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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87화 (487/573)

근육조선 487화

2부 25장 13화 우두(2)

이후 두 달이 지나 1591년 5월이 되었을 무렵까지 인근의 부락과 정찰대에 속한 거점, 심지어 북인들이 거주하는 장소까지 새로운 천연두에 감염된 환자에 대한 보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천연두에 감염된 환자가 결국 조선 사람들 가운데도 생겨났다.

권율은 장계를 가져온 이항복의 팔뚝에 있는 종기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댔다.

“자네도 결국 새로운 두창의 증세를 보이는군. 부스럼이 혹여나 온몸에 났는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온몸을 합쳐 스무 개 내외의 부스럼이 돋았을 뿐이며 발열도 통증도 거의 없습니다. 입신체비로 몸을 호되게 다룬 것보다 형편이 좋군요.”

“애초에 아국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두창에 걸린 사람이 오십 명에 한 명꼴이라네. 탐험대가 새로운 두창에 앓지 않았다면 모두가 부스럼이라 여길 병이지.”

천연두의 면역력을 가진 정주민족인 조선 사람들은 우두가 잘 걸리지도 않고 걸렸다 하여도 이항복의 경우처럼 증세가 거의 없는 약한 질병이 되었다.

간혹 조선 사람들 중 증세가 심하게 드러나는 사람은 태반이 북인 출신이었다.

결국 호주에 퍼진 우두의 감염자는 몽골인, 북인, 그리고 호주 원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권율은 장계를 대략적으로 읽더니 혀를 차고 투덜거렸다.

“증세가 이렇게 약한 두창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나저나 대염호(大鹽湖: 맥레오드 호수) 인근의 상황이 어떠한가? 암염을 캐내는 거점이니 가장 중요하다네.”

“대염호 인근의 부락에서 호인 환자 오백삼십 명이 발생하였고 노인 세 명과 젊은이 한 명이 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나머지는 안심하고 부스럼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쉬라 하였습니다.”

두 달 동안 발생한 환자만 세어도 이미 이만 명이 넘어 삼만 명에 달할 수준이었지만 사망자는 100명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심지어 노인이 죽으면 사망 원인이 병인지 노환(老患)으로 죽은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권율의 지시는 의원을 파견하여 폐렴이나 화농(化膿)으로 병이 악화된 환자를 돌보며 피해를 최대한 줄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전부였다.

장계를 모두 읽은 권율은 한숨을 쉬며 이항복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참 황당한 병이 따로 없군. 퍼지는 양상을 보면 옛적 미주에 두창이 들불 번지듯 번졌던 것과 다름없는데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다니. 그나저나 민심은 어떠한가?”

“민심이 흉흉하긴 하오나 호인(호주 원주민)들은 아국에 대한 호의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국 사람들 가운데 농군(農軍)조차도 강인하다는 소문이 퍼진다 합니다.”

“아국 사람들이 강인하다는 소문이 퍼져? 농군이 강인하다니?”

수렵생활을 하는 호주 원주민들 입장에서 입신체비를 익힌 유생들은 강인한 전사요, 짐승을 손으로 때려잡는 본받아야 하는 스승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농부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농사를 배우는 이도 있었지만 당장 수확물이 생기는 수렵에 맛을 들인 이들인지라 그리 열성적이지가 않았고 그저 텃밭을 일구는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이항복의 보고를 들은 권율의 표정이 계속 변하였다.

“자신들은 병에 걸리면 몸에 부스럼이 잔뜩 생기고 한동안 앓아야 하는데 아국 백성들의 대다수는 새로운 두창에 걸리지 않습니다. 설령 증세가 나타나도 지극히 약하니 농군들의 몸이 강인하다 여기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이로군. 나는 아국 사람들이 병을 퍼트렸다며 호인들의 민심이 바닥으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이해할 줄은 몰랐다네. 앞으로 민심이 틀어지지 않도록 힘써주게나.”

이항복이 인사를 올리고 나가자 권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까스로 새로운 전염병을 수습할 수 있었고 며칠 뒤에 역학조사(疫學: 전염병 조사)의 결과를 가져올 유여의 장계가 완성되면 모든 업무가 끝나리라 여겼다.

하지만 항구에서 전령이 급히 달려왔다.

“관찰사님! 조정에서 새 장계가 내려왔습니다!”

“조정에서 새 장계라 하였는가? 분명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신 것이겠지.”

