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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53화 (453/573)

근육조선 453화

2부 23장 10화 문화 공격(2)

조선에서도 왕이 가끔 사냥에 나서는 일이 있다.

보통 한가위가 지나 벼의 수확이 끝난 이후 보름 가까이 지속되는 대규모 사냥인 강무(講武)나 닷새 이하로 짧은 기간 동안 소규모로 사냥하는 타위(打圍)가 있다.

다 목적이 있는 의식에 가깝다. 강무는 군사 훈련을 겸하며 수확 직후 논밭으로 내려올 산짐승들을 소탕하는 효과가 있으며 타위는 장수들의 통솔력을 강화하고 맹수를 제압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이 사냥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종친의 일원으로 예전부터 배운 바가 있소이다. 임금이 사냥을 벌일 때에는 군사를 훈련하고 지역을 위무하며 그 자체로 위엄을 보이기 위한 예식이라 하였지.”

“제가 보기에는 군사 훈련은커녕 수를 앞세워 짐승들을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누가 아니라 하겠소. 내 서반아에서 듣기로 구주 일대에는 범은 없지만 승냥이가 백성들을 습격한다 하였소. 하지만 천리경으로 보니 승냥이가 저 멀리 달아나고 있구려.”

저 멀리 있는 언덕에는 최소 수백 마리에 달하는 회갈색 덩어리가 쏜살같이 도망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조선에서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늑대 떼가 분명했다.

저걸 왜 놓아주나 했는데 프랑스어를 해석한 정문부가 혀를 차며 말하였다.

“저희들이 승냥이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르니 맹수들은 모조리 보내주라 하고 있군요.”

“그게 뭔 소리인가. 수풀에 숨어서 덮치는 범이나 매화범이야 위험하지 승냥이는 별로 위험하지 않네. 활 한 자루만 있으면 승냥이 따위는 일격에 격살할 수 있거늘!”

생각해 보니 이황도 조식도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아직 승냥이가 남아 있다 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자취를 감췄다 했지. 저 승냥이가 다 돈인데 아깝다.

저걸 잡으면 고기는 먹지 않는다 해도 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삼아 자랑할 수 있고 고기는 사냥에 참가한 백성들이 어떻게든 스튜를 끓여 먹건 최소한 감사는 하리라.

이 모습을 본 입부 이순신은 혀를 차며 평가하였다.

“제가 현조(玄祖: 5대 위의 할아버지, 양녕대군)님의 덕을 받아 강무나 타위에 참가한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맹수의 흔적이 보이면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나서서 이를 저지하고 어떻게든 사냥하는 법이지요.”

“익히 알고 있소이다. 형님께서도 강무에 간혹 참여하여 화살을 날리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형님은 왜 맹수를 철저히 사냥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소.”

“들짐승들은 자신이 살던 땅을 찾아 돌아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강무가 끝난 뒤에 들짐승이 잡아먹을 사슴 같은 게 남아 있겠습니까? 결국 굶주린 들짐승들이 민가를 덮치는 법이지요.”

입부 이순신의 설명을 듣자 이 사냥 뒤에 일어날 비극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행동 자체로 피해를 입히는 모습을 보니 사절단의 표정도 일그러졌고 결국 내가 입에만 담아두던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차라리 걸주가 나을 겁니다. 그들은 반란이 일어나면 매섭게 제압하려 노력이라도 하지 않았습니까. 내란이 벌어지는 불란서에서 저런 짓을 벌이다니 차라리 걸주가 나은 지경입니다.”

“포락(砲烙)이나 주지육림 같은 짓을 벌이지 않아도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을 어지럽게 하니 혼군(昏君)이 따로 없군요. 듣자 하니 모후의 덕으로 왕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였는데 그 모후가 명을 다 하는 날에는…….”

“그만하시오. 우리는 사절단이며 불란서에서 우리를 대접한 것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소이다. 이걸 즐기되 사치를 벌이지 않고 남에게 모범을 보인다면 충분한 일이지.”

