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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33화 (433/573)

근육조선 433화

2부 21장 11화 사실은 근육성

이번 수성전에 아쉬운 건 딱 두 가지였다.

제자인 타치바나 무네시게와 기마(騎馬)는 젬병이지만 뭍에서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고란 녀석이 후방 교란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것이지.

그 외에는 모두 만족스럽다.

적의 가몬(家紋)을 확인하고 히데요시임을 알아차렸다. 다른 장수가 오면 그냥 퇴각하지 않을까 고민하였는데 녀석이 오다니 나는 행운아인 것 같다.

히데요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진주성 일대에 잔뜩 마련되어 있으니 드디어 선물을 개봉할 차례이다.

수성전의 기본이 무엇인가? 올라오는 적을 막는 거다. 원거리에서 견제하기 위해 활을 쏘고 총을 쏘며 쇄석(碎石)을 넣은 대포를 난사하며 짓뭉갠다 한들 각도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오는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바보 천치이지.

“다들 공령(플레이트)을 아낌없이 사용하게! 왜적을 모두 척살한 다음 놈들의 병장기를 녹여서 공령을 다시 만들 수 있게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셨네!”

입신체비사는 물론이요, 유생들도 언제나 소역기 정도는 지참한다. 평상시에는 등짐에 넣어 허리를 단련하고 입신체비를 할 때 아낌없이 쓰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왜적을 막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유생들 모두가 수레를 끌고 자신들이 사용하던 입신체비기구를 모조리 가져왔다.

듣자 하니 하포라는 입신체비사가 소역기로 왜적을 잡았다 하던데 일종의 롤 모델이 되었나 보다.

“왜국의 쇠는 쇠가 아니더냐! 대역기봉으로는 쓸 수 없어도 공령으로는 녹여 만들 수 있는 법이지!”

“왜인을 근육하라! 놈들을 근육하여 백성들을 구하라!”

이놈의 나라에는 여전히 석전(石戰)이 유행이고 간혹 머리통이 깨져 죽는 사람이 나온다.

내수린을 즐기니 열기는 좀 덜하지만 지방마다 석전꾼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유생들을 위해 석전꾼을 고용해 신속 강의를 하였고 이들 모두가 투포환 선수, 아니, 공령 던지기 선수가 되었다.

6근(3.6㎏)에 달하는 공령을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원심력을 축적해 던지자 저 멀리에서 비명과 먼지가 치솟았다.

“대여섯 발 중 한 발 정도가 명중하고 있습니다! 한 대 맞은 놈은 대부분 쓰러집니다!”

“당연하지! 무게가 다섯 근(3.2㎏)이 넘는 쇳덩이를 맞고 누가 무사하겠는가!”

이쯤 되면 누가 피해자인지 모르겠지만 일본군이 공령 투척의 사거리에 접근하자마자 대부분의 유생들이 새끼줄에 묶은 공령을 투포환 돌리듯 몸의 힘을 다 써가며 돌리다 내다 던졌다.

히데요시도 화포 대책은 충실히 마련해 왔지만 압도적인 질량은 모든 것을 무너트린다.

진주성의 높이와 원심력으로 충분히 가속된 공령이 쑤셔 박힌 나무판자는 굉음을 내며 박살 났다.

그러나 공령은 폭발하는 비격진천뢰가 아니다. 상당수의 공령이 왜군 사이의 허공을 가로지르며 흙먼지를 피웠고 유생들은 혀를 차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젠장! 하긴 공령이 터지는 물건이던가! 놈들의 팔다리만 터트리는 물건이지!”

“그럼 공령을 많이 던지면 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령은 차고 넘쳐나니 다음 공령을 잡고 몸을 돌렸다.

사지에 맞으면 복합골절이요, 몸통에 맞으면 사망인 쇳덩어리가 계속 쏟아지니 녀석들의 진격도 더뎌지기 시작했다.

적진이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히데요시도 계속 명령을 내려 진격을 가속화했다. 생각 같아서는 화포를 마음대로 쓰고 싶지만 히데요시를 괴롭히려면 화포 사용은 줄여야 한다.

“놈들이 빠르게 달라붙고 있습니다! 해자 위에 사다리를 걸칩니다!”

“해자를 비격진천뢰로 요동치게 만들게!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말고 욕심을 내지 말게!”

포격을 피할 방법은 성벽에 바짝 붙어 사다리를 걸고 기어오르는 거다. 기어 올라오는 적의 수가 많아질수록 성벽 위의 병사들은 손실을 입으며 점차 뒤로 물러난다.

마침내 성벽 위의 적군이 수비병보다 많아지면 성이 함락되겠지.

