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54화
2부 23장 11화 문화 공격(3)
파리에 도착하고 벌써 두 달이 넘게 흘러 양력 10월 14일이 되었다.
거세던 내란도 우리의 도착 이후 잠잠해졌지만 파리에는 앙리 3세의 악명과 조선 사절단의 친절함이 어느새 퍼져 있었다.
여기다가 한 손을 거든 것이 입신체비를 위한 실천적 의식이었다.
당장 아침에 몸을 덥히기 위해 뛰는 것이 필수인 입신체비인데 길거리에 똥이 널려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자네들도 분변을 수거해 오느라 고생이 많다네.”
그래서 길거리를 사절단이 청소했다. 정확히는 앙리 3세에게 빌린 일꾼들이 길거리의 똥을 치우고 사절단 일행이 물동이를 짊어지고 뜀박질을 하며 물을 주변으로 뿌린다.
도저히 씻겨 나갈 것 같지 않던 분변들도 한 달이 지나자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더군다나 성안에선 화려한 식사가 아닌 평범한 식사에 고기를 조금 많이 먹으니 귀족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이 소문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지붕을 실측하는 작업을 지휘하니 삼삼오오 모인 귀족들의 논쟁이 귀에 들어왔다.
-저거 보게나, 조선 사람들이 어찌나 비범한지 남들이 버리는 음식을 먹고 다닌다네. 화려한 일정을 즐기느니 자신들이 머무른 고장의 사람을 편히 지내게 하는 게 마음에 놓이나 봐.
-나도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거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우유 찌꺼기에 돼지 먹이나 독초를 먹고 사람이 버틴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그 화려한 일정이 근손실이니 당연한 소리지!
하지만 소문이 얼마나 퍼져 있었는지 우리가 낭트부터 시작한 조선식 식사, 여기서는 조선 퀴진(Cuisine)이라 불리는 식단이 화제가 되었다. 물론 앙리 3세에 대한 비방도 끊이지 않았고.
-정성스럽게 요리하면 못 먹을 음식이 없다더군. 파리에서야 왕이 강요해서 억지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만 낭트를 비롯한 지방 도시에서는 식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더군.
-거기다 몸이 둔해질까 염려하여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쇠를 들며 활을 쏜다더군. 그 폴란드 놈(앙리 3세는 폴란드 왕 출신이다)은 요트나 타고 비역질이나 하는데 얼마나 건전해?
평가가 나날이 높아지니 좋은 일이지. 나야 행복한 마음으로 근대에 개수되거나 아예 새로 지어지기 전의 건물들을 실측하고 있지만 형님은 그동안 계속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궁정으로 돌아오니 상원군이 한숨을 쉬며 연회장에서 나와 있었다.
“오늘도 불란서의 왕이 요리를 모두 먹지 않고 남겼소?”
“먹을 수는 있지만 못내 아쉬운 맛이라며 여전히 모두 배우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상원군이 서운한 표정으로 답하고 나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난 두 달 동안 형님은 프랑스 궁중 요리의 정수를 전수받으라면서 강요 아닌 강요를 받았고 오늘도 주방에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절실히 체험한 바가 있다. 한국 요리가 짜고 기름지다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이놈의 유럽 기준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이며 이 시대에는 더 할 것이다.
결국 형님은 아예 절망하다 못해 체념하고 있었다.
요리 냄새가 진동하는 주방을 가니 형님이 불 위에 올린 프라이팬에는 기름 한가운데 새카맣게 타들어 간 무언가가 있었는데 형님의 말을 들으니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게 뭔지 알겠느냐. 거위 간이다! 그냥 먹어도 고소함이 일품인 거위 간을 이들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느냔 말이다!”
“잠시만 형님. 거위 간이라 하시면…….”
“거위를 틀에 묶어 가둬 넣고 입에 깔때기를 쑤셔 박아 하루 반 근(320g)이 넘는 곡물을 욱여넣는단 말이다! 내가 닭을 키워봤으니 짐작하지만 거위 정도면 하루 한 홉(60g)이 조금 넘는 곡물이면 적당하지. 그래서 나온 흉물이 이 간이다.”