호주에서 조선을 오가려면 일반적으로 두 달이 걸리지만 여러 배편을 잘 조율하면 한 달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속히 답을 보내준 주상전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절을 올린 권율이 서신을 펼치자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두창에 걸린 환자를 아국으로 데려오란 명을 내리시다니. 참 까다로운 일이로군.”

우두는 증세가 매우 약한 질병이기에 제대로 된 의원만 있다면 환자가 목숨을 잃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문제는 환자를 만들어내서 조선으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천연두 면역력을 가진 조선인은 상처에 우두 고름을 발랐음에도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잘못하면 배 위에서 질병이 사라질까 염려하던 권율이었지만 항구 관리가 도착하여 다른 소식을 전하였다.

“관찰사께 보고를 올립니다. 항구에 귀향(歸鄕)을 원하는 북인들이 칠십여 명에 달하니 조만간 배편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북인? 그래 북인이 있었지!”

간혹 호주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급사하여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겠다는 북인들은 백 명 단위로 모일 때마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에 탈 수 있었다.

그리고 북인들 대다수는 우두가 심각하게 발현되는 체질을 가졌다.

기본적으로 몸이 튼튼한 북인들이니 우두에 죽어 나가는 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하루라도 빨리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이니 가장 빠른 배로 이동하라 하면 병 따위는 사소한 문제로 여기리라.

권율은 직접 항구로 나아가 북인들을 설득하였다.

“근래에 들어서 호주 일대에 두창과 흡사한 병이 돌고 있음은 알고 있는가? 주상전하께서 이를 중히 생각하시어 병에 걸린 이를 도성에서 직접 만나고 싶다 하셨네.”

“네? 그 병은 몸에 부스럼이 좀 많이 돋아나고 끝나는 병 아닙니까? 이 병이 중요하다니요?”

“나도 주상전하께서 품으신 성심(聖心: 임금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다네. 가장 빠른 배편으로 한 달 안에 아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니 한번 해보겠나?”

북인들 모두가 하루라도 빨리 병에 걸려 돌아가겠다며 아우성을 쳐댔고 권율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혹여나 부스럼으로 흉터가 생겨도 근육이 있다면 되갚을 수 있는 시대이니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하는 이들조차 있었다.

* * *

휴가가 끝나자마자 배정된 관직은 황당하게도 정1품인 내의원 도제조(都提調)였다.

의술과 연관조차 없었던 내가 왜 자문 직책인 도제조에 배정되었는가 하니 허준의 권유 덕분이었다.

-서애 대감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면 후일 미주 개척을 행할 때에 두창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하니 한낱 탕약이 능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점잖게 받아넘겼다. 일단 내의원 도제조가 되면 수많은 의서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생기며 현대인의 시선으로 질병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으니까.

“배가 옵니다! 만취당(晩翠堂) 대감이 말한 대로 북인들이 저 배에 타고 있겠군요.”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계획대로 움직이게. 혹여나 새로운 두창이 끊어질지 심히 염려되니 미리 대기한 북인들에게 병을 옮길 준비를 어서 마치게나.”

지금까지 역사상에 질병을 막는 계획은 많았지만 이번 계획은 질병을 안전하게 옮기는 사상 최초의 질병 유입 계획이었다.

다행히도 권율의 생각이 옳았는지 부스럼 자국이 남은 북인 50명이 먼저 내렸고 이들을 인솔한 자는 내 장남 유여였다.

“서애 대감님을 뵙습니다. 새로운 두창과 관련하여 역학조사를 완료하여 장계를 작성하였기에 제가 인솔자로 참가하였습니다. 저 또한 새로운 두창을 앓았지만 금방 치유되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다네. 몸이 건강한 것이야말로 효도이니 어서 검역장으로 들어가게.”

진성이는 누구 아들 아니랄까 봐 단 두 달 만에 역학조사를 마치고 장계까지 올려두었다. 비록 공적인 자리이니 딱딱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녀석은 나를 돌아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부자간의 정을 느낄 틈도 없이 다음 작업을 시작하였다.

“자네들은 병이 치유되었으니 일반적인 검역을 실시하게. 그리고 구암(龜巖) 자네는 역학조사를 마친 장계를 확인하여 이 병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게.”

“대감께서 지시하신 대로 이행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장계가 뭐 이리 많은지…….”

허준의 특기는 침술이 아니었다. 침술은 자신이 평범하다 여기는 수준이었고 진짜 특기는 탕약 제조와 전염병 대책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배정된 자는 젊은 의원임에도 침술에 자질을 보이는 허임이라는 젊은 의원이었다.

