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86화
2부 25장 12화 우두(1)
청심환의 효능이 퍼지기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 주상전하는 용상에 기대고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가만히 생각하다 허준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별다른 병도 아니니 묻어버리지는 생각이 분명하다.
“들불처럼 퍼진다니 위험하여 보이지만 증세가 양호하니 참으로 다행이로구나. 생각하여 보니 내가 어린 시절에 걸린 수두와 흡사한 질병이니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참으로 합당한 말씀이옵니다. 그저 새로운 병을 앓은 호인(호주 원주민)을 위문하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새로운 병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있으니 조용히 지나가자는 태도가 되었다.
하긴 사람을 죽이지도 않고 후유증이 극심하지도 않은 질병이니 굳이 대응할 필요성이 없기는 하다.
허준을 비롯한 어의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이에 동의하였지만 나는 달랐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슬슬 물러갈 분위기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신 유성룡 아뢰옵나이다. 지금까지 환후에 대하여 들은 바로는 이 병의 증세가 수묘법을 행할 적에 생기는 두창과 지극히 흡사하옵나이다. 이는 세조대왕께서 명국 황상께 간언하여 얻어낸 서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사옵니다.”
수묘법은 세조(이홍위) 말기에 명나라에서 전해진 기술이며 인두법(천연두의 원시적 접종법)의 한 갈래이다. 물에 녹인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솜에 적셔서 콧구멍에 넣고 한나절 동안 버텨 병을 옮기는 무식한 방법이다.
성공하면 내가 말한 대로 약한 천연두만 걸린 뒤 면역을 획득하지만 실패하면 아예 천연두가 생기지 않거나 진짜 천연두가 생겨나 목숨이 위험해진다.
허준도 고개를 끄덕였고 주상전하께서도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듣고 보니 수묘법을 행한 이후 발생하는 약한 두창과 흡사한 점이 있구나. 하지만 수묘법으로 일어나는 두창보다도 증세가 약하니 엄연히 다른 병이 아니겠느냐.”
“신이 부족한 지식으로 간언하온데 이 두창은 아국에서 돌아다니던 두창이 약해진 질병일지도 모르옵나이다. 감모(感冒: 감기)에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감모와 그저 골치를 아프게 하는 감모가 있사오니 두창도 매한가지가 아니겠사옵니까.”
“두창이 약해진 병이라?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리고 이는 어떻게 확인하는가?”
주상전하의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고 허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에드워드 제너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깨달은 사실이 있으니 천연두와 우두는 같은 면역체계를 사용하는 병이다.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대로 천연두에 걸린 사람도 우두에 걸리지 않겠지.
우두가 소의 전염병이고 뭐고 왜 호주 일대에 들불처럼 번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신이 의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오니 이러한 방식만을 간언하겠나이다. 호주에 있는 이들 가운데 두창을 앓고 치유된 이들에게 새로운 병을 옮겨 보면 되옵니다. 환후가 나타나지 않으면 두창이 약해진 병임을 증명할 수 있사옵니다.”
모든 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심장이 쿵덕거렸지만 수은이 첨가되어 아주 효과가 좋은 청심환 덕분에 표정을 태연히 관리할 수 있었다. 답을 다 아는 주제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욱 힘든 법이다.
주상전하께서도 내가 표정을 태연하게 유지하자 한참을 바라보다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내 의견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되는 이야기를 하였다.
“듣고 보니 합당한 말이로구나. 어차피 목숨이 위험하지도 않은 병이니 화농이 덧나지 않게 관리만 하면 아국으로 온전히 가져올 수 있을 터. 그러하니 권율에게 명령을 내려 새로운 두창을 아국으로 들여오도록 하겠다.”
대체 왜 사람 사이에 우두가 유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에드워드 제너가 그토록 고생했던 우두의 단점. ‘소의 전염병’이라는 인식을 걷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허준을 비롯한 어의들도 잘만 하면 천연두를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나를 보면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였고 나 또한 감사하다고 전하였다.
허준이 좀 고생하겠지만 성공하면 세계 최초로 종두법을 개시하는 나라가 될 것이 아닌가!
* * *
북원 출신 탐험대는 조선의 영토인 북야호에서 남서쪽으로 6일 거리에 터전을 마련하고 이를 윤광(輪鑛: 바퀴숫돌, 현 할스크릭 북동부)이라 칭하였다. 비록 사막에 속했지만 샘물이 솟아나기에 어느 정도의 목초지는 확보할 수 있는 장소였다.
