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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41화 (441/573)

근육조선 441화

2부 22장 3화 승전연

다음 날, 이순신의 수군도 도착하였는데 얼마나 많은 포로를 잡았는지 동래에 도착하자마자 전투로 손상된 판옥선에서 노를 빼내고 돛을 찢어내 간이 포로수용소를 만들 지경이었다.

“주상전하께 승전을 보고 드리옵나이다. 왜군의 선박 육백여 척을 상대로 삼백오십 척을 격파하고 백팔십 척이 항복하여 포로로 삼게 되었사옵니다. 또한 왜인 가운데 삼천여 명의 포로를 서반아인에게 넘겼나이다.”

“서반아의 상인들이 상행을 그르치면 해적으로 돌변하니 기세가 흉흉하고 사람을 납치해 노예로 삼는다 하였는데 참으로 대범한 이들이구나. 그러하면 포로는 얼마나 되고 장수는 얼마나 사로잡았는가.”

“장수는 한미한 장수 서른 명을 사로잡고 수급 팔십여 개를 취하였으며 부장(副將)인 등길랑을 비롯한 시신 다섯 구를 건졌사옵니다. 이외의 포로는 일만오천에 달하옵니다.”

최종적으로 7만이 넘어갔다. 이쯤 되면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도 문제고 돌려보내지 않아도 문제이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일단 주상전하께서는 수용이 먼저라며 정리를 시작하였다.

“육주성에 머무는 삼만 명의 보인들은 그대로 두어 토관들의 관리를 받게 하면 될 것이다. 이십만 호 가까운 인구가 머무는 육주성이니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평상시에는 비어있는 농토에서 농사를 짓게 하고 겨울 농사를 지을 무렵에 육주성의 시설을 보수하게 만들면 될 것입니다. 아마 삼 년 이내에 육주성의 보수를 마칠 것이옵니다.”

어차피 육주성은 가능성이 넘쳐나는 땅이다. 전후처리에 쓰일 궂은일을 할 사람이 필요할 뿐이지 기본적으로 풍요로운 일본 땅이다 보니 조선 기준으로도 꽤나 좋은 농지라던가.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장이 돌아가면 불리한 땅이 되겠지만 농업이 우선인 지금은 농토의 평균 등급이 조선 기준 2등전에 조금 못 미치고 겨울농사를 포함하면 1등전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들은 포로이자 조선을 위해 일하게 해서 자신들의 몸값을 벌게 만들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낫과 쟁기를 들어도 되는 보인과 달리 무기를 사용하는 정병(正兵)에 대한 처분은 조금 까다로웠다.

“대마도의 토관들과 어부들은 일이 해결될 때까지 제주도에 머물게 하고 대마도에 삼만 명의 왜군을 수용하도록. 주변을 수군으로 에워싸 탈출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하오나 이순신의 수군은 대부분 판옥선이라 많은 물자를 운송할 수 없사옵니다.”

왜군이 조오련도 아니고 험악한 대한해협을 헤엄을 쳐 도주할 놈은 없을 테니 별다른 문제는 아니지만 물자는 어떻게 보낼지가 문제이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주상전하께서도 다 생각이 있었다.

“지금 경기수영과 대양도수영의 함대가 하주도의 박다(하카타)에 머물며 해일에 휩쓸린 피해를 보수하는 중이니 이들 가운데 여유가 있는 선박으로 물자를 보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왜적을 상대하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거제도에 이만 명의 왜인을 수용한다.”

이러면서 물끄러미 나와 이순신을 바라보는데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 포로 관리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기 위해 오가야 하리라.

도도 다카도라의 병사를 동원해 찍어 눌러도 물자가 없으면 자포자기해 반란을 일으키게 마련이 아닌가.

이어지는 업무에 숨이 막혀왔지만 전후처리는 이제 시작이다.

주상전하께서는 남은 왜인 이만 명에 대한 처우를 생각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 일만 명은 지금처럼 판옥선 위에 수용하되 나머지 일만 명의 왜인들을 도성으로 압송하되 가급적 체격이 작고 행색이 추레한 이들을 선별하라. 승전연에 포로가 없다면 백성들도 승전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수상가옥 신세가 된 왜인이지만 판옥선이 쉽사리 무너지는 선박도 아니니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나흘 정도 포로 분류작업을 진행하니 저 멀리 전라도에서 상선 수백 척이 동래에 도착하였다.

