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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57화 (457/573)

근육조선 457화

2부 23장 14화 근자로마행(1)

항구의 접견이 끝나고 마침내 로마로 발길을 들일 수 있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으니 지금 이 시기가 천주교의 축제 기간인 대림(待臨: 성탄절 이전의 4주) 주간이라는 점이다.

모두 바쁜 상황이라 우리는 항구에서 며칠 동안 대기하는 형편이었다. 몸을 편히 지낼 수 있어 좋지만 다들 좀이 쑤시는 상황이 아닌가.

상원군은 점점 보랏빛이 넘쳐나는 길거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국에서 자초(紫草: 지치, 뿌리에서 보라색 염료가 추출된다)를 쑤어 보라색 옷감을 만드는 이들을 보았소. 길거리에서 보라색 옷이 보이지 않았는데 죄다 서방으로 수출된 것이라 보이지 않았을 법하구려.”

“아국이나 명국 혹은 왜국에서 보라색은 옛적에 쓰이던 고귀한 이의 색상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자금(紫禁)성이라는 이름에 보라색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하지만 가장 존귀한 색상은 황제(皇帝)를 뜻하는 노란색이 되었으니 보라색은 값비싼 천덕꾸러기가 되었소이다. 하지만 나라의 곳간을 채울 수단이 하나 늘어난 격이군.”

다들 심드렁하게 넘어갔지만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제들도 보라색 제의(祭衣)는 아니더라도 길게 늘어뜨린 보라색 파시아(Fascia: 사제가 입는 장식 스카프)를 착용하였는데 이게 역사가 변하고 동서양이 교류하는 증거물이었다.

로마 여행을 다녀오며 박물관에서 교황의 복장이 변화한 모습을 보았는데 15세기 이후 죄다 붉은 색상으로 통일되었다.

본래 보라색 염료는 로마 제국과 그 후신인 동로마 제국의 특산품이며 엄중히 관리되었다 하더라.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염료를 만드는 방법이 소실되어 점차 보라색 염료에서 붉은색 염료로 전환된 것이 본래 역사이다.

하지만 이 역사에서는 동방 무역이 활성화되어 여전히 보라색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며 사용 빈도가 늘어났다.

안평대군이 방문한 시기는 성탄 시기가 아니었기에 이런 풍속을 전할 수 없었으니 우리도 짬을 내어 로마의 풍습을 저술하기 위해 사방을 움직였다. 그리고 말라리아 치료제에 대한 수색도 계속되었다.

“여기에 혹시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약재는 없소이까? 듣자하니 로마에는 말라리아가 유행한다던데 아국 관원들이 시달릴까 심히 염려되는구려.”

나름 로마 일대에서 가장 큰 약재상에 찾아왔는데 여기에도 홍삼이 있었고 가격은 무게 단위로 금의 두 배에 달했다.

홍삼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수입 약재가 지천에 널려 있었지만 내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찾자 주인이 오히려 반색하며 달려들었다.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약재라 하셨습니까? 그런 약재가 있다면 제가 금과 같은 가격에 사들이지요! 혹여나 머나먼 동방의 신비한 약재는 없습니까?”

“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찾아왔겠소? 그나저나 이 나무껍질은 무엇이기에 도자기에 담아서 정갈하게 밀봉한 거요?”

“이거요? 해열 효과가 있는 나무껍질입니다. 누에바에스파냐(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남부에서 들여온 녀석인데 가끔 효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서 골치가 아프더군요.”

도자기 안에 담긴 물건은 끌 같은 것으로 대충 긁어낸 나무껍질인데 배를 타고 오면서 습기를 먹고 다시 훈제되어 산산조각으로 바스러진 상태였다.

그나마 큰 조각을 맞춰 살펴보는데 나무의 품종조차 달랐다.

“이거 다른 나무가 섞여 있지 않소. 껍질이 여러 종류가 섞여 있으면 약효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법인데 이걸 어떻게 종류별로 정리할 생각은 없었소?”

“누에바에스파냐에 있는 원주민을 윽박질러 산에서 열이 날 때 쓰는 나무는 모조리 채취해 오라 하지요. 거기에 약재상이 있다면 어느 정도 분류하겠지만 그런 귀한 사람이 머나먼 산골에 직접 방문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선교사들이 방문하는 게 전부입니다.”

이건 뭐 한양에서 김 서방 찾는 꼴도 아니고.

생각해 보면 처음 북인들에게 인삼을 재배하라 했더니만 더덕이나 도라지가 섞여 있어서 뒤통수를 갈겼다 하던가.

하지만 촉이 와서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일단 이 향료나 좀 주시구려, 그나저나 선교사들이 산골 마을을 방문한다 하였소?”