술을 즐기는 유목민답게 매일같이 술판이 벌어졌지만 톨가가 돌아오고 닷새가 지날 무렵 가장 큰 술판이 시작되었다.
머나먼 호주 남부까지 다녀온 이들이 두 달 만에 돌아왔으니 필리핀에서 수입한 럼주가 술판의 주역이 되었다.
“오늘도 마시고 즐기자고! 고생이 참 많았는데 당밀주나 실컷 마시세!”
“내일 아침 머리가 죽도록 아프겠는데 내일도 술을 마시지요!”
“그럼! 이놈의 당밀주는 숙취가 심하지만 초원의 전사들이 숙취를 두려워해서 뭘 하겠나!”
다들 젊은 시절에 한가락 했던 이들이니 물통에 담긴 럼주를 물처럼 퍼마시며 술을 즐겨댔다. 한 병사는 마유주 한 잔에 럼주 두 잔을 섞어서 단숨에 들이켜면서 말하였다.
“아이고 참 좋아! 이놈의 술은 달달한 맛도 있고 아주 화끈하게 올라오는데 아르히(몽골에서 소주를 부르는 명칭) 가격의 삼 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싼 술이라니. 요즘 가격이 좀 올랐는데 그놈의 주세 때문인가?”
“평소에는 마시지도 못하던 아르히와 달리 우리가 마음대로 마실 수 있으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잔 받으십쇼.”
다들 같은 부족이라 여기고 있었으니 톨가를 시작으로 잔과 담뱃대가 돌아가며 모두가 럼주를 한 잔씩 들이켜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간혹 이를 통해 감기가 퍼지기도 했지만 초원의 전사들에게 감기는 사소한 병에 불과하였다.
술판의 정점은 에뮤 한 마리에 양파 두 개, 그리고 약간의 암염을 넣어 쪄낸 몽골 전통 찜인 허르헉이었다. 요리사가 말린 고수를 두 줌이나 뿌리면서 허르헉에 사치를 더했고.
다들 환호성을 지르자 톨가는 고기를 잔뜩 퍼먹으며 말하였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향채는 웃어른만 드시던 귀중품이었는데 여기는 지천에 널린 것이 향채로군. 조선 사람들은 향채를 빈대풀이라 부르면서 천대하니 값이 더욱 싸지 않은가.”
아예 사치를 더욱 즐기기로 하였는지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후추나 정향을 꺼내 북원에서는 칸의 일가나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손으로 창조해 버렸고 술은 더욱 많이 들어갔다. 거의 석 되(1.8ℓ)에 달하는 럼주를 퍼마신 탐험대는 기어가다시피 자신들의 게르로 들어갔다.
다음 날 점심이 되어야 일어난 톨가는 숙취로 멍해진 머리로 오늘이 며칠인지 계산하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싸늘한 느낌과 머리에서 열기가 돌아다니는 것이 어제 술을 마셔도 너무 마셔서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이제 이틀 뒤에는 또 다른 농장에 물자를 보내야 하는데 열도 오르는군. 어제 술을 그렇게 퍼마시니 감기에 걸릴 수도 있지. 오늘은 말이나 돌보며 쉬어야겠군.”
“대장님 일어나셨습니까? 어제 술을 너무 마셨는지 저도 감기 기운이 있군요.”
비틀거리는 부하를 본 톨가는 물을 길어서 세수를 준비하였다. 북원에서 이주한 뒤에 철저히 몸을 씻는 버릇을 들였으니 최소한 세수는 해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었다.
하지만 세숫대야를 가져온 부하와 눈이 마주치자 톨가와 부하 둘 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둘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얼굴에 그게 뭐야! 너 얼굴에 부스럼이 왜 그렇게 많이 피었어!”
“대장님 얼굴에 부스럼이! 이게 대체 뭔 일입니까!”
서로 얼굴을 더듬자 갓 피어난 부스럼 몇 개가 느껴졌고 둘 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웃통을 벗고 확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톨가의 몸에도 부하의 몸에도 사방에 부스럼이 피어올랐다.
“으아악! 톨가 님 몸에 그게 뭡니까! 왜 몸에 부스럼이 그렇게 많이!”
부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치려 하였지만 톨가는 그의 말총 같은 변발을 잡아당기며 제지하였다.
