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68화
2부 24장 5화 다른 접촉
조선처럼 거대한 배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18척에 달하는 선단이 일제히 상륙하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탐험대에 합류한 청년들은 시력이 좋지 않아 아직 배의 모습만 보았지만 톨가를 비롯한 몽골 출신들의 눈에는 이 모습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비록 말을 비롯한 짐승들은 부족할지언정 최소 오백 명 이상의 사람이 짐을 옮기고 각종 채비를 마치고 있으니 조선과 비교하지 못해도 상당한 규모의 탐험대이리라.
톨가는 아예 망원경으로 상세한 모습을 확인한 뒤 혀를 내둘렀다.
“저 친구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군. 솔로몬 제국이라 하였는데 과연 제국을 칭할 수 있는지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이 친구들 뭐 이렇게 겁을 먹었어?”
“대충 말이 통해서 하는 소리인데 집이 떠다닌다 하는군요. 저렇게 멀리 있는데 자기 손톱보다 크게 보인다면 움직이는 거대한 바위일지도 모른다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경험하게 될 사람들인데 이렇게 놀라서야 나중에 가면 어떻게 살아남으려 그러나. 이야기는 미리 되어 있을 테니 천천히 접근한다. 다들 움직여!”
조선의 명칭으로는 광계, 현대의 명칭으로는 퍼스(Perth)라 불리는 지역은 세 개의 강이 만나 거대한 삼각주를 이루는 고장이라 이 시대에도 와주크(wajuk)라 불리는 부족이 머무르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도착한 선발대가 이 와주크 부족과 접촉하여 손짓과 발짓으로 협상을 마친 뒤였다.
선물로 제공한 소와 양을 비롯한 가축들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며 나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탐험대가 솔로몬 제국 개척단과 접촉하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세상에. 조선은 덩치가 옆으로 크다면 솔로몬이라는 나라 사람들은 위로 쭉 뻗어 있군. 그리고 옆에 있는 옆으로 더욱 커다란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사지가 호리호리함에도 근육이 살아있는 마사이족의 모습도 대단하였지만 단순한 비만이 아니고 살 아래 근육이 씰룩거리는 폴리네시아인 선원들의 모습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톨가는 몽골 출신이라는 자존심을 걸고 배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섰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나는 조선 탐험대 소속이자 한때 몽골의 탐마로 일하였던 톨가이며 뒤에 녀석들은 탐험대에 소속된 부하들과 우리에게 합류하여 길 안내를 한 부족민들이지요.”
“조선에서 탐험대를 보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벌써 도착하였다고? 우리 예상대로라면 한 달 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발이 참으로 빠른 사람들이로군. 나는 솔로몬 제국의 개척단 대표인 아론이요. 조선에도 다녀온 적이 있지.”
거의 머리 반 개 차이가 나니 톨가도 자연스럽게 기세에 억눌릴 지경이었지만 자기는 엄연히 조선에 소속된 사람이며 지금의 대화도 조선의 말로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강인한 전사에 대해 알고 싶은 톨가는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면 이 머나먼 곳에 와서 뭘 할 작정이십니까? 듣자 하니 조선에서는 사람이 넘쳐나 먼 땅에 사람을 풀어놓기 위해 왔다 하는데 다른 목적이 있을 것 같군요.”
“농사를 짓기 위해 왔네. 우리가 머무는 땅은 질병과 맹수가 들끓으니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라 어쩔 수 없이 이 머나먼 땅으로 건너왔네.”
“이렇게 담대한 체격을 가지셨는데 농사를 짓기 위해 건너오셨다니요? 그 동네에는 대체 어떤 괴물들이 살기에 전사임이 분명한 사람들이 그런 힘든 길을 택하셨습니까?”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좋겠지. 거기! 상아 하나 가져와!”
인도코끼리보다 거대하고 단단한 아프리카코끼리의 상아를 보자 톨가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이 몸에 두른 짐승 가죽만 보아도 어중간한 전사보다 강대한 이들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들도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런 거대한 짐승들이 활보하는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이 땅에서 목화를 기르면 좋을 것 같은데 자네들에게도 언젠가 우리가 수확한 목화 옷을 입혀주겠네.”
