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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31화 (431/573)

근육조선 431화

2부 21장 9화 세 갈래 길

삼랑진은 밀양 남쪽에 있는 장소로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지역이자 육로로 우회한 일본군이 김해에서 다시 낙동강 수계로 향하는 길목이다.

수운의 중요성을 절실히 알고 있는 양측 군대는 다시 삼랑진에서 일대 격전을 벌였다.

“계속 도하하라! 별동대는 신속히 옆의 벌판으로 우회하여 놈들의 옆구리를 노려라!”

“놈들이 하남벌로 우회한다! 기병들은 무얼 하나! 어서 진격하는 놈들을 유린하라! 계속 쏘아붙여서 놈들이 우회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다시 전선에 선 카츠요리와 삼랑진 일대의 방어선을 담당한 김명원은 서로 목에 핏대를 올리며 명령을 내렸다. 김명원에게는 권율 같은 무재는 없었으나 어디 가서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니었다.

삼랑진의 후방에 있는 밀양은 전략적 가치가 적었으나 일본군 진격 경로의 옆에 있는 삼랑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일본군 입장에서는 더욱 큰 손해이다.

삼랑진의 조선군이 낙동강 수계를 견제한다면 육로로 함안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일대의 산세가 험악함은 미리 파견한 이가류 닌자들로 알아둔 상태였다. 또한 밀양에 있는 조선군이 언제라도 정규군을 투입해 후방을 찌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군도 일본군도 좌우로 군을 나눈 채 양면에서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다.

삼랑진 방면에서 적을 유린하던 신립은 저 멀리 강 너머를 보더니만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분통을 터트렸다.

“개놈의 새끼들! 나무를 베어서 뗏목을 만들 것이지 백성들의 집을 헐어 뗏목을 만들었어!”

“긁어낸 나무기둥을 엮었으니 참말이군요! 그나저나 천리경으로 보아서 가까스로 확인한 건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이걸 단번에 보셨습니까?”

“활을 이백 보까지 날리려면 이백 보 밖의 적의 얼굴 정도는 보아야 하지 않겠나. 나야 그 정도의 안력(眼力)이 한계이고 정지운 어르신이 젊을 적에는 오백 보 밖의 적의 표정을 알아보셨다더군.”

차가운 물동이에 손을 넣어 식히던 신립은 다시 각궁을 잡고 활을 당겼다. 이 지역의 강폭은 기껏해야 100m에 불과하니 신립 정도의 활 솜씨를 가진 이라면 강을 넘어 활을 쏠 수 있었다.

신립의 손을 떠난 화살이 강 너머에 있는 든든한 갑주를 차려입은 왜장의 몸에 날아갔고 왜장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다시 활을 잰 신립은 쏠 상대를 찾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망할 놈들! 구주(큐슈)에서 싸울 적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휘황찬란한 갑주와 거대한 투구로 자신이 장수라 말하였는데 이제는 죄다 같은 투구만 쓰고 있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의 운총도 아무나 노려서 쏘니 답답할 지경입니다!”

“아무나 노려서 쏘아 적중할 수 있다면 운총도 쓸 만한 병기이지. 장전이 느려서 답답하지만 병기에 어찌 장점만 있겠나.”

보총은 둥근 납환을 사용하니 장대로 내부를 청소하고 탄약포를 찢어 화약을 붓고 탄환과 종이를 넣어 바닥을 두드리면 장전이 끝나지만 운총은 아니었다.

병사가 낑낑거리며 내부를 청소하고 탄약포를 찢어 화약을 부어 넣은 뒤 마니에탄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하지만 강선 덕분에 잘 들어가지 않자 꽂을대로 천천히 마니에탄을 밀어 넣은 뒤 다시 조준하였다.

“보총을 주로 사용할 것을 판단을 잘못하였군. 운총수의 비율을 조금 줄일 걸 그랬어.”

신립이 혀를 차는 소리를 냈지만 병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을 조준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이 일련의 동작 중에 신립의 화살이 네 발은 날아갔으니 적의 피해는 점점 누적되었다.

하지만 일본군도 저항을 이어갔다.

핑 소리를 내며 신립의 옆에 서 있던 병사의 투구에 조총 탄환이 적중하였지만 병사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을 뿐이었다.

신립은 흡족한 표정으로 뗏목을 움직이던 왜병을 죽인 뒤 병사를 다독였다.

“한 발의 보총을 쏘면 맞지는 않지만 오십여 보 안에서 밀집해 쏜다면 참으로 무섭지. 하지만 내 활은 일백오십 보를 넘어 쏠 수 있으니 네놈들은 여기를 못 지나간다!”

본래 하남벌로 나아가 기병을 이끌며 적을 돈좌시키려던 신립이었지만 오위에 소속된 장수인 신립의 기준에는 경상도의 기병들은 영 미덥지 못한 이들이었다.

결국 신립은 삼랑진에 머물며 적을 궁시와 사격으로 요격하기로 하였고 주장(主將)인 김명원 또한 이를 적극 수용하였다.

전략 수립 당시의 일을 떠올린 신립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주은(김명원의 호) 대감께서는 등길랑 그 왜놈의 함정에 빠진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서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그분의 막중한 책무를 생각하면 내 욕심만 챙길 수 있겠는가.”

지금쯤 신나게 적을 유린하고 있을 하남벌을 바라본 신립은 다시 활을 당겼다. 밀양강 너머의 하남벌을 담당한 장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정발이었다.

절반의 부대는 산성에 들어가 백성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다른 전선에 합류해 일본군을 저지하는 데 힘썼다.