“물론이지요! 듣자 하니 사람이 있으면 어디라도 찾아가 주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합니다. 하지만 풍토병에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라서 돌아오는 사람은 셋 중 하나라 하더군요. 대신 수도사들은 온갖 기록을 남기며 자신의 위업을 전하려 한답니다.”

그나마 실마리는 잡아냈다. 엄연히 존재하는 말라리아 치료제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원주민을 윽박질러 약효가 있는 나무껍질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기 때문이겠지. 개중 얻어걸려서 말라리아를 치료한 사례가 나왔을 거다.

아무래도 말라리아 치료제 하나만 찾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최소한 약효가 있는 묘목을 모조리 수집해 기르고 사람에게 실험해 보아야 어딘가 숨겨져 있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찾으리라.

며칠이 지나 12월 1일이 되자 수도사 한 명이 우리에게 인사를 올렸다.

“실로 불손한 말씀입니다만 지금은 대림 주간이 막 시작된 찰나입니다. 조선으로 따지면 왕실 제사를 올리기 직전의 준비 기간이니 교황 성하께서도 틈을 내시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니 잠시 동안 로마를 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왕실 제사라 하였소? 내 강화도에 당도한 라마국 사절단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소만 서방의 달력으로 12월 25일이 무엇보다 큰 축일이라 하였는데.”

“자고로 큰 축일에는 준비 기간이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백여 년 전에 오신 조선의 왕제(王弟)께서 기록을 많이 남기셨겠지만 그동안 로마는 많이 변했습니다.”

많이 변하긴 했겠지. 내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일주일 가까이 머물렀는데 지금 교황인 식스토 5세를 가이드가 평가하길 ‘심○티와 롤러○스터타이쿤을 주면 평생 할 사람’이라 할 정도로 건축물을 많이 만든 사람이다.

물론 성당 건축은 기본 오십 년, 거대한 성당은 이백 년을 잡고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언제나 건축이 진행되고 있겠지만 지금 건설이 시작된 성당도 부지기수일 거다. 미리 준비한 안평대군의 저서인 라마국유람기의 복사본을 꺼내며 말하였다.

“많이 변했다니 이 서적의 기록을 수정할 때가 되었군. 앞으로 종종 로마에 방문하면 서로가 좋지 않겠소?”

“저희도 명성이 자자하신 조선의 관리 유성룡께서 방문하셨으니 자랑거리를 엄선해 두었습니다. 듣자 하니 건축에 소질이 있으시다 하시는데 옛 로마부터 이천 년 가까이 쌓아온 건축의 정수를 목격하실 수 있겠군요.”

가장 먼저 안내받은 장소는 지금 교황인 식스토 5세는 물론이요 수많은 교황과 로마 전체의 힘이 결집되어 계속 건설 작업이 이어지는 성당. 내가 죽고 백 년이 지나야 완성될 위대한 역작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물론 그 역작은 아직 미완성 상태이다. 여전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수많은 석공들이 건물 앞을 메웠고 성 베드로 광장이 완성되지도 않았으니 복잡한 로마의 길거리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우뚝 솟은 거대한 석회석 기둥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 오벨리스크를 보십시오. 기록에 따르면 삼천오백 년 전에 이집트의 왕이 헬리오폴리스(현 이집트 마스르)에 세운 기념비를 천육백 년 전에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온전히 옮겼습니다. 이를 교황 성하께서 다시 성당 앞에 두었지요.”

“삼천오백 년 전이라 하였소? 대체 그 시기를 어떻게 짐작할 수 있는 거요?”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시대에 플리니우스라는 역사가가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겼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에 이 오벨리스크를 톱으로 자르지 않고 운반하려고 거대한 배를 만들었다 하더군요.”

나는 현대의 지식을 알고 있기에 저 오벨리스크의 무게가 320톤이요, 옮기기 위해 길이 100m가 넘는 특수 선박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이 시대에 알 길이 없으니 상원군이 먼저 질문을 하였다.

“계산해 보니 기둥의 무게만 따져도 대략 사백 돈(1돈 = 10석, 약 356톤) 코끼리 구십여 마리와 대등하오. 아국에서 가장 거대한 함선인 대장선으로 저 기둥을 옮겨올 수 있겠소?”

“불가합니다. 대장선은 팔백 돈의 무게를 감당하고도 여력이 있지만 저런 거대한 무게를 한쪽에 올리면 배가 뒤집히거나 요동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하면 적어도 대장선의 두 배 크기의 배를 천육백 년 전에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이로군. 항해할 수는 없어 다른 배가 예인할 선박이었겠지만 그런 배를 만들 수 있었던 옛 대진국의 국력은 참으로 대단하구려.”

“저는 삼천오백 년 전에 이런 거대한 기둥을 깎아낸 애급(埃及: 이집트)이 더 놀랍군요.”

