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58화 (458/573)

근육조선 458화

2부 23장 15화 근자로마행(2)

한 달에 가까운 유럽 여행 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시가 로마였다. 파리도 처음에는 적잖게 맘에 들었는데 인종차별을 두어 번 당하고 소매치기를 한 번 당하자 혐오감이 들 수준이었지.

일정을 변경해 일주일 내내 로마에 머물고 바티칸과 각종 문화재를 두 번씩 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내 지갑도 모조리 비웠던 기억이 되새겨졌다.

그리고 유성룡의 뛰어난 두뇌 덕분에 입체영상이 겹쳐지듯 과거의 기억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교황 성하께서는 몇 년 전부터 여러분의 방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지금이야 업무가 산적한지라 접견을 미루고 있지만 대신 조선의 영향을 받은 미술품을 전시해 두었지요.”

“아국의 영향을 받은 미술품이라 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거요?”

“수효를 따지면 서른 개 정도가 되겠군요. 요즘에야 유행이 지나갔지만 당대의 유행은 근육적 묘사가 덧붙여진 석상이었습니다.”

근육은 좋지만 근육이 세상을 뒤틀어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술 작품에 근육이 첨부되었다면 그게 근육으로 강화된 것이 아니고 근육으로 오염된 꼴이지!

하지만 첫 작품은 내가 두 시간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던 그 역작이었다.

“이 상은 피에타입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이십사 세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만든 역작이지요. 당시 본을 뜨기 위해 피렌체의 미술가들이 네 명이나 달려들었습니다.”

“어허, 저 옷의 주름을 보시오! 대리석으로 저런 주름을 표현한다니 얼마나 비범한 재능입니까. 그나저나 저 품에 안긴 이의 사지에 못 자국이 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저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설명이야 현대에서 두 번이나 들었으니 따로 되새길 필요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피에타와 변한 역사의 피에타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조각 솜씨는 거의 완벽하게 예수의 몸에 있는 근육을 묘사하고 있었다.

아마 모델이 된 사람은 나름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절육(커팅)을 실시하여 근육과 골격을 남긴 채 지방을 최대한 제거했을 것이고 이는 더욱 세밀한 근육 묘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주 자세히 뜯어보면 신체비율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고 이를 조선 관료들도 확인했다.

“인체 비례가 조금씩 어긋나 있군. 여인이 자식보다 큰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얼굴이 더욱 젊어 보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네.”

“저희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생각하고 있는데 조선 분들의 눈에는 아닌 것 같군요. 완벽한 작품이야 이 세상 그 자체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근육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나는 미켈란젤로가 변한 역사에서도 예술성을 드러내리라 생각하며 현대 지식으로 알아낸 사실을 적용하려 하였다.

가만히 있던 내가 앞으로 나서자 다들 주목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 이 작품을 하늘에 계신 분에게 봉헌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지지 않았소? 그러면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하늘에서 내려다봐야 하는 법이 아니오.”

“하늘이요? 보통 조각상을 땅 위에 서서 보지 왜 하늘에서 본단 말입니까. 혹여나 저 높은 천장에 매달려 조각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고려하고 조각하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수도사가 주변 인부들을 불러들여 우리를 위로 올리기 위한 큰 사다리와 인력 크레인을 이동시키게 하였다. 본래 건물 내장재로 쓰일 석재를 올려야 할 크레인이니 사람 한 명을 감당하고 남을 수준이었다.

“하늘 위에서 보니 품에 안긴 예자(예수)의 표정이 저렇게 평온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인체 비례가 어설프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서애 대감의 말대로 정말 비범한 작품이 아닐 수 없군요.”

너 나 할 것 없이 인력 크레인으로 천장까지 올라가 작품을 감상하고 내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나도 현대에서 불가능하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피에타상의 상부를 확인하였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남아 있는 식스팩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근육을 퍼트린다 하였는데 예술 작품에 근육이 덧붙여지니 이는 근육으로 오염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더욱 근육적인 작품이 이어졌다.

“다음 작품도 미켈란젤로의 역작 중 하나인 다비드상입니다. 피렌체에서 여기까지 옮겨오기 위해 고생이 많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는 작품이지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사람의 직업은 무엇 같습니까?”

“허어! 대흉근은 조금 부족하지만 광배근은 물론이요, 등근육도 알차군. 더군다나 둔부와 허벅지가 두꺼운 자이니 효심 하나는 지극하겠군. 하지만 머리가 조금 크니 앳된 면도 있구려.”

“그러하면 하체가 발달하였고 상체 가운데 등이 발달한 사람이며 팔이 억세니 군문에 속한 이는 아니겠고.”

다비드상이 아주 제대로 변했다. 본래 다비드상은 어느 정도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지만 저렇게 각이 잡히고 입신체비의 미학을 드러내는 상태는 아니었다.

근육의 각이 드러난 허벅지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이 경직된 팔 근육 그리고 힘이 잔뜩 들어가 치솟아 오른 어깨 근육까지.

