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47화 (447/573)

근육조선 447화

2부 23장 4화 근자구주행(4)

한참 동안 이어진 박수갈채가 끝나자 펠리페 2세를 비롯한 귀족들은 한 줄로 도열한 남사당패의 앞으로 다가가 찬사를 늘어놓았다.

“훌륭하군, 참으로 훌륭하오! 사람의 몸을 극한까지 쥐어 짜내어 이런 기예를 선보이다니 머나먼 동방의 신비라 할 수 있겠군. 이런 일을 대체 어디서 배웠소? 아니, 터득하였소?”

펠리페 2세도 취기가 완전히 가신 채 흥분한 얼굴로 남사당패 단원의 손을 잡고 흔들더니 감탄한 기색으로 그의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재차 말하였다.

“내가 기사들의 손을 맞잡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굳은살이 많이 박인 손은 본 적이 없군. 평생 동안 훈련에 매진한 자가 아니라면 이런 손을 만들 수 없는 법이 아닌가. 이들은 해가 뜨는 동방에서 왔으니 태양의 곡예단(Circo del Sol) 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네.”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지만 머나먼 서방의 임금께서 제 손을 맞잡으셨으니 영광이 아닐 수 없군요. 이를 후손에게 대대로 자랑하겠습니다!”

남사당패 단원 한 명 한 명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본 발레단원들의 얼굴이 분노와 경외로 가득 차는 모습을 보니 조만간 발레단원들이 죽도록 고생할 것 같기는 하다.

영직이가 말하길 발레단원들은 하나같이 보디빌더도 감탄할 정도로 극도로 단련된 근육의 소유자라 하였는데 이 발전이 가속화될지도 모르지.

이쯤 되면 태양의 곡예단을 보려고 서양의 귀족들이 조선까지 올지도 모르겠다.

스페인과 공식 외교 업무를 시작한 첫 날은 좋게 끝났고 이틀이 지나 다들 여독이 풀리고 몸이 풀어질 때가 되었다.

당연히 배정된 숙소 앞에는 입신체비 기구들이 빼곡히 놓였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궁궐 근처를 뛰어다니면 경을 칠 일이지만 서반아의 군주께서는 참으로 마음이 대범하신 분입니다. 궁궐 주변을 저희 모두가 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다니요.”

“어찌 보면 궁궐을 자랑하기 위해 수를 쓴 것일지도 모르지요.”

조선의 귀족들은 자신의 몸을 혹독히 단련하는 풍속이 있으니 절대 관여하지 말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고 오히려 근위병들이 우리와 함께 주변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당연히 구보 이후에는 입신체비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입신체비를 단련할 사람은 명목상의 사절단 대표인 상원군인데 그는 칠십 근에 달하는 대역기를 끙끙대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자세가 흐트러지고 있으니 조금 더 팔을 올리십시오! 반동을 주면 아니 됩니다!”

“끄으으으윽! 이러다가 가슴 근육이 죄다 떨어져 나가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입신체비를 익히면 성장이 극단적으로 가속화된다. 당연히 상체 운동을 시작으로 전신의 근육을 모조리 단련해야 하니 내가 직접 나서서 새벽의 입신체비를 도와주었고 근위병들은 혀를 내두르며 말하였다.

“동방의 대공께서 체격이 훤칠하고 얼굴이 희고 밝아 여심을 홀릴 수 있으리라 걱정하였는데 그 체격의 비밀이 이것이었군요. 이런 훈련이면 어지간한 기사보다 더욱 혹독한 훈련입니다.”

“어지간한 기사보다 혹독한 훈련이라 하였소? 틀린 말은 아니긴 하군.”

입신체비사는 근육의 양과 중량만큼은 무인을 능가하지만 근지구력과 균형 감각이 부족하긴 하다.

나도 몸을 풀어야 하니 100근의 대역기를 만들어 가볍게 올리니 근위병들은 더욱 놀라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날 수준이었다.

“대체 몸이 얼마나 단련되셨기에 이런 일을 쉽사리 하시는 겁니까? 저희 가운데 완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라면 이런 거대한 쇳덩이를 들어 올릴 수 없을 겁니다.”

“평생을 매진하면 가능한 법이지. 내가 입신체비를 시작한 지 올해로 삼십 년이 다 되었소.”

“저희도 무예를 삼십 년 동안 수련하라 하면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한 꾸준함과 열성이 이런 체격을 만드는 비법이군요.”

사회적 제도와 문화 체계가 적립된 조선이라면 입신체비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사회가 정비되지 않은 서양에서 입신체비는 기행에 가까운 행동이다.

설령 세스페데스가 입신체비를 퍼트리려 해도 크게 퍼지진 않으리라. 연못에 바닷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 것처럼 아주 약간의 파문만 일으키고 말겠지.

