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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74화 (474/573)

근육조선 474화

2부 24장 11화 올바른 호주의 모습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물건을 구해와 달라 요청한 마사이족 관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고 대표인 아론 또한 대놓고 양피지를 내미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당당하게 항목을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과 노예로 사용할 영국의 범죄자들을 보낼 수 있으니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원하지요.”

“영길리의 사람들이라? 영길리의 사람들이 구주(유럽)의 다른 지역도 아니고 이렇게 머나먼 호주까지 왜 온단 말인가. 혹여나 사람들을 납치할 생각인가?”

“저희가 제법 복잡한 문제를 품고 있으니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탄압을 당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심각하게 고민하다 이런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능한 일입니까?”

호주는 조선이 개척을 시작하였고 솔로몬 제국에 속한 마사이족이 한 손을 거든 형태였다. 그러니 조선의 규정을 따라야하지만 조선은 외국인의 이주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었다.

오로지 조선말을 배우고 조선의 풍습을 따르면 문제가 없다 하였으며 새로 개척한 땅에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모일수록 더욱 빠른 개척이 가능한 법이다.

아론은 오히려 환영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며 답하였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보내거나 노예를 다루듯 납치하여 보내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네. 세금은 모든 생산물에 관련해 삼 할을 부과할 것이며 이외의 규정은 따로 없네.”

“규정이 따로 없다 하심은 구교가 세운 성당과 신교가 세운 교회가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서로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바르바리 노예들이 기도를 올릴 모스크도 허용할 건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아예 조선에서는 서원을 세우고 제사를 올릴 계획까지 준비해 뒀다네.”

드레이크를 비롯한 유럽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소 사소한 항목에 대한 논의가 하나씩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영길리의 이주민들이 개척한 농장에 부과할 세금은 삼 할이며 나머지 소득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겠네. 정착 비용과 제반 문제도 조선과 협력하여 모두 해결해 주겠네.”

“그럼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잉글랜드 이주민들이 세운 목화 농장에서 생산한 목화는 모두 저희가 우선권을 가지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물론이네. 우선권이라 하여도 규정된 시세보다 싸게 살 수는 없지만 그런 권리 정도야 내어줄 수 있는 법이지. 다만 이 권리는 두 세대가 지난 오십 년 뒤에는 소멸한다네.”

아예 독점권을 가지고 싶었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기에 드레이크도 더 이상은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 만에 하나 벌어질 반란 문제 해결을 위해 드레이크도 확인 절차를 진행하였다.

“혹시나 말입니다. 만에 하나의 이야기지만 이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병사로 징집되거나 광산에서 노역한다면 매우 곤란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명문화(明文化) 해주시지요.”

“오히려 호주의 드넓은 평원을 오가다 쓸데없이 죽어 나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농장 일만 시켜야겠지. 그럼 이 계약서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군. 자네도 한번 확인해 보게나.”

영어 대신 스페인어로 계약서에 적힌 조항에 잉글랜드 이주민에 대한 처우가 규정되었다. 각종 농업에 종사하지만 그 이외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은 오십 년 뒤라는 기한까지 제대로 규정된 항목이 적혔지만 이는 아론의 수작이었다.

호주 곳곳을 탐험하는 탐험대들이 노래의 길을 따라 움직이며 주변의 지질을 파악할 때마다 금, 은, 철 심지어 역청탄을 비롯한 진귀한 광물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목화 농사는 인력이 필요하니 땅이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지만 광산은 아닌 법이다.

이를 모르는 드레이크는 계약서에 자신의 인장을 찍고 위를 금박으로 덮어주며 악수까지 마쳤다.

“그럼 저희는 잉글랜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돌아올 적에 얼마나 많은 이주민이 올지는 모르지만 이들의 식량도 미리 준비해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이주민으로 정해진 이들을 잘 설득이나 해 두게. 비록 우리는 영길리의 말을 모르지만 조선에는 영길리의 말을 할 줄 아는 이들이 제법 있으니 혹여나 납치하였다면 그들을 돌려보내는 비용까지 청구할 것이네.”

