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69화
2부 24장 6화 인간 대 자연
몽골 출신 탐험대는 지난 여섯 달 동안 계속 원주민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이 알고 있는 노래의 길을 조선의 방식과 결부한 지도로 표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풍화작용으로 암반이 고스란히 노출된 호주의 평야는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철기문명으로 진입하지 못한 호주 원주민의 생활상 덕분에 노천에 가까운 광맥이 지천에 널려 있었으니 탐험대는 간단한 곡괭이질로 이 자원을 채취할 수 있었다.
“이걸 관찰사께 보고하면 땅이 뭐야. 우리 팔촌까지 죄다 데려와서 떵떵거리며 살아도 되겠어. 금붙이가 지천에 널려 있다니 여기가 세상의 보물창고가 아닌가.”
“칭기즈 칸께서 이런 땅을 아셨다면 칸국 두 개는 세우셨을 땅입니다. 나무가 없어서 광물을 제련할 수는 없지만 그런 문제를 제외해도 지천에 금은보화가 널려 있군요.”
“이게 끝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이를테면 조선이 지나친 땅에도 금은보화가 쌓여 있을 것이니 사람만 동원하면 지천에 널린 광맥을 마음대로 캘 수 있겠지.”
한 부족은 노천 금광을 어렵사리 석기로 캐냈지만 탐험대의 장비는 수준이 달랐다. 튼튼한 철 곡괭이가 오가자 광산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탐험대조차도 손가락보다 커다란 금덩이를 캐낼 지경이었다.
철 곡괭이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는 부족 사람들을 보고 아예 곡괭이까지 전해준 톨가는 물자의 보급을 위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콧노래는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끊겨 버렸다.
“나리들! 큰일 났습니다! 커다란 새가 밭을 습격해 사람이 다치고 밭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밭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커다란 새라 하면 조선말로 녹타조(綠駝鳥)라 불리는 새 아니야? 그놈들이 뭘 잘못 먹어서 밭까지 들어와 습격했단 말인가.”
경황은 없었지만 탐험대는 습격을 하는 데도, 당하는 데도 이골이 난 사람들이기에 눈을 부라리며 에뮤에게 집단 구타당한 김 서방의 몸을 살펴보았다.
피멍으로 올라온 부리 자국은 물론이요, 상투가 뜯겨나갈 정도로 두들겨 맞은 꼴을 보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 서방은 배를 녹타조에게 두들겨 맞고 이틀을 앓더니 배에 피가 차올라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분통이 터지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치면 이놈의 새대가리들을 천 마리는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군! 다들 무기 들어! 지금부터 새대가리들을 모조리 죽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오갈 때마다 멀뚱히 보고만 있는 눈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눈깔뿐이겠는가? 구루룩 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내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 그놈들 애처로운 울음소리라도 듣고 싶은 지경이었네. 그럼 다녀올 테니 남은 작물을 잘 지켜주게나!”
비록 습격을 당했어도 조선 농부들이 일군 옥수수밭은 아직 완전히 자라나지 않은 옥수수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뿌리를 뽑지 않으면 습격이 이어질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탐험에서 에뮤 학살로 업종을 변경한 탐험대는 상상외의 사태에 직면하였다. 본래 말을 탄 사람을 보면 호랑이조차 자리를 피하는데 에뮤들은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자리를 피하지 않고 꾸준히 마을로 향하는 에뮤에게 활을 쏘아대니 급소에 맞은 몇 마리의 에뮤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 죽음은 더 많은 에뮤를 불러오는 기폭제가 되었다.
삽시간에 벌판에 에뮤의 울음소리가 퍼지고 에뮤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몰려왔다.
“이런 미친! 오른쪽에서 삼백 마리는 될 녹타조들이 몰려옵니다!”
“활을 쏴! 저놈들의 대가리가 아니더라도 활을 쏘면 어느 정도 놀랄 거야!”
“새대가리들이 엄청 빠릅니다! 이쯤 되면 거의 우리 말 속력과 대등합니다!”
“다들 조심해! 저기에 휩쓸려 바닥을 구르면 짓밟혀 죽는다! 거리를 유지하며 화살을 날려!”