기껏해야 발레 단원을 비롯한 재주꾼이 육체 단련을 추구하는 정도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아침 운동이 끝나고 접견이 시작되었고 예물을 하나하나 꺼내놓으니 펠리페 2세도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지만 솟아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입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온 예물은 이이가 가져온 천잠사였다.

“가장 먼저 가져온 물건은 천잠(天蠶)이라 하는 비단입니다. 아시다시피 비단은 동방이건 서방이건 어느 고장에서나 진귀한 물건입니다. 아국에도 라마금(신성로마제국 비단)이라 하여 간혹 구주의 비단이 시장에 올라오고 있지요.”

“베니스와 피렌체의 실크는 스페인에서도 물량이 부족해 동방 무역으로 수입하는 현실이지. 하지만 이 청아한 옥색의 안료는 무엇인가.”

“안료가 아닌 실의 색상이 본래 옥색인 겁니다. 깊은 산골에서 자라는 나방의 고치를 나무 하나하나를 올라 채취하여 비단을 만들지요. 그 공임만 하여도 보통 비단의 몇 배나 됩니다.”

“뭐라고? 뽕나무를 사용해서 기르는 나방이 아니고 산골에서 자라는 나방의 고치라?”

펠리페 2세는 수많은 사람이 산골을 오가며 나방 고치를 채취했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방목에 가까운 방식으로 양육하는 나방이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크게 만족했는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였다.

“참으로 값진 물건이로군. 만약 이 물건을 아국에 독점으로 판매한다는 계약을 맺으면 내 자네들을 위해 면양(綿羊: 양모를 뽑기 위해 개량된 양)을 제공할 것이네.”

“면양만큼 진귀한 물건을 주시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천잠을 만드는 나방을 제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면을 뽑아낼 수 있는 양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라 사료됩니다.”

“아닐세. 자네가 방법을 알려 주었으니 누에바 에스파냐(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를 비롯한 수많은 땅을 탐색하여 이러한 나방을 찾아낼 것이네. 오히려 방법을 알려줘서 고마울 지경이네.”

생각해 보니 처음 서양에 비단을 팔 때에는 원료를 속이려고 온갖 수작을 벌였다더라. 누에고치가 아니고 양에게 기름을 먹여 비단을 짜낸다는 소문을 내서 양이 떼죽음을 당했다던가.

아무리 봐도 펠리페 2세가 이번 외교 관계에서 자신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조선이 공정한 방법으로 거래를 성사하면 더 큰 이문을 돌려줄 것이지만 불공정 거래를 하면 편협하게 나서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이후 켄트지, 조선에서 강화지라 불리는 물건은 그럭저럭 통하였지만 점취는 모조리 귀족들에게 하사하는 행동을 보였다.

다만 이 자리에 내놓지 못할 물건이 있었으니 천리경이다.

“참으로 송구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조선에서 가져온 최신 천리경은 멀리 있는 물건을 스물네 배나 크게 보이게 만드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풍랑에 시달릴까 염려하여 모조리 분해해 두었으니 이를 교정하는 일이 보름 정도 걸릴 것입니다.”

“그것참 아쉬운 일이나 분해하지 않았다면 깨어질지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군. 그러하면 품목은 모조리 꺼냈는가?”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 물건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물건이지요.”

마지막으로 꺼낸 물건은 조정에서도 조금 이견이 있던 물건이다. 엄밀히 따지면 흉물에 가까운 경진만란 당시 현장 지휘관 로베르토의 잘린 팔이지.

하지만 이 팔에 세공을 덧붙였다.

“이건 판금 갑옷에 쓰이는 장갑이 아닌가. 하지만 황금과 은, 그리고 황동으로 꾸며져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로군. 대체 이걸 왜 가져왔는가?”

“예전에 일어난 분쟁 당시 지휘관인 로베르토 우리엘 레예스가 팔을 잃고 퇴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를 상대한 고란이라는 장수는 그 팔을 전리품으로 보존하였지요. 하지만 양국이 우애를 다지는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까.”

로베르토의 잘린 팔뼈에 찰흙을 덧붙여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어떤 영화에 나오는 무한의 장갑이라는 물건과 비슷한 화려한 장갑을 덧붙였다.

그리고 위에 네 개의 보석을 박아 마감하였고. 펠리페 2세는 장갑을 요모조모 확인하더니 감탄을 늘어놓았다.

“과연, 루비와 사파이어 에메랄드 그리고 삼한석(탄자나이트)을 덧붙였으니 이런 진귀한 물건은 양국의 우애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손색이 없네. 생각해 보니 이런 물건을 하나 만들어두면 좋겠군.”

