 많았다.
“호주의 개척은 순수하게 아국에서 보낸 인력만으로 해결해야 했지만 미주는 아닐세. 미주 전체에 일만 호, 순수한 사람 수로 치면 육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내가 다룰 수 있는 인력이 최소 오천 명이나 된다네.”
“실로 그러합니다. 저야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상세한 상황은 몰랐지만 파견된 관찰사가 십 년마다 호적을 갱신하면 조정에서 놀라워할 지경이라 하더군요.”
내 부관인 경력(經歷: 종4품 관직)으로 임명된 이는 신주랑이었다. 노환으로 자리에 누운 부친을 만난다는 이유도 있었고 애초에 신주랑 본인도 능력을 월등히 쌓아 올린 사람이다.
신주랑의 가장 큰 능력은 산학(算學)과 천문이다. 출발하기 전 이리저리 물어보았는데 내가 여러 업무에 종사하는 동안 한 업무만 파서 대성(大成)하였더라.
하지만 이어지던 생각이 절박한 외침에 끊겨 버렸다.
“유빙이 온다! 배를 돌려라! 관찰사님 뭔가를 꽉 붙잡고 계십시오!”
유럽도 다녀와 본 사람이라 우습게 생각했는데 북해도에서 출발하는 항로는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북방이다 보니 파도도 거칠고 음력 3월인데 선체 측면에 조그마한 정자(亭子) 크기의 유빙이 충돌해 배가 기우뚱거렸다.
“이런 세상에! 유빙이 이렇게 많다니! 선체에는 문제가 없는가?”
“판재가 조금 부서졌지만 워낙 튼튼하게 만든 함선이라 버텨냈습니다. 혹여나 판재가 무너져도 보수를 진행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물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지 선원들이 내가 유럽에서 들여온 수동식 펌프를 마구 움직이며 물을 뽑아냈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선체를 보니 불안해서 괜히 선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유빙이 많아서 어찌하겠는가. 어중간한 소선은 대번에 박살 나겠는걸.”
“더 북쪽인 율도 인근으로 나아가면 파도가 집채만 하고 유빙이 바다보다 많으니 이런 배도 단번에 박살 나버리지요. 이십 년 전에는 그런 바다에서 마구 움직이던 작은 배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게 유령선인가 하는 겁니까?”
이순신이 원균의 남획 때문에 먼바다로 도망친 스텔라 해우를 잡겠다고 항해하던 것을 다른 배에서 목격하고 기겁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 묘기는 이순신이 아니면 부릴 수 없으니 잠자코 계획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거의 20일 동안 거센 파도에 시달리고 잠시 회주에 들러 보급을 마친 선단은, 마침내 항해 시작 36일 만인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3일 조선의 미주 거점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난생처음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에는 현대적인 풍경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거대한 현수교가 있어야 할 금문교 인근에는 상어를 손질하는 어부들이 즐비하였고 영화에도 나왔던 알카트라즈 섬은 수군이 위치한 병영이 존재했다.
“여기가 서애 대감께서 머무르실 금주입니다. 제 고향이기도 하며 수많은 이들이 머무르는 터전이지요. 땅이 워낙 넓어서 사람들이 모여 살지는 않습니다만.”
“금주(今州)라는 말이 아까운 고장일세. 이쯤 되면 금(金)과 견줄 수 있는 땅이 아니던가.”
농가의 풍경마저도 달랐다. 땅이 넘쳐날 정도로 많으니 너 나 할 것 없이 가장 좋은 땅만 택해서 먹고 살 정도로 개척한 상황이고 주변에는 한가로이 소가 풀을 뜯고 놀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신주랑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하였다.
“제가 고향을 떠나고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스승님의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향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금문교 일대를 통과한 선단이 남쪽과 북쪽에 있는 만을 한 바퀴 돌고 정박하였다. 수많은 이들이 어느새 선단에 다가와 환영 인사를 올렸으며 그 앞에는 전임자가 있었다.
“새로운 관찰사로 서애 대감께서 오셨다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평소보다 선박이 많으니 드디어 주상전하께서 미주 개척을 실시하기로 마음을 정하셨군요.”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충실히 따르는 수밖에 없지. 운곡(雲谷: 송한필의 호) 자네도 지금까지 고생이 많았는데 어서 감영으로 안내해 주시구려. 그나저나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금주가 다 좋은 고장인데 하나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사람과 땅의 크기에 비해 철이 나지 않는 고장이지요. 덕분에 아국에서 배가 도착하면 선창에 둔 철물을 사들이려 합니다.”
선창에 있는 철은 기본적으로 스며든 바닷물에 의해 녹이 올라와 있는데 미주에 거주하는 이들은 거칠 것이 없이 움직였다.
