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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55화 (455/573)

근육조선 455화

2부 23장 12화 망국(亡國)(1)

연회장에서 우리가 배정된 숙소로 뛰어나오자 인근에 머물고 있던 시종들은 물론이요, 길거리에서 공연하던 남사당패들이 황급히 대피하여 머물고 있었다.

나도 완전한 상황은 몰랐는데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급히 보고를 올렸다.

“대감께 감히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사방에서 귀족들이 수레를 동원해 길목을 막고 이 수레를 백성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미 쟁기와 낫이 길거리에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다급히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로군. 그나저나 이 나라의 관료라는 것 들은 기미 하나만 보이면 득달같이 줄을 바꿔 서니 참담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조선이라면 철저한 중앙집권제도이니 양반들이 사병은커녕 힘이나 잘 쓰는 사람 몇 명을 머슴 겸 호위병으로 부리는 것이 한계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프랑스는 봉건제도에 가깝다.

가뜩이나 정치력은 포함해 모든 능력이 부족한 앙리 3세가 아예 자신의 정치 기반을 무너트린 상황이니 반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다들 혼란에 빠지기 직전이라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명령을 내렸다.

“지금 무얼 하는가! 넋을 놓고 있다가는 내란에 휩쓸려 변을 당하게 될 것이네! 어서 준비한 목재를 모두 엮어 지게를 필요한 수량만큼 완성하고 짐을 분류하여 옮길 채비를 하게.”

지게는 독창적인 도구는 아니다. 세상 사람들 생각이 비슷하니 등짐을 짊어지기 위한 보조도구는 많은 형편이지만 효율성으로 따졌을 때 지게를 넘어서는 물건이 거의 없다.

지게와 흡사한 다른 나라의 도구는 곧은 나무로 틀을 짜서 엮지만 지게는 Y자 목재 한 쌍을 튼튼한 나무로 엮어 버틸 수 있는 무게의 차원이 다르다.

이미 시간이 빌 때마다 지게를 만들어두라 명령을 내려 대부분의 지게가 완성 직전의 상태였다.

“내가 이럴 줄 알고 Y자 목재를 챙겨두기를 잘했지.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필요하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야.”

사절단 전원이 짊어지고도 남을 수량의 지게를 확보하였지만 확보하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지게를 만드는 용도 외에는 쓸모없는 Y자 목재는 프랑스에서 기껏해야 땔감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전부였다.

땔감을 값비싸게 사들이니 프랑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지게에 쓰이기 적당한 목재를 찾아 바쳤고 산더미처럼 쌓인 목재로 지게를 만드는 일은 참 쉬웠다.

권협은 수백 개가 넘는 지게를 보며 감탄하다 커다란 지게를 짊어지며 말했다.

“저도 이게 어디에 쓰이나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구주에 온 뒤에 소달구지나 마차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평원이 지천에 널려 있어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지요.”

“자고로 평온할 적에는 위기를 준비하고, 위기가 엄습할 것 같을 때에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법일세.”

나도 지게를 하나 짊어져 보니 평범한 체격을 기준 삼아 만들어서 조금 작은 감이 있었다. 본래 체격에 맞지 않는 지게를 사용하면 힘이 많이 드는 부작용이 있지만 힘 하나는 넘치는 사람들이 양반들이다.

이미 입신체비가 퍼진 세상이다. 양반들 대다수가 시종을 부려 몸을 단련할 기회를 놓치는 대신 젊은 시절 지게를 짊어진 경험이 있으니 등짐을 올리는 작업은 매우 쉬웠다.

“맨 아래에는 대역기봉과 공령으로 무게를 맞추게. 혹여나 반군이 공격할지도 모르니 진상품으로 사용할 물건은 몸이 날렵한 자네들이 가죽으로 덧씌워 짊어지고 보호하도록 하게나.”

“견디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등위에 올린 물건만 따져도 이미 일백 근(64㎏)이 넘습니다!”

“내 공좌를 가늠하여 보면 이백오십 근까지 올려도 상관없다네.”

간혹 나무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지게에서 물건을 내리는 모습이 보이니 짐을 옮기고도 남을 수준임은 분명하였다.

