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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42화 (442/573)

근육조선 442화

2부 22장 4화 취중진담

전쟁이 끝난 이후 상황이 좋게 방문했는데 사실 이들이 조선에 오려면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당장 9월까지 대만 일대에 태풍이 넘실거리니 안전하게 음력 12월을 노려 올라온 것이지.

각국의 사신들은 진상품을 내놓으며 인사를 올렸고 주상전하께서도 이를 받아들이더니 논어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라 하였네. 그나저나 신농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배를 능숙히 몰아서 큰 문제가 없지만 솔로몬국은 어떻게 당도할 수 있었는가.”

“솔로몬 사절 대표 아론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선의 기술을 배워서 서반아와 포도아의 선박을 분해하고 만드는 방법을 익힌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러하니 이제는 조선에서 상무선이라 불리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로군. 아국이 세종대왕의 치세 무렵에 해양으로 나아가서 대성했듯이 솔로몬국도 드넓은 바다를 제집처럼 삼아 발전하기를 바라네.”

조선의 선박 발달 역사를 살펴보니 빙의자인 수양대군이 개입하고 천운에 가깝게 기술자를 확보하였지만 20년 넘게 걸려서 대양을 오갈 수 있다 했다. 아직 기술도 부족한 솔로몬 제국은 그 몇 배는 걸리겠지.

그런 부족한 상황에도 동맹국을 위해 사신을 보냈고 주상전하께서 기쁨을 숨기지 않고 답했지만 아론의 표정은 영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다음은 신농도인의 대표가 인사를 올렸는데 아는 사람이다.

“주상전하의 은혜를 받던 노이네 주상전하께 인사를 올리옵나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토관(土官)이 되어 업무를 주선하다 전쟁의 소식을 듣고 한사코 배를 몰아 당도하였나이다.”

“기쁜 날에 등잔을 밝힐 경유(鯨油: 고래 기름)가 당도하였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던가. 본래 대양도까지 올라오던 이들이 도성까지 나왔으니 참으로 고생이 많구나.”

내 아래에서 일하던 노이네는 정5품까지 품계를 올리더니 고향인 기천군도(솔로몬 제도)로 돌아가 방파제를 만들고 항구를 정비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던데 그 바쁜 몸을 움직일 짬이 났나 보다. 눈인사를 하니 옛 추억도 되살아나고 좋은 일이다.

사신의 접견이 끝나자 일본 장수에 대한 처분도 결정되었다.

부하를 오백 명 이상 이끈 장수는 모조리 처형이며 이미 죽은 히데요시를 비롯한 왜장들의 시신은 닷새 동안 걸려 있다 효수(梟首)당하였고 다시 수레에 실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도성의 모든 관원을 닷새간 쉬게 하고 백성들에게 군량으로 비축한 쌀을 내어주도록. 기쁜 날이니 만백성이 탁주를 빚어 마시고 떡을 즐기게 한 이후에 궁궐에서 연회를 열 것이다.”

그날 저녁 연회가 시작되긴 했는데 입신체비로 근육화가 진행된 조선의 연회는 삭막한 풍경이다. 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마시면 된다 하였고 대부분 체격이 담대하니 현대로 따지면 소주 세 병 정도는 비우는 이가 넘쳐난다.

하지만 언제나 안주가 문제였다.

“오늘은 기쁜 날이 아니더냐. 왜인들을 모조리 격멸하는 날을 기념하기 전까지 모두가 음주가무를 폐하였으니 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꾸나.”

주상전하께서 잔을 높이 들어 연회의 시작을 알렸고 형님이 갓 만든 안주가 속속들이 도착하였다.

본래 독한 술과 어울리는 안주는 느글거릴 정도로 기름이 넘치고 짭짤한 볶음이나 아예 튀김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 입신체비와 맞지 않는다 하더라.

-오늘 하루 종일 입신체비로 근육을 키워놓고 그렇게 짜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근육이 늘어난 만큼 지방이 늘어나겠군. 아무리 양생(벌크 업) 기간이라 하여도 아니 된다.

스승인 이황의 지엄한 말에 어쩔 수 없이 맑은 조개탕을 홀짝거리며 소주를 비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 오르고 있었는데 하나씩 나온 요리는 법도에 지극히 어긋나는 요리였다.

첫 물건은 기름이 뚝뚝 흐를 정도로 구워낸 차돌박이이지.

독특한 향이 아찔할 지경인데 그 향료의 정체는 본래 역사에서 한국인의 적이자 내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매번 먹었던 쿠민(Cumin)의 향이다.