“혹시나 죄인들이 자신이 납치당했다고…… 아니! 아예 여왕 전하께 국서를 받아서 공식적으로 노예로 쓸 죄수들을 유배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내용을 해석할 사람이나 마련해 주십시오.”

아론은 항구까지 나서서 드레이크를 배웅해 주었다. 올 때에는 세 척에 불과한 배에 채무를 잔뜩 짊어진 해적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채무를 변상하고 일곱 척의 선단을 만들어 돌아가니 참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야욕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잉글랜드로 돌아간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앞에 무릎을 꿇고 상황을 즉각 보고하였다.

그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기에 엘리자베스 1세도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드레이크의 보고를 들었다.

“조선에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였는데 이주민이 필요하다 하옵니다. 스페인과 대등한 수군을 자랑하는 조선과 싸울 생각은 없으니 아예 골칫덩어리인 가톨릭 신자들을 이주시키시옵소서.”

“골칫덩어리인 가톨릭 신자를 받아준다니 나쁜 일은 아니지만 거기까지 다녀오면서 얻는 것이 궁금하오. 혹여나 스페인과 다시 전면전을 벌인다면 잉글랜드의 국운이 위태로운 지경이니 확실한 소득이 있어야 하지.”

“이득은 바로 이것이옵니다. 호주라는 땅은 지천에 목화를 기를 수 있는 땅이니 여기에 사람을 보내 목화를 수확하고 면직물을 자아내면 얼마나 큰 이득이 생기겠사옵니까?”

마사이족 개척단이 시험 삼아 만든 면직물이라 아직 품질이 부족하였지만 면직물이 귀한 영국에서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드레이크는 여기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현지의 가격은 세금을 감안해도 잉글랜드에서 유통되는 가격의 1/7에 불과하며 운송비를 제하여도 삼 할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더군다나 어마어마한 벌판에 마음대로 목화가 싹을 틔우니 얼마나 비범한 땅이옵나이까.”

“처음에는 바르바리 해적을 격퇴하고 신앙의 형제라 변명하며 스페인 상선을 구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정말 드레이크 경이 미친 줄 알았소. 하지만 면직물을 이렇게 얻어낼 수 있다면 미쳐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려.”

명군에 속하는 엘리자베스 1세이기에 셈 또한 빨랐다. 가급적 일을 빠르게 진행해야 다른 국가가 진상을 파악하고 개입하기 전에 소득을 챙길 수 있었기에 망설임조차 없었다.

“니콜라스 베이컨 경은 당장 국새를 가져오시구려. 내 펠리페 2세가 언제라도 재침할 수 있다 여겼는데 이번 기회를 삼아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것이오.”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버지이자 국새관(국새를 담당하는 직책)인 니콜라스 베이컨이 국새를 가져오자 엘리자베스 1세는 즉석에서 외교 서신 세 편을 작성하였다.

“펠리페 2세는 가톨릭의 수호자라 칭하지 이주민을 받아들일 도량은 없는 자이지. 그러니 가톨릭 신자들을 조선이 개척한 땅으로 이주시킨다 하면 큰 문제는 없겠지. 오히려 박해를 멈추고 동맹국인 조선에 보낸다 생각하여 침략의 고삐를 늦출 거라네.”

“합당하신 판단이옵니다. 어차피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라 해 보았자 만 명이 넘지 않을 것이며 이들은 골칫덩이가 아니옵니까? 조선에 가톨릭 선교가 허용 직전이라 하니 오히려 반기는 입장일 것이옵니다.”

“또한 조선과 솔로몬 왕국이라는 곳에도 국서를 보내 이주민을 잘 돌봐달라는 서신을 보내놓으면 충분할 것이오. 그리고 드레이크 경, 경에게 열 척의 선박을 추가로 배정할 것이니 향후 이주 계획은 충실히 이행할 거라 믿겠소.”

“여왕 전하께서 명하신 바를 반드시 완수하겠사옵니다.”

기울어져 가던 영국의 운명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외교적으로는 가톨릭에 대한 온건 정책과 이슬람 세력에 대한 사략행위로 적개심을 낮추며 경제적으로는 당장은 아니지만 목화 농장이 제대로 돌아간 이후 급격히 반등할 수단을 마련하였다.