사절단에 포함된 유생들이 모두 자신의 체격과 흡사한 수준의 짐을 옮기고 정작 인부들은 가벼운 짐만 짊어지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군관들도 소집되어 군장을 갖췄지만 수가 부족하다. 본래 사절단의 일원인 군관만 300명에 달하는데 상당수는 스페인에서 배를 지키고 가장 직급이 높은 이윤범은 펠리페 2세 휘하의 병사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직급이 높은 군관은 오위 출신인 입부 이순신이다.

두정갑 대신 펠리페 2세의 도움으로 맞춘 하프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입부 이순신은 간단한 보고를 올렸다.

“사람을 보내 탈출로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본래 경로였던 트루아(Troyes)라는 도시로 향하는 길목은 반군으로 가로막혔지만 샤르트르(Chartres)로 향하는 길은 열려 있더군요.”

본래 계획은 파리를 찍고 남동쪽으로 계속 내려와 몽펠리에나 니스 같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는 방침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남서쪽의 샤르트르에 들린 뒤 북상하여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리라.

일정이 틀어져서 난항을 겪는 사람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펠리페 2세가 붙여준 장교인 우고는 아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말을 더듬거리며 제안 아닌 제안을 하였다.

“이래서야 나바르의 앙리(앙리 드 부르봉, 현 프랑스 위그노 반군의 대표)나 앙리 드 기즈가 조선 사절단을 자신의 품에 넣으려고 발악할 것이 분명합니다. 올 적에야 펠리페 2세께서 엄중히 경고하여 침묵하였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직면한 이후 고민할 일이지. 오히려 지금 퇴로가 불란서 북쪽을 향하는 꼴이 되었으니 배를 타고 불란서는 물론이요, 서반아까지 돌아와야 할지도 모르네.”

“일단 전령을 보내 르 아브르나 디에프 같은 항구에서 배편을 알아보겠지만 당분간은 고생을 많이 하시겠군요. 북동쪽은 앙리 드 기즈 공작이, 남서쪽은 앙리 드 부르봉이 지배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들을 모두 피해 가야 합니다.”

다급히 지도를 보며 퇴로를 정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샤르트르라는 도시는 현대에도 방문한 적이 없어서 어느 고장인지는 모르고 가급적 남쪽을 향해 움직여야 하리라.

이게 프랑스 국내에서 끝날 일이면 나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조선 사절단이 이 사실을 머나먼 동방까지 전해줄 것이 분명하니 아마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져 대대손손 혼군(昏君) 중의 혼군으로 찍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이 상황에서 탈출해야 한다.

“다들 지게는 짊어졌는가! 상원군 대감이야 사절단의 대표이며 입신체비에 능숙하지 않으니 말 위에 올라도 좋지만 우리 모두 입신체비에 능숙한 유생들일세!”

“물론입니다! 서애 대감조차도 지게를 지셨으니 저희 모두 서애대감만큼 짐을 올렸습니다!”

들어올 때는 말을 타고 호위를 받으며 입성하였지만 나갈 때는 두 발로 나가니 얼마나 얄궂은가.

한 사람당 평균 100㎏ 가까운 짐을 올린 유생들을 시작으로 행렬이 시작되었지만 튼튼한 파리 시내의 포석(鋪石)은 흔들리지 않고 이 무게를 받아냈다.

전등은커녕 가스등조차 없는 시대이니 야경꾼이 돌아다녀야 정상인 파리 시내는 점차 몰려오는 시민들로 가로막히고 있었다. 아직 성 주변에는 시민들이 움직이며 사람들을 끌어모을 뿐이지만 조금만 늦어도 일이 틀어질지 모른다.

시민들이라 해서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은 아니다.

처음에는 프랑스 혁명처럼 귀족들의 목을 모조리 따낼 기세라 생각하였지만 이들의 외침은 정치적 목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앙리 3세는 당장 왕위에서 물러나라! 합당한 왕은 로렌 공의 후예인 기즈 공작이시다!

-사를마뉴의 후예이자 고귀한 혈통인 앙리 드 기즈를 왕으로!

대다수의 시민들이 앙리 3세에 대한 비판과 앙리 드 기즈라는 자의 칭찬을 늘어놓으니 분명 귀족들이 돈을 쥐어주거나 세금 감면을 빌미 삼아 이들을 길거리로 앞장세웠으리라.