최고속력과 힘은 부족해도 지구력은 어느 품종보다 우수한 몽골의 조랑말이기에 톨가는 거리낌 없이 뒤로 화살을 날리며 몰려드는 에뮤를 견제하려 하였다.
하지만 눈앞에는 다른 에뮤 떼가 몰려왔다.
“앞에서 다시 수백 마리가 몰려옵니다! 새대가리들이 저렇게 움직이다니요!”
“이놈의 미친 새대가리 새끼들이 수를 앞세워 우리를 공격한다고? 여기가 토목보인 줄 아나? 에센 놈도 아니고 우리가 너희들의 생각에 당할 것 같아!”
몽골 탐험대는 천부적인 유목민이기에 사냥에 어느 누구보다 능숙하였다.
사슴 무리도 잡아보고 간혹 가축을 노리는 늑대 떼를 부족 전체가 연합하여 사냥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기에 본능이 곧 전술이요, 그들의 손이 짐승을 사냥하는 병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짐승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동료가 죽으면 뿔뿔이 흩어져 도망쳐야 할 에뮤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짐승의 법칙을 무시한 채 더욱 큰 무리로 뭉치며 몽골 탐험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기 휩쓸리면 끝장이다! 알아서 도망쳐!”
“말이 지쳐가고 있습니다! 저놈의 새대가리들은 지치지도 않나 봅니다!”
“화살을 쏘아도 몸에 맞으면 타격을 입지 않습니다! 깃털이 뭐 저리 튼튼합니까!”
탐험대가 화살을 계속 날렸지만 목에 화살을 맞은 에뮤만 죽었을 뿐 나머지 에뮤들은 든든한 깃털로 충격을 흡수하여 목숨을 건졌다.
땅바닥을 뒹굴고 다시 일어나는 에뮤가 무리에 합류하자 다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하늘을 메웠다.
심지어 탐험대의 말이 가혹한 전투에 지쳐 입에서 게거품을 흘려댔다. 하지만 잠시 정비를 위해 말을 돌보자 에뮤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자 톨가는 이를 악물고 창을 빼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놈들을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며 모가지를 썰어버려! 놈들이 동료들의 시체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라고!”
“염병할! 그거 커다란 늑대 잡을 때나 하는 짓 아니었습니까!”
그나마 창을 휘두르니 효과가 있었다. 몸통을 맞은 에뮤는 강한 충격에 다리가 꺾이며 고꾸라졌고 목이 잘린 에뮤도 바닥을 뒹굴며 자빠지기 시작했다.
연쇄 충돌이 일어나며 에뮤 떼의 기세가 꺾이고 톨가는 환호성을 지르며 창을 흔들었다.
“이놈의 새대가리들! 감히 말들이 먹을 곡식을 넘봐? 네놈들의 시체로 포식하게 생겼구나!”
“저기 대장님! 대장님!”
“왜? 또 새대가리들 몰려오나? 조금 쉬었다가 또 사냥하자고!”
“마을 방향을 보시란 말입니다! 새대가리들이 이미 마을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천리경을 건네받아 마을 방향을 확인한 톨가는 명백히 마을로 향하는 희뿌연 모래먼지를 확인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자신들이 죽을힘을 다해 에뮤를 죽였지만 별동대가 이미 마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땅바닥에 비벼 갈아 죽여도 모자랄 새끼들! 피를 강에 흘려보내도 모자랄 새끼들! 텡그리께서 벼락을 내려 온몸의 피를 터트릴 새대가리들아! 자손만대 저주를 받아라!”
피를 땅에 흘리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몽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설을 퍼부은 톨가였지만 이미 상황은 끝났다.
여든 마리가 넘는 에뮤를 사냥하고 돌아온 밭은 물론이요, 마을에서 떨어진 조선인 거주지까지 아예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나리. 이번에는 수백 마리나 됩니다! 아예 무서워서 집 안에 숨었는데 초가지붕 위에 올린 이엉(짚)조차도 모조리 먹어치워 버려서 이제는 집도 없는 알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대충 육백 마리 정도 몰려온 놈들 가운데 여든 마리 정도 잡았는데 천 마리 정도 몰려왔나 보군. 이걸 어떻게 대처한단 말인가.”
