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70화 (470/573)

근육조선 470화

2부 24장 7화 근육 대 자연

유여가 제시한 에뮤의 근육 방법은 젊은 세 명의 관료가 논의를 거듭하며 점점 구체화시켰다. 기본 전략은 유여의 말대로 에뮤를 철저히 근육 하는 것이니 이 방법도 논의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무기 없이 맨몸의 사람도 무서워하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무기도 사용해야 사람이 무서운 줄 알지 않겠나. 호인(호주 원주민)들과 백성들에게 창을 지급하여 간단한 방진을 만들면 섣불리 마을로 오지 않을 거라네.”

“한음 자네의 말도 맞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 자체에 겁을 먹게 하자는 창연(유여의 호)의 방안이네. 그러니 우리를 포함해 입신체비에 능숙한 이들이 맨손으로 놈들을 격퇴해야 한다네.”

“하지만 녹타조와 맨손으로 싸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모르겠군. 일단 놈들이 뭘 하는지 알아보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로울 일이 없다 하였으니 에뮤에 대한 분석이 우선이었다.

가장 먼저 증언한 이는 톨가를 비롯한 탐험대였다.

“녹타조들은 가장 큰 녀석을 우두머리로 삼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뭘 잘못 먹었는지 보통 머리 위에 검은 깃털이 더욱 짙게 자라나서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더군요.”

“놈들은 평상시에 무리를 이루지 않지만 위기를 느끼거나 밭을 습격할 때는 최소 백 마리 이상의 무리로 뭉칩니다. 선두에는 우두머리가 서고 각자 무리를 통솔해서 움직이지요.”

“마당에서 기르는 닭도 가장 덩치가 큰 수탉이 우두머리가 되는 법이니 이해할 수 있구려.”

이미 한 마리의 불운한 에뮤가 근처를 기웃거리다 탐험대에게 잡혀 와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유여는 에뮤를 확인하다 궁금했는지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몸통의 높이는 우리 배꼽보다 조금 높고 머리통의 높이까지 합치면 우리의 머리와 비슷하군. 그리고 무게와 힘은 직접 알아봐야겠지.”

-꾸오옥? 꾸루루루루룩!

조심스럽게 들어간 유여가 에뮤를 안아 들자 당황한 에뮤가 꾸르륵거리며 반항하였지만 입신체비사의 괴력으로 조이자 그 힘에 놀라 포기하였다.

어머니에게 하체를 단련하라며 돌절구를 들어 올리라는 교육을 받았던 유여이니 체중은 쉽사리 가늠할 수 있었다.

“대략 팔십 근(51.2㎏)에 큰 녀석이라 하여도 일백 근을 넘지 않을 것 같군. 이 정도로 무게가 가볍고 힘이 그리 세지 않다면 내수린 기술 하나만 걸어도 저 멀리 날아가겠는걸.”

“하지만 그 두툼한 발톱을 보게나. 저 발에 배를 걷어차인 사람이 죽었다 했을 때 운이 없다 생각했지만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발이 아니겠는가.”

입신체비를 익힌 사람이 강하다 하여도 한계가 있었다. 기껏해야 몽둥이를 사지로 막아내거나 단검과 같은 작은 날붙이를 대흉근으로 받아내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이덕형의 조심스러운 말에 이항복은 커다란 보자기를 꺼냈다.

“내가 그래서 이 물건을 가져왔다네. 호주에 처음 발을 들일 적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줄 알고 판금갑옷을 챙겨온 이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적도 없고 염천(炎天: 무더위)에 시달려서 판금갑옷을 패용하지 않는다 하더군.”

“나 원 참, 우리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의 호)도 아니고 갑주를 입고 입신체비를 한다고?”

“백사(이항복의 호) 자네의 말이 옳다네. 새대가리들이 우리가 갑주를 입었는지 옷만 입었는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놈들의 발길질이 아무리 강해도 어지간한 창보다 강하겠는가? 그러니 이 판금갑옷을 패용해 보도록 함세.”

에뮤에 대적하기 위한 민, 관, 군 합동 작전이 차츰 완성되기 시작하였다. 관찰사인 권율도 각지의 송사(訟事)와 개척 상황을 처리하느라 손이 바빴지만 이번 일을 허가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에뮤의 기습이 언제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시 농작물에 피해를 입느니 아예 기습을 유도하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각 농지를 습격당한 농부들은 울분을 터트리며 농사를 재개하였다.

“메밀이야 싹이 트고 두 달만 지나도 수확할 수 있으니까 다음 농사에 지장은 없겠어.”

“이 사람아. 그래도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귀중한 곡식인데 아깝지! 저놈의 새대가리들을 불러들이는 데 먹을 수 있는 곡식을 미끼로 사용한다니, 아직도 원통한 마음이 드는군.”