“명국 황상께서 막대한 은자를 시작으로 황은을 내리셨으니 이를 아국으로 가져오게 되었사옵니다. 우선 은자 삼백만 냥과 황은이 담긴 미곡 일백만 석과 나머지 물자이옵니다! 앞으로 물자가 더 전송될 것이옵니다!”

만력제가 하사한 물자를 벽란도로 입항시켰던 진해대군은 주상전하께서 동래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래로 바로 이동한 것이다.

해안에 산더미처럼 쌓인 미곡을 본 주상전하께서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우선 은자 삼백만 냥? 미곡이 우선 일백만 석이라고?”

“그러하옵나이다. 이미 북경과 남경의 관원들이 사재를 털어 물자를 사들이고 있사오니 이 모든 것이 명국 황상께서 내리신 은덕이옵니다! 가장 중요한 미곡과 어장(魚醬: 젓갈)을 우선하여 보내라 하였나이다.”

이쯤 되면 없던 충성심도 생길 지경이라 주상전하를 시작으로 모든 관원들이 북경이 있을 북서쪽을 향해 사배례(四拜禮)를 올리며 은덕을 칭송하였다.

이어서 서류를 보고 물목을 확인하자 만력제는 정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자만 보내왔다.

“미곡 삼백만 석에 면포와 젓갈을 비롯하여 백성들을 보살필 때에 필요한 물자만 정하여 구입하라 하시다니. 황상께서 참으로 혜안이 깊으시구나.”

“이제야 마음이 놓일 지경이옵니다. 저 포로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도 없사옵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데 쌀만 있으면 충분하냐고? 전혀 충분하지 않다.

이 시대를 살아보니 절실히 알게 된 건데 염장 음식이 짠 이유는 최소한의 염분과 영양소 보충을 위해서이다.

최소한의 염분이 없으면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소금 배분을 위해 포로들에게 사람이 먹기 힘든 천일염, 진흙과 모래가 섞여 가축 용도로 사용하는 소금을 먹일 계획도 세웠는데 만력제의 은혜 한 방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은자 일천만 냥에 달하는 물자면 조선 일 년 예산을 통째로 내놓은 격인데 필요한 물자만 주었으니 포로 관리는 그냥 보내오는 물자로 하면 충분하다.

주상전하께서는 아예 대범하게 나섰다

“삼백만 석에 달하는 곡물을 도성으로 올려보낼 필요는 없다. 도성에서는 은자를 배분하여 공훈에 합당한 보상을 할 것이고 경상도의 백성들과 포로들에게 미곡을 지급할 것이다. 모든 미곡은 동래로 들여보내도록.”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리고 왜인 포로들 가운데 체격이 큰 이들 일만 명을 선발하여 명국으로 보내도록. 도합 일천만 냥에 달하는 은자를 하사한 은덕을 나라의 명운이 다할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문득 만력제가 포로로 뭘 할까 생각했는데 지금 명나라의 곳곳은 부패와 태업으로 인한 반란이 속출한다 하였다. 전쟁에서 몇 번 이기면 해방시켜 준다는 말을 하면 포로들도 결사적으로 나서서 싸워주겠지.

만력제의 성은 단 하나 덕분에 일차적 업무가 종료되었다.

계속 동래로 전해지는 물자로 포로를 먹이고 도도 다카도라를 앞세워 포로들을 관리하게 하면 충분하니 승전연을 위해 장수 모두가 한양으로 향하였다.

* * *

전쟁이 시작되고 딱 두 달이 지난 음력 12월 17일.

아직 쌀쌀함이 감도는 이번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 중 도성에서 소집된 병사들을 포함한 대규모 병력이 다시 도성으로 돌아왔다.

오위를 필두로 한 최정예 병사들을 앞세운 주상전하의 앞길을 백성들이 나서서 절을 하며 맞이하였다.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던 백성들도 오위가 떠날 때에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였다던가.

“주상전하 천세! 천세!”

“왜적 이십만 명이 몰려왔으나 모조리 격멸하고 돌아오셨다!”

행렬의 뒤에는 터덜거리며 걸어오는 포로들을 두어 대비를 극대화하였고, 그다음으로 나를 비롯한 공신들이 말을 타고 행진하였으며 맨 뒤의 수레에는 이번 전쟁에서 사로잡힌 왜장과 이미 죽은 왜장들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주상전하께서는 가장 먼저 명령을 하달하였다.

“왜장들의 시신을 소의문(昭義門) 앞에 메어두어라. 목만 남은 이들은 효수하되 시신이 온전히 남은 이들은 닷새 동안 장대에 매달아 두어 그 흉악한 행실을 도성 널리 퍼트리게 두어라.”