상원군은 이 모습을 보며 그나마 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처음에는 불란서의 천명이 기세를 다 하여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난 줄 알고 있었지만 아닌 것 같구려. 어찌 보면 인의를 해칠 만큼 해친 군주인 앙리 3세를 제후들이 내치려 하는 것 같소이다.”

“그거야 자신의 권좌를 스스로 갉아먹은 꼴이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신우나 신창(우왕과 창왕, 조선에서는 신돈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반역자라 하였다) 꼴은 면하겠구려. 그저 시골에 유폐되어 평생을 살다 분사(憤死)할 것이 분명하구려. 사치를 행한 이의 최후로는 합당한 편이오.”

이 시대는 아직 시민의식이나 계몽주의가 없어서 왕은 고귀한 혈통이라 인식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왕위를 찬탈한 세력은 이 고귀한 혈통을 자신이 물려받기 위해 폐주(廢主)에게도 나름 세심한 배려를 한다.

세심한 배려라 해보았자 폐위된 이전 왕조의 왕족들을 당장 죽이지 않을 뿐이다. 어디 산간 오지에 유폐시킨 뒤 자신의 통치가 굳건해진 이후 암살하거나 대놓고 처형하는 방식이지만.

대열이 점차 외곽으로 나가자 수레와 목책이 길거리를 가로막기 시작했으며 그 위에는 횃불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귀족들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의 앞길이 완전히 막혔고 수레 위에 있던 귀족은 우리를 보고 명령을 내렸다.

“저들은 조선 사람들이니 무기를 내려라! 저들은 프랑스를 방문한 손님들이니 함부로 창칼을 들이대지 말고 정중히 모시도록!”

귀족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백성들이나 그의 사병이 무기를 아래로 내리고 인사를 올렸지만 길목을 열지는 않았다.

상원군을 대신해 앞으로 나서니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정중한 말투로 제안을 하였다.

“어서 짐을 내려놓으시고 저희의 도움을 받으시지요. 파리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어느 세월에 이 나라를 떠나시겠습니까? 저도 귀족으로서 대접은 충실히 할 수 있다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거 참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로군.”

“조선 사절단이 겪는 고통이야 절실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귀족이 짐을 짊어지고 피난길에 오르는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제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무리 봐도 앙리 드 기즈 공작 휘하에 있는 놈이 분명하다. 잘만 하면 조선 사절단을 대접하고 호위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고 최소한 자신이 도움을 줬다는 진실을 내세워 훗날 좋은 자리를 얻어내려 하는 행동이리라.

길목을 가로막은 수레 뒤로 열 대 정도의 수레를 준비해 뒀는데 그 준비성은 철저해 보이지만 우리가 짊어진 짐이 보통 등짐인가.

그 가소로운 모습을 보며 슬쩍 손짓을 전해 사절단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른 나라의 정치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도움을 거절하면 이들의 체면이 땅으로 떨어질 거요. 어서 무거운 짐부터 수레 위에 올리시구려.”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로렌 공작가의 가신인…… 잠시! 짐이 대체 뭐 저리 무거운지요! 이대로 계속 올리시면 수레가 무너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 짐이 죄다 쇳덩어리란다. 공령과 대역기봉이 수레 위에 쌓일 때마다 수레의 목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이내 열 명의 등짐이 올라가자 축이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거 참 약한 수레구려. 아국의 유생 아니 귀족들은 등짐으로 사람 두 명은 짊어지고 돌아다닐 수 있소. 이런 수레는 필요 없으니 어서 길을 여시구려.”

“하지만 길을 열면…….”

“대역기봉이 지나갈 수 없으니 어서 비키게! 하여튼 준비도 부족하게 해서 사람 일을 늘리니 우리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치우는 것도 더디니 우리가 치우겠네!”

수레 위에 입신체비 도구를 내려놨던 사절단 일행들은 다시 지게 위에 올려야 하는 귀찮음을 몸으로 표현하였다. 가장 폭이 넓은 도구인 대역기봉이 지나가게 한답시고 이들이 길목을 가로막은 수레를 몸으로 해체하였다.

“하여튼 수레를 쓸 것이면 최소한 인력거보다 튼튼한 수레를 가져와야지! 이런 수레를 사용하면 부모님을 봉양할 수도 없이 불민한 수레가 아닌가!”