허임은 날래게 손을 움직여 진맥을 실시하였고 간혹 부스럼이 크게 번진 환자의 몸을 주정(알코올)로 소독하더니 작은 칼로 살가죽을 찢어댔다.

하지만 환자가 뭐라 하건 그의 손은 삽시간에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 버렸다.

“제로니모 그 친구가 여기 있었다면 도움이 많이 되었겠군요.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어서 멀쩡한 고름을 받아내 옮기도록 합시다.”

고용된 북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몸에 피어오른 부스럼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은자 다섯 냥에 고용된 이들이라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들의 팔뚝에 자상(刺傷)을 낸 허임은 고름을 바르며 말하였다.

“자네들은 아마 닷새 정도 시일이 지난 뒤 온몸에 부스럼이 피어오르고 발열과 오한이 조금 있을 걸세. 하지만 이 자리에는 내의원 어의들이 즐비하니 몸이 상할 염려는 하지도 말게나.”

이제 닷새를 기다린 뒤 부스럼이 피어오르면 도성으로 향하면 되겠지.

잠시 짬이 난 틈에 진성이와 만날 수 있었는데 녀석은 호주에 있는 동안 몸이 더욱 튼실해졌다.

“호주는 참으로 좋은 땅이었습니다. 아국에서 기르는 쌀을 먹기 힘들다는 점 하나를 제외하면 지천에 육질(단백질)이 널려있는 장소였습니다. 더군다나 녹타조…….”

“짐승을 가둬놓고 구타하는 행동은 다시는 행하지 말거라. 그런 행동을 보이려면 절육(커팅)을 잘 행하지 않아 체격이 더욱 크고 내수린에 능통한 북인들이 나섰어야 하는 법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려다가 말았다. 에뮤가 덤벼서 두들겨 팼다면 모를까 참 무식한 행동이 아닌가.

진성이는 괜한 말을 했다는 듯이 머쓱한 표정을 짓다 장계를 펼치며 말하였다.

“병이 어디서 왔는지 조사를 행해 보았는데 근원지는 영길리에서 보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탐험대의 대장 역할인 톨가가 처음 병에 걸린 영길리 노예에게 담뱃대를 물려준 덕분에…….”

진성이에게 체험학습을 시킨 보람이 있었다. 조선 사람처럼 애매모호한 나쁜 공기니 습한 기운이니 라는 말을 하지 않고 톨가가 접촉한 사람들과 병의 잠복기를 기반으로 분석을 실시하였다.

병이 퍼지는 원인이 기운이 아닌 침을 비롯한 타액이라고 주장하자 허준도 이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새로운 두창에 대해 적어나가며 말하였다.

“북원 사람들은 잔을 돌려 마시거나 담배를 돌려가며 피우니 침을 통해 서로에게 병을 전파하였겠군. 호인들의 풍습도 한 그릇에서 우러나온 국물을 나눠 마신다 하니 병이 전파되었을 거라네.”

“어의께서 제 짧은 소견(所見)을 눈여겨보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두창은 영길리에서 흔한 병이라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병이라 하였습니다. 그저 목동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자주 걸리는 병이라 하더군요.”

“그런 병이 북원 사람들이나 호인들과 만나 증세가 크게 드러난 것이로군. 그나저나 목동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자주 걸린다 했는가. 왜 하필 목장이지? 원인이 가축인가?”

순간 허준을 제지하려 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종두법의 전파에 악영향을 끼친 ‘소의 질병을 사람에게 옮긴다’라는 논리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엉뚱한 사람이 이 의견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서애 대감께서 눈여겨보셔야 할 환자가 또 있습니다. 바로 이 녀석이 새로운 두창의 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황망한 일입니다.”

“자네는 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가. 그 고양이가 환자라니 믿어야 할 소리를…… 얼굴에 웬 부스럼이 나 있는가!”

허임이 가져온 고양이의 얼굴에는 부스럼이 생겼다 터지고 아문 흔적이 있었다. 깜짝 놀란 나와 허준이 고양이를 억눌러 몸을 쓰다듬으니 털 사이로 우두 환자와 동일한 부스럼이 보였다.

허임은 심지어 주머니 안에서 쥐의 시체를 꺼내고 말하였다.

“고양이가 물어 죽인 쥐를 확인하니 쥐의 몸에도 동일한 부스럼이 피어 있더군요. 이 병은 쥐와 고양이에게도 옮는 병이며 심지어 선실 안에 둔 소에게도 옮았습니다.”