시신이 온전한 녀석이라 해 보았자 히데요시를 비롯한 몇 명의 장수가 전부이다. 이들은 아마 승전연이 끝난 이후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듯 목이 잘리리라.

오위의 병사들에게 은자 20냥의 포상이 내려지고 이외의 지방군에게도 일괄적으로 은자 10냥의 포상이 내려졌으니 전후 붕괴된 경제를 되살리기엔 충분하겠지.

밖에서 여전히 주상전하 천세라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공신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이번 전쟁의 일등공신은 누가 무어라 하여도 세 명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이 셋의 공훈에 미칠 자가 없으니 호명하는 이는 스스럼없이 앞으로 나오라. 우선 유성룡이다.”

본래 역사에서는 선조가 의주는 물론이요, 요동까지 도망치려 하여 쉴 새 없는 견제가 내려왔지만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직접 군을 이끌고 일전을 벌였다.

내가 일등공신이라 따지면 주상전하는 영(0)등 공신쯤 되니 거리낄 것이 없겠지.

주상전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자 선무공신이라 표시한 교지가 내려졌으니 이를 양손으로 받들었다.

간단히 훑어보니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모조리 기입한 것 같았다.

“유성룡을 선무공신(宣武功臣) 가운데 으뜸으로 삼겠다. 이번 전쟁에서 적의 진군을 돈좌시키며 백성들이 몸을 피할 장소를 찾았으니 가장 많은 공훈을 세웠도다.”

“주상전하께서 신을 어여삐 보아주시니 명이 다할 그 날까지 힘쓰겠사옵나이다.”

“또한 유성룡에게 군호(君號)를 하사할 것이다. 나라를 지켰으니 호국에 힘쓴바, 호국(護國)군이라 칭할 것이다.”

이미 지난 전쟁의 공훈을 인정받아 정2품이 되었는데 교지에는 내 품계를 정1품으로 올린다 하였다.

이렇게 되면 내 나이 50이 되기도 전에 영의정을 찍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다.

내가 물러나자 당연히 다음 공신으로 지정된 이는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을 선무공신 가운데 두 번째로 삼겠다. 이순신은 적을 격퇴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자고로 장수라면 병사들의 손실을 막고 적을 끝없이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니 유성룡이 아니었다면 공신의 으뜸이 되었을 것이다.”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하해와 같은 은덕에 신의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옵나이다.”

“아니다, 나라에 조금이라도 힘이 더 있었다면 왜인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남을 함대를 만들었을 것인데 이러한 수를 써 괴로움이 많았을 것이 아니겠느냐.”

마지막 일등공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진해대군이었다. 생각해 보니 육군 도원수는 주상전하요 수군 총대장은 이순신이다. 권율은 애매한 위치인 경주를 방어하였으니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했나 보다. 진해대군도 무릎을 꿇고는 교지를 받들었다.

“명국 황상께서 은덕을 내리셨어도 이 은덕을 받을 수 있는 이는 진해대군 외에는 없었다. 왕제(王弟)로서 나라를 위해 힘쓴 바를 잊지 않았으니 이를 명국을 오가며 널리 알리도록.”

“주상전하께서 사행을 다녀온 신을 어여삐 보아주시니 은혜에 몸을 가눌 수가 없사옵니다.”

“사소한 은혜에 불과하지 않더냐. 세 일등공신에게 은자 이천 냥과 공신전 오백 결을 수여할 것이며 훗날 조정에 청하여 원하는 관청을 건의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제야 주상전하가 뭔 생각을 가졌는지 알겠다. 본래 진해대군은 이등공신인데 만력제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일등공신으로 올렸으니 물주인 만력제가 보고 기뻐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혜택이야 무궁무진하다. 은자 이천 냥이면 평범한 4인 가구가 80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돈이며 공신전 오백 결이면 남는 쌀로 떡을 찧어 먹어도 될 지경이지.

더군다나 관청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이면 자신의 지식을 퍼트릴 장소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아마 이순신은 수군 기지를 세울 것이고 진해대군은 건축 관련 관청을 세울지도 모른다.

나는 뭘 세울까 잠시 고민하니 다음 차례가 시작되었다.

“이제 이등공신을 정할 차례이다. 가장 먼저 경주 일대를 방비한 권율이 앞으로 나오도록.”

예상대로 권율이 이등공신의 첫 수여자가 되었다.

육군 도원수가 될 사람이 이등공신이 되어 마음이 찝찝했지만 권율이 도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주상전하가 친정(親征)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어쩔 수 없다.

