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48화
2부 23장 5화 근육 신부
소 한 마리는 필요할 연자방아가 세스페데스의 힘에 의해 부드럽게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그의 하체 근육이 꿈틀거리며 힘을 전하였다.
로마에서 한참을 떨어진 산골 트리엔트에서 벌어진 기묘한 광경에 추기경과 주교 대다수가 평가를 하였다.
“고행이라, 저런 거대한 연자방아를 돌리는 고행은 분명 판관 삼손이 블리셋 사람에게 잡혀 행한 일이니 보통 사람이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저게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혹여나 선교에 나서면 저런 거대한 연자방아를 돌려 야만인들에게 밀가루라도 빻아주라는 말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옛 성인들의 발자취와 연관이 있는 법이 아닙니까. 선교를 행할 이들에게 주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전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지금 뭐라 하였소! 우리보고 이 거대한 연자방아를 돌리라고?”
공의회를 위해 소집된 학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세스페데스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신부 세 명이 달라붙어도 저런 연자방아를 돌리면 몇 바퀴를 돌리지도 못하고 뻗으리라.
하지만 세스페데스는 만족하다 못해 아예 흥에 겨워 몸을 들썩거리며 연자방아를 밀어댔다.
지금까지 일 년 넘게 유럽에서 머물며 입신체비기구를 만들 장인을 구하지 못해 근손실이 시작되려던 찰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입신체비라는 조선의 학문으로 몸을 단련하면 충분히 실시할 수 있습니다. 당장 저만 하여도 삼대운동으로 구백 근, 아니, 십삼 센티나(스페인 무게 단위, 약 600㎏)를 달성했지요.”
“삼대운동은 뭐고 십삼 센티나는 어디서 나온 말이오! 거의 대포를 들어 올린다는 소리요?”
“소형 팔코넷이면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입신체비에 정말 능한 자는 대형 팔코넷도 운동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연자방아를 돌린 세스페데스는 우물로 달려가 밧줄을 당기며 온몸의 힘을 집중하였다.
처음에는 물동이가 올라올 것이라 기대하였지만 우물 속에서 튀어나온 물건은 거대한 돌덩이였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백오십삼 마리의 물고기를 그물에서 건져 올릴 때의 중량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 목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 그 돌덩어리가 사람 한 명의 무게라 하였나.”
“하체를 고정할 수단만 있다면 사람 두 명의 무게도 들어 올릴 수 있는 법입니다!”
점입가경이라고 기예(技藝)에 가까운 입신체비가 계속 발휘되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 하였는데 정말 사람을 낚아 올려도 될 완력을 보여주는 세스페데스의 모습을 보자 다들 창백하게 질려 그의 완력을 가늠하였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노예들의 고난을 체험한다며 거대한 돌을 짊어지고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
사마리아 성벽을 오르는 고행을 본받아 밧줄을 타고 위아래로 거세게 움직이는 운동.
다윗 왕이 강을 건널 때를 본받아 나룻배를 젓는 운동.
열 가지가 넘는 각각의 운동이 분명 성경에 나오는 성인의 위업을 칭송하기는 하였으며 전신의 힘을 모두 사용하는 거센 노동임을 증명하기는 하였다.
세스페데스가 정리운동을 마치자 한 신학자는 근위병을 불러 확인 작업을 하였다.
“내가 군사와 관련된 지식이 부족하지만 보고 경험한 바는 있네. 이 운동들 가운데 상당수가 기사들이 몸을 단련하는 운동과 닮아 있는데 자네가 보기엔 어떠한가?”
“직접 해봐야 알겠지만 유사한 운동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량이 몇 곱절이나 많습니다.”
“자네들은 교황청 직속 근위대가 아닌가. 하지만 자네들도 불가한 운동이라고?”
“당연히 점진적으로 무게를 늘려나가며 몇 년 동안 노력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장 하라 하시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겠습니다.”
어마어마한 충성심을 자랑하는 스위스 용병 출신들이 거절할 정도면 저 운동이 가져올 고난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스페데스는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단언하였다.
