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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61화 (461/573)

근육조선 461화

2부 23장 18화 수확(1)

세부적인 논의도 계속 진행되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약재를 받는 상황이 아니고 조정과 천주교 전체간의 거래이니 이 거래가 성사되려면 조선 선교라는 대전제를 완수해야 한다.

“스물세 종의 약재의 종자와 일부 독성이 있는 약재의 묘목을 포함한 거래 목록을 작성하였소이다. 하지만 이를 전하려면 아국에 천주교를 선교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법이오.”

“물론입니다. 약재의 종자는 미리 사람을 보내 모아 두었다가 논의가 완료되고 조선이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주신 이교(異敎)라는 제목의 지시문에는 천주교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이미 조정의 뜻이 어느 정도 일치되어 천주교의 전파를 허용할 예정이지만 기존 풍습과 대치되는 사항이 없도록 유념하라는 내용이 있더라.

만에 하나지만 제사와 관련된 논쟁이 이어지다 결국 천주교 선교 허가가 없던 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거야 내가 마지막 조정 과정에서 강권하면 될 일이지만 내 힘으로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이건 좀 궁금해지니 물어봐야지.

“혹여나 아국이 천주교의 선교를 거부한다면 어찌하겠소? 그리되면 수많은 사람을 파견하여 거둬들인 약재가 무용지물이 되는 법이 아니오.”

“그걸 그대로 펠리페 2세에게 보내면 되니 큰 손해는 아닙니다. 본래 선교 활동에서 찾은 약재는 예수회가 선교 자금을 만들기 위해 독점하여 관리하지만 머나먼 동방에 선교의 길이 열린다는 말은 소모자금이 대폭 축소된다는 말이지요.”

이들도 사람이고 다 생각이 있는 법이었다. 조선이 천주교 선교를 허용한다는 말은 곧 국가가 책임지고 천주교 선교사들을 받아들인다는 말과 같다. 결국 조정의 힘이 개입된다는 뜻이다.

자금 지원은 없어도 선교나 교회 건립과 관련된 허가 문제를 조정에서 어느 정도 해결해 줘야 하는 법이다. 이를 감안하면 자기들이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약재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을 넘어선다는 계산이 나왔으리라.

그 계산에 말라리아 치료제가 없지만 예수회 선교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말라리아 치료제를 넘겨줬다는 사실이 퍼지면 조정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해줄 것이다.

지금은 서로 이득만 보았다 생각하고 악수를 나누며 대화를 정리했다.

“부디 이 약재들이 조선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번성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길 바라겠소. 그리된다면 내 직접 도성에 교회 하나를 설계해 줄 생각도 있소이다.”

“머나먼 서방에 명성이 알려진 분이 교회를 직접 설계해 주신다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첫 교회는 작게 세워야지. 농담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건축은 작은 녀석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백 년은 잡고 진행하는 대공사니까. 고작 삼백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교회라 해도 석조로 만들면 십 년은 걸리는 법이다.

수집한 도면같이 거대한 녀석이면 시멘트를 사용해도 내 손자가 팔순이 다 되어서 완성하겠다. 그때쯤 되면 경신대기근을 비롯한 소빙기의 기후 폭탄이 찾아올 테니 제대로 완공될 수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페르디난도가 반색을 하며 찾아왔다.

“논의가 잘 끝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다행입니다. 혹여나 예수회 수도사들이 조선과 협조하길 거부하면 어찌하나 노심초사하였는데 다행히도 일이 잘 진행되었군요.”

“물론입니다. 대공께서 심혈을 기울여 주시니 모든 논의가 잘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면 이제 더 이상 피렌체에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 마음이 갑갑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염치없게도 한 가지 청이 있는데 제법 귀찮은 일이니 들어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제법 귀찮은 일? 이런 사람이 귀찮은 일이라 하면 실제로는 그리 귀찮지 않은 일이지만 체면을 생각해 정중히 권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손님의 입장으로 주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법이니 흔쾌히 답했다.

“귀찮은 일이 늘어난다면 근손실이 심해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대공께서 저희를 대접하여 마음을 즐겁게 하였으니 근손실 정도야 돌아가서 무마하면 되는 법이지요.”

“다빈치가 저술하길 근육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실된다 하였는데 아닙니까? 일단 그 신비한 일은 되었고 토스카나 공국에 조선 사절단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자 각지의 귀족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머나먼 동방에서 방문한 진귀한 손님이다. 이런 이들을 맞이하였다면 가문 대대로 영광이라 생각할 것이다.

우리도 지방 곳곳의 사정을 알게 되면 훗날 각종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니 당연히 수락하였다.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니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겠군요. 그리 긴 시일은 아니지만 로마에서 다른 관원들이 논의를 거듭하는 넉 달 동안 몇 군데를 방문해 보겠습니다.”