* * *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처음 호주에 노예를 잡아 오고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첫 관찰사로 부임한 권율의 임기도 끝나기 직전이며 조선에서는 호주 개척을 통해 얻은 수익과 경험으로 미주 개척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본래 역사에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의 내용을 담은 서신을 보내고 요동의 부족장 누르하치가 이성량의 탄핵 이후 만주 일대를 점령할 무렵인 1591년 음력 3월.

본래 요동에 있어야 할 누르하치의 친척인 원영국은 구슬땀을 흘리며 광산을 개척하고 있었다.

“금이 나온다! 아이고! 또 금덩이야! 거기 금 부스러기도 흘리지 말고 잘 모아두라고! 그게 다 대감 나리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물건이니까!”

그의 5대 조상인 충샨은 백이십여 년 전 조선에 귀부하고 자신의 부족을 되살리기 위해 연해주와 만주 일대를 오가며 사금을 캐내었다.

하지만 그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진족과 마찬가지로 그의 부족은 조선에 흡수되어 버렸다.

누르하치의 조상이 될 시버오치피양구(錫寶齊篇古)가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아예 누르하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원영국조차 광부 노릇을 하니 본래 역사의 누르하치가 보면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리라.

“다들 땅 치기 노래를 부르세! 땅을 쳐야지 금이 나오지! 금이 나와야 술을 마시지! 술을 마셔야 힘을 내지! 힘을 내면!”

“근육이 생기지! 다들 광배근에 힘이 부쩍부쩍 들어가지 않는가!”

하지만 원영국은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고 금이 섞인 돌덩어리를 파헤치고 있었다.

이미 일 년 동안 금을 캐내어 벌판에 맨땅이 드러나고 모래 먼지가 솟구치니 광산 일을 돕는 호주 원주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어르신. 땅을 너무 많이 들쑤시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야 숲이 모조리 거덜 날 것 같은데요. 금이 많으면 좋지만 저희는…….”

“거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낼 때마다 세 그루의 나무를 주변에 심으니 염려하지 말게! 그나저나 금을 정제할 석탄이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 나리들은 언제쯤 오려나.”

본래 물가에 모여서 수렵 활동을 벌였을 원주민들은 조선과 접촉하고 생활 방식을 순식간에 바꾸었다.

심지어 조선에서 전해진 양 대신 유성룡이 가져온 유럽산 면양(綿羊)을 방목하는 유목과 광산 노동이 결합한 생활 습관으로 변질되었다.

“금 넣고 불 올려! 풀무질 열심히 하면 금이 나온다니까!”

“저기 어르신, 궁금한 것이 있는데 우리가 본래 경영하던 금광에서는 수은을 섞어서 금을 분리하지 않습니까? 수은을 쓰면 금을 더욱 많이 뽑아낼 수 있을 텐데요?”

“우리야 알음알음 사용하니까 묵인해 주는 거지! 이현전에서 수은이 독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강조하여서 새로 개척한 광산에서는 금지했다네. 그러니 잔말 말고 불이나 때게나.”

광산 경영자인 원영국 입장에서도 수은을 사용하는 건 영 마땅치 않았다. 금가루가 섞인 광물을 잘게 부수고 수은을 뿌리면 많은 금을 뽑아낼 수 있지만 작업에 투입한 인부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 나가니 장기적으로는 손해나 마찬가지다.

대신 다른 방법이 있었다. 불로 녹여서 뽑아낸 금을 얇게 펴고 여송 남대주(민다나오 섬)의 유황 광산에서 만들어 물을 타고 건너온 황산을 뿌려 불순물을 녹여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금박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순도 높은 금이 남는다.

금박을 물로 씻어 뭉치면 순도가 90%에 육박하여 투자 비용을 벌충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채취한 금만 따져도 서른 근(19.2㎏)에 달하였다.

쌓인 금을 확인하던 원영국은 저 멀리 벌판에서 오는 손님을 확인하고 양손을 흔들며 달려 나갔다.

“아이고 나리들 오셨습니까! 이번에도 금을 많이 캐내어 허리가 휘어버릴 지경입니다!”