심지어 손톱만 한 금덩이를 내밀며 다 녹슬어 버린 공령(플레이트)을 가져가는 행동까지 벌였다.
“일대에는 구리와 금이 흔하고 철이 귀하니 참 얄궂은 광경이 아닙니까. 이제 선창에 구리 광석을 올리는 작업을 마치면 충분하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 모든 물산 가운데 아국에서 가장 흔한 철이 부족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래도 아예 철이 없는 상황은 아니겠지.”
“최근에 철광산을 찾았지만 쇠로 만든 기구를 사용해 땅을 파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 년 정도면 풍부한 철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일 년 정도가 필요하면 잘 되었다. 업무 인수인계도 마치고 내가 개척 작업에 몰두할 동안 업무를 진행할 대행자도 선발해야 하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건을 미국에 풀어놓을 차례이다.
“개척에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니 잘 되었군. 그나저나 미주에 두창이 또 번졌다는 소식이 있는데 어떻게든 두창을 억누를 수는 있었는가?”
“그놈의 서반아 사람이 한 번 오가면 두창이 들불처럼 번지니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석감으로 몸을 씻지도 않고 더러운 육신을 들이대니 온갖 질병이 번지는 형편이지요.”
“이제는 염려하지 마시오. 내의원에 있는 구암(龜巖: 허준의 호) 대감이 두창을 억누를 수 있는 약…… 아니, 질병을 만들어냈으니 이를 미주에 퍼트리면 될 거네.”
질병을 퍼트린다는 말에 송한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지만 그 질병이 천연두를 막을 우두이니 별문제는 없겠지.
일단 감영으로 향했는데 나를 맞이하기 위한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금주 일대는 물산이 넘쳐나는 곳이라 해안을 한 번 다녀와도 지천에 널린 해산물을 마음대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국이 발을 들인 지 거의 백 년이 다 되어가니 씨알이 많이 줄었지만…….”
“이게 씨알이 줄어들었다 하였나? 이게 굴이란 말인가?”
탁자 위에는 소박한 나무 접시 위에 주먹 두 개 크기의 시커먼 덩어리가 있었는데 하인이 와서 망치로 내리찍고 뚜껑을 여니 손바닥 크기의 굴이 뽀얀 속살을 드러냈다.
하지만 요리가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조선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팔뚝 크기의 닭새우가 대충 썰려서 볶아진 채로 튀어나왔으며 머리통만 한 게로 담근 게장은 내 상식을 초월한 물건이었다. 예전에 미국 관련 잡담을 들을 때 전혀 공감하지 못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쯤 되면 노비들도 닭새우에 질려 더는 먹이지 말라 하소연을 하겠군.”
“어떻게 아셨습니까? 비록 노비는 없지만 형벌을 대신해 노역을 실시하는 이들의 식사에는 하루 한 번 넘게 닭새우를 내놓지 않도록 법을 정해놓은 상황입니다.”
조선에서는 값비싼 소주가 지천에 널려 있다. 비옥한 토지로 인해 작황이 좋아도 너무 좋으니 탁주를 마시다 배가 터질 지경이 되어 소주를 증류했으리라.
그리고 비지찌개의 맛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이유가 다 있었다.
“비지찌개도 보통 물건이 아니지요? 아국에서는 비지를 두부를 걸러낸 이후 찌꺼기로 만드는데 여기서는 그냥 콩을 갈아서 만듭니다. 이게 다 미주에 온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미주에서는 지나가던 개도 돼지 꼬리를 물고 있다 하였는데 다 이유가 있구려.”
지금까지 너무 먼 거리로 돌아가야 해서 개척하지 못했던 미주이지만 소문을 퍼트리면 너 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
잔치 대접도 끝나고 차를 마시며 속을 달랠 무렵 이번 개척의 핵심 사안을 논의하였다.
“주상전하께서 명하시기를 내가 사력을 다하여 미주를 개척하면 족하다 하였지. 그럼 사력을 다하여 개척한다면 어디까지 행할 작정 같은가?”
“아마 미주의 머나먼 끝까지 개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하! 이거 제가 농담을 너무 과하게 한 모양이군요. 솔직히 말해서 서애대감께서 아무리 노력하셔도 금주의 서쪽에는 산맥이 있고 다시 사막이 있으며 이를 넘어가도 더욱 거대한 산맥이 있습니다.”
머나먼 끝까지 개척은 30년 주면 할 수 있는데 내 임기가 5년에 불과하니 못 하지.