아무리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험담은 말투만 들어도 전달되는 법이다. 유럽 여행하면서 인종 차별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뜻은 몰라도 기분이 더럽게 나빴지.

어느 정도 몰이가 끝났는지 프랑스 기사들이 와서 말을 두 마리씩 붙여주었고 다들 앙리 3세가 제공한 말을 보며 평가하기에 바빴다. 마치 사장들이 모여 수입 외제차를 구매할 때 시승기를 남기는 것과 흡사하니 조금 웃기기는 하다.

“영길리의 거마보다 더욱 큰 말이지만 움직임이 경쾌하구려. 영길리에서 수입한 거마는 전차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라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불란서의 말은 더욱 큰 주제에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소.”

“제 벗인 승우(임차손의 자)가 요즘 영길리의 거마 대신 불란서에서 들여온 거마를 타고 다닌다 하였는데 이유가 다 있군요. 특히 발걸음이 아주 경쾌하여 엉덩이가 아프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샤이어 품종이라 불리는 말은 굳이 승차감, 아니, 승마감을 따지자면 연식이 오래된 트럭과 흡사한 녀석이다. 힘은 좋은데 덜컹거리는 느낌이 강해서 오래 탈 수 없지.

반면 앙리 3세가 제공하여 죄다 준마(駿馬)만 제공했음을 감안해도 페르슈 지방의 말은 외제차 가운데 대형 지프차와 흡사한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말 특유의 들썩거림은 있어도 이를 최대한 완화하는 동작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아무래도 불란서에서 얻어낼 물건은 가축이오. 소들이 젖을 짜내면 아국의 소 보다 두 배는 많이 소출되니 유락과 수유를 마음대로 얻어낼 수 있으며 말 또한 비범하기 그지없구려.”

이미 양모를 만드는 데 쓰기 좋은 양들을 펠리페 2세가 제공하기로 했으니 다른 가축이라도 건져내야지.

앙리 3세는 우리가 모두 말에 올라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자 화려한 갑주를 돋보이며 맨 앞에서 지시를 내렸다.

“이미 들판에 사냥감이 가득하니 마음대로 쏘아붙이시오! 혹시나 몰라 인근에서 소와 말을 공출해 사냥감 사이에 섞어두었소!”

“차라리 걸주가 여기 오면 명군이 되겠다.”

앙리 3세가 어디까지 한심함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걸주가 그의 모습을 보면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으리라.

당당하게 말해놓고 자신은 정작 대열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이건 강무도 아니고 그냥 노름에 가깝다.

펠리페 2세가 증정한 잉글랜드 장궁은 말 위에서 쓸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석궁이 있었다.

기세 좋게 치고 나가는 기사들과 어우러진 조선 사절단은 그들이 상상하지 못할 일을 거리낌 없이 하였다.

“각궁보다는 못 하여도 석궁이 쓸 만한 법이지!”

스페인 궁정에서 신나게 쏘아댔던 석궁들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사냥에는 처음 사용하는 물건이라 제대로 된 조준을 할 수 없었지만 조준이 부족하면 더 많은 화살을 쏘면 된다.

“어이쿠 한 놈 제대로 맞았구나! 대감께서 추격하던 사슴을 제가 잡았습니다!”

“사냥감은 지천에 널려 있다네. 나는 완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끄응!”

이렇게 위력이 좋은 석궁을 말 위에서 쓸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사람은 사력을 다해 밟고 온몸을 요동치며 장전해야 하니 말에서 내려 장전만 해두고 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충분한 완력은 상체의 힘으로 석궁을 장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연히 쉴 새 없이 석궁 화살이 날아들며 사냥감을 꿰뚫어 버리니 사냥터는 사실상 조선인들의 독차지가 되었다.