“원씨 자네 오늘도 고생이 많군. 그나저나 금광에서 끝없이 금이 쏟아져 나온다니 잘만 하면 자네의 가문을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조상님께서 동방 삼왕가 아래에서 일하신 분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언제 이야깁니까. 저는 엄연히 북인이고 조선의 일원인뎁쇼.”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하긴 동방 삼왕가고 나발이고 돈이 제일이지. 그러니 돈 더 벌어낼 수단을 가져왔다네.”

탐험대에서 직종을 전환해 순찰과 물자 보급에 나선 톨가는 원영국과 손을 맞잡으며 낙타 등에 쌓인 수많은 물품들을 내려놓았다.

영국 해적들이 수없이 많이 잡아 온 낙타들은 변한 기후에 적응하여 철저히 활용되었고 등에 실린 어마어마한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석탄 다섯 돈(4.4톤)에 암염과 여기서 쓸 밀가루와 쌀일세. 그리고 여기 호인(好人: 호주 원주민)들이 원하는 물건들도 잔뜩 가져왔으니 어서 받아보게나.”

“우와 옷이다! 다들 모이게! 치렁치렁한 옷을 이렇게 잔뜩 가져오다니!”

호주 원주민들이 무엇보다 바라는 물건은 아마나 삼베로 만든 옷이었다. 지금까지는 짐승의 가죽을 입거나 식물의 섬유로 만든 옷을 입었지만 문명과 접하자 자신의 기후에 어울리는 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원영국은 밀가루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우리가 먹는 밀도 괜찮은 맛이지만 면포(빵)를 만들면 폭신한 맛이 나는 영길리 밀도 괜찮더군요. 그나저나 오늘은 길일이나 마찬가지인데 소나 한 마리 잡아보지 않겠습니까?”

“소라. 불란서산 육우(살레르종 소) 맛이 아주 좋은데 그 녀석이나 한 마리 잡아 보세나.”

요리라 하여도 조리 방법이 간단한 요리가 시작되었다.

영국에서 이주한 이들에게 요리 방법을 배운 톨가는 보관해 두고 있던 버터를 꺼내 무쇠 번철(프라이팬)에 녹이면서 말하였다.

“조선의 소는 맛이야 진한데 고기가 질겨서 두껍게 먹을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불란서에서 들여온 육우는 고기가 그리 질기지 않으니 이렇게 먹는 것이 제일이라네.”

현대에는 스테이크라 불리는 요리에 맛을 들인 탐험대였다. 그냥 고깃덩어리를 잘 달군 번철에 올려 구워내면 끝이고 맛도 부족하지 않으니 여기에 밀가루를 뭉쳐 구운 떡과 빵의 중간쯤 되는 녀석을 먹으면 한 끼가 가볍게 해결되었다.

방금 전 구운 스테이크가 기름과 육즙을 뚝뚝 흘리자 톨가는 칼을 들어 이를 크게 썰어내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입 안에 들어찬 육즙을 느낀 톨가는 북쪽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기름이 많다고 싫어하던데 고기에는 기름이 어느 정도 있어야 맛이 나는 법이지. 자네들도 꼭 알아두게! 사막에서는 근육이 많으면 기력이 순식간에 쇠하는 법일세.”

“저도 몸이 축나서 고민이군요. 한 탕 거하게 벌고 돌아가서 입신체비나 해야겠는데요.”

“하긴 조선 사람들에게 입신체비를 끊게 하느니 내가 담배를 끊고 말지.”

거하게 식사를 마치고 곰방대에 담배를 피워대던 톨가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순찰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말안장을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순찰대가 질러대는 소리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영길리 농장에서 노…… 아니, 인부 스무 명이 탈주하였습니다!”

“그 미친놈들 말도 안 타고 여기를 탈주했다고? 이 허허벌판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하여튼 영길리 놈들 무식한 건 타고 났다니까!”

인근의 농장은 호주의 대찬정 분지라 불리는 지형에 형성되었다.

약간의 소금물이 섞인 오아시스가 가득 들어찬 장소였으며 멋대로 뿌리를 내린 목화가 야생에서 서식하기에 농장으로 변질된 곳이었다.