“저희야 짐승가죽이 더 좋은데 사냥이나 한번 나서보지 않겠습니까. 이 땅이 지나치게 넓으니 사냥할 짐승들도 지천에 널려 있을 게 분명합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소리로군. 혹시나 시일이 된다면 자네들을 우리의 고향으로 초청하고 싶다네. 자네 같은 전사들이 있다면 사자도 코끼리도 쉽게 잡을 수 있겠지.”
“사자는 호랑이와 견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니 몸을 단련해 두겠습니다.”
민족은 달랐지만 언어는 같았기에 서로 전사로서의 대화를 나눈 톨가는 솔로몬 개척단의 배를 타고 조선의 거점인 북야호로 돌아왔다.
바로 권율에게 보고를 올리자 권율도 이를 놓치지 않고 다시 확인하였다.
“솔로몬국 사람들의 말이 맞네. 뭘 하여도 차근차근 바닥부터 일을 진행해야지. 자네들이 찾아낸 부족이 와제리, 잉가다(Yinggarda), 바디마야, 아만구, 그리고 유아트 부족이라 하였는가?”
“상세한 분류를 따지자면 각 부족마다 지파가 최소한 열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하였지요. 더군다나 경로에 없어서 방문하지 못한 부족들도 제법 있습니다.”
“내 예전 기록을 살펴보니 청해군 한명회가 호주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볼 적에 해안가에 들러 배를 수리하면 떠난 뒤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하였네. 아직 남은 부족들이 많지 않겠는가.”
“하긴 명나라보다 큰 땅이라 하였는데 저희가 본 땅은 기껏해야 조선보다 조금 넓은 지역에 불과하지요. 그럼 저희는 탐험을 계속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일세. 가급적 많은 길을 확인하고 많은 부족을 확인하게. 자네들이 발견한 땅에는 사람을 보내 농사를 짓도록 할 것이니 자네들이 돌아올 때쯤이면 효과가 있을 걸세.”
홀가분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고 나오는 톨가와 탐험대를 배웅한 권율이었지만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묘사만 들어도 이 땅이 얼마나 건조하고 가혹한 환경인지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다시 간략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농사와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는 이는 이덕형이었는데 권율은 이덕형과 휘하 관리들을 불러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나저나 참으로 골치 아픈 땅일세. 솔로몬 제국에서 점유한 남서부의 광계 일대에는 그럭저럭 날씨가 선선하고 비가 자주 내린다 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니. 이래서야 농사를 지을 방법이 없군.”
“여의치 않으면 농사를 포기하고 탐험대의 의견대로 양과 말을 기르며 목축을 실시해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아예 이 땅으로 일가친척을 모조리 불러올 생각 같습니다.”
“그래도 농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다네. 말은 평상시에는 건초와 생초(生草)를 먹지만 어느 정도 자라 사람을 태우고 다니려면 곡식을 먹이고 훈련해야 하지 않는가.”
권율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말의 훈련 때문이었다. 말을 기르려면 풀을 먹을 수 있는 초원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말이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올리고 달리게 만들려면 충분한 곡식이 필요하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식을 계속 먹으며 짐을 끌거나 사람을 올리고 격렬한 운동을 반복하며 계속 훈련시킨다. 능력이 떨어지는 말은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말고기가 되지만 능력이 좋은 말은 근육이 솟아오르며 사람을 태우기 적합한 말로 강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곡식을 기를 수 있는지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한 광활한 땅이 있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권율은 점잖은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이덕형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일단 드넓은 초원이 있으니 각 부족으로 사람을 보내 북원 출신 탐험대를 배정하여 말을 기르고 양을 방목하도록 하세. 여기에 물이 적어도 잘 자랄 수 있는 밀과 귀리, 그리고 옥수수를 심어서 수확이 가능한지 확인하도록 하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북인들이 여기에 없어서 참 아쉬울 뿐이군요. 몸값이야 비싸지만 이런 자리에서 그들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 친구들은 비싼 몸값을 다른 데서 받아낼 일이 생겼으니 염려하지 말게나. 일단 자네가 대염호(맥레오드 호수) 남부로 나아가 탐험대가 발견한 다섯 부족의 송사를 간략히 처리하게. 자네는 물론이요, 교수관(敎授官) 몇 명을 붙여 부족들을 가르치도록 하겠네.”
정착과 개척을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으니 산적한 업무가 더욱 늘어날 예정이었다.