하지만 지금 이 성에는 전 세계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적들을 가장 잘 죽이는 이들이 즐비하다. 정확히는 질량을 통한 공격을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입신체비사들이 있다.

혹시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할지 모르니까 다시금 명령을 하달하였다.

“가까이 있는 놈은 대역기봉을 엮어 떨구고 올라오는 놈은 몽둥이로 두들겨 패도록!”

“서애대감께서 저렇게 지시하지 않는가! 어서 대역기봉을 준비하라!”

본래 성에는 현석(懸石)이라 하여 돌을 밧줄에 엮어 던졌다 내리며 사다리를 부수는 기구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유생 기준으로 머리통만 한 돌은 가벼운 물건이라 대역기봉으로 대체되었다.

“이걸 뭐라 부르지? 현철? 현봉? 현대역기봉?”

“그런 건 모르겠고 내리면서 기립근을! 올리면서 등근육을 발달시키니 참으로 좋은 일일세!”

“명칭을 현진건(懸鎭健: 매달아 진압하는 튼튼한 것)이라 하면 좋겠군! 어감도 좋아!”

10개를 합치면 무게 240㎏에 간혹 12개나 15개에 달하는 대역기봉을 묶어서 300㎏이 넘는 거대한 쇳덩어리가 내려 찍힌다면 그 운동에너지만으로 대부분의 공성병기를 박살 낼 수 있음은 내가 실험을 해봐서 알고 있다.

당연히 여기에 휩쓸린 왜병들은 사다리에 휩쓸려 몸 대부분이 뭉개지거나 아예 사다리에서 뛰어내려 팔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그런데 근육으로 강화된 수성병기가 한두 개가 아니다.

“거기 옆에 비키시게! 천축퇴 날아가신다!”

“나리께서 천축퇴를 던지신다! 휩쓸리기 싫으면 어서 비켜라!”

나는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입신체비 기구 중에는 천축퇴라 하여 아주 거대하게 만든 철퇴도 있고 천축봉(인디언 밀)이라 하여 다듬이방망이를 수십 배 크기로 키운 녀석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질량이 공령의 몇 배나 되는 녀석이니 아예 수레를 박살 내고 병사 두세 명을 휩쓸고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필사적인 저항 끝에 결국 왜군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왜적이 올라온다! 북서쪽 성문으로 왜적이 올라온다!”

“병사들은 뭘 하나. 당파(鏜鈀)를 들고 어서 적을 밀어내라!”

명령을 하달할 필요도 없었다.

칼을 마구 휘두르며 기어 올라오는 왜병이 마침내 성벽 위로 머리를 드러내기가 무섭게 양반가 부인이 달려들었다.

“뭘 소리를 지르는가! 조용히! 하세요!”

“케흐엑!”

양반가 부인이 절굿공이를 휘두르자 왜병의 칼은 물론이요, 투구까지 단번에 박살 나며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양반가의 여인들이 입신체비를 즐기니 절굿공이도 크고 튼튼해졌고 여기에 아예 징을 박으니 말 그대로 질량병기이다.

다른 부인은 아예 양손에 커다란 다듬이방망이를 끈에 엮어 붕붕 돌리다 왜병에게 내리쳤는데 퍼석 소리가 나며 어깨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상상도 못 한 위력에 어리둥절하니 이일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하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요즘 유행이 다듬이방망이로 몸을 단련하기 위해 속을 파내고 납을 채우는 겁니다. 납이 들어간 다듬이방망이는 소역기에 가까운 무게지요!”

그런 유행은 싫어! 내 아내가 하초충이라 다행이지 평범한 양반가 부인이었다면 납을 넣은 다듬이방망이를 쓴다는 말 아니야?

뭐가 어떻게 되었든 왜인들은 말 그대로 근육에 갈려나갔다.

하지만 놈들도 생각이라는 게 있으니 반격이 시작되려 하였다.

“어이쿠! 이놈들 현진건에 갈고리를 걸어 수레랑 엮는다!”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당겨! 우리 넷의 힘이면 저런 수레도 같이 올릴 수 있다니까!”

유생들이 이마에 핏줄이 솟아 나올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일본 병사들이 대역기봉 더미에 갈고리를 계속 걸었는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다 쇠가 깨지는 청아한 소리가 나며 유생들이 뒤로 자빠졌다.

“이 개놈의 새끼들! 쇠사슬이 분질러지다니! 그럼 아주 큰 공령을 엮어서 내던지면 되겠군!”

끊어진 쇠사슬을 공령의 틈바구니에 엮고 빠지지 않게 묶은 유생들은 대역기봉 덩어리 대신 최소 50근(32㎏)에 달하는 공령을 집어 던지며 수성에 나섰다.