푸아그라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 시대에도 있긴 하나 보다.
형님은 화를 내며 푸아그라를 걷어내더니 아예 눈에 핏대를 세우고 말하였다.
“정도껏 화려해야지. 처음에는 희고 묵직하여 기름진 내장이라 여겼는데 팔 할이 넘는 양이 기름이 아니더냐. 대체 이런 요리를 배워서 무엇에 쓰라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구나!”
“저도 답답해서 미칠 노릇입니다. 귤이 회수를 넘어가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는데 정작 불란서의 요리를 배워서 형님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놈의 버터와 올리브유를 퍼부은 요리를 만들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아 언제나 기름이 함량 미달이라 핀잔받는 상황이 아닌가.
슬슬 일정을 종료해야 하는데 놈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도 적잖이 있었다.
“형님, 저들이 기름과 고기에 미쳐 있으니 아예 미친 짓을 해봅시다. 자고로 술꾼이 술을 끊게 만드는 법이 있지 않습니까?”
“나도 들은 바가 있다. 주사(酒邪)가 심한 이는 술을 강제로 한 됫박을 먹여 술병이 심하게 나게 만든다 하였지. 그런데 이미 기름으로 홍수가 나는 요리에 기름을 덧대면 이들도 먹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제가 율곡 대감에게 입신체비를 배우며 절육의 극한을 추구하지 않았습니까. 자고로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니 저에게도 다 꾀가 있습니다.”
현대의 나는 초고도 비만이었다. 그 거대한 체형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음식이 여럿 있었으니 바로 현대의 패스트푸드이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에 살아오며 마음 한구석에만 담아둔 이 패스트푸드의 봉인을 해제할 때가 되었다.
“서역에서 즐기는 음식 중 하나가 이 신맛이 나는 우유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우유의 웃물(생크림)을 삭혀 기름지고 신맛이 어우러진 우유를 만듭니다.”
“나도 알고는 있다. 그나마 기름지긴 하여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맛이지.”
서양 애들이 죽어라 먹어대는 사워크림은 이 시대에도 있었다. 느끼한 기름맛과 시큼한 산미가 어우러졌으니 형님도 많이 먹지만 않으면 즐길 수 있다며 받아들인 녀석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마요네즈가 없다. 최소 7할 이상이 기름으로 버무려졌으면서 시큼한 맛 때문에 손이 계속 가는 그 악마의 조미료가 없단 말이지.
나는 계란 두 알을 가져와서 노른자만 골라낸 다음 이 악마를 현대에서 과거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제가 알기로 도공이 회화를 그릴 적에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는 이유가 물과 기름 모두를 섞이게 만드는 석감과 흡사한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지금 대체 뭘 하는 게냐? 그렇게 기름을 많이 부어서 어디다 쓰려고!”
초등학교, 아니, 나는 국민학교(國民學校)를 나왔지.
여하튼 어린 시절에 간단한 요리 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웠고 거기서 처음 만든 요리가 이 마요네즈였다.
유성룡의 두뇌 덕분에 거의 소실되지 않은 마요네즈의 지식이 남아 있었고 당시 선생님이 준비하라던 물건 또한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계란 노른자 한 개와 식용유 한 컵 그리고 식초 한 숟가락 반에 소금과 설탕 약간이던가.
“이 기름을 고스란히 먹어 보라지요. 아주 위장부터 항문까지 죄다 기름으로 뒤덮어 버리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나저나 색상이 희멀건 것이 식욕을 돋우지는 못하겠군요.”
형님이 경악하건 말건 그 많은 기름이 마요네즈로 변하였으니 이게 역사 최초의 마요네즈이다.
형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마요네즈를 조금 찍어 먹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큼한 맛 뒤에 아주 느끼한 맛이 남는 녀석이구나. 그나마 아주 조금씩 찍어 먹되 길게 자른 채소에 찍어 먹어야 맛이 좋겠어.”
