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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39화 (439/573)

근육조선 439화

2부 22장 1화 도주(1)

히데요시의 별동대는 희망 없는 공성전을 이어갔다.

유성룡의 별동대도 지쳤는지 이틀 간격으로 합류를 시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포위망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손실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지루한 공성전도 막을 내렸다. 달구벌 결전이 일어나고 닷새 뒤인 음력 12월 2일.

히데요시의 진영에 교토에서 긴급히 파견된 전령 한 명이 도착하였다.

“지금 뭐? 뭐라고? 갑자기 조선의 함대가 기슈(紀州: 현 와카야마 현) 일대에 나타나 사카이와 세쓰(攝津: 고베 일대)를 시작으로 세토 내해를 부수기 시작했다고? 여기에 또 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오와리를 시작으로 교토까지 땅이 갈라지고 산사태가 일어나며 최소한 수백 채의 가옥과 성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조선 함대도 해일에 피해를 입어 배가 망가졌다는 점 하나이지요.”

충격적인 보고가 계속 이어지자 히데요시는 멍하니 남동쪽에 있을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았다.

조선군이 예상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사카이와 교토를 공격했다면 애초에 이 전쟁은 조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선군이 해안에 나타나 한창 화포를 쏘며 사카이를 부수고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났다면 그리 큰 타격은 없었겠군. 기껏해야 항구에 정박한 선박이 파손당한 것이 전부겠지.”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은 조선의 함대도 혼란에 빠져 버렸다는 점 하나이다. 뭍에 박혀 있는 건물과 달리 바다의 위에 떠 있는 함선은 해일로 흔들릴 뿐 쉽사리 침몰하지 않는다.

해안에서 포격을 하던 함선들이 좌초되거나 하부가 파손되는 일이 전부이다. 이런 손상은 느긋하게 항구에 머물며 닷새 정도 수리하면 배를 띄울 수준까지는 복구할 수 있다.

전령도 이런 사실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조선군이 손상된 함선을 보수하는 틈을 타 잠시 숨을 돌렸지요. 덕분에 마이즈루에서 배를 타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교토는 아수라장이 따로 없습니다.”

“혹여나 교토의 사찰인 도지(東寺)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강당이 폭삭 내려앉았지만 다른 건물은 무사합니다.”

히데요시의 눈이 번뜩이며 이후 벌어질 일을 예측하였다. 실권은 없고 가장 높은 사람인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분명 승전을 기원한다며 가장 명망 높은 사찰인 도지에서 불제를 올린다 하였다.

실질적으로는 정치에서 벗어나 사찰에 머물며 편히 쉬겠다는 뜻이지만 하필 강당이 무너졌다면 그가 목숨을 잃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히데요시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전령에게 정중히 권유하듯 말하였다.

“참으로 고난이 많았군. 이 소식을 혹여나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

“이 소식을 함부로 말하였다가는 조선을 공격하던 군대 모두가 자발적으로 퇴각하지 않겠습니까. 별동대를 담당하신 키노시타 님을 제외하면 제 동료가 지금쯤 소식을 전해줬을 주군 외에는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주군이라 하여도 본대와의 연락은 이틀 전에 두절되었으니 두 가지 가능성 외에는 없다. 조선군이 아예 저항을 포기해 전령을 보낼 새도 없이 진군하거나 조선군에게 완벽하게 섬멸당해 제대로 퇴각한 이도 없거나.

아마 퇴각조차 못 하고 조선군의 최정예 부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 아예 몰살당한 게 분명하리라.

히데요시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쭈뼛거리는 전령을 슬쩍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미 패배한 전쟁인데 뭘 망설이는가. 지금이라도 말을 타고 당장 돌아갈 마음이 드는가?”

“없다 하시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요. 지금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마침 잘되었군. 본영에는 전령이 쓰기 합당한 준마가 여럿 있다네. 더군다나 조선의 별동대가 산성에서 길을 막을지도 모르니 자네를 돌려보낼 군사를 많이 마련해야겠군.”

말을 하면서도 히데요시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미 격멸당한 본대를 감안하면 병사의 총원은 기껏해야 정병 3만, 보인 4만 명 내외이다. 별동대를 끌어모아 항전해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조선의 함대는 해일의 피해를 보수한 이후 다시 세토 내해를 가로지르며 모든 항구를 부수고 동래로 돌아오리라. 그렇게 되면 퇴로도 막혀서 몰살로 결말이 나겠지.

한숨을 깊게 내쉰 히데요시는 막사로 돌아가는 전령을 보며 마구간으로 향하였다.

“도도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 목숨이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답은 야반도주이다. 이미 전령이 들어왔으니 그의 갑주를 훔쳐 입어 전령으로 위장해 동래로 돌아가면 되리라.

