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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78화 (478/573)

근육조선 478화

2부 25장 4화 나라의 곳간을 채우자(2)

상소문에는 대략적인 국민연금의 운영 방법이 있었지만 내 지식이 부족한지라 상세한 계획까지는 적어내지 못했다. 그저 공무원 친구 녀석이 푸념하는 소리를 옮겨 적은 것이 전부이다.

일단 주상전하께서는 만족한 눈빛을 보내시며 말하였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명국이나 천축의 맹주 묵을국(嘿乙: 무굴 제국)을 제외하면 천하에 견줄 수 없는 거대한 상단을 이끌 수 있음은 실로 옳은 말이다. 또한 재난이 닥쳤을 때 이 상단이 모조리 곡식을 사들인다면 얼마나 많은 양을 사들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구나.”

“신이 예측하기로는 적게 잡아도 이천만 석에 달하는 곡물을 사들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천만 석이라. 근래에 비축한 환곡이 칠백만 석에 달하는데 그 세 배에 달하는구나.”

하지만 경신대기근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부족할 수 있다. 내가 역사학도가 아니라 상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죽어라 온돌을 만들어댄 건축 양상의 변화만 따져도 끔찍한 혹한이 한반도를 덮쳤으리라.

혹한이 덮치면 이 시대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감자? 서리가 내리면 성장이 멈춘다. 보리? 그나마 버티기는 하지만 수확이 불가하다.

내 짧은 지식과 조선시대를 살아오며 경험한 것으로 계산하면 작물생산량은 평상시의 절반 이하였으리라.

하지만 이게 성공한다면 어떻게든 곡식을 마련할 수 있다. 명나라를 넘어서 인도부터 필리핀 심지어 오스만 제국까지 곡식을 수입할 활로가 열리는 것이다.

주상전하께서는 더욱 만족하였는지 상소문에 있는 내용을 점검하듯 말하였다.

“일단 첫 상품으로는 아국의 질 좋은 목재와 여송에서 산출되는 거대한 조개를 엮어 만든 칠기를 판매할 것이라 하였느냐. 그리고 백자와 관련해서도 염두에 둔 물건이 있다고?”

“신이 상재에 능하지 않은지라 그러한 물건 외에는 판매할 생각을 두지 못하였나이다. 하오나 사람이 모이면 물건이 생기는 법이옵니다.”

“실로 옳은 말이다. 이미 천주교라는 서역의 종교를 받아들이며 남미주(남아메리카)일대의 약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니 이 또한 잘만 다스리면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겠지.”

주상전하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시고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실현성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바라던 답은 아니지만 정답에 근접한 답이 나왔다.

“산관들과 대소신료들을 소집하여 회사(會士)의 설립에 들어가는 자금과 소모되는 자금, 그리고 기반이 될 자금을 계산하여 실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상소문이었으니 훗날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이를 널리 알릴 것이다.”

“신의 미욱한 식견이 주상전하를 경탄케 하였사오니 이는 자손만대에 자랑할 일이옵나이다.”

“이만 들어가 반드시 휴식을 취하되 사사로운 업무에 관여하지 말라. 솔직히 말해 유성룡 자네를 당장에라도 이현전에 넣어 각종 업무를 추진하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으나, 사람은 쉬어야 제힘을 낼 수 있는 법이 아니더냐.”

주상전하께 큰절을 올리고 궁궐을 나서자 이미 밤이 되었다.

하지만 서양에서 들여온 막대한 저서와 지식 그리고 새로운 사상을 연구하기 위한 관원들의 비명이 새어 나오는 등잔불의 형태로 경복궁 곳곳에서 비치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저 속에서 야근을 반복할 관료들을 상상하기에 이르렀지만 나도 엄연히 할 일이 있다.

미리 서신을 작성해 해주목에 보내면서 다음 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일 년의 휴가. 이 기간 동안 다른 이들은 유럽의 문물을 정리한 서적이나 각종 국가들의 알력관계를 조사한 결과물을 작성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이 좋은 머리를 썩일 생각은 없다.

읽은 것은 몰라도 직접 경험한 것은 선명히 떠올릴 수 있는 머리이니 서적의 집필은 쉬는 시간에 하면 충분하다.

당연히 사소한 일에 매진하려고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산세도 좋고 바다도 청아하니 참 좋은 고장이로구나. 내가 수많은 세상을 주유하였지만 매번 업무를 위해 다녀오던 황해도에 이렇게 휴가를 올 줄은 몰랐는걸.”