하지만 스페인 사절단은 군침을 삼키며 형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쿠민을 사용하다니 이거 초리조가 생각나 군침이 절로 올라오는군요. 거기다가 질 좋은 차돌박이를 썰어서 구우셨으니 기름이 넘쳐납니다.”

“아국에서야 마근(馬芹: 쿠민의 한자어)을 약으로 사용하지만 명국만 가도 지천에 마근이 널려 있으며 먼 옛날 대진국(로마) 시절부터 마근을 즐겨 먹었다 들었습니다. 이 자리는 아국의 사람들만 모이는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주상전하는 스페인을 시작으로 온갖 국가의 사람이 다 모이는 장소이니 모든 사람에 입맛에 맞추라 명을 내렸을 것이다. 주상전하가 조금 불편해도 외국의 사절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아니겠는가.

당연히 형님은 한참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법도에 어긋나는 요리를…… 아니다, 안주 대부분에 기름기도 있고 짠맛이 강해 보이지만 이걸 취향 삼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고기 아래에 채소를 깔아둔 것이다.

“저희로서는 상상도 못 할 요리입니다. 달고 짭짤하고 맵싸한 고기 아래에 양파가 잘게 썰려 있으니 이를 어떻게 먹는지요?”

“원하는 대로 드시면 됩니다. 차돌박이의 맛에 질리면 양파를 싸서 먹거나 따로 내어둔 상추로 고기를 싸서 먹어도 되는 법이지요. 자고로 사람의 취향은 모두 다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해도 스페인 사절단과 신농도인은 고기만, 솔로몬 제국 사람들과 관료들은 고기 약간과 채소 다수를 입안으로 넣었다.

영양학적으로 올바른 식사도 챙기고 맛도 챙길 수 있으니 형님의 실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주상전하께서도 흥에 겨워 나와 이순신 그리고 권율에게 어사주를 몇 잔이고 내려주었다. 이렇게 성은을 마구 뿌려도 되나 하였는데 주상전하의 덩치는 담대하긴 하지.

이윽고 주상전하는 손을 휘저으며 어명을 내렸다.

“이런 좋은 자리에 무얼 망설이는가. 내가 없다 생각하고 마음대로 말을 놓으라. 그리고 하성군은 이리로 와서 어사주를 받도록 하여라. 내 하성군을 위해 특별한 녀석을 준비했다.”

구석에서 평소와 다르게 술을 홀짝거리며 마시던 정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뭔 물건인가 했는데 대접만큼 거대하게 펼쳐진 잔이었다.

재질은 은 같은데 주상전하는 이 물건에 술을 부어 넣으며 말하였다.

“내 정철이 요람(要覽: 백과사전)을 속편까지 편찬하느라 북방과 여송까지 다녀온 일을 치하하고 술을 딱 한 잔만 마시라고 은잔을 내려주었지. 하지만 이 은잔을 두들겨 펴서 이런 대접으로 만들어 버리더구나. 그래서 잔을 백자로 만들어 다시 하사하고 대접을 돌려받았다.”

정철 이 미친 술고래야! 격문도 잘 쓰고 개원(開原: 근원을 열다) 요람이라는 백과사전도 잘 작성해서 세상에 널리 퍼트려 도움을 줬던 놈이 그놈의 술을 못 끊냐!

그가 부임한 지역마다 백성들은 칭송 반과 불만 반이라 하더라. 각지를 유람하며 백성들의 삶을 보살펴서 좋은데 시구를 쓴다면서 매일 술만 퍼먹으니 술값이 만만치 않다던가.

하성군은 그 거대한 잔에 채워지는 술을 보면서 몸서리를 쳐댔다.

“하오나 전하 내일은 상체를 시행할 날입니다.”

“어허! 상체를 시행하면 상체의 기력이 쇠하니 이런 큰 잔에 어사주를 내려줄 수 있겠느냐! 어서 탁주를 가져오너라. 소화에 좋은 탁주도 한 됫박을 말아 혼돈주(폭탄주)를 어사주로 내리겠노라.”

평소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대접 가득 담긴 독한 소주 반병과 막걸리 됫박이 하성군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하성군은 얼굴에 술기운이 확 오르더니 주상전하에게 술잔을 돌려주며 청주를 조금만 적시듯 따라서 돌려주었다.

서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이순신도 술에 취해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정걸은 이제 은퇴를 앞둔 몸인지라 주상전하에게 스스럼없이 나아가 혼돈주를 한 대접 마시고 절을 올리니 더욱 흥에 겨워 어명이 내려왔다.

