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46화
2부 23장 3화 근자구주행(3)
충격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꽃잎을 뿌리며 우리를 맞이해야 할 백성들이 점점 얼어붙어서 뒤로 움직이자 이 도시의 시장으로 보이는 자는 손사래를 사방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이 일이 전하께 알려진다면 큰 곤욕을 치를 텐데. 거기 무엇 하나! 어서 꽃잎을 뿌리고 환호성을 올리라 하게. 머나먼 동방에서 오신 분들이 아닌가!”
전하께 알려진다면 왜 큰 곤욕을 치르나. 유럽은 슬슬 전제군주정이 싹을 틔울 시기라서 아직까지는 각 도시를 다스리는 이들은 대다수가 그 도시의 시장과 토호(土豪)들이 대다수일 텐데.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민들이 다시 꽃다발을 뿌리며 억지로 환호성을 이어갔고 우리는 애매모호한 분위기에서 접견을 시작하였다.
시장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올리는데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나를 보고 안심한 눈초리였다.
“준비가 부족하여 무례한 일을 벌였습니다. 부디 이 일을…….”
“아니오. 세상만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법은 아니니 가볍게 넘어갈 수 있소이다. 오히려 시민들이 부족한 와중에 우리를 맞이하여 주어 참으로 기쁜 일이군요.”
“만족하셨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나저나 이 많은 선박에서 짐을 내려야 하니 수레를 많이 준비하였습니다. 배를 세비야로 옮길 작정이니 여기서는 꼭 필요한 물건만 옮기시지요.”
꼭 필요한 물건이라 하였는데 꼴을 보니 사절단 인원 다섯 명당 수레 하나를 배정해 대략 일백 대의 적당한 크기의 수레를 옮겨 왔다.
하지만 이 수레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서 지시를 내렸다.
“수레를 더 가져오시오. 이 정도 수레는 어림도 없고 최소한 컬버린을 올릴 수 있는 수레 열 대가 더 필요하니 가장 튼튼한 물건으로 가져와서 먼저 내놓으시오.”
“이거 선창에 코끼리라도 다섯 마리나 넣어두셨습니까? 여하튼 알겠습니다.”
코끼리 다섯 마리라 했는데 우리가 가져온 입신체비 관련 기구의 무게만 따져도 10톤 단위이다. 무게만 따지면 작은 코끼리 다섯 마리이기는 하지.
일단 대장선에 탑승한 이들 가운데 입신체비에 능숙한 이가 100명이요, 다른 함선에 배분된 이를 따지면 하급 관료부터 나를 포함한 수뇌부까지 도합 300명에 달한다.
개개인이 사용할 소역기 정도야 알아서 챙겨왔지만 대역기는 공용 물품으로 처리해 선창에 쌓아두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화물보다 이 견고한 무쇠덩어리들이 먼저 내려왔다.
“먼저 대역기부터 내리게! 공령(플레이트)이 굴러다니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도록!”
“든든한 수레를 가져왔으니 어서 짐을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이 쇳덩이는 뭐야!”
서둘러 달려온 스페인 잡부들이 배에서 산더미처럼 내려지는 쇳덩이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기껏해야 서적이나 취미활동용 물건을 생각하였는데 철광석도 아닌 쇠가 내려진 것이다.
그래도 잡부들이니 힘을 써서 옮기려 하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입신체비기구는 입신체비사가 옮기거나 아예 녹로를 비롯한 중장비를 사용하지 평범한 사람이 옮길 물건이 아니다.
“이걸 대체 어디에다 쓴다고! 뭔 주물(鑄物)로 만든 쇳덩이가 이렇게 많아!”
“하나의 무게가 센테나(스페인 무게 단위, 약 46㎏) 정도는 되겠어! 이러다 허리 나가겠는걸!”
“거기 비키게. 그렇게 무거운 중량을 들다가는 척추가 단숨에 틀어질 것이네.”
대역기용 25근(39㎏) 원판을 부여잡고 낑낑대던 잡부들을 보고 못마땅해하던 문관 곽준이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몸을 풀고 가볍게 원판을 양손에 잡더니 수레에 얹어버렸다.