지식은 부족해도 지혜로운 사람인 톨가였기에 병에 걸린 사람이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면역력을 가진 정주민족과 달리 유목민족은 천연두가 한번 번지면 부족 전체가 붕괴되었지만 최소한 다른 부족에 전파하지 않는 지혜만큼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지혜를 톨가가 발휘할 때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걸린 병은 두창이다. 부족민 한 명만 걸려도 부족 하나가 쑥대밭이 되는 병인데 네가 도망쳐서 다른 사람과 만나면 어떻게 되겠나.”
“최소한 조선 사람들을 불러 약이라도 지어 먹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입 다물어! 지금 밖으로 나가려는 놈들 포함해서 모두 소집해!”
먼 거리를 두지 않고 대충대충 뭉쳐서 살아가는 탐험대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연두가 퍼졌으리라 짐작한 톨가였다.
아니나 다를까 탐험대에 속한 이들 중 상당수가 병세를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저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부스럼이 피어오르고 열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대장님! 이를 어찌합니까! 우리가 가진 약 중에는 두창과 관련한 약은 없습니다!”
“애초에 조선에서도 애를 먹는 병이 두창이다. 그리고 너는 온몸에 흉터가 있으니 두창에 걸렸다 나은 전적이 있겠지. 우리가 대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았다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탐험대 병사가 톨가의 말을 듣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탐험대가 조만간 처할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제가 어린 시절 두창에 걸렸을 때 보름 동안 열이 계속 이어지고 마침내 눈꺼풀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부스럼이 피어오르며 진물이 쏟아집니다. 여기서 열이 내리면 살아남지만 열이 내리지 않으면…….”
탐험대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20년 이상 지났음에도 온몸에 흉터가 빼곡하게 박혀 있으니 부스럼이 저것보다 훨씬 많이 피어오르며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하지만 톨가는 보름이라는 말을 듣고 억지로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보름 이내에 열을 내릴 수 있는 약재를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두창에 한번 걸린 사람은 두창을 옮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 우리의 목숨은 자네에게 달려 있다네. 어서 말을 준비하고 관찰사께 보고를 올리게!”
톨가의 판단은 지극히 옳았다. 천연두를 옮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전령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 보고를 올리는 방법 하나였다.
말에 오르는 유일한 전령을 배웅한 톨가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왔다. 아직도 서로의 몸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탐험대는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고 말안장을 올리며 짐을 챙겼다.
하지만 톨가는 칼을 뽑으며 이 행동을 제지하였다.
“말을 타고 다른 장소로 가서 약을 구하겠다고? 그 장소에 약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말 위에서 열이 올라 자빠지면 죽은 목숨이다. 그리고 약이 없다면 병만 퍼트리는 격이다.”
“하지만 저희 목숨은…….”
“승냥이조차도 병에 걸리면 무리와 떨어져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우리가 승냥이보다 못한 짐승이던가? 그러니 관찰사께서 의원과 약을 가져올 때를 대비하여 몸을 추스르도록.”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혼자 사용하는 막사로 돌아온 톨가는 세차게 바닥을 내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역만리로 건너와 그럭저럭 잘살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병으로 세상을 마감하게 생겼으니 억울함이 그의 가슴에 들어찼다.
자신들은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운이 좋다면 권율이 데려온 의원들의 손으로 목숨이야 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자신이 알기로 천연두는 잠복기가 존재하는 질병이었다.
“우리가 여기 웅크려 지내는 덕분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지난 며칠 동안 떠난 사람들도 있었지. 그 친구들이 머문 마을은 모조리 쑥대밭이 되겠군.”
피해를 최대한 경감하였지만 천연두는 호주 곳곳으로 퍼져 나가리라.
그래도 자신의 책임을 다한 톨가는 병세가 극심해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떠놓은 물과 육포를 준비하고 럼주를 들이켜며 자리에 누웠다.
* * *
마침 북야호 남부를 시찰하며 작황을 확인하던 권율은 다급한 보고를 받고 즉각 의원들을 소집하였다.
최대한 빠른 보고를 위해 권율이 직접 의원과 함께 전력을 다하여 움직였다.
“이러다가 허리가 틀어지겠습니다! 관찰사님 조금이라도 속도를 줄이십시오!”
“낙타 위에서 오래 시달린다고 죽는소리를 하다니! 자네는 사람 목숨이 중하지 허리가 중하던가! 하루라도 빨리 닿아야 이들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네!”
의원과 천연두에 효과가 있는 약재를 챙겨온 권율은 낙타 백 마리를 동원하여 6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5일 만에 주파하였다.
