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35화
2부 21장 13화 한산도 대첩(1)
일본군이 삼랑진을 넘어 창녕 방어선을 돌파할 무렵, 동래 일대의 보급대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보급대가 대마도를 우회하여 먼바다로 크게 돌아가면 이순신도 작전 거리의 한계로 함부로 보급을 끊어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이순신의 노림수였다. 모든 보급을 끊어낼 수 없다면 보급 경로를 크게 우회시키면 충분하다 여겼지만 겨울의 대한해협은 만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물자를 가져온 이는 현장 지휘관인 야마가타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번 항해에서는 백 척의 함선 중 열두 척이 풍랑에 휩쓸려 물귀신이 되었습니다.”
“겐가이나다(현해탄) 인근이니 풍파가 심하기는 하겠지. 이래서야 이순신에게 노획당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네가 맞서 싸우지 않은 덕분이야.”
구키 요시타카가 어금니를 악물어대며 목의 핏줄이 치솟았지만 자신을 고용한 다케다 가문은 자신을 미천한 해적이라 치부하며 별다른 지원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을 상대로 화포도 제대로 된 전략도 없이 무턱대고 싸운다면 무조건 죽는데도 죽음을 종용하니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택하였고 이번 항해에서도 수없이 많은 부하가 물귀신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신분을 따지는 다케다 정권에서는 미천한 놈의 죽음일 뿐이었다.
“그러하면 제대로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망루의 돌을 걷어내고 화포 여러 문을 되살린 것을 잊으셨습니까? 화약만 충분하다면 놈과 일전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주군께서 조선 왕을 사로잡는 데 쓸 화약을 자네가 쓸 이유가 있던가? 자고로 해전이면 화포를 맞아가며 적의 함선에 등선하여 모조리 도륙하면 끝나는 것을. 조선 수군이 강해보았자 남만인(스페인 무역선)보다 강하겠는가?”
구키도 남만 무역선을 몇 번이고 털어 보았지만 조선 수군은 차원이 달랐다. 이미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남만 무역선 여러 척보다 강한 군선을 상대로 조선 수군이 승리한 전투가 있다 하였다.
하지만 옛 전통에만 집착하는 다케다 가문의 중신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입장에서는 패배자의 변명으로 여겨지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일단 이순신에게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나은 상황이라 참을 뿐이었다.
야마가타가 확인하니 다른 물건은 몰라도 가장 중요한 미곡이 텅텅 비어 있기에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필요 수량보다 훨씬 적은 상황이었다.
그러더니 핏발이 올라온 눈으로 보급을 담당한 구키 요시타카를 노려봤다.
“이번에 전선에 올려보내야 할 미곡만 삼만여 석(현재의 일본 석은 60㎏이니 약 1,800톤)이 넘는데 여유분이 고작 이만사천 석이라고? 구키 자네가 얼마나 먹었나?”
“모든 함선의 선창에 쌀을 분배한 터라 풍랑으로 벌어진 선체로 물이 스며들면서 손실이…….”
군대는 한 끼를 굶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고 하루를 굶으면 강대한 병사도 오합지졸이 되는 법이다. 더군다나 의병들이 보급로를 계속 공격하니 이 보급의 삼 할이 손실되리라.
결국 본대가 가까스로 굶주린 끼니를 때울 수준의 미곡만 전해져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야마가타의 깊은 한숨을 들은 구키 요시타카는 보급 물량을 역산하더니 재차 보고를 올렸다.
“보내는 과정에서 손실될 미곡을 감안하면 별동대는 물론 본대도 아슬아슬한 보급이 이어질 것입니다. 화약이야 조금 남아 있지만 아직 본대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키노시타 녀석이 별동대를 이끌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수를 썼겠지. 나야 맞서 싸우는 방법 외에는 모르니 결국 이순신이 있는 한산도라는 섬을 공략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다케다 카츠요리가 야마가타에게 부여한 임무는 대부분 실행할 수 없는 임무였다.
귀신같이 도주하는 조선 백성들과 세도가들. 심지어 임시 부설된 창고의 곡식을 빼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불태우는 조선 군인들까지.
지금까지 계속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리가 없었다. 처음 상륙할 때 가져온 보급이 동나면 더 이상의 진군이 불가하고 결국 얻은 것도 없이 퇴각하리라.
야마가타는 제장들을 일제히 소집하여 명령을 하달하였다.
“지금부터 조선 수군의 거점인 거제도와 한산도를 공략한다. 오백 척의 선박과 일만에 달하는 육군을 동시에 파견할 것이니 다들 단단히 준비하도록!”