“주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무지한 이들에게 가르침 이전에 몸으로 성인의 옛 행적을 전하면 충분한 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려운 이들을 보면 가르침을 전하기 이전에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틀린 말은 아닐세. 하지만 자네의 행동은…….”
“어려운 이들에게 성경을 알리기 전에 몸으로 나서서 도와준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혹여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니 훗날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세스페데스의 방식이 옳을 수는 있다. 기사들처럼 몸을 단련하면 선교 활동에서 벌어질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도 있으며 뛰어난 완력으로 가르침을 설파할 수도 있는 법이다.
결국 다음 토론 주제는 ‘육체적 단련을 통한 선교 방식’이었다.
선교 방식이라는 주제로 넘어가자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인 트리엔트에 다시 수많은 수도자들과 한때 선교사 활동을 벌였던 수많은 신부들이 몰려들어 열띤 토의를 진행하였다.
세스페데스는 이들에게 열정적으로 입신체비를 설명하였다.
하지만 어떠한 문화적 여건도 사회적 기반도 마련되지 않은 것이 유럽의 현실이었다.
심지어 세스페데스와 같은 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점점 더 난해한 상황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매일같이 육류를 섭취하면 사순시기의 고행은 어찌 실시하오.”
“사순시기에는 동양에서 만드는 콩 치즈(두부)나 우유 혹은 진짜 치즈로 육질을 보충하면 됩니다. 여의치 않으면 귀리를 볶아서 먹어도 충분하지요.”
“귀리는 말이나 아주 가난한 농노가 먹는 음식이 아니오!”
“하지만 몸을 기르려면 그 정도의 고행은 넘어가야 하는 법이 아닙니까.”
입신체비에 대해 알면 알수록 현실적인 벽이 모두의 앞을 가로막았다.
육체적 단련을 위한 요구사항을 정리한 교황청 전권 대사는 한숨을 쉬며 평가하였다.
“아예 십오 세 이하의 청년들을 모집하고 그들에게 개개인이 몸을 단련할 수 있는 쇳덩이를 지급하며 섭생과 일상을 모조리 통제해야 한단 말이군. 그마저도 지금까지의 수도회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아닌가.”
부패하지 않고 온전한 규칙을 따를 경우 고되다 못해 몸을 상하게 만드는 수도회의 규칙이지만 세스페데스가 제시한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한 전도 활동보다는 난이도가 낮았다.
사람을 억누르며 가혹한 규칙을 적용하면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편하게 돌아가겠지만 몸과 마음 모두를 단련하는 방법이라면 수도원장은 대외 업무는커녕 뒤치다꺼리를 하기 바빠 평생을 수도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리라.
“이번 이야기에 대해서는 교황 성하와 논의를 재차 취해보게나. 이미 부온 콘시길로 성(트리엔트에 있는 고성)의 대여 기간도 끝나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1586년 11월, 공식적인 트리엔트 2차 공의회의 일정이 끝났지만 세스페데스는 아직도 부온 콘시길로 성에 남아 마무리 작업을 하였다.
지난 여섯 달 동안 설치한 입신체비 기구들은 개인 재산으로 설치한 물건이기에 스스로 정리해야 하는 법이었다.
신부들이 뭐라 중얼거리건 그는 홀로 모든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신체 단련을 거듭하였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면 맨몸 운동으로 근손실을 막아내야 하는 입장이니 오늘도 사지가 풀릴 정도로 몸을 단련한 상황이었다.
“신부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사실 신부님께서 저희 방앗간에 오셔서 곡식을 좀 빻아주시면 어떨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여기 포도주라도 한 잔 드시지요.”
“포도주라! 절육을 실시해야 하는데 술은 아니 되는 법이지만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짐을 옮기며 하체를 단련해 다리를 휘청거리던 세스페데스는 한 인부가 건네준 포도주를 들이켜며 숙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포도주 안의 아편으로 인한 수면에 깊게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 * *
잠시 뒤. 세스페데스는 몸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사지를 움직이려 하였다.
하지만 사지가 결박되어 움직이지 않으니 전신의 힘을 주어 이를 풀어내려 시도하였다.
하지만 손목과 발목이 당겨지며 그의 몸을 재차 대(大)자로 벌어지게 만들었고 절대로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렸다.