스페인 군관 우고는 우쭐하여 우리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금 장다름(Gendarme)들이 뭐라 하시는지 아십니까? 조선 기병들이 권총을 사용하지 않아 석궁을 말 위에서 사용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하는군요.”

“그것참 우스운 소리일세. 아국의 기병 가운데 재력이 되는 이는 나팔총 네 자루는 지참하고 다니거늘!”

하지만 이 더운 프랑스의 여름 기후에 말을 타고 부대끼니 내가 예상했던 문제에 직면했다.

구수한 냄새를 넘어서 양파 썩은 것 같은 냄새가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이 사람들 씻기는 하는 건가? 서반아 사람들도 어느 정도 채취가 나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거늘. 불란서는 대체 뭐 하는 동네인 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는 아무리 보아도 미친 것 같으니 답이 없습니다.”

솔직한 현대인 감성으로 말하자면 조선도 현대 기준으로는 더럽게 안 씻는 동네이다. 입신체비를 하지 않는 백성 기준으로 샤워는 보통 땀이 많이 흐르는 여름에 열흘마다 한 번 냇가에 가서 비누를 아주 조금만 써서 몸을 닦는다.

겨울이 되면 아예 감기가 걸릴까 염려하여 동짓날에나 따듯하게 덥힌 물로 몸을 씻지. 물론 우리는 입신체비사이니 매일같이 땀을 닦아내고 보름에 한 번은 몸을 아예 불리다시피 하여 목욕재계를 한다.

이렇게 청결한 조선 사람들의 눈에 프랑스 사람은 어디 거지 떼보다 못한, 아니, 한양의 거지들도 냄새가 너무 심하면 주변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옷을 대충 빨아주고 한강으로 데려가 몸을 씻길 기회는 주니 거지보다 못하지.

그 화룡점정은 앙리 3세의 얼굴이었다.

“으윽 저 땟국 보시오! 안면이 지나치게 하얀 색이어서 평생 시종의 보살핌을 받느라 햇빛을 보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불란서 왕의 용안(龍安)이…….”

“마치 시커먼 비가 내리는 것 같구려.”

앙리 3세의 창백한 피부는 화장 덕분이었다.

남자가 화장을 왜 하나 생각했는데 이놈들은 씻지 않아 얼굴에 시커먼 때가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그 위를 백분으로 덮었으니 여름 더위에 땀이 흐르자 모세의 기적처럼 하얀 얼굴에 시커먼 줄이 생겨나고 있었다.

“제 증조부께서 조선에 처음 입조하실 때 단련에 계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석감을 처음 사용하고 냇물이 시커먼 구정물이 되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셨지요.”

“솔직히 말해 옛 북인(여진족)들이 저들보다는 깨끗할 걸세. 그들은 변발을 하여 머릿니를 없애고 땀이 흐르면 얼굴을 갓 받아낸 오줌으로 닦아냈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결국 견디다 못한 이들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자 앙리 3세는 우리가 기세 좋게 날뛰다 지쳤다 여기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보시오, 이 땅은 주님께 축복을 받은 곳이 아니오. 이렇게 많은 사냥감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기력이 떨어질 만도 하지. 시원한 센(Seine) 강으로 가서 만찬을 즐깁시다.”

어찌나 눈치가 없이 말을 하는지 조선 관원들은 코웃음을 넘어서 박장대소를 하였고 앙리 3세를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은 이를 좋은 제안이라 여겨 받아들인다고 멋대로 판단하였다.

안내받은 장소는 분명 파리 인근의 강가이지만 거대한 별장이 있었다. 강가에 화려하게 장식된 요트는 물론이요, 이미 요리사들이 만찬을 준비하고 있으니 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

우리가 궁금해하자 앙리 3세는 얼굴에 화장을 다시 하고 답하였다.

“여기는 내가 취미 삼아 뱃놀이를 하는 곳이오. 더운 여름이 되면 뱃놀이를 즐기고 산해진미로 일정을 마무리하니 조선의 사절단을 접대하기에 마땅한 장소가 아니겠소.”