“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얼마 전에 숨을 거둔 테레사 아우마다(Teresa Ahumada) 수녀의 유해 중 심장과 팔이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지. 성인의 자리에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황동과 보석으로 치장한다면 훗날 성인의 행적을 남길 때에 아주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네.”

뭔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무한의 장갑을 만들어 달라 지시했는데 그 무한의 장갑의 모티브가 된 물건이 이 시대 스페인에 있다니!

뭔가 역사를 틀어버린 것 같아 찜찜한 와중에 숙소에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경진만란 당시 남경 인근에서 만난 원정대 지휘관 로베르토가 예전보다 초라해진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동방에 두고 온 나의 팔을 저렇게 화려하게 치장할 줄은 몰랐소이다. 덕분에 엘 에스코리알에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소.”

“엘 에스코리알에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계기라 하였습니까?”

“물론이오, 일전의 추태에 대한 소식을 듣지 않았소? 관련된 자가 모두 파직당하였으니 나 또한 왕립해병대에서 파직당하고 평범한 기사가 되었지. 하지만 내 팔을 보시구려.”

지휘관이라면 한쪽 팔이 없어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파직당하면 평범한 기사가 되었으니 전투력 손실을 이유로 아예 명부에서 사라진 것이다.

로베르토는 팔 대신 쓰기 위한 갈고리를 달랑거리면서 서글프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내가 남긴 팔이 양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보물이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이요, 대대손손 실책을 무마할 수 있는 영예를 마련해 주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오. 그나저나 유감스러운 소식이 있소이다.”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여도 머나먼 서반아에서 벌어진 일이니 큰 상관이 있겠습니까?”

유감? 유감이야 조선이 전해줄 유감만 있지 대체 뭔 유감을 표명하려고? 혹시 또 누굴 죽였나?

그러나 로베르토는 한숨을 내쉬며 상상도 못 한 말을 하였다.

“큰 상관이 있으니 직접 전하는 것이요. 본래 로마에 있어야 할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는 지금 로마에 없소이다. 불민한 사고에 휘말렸는데 여기에 내 숙부가 연관되어 있었소.”

“지금 뭐라 하였습니까? 불민한 사고? 숙부?”

세스페데스를 통해 들은 적은 있긴 하다. 로베르토가 인간 백정이라면 그의 숙부 모스구즈만은 인간을 장작으로 보는 이단 심문관이자 대주교라 하였지.

하지만 로베르토가 파면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스구즈만도 파면당했잖아?

근데 대주교를 파면해 보았자 어차피 평신부로 남는 것 아니야?

거기다 정교(政敎)가 분리되어 있으니 모든 부하를 물리치지도 못했을 거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로베르토를 쳐다보니 그는 도저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하필 육체적 단련을 통한 선교 방식에 대한 논의가 중단될 무렵에 숙부가 일을 벌였으니 이 어찌 난감한 일이 아니겠소.”

“대체 세스페데스 신부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혹여나 살해당하거나 불구가 되었다면 이번 일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당신의 숙부와 면담, 아니, 당신의 숙부를 근육해 버릴 것입니다!”

내가 성난 눈으로 로베르토를 노려보자 그는 눈을 슬슬 피하더니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러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였다.

“숙부님은 이미 조선의 표현대로 근육 당하여서 불구가 되었으니 하필 그게 문제였다네.”

* * *

머나먼 조선에서 10년이라는 시일을 보낸 세스페데스는 유럽으로 돌아오자마자 펠리페 2세를 비롯한 수많은 고관대작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동방의 강대한 국가라 불리는 조선은 지금까지 무역을 개방하였을 뿐 서양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그 철옹성 같은 장벽을 뚫은 세스페데스에 대한 관심은 일개 신부인 그를 공의회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펠리페 2세의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개신교가 유럽 전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으니 동방의 전교를 성취하지 않으면 개신교가 동방에 발을 들일 것이니 어서 공의회를 개최하여 선교 활동을 도우라는 요청이었다.

당대 교황인 식스토 5세는 재정 개혁과 행정 개혁을 단행하는 와중에 잉글랜드-스페인 전쟁을 촉구하는 입장이기에 이에 당당히 응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없을 제2차 트리엔트 공의회는 1586년 서막을 올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공의회의 개최를 선언합니다. 머나먼 동방에 주님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다시 개최된 2차 트리엔트 공의회의 핵심 사안은 동방 선교를 실시하여 머나먼 동방의 신자들을 주님의 품 안에 담기 위한 교리를 제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황청 전권 대사의 앞에 오십 명이 넘는 신학자와 추기경 그리고 대주교들이 소집된 가운데 세스페데스는 그 담대한 체격을 앞세운 채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리고 공의회가 소집된 화두를 제시하였다.