제아무리 이순신이라 하여도 바다에서 압도적인 숫자로 양면 공세를 퍼붓고 육로까지 나아가 세 길을 동시에 공격하면 당해내지 못하리라. 아무리 신묘한 장수라도 머리는 하나인 법이다.
하지만 수군을 담당하는 구키 요시타카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하였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견제 목적으로 조금씩 선박을 보내신다면 물길을 파악할 수 있고 적의 포진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백 척을 동원해 스무 척 정도를 소모하면 물길도 알 수 있고 적이 숨겨둔 수를 알 수 있겠지. 애초에 수군은 희생을 쌓아가며 싸우지 않던가.”
평범한 해적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구키 요시타카의 출신인 토바 수군은 13개의 커다란 유력자와 40여 개에 달하는 소규모 해적들이 서로 끈끈한 혈연관계를 맺어 놀라운 통솔력과 인연을 자랑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야마가타의 입장에서 이는 번거로운 일일 뿐이다.
야마가타는 구키를 바라보며 지시를 하달하였다.
“구키 자네는 휘하 선박 이백 척을 이끌고 거제도 북쪽으로 돌아가 조선 수군이 머문다는 한산도를 공격하게. 모리(森元村: 모리 모토무라) 자네도 이백 척의 선박을 이끌고 남쪽으로 돌아가 한산도를 양면으로 포위하는 것일세.”
“그렇다면 야마가타 어르신께서는 어디를 공격하실 셈입니까?”
“나는 뭍으로 나아가 거제도에 있을 조선 수군을 공략할 것이네. 혹여나 조선 수군이 없다면 거제도를 점거하면 충분하겠지.”
총 선박 400척, 병사 1만에 달하는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먼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한 모리 수군과 달리 구키의 수군은 잘못하다가 사방에서 에워싸여 격멸 당할지도 모르는 사지로 향하게 되었지만 지엄한 명령이니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키 요시타카의 눈에도 핏발이 올라와 있음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전쟁 발발 25일 차인 음력 11월 15일 늦은 밤. 한산도에서 다시 해전이 시작되었다.
* * *
음력 11월 16일이 된 한밤중, 훤한 보름날을 노려 한밤중에 상륙한 야마가타의 육군은 상륙 과정에서 제법 손실을 입었음에도 거침없이 거제도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보름을 노려 상륙하였으니 기습의 효과를 제대로 노릴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적막함이 감돌고 있는 거제도 일대에서는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고라니 몇 마리가 산길을 뛰어다닐 뿐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이 거대한 섬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니. 정녕 조선의 백성들도 그 흔한 척후병도 없단 말인가?”
“사람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닷새 이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데다 이 엄동설한에 음식물을 조리한 흔적도 없군요.”
“그러하면 모두 철수했단 말인가. 일단 거제도를 점령하면 이순신이 다시 함대를 동원할 때에 뭍에서 화포로 견제할 수 있겠지. 화포를 찾아낸다면 말일세.”
칠천여 명에 달하는 일본군은 거제도 동쪽으로 상륙하여 북쪽의 현 거제시 일대를 살펴본 이후 마지막으로 사람이 머물고 있는 서쪽으로 향하였다.
텅텅 비어버린 논밭과 바닥을 뒹구는 낙엽을 본 야마가타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이 천혜의 요새를 버리다니 이순신이라는 장수가 휘하 세력을 온전히 통솔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거대한 섬을 버린 이유를 찾을 수 없는데.”
거제도는 복잡한 해안선과 기암절벽 그리고 수많은 바위가 널린 섬이다. 이런 섬에 터전을 잡고 적을 막아낸다면 수천의 병력으로 수만의 적을 막아내는 것은 당연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한밤중에 상륙해 동이 틀 무렵 거제도 서쪽까지 접근한 야마가타는 부하들을 시켜 텅 빈 마을을 살펴보게 하였지만 보고는 신통치 않았다.
“야마가타 님! 조선의 관아를 수색하였는데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이상한 물건을 찾았습니다! 사찰의 대웅전에 불상은 온데간데없고 웬 해골 하나만 놓여 있는데 해골의 입안에 종이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아마 이 장소를 철수한 조선군이 분노와 역정을 담은 저주의 서신이리라.
하지만 그 분노를 제대로 읽고 싶은 야마가타는 홀연히 대웅전으로 향하였다.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니 기습은 아예 불가능한 실정이다.