밭에는 메밀을 심어 에뮤의 공격을 유도하기로 정했다. 메밀은 60일이면 수확할 수 있고 토질을 가리지 않으며 성장하는 작물이지만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쌀의 1/4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요동 도적들과 싸워보기도 했고 경상도에 상륙한 왜놈들과도 싸워봤는데 새대가리들과 싸우라니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로군. 그나저나 이 친구들 체격 하나는 아주 두툼해.”

“나도 시커먼 몸 다음에 다부진 체격을 보며 감탄하였다네. 이 친구들이 입신체비를 배우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겠군. 그전에 말도 배우고 사서삼경도 떼야겠지만!”

수렵 생활로 어지간한 초보 입신체비사와 대등한 호주 원주민의 일부를 차출하여 창술을 가르쳐 주는 군인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원주민들이 제법 반발하였지만 유여는 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흘려 지나가는 말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게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녹타조들이 다음으로 기습할 곳이 마을인데? 듣자 하니 녹타조들은 모든 음식을 주어 삼킨다 하였는데 사냥감을 빼앗기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 싸운다! 에뮤들 다 몰아낸다!”

전쟁에 나설 정도는 아니지만 마을 청년들은 지급받은 나무창을 앞세워 에뮤의 돌격을 막아내는 방진을 세울 정도의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을 조율할 탐험대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절대적으로 호응하였다.

“우리는 비록 조선에 귀부하였지만 예케 몽골 울루스의 위대한 전사였소! 고작 새대가리들에게 평원을 넘겨주느니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놈들을 짓밟는 데 동참할 거요!”

탐험대는 물론이요, 탐험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단순히 가축을 기르기 위해 불러온 몽골 사람들도 이에 협력하였으니 순식간에 천 명에 달하는 기병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두 달 흘러 1588년 4월. 드디어 에뮤와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에뮤의 습격을 경험하고 이를 격퇴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한 원주민들은 조선의 승리를 기원하며 조선의 행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거대한 에뮤 무리가 마을을 습격하기 전까지는 조선의 말을 배우려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저 젊은 사람들이 외부인과 접촉하여 뭔가를 얻어내려고 서당에 나섰을 뿐이지만 이미 임시로 만든 서당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건 대흉근. 대 흉 근 이라 하는 근육인데 가슴에서 가장 큰 근육. 모두 따라 해보게.”

“대 흉 근.”

픽토그램으로 만들어진 훈민정음 선화(線畫)본에는 수많은 단어가 담겨 있었으며 이 단어의 발음이 아닌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는 방법은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원주민들은 사과를 맛보고 사과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코끼리 형상으로 깎은 나무토막을 보고 코끼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았지만 이번 단어는 근육이었다.

가슴 부위만 그려져 있어서 다들 당황하였지만 유여는 완벽한 대흉근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웃통을 벗고 대흉근을 꿈틀거리자 원주민들은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며 대흉근을 매만졌다.

“그리고 다음은 복근, 복 근 나는 여덟 갈래지만 여섯 갈래도 있다.”

“교수관님! 녹타조들이 마을 주변에 나타났다 합니다!”

“수업은 중단한다. 염려하지 말게! 이번 녹타조들의 습격은 우리가 막아낼 걸세!”

가장 큰 규모로 에뮤가 습격한 와제리 부족의 마을에는 이미 서른 명의 병사와 열 명의 입신체비사, 그리고 백여 명에 달하는 몽골 출신 기병들이 있었다.

아직 늦은 밤이지만 내일 새벽이 되면 에뮤들이 득달같이 몰려들 것이다.

“한음! 준비는 모두 마쳤는가? 녹타조의 수효가 얼마나 많은가?”

“보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네. 모두 합치면 이천 마리에 달하는 녀석들이니 이들 중 우두머리만 따로 뜯어내는 것도 고역이로군!”

원주민들이 동요하지 않게 다독인 이덕형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니 모든 준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마을 주변에는 목책과 방진을 만들어 에뮤의 유입을 저지할 준비를 마쳤으나 진정한 싸움이 벌어질 장소는 따로 있었다.

“목책에는 이상 없습니다!”

“거대한 우리도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들 배에 힘을 꽉 주고 준비하게! 미리 배정된 이들은 판금갑옷을 입고 우리 안에서 대기하게나. 그나저나 톨가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네! 녹타조를 너무 많이 보내면 우리가 짓밟혀 죽으니 적당한 수를 보내게나.”

“내 최선을 다해볼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나도 작전이 성공하면 놈들을 추격하며 모가지를 모조리 따내 버리겠지만 나리들도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동이 트며 에뮤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새로 생긴 메밀밭을 지난 한 달 동안 정탐하였고 마침내 대규모 무리가 형성되어 돌격하였지만 이 무리의 돌격은 몽골 기병대에게 하나둘씩 가로막혔다.