당장 부족 간의 알력다툼이 일어날지도 모르며 탐험대가 어떤 이상한 물건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 * *
한 달 뒤, 와제리를 시작으로 각 부족에 배정된 조선 출신 농부들은 광활한 땅을 보고 감탄하였으며 이 땅에 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에 절망하였다.
그들은 어떻게든 소로 밭을 일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뭐 이딴 땅이 다 있어? 강이 있기는 한데 이게 강이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모래 뻘이라 불러야 하나. 여기를 강이랍시고 부르는 저 양반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아무리 보아도 논을 만들기는 글러 먹었고 밭벼도 만들 수 없는데 이래서야 쌀을 기를 수 없잖아! 우리는 찰지고 고슬고슬한 맛이 넘치는 쌀을 원하는데 이런 개고생을 해서 뭘 하냐고!”
“저 시커먼 친구들은 우리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지켜보는군. 뭐라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오히려 기운이 빠지고 있어.”
와제리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부족 입장에서는 기괴하다 못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이는 이들이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언제나 수렵으로 자신이 먹을 만큼의 짐승만 사냥하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따라 해보는 부족민도 있었지만 쇠로 만든 쟁기가 간혹 튕겨 나갈 정도로 단단한 땅이라 오히려 나무가 부러지며 손을 다치기에 십상이었다.
하지만 평생 땅을 일궈온 농부들은 어떻게든 이 땅을 일구어 옥토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거 밀밥은 밥이 아닌가? 옥수수밥은 밥이 아니고? 여기서 농사를 시작해 땅을 잔뜩 개척하면 밀을 팔아서 쌀을 사 먹을 수 있는 법일세. 당장 우리가 먹는 밥이 어디서 왔는가.”
“그럼 더 열심히 일해야지. 이 동네는 겨울이 없다 하였으니 한 해에 두 번 농사를 짓고 남을 수준일 걸세. 그나저나 퇴비도 열심히 만들어야 하는데 소똥도 없어서 골치가 아프군.”
처음에는 스스로 사냥터를 무너트리고 땅을 헤집는 조선인들을 이해할 수 없어 방치하였던 부족민들이지만 언제나 근면하게 나서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였다.
어느덧 부족민들도 농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몇 명을 배정하여 이들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이고 물 고맙네! 그나저나 이놈의 나무도 베어내야 하는데 자네들이 손을 좀 빌려줄 수 있겠는가? 거기 자네? 지금 뭘 하나?”
“달다, 먹어.”
“이게 포도야 뭐…… 으악! 이건 개미잖아! 자네 지금 뭘 하는 거야! 이걸 먹는다고?”
호주 서부 사막에 서식하는 개미 가운데 원주민들이 가장 진귀하게 여기는 음식이 있었으니 다른 무엇도 아닌 꿀단지 개미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작은 포도 크기로 부풀어 오른 배에는 사막에서 채취한 꿀이 잔뜩 들어 있었다.
농부들이 고개를 저으며 먹지 않자 청년들은 자신이 챙겨온 꿀단지 개미를 한 마리씩 잡아 배를 똑 따서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한 농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개미 한 마리를 입으로 가져가며 망설이다 말하였다.
“그래, 자네들 몸에 흙이 잔뜩 묻어 있으니 며칠 동안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이걸 찾아왔겠지. 굶주리면 개미 똥구멍도 빨아먹는다던데 이게 얼마나 시큼할? 꿀만큼 달달하잖아?”
“방금 전 만들어낸 조청보다 훨씬 달군. 이런 짐승이 세상에 있다니 믿을 수 없네.”
“이 친구들이 이렇게 이상한 개미를 먹는다 해서 좋은 일이 아닐세. 우리야 힘을 좀 쓰면 조청을 쑤고 사탕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단맛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농사를 더욱 열심히 지어 옥수수엿이나 쑤어주면 어떻겠나.”
다시 의욕이 생겨나 좀 더 빨라진 괭이질은 어느덧 결실을 맺었다. 거의 다 말라 버린 강물 대신 우물을 파내 지하수를 끌어내며 파종까지 성공하여 곡식이 나날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간혹 자라나는 곡식을 노리고 마을로 접근하는 캥거루는 부족민들이 단숨에 처리하여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마침내 햇곡식의 수확이 처음으로 시작된 1587년 12월, 마을에서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아직 작황이 좋지 않아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도 없었고. 처음에 죽은 곡식들을 뽑아내 새로 심은 덕분에 본격적인 수확은 한 달 뒤에 있을 예정이지만 뭐 어떤가. 다들 들게!”