나름 부족민들도 에뮤를 막아보려다 도망쳤는지 농부와 탐험대를 포함해 모두 흙먼지를 뒤집어쓴 몰골이 된 모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뮤와의 첫 전투에서 인간은 80마리의 에뮤를 죽였지만 자라나던 모든 곡식을 상실해 버렸다.
하지만 땅이 전부인 조선 농민들을 어떻게든 꼿꼿이 서서 말하였다.
“아무리 쑥대밭이 되어도 농토는 유지하였으니 다음 해에, 아니면 시기가 좋을 때에 파종해서 농사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놈의 새대가리들이 몰려들면 농사고 뭐고 끝입니다.”
“알고 있네. 자네들이 귀리를 기르고 옥수수를 길러야 말을 마음대로 기를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관원들에게 보고를 올려보겠네.”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자신들의 병력이 많아도 짐승의 생리를 따르지 않고 거침없이 돌격하면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질 따름이니까.
하지만 이 에뮤의 습격이 와제리 부족의 영토 한 곳에만 일어나는 사태가 아니었다.
곳곳에서 시범적으로 농사를 짓는 조선 농민들 대다수가 에뮤 떼의 습격을 당하였으니 이는 전쟁과 동일한 사태가 되었다.
* * *
대염주(大鹽州: 현 호주 카나본)는 철광이 발견되고 호주 대륙 일대로 보낼 수 있는 암염을 생산할 수 있는 고장이기에 조선에서 전방 개척 기지로 활용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주변 마을 대부분에서 에뮤의 습격으로 인한 보고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들짐승이 밭을 습격했다 여겼지만 모든 농지가 공격당한 상황이 되자 현감인 이덕형도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시작하였다.
“지난 십일월부터 이번 달까지 고작 두 달 동안 벌어진 일일세. 이 지역의 말로 에뮤, 우리가 칭하기로 녹타조라 불리는 짐승들이 최소 만 마리가 넘게 몰려들어 농작물을 먹어치웠네.”
몽골 탐험대들이 처리한 에뮤가 오백 마리가 넘었지만 그 스무 배가 넘는 에뮤가 몰려들었으니 답이 없었다.
파리가 들끓는 에뮤 시체를 확인한 이항복은 코웃음을 치며 답하였다.
“만 마리? 이보게 한음(漢陰) 자네 농담도 지나치다네. 녹타조 일만 마리라고?”
“농을 할 것 같나? 말이 만 마리이지 실제로는 이만 마리가 넘어갈 것이네. 농작물이 모조리 사라진 밭 주변을 맴도는 녹타조들이 계속 보인다 하니 수가 더 많겠지.”
이항복도 특유의 능글맞은 태도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하였지만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각 부족에서 소집한 원로들까지 불렀지만 이들의 답도 비슷하였다.
“에뮤 많이 온 거 못 봤다. 우리 에뮤 죽여도 한 마리 죽여서 배불리 먹는데 너무 많다.”
“에뮤 강 없으면 가끔 많이 모인다. 모인 에뮤들 무서워 떨어진 녀석만 잡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에뮤 본 적 없다. 무서워 마을에서 도망쳤다.”
“그럼 창연(蒼然: 유여의 호) 자네가 그놈의 녹타조들이 대체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게. 이거 서로의 말이 어눌해서 영 대화가 통하지 않는군.”
교수관(敎授官: 종6품 문관, 교육을 담당한다)의 대표인 유여가 어느 정도 배운 원주민들의 말로 대화를 나누었고 말이 잘 통하는 사이이니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제대로 된 뜻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가뭄이 심해지면 녹타조가 모여든다고 증언을 하는군. 아마 가뭄으로 벌판에서 자라는 풀이 자취를 감춰서 녹타조들이 경작지로 몰려들어 닥치는 대로 작물을 뜯어먹었을 걸세.”
“가뭄이 녹타조를 모이게 만들었지만 이를 어찌 대처할지도 문제일세. 알다시피 사람 맛을 본 산군은 또 사람을 습격하게 마련이니 반드시 잡아 죽이지 않는가.”
