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40화
2부 22장 2화 도주(2)
일본의 연약한 선박들을 잡기 위해 소구경의 함포를 다량 배치하도록 개수된 판옥선에서는 쉴 새 없이 화포가 발사되었다.
하지만 판옥선의 든든한 판자에도 조총 탄환이 계속 박히고 갑판에서는 불운한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놈들의 저항이 거세집니다! 이미 두 명이 보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멈추지 마라! 움직이며 화포를 계속 쏘아라! 이미 물보다 적이 많지 않더냐! 보총을 쏘는 적선을 노려서 화포를 쏘아라! 후방의 배들은 화포를 맞은 적선을 완전히 무너트려라!”
그저 조직적인 저항을 실시하는 적을 화포로 침묵시키고 움직이면 나머지는 후방의 배들이 돌아가며 아예 불화살까지 퍼부으며 확인사살을 하였다.
이순신은 명령을 내리며 슬쩍 갑옷 안쪽을 더듬어 탄환을 뽑아냈다.
“근육 덕분에 살아남다니. 역시 근육을 길러서 나쁠 일은 없지.”
두정갑을 꿰뚫으며 힘을 잃은 탄환이 이순신의 대흉근에 박혀 있었으니 조금 힘을 주자 순식간에 몸 밖으로 밀려 나왔다.
꾹 눌러 상처를 지혈한 이순신은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저항하려는 배들도 이순신을 피하기에 급급해졌다. 반항하면 즉각 두들겨 맞고 아예 배가 침몰할 때까지 화포를 두들겨 맞으니 이미 이순신의 앞에는 드넓은 항로가 펼쳐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잠시의 틈을 히데요시는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던 히데요시는 아예 다른 함선의 뒤꽁무니를 쫓아 평범한 함선으로 보이려 하였지만 이순신은 이를 알아차렸다.
“항로를 변경한다. 후방을 돌아 크게 우회할 것이니 격꾼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라!”
“저희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 선박 안에서 도대체 어디에 기함이 있단 말입니까?”
“자네들도 경험이 쌓이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네.”
이순신 자신의 눈에는 적장의 움직임이 보일지 몰라도 평범한 이들은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장수는 명령을 내리니 움직임이 한발 빠르게 마련이었다. 설령 명령을 내려서 장수가 뒤늦게 움직인다 하여도 홀로 늦게 움직이는 모습을 느낄 수, 아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과거에 합격한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팔선(삼각함수)을 배울 적의 산학 문제와 닮아 있군. 수가 아무리 변하여도 기본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언제나 정확한 답을 낼 수 있었지.”
일본 수군과의 연이은 전투로 충분한 경험을 축적한 이순신에게 모든 일은 현상에 불과하며 적의 움직임은 머릿속의 수학 공식처럼 정형화되어 있었다. 아무리 변칙적이어도 기본은 일본 수군이 아닌가.
이순신의 진격은 점차 정확히 히데요시가 탑승한 함선으로 다가왔고 히데요시는 결국 자신의 진영을 붕괴시키며 다른 함선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당연히 충돌이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밖에는 남만 해적과 조선군에! 안에는 이순신에! 그리고 키노시타 님은 또 왜 저러셔! 배를 멈춰! 멈추라고! 이대로라면 충돌한다!”
세키부네가 항로를 변경하지 못하고 아타케부네의 측면을 들이박고 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늑대에게 습격당한 양 떼가 도망칠 때 서로를 짓뭉개며 죽이듯 충돌로 인한 침몰이 빗발쳤다.
히데요시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이순신에게 밀리고 밀려 어느새 대열의 외곽까지 닿았다.
하지만 제대로 산개하지도 못한 채 화포를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본 히데요시는 텅 비어버린 대머리에 핏줄을 돋울 정도로 격노해 명령을 내렸다.
“이 머저리들아! 그냥 사방으로 흩어지라고! 흩어지면 모조리 죽더냐! 어떻게든 나가토(長門: 현 야마구치 현) 해안까지 닿아서 물 위로 기어오르면 충분하잖아!”
“남만 놈들이 화포를 날립니다!”
“애초에 포위망을 뚫을 생각조차 안 했잖아! 으아아악! 저 미친놈은 언제 여기까지 왔어!”
이미 지척까지 닿은 이순신의 함선을 확인한 히데요시는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배에 힘을 꽉 주고 몸을 곧추세웠다.