그걸 시작으로 모든 유생들이 달려들어 쇳덩어리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인부 한 명이 옮기는 짐을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두 명이 옮겨 버리니 인부들은 아예 기겁할 지경이었고, 여유가 생기니 아예 지게로 산더미 같은 대역기봉을 짊어진 이들마저 등장하였다.
당연히 시민들은 더욱 겁에 질려 아예 도망칠 기세가 되었다.
-저게 다 쇳덩이란 말인가?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왜 쇳덩어리를 저렇게 들고 다니지?
-저걸 무기로 삼을지도 모른다네. 소문을 듣자 하니 조선이 성을 지킬 적에 저 쇳덩어리로 적을 박살 내다 못해 몸을 짓뭉개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하더군.
소문이 어디서 퍼졌는지 모르겠는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니 점잖이 넘어갔다.
물론 틀린 소문이 정정되었으니 우리가 쓰고 있는 철 투구가 가벼운 재질이라는 사실 하나는 증명되었다.
“이건 선물이오. 아국에서 말총을 엮어 만드는 갓이라는 모자인데 여름에는 바람이 통해 서늘하니 서반아와 같이 더운 고장에서는 제법 쓸모가 있을 거요.”
“말총을 엮어 만든다 하였습니까? 크기는 대접보다 큰 녀석이 사과 하나보다 가벼워 놀라울 지경입니다.”
충격과 공포 이후 올바른 사실이 전해졌으니 오히려 더욱 많은 소문이 퍼져나가며 조선의 올바른 정체를 알려주리라.
카디스에서 출발한 우리 사절단은 보름 가까이 육로를 통해 움직여 수도인 마드리드까지 도착하였다.
“여기가 귀빈 여러분들이 머물게 될 엘 에스코리알 궁전입니다. 방이 많지는 않지만 주변 숙소를 배정해 두었으니 모두 펠리페 2세 전하의 뜻이지요.”
펠리페 2세가 건축한 엘 에스코리알 궁전은 현대에서 방문할 때와 다르게 초기의 모습이었다.
아직 많은 건물이 부족하고 첨탑의 높이도 낮은 녀석이지만 이건 내 감상이고 조선 사절단 입장에서는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 이 거대한 벌판을 다듬은 국력도 대단하지만 그 벌판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서반아의 궁전은 참으로 담대하다 못해 위엄이 넘치는군요.”
“벽면을 벽돌이나 석회석도 아닌 값진 대리석으로 장식하였다니. 경복궁과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모든 건물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서애 대감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간소하며 엄격하니 오만함이 없고 위엄과 엄격함이 넘쳐나는 건물입니다.”
이건 펠리페 2세가 건물을 세울 당시 내렸던 지시 사항이다.
현대에 엘 에스코리알 궁전에 가니까 건물 설계 철학이라면서 관광 가이드가 이야기해 줬던 내용인데 호위로 달라붙은 근위병이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내 말을 경청하였다.
“연회에 참여하실 분들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안뜰에서 머물면 됩니다. 궁전의 안뜰은 제법 넓으니 여러분 모두가 편히 계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연회가 먼저란 말이오? 어찌하여 접견이 먼저가 아니오?”
“접견이야 조선의 궁궐에서 미리 실시하였으니 나중에 즐겨도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연회는 내 상상에서 제법 벗어나 있었다.
거대한 홀 안에 다채로운 복식을 입은 채로 춤을 추는 방식이 아니었고 화려한 음식이 가득 채워진 거대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머나먼 동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런 자리를 열게 되어 영광이로군. 다시 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네.”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포함한 인사가 이어지고 음식이 나왔지만 대다수가 향신료 범벅에 기름 범벅 그리고 설탕 범벅이었다. 그나마 젊은 상원군이면 몰라도 다른 이들은 손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이를 예측하였는지 조선 사람들을 위해 닭가슴살을 비롯한 간이 적게 배어 있고 향신료를 적게 사용한 음식을 내어 주었다.
이윽고 어느 정도 음식을 먹고 조선에서 가져온 소주를 마시는 와중에 펠리페 2세가 손짓을 하며 말하였다.
“이번 사절단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내 진귀한 손님들을 불렀소. 프랑스의 앙리 3세가 후원하는 발레단을 초빙하였으니 이 공연을 보고 눈을 즐겁게 하시오.”