“눈치는 보지 말라. 이런 자리가 어디 여러 번 있겠느냐? 세상 만국의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 제안이 있다면 개탄 없이 청을 올려도 좋다.”

어명이 내려오자 서로 눈을 부라리던 임차손과 신립이 팔씨름을 시작하고 솔로몬 제국 사절 대표인 아론이 중간에 끼어 심판을 하였다. 문제가 있으니 둘의 힘을 교자상이 버티지 못했다.

“전술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네가 힘 하나만큼은 장사라니!”

“그럼 활도 제대로 못 쏘는 사람이 장수의 자질이 있겠나? 어이쿠! 상이 으스러진다!”

교자상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갈라졌지만 흔히 있는 일이라 신하들은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오히려 주상전하께서는 커다란 돌 위에서 팔씨름을 하라고 추천하더니 술에 휘청거리는 하성군을 불러 캐물어댔다.

“하성군이 보기에는 어느 장수가 이기겠는가. 한때 군문에 있던 사람이니 잘 알지 않겠는가.”

“두 장수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신립은 궁술을 익혔고 임차손은 기창(騎槍: 마상무예)을 익혔습니다. 결국 신립이 더욱 유리한 법이옵니다.”

아주 정확한 평가였다. 궁술은 힘이 필요하고 무술은 순발력과 심부 근육(코어 근육)이 필요하다.

결국 임차손의 팔뚝이 점점 밀리며 하성군의 말 대로 신립의 승리로 돌아왔다.

“상체를 겨뤘으니 하체도 겨뤄야지! 다음 경쟁은 부와도약(버피)일세!”

“누구는 부와도약을 모른다 하였소? 일단 삼백 회를 할 것이니 쓰러지지나 마시오!”

술에 취한 채로 질세라 부와도약을 하는 모습을 보니 조만간 먹은 술을 게워낼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둘은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부와도약을 하였다.

아마 태조 이성계가 휘하 제장들, 조선을 세운 이들과 술자리를 벌였을 당시의 광경이리라.

즐거운 일이 계속되는데 주상전하께서는 술기운에 딸꾹거리다 문득 생각이 들었는지 아론에게 물어보았다.

“지난번에 사절로 방문하였던 코이네라는 자는 어디에 있는가. 혹여나 솔로몬국의 중핵이 되어 업무에 종사하고 있던가?”

“코이네 님은 변사(變死)하였습니다. 소 잡는 파리(체체파리)에 물려 명을 달리하였지요.”

“허어, 솔로몬국의 사람들이 그렇게나 파리와 모기를 잡고 웅덩이를 메우는데도 소용이 없단 말이군. 파리에 쏘이면 시름시름 앓다 명을 달리한다 하였는데 어찌 이런 일이.”

다들 잔을 들어 코이네를 위로하기 위한 술 한 순배를 돌렸다. 알던 사람이 죽은 이유를 찾아봤는데 시름시름 앓다 명을 달리한다는 증상을 들어보니 아직도 치료법을 못 찾는 수면병이 아닐까.

아론도 울적함이 치밀어 올랐는지 주상전하께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물어보았고 주상전하도 허락하였다.

담배를 한 모금 피운 아론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솔로몬 제국에 입조(入朝)하여 나라를 이룬 것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북방에는 이슬람 해적들이, 남방에는 밀림이 에워싸고 있으며 사람이 늘어날수록 질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이군. 나라마다 천기가 다른 법인데 솔로몬국 남부의 천기는 참으로 악독하며 벌레들도 사람을 죽일 지경이니 이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나.”

“그러하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학질과 흑질(황열)로 죽어가는 이가 늘어나니 이제는 수양대군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도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질병이 모이게 된다.

현대의 도시도 질병 유입 경로를 차단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전근대에, 그것도 열대 밀림에 가까운 아프리카 남부에서 이를 막을 방법도 없으리라.

인구 증가 이전에야 사람이 적으니 질병이 잘 퍼지지 않았지만 인구가 증가한 지금은 질병으로 인해 늘어나는 인구가 족족 죽어 나가는 상황이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하지만 한탄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실은 조선까지 올 적에 열 척의 배를 보냈는데 천축으로 나아가다 오사만(이슬람 세력) 해적에게 덜미를 잡혀 세 척이 침몰하였사옵니다. 백병전이야 이길 수 있는데 화포를 쏘아대니 답이 없더군요.”

“참으로 딱한 노릇이니 귀국할 때에 여송도 수영의 함대를 붙여 오사만국 해적을 격멸하게 만들 것이네. 하지만 언제까지고 아국의 비호를 받을 수는 없는 법이지.”