처음에 돌진할 때에는 공훈에 눈이 멀었다 생각했는데 놈은 한 척의 함선도 잃지 않고 자신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며 끝없이 추격하였다.
이순신의 함선의 사거리에 닿은 히데요시지만 더 이상 도망쳐 보았자 바깥으로 밀려나 다른 함선의 화포를 두들겨 맞고 침몰하는 미래 외에는 없었다.
그러니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 결국 몇 발의 탄환이 히데요시가 탄 세키부네를 두들겼다.
“이순신이다! 이순신이 우리를 다 죽일 거다!”
“이대로 있어도 죽는다고!”
포탄이 갑판을 뚫고 격꾼이 머무는 갑판 아래까지 닿자 이미 공포에 질린 격꾼들은 발작적으로 노를 움직이며 배를 크게 선회시켰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배가 향한 곳은 하필 다른 세키부네의 경로와 닿아 있었다.
선회하는 와중에 측면에 다른 배가 부딪히자 얇은 삼나무 판으로 만든 세키부네의 선체가 뒤틀리고 으스러졌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는 히데요시의 몸이 세차게 요동치며 짙푸른 바다로 날아들었다.
“크윽! 어으어억! 우우웁! 옷을! 옷!”
사력을 다해 단검으로 갑주의 끈을 잘라내려 했던 히데요시지만 갑주가 아닌 치렁치렁한 비단 관복을 입었으니 단검은 애꿎은 히데요시의 몸을 찌를 뿐이었다.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자 히데요시는 관복을 벗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그의 폐에서 마지막 숨이 토해지고 발작적으로 움직이던 사지가 멈추며 그의 입이 벙끗거렸다.
-천하인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히데요시의 입에서 마지막 소망을 담은 숨이 밀려 나왔고 그의 동공이 풀리며 혼이 떠나간 몸뚱이가 천천히 물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적의 기함을 격파하고 주장(主將)을 물귀신으로 만들었으니 지금까지 적진을 헤집으며 확인한 장수들을 다시 찾아서 격멸하였다.
아침나절에 시작된 전투는 두 시진, 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끝났다.
해가 하늘 높이 치솟을 무렵 가까스로 도주한 70척의 왜선을 제외한 모든 함선이 항복하거나 침몰하였다.
“항복! 항복하겠소!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포로의 분류는 삽시간에 진행되었다. 이미 이런 작업에 능숙한 스페인 사략선단은 밧줄을 내려 포로를 사로잡고 장수는 모조리 처형해 머리만 조선에 보내고 왜병들은 텅텅 비워둔 선창에 블록을 쌓듯이 차곡차곡 적재하였다.
“야 이 미친놈들아! 사람이 몸을 누일 공간만 주면 어떻게 하느냐!”
“네놈들은 사람이 아니고 화물이다. 밥 먹을 시간과 대소변을 볼 시간을 제외하면 짐짝으로 취급할 테니 죽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노예무역을 하던 솜씨를 충분히 발휘해 능숙한 손길로 온전한 왜병만 분류한 스페인 선단은 순식간에 만재(滿載)를 달성하였고 이순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귀환하였다.
“이번 전투에 참가시켜 주신 덕분에 저희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훗날 조선의 사절단에게 이 보답을 톡톡히 할 것이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의 수군에는 아직 업무가 산적해 있었다. 포로를 분류하고 왜장의 목을 베던 와중에 한 시신이 갈고리에 걸려 갑판 위로 올라왔고 포로 분류를 돕던 아케치 미츠히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신에 달려들었다.
“키노시타! 네 녀석이 대체 왜 이런 몰골로!”
“왜장인 등길랑이겠군. 관복을 입고 있어서 문인인 줄 알았는데.”
아케치 미츠히데가 히데요시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질끈 감자 이순신은 재차 명령을 내렸다.
사지가 온전한 데다 별동대를 이끌던 장수이니 쓸 만한 구석은 많았다.
“본래 목을 베려 하였지만 시신이 온전하니 도성으로 압송해도 괜찮을 것 같군. 왜장 가운데 사지가 온전한 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니 엄중히 챙겨두게나.”
출세를 위해 평생을 바친 히데요시의 최후는 비참한 패전을 거듭하다 익사하여 도성으로 압송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한편 구키의 함선에 탑승한 보인들은 저 멀리 육지가 보이자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고 고함을 쳐댔다. 지옥 같은 조선 땅을 탈출하였으니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만이 남았다.