“드디어 일어났는가. 세스페데스 자네가 머나먼 동방에 다녀온 이후 동방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묵묵히 참고 있었다네. 하지만 동방의 학문을 선교에 이용한다는 말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더군.”
세스페데스의 옆에는 절대 만나기 싫은 인물이자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있었다.
로베르토 레예스의 숙부인 모스구즈만 대주교, 아니, 이제는 이름만 주교가 된 옛 이단 심문관이 거대한 몸을 뒤룩거리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모스구즈만 대주교! 아니, 성무 집행이 정지당해 명의만 주교가 된 당신이 이런 짓을 저질러도 되는 법입니까? 이 머나먼 트리엔트까지 와서 대체 뭔 짓을 저지르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충분히 알고 있다네. 자네가 머나먼 동방의 이교도들의 학문을 십 년 동안 익혀 주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이교의 교리를 숭배하게 되었으니 이를 정화하려는 마음이지.”
“애초에 저를 보내신 분은 교황 성하와 펠리페 2세 전하입니다! 동방의 국가 조선의 지식을 충분히 익혀 선교 활동에 이바지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입 닥쳐라! 내가 그놈의 조선 때문에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는데 조선이 사특한 이교의 집단이 아니라면 대체 뭔 소리인가! 내 동기들은 모조리 교황 성하 휘하에서 출세하였는데 나는 시골 수도원에 박혀 있다고!”
분노와 아집에 물든 모스구즈만은 기어이 자신 휘하의 고문 기술자와 병사들을 이끌고 트리엔트까지 달려와 뒤늦게 로마로 향하려던 세스페데스를 납치하였고 그에게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들 작정으로 고문을 실시하려 하였다.
모스구즈만의 휘하에 있던 고문 기술자들이 손바닥에 침을 뱉고 형틀을 돌려 그의 팔다리 관절을 뽑아내려 하였다.
하지만 쉽사리 돌아가던 손잡이는 이내 돌아가지 않았다.
“대체 왜 멈추는가! 사지의 관절을 뽑아내면 저절로 올바른 말이 나오는 법인데 이를 하지 않아? 안 하는 건가 못 하는 건가!”
“저희는 못 합니다!”
“이 빌어먹을 놈들! 모든 일을 내가 무마하겠다고 했는데 왜 못 한단 말인가! 동방의 이교에 홀린 세스페데스 신부를 어서 고통으로 정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스구즈만은 고문 기술자들이 신부를 고문할 수 없다 여겨 고문을 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세스페데스의 사지를 뽑아내려 하였지만 세스페데스의 힘이 너무나 강했다.
고문 기술자는 두 명에 불과한데 세스페데스의 힘은 보통 사람 세 명보다 강하다. 오히려 손잡이가 역으로 풀려나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결국 모스구즈만은 눈을 부라리며 말하였다.
“그래, 너희들이 안 한다면 내가 직접 해야지! 잠시만 기다리시게. 내가 불에 인두를 달궈 올 것이니 차라리 사지의 관절이 뽑히는 것을 바라게 만들 것이네.”
모스구즈만이 밖으로 나섰지만 고문 기술자들은 여전히 손잡이를 잡고 온 힘을 다하여 돌렸다.
잠시라도 힘을 주지 않으면 형틀이 풀려나며 세스페데스가 자유를 찾으리라 여겼지만 거대한 힘이 집중된 형틀이 뒤흔들렸고 이윽고 한계가 찾아왔다.
-투둑
“밧줄이 왜 끊어져! 이게 소나 말도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끊어지는 물건이었어?”
삼대운동 900근을 넘어서는 세스페데스의 힘이 집중된 밧줄이 툭툭 소리를 내며 올이 풀리다 마침내 끊어졌다.
고문 기술자들이 충격으로 자리에 자빠진 사이 세스페데스는 밧줄을 하나씩 풀어내고 형틀에서 내려왔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세스페데스의 고요한 눈과 마주친 고문 기술자들은 무릎을 꿇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목숨을 구걸하였지만 세스페데스의 입장에서 이들은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이 기술자들은 기껏해야 고문하는 척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힘썼으며 낡은 밧줄을 가져와 자신이 풀려날 수 있게 꾀를 썼다.
