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66화
2부 24장 3화 개척(2)
원주민에게 조선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재배하게 한 이유는 선물의 의미도 있었지만 재배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사전에 진단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의 지식을 발휘하니 몇 년 만에 쌀을 대량으로 재배하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지나치게 더운 기후라 조선에서 주로 먹는 단립종 쌀이 아닌 길쭉한 장립종 쌀이 주력이었다.
“이 쌀은 그럭저럭 먹기에 좋은 녀석이군. 향과 질감이야 다르지만 쫀득쫀득하게 찰기가 있으니 떡도 찧어 먹을 수 있겠어. 하지만 역시 쌀이라 하면 아국의 쌀이지.”
하지만 평범한 장립종 쌀과 달리 권율이 먹는 밥의 쌀알은 길쭉해도 어느 정도 찰기가 있어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었다.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은 권율은 숭늉을 들이켠 다음 사위 이항복과 주변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에 부친께서 여송(필리핀)에 부임하실 적 이야기를 들었지. 숟가락에서 부슬부슬 떨어져 내려 맨손으로 밥을 움켜쥐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몸서리를 치셨네. 나중에 여송에 부임하여 보니 왜 몸서리를 치셨는지 알 수 있더군.”
“장인어른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찰기가 아예 없는 쌀이라니 그게 쌀입니까?”
“하지만 새로 구한 쌀은 찰기가 있으니 감내할 수 있지 않은가. 듣자 하니 대월(베트남)에서 산을 일구는 화전민들이 먹는 품종이라 천대받는다 하였는데 이런 쌀을 천하게 여기다니.”
“세상의 식성은 모두 다른 법이 아니겠습니까. 혹여나 구주에는 기름을 퍼먹으며 맛있다 여기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애 대감께서 이런 이들과 만나면 어떻게 대응할까요?”
권율도 파양군에 부임하며 이미 유럽인들과 만나보았지만 그런 괴팍한 식성을 자랑하는 이들은 없었다. 채소를 등한시하고 고기에 환장하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식성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권율은 싱긋 웃으며 답하였다.
“그 친구라면 기름을 줄이는 식단을 권고해 본 뒤 여전히 기름을 퍼먹으려 하면 아예 됫박으로 먹일 음식을 만들걸세. 내가 친구 사이이니 잘 알고 있으니 혹여나 다른 소리는 말게.”
“저도 장인어른과 내기를 하여 이긴 전적이 없으니 이를 술자리에서나 쓰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의 정반대에 왔어도 이항복은 언제나처럼 능글맞은 태도를 보이며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였고 그의 친구 이덕형은 목석같은 태도로 매사에 임했다. 권율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유성룡의 아들 유여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조만간 환갑을 바라볼 나이인데 저런 훌륭한 이들이 최전선에 나서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없겠군. 하지만 저들의 앞길을 막을 이유가 없으니 열심히 업무를 진행해야지.”
권율을 비롯한 직위가 높은 관료들에게 부과된 업무 또한 산더미 같았다. 그의 휘하에 배속된 젊은 관리 강항은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권율에게 업무가 보고된 서류를 전달하였다.
“전체적인 농지 개척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일전에 서애 대감께서 만드신 도시 계획을 토대로 움직이며 간혹 토질이 엉망인 구획은 아예 공지(空地)로 만들어 퇴비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것 참 반가운 소리로군.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북원에서 이주한 이들의 문제가 제법 있습니다. 탐험대로 배정된 이들이나 목축을 실시하는 이들은 전체적으로 불만이 없지만 이들의 아내가 불만을 많이 털어놓더군요.”
서류를 확인한 권율은 인상을 찌푸리며 내용을 확인하였다. 조선의 여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거들고 베틀을 놀려 옷감을 짜내지만 유목민 여성은 농사에 참가하지 않고 목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산물을 가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호주는 지금 막 개척을 실시한 땅이기에 마땅한 소득도 없고 가축도 적응 단계에 불과하다. 결국 할 일이 없는 이들이 자신들에게도 일을 달라며 항변하기 시작하였다.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축이 번성하여 일이 해결되겠지만 당장에 해결하기엔 곤란한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가축들이 영 힘을 쓰지 못하니 더욱 문제일세.”