“지금 뭐라 했는가? 사람의 병이 쥐와 고양이, 그리고 소에게도 옮아? 아예 호랑이에도 옮지 않겠는가? 두창에 걸린 호랑이라니 참 황망한 일이 다 있군.”

“구암 자네도 생각해 보게나. 집에서 기르는 개도 감모(감기)에 걸리고 고양이도 감모에 걸리는데 이 병은 감모와 흡사한 병이 아닐까 하네. 두창이 약해진 대신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걸리게 변한 것이겠지.”

“서애 대감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옳습니다. 감모처럼 사람과 가축이 모두 걸리는 병이니 목장에서 자주 걸릴 법한 질병이로군요.”

이쯤 되면 이게 우두(牛痘)가 맞기는 한지 의심이 되었지만 보름 정도 지나자 대략적인 결과가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도성에 격리된 우두 환자들의 고름을 자원자들에게 투여한 결과 내가 기대한 대로 천연두에 앓은 사람은 우두가 형성되지 않았다.

주상전하께서도 내가 담당하는 우두의 진행 결과를 예의주시하였고 첫 보고가 시작되었다. 우두 바이러스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병을 앓는 북인들을 제외한 조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두창을 앓았던 사람 오십 명과 두창을 앓지 않은 사람 오십 명, 그리고 수묘법을 제대로 행한 사람 오십 명. 도합 일백오십 명에게 새로운 두창의 고름을 넣은 결과 두창을 앓지 않은 사람 가운데 삼십이 명에게만 증세가 나타났사옵니다.”

“자네의 말이 옳았군. 적어도 두창에 걸렸던 사람이 새로운 두창에 앓는 경우가 없으니 두창이 영길리를 통해 약해진 병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하면 이 새로운 두창이 걸린 이는 진짜 두창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오나 정녕 두창이 약해진 병이라면 이를 검증할 방법이 문제이옵니다. 아국에서 두창이 발발하면 모든 사람의 출입을 막는 끔찍한 질병이옵니다.”

우두를 사용한 종두법(種痘法)의 효과를 증명하려면 천연두 발생지역에 종두법을 실시한 사람을 보내서 병에 걸리는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천연두가 발생하면 사람이 떼죽음을 당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다 답을 내지 못하였는데 주상전하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상전하께서는 갑자기 고개를 치켜드시더니 김성일을 불러 물어보았다.

“듣자 하니 왜국은 전쟁으로 인한 참화에서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여 각지에 이질과 두창을 비롯한 전염병이 들끓고 있다 하였다. 더군다나 새로운 왜국 대군인 이달정종(다테 마사무네)은 어린 시절 두창을 앓았다 하였지.”

“실로 옳은 말씀이옵니다. 이미 두창으로 죽어 나간 사람만 오천여 명이 넘는다 하니 기세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일단 새로운 두창을 영길리의 두창이라는 뜻에서 영창(英瘡)이라 명명하겠다. 영창에 걸린 이가 정녕 두창에 앓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왜국에 의원과 영창 환자에게서 뽑아낸 고름을 가져가면 어떠하겠느냐.”

종두법의 효과 검증을 위해 일본 사람을 사용하겠다니, 이런 국제적 사고방식을 가진 주상전하를 보았나!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도 천연두의 피해자를 줄이니 나쁜 거래는 아니다.

주상전하께서는 내가 아닌 허준을 비롯한 어의들에게 명을 내렸다.

“왜국 대군에게 도의(道義)를 지키기 위하여 의원을 파견할 것이라 하였으니 두창이 가장 번성한 지역에서 영창을 미리 퍼트려 두창에 앓는 이가 생기는지의 유무를 확인하도록 하여라.”

아마 몇 달 이내로 효과가 검증될 것이니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이 기괴한 병이 우두가 확실하다면 조선 땅에서 천연두는 아예 소멸하리라.

더군다나 사람이 다치지 않는 종두법은 세상 어디와 외교 분쟁을 벌이더라도 분쟁을 소멸시킬 수 있는 외교 수단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말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현대에서 우두를 가장 많이 앓는 짐승은 소가 아닌 고양이라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사람들은 고양이로 인해 우두가 전염된다 합니다.

결국 우두는 설치류, 고양이, 소, 인간 심지어 코끼리를 비롯한 동물에게도 증세가 나타나는 광범위한 인수공통 바이러스입니다.

에드워드 제너는 면역력이 궤멸 수준인 유목민족이나 우두에 감염된 다른 동물을 만나지 못한 덕분에 소의 질병을 사람에게 옮긴다며 욕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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