하지만 나는 펠리페 2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당시 반쯤 말장난을 치며 조선의 영토를 확 늘려 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희에겐 농토가 필요하니 유역을 하나 더 끼어야겠지요. 콜로라도에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 명확히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강으로 정하겠습니다. 거기까지라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펠리페 2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였고 조선과 스페인 간의 영토 협약 서류에는 다음과 같은 내역이 첨부되었다.
이미 두 국가 수뇌부의 인증을 받은 서류이니 효력은 보증한 녀석이다.
[조선의 영토는 콜로라도 산맥에서 동쪽으로 위치하여 있으며 명확한 경계가 보장된 강이다.]
이를 조선 측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콜로라도 산맥 동쪽에 있는 땅에 도시 하나 만들고 알을 박을 것이니 여기까지 우리 땅이다! 그리고 그 실행자는 나이며 내가 원하는 땅은 텍사스이다.
아직도 웃고 있는 송한필을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주 먼 동쪽에는 미주대하(미시시피 강)라 하는 강이 있다 들었네. 장강과 견줄 수 있는 비범한 강인데 그 강까지 아국의 영토를 확장할 계획일세.”
“지금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동쪽으로 개척을 실시하되 단순한 개척이 아니라…….”
“산맥을 넘고 사막을 건너 다시 산맥을 건넌다 하였네. 엄연히 따지면 대사산맥(大沙山脈: 시애라-네바다 산맥)을 우회하고 심곡산맥(深谷: 로키 산맥)의 남부로 돌아가는 여정이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하던 이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으며 경악하였고 송한필은 아예 탁자를 내리치며 말하였다. 직위는 같아도 품계는 두 품계 이상 차이가 나지만 그만큼 놀랐다는 증거이다.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여정입니까? 거기까지 탐험대가 몇 번에 걸쳐 조사를 실시하여 지도가 대략 완성되었지만 적게 잡아도 사천 리(1,600㎞)가 넘는 거리입니다!”
“내가 목표로 삼은 거리를 감안하면 칠천 리(2,800㎞)가 될 수도 있지.”
“이는 불가합니다. 비록 호주의 험한 사막을 개척하였다 하지만 호주는 엄연한 섬이고 사방에서 해안을 통해 보급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송한필을 시작으로 관리들이 개척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타당한 의견들이 많기는 했다.
사막에서 제법 쓸 만한 인력인 몽골 개척단이 미주까지는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주 당연한 이야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낙타입니다. 대감께서도 아시다시피 낙타는 사막에서 무엇보다 유용한 짐승이지만 습기가 심한 곳에 머물면 한 달을 버티지도 못하고 죽어 나갑니다. 호주야 회회인(回回人: 아랍인)에게 강탈한 낙타를 쓰지만 여기는 아니지요.”
“익히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낙타와 흡사한 생물인 양타(羊駝: 알파카)가 바다를 건너다 떼죽음을 당하여 아국에서 기르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
“결국 사람의 힘으로 그 거대한 사막을 개척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개척이 아니고 이동 경로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나 자칫 잘못하면 사막에서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현실적 문제를 논하는데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훗날 경신대기근이나 을병대기근이 터지면 사람을 한반도에서 빼내서 개척지에 밀어 넣어 기근으로 죽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고 돌아오는 길에 곡물을 들여와야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되면 대만도 인구가 어느 정도 차서 사람을 많이 보내지 못할 것이요, 필리핀은 열대이니 부양 인구에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호주는 대부분이 사막이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미시시피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해서 사람이 수십만 명이 오더라도 남아도는 땅을 미리 점거해 두면 경신대기근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까.
다들 어느 정도 열기가 식을 때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의견은 잘 들었네. 하지만 이 거대한 미주(迷洲)에서 기껏해야 서쪽의 변방인 회주와 금주, 그리고 강주 세 귀퉁이를 차지한다면 훗날 동쪽에서 밀려오는 구주의 세력들이 뭐라 보겠나?”
“그야 미주의 땅은 드넓으니 알아서 자제하지 않겠습니까. 그들 입장에서 사막과 산맥을 넘는 것은 참으로 험난한 일임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들은 천명(天命)을 제창하며 아국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할 거요. 듣자 하니 미주의 중부는 강과 평원이 어우러져 비옥하기가 이를 데 없다 하였는데 그런 거점을 두고 몰려오는 구주인을 어찌 막아낼 수 있겠나.”
“구주인들이 천명을 제창한다 하였습니까?”
다들 천명이라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나 보지만 실제로 미국이 주장한 단어가 천명이다. 서부 개척시대 드라마를 봤는데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명백한 운명’이라는 주장을 하며 서쪽으로 진격하였고 전쟁까지 벌이며 영토를 합병하였다.