“실은 불만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주변 부족민들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탐험대를 목격하고 선물을 더 달라 하더군요. 호주에는 말이 없으니 망아지만 보아도 수십 명이 몰려들어 하루 종일 구경한다 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군. 북원에서 이주한 이들의 아내를 시켜 부족민들에게 기마술을 가르치게 하게. 어차피 북원의 여인들도 아국 기병만큼 말을 잘 놀리지 않는가.”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하겠군요. 아국의 여인들은 입신체비로 몸을 단련하지만 북원의 여인들은 젖을 뗀 다음에는 걷는 대신 말을 타고 돌아다닌다 하였습니다.”
아마 말을 탄다고 신나서 달려든 부족민들이 혹독한 훈련을 겪고 학을 떼겠지만 그거야 알아서 적응할 일이다. 만약 말에 익숙해진 부족들이 주변 부족을 공격한다면 모르겠지만 뭐든 익혀도 우호적 관계이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사소한 문제는 적당한 선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라 말하고 커다란 문제에 대해서는 현장을 보고 판단하기로 정하며 서류를 하나씩 처리하던 권율에게 급보가 도착하였다.
방금 전에 닿은 연락선에서 달려왔는지 헐떡거리는 장수가 서신을 전달하였다.
“관찰사 대감께 장계가 도달하였습니다. 천축을 통해 도달한 솔로몬국의 서신인데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라 하였습니다.”
“솔로몬국이라. 어차피 내년 초에 도착하기로 한 사람들인데 벌써 장계를 보내?”
조선의 호주 개척 시작은 1586년 음력 11월에 시작되었고 지금은 1587년 음력 3월이다.
본래 1588년이 다 되어야 솔로몬의 호주 개척단이 도착하기로 하였지만 시기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지만 서신을 보니 급보라 불릴 만한 내용이었다.
[조선의 관리인 호주 관찰사 권율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같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솔로몬 제국은 신농도인(폴리네시아인)을 고용해 호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였습니다.]
“몸이 달아오른 솔로몬국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으니 급히 사람을 보냈겠군. 본래 천축을 통해 호주로 도착하기로 하였지만 오사만국(오스만 제국) 해적들을 피할 항로를 마련했는가.”
권율은 어느새 지도를 가져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이미 해양 전통을 다량으로 축적한 조선은 지형을 묘사한 지도는 물론이요 해류를 묘사한 지도도 함께 활용하고 있었다.
솔로몬 제국에서 보낸 기름종이에는 새로 발견한 해류와 풍향이 기입되어 있었고 이는 권율이 가지고 있던 지도 위에 겹쳐졌다.
한참을 확인한 권율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필 남양도(南陽島: 마다가스카르)에서 시작하는 해류가 호주 남서부에 닿다니.”
약 200년 뒤 만들어질 남위 40도 인근의 클리퍼 항로(the Clipper route)를 폴리네시안 함선을 고용해 더욱 이른 시기에 발견한 위업을 달성하였지만 권율은 이 항로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뛰어난 항해사로 소문난 한명회도 학을 뗀 격류인 남극 해로를 활용하는 항로이니 사고 위험성은 어마어마하리라.
하지만 바르바리 해적으로 인한 피해를 입느니 차라리 항해 중 파손을 감당하기를 원할 뿐이었다. 진정한 문제는 두 거점 간의 거리였다.
“이렇게 되면 솔로몬국에서 호주 남서부에 닿기는 쉽지만 아국이 개척한 북야만과 접촉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호주 남서부와 북부 간에 배로 오갈 방법이 없는데 참 난감한 일이군.”
이렇게 되면 솔로몬 제국의 호주 개척 의지를 꺾을 방법도 없다. 약간의 위험을 담보로 고작 한 달 만에 닿을 수 있는 좋은 항로를 포기하라 하면 동맹국으로서 지나치게 내정에 개입하는 꼴이다.
권율은 이를 악물며 명령을 내렸다.
“탐험대를 당장 소집하게. 드디어 새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으니 이들의 힘이 필요하다네.”
지난 한 달 동안 일대의 사막을 오가며 탐험 예행연습을 진행한 몽골 탐험대의 피부는 이미 시커멓게 타들어 가 있었지만 눈빛은 총명하였고 온몸의 힘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술을 한 잔씩 건넨 권율은 이들을 다독이기 시작하였다.
“한 번 다녀와 보니 어떠한가? 자네들이 거주하던 막북(漠北: 고비사막 북쪽)과 비견한다면 제법 더운 고장이겠지. 하지만 견딜 수 있는 더위가 아닌가?”