“황해도 일대에 사람이 몰리고 물산이 몰린다는 말은 많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넘쳐날 줄 몰랐습니다. 듣자 하니 요동의 도적 가운데 정신을 차린 이가 있어서 세상이 급변했다더군요.”

“내 말이 그 말이오. 고작 도적 출신인 독고율이라는 자가 요동을 온건하게 다스리기 시작했으니 군사도 평온하고 물산도 넘쳐나지 않겠소. 그리고 이국에서 들어온 과일도 지천에 널려 있는 법이오.”

내가 방문한 장소는 황해도 해주이다. 해안가에 마련된 저택을 두 달 동안 빌려서 아예 거하게 휴가를 지내기로 했다. 아내는 물론 가족들까지 데려와서 회화도 남기고 이래저래 체험학습도 시킬 계획이었다.

더군다나 황해도는 벽란도가 붙어있는 지역이다. 나 정도의 재력이면 말린 망고는 우습고 각종 상단들이 들여오는 수많은 물산을 도성보다 싼 가격에 즐길 수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값싼 물건이 소이다.

“대감마님! 곰탕을 다 우려냈습니다! 어서 확인해 보시지요!”

“이제 석반(夕飯)을 드실 때가 되었습니다. 황해도의 소가 값싸다 하였는데 도성 가격의 절반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공은 독고율이라는 자의 공이오. 수십 년 전만 하여도 요동 도적들이 배를 타고 덮치던 해주가 이제는 요동에서 건너오는 소로 풍족해지지 않았소.”

아내가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이게 다 독고율 덕분이다.

그는 어느새 도적들을 통솔해 어엿한 지방 정부 노릇을 하고 있었다. 명나라 조정에는 합당한 수준의 예물을 올리고 그 돈은 조선에 판매하는 말과 소를 기반으로 한 무역 수익이다.

물론 조정 일각에서는 독고율의 기세가 점점 거대해지니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북경이 함락당할 위기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심지어 처음 수입한 소는 예전처럼 우역을 퍼트릴까 염려하여 모조리 도살하였다던가.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였다. 조선에 통사정을 하며 무역을 실시해 달라 요청했고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직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걱정했지만 저녁으로 나온 뽀얀 곰탕을 들이켜자 저절로 마음이 풀렸다.

“형님께서 만드신 곰탕도 맛이 있었지만 역시 곰탕은 하루 종일 우려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단이와 진이는 듣도록 하여라. 내일부터 도요에 나아가 백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볼 기회를 줄 것이다.”

“소자도 백자를 많이 보아왔지만 이 기물이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것이라 알고 있을 뿐입니다. 엄친께서 소자를 위해 도요를 방문할 기회를 주신다니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저도 형님의 말과 같습니다. 그러하면 제가 직접 백자를 만들어볼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지. 나 또한 백자를 만들어볼 것이니 서로 손에 진흙을 잔뜩 묻힐 기회가 아니더냐. 도요에서 충분히 세상 물정을 배우면 백정촌을 돌아보며 더욱 많은 견문을 쌓게 하겠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체험학습을 시키는 동안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

다음 날, 해주 관아에 방문하니 목사가 직접 나서서 인사를 올리며 나를 맞이하였다.

“이 해주목(海州牧: 현 황해도 해주)까지 명성이 자자한 서애대감께서 당도하시니 참으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요(陶窯: 도자기 굽는 가마)를 사용하러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광보(廣甫: 원연의 자) 자네가 해주목사로 부임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하필 해주목사로 부임한 이는 나와 인연이 있는 원균의 동생 원연(元埏)이었다. 당연히 부패한 멧돼지이자 석쇄(케틀벨)에 뒤통수를 맞아 비명횡사한 원균과는 차원이 다르다.

체격이 비대하였지만 근육이 알차게 박혀 있는 원연은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말하였다.

“형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서애 대감과 젊은 시절에 인연을 맺어 기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형님의 체격을 칭찬하셨다 하였는데 저도 형님에게 부끄럽지 않게 입신체비에 몰두하여 보았습니다.”

원균 이 새끼가 죽어서도 사람 속을 긁어놓네! 자기가 시비를 걸어놓고 이이에게 탈탈 털리고 꼬리를 말았지! 그리고 내가 지방 덩어리인 체격을 칭찬해?

하지만 이렇게 말해놓은 터라 나도 웃으며 답해야 했다.