그도 나름 먹물을 먹었으니 한자를 사용하지 못해도 가나(仮名: 히라가나)로 된 명령서는 작성할 수 있었다.

쓸 만한 준마 여섯 마리를 골라 한 마리에는 자신이 평소 착용하였던 갑주를, 다른 한 마리에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서류와 군자금을 올린 히데요시는 전령이 착용하였던 갑주를 몰래 훔쳐 입더니 진영 밖으로 나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키노시타 님의 명령일세!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본영과 연락을 취할 전령을 보내라 하였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인데? 전령은 여럿이 조를 이루어야 하는데 자네 혼자 간다고?”

“예비마를 충분히 끌고 왔으니 염려하지 말게. 여기 키노시타 님이 작성한 명령서라네.”

명령서의 내용을 확인한 사무라이는 히데요시의 직인이 찍힌 것을 확인하더니 별소리 없이 히데요시 본인을 배웅하였다.

그믐이 된 어두운 산길을 횃불 하나에 의지해 달리는 히데요시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고함을 쳐댔다.

“천하인! 어떻게든 병사를 온존, 아니 일만 내외의 병사만 온존해서 교토로 돌아가기만 하면 천하인이 될 수 있다고!”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았다. 쇼군이 살아 있다면 자신을 앞세워서 정권을 온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이요, 쇼군이 죽었다면 이미 양자로 받아들이자는 제안을 한 상태이니 칼을 앞세워 입적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면 충분하다.

원정 출병으로 인해 낭인이나 각 가문에서 최후까지 남겨둔 소수의 병사만 있는 현재의 일본에서 일만 이상의 병력을 막을 세력은 없다.

어떻게든 교토로 병력을 끌고 가기만 하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다음에는 뭔 일이든 할 수 있어. 조선 육군이 공격하기 이전에 이번 침략에 가담한 놈들을 잡아다 목을 베어서 조선에 머리라도 박는다면 어떻게든 내 목숨을 온존할 수도 있고!”

자신을 발견했는지 조선의 별동대(의병)로 보이는 이들이 횃불을 들었지만 히데요시는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고 말을 몰았다. 제대로 된 갑주도 챙겨 입지 않았으니 전령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상황으로 보이리라.

젊은 시절에도 발휘하지 못한 힘이 히데요시에게 돌아왔다.

말안장 위에서 시달리며 휴식을 취할 때마다 각지에서 의병들에게 공격당하던 병사들을 설득해 퇴각에 동참시켰고, 마침내 삼 일이 지나자 일천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동래까지 도착하였다.

“키노시타 토키치로일세! 본대가 몰살당하여 조선군이 별동대의 후방을 공격했고 가까스로 퇴각하였으니 어서 문을 열게!”

“본대가 격멸 당했다 하셨습니까? 다케다 님은 살아남으셨는지요? 그리고 별동대의 생존자가 고작 이천 명에도 미치지 못하다니요!”

“자네는 지금 뭐가 중요한가! 내일이라도 조선군이 동래를 엄습할 지경인데!”

동래의 진영 안에 순식간에 혼란이 빗발치며 히데요시가 원하는 상황이 되었다. 진군을 거듭하였던 본대와 별동대에서 생존자가 이천여 명만 도달한 상황이다.

혹시나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히데요시가 병사들을 돌아보았고 병사들은 자신들을 가장 먼저 보내주겠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은 채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본영에 있던 구키가 놀란 눈으로 히데요시에게 달려왔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정녕 다케다 님이 패배하셨습니까?”

“이미 소식이 두절되고 조선의 진군이 재개되었는데 두 번 말할 때도 아니라네. 함선은 몇 척이나 있는가? 혹여나 이순신이 공격을 재개하였다면…….”

“함선은 일천이백 척 정도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보고가 올라갔다시피 이순신의 본영인 한산도를 격멸하여 놈은 저 멀리 전라도까지 본영을 옮겼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배신하였음에도 태연히 보고를 올리는 구키였지만 그 뻔뻔함이 히데요시가 알아챌 수 있는 위화감을 없애주었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반드시 퇴각하는 자신의 덜미를 잡으러 나타나리라.

예상보다 빠른 퇴각이라 하여도 그 예상 따위는 언제라도 박살 낼 수 있는 자가 이순신이다.

히데요시는 목을 가다듬고 구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다케다 님이 교전 중 실종되신 상황이니 퇴각 명령을 내리겠네. 일천이백 척의 함선 가운데 육백 척을 자네가 인솔하게. 부상을 입은 병사들과 보인들을 올려서 퇴각시키게.”

“네? 하필 부상자와 보인을 왜 먼저 태우십니까?”