권율 뒤에는 각지의 방어선을 담당한 장수들이 이등공신이 되었다.

정걸의 차례가 되자 주상전하께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걸에게 교지를 내려주며 말하였다.

“정걸에게는 본래 일등공신을 내려주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구나. 왜국 뇌호내해(세토 내해)의 모든 항구를 불태우고 선박을 파괴하였으니 왜국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천기(天氣)가 지진을 불러와 함대를 손상시켰으니 공을 일부 제하였다.”

“아니옵나이다. 신이 멀쩡히 이길 수 있던 전쟁에서 손실을 발생시켰사오나 이를 메워주신 주상전하의 은덕에 감읍할 따름이옵나이다.”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뒤엎어지는 상황에서 스물여섯 척의 선박만 상하고 여덟 척의 선박을 폐한 것이 전부이니 큰 손해는 아니다. 오히려 손해를 최대한 줄인 상황이 아니겠느냐.”

나도 사로잡은 전령을 통해 들은 소식인데 일본에 어마어마한 지진이 났다더라.

각지의 건물이 무너질 지경이니 최소한 진도 7은 될 것인데 이 지진으로 일어난 해일에서 함대를 온존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이등공신에 대한 수여도 거의 끝나 가는데 주변이 웅성거렸다.

이윽고 생소한 이들이 앞으로 나왔으니 휘황찬란한 전신 판금갑옷을 철컹거리며 무릎을 꿇은 자와 승려 한 명 그리고 하성군이었다.

“유생들이 왜변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수양대군의 후손 하성군이 독려해서가 아니겠느냐. 전선에 나서지는 않았어도 각지를 오가며 유생들을 독려한 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하성군이라는 말에 눈썹이 꿈틀거렸는데 이 양반은 본래 역사의 선조가 아니다.

군호야 같지만 수양대군의 후손이 왕위를 이어가지 않은 덕분에 모계(母系)가 완전히 갈려나갔으니 굳이 따지자면 선조의 팔촌 친척이지.

하성군이 무릎을 꿇고 교지를 받고 돌아가자 다음으로 나온 이는 쭈뼛거리며 판금갑옷을 입고 앞으로 나선 곽재우였다.

주상전하께서는 휘황찬란한 색으로 도색된 갑옷을 보며 크게 웃으며 교지를 내려주었다.

“내 듣기로 북인을 제하면 팔도에서 으뜸가는 내수린꾼이 있으니 곽재우라 하였다. 하지만 왜인들에게도 그 명성을 떨쳤으니 왜인들은 자네를 철갑괴인이나 철귀(鐵鬼)라 부른다 하였다.”

“한낱 내수린꾼이 명성이 자자한 이들과 같은 자리에 있으니 이 또한 은덕이옵나이다.”

“한낱 내수린꾼이라 하였느냐? 그러하면 관직에 올리는 대신 철갑괴인전이라 하여 새로운 내수린을 창안할 수 있도록 힘을 쓰겠다.”

올라오면서 곽재우의 처분에 대해 관직에 나서지 않으려는 자라 하였던 보답을 지금 내려주시는군.

곽재우는 돌아오며 나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고 나 또한 목례를 하며 이에 답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등공신이 된 이는 장삼을 입은 서산대사였다.

“이번 왜변에서 승려들이 많은 공을 세웠으니 그에 대한 답례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사찰은 성저십리에서 최소한 이십 리를 떨어져 세워야 했으나 도성 안에 사찰을 세울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이다.”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리시니 모든 불자들이 감읍할 따름이옵나이다.”

“아니다, 이번 왜변에서 승군 수백 명이 명을 다하였으니 사찰에 이들의 넋을 달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이 마땅하다. 진해대군에게 명을 내릴 것이니 조만간 터를 마련하고 사찰을 세우게 하겠다.”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 역사에는 원각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 세조가 세운 원각사를 연산군이 기생방으로 만들고 중종이 철거하여 탑골공원과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라는 흔적만 남은 것이 본래 역사이다.

당연히 왕실에서 세운 원찰(願刹: 왕실이 후원한 사찰)은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세워졌으나 이제 조선 최초의 사찰이 성저십리보다 안쪽인 한양도성 내부에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니 이쯤 되면 불교계에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답례가 아닐까.

우리의 승전을 기뻐하는 이들은 조선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뒤늦게 도착하였는지 솔로몬 제국에서 온 마사이인들도, 스페인에서 방문한 사절단도, 그리고 몸집이 퉁퉁한 신농도인, 폴리네시아인들도 기쁜 표정으로 주상전하께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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