“조선은 바닥에 돌을 깔고 불을 때는 방식으로 몸을 덥힌다 하였지. 대웅전 바닥도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졌군.”
일본의 연한 장마루는 아래에 자객이 숨어 위를 지나가는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지만 이런 튼튼한 구들장에서는 칼은커녕 송곳이라도 내밀면 대단한 일이리라.
해골 안에 끼워진 서신을 뽑아낸 야마가타가 서신을 펼쳐보았지만 섬뜩한 글귀만 있었다.
[살살살살살살살(殺殺殺殺殺殺殺)]
“이 미친놈을 보았나. 새하얀 백골이니 사람의 머리통을 뜯어내 살을 온전히 발라낸 것이 분명하거늘, 여기에 이런 험악한 글귀만 적어?”
두개골을 후려친 야마가타는 두개골 아래에 얇은 끈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끈이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음을 확인하고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함정…….”
구들장 아래에 잠들어 있던 일천 근의 폭약은 두개골과 연결된 끈이 풀려나며 떨어진 등잔으로 인해 불을 만났다.
거대한 대웅전이 말 그대로 뒤엎어지며 초석이 하늘로 치솟고 기와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섬 전체를 진동시킬 폭음을 만들어냈다.
한편 한산도 북쪽 바다에서 목에 핏대를 올리며 명령을 전달하는 최호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한때 그의 보좌관이었던 이순신은 상관이 되자마자 자신을 믿는다며 별동대의 지휘를 일임하였다.
그리고 한산도 북쪽 바다에서 열 배에 달하는 적선을 상대하게 되었다.
“놈들이 계속 몰려듭니다! 이대로 가다간 견내량까지 밀리게 생겼습니다!”
적의 침입을 확인한 최호의 분견대는 거제도 북쪽의 황덕도에 머물다 열 배가 넘는 이백 척의 적선을 마주하고 바로 남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산도의 서쪽 해협인 견내량으로 다가올수록 물길은 좁고 험해졌고, 이백 척에 달하는 세키부네와 스무 척에 불과한 판옥선이 서로 뒤엉킨다면 함선의 덩어리가 되어 모조리 자멸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렇기에 구키 요시타카가 이끄는 일본 함대는 가조도 인근을 오가며 틈을 노렸다.
물길이 변하거나 바람이 변하여 조선 함대를 우회하거나 포위 격멸할 틈을, 그리고 조선 함대는 이들을 상대로 무의미한 사격을 이어갔다.
“계속 화포를 쏘아라! 명중하지 않아도 좋으니 놈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라!”
“애초에 사거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장이 제법 능숙한 녀석이라 화포의 사거리에서 오십 보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 우리는 분견대를 만나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중이다!”
지금도 조선 함대의 일제사격이 쏟아졌지만 팔백여 보를 날아간 포탄이 물기둥을 만들 뿐 일본 함대에는 적중하지 않았다. 간혹 위치를 지키지 못하거나 운 좋게 바람을 탄 포탄만이 한두 발 적중할 뿐이었다.
이순신처럼 신묘한 조함술도 포술도 없었지만 전략적 식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계에 도달할 정도로 쥐어짜 낸 그의 전략은 처절하기까지 한 대응책이었다.
“지금 무얼 하느냐! 사거리 밖이어도 상관없다! 한도까지 화포를 쏘아 놈들이 우리가 처절한 저항을 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들어라!”
부관인 이억기는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자신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대체 무슨 경험을 하였는지 몰라도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 넘치는 태도를 보자니 이순신이 어떻게 이들을 조련하였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투쿵!
거대한 폭음이 머나먼 남동쪽, 본래 거제의 관아가 있을 자리에서 들려왔다. 최호가 천리경으로 하늘을 보니 남동쪽에서 희뿌연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한 일본 함대의 모습을 확인한 최호는 지휘봉을 휘두르며 외쳤다.
“결사적으로 퇴각하는 척하여라! 거짓 퇴각이니 서로가 부딪히지 않게 최소한의 간격만 유지한 채 견내량을 빠져나간다!”
최소 일천 근이 넘는 화약이 터진 폭음과 조선 함대의 무질서한 퇴각을 확인한 일본 함대가 뒤를 따라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견내량의 북쪽에서 멈추어 움직이지 않았다.
최호는 자신의 유인 작전이 먹히지 않아 분통을 터트리려다 오히려 안심하였다.
“왜장이 숨겨둔 수를 예측하였건 아니면 몸을 사리려 하건 잘된 일이다. 놈들의 함대 중 절반을 견내량에 묶어 두었으니 나머지는 통제사께서 처리하시겠지.”