“저는 조선에 십 년 동안 머물고 조선 왕실에서 직접 만든 대학인 성균관에서 학문의 정수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물론이요, 명나라를 비롯한 동방의 학문의 정수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사라는 의식은 조상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이단(異端)은 물론이요, 논리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방식이 아닙니까. 이미 스페인에 방문한 명나라 사람을 통해 확인한 바입니다. 세스페데스 형제는 제사에 참석했단 말입니까.”

경진만란 당시 원정대의 보호 아닌 보호를 받아 스페인까지 도착한 명나라 사람들을 통해 제사 의식을 확인한 신학자들을 심드렁한 태도로 세스페데스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민간의 제사는 종교, 특히 명나라 전체에 퍼진 도교와 얽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의식으로 변질되었으며 근본도 없이 자기 멋대로 제사를 올리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세스페데스는 이를 딱 잘라 말하였다.

“참석하지는 않고 기록을 위해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또한 성균관에는 수많은 서적이 있으며 저를 가르친 스승도 제사와 관련된 고서(古書)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게 하였지요.”

“그러하면 민간의 제사와 다르다는 말입니까?”

“평민들은 자신이 믿는 지방 토착신과 얽힌 제사 의식을 실시하지만 성균관은 조선 왕실에서 정한 대로의 제사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내용이 숨겨져 있더군요.”

이미 삼대운동 900근을 달성하고 여력이 남은 세스페데스는 두툼한 손과 어울리지 않는 너덜거리는 고서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조선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말이 튀어나왔다.

“제사는 본래 의도와 변질된 풍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오백 년 전 사람인 공자는 참으로 현실적이고 배금(拜金)주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뭐라 하였습니까? 현실적이고 배금주의에 물든 사람이 어찌하여 영혼을 불러 밥을 먹이는 행동을 장려했단 말입니까.”

“동방의 서적 사서오경에 포함된 예기(禮記)에는 제사와 관련된 제례가 고스란히 적혀 있으나 공자 본인이 집필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는 동방의 옛 의식과 관련된 내용을 기술하였을 뿐이고 여기에 주희(朱熹)라는 자가 예식을 정리해 지금의 제사가 되었지요.”

조선의 유수한 학자들도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간 내용이지만 종교적 근본을 찾아 이를 선교에 접목시키기 위한 세스페데스의 눈에는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세스페데스는 자신이 해석한 라틴어본 사서오경을 전해주며 말을 덧붙였다.

“제사의 중심인 종법(宗法)은 권위가 큰 가주가 가문의 일원들을 소집하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에서 비롯된 법입니다. 이러한 일은 세상 어디라도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서양에서도 가족 무덤을 성당 바닥을 들어내고 만드는 일이 잦았으며 가문의 후예들은 축일에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리며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 많았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세스페데스는 물을 들이켜고 주장을 계속하였다.

“하늘에 올라 주님의 축복 아래 있을 영혼을 불러내는 일은 불교의 교리가 포함된 것이며 음양과 제사 양식은 도교의 교리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이단이라 손가락질하는 예식을 걷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참 마음에 드는 이야기구려. 머나먼 동방에서 제사라 불리는 의식이 실제로 처음 제사를 만든 이의 뜻을 거스르는 이교의 논리를 받아들인 결과물이라니.”

“극단적으로 따지고 보자면 그런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 제사의 핵심은 친족이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며 가주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지요. 그러니 저는 형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사의 근본 중의 근본만 남긴다면 과연 이단이 되겠습니까?”

본래 제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를 굳히려던 신학자들도 눈을 굴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서적을 읽고 확인하며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수준인지에 대해 논의할 차례가 되었으니까.

제사의 허용 여부와 이를 천주교 교리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개조하는 작업은 이제 신학자들에게 넘어갔다.

거의 여섯 달에 걸친 학습과 논의로 공의회에 모인 사람들이 제사 의식의 실체를 명확히 할 수 있었으니 세스페데스도 가까스로 만족할 수준이었다.

이제 신학자들이 서로 모여 제사 의식의 핵심을 짚어 이를 천주교 교리로 승화시키는 와중에 세스페데스는 다음 내용을 주장하였다.

이 또한 선교에 해당되는 일이기에 처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견을 경청하였다.

“다음으로 동방 선교와 관련된 일입니다. 저는 조선의 학문인 입신체비를 선교에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였고 이를 옛 성인들의 고난과 접목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옛 성인들의 고난과 접목시킨다? 분명 교리를 모르는 이들에게 옛 성인들의 치적을 전하는 일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법입니다. 대체 무슨 방법입니까?”

“여기서는 보여드릴 수 없으니 안뜰로 나오시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수많은 추기경과 주교, 그리고 신학자들 앞에 거대한 연자방아가 있었다.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소가 와서 연자방아를 돌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연자방아의 손잡이를 잡은 이는 세스페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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