근육을 기반으로 한 질량병기가 끝없이 쏟아지자 탄식과 절규가 왜군 진영을 메웠고 이들은 더 이상 공성을 이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썰물이 빠지듯 퇴각하였다.

그리고 바로 왜군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지시를 내렸다.

“대신기전 다섯 발을 일제 방포하라. 세 발이 아니고 일제히 다섯 발을 방포하도록!”

대신기전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공중에서 폭발되었다.

다섯 발은 거짓으로 진격한 후 적이 오면 퇴각하라는 신호이니 히데요시 놈은 함정에 제대로 속아 넘어가리라.

* * *

일본군 진영은 참담하다 못해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고 사기가 곤두박질쳤다. 조선군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공성전을 시도했을 뿐인데 말 그대로 병사들이 쇳덩이에 짓뭉개져 버렸다.

“오니가 산다! 조선에는 오니가 산다고! 저놈들은 다 괴물이야!”

“팔 자르지 마! 내 팔 멀쩡하다고!”

“지금 팔이 짓뭉개져서 한 바퀴가 돌아갔는데 정신 못 차려? 이대로 두면 썩어서 죽는다고!”

지금까지 조선군과의 싸움에서 이런 방식의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압도적인 화약병기 사용으로 전투 자체를 유리하게 이끈 조선이지만 이번 전투에서 화약은 그리 많이 사용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완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 전투를 경험한 일본군은 말 그대로 근육 당하고 자신의 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부상자가 즐비한 막사에 들어온 히데요시는 애써 군의(軍醫)에게 물어보았다.

“자네가 고생이 많군. 지금 상황이 어떠한가?”

“끔찍합니다. 차라리 텟포에 맞아 살이 꿰뚫렸으면 모르지요. 하다못해 날붙이에 찢겼다면 어떻게든 몸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힘으로 으스러지면 치료 방법은 하나입니다.”

톱을 움켜쥔 군의가 병사를 가리켰고 병사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그의 무릎은 뭐에 맞았는지 무릎 연골이 튀어나오고 주변의 뼈가 으스러져 돌출되어 있었다.

“아이고 키노시타 님! 저 그냥 무릎에 이상한 쇳덩이를 맞았는데 다리를 잘라야 하다니요!”

“입 다물게! 어차피 잘라야 하는 다리이니 이 솜이라도 깨물고 버티거나 차라리 혼절하게나!”

절단이 시작되며 살과 뼈가 찢겨나가는 소리와 애처로운 비명이 들려왔지만 저렇게라도 목숨을 건지면 다행이었다.

히데요시는 침을 질질 흘린 채 눈을 굴리는 부상병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물어보았다.

“이 녀석은 왜 이 꼴이야? 머리통에 쇠를 맞고 운 좋게 살아났나?”

“여인이 휘두른 카나보(金棒: 징을 박은 몽둥이)에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여인? 저 성안에 여자가 있다고? 토모에 고젠(헤이안 시대의 여장군)도 아니고?”

“듣자 하니 쇳덩이를 던지는 이는 근육 덩어리 남자요, 무기를 휘두르는 이는 여자라 합니다. 카나보는 물론이고 쇳덩어리로 만든 몽둥이를 마구 휘두른다 합니다.”

히데요시의 뛰어난 머리는 자기 멋대로 사실을 조합하여 상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의미도 없이 북서쪽 산골짜기에 배치된 기병 위주의, 아니, 말이 많은 부대. 지금까지의 조선군과 다르게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진주성의 조선군도 변수에 포함하였다.

더군다나 기이할 정도로 병장기를 사용하지 않는 거구를 자랑하는 괴력의 사내들. 그리고 이들의 아내인 것 같은 여인까지.

하지만 정보의 한 조각이 부족한 히데요시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보고가 들어왔다.

“북서쪽의 조선군이 움직입니다! 움직임이 둔하고 크게 우회하며 성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 조선군이 우리의 후방을 노렸다면 타격이 제…… 당장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이 성에 닿지 못하게 막으라고!”

“네? 움직임을 보니 보급을 보내려는 것 같습니다. 굳이 막으실 필요가 있습니까?”

“닥치고 막아! 내가 생각이 다 있으니 막으라고!”

아니나 다를까, 히데요시의 발작적인 대응에 직면한 조선군은 다시 쏜살같이 산골짜기로 후퇴하였다. 바로 군의를 소집한 히데요시는 자신이 유추한 현재 상황을 늘어놓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보급 부대와 성안의 조선군이 결합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전라도에서 올라온 최정예 부대가 합류하기 직전 가까스로 훼방을 놓은 꼴이다.”

“네? 키노시타 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선군이 그토록 강한데 큰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보인이 달라붙었다면…….”