“형님, 이걸 왜 채소에 찍어 먹습니까? 먹는 사람의 속을 죄다 기름으로 뒤덮어야 하니 기름진 음식을 찍어 먹어야겠지요. 그나저나 기름지고 가느다란 음식은 감자를 튀겨낸 것이 적당하겠는데 여기에는 감자가 천대받고 있습니다.”
감자튀김에 마요네즈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고 내 뱃살도 남이 부럽지 않게 커졌지만 감자는 말 먹이로 쓰이기에 함부로 내올 수 없었다.
하지만 형님도 막 나가기로 했는지 손을 바삐 놀리며 다른 요리를 내놓았다.
“일전에 북경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 인근의 천진(天津: 톈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지방에서는 견과류와 참깨를 넣어 만든 가느다란 빵을 튀겨서 죽에 찍어 먹더구나.”
형님은 빵 만드는 법 정도는 전수받았기에 물을 많이 넣은 밀가루 반죽에 각종 씨앗은 물론이요, 치즈 조각까지 아낌없이 들어간 빵 반죽이 완성되었다. 당연히 반죽 자체도 칼로리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구워내지 않고 짤 주머니에 짜서 그대로 기름 속에 넣어버리니 놀이공원 가면 흔히 파는 츄러스가 아닌가.
그 기름기에 속이 느글거리는데 형님은 한 개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더니 몸서리를 치며 말하였다.
“지금 내가 먹은 기름만 따져도 하루 먹을 기름을 가뿐히 넘어가겠지. 하지만 이를 모르는 불란서 사람들은 얼마나 먹을지 궁금하구나.”
한 귀족을 불러다 맛보게 하니 처음 맛보는 마요네즈와 츄러스를 먹고 눈이 아예 돌아갔다.
삽시간에 여섯 개나 먹어치우고 마요네즈를 아예 그릇 바닥까지 닦아가며 싹싹 비우고는 손을 잡고 흔들며 답하였다.
“신맛 다음에 느끼한 맛이 감도니 이건 악마가 만들었다 해도 믿을 만한 소스입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맛보았으니 제 이름 마뉘엘(Manuel)을 소스 이름에 넣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게 우연으로 보아야 하나 아니면 운명의 장난으로 보아야 하나. 하필 마요네즈의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써달라는 사람이 마뉘엘이란 말인가.
이걸 만든 사람은 나이니 허탈하게 웃으며 소스의 이름을 정했다.
“마뉘엘의 이름을 모조리 쓸 수는 없고 마(ma) 하나만 쓰겠소. 이것의 이름은 앞으로 마요네즈(Mayonnaise)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앙리 3세 전하와 식성이 아주 흡사하니 승전연에 쓰일 요리는 모두 제가 먼저 맛을 보면 좋지 않겠습니까.”
“승전연? 무슨 승전연이오?”
“조아이유즈 공작께서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병사 팔천여 명을 이끌고 기습에 나섰습니다. 놈들이 방심한 틈을 타 공격하였으니 반드시 승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뭐라 했는지 머리가 안 돌아갔다. 사절단이 도착해 임시 휴전인 이 상황을 먼저 깨트리려고 기습을 하고.
그 기습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는데 승전연을 미리 열겠다고?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다가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 만약 크게 패배하여 연회 와중에 소식이 전해진다면 얼마나 속이 후련하겠는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물론이오. 앞으로 맛볼 음식이 많으나 부디 연회의 즐거움을 위해 입을 다물어 주시오.”
“그리 하겠습니다! 제가 입 하나는 간수를 잘하는 편이지요.”
승전연을 미리 열 것이라는 소식을 방방곡곡에 퍼트려 놓고 거기서 나올 음식을 기대하다니 이 나라의, 아니, 앙리 3세의 가문인 발루아 가문의 운명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 * *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된 10월 23일부터 승전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앙리 3세가 이미 전쟁을 이겼다 생각하고 연회를 준비했다 여겼지만 아니었다.
연회장의 표정을 보니 그저 연회를 열고 싶어 승전을 빌미로 삼았을 뿐이다.