발레가 이 시대에 있었나 했는데 정말 발레는 맞다. 기초적인 동작이지만 엄연히 치마를 입은 배우들이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누는 데 체계가 잡혀 있는 모습이다.
다른 관원들도 예의주시하는 와중에 시종장이 눈치를 주어 애써 칭찬을 하였다.
“참으로 다채롭고 격식이 정연한 방식입니다. 저희도 탄일(誕日: 왕이나 왕비의 생일)에는 연회를 마련하고 남사당패를 불러 공연을 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안목이 넓어지는군요.”
“전하께서 앙리 3세에게 요청하여 궁중에서 일하던 발레 단원들을 초빙하였습니다. 이미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에서 정돈된 발레가 다시 스페인으로 옮겨 왔으니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딘가 이해할 수 있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들려왔으니 아마 라틴어 경구를 섞은 프랑스어이기에 알아들을 수 없었으리라. 사실 발레라고 불리기도 힘든 초창기의 연극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면극이요, 어떻게 보면 오페라이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지.
한참 동안 춤을 추며 연극을 하던 이들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인사를 올리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지만 조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어떠한가? 내 제법 고생하였지만 머나먼 엘 에스코리알 궁전까지 이들을 불러들인 가치가 있는 것 같군. 머나먼 동방인 조선에서 보내온 사람들의 눈을 만족시켰는가.”
“언어가 통하였다면 세상이 달라질 정도로 만족하였겠지만 언어가 통하지 아니하니 세상을 새로 볼 정도로 만족할 뿐이었습니다. 많은 학식을 쌓지 않아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렇군, 생각하여 보니 저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칠 것을 잘못 생각하였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처져 있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지만 조선 사람들의 눈에 발레는 그저 무용일 뿐이다.
과격한 내수린이나 내수린에 대항해 생존하기 위해 발달한 남사당패 놀이를 기대하다가 적잖이 실망하였으리라.
어느 정도 술이 오가자 펠리페 2세는 시종장을 시켜 나를 불렀고 나는 자리를 옮겨 펠리페 2세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 잔의 술을 다시 들이켠 펠리페는 조심스럽게 지금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미 세스페데스와 접견하여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으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조선의 풍습이 백여 년 전부터 정립되었으며 이것이 만백성에게도 영향을 끼쳤음을 익히 알고 있소.”
“참으로 다행입니다. 실은 저희의 풍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까 염려하고 있던 찰나에 전하께서 이리도 혜안을 보여주시니 그저 깊은 감사를 표할 뿐입니다.”
“나도 세상에 대한 식견을 넓힐 기회가 되었으니 그리 감사할 필요는 없소. 사흘 동안 세스페데스와 심도 있는 토의를 나누어본 결과 조선을 제대로 알게 되었지.”
아무리 세스페데스가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고작 36세의 젊은 신부이다. 더군다나 10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하였기에 실질적 경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초임 신부이지.
그런데 세스페데스와 사흘 동안 심도 있는 토의를 나누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눈을 굴리는데 왕의 기본 업무를 보좌하는 시종장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내가 일벌레라 소문이 났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담당할 수 있는 큰 업무만 전담할 뿐이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우리의 숙소까지 직접 배정할 정도로 일에 중독되어 있으니 일먼지진드기라 불려도 손색이 없으리라.
하지만 그는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세스페데스는 많은 일을 하였네. 조선에서 십 년 동안 일하며 머나먼 동방에 올바른 방법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을 탐구하였고 이를 로마의 유수한 신학자들과 논의하게 되었네.”
“하오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습니까?”
“성과라, 내가 영국을 정벌하기 위해 격무에 시달리느라 일 년 전에 전해진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전부였다네. 조선의 제사라는 예식을 주님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하는 해법을 찾아냈다 하더군.”
“제가 비록 천주교를 믿지는 않지만 옛적에 벌어진 일을 물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감축드릴 일입니다. 모든 일은 세스페데스를 후원하여 주신 전하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칭찬하자 펠리페 2세의 표정도 풀어지며 재차 소주를 들이켰다. 종교적 광신에 불타는 스페인의 왕에게는 이보다 좋은 일은 없으리라.
나도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천주교에 관련한 지식은 제법 있다.