“그럼 이번에 습격한 놈들은 가뭄이 없어도 내년에 또 작물을 노린다는 말인가?”
수재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 그리고 그들보다 부족해도 사건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학자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유여까지 머리를 맞대었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항복은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짜증을 터트렸다.
“애초에 새대가리들 행동 자체가 이상했단 말이지. 가끔 마을 주변에서 송사를 처리할 때 녹타조와 눈이 마주쳤는데 내 눈을 뚫어져라 살펴보며 멀뚱히 서 있더군.”
“심지어 뭉쳐서 기병들에게 돌격하다니 이게 보통 일인가? 북원의 기병들이라면 아국 기병과 정면으로 싸울 때는 부족해도 그 외에는 모두 아국 기병을 넘어서는 최정예라네. 그렇다고 덮어놓고 기병을 파견할 수도 없지.”
“솔직히 말해 기병 일만 명 정도로 녹타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금방 끝날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비용 문제가 어마어마하다네. 옮기는 것도 문제고 먹이는 것도 문제이지.”
기병의 가장 큰 문제는 어마어마한 보급비용이었다. 주식인 건초는 몰라도 힘을 북돋우기 위한 콩과 귀리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런 황무지에서 기병을 다룬다면 모든 물자를 외부에서 공급해야 한다.
1만 명의 기병이면 말은 4만 마리 이상을 보유한다. 말 한 마리가 사람의 세 배의 곡식을 먹어치우니 도합 13만 명에 달하는 군량이 필요한 법이었다.
결국 셋 다 갑론을박을 벌이며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마을에 울타리를 만들어 최소한의 대처를 하세. 목재야 어떻게든 배편을 통해 옮겨서 해안에서 배급하면 되니 참 고단한 일이겠지만 녹타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녹타조의 힘이 강하지 않은가. 발길질로 사람의 내장을 터트려 죽일 정도면 어지간히 튼튼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네. 결국 또 사람을 동원해야 하는데.”
“내년이 되면 북원에서 더 많은 이주민이 올 것이니 이들에게 탐험 대신 현지 적응 겸 녹타조를 사냥하게 하면 어느 정도 대처는 될 거라네.”
회의가 길어지니 대염주에 파견되었던 마사이족 관원들도 거대한 짐승들이 습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하지만 마사이족 관원들은 에뮤의 시체를 보더니 코웃음을 쳐댔다.
“난 또 뭐라고. 기껏해야 작은 타조가 아닌가? 뭐가 맹수의 습격이라 하는 거요?”
“타조라, 그래! 솔로몬국 일대에는 타조라 하여 이 녀석보다 거대한 새가 돌아다닌다 하였고 그 깃털을 아국에 수출하고 있지 않소. 그러하면 이 타조가 농작물을 습격하지 않소?”
“코끼리 한 마리가 밭을 덮치면 밭 하나가 반나절 만에 사라지는 데다 쫓아낼 수도 없지. 하지만 타조는 우리의 기척이 보이면 바로 도망가니 기껏해야 약간의 작물을 입에 넣을 뿐이오.”
“타조가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도망간다고? 그럼 이놈의 녹타조는 왜 도망치지 않소? 일단 타조를 어떻게 잡는지 알아봅시다.”
비슷한 생물을 사냥하는 마사이족과 접촉하였기에 길어지던 논의의 해답이 나왔다.
마사이족 관원들은 아예 밖으로 나와 수풀 속에 몸을 웅크리고 창을 쥔 채로 잽싸게 일어났다.
“우리가 타조를 잡는 방식은 간단하지. 수풀에 숨어서 창을 숨기고 있다가 타조가 물을 마시는 틈을 타 창을 던지는 거요. 조금이라도 동작이 늦다면 놈들은 바로 저 멀리 내빼 버리지.”
숨어서 기습하는 방법은 조선 사냥꾼들도 즐기는 방식이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더욱 거대한 타조가 도망친다는 말을 듣자 이덕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시하였다.
“혹여나 놈들과 싸우는 짐승들의 모습은 보지 못하였소? 타조가 크기만 컸지 약한 짐승인가?”