“조선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한 명이라도 희생자를 줄이려는 계획이지. 어차피 동래 일대에 머무는 병사들은 다 합쳐서 사만 명이 넘는데 이들이 모두 함선에 오르려고 다투면 난리가 날 걸세.”

히데요시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바다에서 퇴각하는 배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이순신이 첩자라도 심어두지 않았다면 알 방법이 없다. 부리나케 달려온 이순신이 첫 번째 함대를 격멸하여도 전라도까지 돌아가 보급을 하고 돌아오려면 며칠은 걸리리라.

그사이를 노려 두 번째 퇴각 함대에 병사들만 잔뜩 올려 퇴각하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다. 너무 늦게 퇴각하면 덜미를 잡히겠지만 이틀 정도의 간격을 두면 충분하리라는 계산이었다.

구키는 멍하니 히데요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합당한 말씀이십니다. 역시 키노시타 님은 일본의 보배나 마찬가지시군요.”

“패장의 얼굴에 금칠하지 말게. 자네와 함께 어떻게든 교토로 돌아가려는 마음만 있으니 자네도 몸을 조심하게나. 나는 바로 다음 날 출발할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인사를 올리고 뒤로 돌아서는 구키가 짓는 미소를 알아차리지 못한 히데요시는 본영을 오가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어차피 부상병이 넘쳐나는 상황이기에 삽시간에 소집된 첫 번째 함대는 머나먼 남쪽을 향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히데요시의 함대도 퇴각을 시작하였다. 600여 척의 세키부네는 심지어 격꾼마저도 내쫓고 모조리 병사들만 태웠다.

당연히 배에서 쫓겨난 격꾼들은 자신들의 배를 부여잡고 아우성을 쳤다.

“난 보인이라고! 세상에! 첫날에는 보인만 태우더니 이번에는 우리를 버려두고 가냐! 야! 키노시타! 개놈의 새끼야! 육시를 해 쳐 죽을 놈아! 물귀신이 될 놈아!”

“키노시타가 좋다고 따라간 놈들은 용왕(龍王)의 아래에서 영원히 저승을 헤맬 것이다!”

창칼에 밀려 쫓겨난 격꾼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애초에 병사들을 내쫓을 방법도 없기에 나룻배라도 타고 도주하려 하였다. 최대한 많은 병사들을 태운 함대가 출발하니 병사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히데요시를 칭송하였다.

“우리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키노시타 님 정말 감사합니다!”

“참으로 다행이야! 다행이라고! 드디어 이 지옥 같은 조선 땅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

전문적인 격꾼이 줄어들고 병사들이 대신하였기에 속도도 느리고 조타(操舵)도 엉망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빠른 일본 선박이기에 해안을 벗어나자 쏜살같이 움직였다. 하지만 기함인 아타케부네에 히데요시는 없었다.

히데요시는 일종의 피해망상에 가까운 집착으로 문인(文人)들이 입는 치렁치렁한 비단 관복으로 갈아입고는 기함이 아닌 평범한 세키부네에 머물러 있었다.

이윽고 동래가 멀어질 때쯤 한 병사가 앞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배다! 저건 남만인의 배다!”

“남만인? 남만 해적이 어찌하여 여기 있단 말인가!”

대마도 방향에서 갑자기 선단이 등장했음을 확인한 히데요시가 소매에서 천리경을 꺼내 살펴보자 20척에 달하는 남만 함대가 보였다. 하지만 그 거대한 돛대 뒤로 자그마한 돛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20척 혹은 40척 단위만 파견하였던 이순신의 수군 함선 65척이 모두 집결해 있었으니 저들을 상대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삽시간에 일본군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조선 수군이다! 조선 수군이 나타났다!”

“이순신이다! 이순신이 나타났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이시어 저희를 극락으로 인도하소서!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

천리경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어지고 히데요시도 온몸에 식은땀을 흘려댔다.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갔단 말인가? 지금쯤 구키를 두들기고 있을 이순신이 아니란 말인가? 본영은 언제 대마도로 옮겼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경우에 대응하는 방법이 있었다.

“모두 산개하라! 당장 산개하라고! 이순신이 태풍이더냐! 고작 사람일 뿐이다! 철저히 산개하여 어떻게든 항로를 돌리면 다 죽을 일은 없으니 당장 산개해!”

“제대로 된 격꾼들을 동래에 버려두고 오셨는데 어떻게 산개합니까?”

히데요시의 입이 벌어지며 산개 명령을 하달한 직후 벌어진 일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기만 하였다.

숙련된 격꾼들처럼 배를 정밀하게 조종할 수 없으니 그저 좌우로 움직이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일본함대가 취할 수 있는 기동의 전부였다.