초기 천주교가 박해받은 이유는 그놈의 제사 의식을 이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이고 이 제사 의식을 천주교의 틀 안에서 재해석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리라.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으니 펠리페 2세는 주변을 돌아보며 사절단의 태도를 주의 깊게 확인하였다. 연회를 즐기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돋아 오르지 않았으니 적잖이 실망한 눈초리를 보였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자신의 준비가 부족했다 생각하며 자책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는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조선의 힘을 빌리려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조선에서도 사람들을 보내왔을 것인데 기인(伎人)들은 당도하지 않았는가? 엘 에스코리알 궁전에서 머나먼 동방의 기예를 볼 수 있다면 내 눈이 만족할 것 같네만.”
“실은 서른 명에 달하는 남사당패를 고용해 왔습니다만 이 장소가 너무 좁습니다.”
“좁아? 이 대연회장이 좁단 말인가? 발레 공연을 하고도 남을 이 공간이?”
펠리페 2세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답하였지만 사실인데 뭘 어찌하겠는가. 본래 역사라면 모르겠는데 이젠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요청 아닌 요청을 하였다.
“궁궐 안뜰에 푹신한 거적과 나무판을 준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부상자가 속출할 수 있으니 사람들 모두를 남사당패 공연장에서 열 보는 띄워주셔야 합니다.”
내수린과 경쟁하기 위해 지나치게 강해진 남사당패의 발전은 집착적인 육체적 능력의 발달로 이어졌다.
꽹과리를 치며 풍악에 맞추어 군무(群舞)를 벌이는 모습은 그러려니 하였던 스페인 귀족들이지만 생소한 공연이 시작되었다.
상모를 돌리며 꽹과리를 치는 이들이 커다란 원을 만들자 한 사람이 뒤로 뛰어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하더니 커다란 소 모형과 푹신한 이불을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손에 송진을 묻히더니 저 멀리서부터 뛰어 들어왔다.
“살판 간다! 살판으로 만든다!
온몸에 알차게 근육이 박힌 자가 짧은 소매의 입신체비복과 반바지를 입은 채로 전력을 다해 질주하다 소의 모형을 짚고 공중으로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전력을 다해 받침대를 밟고 뛰어올라 도마를 잡고 한 번 더 하늘로 솟구쳐 옆으로 두 바퀴를 돌고 몸을 반전하여 이불 위로 착지해 입신체비의 자세 중 하나인 용면세(백 더블 바이셉스)를 취하니 다들 경악하였다.
“저게 사람인가! 아니면 표범인가!”
“그냥 저 높이를 뛰어올라도 놀라움의 극치인데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몸을 젖힌다고?”
내수린은 조선의 풍속이 되어 평민이나 심지어 자질이 뛰어난 노비들도 발탁되어 내수린꾼이 되었다.
하지만 간혹 근육이 비대해지지 않아 내수린을 하기 부족한 이들은 진로를 전향하였다.
이이처럼 극도로 절제된 근육은 아니지만 체조선수처럼 철저히 단련된 근육을 만들 수 있는 자들은 남사당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시작하였다.
이런 남사당패의 재주가 소타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튼튼한 철봉을 설치한 남사당패 관원 중 한 명이 손에 송진을 잔뜩 묻히고 괴성을 내었고 그는 철봉을 부여잡더니 몸을 계속 차올려 스스로의 힘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이게 사람인가 아니면 돌고래인가! 몸을 젖혀서 저런 힘을 낸단 말인가! 저게 다람쥐나 고양이라면 모를까 엄연히 사지가 달린 사람이 아닌가?”
“몸의 힘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 동방의 기인이 계속 몸을 돌리는데 팔이 얼마나 부담을 짊어지겠습니까? 절벽에 매달려도 한 시간은 버틸 수 있는 자입니다!”
계속 철봉 하나를 돌리던 관원 앞으로 철봉이 하나 더 설치되자 두 철봉을 뛰고 젖히고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오가기 시작하였다. 펠리페 2세를 시작한 스페인 귀족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였다.
마지막으로 줄타기 마당까지 이어지고 남사당패의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를 넘어서서 궁중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환호성까지 들려왔다.
16세기 말엽에 초창기 기계체조를 선보이다니 이쯤 되면 두려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