“제법 커다란 배인데 저 배를 어떻게 움직입니까? 돛이 상당히 작으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겠군요.”

“내려갈 때에는 물살을 따라 내려가고 올라갈 때에는 주변 사람들을 징발해 노 젓는 배로 끌고 가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아직 식사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으니 편안히 쉬시오.”

이제 할 말도 없었다.

만력제가 취미 삼아 온 세상에서 잡아들인 벌레로 싸움을 붙인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돈으로 방 안에서 즐기는 건전한 취미활동이다. 손가락질은 받아도 그게 전부이지.

최소한 앙리 3세처럼 강가에 별장을 짓고 만찬을 즐기며 주변 사람들을 징발해서 기행을 널리 퍼트리는 짓은 하지 않으니 얼마나 건전한가.

다시 느끼한 냄새가 진동하자 관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배를 감싸 쥐더니 형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또 기름진 음식이 나오겠군. 유 제조께서 아무리 재주가 좋으셔도 인근에는 시장도 없고 민가 몇 채가 전부가 아닙니까. 여기서는 그 정갈한 음식을 맛볼 수 없겠군요.”

“시장이 없으면 우리가 잡으면 되는 법이 아니겠소. 이렇게 적당한 강이 있는데 다들 천렵을 하시면 우리가 먹고도 남을 어죽이 나올 거요.”

“천렵이라 하셨습니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조선의 취미 중 하나는 천렵이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자주 했었고 나이를 먹고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간혹 시골 개천까지 내려가 어죽을 한 그릇 먹고 나오지.

사절단의 대표로 상원군이 나서서 제안을 하였다.

“아국에서는 뭍에서도 사냥을 하는 풍속이 있지만 개천의 물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풍속도 있습니다. 다만 저희가 웃옷을 벗고 몸에 달라붙는 입신체비복만 입고 들어가야 하니 부디 눈을 찌푸리지 말아주십시오.”

“뭐? 웃옷을 벗고 몸에 달라붙는 옷만 입는다 하였는가? 아주 좋으니 아무 염려하지 말게.”

갑자기 표정이 변해 싱글싱글 웃는 모습을 보니 의심이 되었는데 우고는 내 근처로 다가와 슬쩍 귓속말을 하였다. 표정을 보니 자신도 처음 접한 정보임이 분명하였다.

“소문에 의하면 앙리 3세가 남색을 즐긴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금 뭐? 아니, 그냥 덮어두게. 저놈이 남색을 즐긴다 하여도 왜인처럼 미동(美童)을 즐길 것이 분명한데 아국의 관원들이 저놈이 원하는 체형이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천렵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관원들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입신체비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자 앙리 3세는 흥분으로 물들어 있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게 내 체격이 사절단에서 뒤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다들 최소한 삼대운동 700근 이상이 가능한 근육질 거구이니 그의 미적 세계관을 박살 내는 상황이 아닌가.

이 사실을 아는 나와 상원군은 일부러 옷을 입은 채 강가에서 이리저리 지시를 내렸다.

처음에는 세상 정 반대편에서 천렵을 하니 머뭇거리는 관원들도 개천에 물고기가 널려 있으니 다들 몸을 아끼지 않았다.

“어이쿠! 이 머나먼 곳에도 가재가 지천에 널려 있네! 거기 토하(土蝦: 민물새우)는 좀 있소?”

“여기의 토하는 씨알이 아주 굵은걸? 어찌 보면 징거미와 닮아 있기도 하고. 물고기는 좀 어떠시오? 족대를 놀리면 잡히긴 하나?”

“말도 마시구려! 물고기가 지천에 널려 있으니 족대를 넣으면 넣는 대로 넘쳐나고 있소!”

프랑스의 축복받은 평원은 강에게도 그 은혜를 전달하였다. 지나치게 거대한 한강도 아닌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센 강에 들어간 사절단 인원들은 쉴 새 없이 물고기를 잡아들였다.