캥거루 꼬리를 푹 고아낸 꼬리곰탕부터 용봉탕이랍시고 거북이와 거위를 잡아 끓인 탕과 농부들의 솜씨로 만들어낸 산적까지.
모두 원주민이 즐겨 만든 식재료였지만 조선 특유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축제의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옥수수였다.
장작불에 천천히 구워진 옥수수에 소금을 조금 뿌려 내밀자 처음 보는 옥수수에 고개를 갸웃거린 원주민들이었지만 갓 수확한 옥수수의 은은한 단맛에 반하여 파먹기 시작하였다.
“거 이 친구 사레들린 것 같으니 물이나 좀 가져오게. 지난 여섯 달 동안 죽어라 고생했는데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되었어! 앞으로 열 배는 넘는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으니 모두 한 달 동안 배불리 먹을 걸세.”
“이 친구들도 농사에 맛 들이면 수맥을 찾는 것도 일이겠군. 강물이 없으니 모조리 우물을 파내야 하는데 우물을 잘 파낼 수 있는 사람 어디 없으려나?”
원주민들은 순식간에 옥수수를 먹어치우며 캥거루 꼬리로 우려낸 꼬리곰탕을 들이켜고 용봉탕에서 풍겨오는 된장 냄새에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새로운 맛에 적응하여 정신없이 흡입하는 모습을 본 조선인들은 지난 고생에 눈물을 훔쳤다.
이번 농사는 옥수수 외에는 실패하였지만 앞으로 밀과 귀리 그리고 콩을 비롯한 각종 농사를 성공하면 마지막으로 쌀까지 농사를 지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축제 다음 날. 밭을 점검하러 나간 농부들의 앞에는 기괴한 생명체들이었었다.
“이건 또 뭐야! 이 거대한 새는 대체 뭐냐고!”
“야! 이놈의 새끼들이 우리 옥수수 다 먹어치운다! 몽둥이 가져와!”
너무 이른 새벽에 일어난지라 원주민들도 눈을 부비고 세수를 할 시간이었기에 오로지 조선인 농부 열 명이 밭으로 나섰을 뿐이었다.
하지만 광활한 밭에는 거대한 에뮤 수십 마리가 닥치는 대로 농작물을 뜯어먹고 있었다.
-꾸루룩! 꾸우욱! 꾸우우우욱!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수백 배는 키운 것 같은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조선 농부들을 바라본 에뮤 떼는 다짜고짜 여물지 않은 옥수수를 집어 삼키고 쪼아 먹으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농작물을 지키려는 농부들이 쟁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놈의 새대가리 새끼들이이이이이!”
“맹수 없다면서! 맹수가 없는데 이런 거대한 새가 있냐! 입록(캥거루)처럼 쫓아버려!”
단독 생활을 즐기는 캥거루였다면 위협으로 쫓아낼 수 있었지만 에뮤는 집단으로 모여 밭을 공격하였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뒤로 달아난 에뮤였지만 열 명에 불과한 농부가 전부임을 확인하자 역으로 고함을 내며 농부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살려줘!”
두툼한 발에 걷어차인 농부가 바닥을 구르니 수많은 부리들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삽시간에 사람 한 명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에뮤들은 멈출 줄 몰랐다.
“거기 김 서방 끌고 와서 당장 도망가! 마을 사람 불러오라고!”
사력을 다해 에뮤 떼를 피해 달아났지만 에뮤들은 승리의 울음소리를 내며 아직 덜 익은 옥수수를 정신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잠시 뒤 마을 청년들이 모여 들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내 땅…… 내 옥수수……. 이 새대가리 새끼들이! 갑자기 떼로 몰려든 거냐고!”
평상시에는 소규모 무리를 끌고 다니며 풀을 뜯어 먹는 에뮤였지만 거대한 밭은 동물 입장에서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주변을 돌아보며 정탐하다가 사람이 사라진 틈을 타서 큰 무리를 만들어 기습하였으니 이는 예정된 참극이었다.
하지만 농토가 에뮤 떼에게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몽골 출신 탐험대였다.
마을에 들러 보급을 실시하려던 이들의 앞에는 온몸에 피멍이 들어선 김 서방이 부축을 받은 채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