오벨리스크가 만들어진 시기가 기원전 20세기이니 고조선이 세워진 지 300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이며 중국 역사에서도 삼황오제가 나오는 신화의 시대이다.

상원군은 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도원군께서 이 자리에 당도하였다면 몇 날 며칠이고 거대한 석비를 탁본하고 기록을 유추하기 위해 여념이 없으셨겠지. 하지만 새겨진 문자가 라마국에서 쓰이는 라틴어구려.”

“교황 성하께서 새로 새긴 글입니다. 여기에는 글이 없어 편했지만 간혹 불손한 글귀(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오벨리스크는 표면을 밀어 새로운 글을 새기지요.”

다들 표정이 확 구겨졌는데 당연한 일이다. 옛 기록을 보전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탁본을 떠내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는데 이런 배려심이 이 동네에는 없다.

조선만큼 기록에 집착하는 나라는 몇 없다. 나름 체계화된 유럽도 기록에 집착하지만 어디까지나 통치를 위한 기록이 전부이며 조선 이상으로 기록에 집착하는 나라가 단 하나 있으니 영국이라 하였지.

수도사도 우리의 눈치를 보더니 애써 변명하고 주제를 돌렸다.

“적어도 지금의 교황성하께서는 따로 글귀를 밀어내라는 지시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저 뒤에 있는 건물을 보시지요. 예전에 조선에서 방문한 사람은 옛 대성당을 보았을 뿐이고 지금의 대성당은 백 년 전부터 새로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아직 미완성 상태지요.”

“미완성이라 하였소? 나는 여러 채의 건물이 결합된 줄 알았소.”

좌중이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했다. 이미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실측한 사람들이지만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디까지나 고딕 시대의 유산이다.

조선에 기록이 남아 있는 옛 성 베드로 대성당도 거대한 성전(聖殿)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새로 지어진 성 베드로 대성당. 현대에도 남아 그 위엄을 자랑하는 성당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런 거대한 건물을 성전이랍시고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종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몇 번이고 다녀온 적은 있지만 근정전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거대하군요.”

아직 돔을 완성하지도 못하였고 장식도 부족하며 평면조차도 모조리 채워지지 않은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사절단 전원을 압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상원군은 멍하니 베드로 대성당의 모습을 보면서 평가하였다.

“제 부친께서 여기에 당도하셨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신 이후 이 거대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노임을 생각하며 크게 한탄하실 것입니다.”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건축에 소질이 있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건물을 지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 할 것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거대하였지만 여기에 오면 어린아이와 입신체비사의 격차가 날 지경이군요.”

조선에서 이런 거대한 성당을 세울 수 있을까? 가능하지만 제안을 한 순간 지나친 사치라 하며 탄핵을 당할게 확실하리라.

조선은 어디까지나 사치를 즐기지만 실용적 측면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사치를 즐길 뿐이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하면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스케치를 하였고 다른 이들은 내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짓다가 내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하였다.

“서애 대감께서 젊은 시절에 일에 미쳐서 모든 관료들이 야근을 불사하게 만들었다 하였는데 기회만 되면 이 거대한 성당을 본뜬 새로운 건물을 만들 것 같아서 심히 염려되는구려.”

“옳은 말이십니다. 저도 제 부친께 이야기를 들었지만 열 사람이 할 업무를 혼자 담당하며 백 명이 할 업무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심각한 업무 중독자라더군요.”

은근슬쩍 웃어대며 나를 공격하는데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서글프다. 하지만 내가 성당을 세우더라도 평범한 대성당 수준으로 세우지 저런 거대한 성당을 세우겠는가.

심지어 수도사도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참으로 불민한 말씀입니다만 성 베드로 대성당은 대성전으로 분류한 성당입니다. 이보다 큰 성당을 세우려면 교황 성하는 물론이요 휘하 주교들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일이니 적어도 한 자는 작은 성당을 세워주십시오.”

“그럴 생각은 없소! 내가 아무리 큰 성당을 세워보았자 향후 이백 년 동안 공사를 계속해야 하는 성당을 세우겠소?”

미주에 성당 하나는 세워야겠지. 천 년 묵은 원시목도 잔뜩 사용하고 지천에 널린 석회석도 마음대로 사용해서 위엄 하나는 넘치게 해야겠다. 내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니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지.

수도사는 우리를 성당 안으로 들이려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성당 안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성당 안에 있는 역작(力作)들은 조선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 반영된 작품이지요. 예전에 피렌체의 사람들이 조선에서 미술을 배워 돌아왔는데 그들의 몸이 바탕이 되어 회화와 조각을 만들었다 합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현대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강화도에서 들었던 증언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났다. 미술 작품들이 죄다 근육적으로 변모했다는데 대체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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