“더위야 그렇다 쳐도 추위가 없으니 그럭저럭 견딜 수 있더군요. 그나저나 막북이라 하시니 이놈의 세상이 천지가 뒤집혀서 북쪽과 남쪽이 혼동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야 그럴걸세. 세상의 반대에 있으니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북쪽에 머물다 서쪽으로 사라지며 그림자는 남향으로 생겨나지 않는가. 그나마 나침반이 있어서 크게 혼동되지는 않았을걸세.”
탐험대로 배정된 이들의 기후 적응도 어느 정도 끝났으니 권율은 본격적인 업무를 주선하려 하였다.
다소 급하고 지나치게 먼 거리이긴 하지만 이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사막에서 시달렸음에도 몸이 멀쩡한 것을 보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자네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네. 여기서 머나먼 남서쪽에 있는 해안가에 솔로몬국의 개척단이 도착한다네. 그러니 그들과의 육로를 확인하고 이를 탐험하여 면밀히 보고하게.”
“이 머나먼 길을 배 위에 올라 옮겨왔는데 저희가 굳이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북야만에서 배를 타고 솔로몬국이라는 사람들이 도착할 장소로 가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가능은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문제라네. 호주(壕州)는 해자 호(壕)를 써서 호주라네. 그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흐르는 해류가 도랑처럼 흐르니 북부에서 서부로 내려가면 머나먼 바다까지 나아갔다 다시 돌아와야 하지. 결국 한 달 가까이 시일을 허비한다네.”
뛰어난 항해사 한명회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없어 결국 호주 북부에서 시작해 동부를 그리고 남부를 거치고 결국 호주를 완전히 한 바퀴 일주한 기록을 남겼다.
근대가 되어 증기선, 더 훗날에 사용하는 디젤엔진을 포함한 동력선이라 하여도 효율성 문제로 난항을 겪는 항로를 범선으로 역주할 길이 없으니 권율도 어쩔 수 없이 탐험대에게 지시를 하달하였다.
“그러니 자네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네. 호주 북서부에 위치한 대염호(大鹽湖: 맥레오드 호수) 북방에 위치한 마을에 자네들을 내려주겠네. 거기서 약 이천 리(800㎞)를 남하하여 청해군이 광계(光啟: 현 호주 퍼스)라 칭한 장소로 향하게나.”
“이천 리라. 예케 몽골 울루스가 전성기에 거느렸던 파발이라면 삼 일 이내에 주파하겠지만 저희는 엄연히 탐험대입니다. 한 달 가까이 걸릴 텐데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자네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네. 탐험을 시작하되 이번 탐험은 약탈이나 정벌이 아닌 길을 뚫는 것임을 명심하고 움직이게나.”
이미 조선과의 연락이 닿아있는 멕레오드 호수 인근에 도착한 탐험대는 머나먼 남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때 바다였다 이제는 거대한 호수가 된 멕레오드 호수를 본 톨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거대한 염호가 예케 몽골 울루스에 있었다면 호수 일대의 부족들은 갑부가 되었을 거야. 저 거대한 호수 전체가 다 소금밭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저 거대한 호수가 비쩍 마를 정도로 비가 내리지 않는 고장이 아닙니까. 이래서야 이놈의 정수기가 필수겠는데요.”
호주의 거대한 사막을 전근대의 장비에 의존해 건너는 것은 끔찍한 고난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가을이 지나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라도 일대의 기온은 30도가 가뿐히 넘어갔다.
지나친 풍화작용으로 평지나 마찬가지인 호주의 초원은 삽시간에 사막이 되었다 다시 바람에 풀이 드러나길 반복하였으며 몽골 탐험대는 나침반과 태양에 의지해 강을 따라 움직이며 길을 개척하였다.
“사막에 초원, 또 사막에 초원이고 가끔 바위라. 이 얼마나 좋은 풍경인가. 그나저나 강물 맛은 여전히 소금 맛이 나는가? 아예 소금이 번질거리니 말할 것도 없군.”
톨가를 선두로 한 탐험대는 한 지류를 만나 마실 수 있는 물인지 확인하였지만 지나치게 거대한 사막을 통과하며 각종 염류(鹽類)가 녹은 강물은 지독한 짠맛이 밀려왔다.
어느덧 천막을 펼치고 모닥불을 태워 쉴 준비를 마친 탐험대는 사방으로 흩어져 먹을 것을 찾아냈으며 개중 한 명은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알을 찾아냈다.