“마을로 너무 많이 보내지 마라! 많이 보내도 삼백 마리가 넘으면 감당할 수 없다!”

“새대가리 새끼에게 활을 쏘지 마라! 놈들이 어떻게 죽는지 잘 알게 칼과 창으로 죽이라고!”

처음에는 기습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몽골 기병들은 에뮤 무리를 하나하나 쪼개서 유린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모든 무리를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속한 이백여 마리만큼은 마을로 향하게 내버려 두었다.

마을로 향한 에뮤 무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목책과 원주민과 조선 병사들이 형성한 장창 방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메밀밭으로 재차 우회한 에뮤 무리의 옆구리를 톨가와 탐험대가 난입하며 다시 갈라놓았다.

“스무 마리 정도만 보내려 했는데 좀 더 많이 갔습니다! 나리들! 어떻게든 해보십시오!”

메밀밭에 들어섰지만 사람들이 꽹과리를 치고 창을 휘두르자 30마리로 쪼개진 에뮤들은 울타리를 따라 발을 놀렸다. 하지만 울타리가 점점 좁혀지며 통로가 되고 끝에는 거대한 우리가 있었다.

자신들이 사로잡혔음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빈틈을 노리려 눈을 돌렸지만 그 안에 기다리는 이들은 보통 사람이 아닌 판금갑옷으로 무장한 입신체비사였다.

“축생들아! 어디 한번 네놈들의 몸이 대단한지 우리의 몸이 대단한지 겨뤄보자!”

“네놈들의 날랜 발이 이 좁은 곳에서 효과를 보일 성싶더냐? 우리는 맨손이니 맨손으로 겨뤄보자꾸나!”

에뮤의 평균 신장 1.8m를 넘어 거의 2m에 달하는 거대한 키를 가진 에뮤들의 대장은 두려움도 없이 조선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금까지 거대한 바다악어를 제외하면 어떠한 적수도 없었던 거대한 에뮤임에도 조선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야생의 본능이 보내오는 위험신호와 자신의 힘을 가늠하던 에뮤 대장이었지만 본능 속에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쏜살같이 달려들어 발길질을 날렸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맨몸으로 맞았다면 속이 뒤집히고 내장이 터졌을 위력이구나! 하지만 나에게는 복근도 있고 복근 위에 걸친 판금갑옷도 있다!”

발차기에 적중당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이덕형의 모습에 그 거대한 눈이 더욱 커진 에뮤였지만 이덕형은 당당히 앞으로 나서며 발을 움켜쥐었다.

판금갑옷 하나만 입은 평범한 사람이면 격통으로 주저앉았겠지만 이를 입은 사람은 갑옷 아래에 솜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안감은 물론이요, 두툼한 복근까지 갖춘 입신체비사이다.

그리고 근육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역차돌리기이이이!”

아직 거둬들이지 않은 에뮤의 다리를 낚아챈 이덕형은 양손에 힘을 잔뜩 주고 몸을 축으로 삼아 에뮤를 빙글빙글 돌렸다.

처음에는 나머지 한 발을 땅에 박아 저항하려던 에뮤였지만 체중 차이는 물론이고 근력 차이가 너무 심했다.

-꾸루루루루루루루루루룩!

“날아가라!”

여덟 바퀴나 공중을 돌아 다른 에뮤들에게 던져지자 에뮤들 모두 그 괴력에 놀라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가려 하였지만 이미 나무판자가 통로를 가로막아 탈출할 장소가 없었다.

땅을 걸어 다니는 에뮤의 축생(畜生)에서 처음 하늘을 날아본 에뮤 대장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고개를 젖히며 본격적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30마리에 달하는 에뮤들이 울음소리를 내자 우리 주변이 특유의 쉰 울음으로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 되었다.

-꽤애애애애애액! 꾸루루룩!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구나. 놈들이 우리를 쓰러트리려 한다! 놈들을 철저히 근육하라! 가급적 죽이지 말고 호되게 근육하라!”

“구반완(래리어트) 나가신다!”

10명의 입신체비사와 30마리의 에뮤가 근육의 힘과 야생의 힘을 겨루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에뮤들의 전략은 매우 단순해졌다. 벌판이라면 기동력을 살려 사람을 따돌렸겠지만 여기서는 그 기동력이 발휘될 방법이 없었다.

좁아터진 우리에서 동료와 부대낄 수 없으니 천천히 접근하는 입신체비사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부리를 들이댔지만 입신체비사는 모든 공격을 받아낼 갑옷과 근육 갑옷을 가지고 있었다.

“갑옷을 입어도 배가 욱신거리니 내 복근에 멍이 들 지경이다! 네놈을 용서할 수 없구나!”