“그러하면 제가 추천하는 몇 명의 제후를 방문하여 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조선 사절단이 다녀오시는 동안 저는 다빈치의 작품과 각종 저술을 필사하여 돌아가는 길의 선물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매끄러운 손놀림으로 추천장을 작성하는 페르디난도의 모습을 보니 시간만 때울 게 아니고 각지의 제후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조선을 비롯한 동방 문화를 퍼트리기 위해 불을 지폈으면 여기에 바람도 불어넣고 땔감도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 * *

페르디난도의 추천대로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수많은 제후국은 조선 사절단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었다. 이들 대다수가 피렌체를 시작으로 한 동방 문화를 접촉하여 조선을 비롯한 동방의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대접이 시원치 않아도 오히려 좋았다. 이미 페르디난도가 정보를 뿌려댔는지 지나친 사치는 권하지 않고 적당히 우리를 대접하며 접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바이에른 공작인 빌헬름 5세는 벌써 이틀째 간소한 식사를 마치고 나와 면담을 즐기고 있었다.

“요즘 점성술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점성술의 근본은 천문인데 천문 관측에 가장 능한 자가 근래에 명성을 떨치는 티코 브라헤이니 내 직접 초대하여 여러 사실을 물어보았지요.”

“저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소변을 지나치게 참다가 결국 근처에 요강을 두고 천문을 관측하는 기행을 벌였던 학자이지요. 그 학자가 무어라 말했습니까?”

“조선의 천문 관측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비범하니 자신이 그 학문을 받아들여 최고의 학자가 될 것이라 자부하더군요. 이 소식이 널리 퍼져 사치를 극도로 경계하는 저조차도 동방의 문물을 사들이기 위해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놈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도 암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듣자 하니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예술품을 수집하고 점성술과 연금술에 빠져들었다 하던데 한 명 걸러 한 명이 암군이라니 점점 만력제가 정상인으로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지는 않는다. 황제가 예술품을 수집한다는 말은 아래에 있는 제후들도 자신의 체면치레를 위해 예술품을 수집하게 되게 마련이니까.

좋은 거래대상을 또 찾았으니 포도주를 비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아국은 명국보다 영토와 인구가 적다 하여도 강역에서 산출되는 물산이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이미 접견하시면서 수많은 물산을 확인하셨으니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깃털과 금붙이를 결합해 만든 미술품(점취)도 마음에 들고 도자기도 옥색 비단도 마음에 들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으니 문제이군요. 시종장을 시켜 제 수집품을 가져올 것이니 조선에서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숙소로 돌아가자 시종장이 귀중한 물건인 듯 비단에 감싼 녀석을 보여줬는데 나전칠기로 만든 상자였다.

하지만 조선에서 사용한 양식이 아니고 명백한 성화(聖畫)가 사방에 새겨져 있었다. 황당한 마음에 사절단에 포함된 소목장을 불러 물어보았다.

“이게 칠기가 맞는가? 나는 이런 칠기를 난생처음 본다네. 전복 속껍질이 아니고 금과 은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 아무리 보아도 아국 양식은 아니군.”

“색조나 형태를 보면 왜인들이 만든 물건이 분명한데 묘사된 회화는 구주의 것이 분명하군요. 저도 소목장(小木匠)으로 이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지만 이런 물건은 난생처음 봅니다.”

“그러하면 답이 나왔군. 왜인들이 도안이나 형태를 서반아 사람들이 주문한 대로 생산하는 것이 분명하다네. 이런 물건이니 불티난 듯이 팔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조선의 나전칠기는 서양에서 보이지 않는데 일본의 나전칠기는 귀중하게 취급받는 상황이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일본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 차이가 있으니까.

일본제 나전칠기의 모습을 보자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대량 생산용 판화인 우키요에(浮世絵)를 시작으로 예술 사조까지 만들어낸 자포네스크라는 녀석이다.

그저 색채가 강렬해 인상이 깊고 포장지로 쓰이다 보니 마구잡이로 유통될 수 있어서 클로드 모네나 빈센트 반 고흐 등의 거장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예술 사조까지 올라갔었지.

내 표정을 살펴본 소목장이 분노를 드러내며 말하였다.

“제가 칠기는 잘 다룰 줄 모르지만 제가 아는 지인만 하여도 이런 나전칠기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서른 명은 됩니다. 당장에라도 아국에 돌아가서 이런 물건을 만들면…….”

“단가가 왜국보다 쌀 리가 없지 않은가. 내 하주도 관찰사로 일하여 보았지만 도성의 백성 한 명이 은자 다섯 냥 이상으로 한 해를 버티는데 왜인들은 은자 넉 냥이면 넉넉하다더군.”

“왜국이 단가로 후려치면 저희도 경쟁하기 힘들 겁니다. 왜인 가운데 가장 값진 인력인 도공(刀工)조차도 아국 도공과 견주어서 몸값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아국의 바다는 물살이 싸늘하여 나전칠기에 쓰이는 전복이 많이 나지 않을 걸세. 재료로 쓰일 옻나무면 몰라도 이 칠기에 쓰인 황칠나무는 남해안과 탐라에만 자라니 재료 가격도 문제로군.”