물론 조선이 멕시코 수준으로 나약한 국가도 아니니 미국 서해안의 거점을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기껏해야 지방 세력에 불과하니 현대가 되면 미국에 흡수되는 결말을 맞이하리라.
관리들도 스페인 세력과 접촉한 적은 있는지 신중한 의사를 표시하였다.
“서애 대감께서 생각하신 바가 아예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서반아를 비롯한 구주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탐욕이 넘쳐나고 난폭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따져 주십시오. 단순히 사람을 보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백성들을 보내서 땅을 개척하려면 사막을 통과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이를 임기 내에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론적으로 통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무리를 하지 마라. 적당한 조언이었지만 나도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이미 미국 지도를 보면서 거대한 사막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준비한 물건도 있으니 이를 반박하였다.
“사막에서 낙타를 제외하고 운송 수단으로 사용할 물건이 있으니 보시구려. 직접 시험해 본 적은 없지만 목업(木業: 나무 모형)으로 만들어 보았는데 제법 쓸만하더군.”
“운송수단이라니요. 우마차를 쓰면 소가 삽시간에 기진하여 죽고 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입신체비에 능한 사람이라 하여도 열기에 삽시간에 쓰러져 버리지요.”
“대감께서 심사는 깊으신 분이지만 대사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더운 곳입니다. 그늘 안에 들어가서 부채를 움직여도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몸을 덥혀 사람이 속절없이 죽어 나갑니다.”
일대의 사막이 험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생각 외로 끔찍한 장소이다.
그늘에 들어가서 바람을 맞아도 열이 올라온다 했는데 이건 체온보다 기온이 높을 때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런 기후에서 인력거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송한필은 물론이요 신주랑까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쳐다보았지만 나는 항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사막에서 배를 몰고 다니면 어떻겠나? 배는 자고로 돛으로 움직이는 기물이며 사막은 세상 어디보다 바람이 거센 지역이니 삼각돛으로 여러 바람을 받으면 나아갈 수 있을 걸세.”
“사막의 별명이 모래바다라 하지만 엄연히 모래와 자갈로 만들어진 땅입니다. 설마 돛으로 움직이는 마차입니까? 명나라의 기인(奇人)들이 쓰는 그 물건이요?”
“바로 그거라네. 명국에서 간혹가다 할 일이 없는 부호들이 금실을 수놓은 비단으로 돛을 만들고 마차에 매달아 돛으로 주행하며 재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더군. 이를 좀 개량해 보았지.”
내가 미리 준비한 도면과 모형을 내놓으니 사람들이 달려들었는데 아직 시제품도 나오지 않은 물건이라 개선이 많이 필요하고 조종 방법도 익혀야 하는 녀석이다.
하지만 이 사막 배는 현대에도 간혹 보이던 물건이다.
현대에는 해안가에서 요트를 개조해 아래에 자동차 바퀴를 달고 경주를 벌이는 괴짜들이 있었다. 먼저 만들어둔 모형에 입김을 불어보니 책상 위에서 잘 움직였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나는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나갔다.
“내가 사막 배라 부르는 물건은 수레 위에 배의 형상을 올리고 삼각돛을 두어 개 매달아 바람을 받아나가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요. 몸체는 북인들이 어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무껍질에 송진과 기름을 발라 가볍게 만들면 움직이기도 편하겠지.”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사막에는 매일같이 모래바람이 몰아치고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니 오히려 사고가 빗발칠 것 같군요.”
“하지만 해보지 않겠는가? 잘만 하면 평원도 사막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거라네. 비록 산길에서는 분해해서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지만 시도라도 해봄이 마땅하지 않겠나.”
어차피 개척에 필요한 중요 인력들이 계속 쌓이고 이에 필요한 철을 비축하기 전까지는 잠시 대기상황에 놓여야 한다.
더군다나 일대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포섭할 준비도 마쳐야 하니 당장 실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
#작가의 말
성룡이가 창안한 물건은 현대에는 Land sailing이라 불리는 녀석입니다. 기원 자체는 명나라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부 부호들이 사치를 자랑한다고 마차에 거대한 돛을 물려 움직이게 했다 하더군요.
효율성 또한 대단한 것이 현대에 마개조된 녀석은 시속 200㎞가 나오고 19세기 물건만 해도 평원이나 사막에서 바람을 받으면 시속 40㎞로 움직였다 합니다.
19세기 미국은 대평원을 가로질러 물건을 운반할 때 말이 쉽게 지치는 마차보다 이 녀석을 애용했다 합니다. 험지에서는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런 단점이야 사소한 거죠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nd_Sailing_-_El_Mirag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