발작적으로 발길질을 날린 에뮤는 아예 반동으로 자리에 자빠졌고 입신체비사는 50㎏이 넘는 에뮤의 몸을 들어 어깨 위에 올리고 빙글빙글 돌려대며 폭풍메치기(F5)를 날렸다.

원심력과 더해진 어마어마한 충격을 당한 에뮤는 단번에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였고 에뮤들 사이에서 공포가 더욱 퍼져 나갔다.

동료의 모습에 발을 쓸 수 없어 부리로 공격했지만 고작 손톱 하나를 부러트린 것이 전부였다.

“어딜 감히 부리를 들이대느냐! 내 소중한 손톱이 빠져 버리지 않았더냐!”

-꾸루룩! 꽤애애애액!

얼굴을 쪼아도 판금 투구에 막혀 오히려 부리 끝이 깨져 나가는 참사가 벌어진다.

하지만 머리를 잠시 움직이지 않으면 두툼한 손에 사로잡혀 끌려가 바로 수도(手刀)를 두들겨 맞고 뇌진탕에 빠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내 체중은 일백육십 근(102㎏)에 달한다! 네놈들의 두 배니 참으로 집어 던지기 좋은 무게로구나! 폭락(파워 밤)이나 먹어라!”

“육질(단백질)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네?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야지! 전신투(바디슬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에뮤가 두 입신체비사의 협공에 바닥에 널브러져 사지를 버르적거리고 있으니 모든 에뮤들 사이에서 공포가 퍼져나갔다.

심지어 이덕형은 맨 처음 달려든 대장 에뮤를 집요하게 쫓아가며 드롭킥을 날렸다.

“어디 한번 농민들을 두들겨 팰 적과 마찬가지로 부리를 내밀어 보란 말이다! 이 망할 축생이 어디서 대가리만 우리 밖으로 빼놓고 도망치려 하느냐!”

무리를 이끌던 대장의 체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에뮤들도 이덕형에게 두들겨 맞고 다시 끌려가 하늘을 날아가는 대장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놈의 새끼들! 다리를 걸어 자빠트려!”

“죽이지는 말고 철저히 근육해라! 놈들이 다시는 우리 백성들을 손대지 못하게 박살 내라고!”

오른손으로는 에뮤의 머리를, 왼손으로는 다른 에뮤의 머리를 잡은 유여가 양손을 조이며 에뮤의 작은 머리통으로 두골헌(헤드락)을 실시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두 에뮤가 거품을 물고 자리에 쓰러졌지만 입신체비사들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발로 차도 꿈쩍하지 않고 부리로 치면 오히려 머리통을 잡고 두들겨 패는 입신체비사의 괴력을 목격한 에뮤들은 더 이상의 저항을 거부하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우리 벽을 두드렸다.

이덕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의 문이 열렸다.

“들어올 적에는 사람을 무시하고 먹거리를 탐했건만 이제야 사람 무서운 줄을 알겠지! 어서 가서 네놈의 동료들에게 사람 무서운 걸 알려주어라!”

에뮤 대장을 시작으로 대다수의 에뮤들이 쏜살같이 벌판 저 멀리 도망치자 이덕형은 땀에 절어버린 투구를 벗으며 승리의 흑룡세를 실시하려다 갑옷이 자신의 근육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두툼한 판금갑옷도 모조리 벗었다.

호주의 드넓은 황무지에 열 명의 입신체비사가 일제히 승리의 흑룡세를 취하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이덕형은 어느 누군가 남긴 말이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명언을 되새기며 자신의 근육을 더욱 부풀렸다.

“녹타조를 통제해야 한다, 통제는 근육이다, 나는 근육을 통제했다! 그러니 녹타조도 근육해 버렸다!”

“녹타조를 근육하였다! 우리가 새로운 의미의 통제를 실시하였다!”

해가 온전히 떠오른 황무지에 흑룡세를 취한 열 명의 입신체비사가 자랑스럽게 몸을 꿈틀거렸고 수없이 많은 에뮤들이 공포에 질려 저 머나먼 벌판에서 괴성을 질러대며 도주하였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자신이 배운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기 시작하였다.

“대흉근, 복근, 이두박근, 삼각근. 모두 근육이 통제한 거다.”

“나도 저런 근육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럼 자연을 통제할 수 있겠지.”

지금까지 호주 원주민들은 입신체비를 보며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자연의 은혜를 받들어 사냥에 나서는 행동이 아닌 쇠를 들고 몸을 부풀리는 이상한 조선의 풍습이라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풍습이 저런 기적을 만들어냈으니 입신체비는 이들에게 빛이요, 진리로 다가왔다.

순수한 마음으로 근육을 절실히 원하게 될 이들이 머나먼 세상 반대편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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