입신체비사가 온 힘을 집중하여 자세를 잡아줬고 이를 완벽히 조각으로 옮겨 두었다.

그리고 조선 사절단도 답을 내었다.

“내가 보기에는 산천을 주유하며 하초를 단련하였고 상초는 대흉근이 조금 부족하니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어 올린 사람은 아니오. 손이 발달하였으니 목장에서 일하던 자겠군.”

“내 의견도 같소이다. 북인 가운데 입신체비를 잘 즐기지 않던 이가 훗날 입신체비에 맛을 들이면 저렇게 변하는 법이 아니겠소.”

“하지만 기이한걸, 사지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산군을 만나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전장에 나와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인 것 같기도 하고.”

“정답입니다. 저분은 이스라엘의 왕이자 목동 출신인 다윗이십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호두알만 한 돌멩이요, 반대편 어깨에 걸친 것은 천 조각이니 무릿매를 들고 골리앗과 싸울 준비를 마쳤지요.”

근육적으로 강화된 다윗과 싸울 골리앗이 불쌍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그 말을 듣자마자 사절단은 다시 사다리를 가져와 멀리 놓고 다비드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았다.

“이런 세상에! 시선을 맞추어 보니 청년의 신장이 넉 자 반(156㎝)라 따져도 상대하는 장수의 신장이 여덟 자가(277㎝)가 넘어가는군. 저런 거대한 자와 상대하니 긴장할 법도 하지.”

“표정을 보게. 아래에서 볼 때에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했지만 정면에서 보니 불안과 격정으로 들끓는 심오한 표정이 아닌가. 미켈란젤로라는 자는 참으로 비범한 이일세.”

“아국에서도 이런 조각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잉가국(잉카 제국) 출신 석공들에게 의뢰하여 수양대군께서 대총 한(타이순 칸)을 격퇴한 석상을 주문하도록 하지.”

이외에도 여러 작품이 근육이 덧붙여 변질되어 있었다. 대충 삼대운동 700근에서 900근 사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모델들이 절육을 아끼지 않고 실시하였는지 모든 이들의 눈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수도사는 서운한 듯이 말하였다.

“당시에 근육을 기르겠다고 귀족들은 물론이요, 재력이 있는 평민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날뛰다가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덕분에 피렌체의 미술가들이 역으로 공격을 당하였고 이런 근육을 드러낸 미술품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지요.”

“그것참 아쉬운 일이구려. 그럴 바에야 아국 사람을 고용하여 석상을 만들면 충분할 텐데.”

“조만간 그런 기회를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마지막 작품인 시스티나 경당의 천지창조입니다. 본래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를 여는 장소라 공개하지 않지만 머나먼 천장 위에 있는 회화를 감상할 기회를 마련해 달라 하셨지요.”

장엄하고 위대한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의 손을 빌려 이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현대에 오염물질을 제거하며 적잖이 퇴색된 물건이 아니고 온전한 색을 유지하는 녀석이었지만 그 온전한 색상 안에는 근육이 있었다.

삼대운동 1,000근이 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근육을 자랑하는 하느님의 손과 고의적으로 묘사했는지 근육이 없이 뱃살이 뒤룩뒤룩 늘어진 비대한 골리앗의 몸. 수많은 이들 대다수에게 근육이 머물러 있었으며 심지어 여인들에게도 근육이 있었다.

“눈이 즐겁고 마음도 즐거워지는구려. 아국에서도 언젠가 이런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

“이제는 화려함이 필요한 시대요. 지나친 화려함은 경박함으로 돌아오는 법이지만 지나친 검약은 부족함으로 돌아오는 법이 아니겠소. 그나저나 교황께서 기다리실 것 같은데.”

“예정보다 조금 빠르지만 교황 성하와의 접견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술 작품의 근육화 같이 사소한 왜곡은 나중에 생각하자.

현대에는 절대로 방문할 수 없었던 사도궁전의 핵심부에 들어오니 정신이 번쩍 들며 코로 숨을 들이켜 천천히 심호흡을 하였다.

성공적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얻어가려면 최대한 많은 묘목과 종자를 교황을 통해 입수해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이를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염려하니 보라색 제의를 입은 식스토 5세가 우리에게 인사를 올렸다.

“머나먼 동방에서 오신 분들을 뵙습니다. 예전 교황 비오 2세께서 조선의 왕제를 접견한 이후 일백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나 뵙게 되니 주님의 은혜가 머나먼 동방에 닿았습니다.”

“저 또한 교황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종친의 일원이자 분수에 맞지 않는 군(君)의 직위를 역임하고 있는 이청이라 합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들은 식스토 5세에 대한 평가는 영 좋지 않았다. 수탈에 가까운 조세를 부과하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이단 심문관은 물론이요, 각종 병사들을 이끌고 무력으로 짓눌러 해결한다 하였다.

하지만 나를 만난 식스토 5세는 그런 평판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며 나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왜 이렇게 정중하나 했는데 내 명성이 여기에도 알려졌나 보다.