“여기가 어디건 간에 우리가 살길은 열려 있다네. 고향이 지나치게 멀어도 열심히 일하며 여비를 모으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렴! 삼 년이고 오 년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열심히 노력할 것이네.”
“그런데 이 땅은 아무리 봐도 우리가 출발한 나가토쿠니가 아닌 것 같은데…….”
고작 한 달 하고 보름 전에 출발한 지역을 모른다 하면 천하의 머저리이리라.
하지만 자그마한 항구는 온데간데없고 아직 전쟁을 치른 흔적이 남아 있는 거대한 항구로 선단이 향하였다.
오우치의 영토가 아닌 조선 땅 하주도의 항구 박다(하카타)에 정박한 구키의 함대를 확인한 하주도 병사들 사이에서 조선 관원이 손을 흔들며 그를 맞이하였다.
“구귀가륭(구키) 자네 고생이 많았다네. 그래, 아주 신선한 왜인들이 잔뜩 일하기 위해 당도하였으니 잘 먹이고 잘 재워서 육주성을 온전히 되돌리는 데 힘쓰게 하면 되겠군.”
보인들은 단도를 꺼내고 반항하려 하였지만 저 멀리서 거대한 경기 수영의 대장선이 접근하자 모두 날붙이를 내려놓고 구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구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하였다.
“퇴로는 여기밖에 없다네. 이미 조선 수군이 세토 내해를 모조리 박살 내고 되돌아오는 중이었으니 함부로 반항하다가는 모두 물귀신이 되었을 것이네.”
“그럼 저희는 노예 신세가 아닙니까!”
“노예 신세라니, 자네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몸값을 조선을 위해 일하며 버는 것이 아닌가. 조선의 급료는 비싼 편이니 자네들의 몸값을 모두 벌면 반드시 돌려보낼 것이네.”
기한이 몇 년이 될지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말을 하려다 속으로 씹어 삼킨 구키는 아예 절망한 채 바닥에 주저앉으려다 고소한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는 보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선 관원들은 미리 밥을 지어다 항구에 상을 차려놓기 시작하였다.
“자네들이 어떻게 되었건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병사들이야 포로로 삼을 것이지만 자네들은 이제 부역을 실시하는 이들이 되었다네. 그러니 어서 먹고 힘써 일하게.”
산더미처럼 쌓인 고봉밥을 확인한 보인들은 꾸르륵거리는 속을 달래며 너 나 할 것 없이 조선의 품으로 합류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선에 합류하였으니 밥 하나만큼은 푸짐하게 먹으며 열심히 일할 수 있으리라.
* * *
주상전하께서 대구로 침공한 일본군 본대를 아예 짓뭉개 퇴각조차 못 하게 압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이 지났다. 지난 며칠 동안 침묵한 일본군이 절망적인 공성전을 재개하나 하였는데 아니었다.
진주성을 포위하고 있던 히데요시는 다시 내 상식을 뛰어넘는 짓을 저질렀다.
전선 지휘관이 야반도주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며 도도 다카도라라는 부장(副將)도 상식을 초월한 전략을 택하였다.
“항복입니다! 이국인 조선에 저희를 버리고 간 토키치로 놈을 찾아 간을 씹어 먹기 전까지는 조선에 무조건 충성하겠습니다! 간을 씹어 먹은 이후에는 그 보답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도도 다카도라를 처음 만나봤는데 원균이 생각나는 거구였다. 신장도 한 185㎝는 되어 보이는 데다 체중도 120㎏에 근접하니 본래 역사의 나보다 조금 근육이 많은가?
하지만 그 거구가 갑자기 무기를 버리고 성 앞에서 도게자를 하며 머리를 땅에 찧어대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아예 성안으로 불러들이니 그는 내 손을 맞잡으며 아부를 일삼았다.
“주군을 일곱 번 바꾸지 않으면 무사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명확히 택하는 것이야말로 무사가 택할 방법이지요.”
“일전에 등길랑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자네를 그렇게나 헐뜯은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이번에도 배신하면 목숨은 살려줄 것이나 이 세상의 반대편으로 보낼 것이니 명심하시오.”
세상의 반대편이면 미주도 있고 호주도 있고 아예 솔로몬 제국에 포로로 팔아버리는 방법도 있다.