“그것참 훌륭하군. 난형난제(難兄難弟)라는 말이 많지만 형님보다 나은 아우는 몇 보지 못하였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형보다 나은 아우가 있군.”

“참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용력 하나만큼은 대단하신 분인데 자신이 창안한 입신체비를 즐기다가 세상을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본래 역사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은 이 세상에서는 장수의 재목이라 칭송을 받고 있다니 이거 참 우스운 일이다.

아직도 아쉬운 표정을 한 원연은 나를 산골에 있는 도요로 안내하였는데 이미 수많은 장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참으로 반갑소. 주상전하께 명을 받아 휴가를 즐기는 와중에 잠시 시험해 보고 싶은 일이 있어 사재를 털어 당신들을 고용하였소이다.”

“휴가를 즐기는 와중에 시험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셨습니까?”

장인들은 정1품 관원인 나를 보고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나도 다 알고 여기에 방문했다. 이미 조정에 올릴 백자를 모조리 구워낸 다음이라 지금은 자신들이 판매할 물건을 만들 시기이다.

그러니 비싼 값을 주고 이들은 물론 이들이 사용할 가마들도 모조리 임대하였다.

나는 운을 띄우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아둔 장석, 고령토를 만들기 전 단계인 고령석 자갈을 움켜쥐며 말하였다.

“고령토라는 물건은 결국 장석(長石)의 일종이 아니오. 새하얀 돌을 분쇄하여 점토로 만들어 빚어내고 이를 불에 구워 자기로 만드는 거요.”

“그야 당연한 말이 아닙니까? 옹기는 찰흙을 빚어 만들지만 고령토는 이가 시릴 정도로 새하얀 고령토를 사용해야 하는 법이지요. 깨부수고 수비하여 흙으로 바꾸는 것도 참 고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소. 이가 시릴 정도로 새하얀 물건이 지천에 널려 있지 않소?”

내가 만들려는 물건은 영국에서 만들었던 도자기인 본차이나(Bone china)이다. 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머리를 쥐어짜 내며 현대의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본차이나가 고령토에 소뼈 가루를 섞은 물건이라는 기억도 떠올렸다.

그러니 어제 아내가 곰탕을 우리고 남은 뼈가 아닌 아예 재탕 삼탕을 하여 골수가 완전히 빠져 하얗게 변한 소뼈를 소매에서 내밀었다.

물론 장인들은 격하게 반발하였다.

“세상에. 소뼈를 고령토에 섞어서 백자를 만들라 하십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불씨(불교신자)들이 장례를 행할 때 사흘 내내 장작을 때어 육신을 불사르고 뼛가루만 남기지 않소. 바꿔 말하면 뼛가루는 불 속에서 쉽게 변하지 않는 물건이고 가볍기 그지없소이다. 이를 도자기에 넣으면 더욱 가벼운 녀석이 되지 않겠소.”

“옳은 말이긴 합니다. 더군다나 소뼈의 시커먼 골수가 도자기의 색을 더럽힐까 염려하였으나 골수가 비어 있으니 곰탕을 우리고 남은 소뼈이군요.”

“바로 보았소. 지천에 널린 소뼈를 개의 간식으로 주느니 가볍게 빻아내고 섞어서 도자기를 구워보면 어떨까 싶구려. 참 발칙한 상상이지만 어디 한번 해보지 않겠소?”

해주인근에는 백정촌도 많고 요동에서 수입한 소가 싼값에 팔려 너도나도 곰탕을 시작으로 소뼈를 우려 탕국을 만들어 지천에 널린 것이 소뼈였다. 심지어 해주 시내의 개들도 소뼈 하나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렇게 재료가 많은 데다 고령토 광산도 있으니 본차이나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장인들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설령 실패하여도 서애 대감께서 봉급을 지불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고용주의 의견에 따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설마 고의로 실패하지는 않겠지.

여하튼 다음 날부터 장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만들어내 지시대로 소뼈 가루와 고령토를 섞어 점토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소뼈 일 할과 고령토 구 할로 시작하겠소. 다음 조는 소뼈를 이 할로 증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시구려. 일단 가마 안에서 버텨내고 백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야 하니 얇은 판으로 빚어내 구워주시구려.”

“대감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거기 소뼈 좀 가져와! 수비(水飛: 물에 풀어 이물질을 제거함)가 끝난 흙에 바로 혼합하게!”