바꿔 말하면 사방에 존재하는 제대로 된 오아시스를 찾지 못한다면 사막을 헤매다 말라 죽게 마련이었다.

인력 손실이 커질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익도 줄어들게 마련이니 톨가는 눈에 불을 켜고 명령을 내렸다.

“당장 놈들의 흔적을 추격해! 여기서 농장까지 말 타고 한나절 거리니까 녀석들을 사흘 내에 찾지 못하면 모조리 말라 죽는다!”

본래 탐험대가 타고 있던 말 대신 드레이크를 비롯한 영국 해적들이 아라비아 일대에서 훔쳐온 말에 올라탄 톨가는 천리경을 품에서 꺼내며 고삐를 움직였다.

순식간에 몽골 기병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들은 사방을 주시하며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놈들의 발자국이 북쪽에 보입니다!”

“서쪽도 동쪽도 남쪽도 다 샘물이 있는데 왜 북쪽이야! 빨리 말 몰아!”

본격적인 더위는 아니었지만 몽골 말이 견디기 힘든 더위 속에서도 아라비아 일대의 말들은 멈출 줄 모르고 움직였다.

톨가는 아직도 열이 오르지 않은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이 말 정말 죽여주는군. 높으신 양반들이 타고 다니는 한혈마라는 놈도 좋지만 이 말은 열이 안 오르니 계속 움직일 수 있군!”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 피부 가까이 혈관이 있는 핫 블러드(Hot blood, 말의 분류)에 속하는 아라비아 반도의 말은 훗날 거듭된 개량으로 현대 경주마의 조상이 되는 말이었다.

비록 힘도 약한 편이고 지구력도 부족하였지만 사막 환경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말이니 톨가와 탐험대는 쏜살같이 흔적을 추격하였다.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서 한 무리의 영국 범죄자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으악! 살려줘! 타타르가 온다! 어서 도망쳐!”

“도망치긴 뭘 도망가 이 머저리 새끼들아! 거기 안 서면 맞아 죽을 줄 알아!”

다급하게 도망치던 영국 범죄자들이 순식간에 사로잡히고 몽둥이찜질이 이어졌다. 본래 하얀 피부가 햇볕 아래에서 목화를 따느라 빨갛게 타들어 가고 그 위에 다시 시퍼런 멍이 덧씌워지니 피부의 색상이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노예, 정식 명칭은 십 년 동안 무보수로 강제 고용된 인부들을 포승줄로 묶은 톨가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더니 피우던 담뱃대를 머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노예에게 물려주며 말하였다.

“참 고생이 많긴 한데 우리도 고생이 많다. 이번 도주에서 너희들이 반항하지 않은 점을 높게 사서 노동 기한을 늘리지 말아달라 할 거다. 돌아가서 꾹 참고 구 년만 더 일해라.”

“이 개고생을 구 년 동안 더 해야 하다니요!”

“그럼 뭘 어쩌라고! 이 동네에 모인 이주민이 영길리 출신만 육천 명에 오사만국이라는 동네 노예가 일만 명! 여기에 영길리에서 들여온 노예가 다시 일만 명이잖아! 남은 사람들은 바보라서 묵묵히 일하는 줄 아냐?”

세상 정반대에서 온 사람들이 조선말로 대화를 나누니 참 이상한 노릇이지만 인부들에 대한 적당한 위협과 강요, 그리고 권율을 필두로 한 조선 관료들의 물자 보급은 조선의 말을 호주의 공용어로 보급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매일같이 도주한 노예를 잡아들이고 물자를 보급하는 톨가는 자신의 변한 신세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몽골에서 살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으며 다른 부족과 싸우는 대신 녹타조라 불리는 거대한 새를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장으로 돌아온 노예의 목덜미에 돋아난 노란색 물집이 보였다.

그 작은 물집을 부스럼이라 여긴 톨가와 탐험대 그리고 농장 관리자들이었지만 이는 어마어마한 파급을 불러올 작은 바이러스가 들어차 있었다.

#작가의 말

천연두는 39도 이상의 고열과 심각한 통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이후 물집이 생기며 고름이 차오릅니다. 하지만 도주한 영국 애들은 황무지를 잘만 돌아다녔으니 다른 질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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