사람 두 명이 달라붙으면 수레가 움직이고 사람 한 명이 거대한 통나무를 짊어지고 저 멀리 던져 버린다.

삽시간에 해체당하는 방벽을 보며 몰려온 프랑스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네 명이 죽을힘을 다해 올려놓은 수레인데! 잠깐! 저걸 왜 등짐으로 짊어져!”

“저게 귀족의 의무인가 그건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는 책임을 짊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 책임을 얼마나 크게 짊어지려고 저런 힘을 발휘한단 말인가!”

뭔가 뒤틀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이지만 의미가 통하니 별문제는 없겠지.

삽시간에 파리 외곽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고 이 소식을 들었는지 우리의 앞에 있는 귀족들도 목책을 스스로 해체하고 길을 열어주었다.

“저희의 준비가 부족하여 조선 분들에게 폐를 끼쳐 드렸습니다. 부디 전투에 휘말리지 마시고 편히 돌아가시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퇴로가 열리자 성에 있는 귀족들 상당수가 눈치를 보다 우리의 행렬 뒤에 합류하였다. 대략 삼천 명에 달하는 인원이 사절단의 뒤를 이어 파리를 탈출하였고 파리 외곽에는 아직까지 앙리 3세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3일의 탈출 끝에 사절단 일원과 성에 있는 귀족들은 피난을 완료하여 샤르트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원과 짐을 정리하는 상황인데 대열 맨 뒤에 있는 이들 속에서 절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다행이오. 조선 사절단의 행렬에 합류한 덕분에 이 몸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소.”

프랑스 피난민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소름이 돋았는데 몸을 돌려 확인해 보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쯤 파리에서 반군을 상대로 수성전을 벌여야 할 왕인 앙리 3세가 대열 최후미에 합류해 있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그야 당연한 일 아니오. 나에게도 숨겨둔 한 수가 있으니 앙리 드 기즈놈을 암살하는 거요. 다만 함락당한 파리에서 암살을 시행했다가는 내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 탈출하였소.”

우고는 물론이요, 입부 이순신부터 상원군까지 그 말을 듣자마자 아무 생각조차 못 하고 입을 벌리고 파리가 드나들든 말든 한참 동안 앙리 3세를 노려보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였지만 손은 멋대로 움직여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여댔다.

“암살? 지금 적장도 아닌 한 나라의 귀족을 암살한다 하셨습니까? 수도를 버리고 도주한 상황에 암살자를 배치하여 그런 짓을 저지르면 전하의 기반은 어떻게 되십니까! 암살을 실행한 병사들은! 그리고 귀족들의 평가는!”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그냥 말로 타일러 돌려보내거나 조용히 왕위를 선양하는 것도 아니고 암살을 저질러? 그것도 수도를 버리고 도주한 왕이?

하지만 앙리 3세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내 폭언을 듣고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암살 명령을 철회하려 하였다. 다짜고짜 기사 한 명을 불러 윽박지르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같잖았다.

“당장 파리로 돌아가게! 암살 명령을 철회하고 회담을 열 준비를 하게.”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전하께서 암살을 실행하신다니 한낱 촌부(村夫)마저도 전하의 행적을 비난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어서 서신을 작성해 주십시오!”

벌써 파리에서 벗어나고 3일이 지났으니 암살이 이미 시행되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파오는 와중에 저 머나먼 남쪽에서 거대한 행렬이 접근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아무리 보아도 군사가 움직이는 모습은 아닌데 우고 자네는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대체 누가 저런 화려한 행렬을 소문도 없이 움직인단 말인가.”

“이 나라의 진정한 실세가 오고 있습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 앙리 3세의 모후께서 방문하는 것이 분명하군요.”

“이 나라의 모후는 폐병이 심하여 머나먼 고장에서 요양한다 하였는데 왜 움직인단 말인가!”

지금 프랑스는 겨울에 가깝다. 밤이 되면 물이 얼 정도는 아니더라도 관복을 입으면 쌀쌀한 기운이 몸에 스며들 정도인데 폐병이 걸린 늙은 몸으로 여기까지 행차하다니.

앙리 3세는 아예 당황한 표정을 넘어서서 이를 악물고 남쪽에서 접근하는 행렬을 노려보았다.

이 모자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저런 표정을 드러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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