“맹수들도 목을 단번에 물지 못하면 당하는데 약하겠소? 놈들의 발길질에 제대로 채이면 점박이늑대(하이에나)조차 뼈가 부러져 바닥을 뒹굴고 치타는 아예 허리가 꺾여 즉사하지. 그나마 사람에게 달려들지 않아 다행이오.”
“점박이늑대면 매화범(표범)과 싸워서 목덜미를 부러트려 죽이는 짐승인데 타조가 그와 대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타조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도망친다니 이거 참 이상한 일이군. 더 작은 녹타조는 달려드는데 이상하지 않나?”
이덕형은 물론이요, 이항복도 유여의 말에 동의하였다. 더욱 덩치가 큰 타조들은 아예 덮어놓고 달려들어야 정상이지만 기척만 보여도 도망간다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마사이족 관원은 유여의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쳐댔다.
“우리 한 명 정도야 죽일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일대의 타조를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니 염려 마시오. 사자가 우리를 죽이면 일대의 사자의 씨를 말려버리니 사자들도 우리의 앞을 피하지 않소.”
“하긴 짐승이 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지. 코끼리나 이주(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코뿔소 같은 거대한 짐승이면 몰라도 평범한 짐승은 사람을 보고 피하는 것이 정상이오.”
“그럼 또 웃기네? 녹타조는 호인들도 잘만 잡는 짐승이잖아? 아니 애초에 이 동네의 짐승들은 이상하다니까? 녹타조건 입록(캥거루)건 이놈의 소입록(笑立鹿: 웃는 선사슴, 쿼카)이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네.”
만력제에게 조공으로 바치기 위해 몇 마리 기르고 있는 쿼카가 천연덕스럽게 이항복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적거리니 그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해주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본 유여는 손뼉을 치며 해답을 도출하였다.
“덕형, 백사(白沙: 이항복의 호) 자네 생각해 보게. 호인(好人: 호주 원주민)들이 사냥에 나설 적에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들은 자신들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짐승만 잡는다네.”
“참 답답하지만 풍습이니 이해할 수 있어서 내버려 두었지. 짐승이 보이면 족족 잡아서 훈제를 하건 말려두건 비축하여야지 비축할 줄을 모르고 매일같이 사냥에 나서지 않았나.”
“그럼 짐승들이 호인들의 풍습을 보고 뭐라 이해하겠는가?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 채 돌아간 이들을 계속 상대하였다면 어떻게 하겠나? 이는 산군과 같다네. 산군이 사슴 한 마리를 죽이면 나머지 사슴들은 안심하고 풀을 뜯지 않는가!”
호주 원주민들은 자연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식량만 취득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이는 현대에도 남아 사냥감이 넘쳐나도 함부로 가져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었다.
다른 인류가 닥치는 대로 사냥을 일삼고 농토를 넓히며 가축을 기르며 짐승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호주는 달랐다. 이 지역의 짐승들은 인간을 단순한 포식자라 인식할 뿐 종 자체를 피하는 본능을 기르지 못하였다.
이항복은 이 말을 듣고 쿼카를 바라보다 답하였다.
“그럼 우리를 보고 겁을 먹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어떻게 해결하기는! 녹타조들의 그 작은 두뇌 속에 사람에 대한 공포가 박힐 때까지 계속 공포를 주입시키면 충분하다네. 보통 사람이야 당해낼 수 없지만 우리에겐 근육이 있지 않은가!”
유여는 평범한 입신체비를 익혔기에 근육량만큼은 유성룡의 전성기보다 많았다. 심지어 이덕형과 이항복 모두 삼대운동 800근은 거뜬한 근육덩어리기에 그들 모두 근력만큼은 유생의 표준치를 넘어선 이들이었다.
“지금부터 녹타조들을 철저히 근육하세. 놈들이 우리의 모습만 보아도 천 리를 도망칠 수 있도록 계속 근육하면 놈들도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칠 걸세!”
#작가의 말
선사시대 인류는 원시 수렵사회 이후 유목사회와 농경사회로 나아가면서 주변의 동물들을 멸종시키는 행동을 반복하였습니다.
결국 눈만 마주쳐도 도망치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은 오랜 세월 선조들에게 시달리다 유전자 단위에서 공포심이 들어간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