이 한심한 작태도 조만간 끝을 내리라.
앙리 3세가 이긴다면 승전연 이후 이탈리아로 가면 될 것이며, 앙리 3세가 패배한다면 패전 이후 내전의 격화를 염려하여 이탈리아로 간다 하면 되겠지.
형님이 앞으로 나서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제가 불란서에서 두 달 넘게 요리를 배우며 절실히 통감한 바가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식단은 구주의 화려한 풍속과 어울리지 않으며 육질에서 나오는 기름기야말로 진실한 맛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어서 기쁘군, 그러하면 이번 연회의 요리는 대체 무얼 내왔는가.”
“입으로 논하기 전에 입으로 즐기시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시종들이 온 힘을 주어가며 수레를 움직여 요리를 가져왔는데 하나같이 내 현대 지식을 총동원해 만든 혈관과 내장을 파괴해 만드는 요리들이지.
이 시대의 기준점이 기름진 음식이면 아예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면 된다는 논리 비약을 통해 탄생한 녀석이다. 마치 비행기 위에 인공위성이 떠다니듯 압도적인 열량을 자랑하는 요리들이 속속들이 식탁 위로 옮겨졌다.
“이건…… 파이인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위에 올라온 것은 소시송(saucisson: 소시지)인데 이토록 거대한 파이는 본 적도 없다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유락(치즈)전입니다. 반죽 위에 번가(토마토)로 만든 장을 바르고 다시 말린 버섯을 돼지 뱃살을 볶아낸 기름에 튀겨 얹었으며 위에 물소 젖으로 만든 유락을 가득 채웠지요.”
시대를 초월해 선보인 첫 요리는 시카고 피자이다. 현대에서도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를 먹고 느끼함에 몸서리쳤던 녀석인데 형님은 더욱 심각한 기름 폭탄을 만들었다.
커다란 칼이 피자를 절반으로 가르고 사이를 벌리자 3㎝가 넘는 두께의 치즈가 폭풍처럼 쏟아지고 속에서 버섯과 베이컨 조각이 쏟아져 나왔다.
다들 경악하는 가운데 형님은 한 조각을 크게 썰어 앙리 3세 앞에 건네주었다.
“드시지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맛을 조절하였으니 사뭇 만족하실 겁니다.”
“그야말로 치즈가 비처럼 쏟아지는구나.”
이 요리는 겉으로 보이는 기름이 없지만 속에는 모조리 기름 덩어리이다. 조선에서는 대양도(대만)에서나 간혹 남는 물소 젖으로 만들어 별미로 먹는 모차렐라 치즈가 맛을 잡아주고 버섯과 베이컨 모두 기름지고 짜게 간했다.
그나마 양심상 넣은 채소는 형님이 만들어둔 토마토 페이스트가 담당했는데 여기에 고추를 제법 섞어서 아릿한 매운맛이 올라와 입을 씻어준다.
앙리 3세를 비롯한 프랑스 귀족들은 이를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웠다.
하지만 여기서 연회가 끝나겠는가.
조선 명칭은 계란장, 프랑스 정식 명칭은 마요네즈라 불리는 소스가 나오자 여기에 옆에 둔 츄러스를 푹푹 찍어 먹어대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는 기름을 ‘사용한’ 음식이 많을 뿐 기름 그 자체를 먹는 풍습은 거의 없으니 이들은 말 그대로 현대 음식에 미각이 절여져 버렸다.
“다음은 푸아그라를 쇠고기 튀김 사이에 넣고 간을 와인을 졸여 맞춘 음식입니다.”
“식탁의 정점이나 마찬가지로군! 이 음식들은 하나같이 대대손손 보배로 내려와야 할 걸세!”
식탁의 정점이 아니고 폭식의 정점이겠지. 지금 앙리 3세가 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의 정체는 미국인조차 먹기 꺼려 하는 빵 대신 닭가슴살 튀김을 사용한 그 햄버거를 마개조한 물건이다.