내 눈빛을 느꼈는지 도도는 그 거대한 몸을 푸들거리며 다시 도게자를 하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어서 그 정예 기병을 이끌어 다케다의 후방을 치시지요! 다케다 놈은 저를 발탁한 코이치로(小一郞: 히데요시의 동생) 님을 죽인 원수이니 저도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 다케다는 이미 죽었다네. 말발굽에 짓밟혀 고혼이 되었지.”
도도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알을 사방으로 굴려댔지만 이게 현실인데 뭐 어쩌겠어. 이틀 전에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주상전하께서 아예 곤죽을 만들어 버렸다더라.
도저히 믿지 못하는 도도를 위해 쐐기를 박아줬다.
“대구에서 감히 주상전하를 무너트리려 하였던 무전승뢰(다케다 카츠요리)의 본영으로 일만여 명이 넘는 기병이 돌진하였다네. 주상전하께서 돌진을 멈추려 하였지만 측면을 뚫은 기병들이 아예 도로를 만들어 버렸지.”
“그렇습…… 니까!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 아무렴요. 사실 저도 한솥밥을 먹던 신세는 아니지만 옆 동네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습니다.”
“입에 침을 잘 바르시는구려. 이미 승전이 확전된 상황에서 항복하였으니 대접은 좋겠지만 엄연한 포로 신세임을 잊지 마시구려.”
처음에는 도도 다카도라를 앞세워서 일본군을 토벌할까 생각하였지만 이런 놈을 믿느니 차라리 히데요시를 믿겠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니 도도는 어떻게든 공적을 세우려고 하였지만 이미 끝난 전쟁에 공적을 세워봤자 뭘 하겠는가.
일본군도 패전 소식을 들었는지 사방에서 동래를 향해 퇴각하였다. 하지만 놈들이 퇴각해 보았자 이순신이 있는데 뭘 어쩐단 말인가.
천천히 진주 일대를 정리하고 일본 별동대를 무장해제하여 포로로 삼은 뒤에 남해안을 따라 움직이니 주상전하도 양산을 넘어 본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갑주를 입은 채 주상전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주상전하를 뵙사옵나이다.”
“자네도 고생이 많았다네. 자네가 산성을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피해를 무마할 수 있었지. 아국의 백성 가운데 포로로 잡힌 이는 삼천여 명에 불과하다네.”
“삼천여 명에 불과한 것이 아니옵나이다. 삼천여 명이나 포로로 잡혔으니 그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옵나이다.”
그렇게나 말을 해뒀는데 소식을 듣지 않거나 둔하게 움직여 피난하지 못한 이들이야 자기 책임이기도 하지만 위정자(爲政者)가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주상전하는 내 말을 듣자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며 즉각 반성하였다.
“승전으로 기분이 들떠 실책을 저질렀군. 이미 전쟁은 끝이 났지만 아직 남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네. 어서 동래로 향하여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출하고 왜인들을 사로잡으세.”
동래야 뭐 할 말이 있겠는가.
이미 패전 소식이 전해지고 함대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는 데다 보급마저 떨어진 일본 병사들은 군마(軍馬)를 잡아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가 조선군을 향해 다가왔다.
“항복하겠습니다! 무조건 항복할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다시 포로가 증가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전후처리 과정의 시작은 포로 정리인데 아마 내 몫이 될 것이고 최소 오만 명에 달하는 포로가 있었으니 말은 다 했지.
동래까지 와서 포로를 정리하자 논의가 시작되고 약식 보고를 율곡 이이가 올렸다.
“우선 왜추(倭酋)인 무전(다케다 카츠요리)은 기병에 짓밟혀 시신도 찾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네. 주상전하께서 승전을 하실 때 이만 오천 가량의 왜인들이 포로로 잡혔지.”
“이만 오천이라 하셨습니까? 거기에 더 많은 포로가 있다 하시면…….”
“이후 창녕부터 삼랑진까지 내려오며 다시 이만 가량의 포로를 사로잡았고 동래에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이 다시 일만여 명에 달한다 하네. 결국 포로는 육만 명이 넘지.”
대승은 대승이지만 이제 남은 것은 끝없는 업무의 산더미이다. 당장 포로들은 반항이 머리끝까지 차 있고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마음 하나만 품고 있다.
이들을 제압하는 것도 일이라 머리가 딱딱 아파오는 와중에 누구라도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게는 도도 다케도라가 있었지.
그놈을 앞세워서 모든 욕을 받아내게 하면 첫 문제는 해결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