견내량 양측에 숨겨둔 망루와 포대의 신기전을 쓸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예 싸우지 않고 적을 몰아내는 것보다 좋은 전략은 없다.
더 이상 기만전술을 벌여도 소용이 없으니 서로 좁은 해협을 둔 채 대치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 사이로 세키부네 한 척이 유유히 움직였다.
“조선의 장수가 싸우는 방법을 보건대 이순신이라는 장수는 아닐 것인즉! 그러하면 이미 이번 전투는 우리가 패배하였소! 부디 서신을 받아주시구려!”
“지금 저 왜인이 뭐라 하는가? 왜장이 아예 정신이 나갔단 말인가?”
최호는 다른 세키부네보다 제법 튼튼한, 아마 평범한 항구에서 만들지 않고 경험이 많은 조선공들이 만들었을 세키부네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왜인을 확인하였다.
손짓을 하여 나룻배를 내어주었고, 잠시 뒤 전령이 분명한 이가 최호의 대장함에 올라 고개를 숙였다.
“나는 구키 가문에 속한 구키 스미타카(九鬼澄隆: 구키 요시타카의 조카, 본래 역사에서는 2년 전 병사함)요, 숙부께서 이번 전쟁의 장수로 참전하여 부관으로 참전하게 되었소.”
“왜장의 조카란 말인가? 대체 왜장으로서 무슨 생각인지 영문을 알 길이 없군.”
서슬 퍼런 칼날이 주변을 에워쌌음에도 구키 스미타카는 고개를 숙이며 서신을 내밀었다.
태연히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최호였지만 점차 눈이 커지고 숨이 가빠지며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항복하겠소. 숙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약간의 푼돈만 받고 토마리우라(泊浦) 수군을 계속 사지로 몰고 가는 꼴을 감내할 수 없다 하였소.”
“지금 제정신인가? 조선에 용병으로 고용되어 왜를 침공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애초에 우리는 용병이자 해적이오. 조선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재침할 것을 확신하신 숙부께선 조선의 앞잡이가 되어 세토 내해를 주름잡는 영예를 누리는 것을 택하였소이다. 충심을 보내봤자 뭐가 남는 게 있소? 결국 남는 것은 돈이오.”
엄지와 검지를 맞대 동그랗게 표시한 구키 스미타카의 몰골을 본 최호는 적이 대놓고 항복하며 돈을 달라 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생각하기를 포기하였다.
그러자 부관인 이억기가 나서서 그를 윽박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하면 왜장이 직접 나설 것이지 부관만 내놓다니 염치가 없군. 포로로 삼을 것이니 대장선만 견내량 건너로 들여보내도록.”
“숙부께서 조금 못마땅해하시겠지만 내 설득을 위해 노력해 보겠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최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적의 기만을 주의하라 하였지만 다음번에 나룻배를 타고 건너온 자는 휘황찬란한 갑주는 물론이요, 일곱 개의 점이 찍힌 문장을 흩날리는 장수였다.
최호가 선실 안에 둔 왜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증언을 하였다.
“저자가 정말 왜장이 맞는가? 왜장 구귀가륭(九鬼嘉隆)이 맞느냐 이 말일세.”
“구키 님이 맞습니다. 조선이 저희와 동맹을 맺었습니까? 왜 여기에 계시는지요?”
“혹여나 포로 협상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세상에!”
최호를 향해 태연자약하게 인사를 올린 구키는 남동쪽에서 계속 울리는 폭음을 듣고 수염을 쓰다듬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창날이 그의 목에 바짝 달라붙었지만 그는 아예 미소를 머금고 말하였다.
“내 야마가타 그 난쟁이 놈이 어떤 몰골로 죽는지 꼭 보고 싶구려. 혹여나 가능한 일이라면 전선에 나아가 놈의 최후를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겠소? 녀석들은 모두 동래로 퇴각시킬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이미 거짓 패배를 준비하였는지 서른 척이 넘는 세키부네가 모든 선원이 빠져나가 바다를 표류하다 견내량의 바위에 충돌해 자침하거나 아예 먼바다로 표류하였다.
#작가의 말
구키 요시타카의 인생도 변했습니다. 본래 역사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원을 받아 인생을 폈고 일본 제일의 해적 두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군소영주로 남아서 죽은 덕분에 오다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었고 그냥 다른 해적들과 혼약을 맺어 적당적당히 살다 실력으로 선출된 두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구키에게 충성심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