심지어 우리에게 도구를 빌려준 인근 농부도 신이 나서 우리를 돕고 있었다.

“물고기는 이쪽으로 내어주시고 새우들은 반대편 바구니에 넣어주시구려. 내 시원한 어죽을 끓이려 하였는데 된장을 가져오지 않아서 서역의 물산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 것이오.”

“형님은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무얼 하기는. 국물을 내려면 시원한 맛이 필요한데 번가(토마토)를 졸여서 시원한 탕국의 맛을 내놓으려 한다. 자고로 신맛은 볶으면 사라지는 법이 아니겠느냐.”

요리사라면 새로운 식재료를 마음껏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형님은 아예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려 하였다.

그러더니 아직도 얼굴을 일그러트린 앙리 3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불란서의 왕에게 가장 값싼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어죽을 먹인다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우선 번가를 볶아 신맛을 줄이고 국물의 재료를 만드는 걸로 시작하겠다.”

형님이 준비한 메뉴를 보니 프랑스 음식에 대한 기억이 솟아올랐다. 프랑스의 해물탕이라 하면 1인분에 50유로가 넘는 미친 가격을 자랑하는 부야베스라는 요리가 있지.

본래 잡고기를 넣어 끓인 탕이라며 서민 음식이라 천대받던 음식이라는데 형님은 기본부터 착실하게 진행하였다.

잡아들인 민물새우의 머리를 뜯어내고 머리만 따로 볶아 육수를 우려낼 준비를 하더니 인근 농가에서 가져온 채소를 잘게 썰어 따로 볶기 시작했다.

“아무리 값싼 음식이라도 맛이 없으면 무엇도 안 되는 법이다. 고기 육수 대용으로 모든 채소를 볶아 육수를 만들고 향채(허브)를 넣어 향을 돋우도록 하겠다.”

“하지만 향채로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잡을 수 없는 법입니다.”

“번가를 졸일 때 대비를 하였다. 중간에 들린 천축에서 사들인 향신료에 마늘을 잔뜩 넣고 고초(고추)를 넣으면 맵고 아린 맛이 우러나오며 비린내가 사라지는 법이지.”

완성된 물건은 내가 프랑스에서 먹었던 현대의 부야베스와 닮아 있으면서 내용물은 매운탕에 가깝고 매운맛과 향신료 맛이 잘 어우러진 스튜였다.

이걸 어디로 분류해야 하는지 망설이던 와중에 만찬이 시작되었다.

“이…… 수프를 나 보고 먹으라 하는가.”

앙리 3세의 표정이 더 구겨질지 몰랐는데 정말 더 구겨져 버렸다.

민물고기가 넘실거리는 그릇을 받은 앙리 3세는 맛을 보며 표정을 조금 폈지만 그는 어떻게든 불만을 표출하려 하였는지 엉뚱한 말을 하였다.

“맛은 있소. 인도에서 들여온 향신료는 물론이요, 각 맛의 배합이 절묘하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구려. 하지만 단 하나가 부족하니 바로 기름이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형님은 물론이요, 사절단 인원들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앙리 3세는 이 요리가 맛있다 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에 불을 켜며 형님을 지목하였다.

“그러니 내 궁중에서 요리를 배워 가도록 하시오. 요리의 정수는 다른 어디도 아닌 축복받은 이 땅에 있으니 앞으로 만찬에 쓸 수 있는 요리를 배우면 충분한 보답이 아니겠소.”

형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지만 이미 표정이 일그러지다 못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그놈의 기름은 좀 줄이란 말이다!

#작가의 말

이 시대의 프랑스 요리는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와 귀족 문화의 정수인 이탈리아 요리를 받아들여서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이를 오트 퀴진(Haute cuisine)이라 부르지요. 더군다나 17세기에 조금이나마 양념과 기름기를 줄이는 추세가 시작되기 전이니 말 그대로 칼로리 폭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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