똥개도 제집에서는 삼 할을 먹고 들어간다 하였다. 아무리 조선이 원거리 원정이 가능해도 이슬람 해적의 근본인 오스만 제국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이 해적들은 끝없이 튀어나오리라.

주상전하께 감사를 표시한 아론에게 제로니모가 다가왔다.

“그러하면 함대를 만들고 교역조차 행하지 못한단 말이오? 이전에는 어떻게 하였소?”

“갓 해군을 창설하여 가까스로 걸음마를 뗀 아이에 불과한데 배의 수효가 늘어나자 이슬람 놈들이 이를 방해하고 있지요. 전면전을 벌이면 모조리 몰살당할 것입니다.”

“그것참 딱한 노릇이구려. 여의치 않다면 같은 예수 그리스…….”

아론에게 뭐라 말하려던 제로니모가 눈빛을 보더니 술잔을 비우며 말을 집어삼켰다. 같은 유대교 분파라 하여도 천주교를 믿는 스페인은 솔로몬 정교회와 육촌이 넘는 먼 친척이라던가.

한숨을 내쉰 아론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결국 저희는 인도양으로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 아니겠습니까. 기껏해야 조선의 거리로 육천 리(1,500㎞)를 나아가지 못하니 이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방도가 없군. 아국의 함선이 오갈 때에만 교역을 행한다면 이는 더욱 말이 안 되는 법이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함선만 만든 꼴이지.”

이러니 우울해했군. 전력을 다해 함대를 만들었는데 적이 너무 강하고 집요하니까 변한 게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론은 눈을 빛내며 주상전하께 청을 올렸다.

“그러니 호주에 나아가 농토를 일구어 필요한 물자를 얻어 내려 합니다. 호주가 제법 먼 고장이지만 이슬람 해적에게 시달리느니 더 먼 길을 택하여 오가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호주라, 호주에는 지금 관찰사도 없이 목사(牧使)만 두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나?”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미 오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미주와 달리 호주는 험악한 고장이라 사람이 적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 험한 땅에 적어도 학질과 흑질, 그리고 소 잡는 파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심각한 이야기로 넘어가 술잔이 오가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서 신립과 임차손이 '이백이십사!'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주상전하께서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하였다.

“호주는 환경이 극도로 험하지. 청해군 한명회도 호주를 오가다 목숨을 몇 번이고 잃을 위기를 넘겼으며 명국과 비견할 정도로 거대한 땅의 팔 할 이상이 황무지와 사막이라 하더군.”

“하지만 저희가 있는 땅도 황무지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농토를 일구면 코끼리와 기린 그리고 코뿔소가 농작물을 노리고 엄습하니 이 얼마나 흉험합니까.”

아프리카를 떠나 호주에 일종의 자원 생산기지를 차리겠다는 제안을 들은 주상전하께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나인가 했는데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이 있지!

“생각하여 보니 아국은 조만간 미주에 사람을 사민(徙民)시킬 계획이었지. 그 머나먼 미주로 사람을 대규모로 사민하려면 경험이 필요한 법이지. 그러하니 적합한 인재가…….”

주상전하의 눈을 보니 우리 호주 관찰사 하지 않을래? 하는 표정인데 지금 나보고 호주를 가라고? 미쳤어?

그렇지 않아도 미주 개척에 최소 삼 년은 투자할 작정으로 마음을 먹은 사람인데 호주? 그러면 십 년 가까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라는 말이야?

솔직히 말해 내가 최적의 인재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고 환갑이 다 되어서 험지에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구원 투수가 나타났다.

“신 권율 아뢰옵나이다. 유성룡이 빼어난 인재이지만 엄연히 건축(建築)에 자질이 있으나 호주는 황무지라 목재가 부족하옵나이다. 그러하니 신을 호주 관찰사로 임명해 주시옵소서.”

“합당한 말이로구나. 유성룡은 자원을 사용하여 걸물(傑物)을 만드는 일에 능숙하지만 호주는 자원이 적으니 있는 기물을 착실히 사용하는 자네가 적합하겠구나.”

권율의 구원 덕분에 한숨은 덜게 되었지만 소름이 돋아 올랐다. 호주를 미주 이주 이전에 일종의 시험 기지로 삼는다는 말은 그사이에 내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전쟁 말고 다른 일을!

#작가의 말

스페인 사절단이 조선을 두 번이나 방문하였는데 조선에서도 최소한 한 번의 사절단은 보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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