* * *

퇴각하는 적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대마도에 임시 진영을 차린 이순신은 동래에 있던 구키의 부하가 보내온 첩보를 입수하고 한발 빨리 움직였다.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히데요시의 수군을 본 이순신은 천리경을 접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구귀가륭(구키 요시타카)이 보낸 정보가 틀림이 없군.”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그 친구는 전쟁이 끝나면 출세하겠군요. 이미 일본의 뇌호내해(세토 내해)의 함선이란 함선은 모조리 격파되고 항구가 불타지 않았습니까.”

“이미 초토화된 왜국에서 보인 수만 명과 육백여 척의 함선을 돌려보냈으니 왜인들이 그의 치적을 칭송하겠지. 그나저나 당신들은 왜인을 포로로 삼아서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이순신과 최호의 옆에 있던 스페인 사략선단 지휘관은 콧수염을 튕기더니 손을 싹싹 비비면서 답하였다.

그의 눈에는 저 일본 수군 모두가 돈으로 보이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노예로 삼아서 머나먼 땅으로 보낼 예정입니다. 요즘 지팡구 제도(서인도 제도)에 사탕수수 농장이 유행이라는데 지팡구 사람을 잡아다 지팡구 제도에 팔아볼까요.”

“노예로 잡으려다가 역으로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작전은 잘 알고 있겠지?”

“너무 무리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저희가 원거리에서 큰 함선을 때려 부수고 조선 수군이 작은 함선을 에워싸 부수는 작전이 아닙니까.”

작전을 이해했으니 잘되었지만 이순신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계획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다.

최호와 사략선단 지휘관이 돌아가자 이순신의 눈은 일본 함대를 뚫어져라 관찰하였다.

모든 함선은 지휘관이 있게 마련이고 이 지휘관은 더 높은 장수의 명령을 듣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모든 병사들은 위기 상황에 놓이면 장수를 따라 움직이기에 바쁘다.

스페인 사략선단을 시작으로 주변을 크게 에워싼 모든 함선들이 포격을 시작하니 연약한 세키부네가 하나씩 침몰하기 시작했다.

숙련된 격꾼이 부족한 상황이라 서로 충돌하거나 진로를 막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개중에 한 선박이 이순신의 눈에 들어왔다.

“저 선박에 왜장이 있다! 어서 격멸하게 움직여라!”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순신이 구분한 적장의 움직임을 모두가 알아차릴 수 없는 법이다. 적장이 얼마나 숨으려 노력했는지 이순신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으니 직접 함대 중앙으로 뛰어들어야 하리라.

결국 이순신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지금부터 전라 수영에 소속된 함선 스무 척은 돌격하여 적장의 기함을 격파한다. 저 거대한 함선은 기함이 아니고 평범한 함선이 기함이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지만, 이순신이 언제 무리한 명령을 내린 적이 있던가.

전라수영 시절부터 이순신과 함께한 스무 척의 판옥선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순신의 선단은 600여 척의 일본 수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 모습을 관망하는 이가 있었으니 사략선단의 선원들이었다.

무역로 일대에서 해전으로 잔뼈가 굵은 선원은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쳐댔다.

“공을 앞세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싸워야지 수백 척의 함선 안으로 들어가다니. 조선의 장수도 공훈에 눈이 돌아갔군.”

제아무리 뛰어난 장수라도 적진에 뛰어들면 포위당해 목숨을 잃기 마련이다. 만에 하나 역으로 배를 빼앗기면 다 이긴 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사략선단의 눈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장은 물고 있던 담배 파이프를 바닥에 떨구고 멍하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저게 말이 돼?”

수백 마리의 양 떼 사이로 양치기 개가 뛰어들 듯 거침없이 돌격한 이순신의 함대는 절대 포위당하지도 않고 적을 몰아세우며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대체 무슨 목적인지 알 길이 없었는데 어떤 한 선박만 집요하게 추적하는 모습이 아닌가.

“저거 설마 장수를 잡겠다고 수백 척의 선박을 밀고 지나가? 그런데 애초에 장수를 어떻게 알아봤냐고!”

아무리 뛰어난 목동도 수백 마리의 양 떼에서 얼룩 양 하나만 찾아내라 하면 양에게 짓밟혀 목숨을 잃으리라.

하지만 이순신의 대장선과 그 뒤를 쫓는 판옥선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작업을 수행하며 일본 수군을 내부에서 격파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콜롬버스가 서인도제도를 지팡구제도라고 명칭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방 끝자락에 있는 조선을 찾아 항해 -> 제도를 만남 -> 여기가 조선 동쪽에 있는 지팡구라는 동네이니 지팡구라 명명 -> 원주민들 졸지에 일본인 됨.

덕분에 오차를 6,000㎞ 정도 줄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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