“그건 또 뭐야? 웬 새알이 그렇게 크고 녹색이야? 크기가 자네 손바닥보다 거대한데?”
“밤중이라 잘 확인하지 못했는데 크고 시커먼 짐승이 꽥꽥 소리를 내며 도망친 자리에 둥지가 있었고 거기에 이런 거대한 알이 있더군요. 이걸 뭐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난생 처음 접한 에뮤 알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던 탐험대였지만 손동작은 빨랐다. 귀퉁이를 깨어 날 에뮤 알을 후루룩 빨아먹은 톨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런 좋은 물건이 있으니 육포를 왜 씹는가. 이 녀석 알은 한 알만 먹어도 배가 터질 것 같은 데다 한 배에 스무 개는 낳으니 참 대단하군. 그나저나 물은 다 끓였는가?”
“거의 다 끓여 갑니다. 조선에 신기한 기물이 많다지만 짠물을 끓여 맹물을 만드는 도구는 처음 보는군요. 여기에 찻잎을 좀 넣으면 바로 차가 되니 참 귀중한 물건입니다.”
탐험대도 물은 많이 챙겨왔지만 반드시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비축한 물을 아끼고 가급적 현장에서 조달하는 편이 좋았다.
금속 통 두 개를 엮어 만든 원시적인 증류기로 물을 걸러낸 뒤 바로 찻잎을 넣자 톨가의 말대로 즉석에서 차가 완성되었다.
“탐험하니 힘들지만 참 좋은 땅이야. 여기에 낙타 좀 기르고 양이나 수천 마리 정도 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는데.”
“호인이라 불리는 녀석들이야 조선에서 배워서 곡식이나 만들게 하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그 녀석들 근육 하나는 제법 우람해서 조선 사람과 흡사하던데요.”
느긋한 태도였지만 오늘 하루도 식량을 구하고 물을 만들면서 160리(64㎞)나 생소한 길을 주파한 이들이라 볼 수 없는 여유였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몸을 눕히려는 탐험대였지만 한 사람이 귀를 쫑긋거리더니 급히 천막을 박차고 나갔다.
“잠깐! 적이다!”
수많은 적과 싸워온 이들이기에 주변의 인기척을 순식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의 부족들이 밤이 되자 멀리서 보이는 모닥불로 몽골 출신 탐험대의 접근을 뒤늦게 알아차렸고 횃불과 무기로 무장한 채 저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닥불을 꺼뜨리고 짐을 대충 정리한 채 말에 올라 언덕으로 올라온 탐험대는 주변을 어설프게 에워싼 부족 장정들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들 기준에서 부족민들은 제대로 싸울 준비조차 갖추지 못한 애송이들이었다.
“이건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기껏해야 돌칼에 돌창으로 쇠로 만든 무기를 당해낼 수 있다 생각했나? 그리고 활 대신 저 막대기를 집어 던지려는 생각인가?”
“이봐, 자네! 교수관(敎授官)께서 우리를 가르치실 때 부마랑(부메랑)인지 뭔지 하는 도구를 호인들이 자주 사용한다고 가르친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나? 저게 무기란 말일세.”
“참 내 원, 금나라 찌꺼기(여진족)처럼 억지로 벼려낸 무기를 들고 있다면 모를까. 저래서야 자기 몸조차 지킬 수 없을 텐데.”
고작 스무 명에 불과한 탐험대지만 백여 명의 호주 원주민이야 밥 먹고 운동하듯 간단하게 몰살시킬 수 있는 이들이었다.
달려나가며 활을 쏘고 대열이 뭉개지면 난입하여 칼과 창을 휘두르면 갑옷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이니 삽시간에 몰살당하리라.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조선에 소속된 입장이니 평상시처럼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탐험대의 대장인 톨가는 점점 높아지는 고함과 악기소리를 들으며 명령을 내렸다.
“퇴각하지. 만약 저들을 몰살시키면 인근으로 숨어들어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테니 괜한 화는 만들지 않는 것이 답이야. 사람이 있다면 역참(驛站)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겠는가.”
어스름이 짖게 깔리고 있었으니 내일 낮이 밝으면 이들과 만나 대화를 시작해야 하리라. 말이 통할지는 몰랐지만 손짓과 발짓으로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한 것이 세상일이라 생각한 톨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