어디 경쟁상대가 일본만 있겠는가. 명나라도 나전칠기하면 조선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고 하다못해 베트남만 하여도 이런 나전칠기는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이 부족하니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 고민했는데 발칙한 생각이 떠올랐다. 칠기 자체의 질에 집착할 것이 아니고 많은 수량을 대규모로 찍어낼 방법이 지금 조선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견문이 넓어지면 방법도 많아지는 법이군. 여송 일대에 자생하는 마라과(摩羅果: 망고)의 수액은 옻나무보다는 질이 떨어져도 엄연히 칠기를 만들 수 있다네.”

“네? 대감께서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마라과 수액으로 칠기를 만든다 하셨습니까? 그럼 칠이야 많이 할 수 있지만 나전(螺鈿: 조개 속껍질)은 무엇으로 보충합니까?”

“여송 바다에는 거거(車渠: 대왕조개)라 하여 사람 몸통보다 거대한 조개가 즐비하다네. 나전은 이 거대한 조개에서 뜯어내고 칠은 지천에 널린 마라과 수액으로 보충하면 값이 얼마나 내려가겠나?”

문화를 전파하려면 질보다는 양이다. 같은 값어치라 하여도 황제 한 명에게 물건 한 개를 파느니 귀족 백 명에게 물건 백 개를 파는 게 더욱 영향력을 떨치는 법이지.

아예 각지의 귀족들이 원하는 물건을 모조리 작성하여 최대한 많은 예술품을 유럽에 팔아넘기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자고로 문화의 전파를 막기보다 더 우수한 문화로 밀어버리는 게 정상적인 행동이 아닌가.

마침내 1588년 5월이 되어 로마로 돌아가니 여섯 달에 걸친 토론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결국 조선의 유학자들이 천주교 방식으로 변경한 제사를 수용하는 방식이 되었다 하더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들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관원들이야 기가 꺾여 저런 얼굴이 될 수 있는데 상대방은 왜 저렇게 질려 있을까.

모든 과정을 참관한 상원군은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참으로 비범한 자들이 아닐 수 없소. 이들이 나름대로 해석한 경전을 아국 관료들과 논의할 때마다 첨예하게 대립하니 아국의 학문도 조만간 더욱 발전할 길이 열릴 거요.”

“학문은 다른 이들과 논의를 하고 대립하며 서로를 갈고 닦는 법입니다. 아국의 성리학도 부족한 점이 있는 학문이지만 이 부족함은 다른 이들에게 공격당할 때 드러나는 법이지요.”

“아국 관원들이 논의가 거세질 때마다 팔뚝을 걷어붙이고 근쟁(근육논쟁)을 꾀하려 하였건만 머나먼 이국의 사람들인지라 근쟁의 대상이 아니었소. 결국 분을 삭이기 위해 서로 맹렬히 내수린을 행하더군.”

그래서 저렇게 질려 있었군. 하긴 어린 시절의 나도 80㎏이 넘는 근육질 거구들이 서로를 짓뭉개고 집어던지는 내수린을 보고 창백하게 질려 버렸으니까.

관원들은 정리된 제사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제사상을 차려두었다.

“본디 제사는 영신(迎神: 신을 맞이해 들임)부터 강신, 참신 이후 철상과 음복까지 수많은 차례가 있습니다만 이의 핵심을 정리해 보니 다섯 단계로 요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누구의 제사상인지 참 단출한 제사상이구려.”

잘 차려진 제사상이지만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허례허식은 없다.

나도 조선시대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런 방식은 조선시대 이후 억지로 만들어진 녀석인 것 같았다.

아마 가상 인물을 설정해 두고 제사를 지냈는지 석쇠에 구운 닭가슴살과 삶은 밤을 올려두었는데 위패도 고스란히 있었다.

논쟁에 져서 못마땅했는지 관원들은 볼을 부풀리며 답하였다.

“예식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근본만큼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다만 모든 제문(祭文)은 천주교의 기도문으로 대신하였지요. 혼백과 관련된 모든 내용은 죽은 이의 혼을 달래는 기도로 대신하였습니다.”

“그러하면 신위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구려. 하지만 위패만큼은 온전히 두었는데?”

“위패는 고인의 존함과 돌아가신 당시의 일시를 적는 물건으로 격하되었습니다. 본래 감실에 두며 각종 장식을 붙이지만 근본을 따졌습니다. 묘비를 대신하여 조상을 기억한다는 근본만 남겨둘 수 있었지요.”

현대의 천주교 제사보다는 많이 복잡하다. 근본은 모두 남겨두고 이를 기도문으로 대신하였으니 어찌 보면 조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 근본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교황청 소속 신학자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만족하였는지 기도문을 마치고 말하였다.

“저희도 많은 생각을 고려하여 제사 의식을 조정하였습니다. 이는 본디 조선의 풍속이니 신자가 아닌 이의 가족이 되어 제사에 참관할 적에는 모든 이들이 제사를 마친 뒤에 다시 제사를 치르는 방식으로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일단 아국의 풍속과 대치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으니 아주 좋은 방식이오. 나도 딱히 손을 댈 거리는 없소이다.”

이쯤 되면 조정의 깐깐한 이들도 뭐라 말하지 못할 정도로 정제된 방식이다.

훗날이 되면 제사가 조금 더 간소해지겠지만 그건 훗날에 일어날 일이고 지금은 제사의 근본을 융합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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