아이들은 온전한 고령토를 매만지며 백자 만드는 법을 배우고 나는 새로운 고령토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하였다. 다들 뛰어난 장인들이니 소뼈 가루를 섞은 고령토를 치대며 타일 형태로 다듬어댔다.

닷새 정도 지나자 벌써 초벌구이가 완료된 시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장인들은 혀를 차며 시제품을 두드리고 질감을 확인하며 부족한 점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소뼈의 비율은 사 할을 넘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오 할부터는 형체조차 갖추지 못하고 뭉그러지는 물건이 태반이군요. 그리고 아직 공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소뼈가 수분을 머금고 안에서 부풀어 균열을 일으켰구려.”

“고령석을 깨어 고령토를 만들 때의 공임과 마찬가지로 소뼈 또한 잘게 빻아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고달플 것 같습니다. 이래서야 공임이 오히려 늘어나겠는데요.”

“일단 계속 진행해 보시오. 혹여나 완성된 물건이 기존에 사용하던 백자보다 빼어날지 누가 알겠소. 그리되면 공임이 늘어나도 오히려 잘된 일이오.”

장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곰탕을 우려낸 소뼈를 물에 씻어 기름기를 제거하고 가마에 살짝 구워 수분을 날린 뒤 빻는 작업을 감안하니 본차이나의 단가가 기존 백자를 뛰어넘을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한 달이 지나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백자를 만들고 아내와 함께 백정촌으로 체험학습을 떠날 무렵, 드디어 본차이나 완성품이 내 앞에 놓이게 되었다.

장인들은 최초의 본차이나 사발을 매만지며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일단 색상이 청아하지가 않습니다. 소뼈가 섞인 덕분인지 우윳빛이 돌아서 제 눈에는 영 탐탁지 않은 물건이군요. 그나마 장점이 있으니 이 질감입니다.”

“질감이 장점이라. 일단 가볍고 튼튼해 보이는구려.”

“보통 자기는 쇠막대로 살살 내려쳐도 이가 나가며 사금파리가 치솟는데 소뼈를 섞은 자기는 청아한 소리를 낼 뿐 쉽사리 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지요.”

심각한 문제라 하여 대체 뭘까 궁금했는데 장인들이 도자기를 성형하고 말리는 건물 안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당연히 만들다 깨트린 실패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바닥이 하얀색의 죽 같은 것으로 철벅거렸다.

“이게 뭐요? 혹여나 우유를 쏟아서 바닥이 이렇게 변한 거요?”

“소뼈를 사 할 정도 섞은 반죽이 가장 구워내기 편하였지만 만들고 보니 잘 쑤어낸 죽 같은 질감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니 반죽이 적당히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손으로 반죽해야 해서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건조대를 보십시오.”

건조대에 있는 백자들은 하나같이 흐느적거리며 늘어져 있었고 몇 개의 잘 완성된 녀석들만 말라 있었는데 이 녀석들도 이상한 돌출이 생기고 조금씩 형태가 일그러져 있었다.

장인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하였다.

“소뼈를 섞은 자기는 분명 구워낼 수만 있으면 좋은 물건이지만 애초에 형태를 잡을 수 없어서 문제입니다. 대감께서 참으로 고된 노력을 다하셨지만 여기가 끝인 것 같군요.”

저절로 이마에 손이 올라가며 한숨이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죽을 만져보니 정말 잘 쑤어낸 죽 같은 질감이다.

결국 이 시대 이상의 기술을 동원해야 하는 물건이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마치 붕어빵 반죽 같은 질감이라 발칙한 상상이 떠올랐다.

물처럼 흐른다는 말은, 틀에 넣어 찍어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반죽을 한 국자 떠서 보여줬다.

“내가 알기로 백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마의 조절이지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성형 작업이라 알고 있소이다. 물레를 돌리고 형태를 잡아나가는 과정이 참 난해하다 들었지만 이 녀석은 물처럼 출렁거리지 않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니 저희는 불가하다 판단하기에 이르렀지요.”

“충분히 가능하오. 물처럼 출렁거린다면 틀에 넣고 굳혀 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소?”

붕어빵 찍어내듯이 형태만 잡아두고 말려서 구워 버리면 끝나겠지. 거기서 말리면 건조과정의 변형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성형 작업을 제외할 수도 있다.

장인정신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뭐가 대수인가. 어차피 초벌구이가 끝난 백자는 재벌작업에 들어가면서 회화를 그리며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다.

잔뜩 찍어내 제대로 성공한 물건만 구워서 판매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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