지독하게 흔들리는 낙타의 등 위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질병의 전파는 대처가 빠를수록 줄어드는 법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았다. 질병이 퍼지고 11일 만에 탐험대의 거점인 윤광에 도달하였지만 일대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시체를 수습할 생각으로 낙타에서 내린 권율의 앞에 톨가가 나타났다.
“관찰사님! 다행히도 저희가 만든 약재가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제 진짜 약을 주시면 됩니다!”
“지금 뭔…… 그리고 자네들이 만든 약이라 했는가? 대체 뭔 약이 있다고!”
기껏해야 창상에 대처하는 약만 있는 일대에 대체 무슨 약이 있고 의원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톨가는 약이랍시고 럼주에 씹는담배를 우려낸 물건을 내밀었다.
“술을 마시면 몸이 차가워지는데 여기에 씹는담배를 섞어서 우려내면 몸이 더욱 차가워지더군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니 어서 저희를 치료해 주시지요.”
“치료는 무슨. 자네들이 정말 두창에 걸린 것이 맞기는 한가? 두창에 걸리고 열흘이 지나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멀쩡히 걷고 있다네.”
“네? 두창이 걸리면 보름 동안 열이 오르다 죽지 않습니까?”
“자네의 몸에 열꽃이 그렇게 피어올랐는데 이미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사람만이 꽃이 피어오른다네. 그런데 자네는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증세가 온전하지 않은가!”
탐험대가 걸린 질병은 천연두가 아닌 우두였다. 우두는 전염력도 증상도 약하여 천연두 계열 질병에 내성이 있는 정주민족에게는 전염병으로 인식되지 못할 수준이지만 유목민족에게는 아니었다.
최초의 우두는 영국 출신 노예에게 물려준 담뱃대에 묻은 침을 통해 톨가에게 옮겨졌으며 그는 잠복기 동안 바이러스를 술잔과 담뱃대를 통해 사방으로 퍼트렸다.
하지만 증세가 약한 질병이기에 좀 더 많은 부스럼이 피어오르고 앓는 시간이 길어지는 수준에서 병이 치유되었다.
권율은 사람들을 소집하여 면모를 확인하며 그들의 몸에 피어난 부스럼을 지목하였다.
“자네도, 자네는 좀 심하긴 하지만 두창에는 미치지 못하고 자네도! 그리고 자네도! 모두 두창에 걸렸다면 살가죽 전체에 부스럼이 피어 송장이 되었을 사람들인데 대체 무슨 병이란 말인가!”
“그래도 증상이 두창과 일치합니다. 일단 병은 맞으니 부스럼에서 고름을 짜내고 소독하며 기본적인 처방을 실시하겠습니다.”
이틀 동안 머물며 기본적인 치료를 마친 권율이지만 마침내 사망자가 한 명 발생하였다.
187명에 달하는 감염자 중 부스럼을 술을 마셔서 몰아내겠다며 술을 마구 마셔대다 화농이 도져서 죽은 사람 단 한 명이었다.
사실상 자살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두창으로 인한 사망자로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질병으로 보고해야 하나 고민하던 권율이었다.
하지만 권율이 북야호로 돌아가기 직전 몸에 부스럼이 피어난 호주 원주민이 도착하였다.
“관찰사 나리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희 부족에 몸에 열이 오르고 이상한 부스럼이 생기는 병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병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의원을 보내고 약재도 보내겠네. 심각한 질병은 아니지만 몸을 잘 추스르게나.”
최소한 이 질병의 분류는 조선 기준으로는 천연두가 맞았다. 전염성 또한 강하니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질병이고 최소한 조정에 온전한 보고를 올려야 하리라.
결국 권율은 장계에 두창이긴 하지만 사망자가 극히 적은 병이라 적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
정주민족은 천연두에 인구가 많이 감소한 전적이 있어서 민족 단위로 면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두에 걸리려면 동물에서 번식한 바이러스가 몸에 접촉하는 방식으로 전파되며 증세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두도 엄연한 질병이고 천연두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나 노약자는 단순 접촉으로도 전염되며 제법 강한 증세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유목민족과 천연두가 없는 대륙 사람들은 천연두 면역력이 거의 없습니다.
즉 북원 출신 탐험대와 북인 그리고 호주 원주민은 일종의 우두 배양실이 되었습니다. 결국 조선은 우두를 소의 병이 아닌 사람의 병이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