이제 조용히 사라지면 될 것이라 여겼지만 다시 문이 열리며 모스구즈만이 인두를 들고 들어왔다.
“이제 불로서 정…….”
“형제여.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할 것이니 저를 돌려보내 주시지요.”
세스페데스가 고개를 깊게 숙이고 성호를 올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모스구즈만은 멍한 눈으로 사지가 멀쩡한 세스페데스를 바라보더니 뒤로 물러나며 고함을 치려 하였다.
“놈이 풀려났다 당장 놈을 포박! 으아악!”
섬전같이 달려든 세스페데스가 어깨로 모스구즈만의 출렁이는 뱃살을 밀어내자 거의 120㎏이 넘는 그의 거대한 몸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니 세스페데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배운 내수린의 기술을 사용하려 하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주님께서 목숨을 구명해 주시기를 빌 뿐입니다!”
“이봐 잠깐! 자네 지금 뭘 하는 건가! 내 다리를 부여잡고 대체 뭘!”
“이게 역차돌리기라는 겁니다.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군요!”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뜀박질 소리가 들려오자 세스페데스도 어쩔 수 없이 역차돌리기를 실시하였다.
모스구즈만 휘하의 병사들에게 그를 거세게 집어 던지면 충격으로 서로가 얽혀 넘어지며 자신이 탈출할 틈이 생기리라.
“사람 살려! 제발 살려주시오! 이 이단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
“어지간하면 살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세스페데스가 전력을 다해 몸을 돌리니 모스구즈만의 몸이 점점 허공으로 떠오르며 비명이 어지럽게 방 안을 메웠다.
조만간 홀의 문을 열고 병사들이 들이닥칠 것이라 예상한 세스페데스는 숨을 고르며 사지의 힘을 집중하였다.
이윽고 문이 덜컹거리다 거칠게 걷어찬 듯 아예 바수어지며 열리고 세스페데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모스구즈만을 집어 던질 각도를 가늠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문을 연 사람은 다급히 찾아온 로베르토였다.
“숙부님!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그만두십시오!”
“로베르토야! 나를 좀 살려줘!”
외팔이의 신세가 되고 허송세월하던 로베르토였지만 숙부가 다급히 움직였다는 소식에 머나먼 트리엔트까지 달려와 병사들을 제압한 뒤였다.
하지만 당황한 세스페데스는 손의 힘을 풀어버렸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끄아아아아악!”
모스구즈만의 거대한 몸은 쏜살같이 로베르토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고 로베르토는 반사적으로 납작 엎드려 몸을 피했다.
바닥에 거세게 부딪히고 여력이 남아 복도를 부수고 튕긴 숙부의 거대한 몸을 본 로베르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유일한 완충장치는 나무 기둥 하나였다. 나무 기둥에 금이 갈 정도로 세차게 얼굴을 박은 모스구즈만은 오뚝한 콧대가 납작하게 짓눌리고 광대뼈까지 평평하게 으스러지며 오줌을 지리고 기절하였다.
그래도 숙부인지라 로베르토는 목소리를 높여 사람을 찾았다.
“숙부님이 위독하시다! 당장 의사를 불러! 그나저나 세스페데스 신부 당신 괜찮소? 숙부께서 고문 기술자를 소집했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멀쩡하시오?”
“제 몸이야 전혀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수습이라 하였소? 이건 밧줄이 아니오! 그리고 저기 있는 물건은 고문 형틀…… 잠깐! 당신 이 밧줄을 끊어내고 형틀에서 탈출했단 말이오?”
아직도 세스페데스의 손목에 감긴 밧줄을 가리킨 로베르토는 방 안으로 달려가 아직도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고문 기술자들과 형틀을 다시 확인하며 재차 물어보았다.
“이 두꺼운 밧줄을 끊고 형틀에서 일어났단 말인가? 만약 밧줄이 끊어지지 않아 고문을 실시하였다면 내 숙부와 자네들 모두 내 손에 호되게 당했을 것이네.”