비프커틀릿을 빵 대신 쓰고 패티는 살짝 구워낸 푸아그라에 마요네즈와 와인을 졸여 만든 소스를 섞어 바르면 입에도 담기 끔찍한 햄버거, 아니, 푸아그라 버거가 완성된다.
추정 열량은 내가 식품영양학과를 나오지 않아 모르겠지만 대략 1,800㎉이다.
하지만 형님이 절묘하게 배합한 신맛과 짠맛은 샴페인과 융합해 프랑스 귀족 모두를 폭식의 나락으로 쑤셔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조선 관료들은 아예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호사스러운 음식을 저렇게 많이 먹을 수 있다니. 저렇게 많이 먹는다면 한 달 내내 절육을 하여도 몸을 되돌리기 힘들 것입니다.”
“나는 저게 사람인지 기름을 먹는 돼지인지 모를 지경이라네. 허여멀건 것이 이 지역 돼지와 흡사하기도 하고…….”
승전연이랍시고 초대되었는데 폭식의 정점을 확인한 조선 관원들은 내 눈을 물끄러미 보았고 나도 눈을 마주치기 부담되어 시선을 천장으로 돌리며 애써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내가 뭘 어쩌겠소. 저렇게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데 그 소원을 아주 제대로 들어줘야 하지 않겠소. 아국에서 불효를 저지른 자에게 저런 음식을 먹인다면 참 좋겠구려.”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서애 대감께서는 양심조차 없으십니까?”
“이미 형님이 모욕을 당한 상황에 양심 같은 사소한 물건은 제쳐 두면 되는 법이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던 폭식도 막을 내렸다.
갑자기 연회장 문이 열리고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기사가 무릎을 꿇고 급보를 올렸다.
“급보입니다! 조아이유즈 공작의 군대가 대패하고 공작께서는 전장에서 목숨을 달리하셨습니다. 이번 기습을 예상한 반군이 이미 대처를 충실히 해놓았습니다!”
“그게 뭐가 급보란 말인가! 새 지휘관을 어서 선출하고 반군을 재차…….”
문이 훤히 열린 밖으로 파리 시내가 보였는데 어둠이 내려온 늦가을 밤 풍경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길거리에 횃불로 보이는 불길이 넘실거리는 것이 보통 사태가 아니었다.
“급보가 또 있습니다. 조아이유즈 공작의 패배가 전해진 이후 파리 시민들이 봉기하였습니다! 이미 파리 외곽의 길이 막히고 각지의 병사들이 제압당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은 뭘 하는가! 제후들은! 위그노 놈들이 파리까지 엄습하였는데!”
“파리 시민의 봉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귀족들이 조선 사람들을 핍박할 정도로 사치에 미친 왕이라 하며 시민들을 선동하였고 이들이 수레를 끌고 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앙리 3세가 우리를 물끄러미 보았지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그의 손에 있었다. 우리는 그저 평상시처럼 검소하고 근육적인 생활을 이어간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사절단의 책임자는 나이다.
급한 상황이니 앙리 3세가 어떻게 되건 말건 그의 억장을 무너트리는 말을 하며 연회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봉기에 아국의 관원들이 휩쓸릴까 염려되니 저희가 스스로 파리 시내 밖으로 도주하겠습니다. 마차야 파리 밖에 있는 물건을 쓰면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잠시! 그 짐은! 재물은! 다른 물건들은 어떻게 옮길 거요!”
“저희가 들어서 옮기면 되니 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만약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피난 계획을 짠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입신체비로 다져진 사람들이니 모든 짐을 지게에 짊어지고 파리 밖까지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지.
앙리 3세가 먹던 음식을 두건 기사들을 불러서 멱살을 잡건 말건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지켜야 하리라.
점점 횃불의 물결이 성으로 밀려오는 가운데 우리도 탈출을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앙리 3세 시절에 파리에서 시민과 귀족이 연합해 봉기한 것이 사실이냐 물으시면 사실이라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 사절단 관련으로 불만이 쌓여 조금 빠르게 봉기가 일어난 차이점 외에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