“저도 세스페데스 신부를 통해 명성은 들었습니다. 머나먼 동방에 건축과 토목의 극에 달한 기인(伎人)이 있으니 바로 조선의 유성룡이라 하더군요.”

“제 명성이라 하시니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저야 언제나 눈앞에 닥친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을 뿐이니까요.”

“아닙니다. 듣자 하니 백여 년 전 로마를 방문한 조선의 왕족이 남긴 기록을 통해 포졸란 석회(로마에서 사용한 시멘트)를 스승과 함께 재현했다 하였으니 그것만 하여도 대단한 일이지요.”

그냥 현대 지식을 동원해 스승의 이름을 붙여서 퍼트렸을 뿐인데 머나먼 서방에서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식스토 5세가 다음에 한 말은 상상을 초월한 말이었다.

“조선에서 영회라 불리는 물건의 제조 방법은 카스티야 출신으로 선상에서 순교(殉敎)한 베드로 신부가 로마까지 서신을 보내 전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건물을 지을 때 이를 석회 대신에 사용하니 참으로 편해지더군요.”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제 스승께서 창안하신 영회를 이 머나먼 서방에서 쓰신다니요.”

예전에 권율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파양군에 스페인 방문자를 위한 성당을 만드는데, 지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 귀찮아서 내가 개발한 시멘트를 대충 부어 마무리했고 서양 신부가 이를 알려달라고 간청했다더라.

권율은 마감재나 벽돌을 붙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멘트의 제조법만 알려 주었다 하여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를 사용한다니?

나를 가만히 쳐다본 식스토 5세가 크게 웃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석회는 온전히 굳는 데 보름이 걸리지만 포졸란 석회는 이레 이내에 굳으니 건물을 빠르고 튼튼하게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래 화산재를 사용하여 만드는 물건이 가마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물건을 만들었지요.”

이런 말을 하는 식스토 5세가 손뼉을 치니 시종들이 거대한 돌덩어리를 가져왔는데 벽돌과 시멘트가 결합한 조적조(組積造) 건물.

현대에서 말하는 벽돌 건물의 일부분이었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구조물이었다.

“이건 벽돌로 쌓은 궁륭(穹窿: 돔)의 일부가 아닙니까. 서로 사선으로 얽혀 있으니 무게를 감당하기 쉬울 것이며 각도를 잘만 산출하면 정말 궁륭을 만들 수 있겠군요.”

“바로 보셨군요. 지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은 석회가 아닌 조선의 영회를 다시 개량한 녀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한 줄을 쌓으면 보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제는 이레를 기다리면 되니 공사 기간이 단축되어 생전에 돔의 완성을 볼 수 있게 되었군요.”

내가 개발한 시멘트가 머나먼 서방까지 전해져 위대한 역작에 쓰일 줄은 몰랐다. 죽근 콘크리트같이 구조물로 사용하지는 않아도 마감재나 벽을 쌓는 접착제로 사용하면 효율이 대폭 증가하는 법이다.

지금도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바라보자니 식스토 5세는 나를 위해 준비했는지 양피지에 기입된 도면을 잔뜩 가져왔다.

그러더니 성호를 그리고 성수를 뿌려 도면을 축성한 후 이를 전해주며 말하였다.

“조선에도 조만간 주님의 가르침이 퍼지게 될 것이니 제가 선물을 하겠습니다. 제가 새로 지은 산 조반니 대성당의 옛 도면을 비롯하여 새로 지어져서 옛 모습이 사라진 성전의 도면들을 수집하여 온전히 설계할 수 있도록 새로 만들었습니다.”

“설마 아국에 성당을 지을 때에 이 도면을 참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처음 내려올 땅이니 지금 로마에서 사라진 옛 격식을 되살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훗날이 되면 로마에서 사라진 성전이 조선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겠군요.”

자세히 살펴보니 이 시대의 건축가인 폰타나(Fontana) 형제의 서명은 물론이고 바로크 건축의 거장이 될 카를로 마데르노(Carlo Maderno)의 서명도 있었으며 바로 건축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첨부되었다.

아마 과거 기록이나 회화를 바탕으로 로마 시대 성당을 재현한 도면이고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을 문화재이리라.

이걸 그대로 만든다면 설계 시기야 훗날이라도 양식만큼은 천 년 전의 물건이라 칭찬을 받을 물건들이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본디 옛 성현의 발자취를 좇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법이니 가장 옛것을 전해주신 그 정성에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살길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급적 많은 일을 하고 주님의 곁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전해진 포졸란 석회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의 행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단기간에 수많은 건물의 시공비용을 충당하여 장기적 재정을 완화하고 도로를 개통하며 성벽을 쌓으며 농토를 만든다.

단기간에 수많은 자금을 만들어 이를 융통하며 사업을 진행하니 비난만 받을 것이요. 대부분의 사업이 최소 십 년이 지나 성과가 드러나니 그가 결실을 볼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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