“옳은 말씀입니다.”
고문 기술자 입장에서는 세스페데스의 완력에 휘말리지 않아 목숨을 건진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베르토는 아직도 형틀에 묶인 밧줄을 보며 성호를 올리고 갈고리와 손을 맞대 합장하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는 주님께서 내리신 기적일세. 삿된 행적을 보고 밧줄을 끊어 세스페데스 신부와 자네 둘의 목숨을 구명(救命)하였으니 이 어찌 주님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기적은 아니고 완…… 아니! 기적이 맞습니다.”
어느새 뒤로 다가온 세스페데스를 보고 질겁한 고문 기술자들은 어떻게든 그의 완력에 처참하게 사지가 꺾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기적이라 증언하였다.
결국 세스페데스를 납치하고 고문하려던 옛 이단 심문관이자 대주교 모스구즈만은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치아 9개가 박살 난 채 폐인이 되었으나 이는 또 다른 분쟁의 시작이 되었다.
* * *
지금까지 로베르토가 한 말을 듣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바티칸은 아니고 지방 소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해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한 선교 방법을 알려줬다. 여기에 반박하고 논쟁이 벌어지는 일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이 문제였다. 아무리 정당방위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성직자가 같은 항렬의 성직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엄연한 범죄이다.
그냥 폭행이라면 모르겠는데 세스페데스의 힘이 너무 강했다.
“이후 로마로 돌아가서 교황 성하께 재차 조선의 학문을 접목한 선교 방법에 대해 설파하였지만 숙부님을 불구로 만든 건이 너무 크나큰 논쟁거리였소. 차라리 창칼을 맞대었다면 모를까 사람을 집어 던져서 더욱 문제이지.”
법이라는 것이 참 적용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법이다.
사람을 주먹으로 두드려 팬 것과 창칼로 찌른 것의 경중을 따지기 쉽지만 순수하게 완력으로 집어 던져 불구로 만들었다면 논쟁의 소지가 빗발치리라.
“교황청이 난리가 났겠군요.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이단 심문관 출신인 교황 성하조차도 이번 일을 묻어두려 하였소. 하지만 다른 이단 심문관은 숙부님을 불구로 만든 세스페데스 신부를 가만히 내버려 두려 하지 않았지.”
로베르토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지만 이런 일은 이해할 수 있다. 세스페데스가 적당히 두들겨 팼다면 모를까 아예 얼굴을 납작하게 만들었으니 살인 미수 수준의 폭행 사건이다.
그렇다면 로마가 아닌 다른 지방 도시로 피난이라도 갔나?
“어떤 처분이 내려졌습니까? 그리고 입신체비를 통한 선교 방식은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교황성하께서는 두 처분을 하나로 묶었소. 먼저 세스페데스 신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정도가 과하다 하여 머나먼 서쪽 오추세(플로리다 일대)로 선교를 보내셨소.”
“오추세? 거기는 조선 기준으로 미주가 아닙니까? 거기에 선교를 가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아직까지 선교 활동을 실시하지도 않은 자가 선교에 대해 논하니 그 증거를 가져오라 하였소. 정말 조선의 학문을 접목한 선교가 성공한다면 충분한 신도를 확보하였다는 조건 하에 대주교의 자리를 보증한다 하셨지.”
“답답한 방식이긴 해도 아주 현명한 해결책이긴 합니다.”
세스페데스를 어차피 로마에 두어 봤자 성과를 증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뭘 시도라도 해봐야 성과를 보고 판단해서 전략을 수정하던 그대로 도입하던 하는 법이지.
자의는 아니고 실수이지만 분란을 일으킨 자를 적당히 묻어두고 성과를 보이면 발탁하겠다는 태도이니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런데 이거 잘하면 미주 관찰사로 부임하고 세스페데스를 만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작가의 말
이단 심문관은 수도사나 신부에 대해서도 단죄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표 사례가 프란치스코 수도회 화형 사건이지요.
물론 모스구즈만처럼 명령장도 없고 혐의 사실도 없이 심증만으로 저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논란을 넘어서 파문까지 치닫는 사례로 찍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