“성에 있는 거구의 사내들은 죄다 조선의 장수이거나 최정예 병사들이다. 다만 유성룡이 사람을 먼저 소집하고 보급을 뒤늦게 보낸 실책을 저질러서 성안에 잠자코 있을 뿐이지.”

모든 일본 장수들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히데요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으며 현재 상황을 자기 멋대로 판단하였다. 그의 기준으로 모든 정황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에서는 입신체비만 익혀 힘만 강한 유생보다 훈영제식법으로 힘과 민첩성 그리고 전신의 근력을 기른 무관들이 강함을 알고 있었다.

물론 힘 하나는 유생이 강하지만 힘만 강하다고 싸움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힘이 세면 모든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기에 마련이다.

결국 히데요시의 시선에서 진주성의 유생들은 천하장사이자 세상을 진동시킬 무장의 집단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왕은 몰라도 유성룡은 전쟁만 생각하는 놈이다. 그러니 지방에 있는 유력자에게 연통을 넣어 진주에 머물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신체를 단련하는 도구를 챙기느라 부피가 큰 병장기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지.”

일본 기준으로 참으로 논리적인 해석이었다. 장정을 먼저 보내놓고 무기를 나중에 공급해 적진 한복판에서 부대를 만드는 방법은 간혹 있는 전술이었으니까.

히데요시는 손가락을 북서쪽으로 향하며 단언하였다.

“그러니 전쟁이 벌어지고 뒤늦게 놈들의 시종과 병사들이 말과 병장기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결국 놈들이 합류하면 최소 일만 명 이상의 최정예 기병대가 될 거다. 그렇지 않아도 북서쪽 지원군에는 기마 비율이 아주 높지 않나?”

사실 입신체비기구를 가져오기 위한 우마(牛馬)와 머슴까지 데려오기 위해 지나치게 양이 불어난 짐말이지만 아무튼 말이었다.

그러자 도도 다카도라가 항의하였다.

“그런 놈이 세상에 존재하겠습니까? 세상에 어떤 미치광이가 하루 종일 전쟁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방에 있는 유력자를 모조리 소집해 성 하나에 박아 넣는단 말입니까?”

“유성룡은 밥 먹을 때 반찬 대신 전쟁 계획서 보면서 입맛 돋우는 놈이란 말이다! 그놈의 머리통을 까 보면 뇌수 대신 전쟁이라는 두 글자가 가득 차 있겠지! 억눌러져 있으니 방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로 튀어나올 거다!”

멱살을 잡힌 도도 다카도라가 쿨럭거렸지만 히데요시는 목의 핏대를 세운 채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미 유성룡에게 당할 만큼 당한 입장이라 지금의 수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가 포위를 푼다면 북서쪽에 있는 보인들이 모조리 달라붙어 군마를 지급하고 병기를 나누어 주며 놈들을 전장에서 날뛰게 하는 격이다! 저 거력을 가진 괴물들이 전장에서 날뛴다 생각해 봐라!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단 하루의 공성전은 일본 장수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평범한 창과 칼이 없고 몸을 단련하기 위한 쇳덩어리만 던져도 사람 수십 명은 죽이는 괴물이 아니겠는가.

결국 한 장수가 손을 들며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공성전을 벌인다면 아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꼴이 아닙니까.”

“말 한번 잘했군. 아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별동대가 해야지 누가 하겠나! 여기서 놈들을 풀어주면 산성에 있는 병사와 분견대로 분할한 기병까지 모조리 풀려나는 격인데! 그걸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나!”

진주로 진군하며 확인한 조선군은 그리 많은 수가 아니었다. 진주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는 산성 수비병 2,000명과 북인 기병 5,000명이 전부이리라.

하지만 진주성에 있는 병사와 보급대가 합류하면 일본 기준으로 최정예 3만 대군으로 변한다. 당연히 저 많은 기병을 감당할 재주는 히데요시에게 없었다. 잘해야 공멸이겠지만 퇴로가 막히리라.

히데요시는 이를 악물고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최대한 치열하게 공성전을 실시하며 보급대가 접근할 방법도. 놈들이 성을 버리고 퇴각하여 보급을 받아 기병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피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대충 싸운다면 놈들도 알아차리고 성을 버릴 것이요. 제대로 싸운다면 피해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맞서 싸우면서 버틸 거냐! 싸우지 않고 확실히 죽을 거냐! 난 버티는 것을 택하겠다!”

히데요시는 이제부터 승산 없는 공성전을 시도하게 되었다.

본대가 승리를 거둔다면 모를까 패퇴한다면 자신의 목숨도 건지기 힘들 테지만 목숨은 최대한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작가의 말

지난번의 히데요시는 미리 준비한 함정에 속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히데요시는 심리전에서 속아 넘어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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