정발은 거대한 미늘창을 휘두르며 정신없이 사방을 오갔다. 지방군에 소속된 기병들은 오위 기병과 견줄 수 없었지만 일본군에게는 사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놈들이 또 진영을 갖춘다! 서둘러 돌격하라!”

하남벌의 드넓은 벌판과 범람지에는 교두보를 만들려는 일본군과 이를 필사적으로 격파하는 기병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수십에 달하는 적을 직접 벤 정발이지만 수적 우위는 일본군에게 있었다.

결국 삼 일간 이어진 싸움은 결국 조선군의 퇴각으로 막을 내렸다. 애초에 오만 명 이상이 몰려올 수 있는 일본군은 서로 교대하며 피해를 분산하고 피로를 줄였지만 조선군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병사들 모두가 피로에 절어 있지만 희망찬 발걸음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밀양으로 향하는 길목을 굳건히 지킨다면 언젠가는 반격의 길이 열리리라.

김명원은 대열의 최후미에 서서 신립과 함께 적의 추격대를 경계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의 힘으로는 삼 일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네. 만약 하남벌이 함락되고도 더 버텼다면 밀양으로 향하는 길목이 가로막혀 몰살당했을 것이야.”

“알고 있지만 하루를 더 버티지 못하여 아쉬울 뿐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산세가…….”

밀양으로 향하던 신립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하루 전까지 치열하게 싸우던 삼랑진 일대를 돌아보았다.

전략적 식견이 없던 과거와 달리 약간의 식견이 생긴 그는 혀를 내두르며 말하였다.

“만에 하나 놈들이 삼랑진과 하남벌에 축성을 하여 돈대와 목책을 세운다면 사면을 에워싸고 며칠을 몰아쳐야 할 지형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아쉬운 일입니다.”

“큰 염려는 하지 말게. 주상전하께서 놈들을 격퇴하면 쉴 새 없이 도주할 것이요. 우리는 밀양에 남아 있다가 놈들의 숨통을 끊으면 될 것이네.”

“하긴 일본 놈들이 남생이와 견주어도 뒤처질 정도로 느려지지 않았습니까. 녀석들이 아국에 침범하고 보름이 넘었습니다만 기껏해야 이백 리(80㎞)를 진군한 것이 전부입니다.”

“옳은 말이네. 주상전하께서 놈들을 몰아치실 대구까지 앞으로 이백 리가 더 남았는데 지금의 진군 속도라면 한 달 내내 진군하거나 더 늦어질 수도 있지.”

아직 조선군에는 숨겨둔 수가 많았다. 후방을 유린하는 북인 기병이나 아직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이 아니라 산성을 지키고 있는 의병과 승병들이 있었다.

* * *

전쟁이 시작되고 19일이 지난 음력 11월 9일, 일본 원정군의 마지막 함대가 동래에 상륙을 완료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후군(後軍)의 장수는 키노시타 토키치로. 본래 역사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본래 전쟁을 시작할 때에 이천 척이 조금 넘는 함선을 징발하였는데 이백여 척이 벌써 파손되다니. 그나저나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동래에서 제법 고생을 하고 연일 진군했다 하더군요.”

“설마 조선 수군을 아직도 끊어내지 못했단 말인가? 놈들의 대다수는 지금쯤 시코쿠를 유린하고 북상하고 있을 것인데?”

“남아 있는 장수가 이순신이라는 자입니다. 듣자 하니 야마가타 장군께서 별동대를 조직해 거제도라는 섬을 함락시키고 이순신을 사로잡을 계획을 세우셨다 하였습니다.”

히데요시는 급격히 창백해진 얼굴로 서쪽의 거제도를 바라보았다. 이순신이면 사람 같지도 않은 장수이며 수군의 명수인 구키도 절대 싸움을 피하는 이였다.

하지만 절대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왔다.

“키노시타 아닌가? 내 패장이고 할복을 명령받았지만 주군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네. 자네도 이순신이라는 자에게 지독히 시달렸다 하던데 그 원한을 갚지 않겠나?”

눈에 핏발이 선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히데요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권고하였지만 히데요시는 본능적으로 이 길이 확실한 죽음을 보장하는 길임을 알아차렸다.

잠시 침묵하던 히데요시가 분통을 터트리며 말하였다.

“저는 이순신도 죽이고 싶지만 유성룡을 더욱 죽이고 싶습니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만 알아낸다면 당장 후군 모두를 별동대로 삼아서라도 놈을 죽여 버릴 것입니다!”

이순신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 능하고 유성룡은 수비에 능하다. 후군에 남아 이순신을 상대한다면 퇴각하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요, 별동대를 이끌며 유성룡을 상대한다면 예전처럼 허를 찔러 퇴각할 수 있으리라.

“자네도 원한이 깊으니 잘되었군. 이 노구를 누일 장소가 나의 집이 될지 할복을 명받은 이후의 마당이 될지 이 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반드시 이순신을 죽이겠네. 자네 또한 유성룡을 죽이게.”

“어르신께서 이순신을 죽여 간을 씹으며 원한을 갚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야마카타 마사카게의 신장은 135㎝이다) 자에게 고개를 숙인 히데요시는 최대한 신속히 북쪽의 전선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전선으로 향할수록 후방으로 이송되는 부상병들이 즐비하였다.

이미 보급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는지 병사들이 미리 챙겨온 토란이나 병량환을 먹는 모습조차 보였다.

하지만 군의(軍議)가 열리는 막사로 들어가자 더욱 끔찍한 소식만 들려왔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전쟁이 일어나고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이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당했다니요? 보인을 포함하면 두 배인 사만 명이 죽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까?”

“실은 그것보다 더 늘어날 것 같군. 지금 삼랑진이라는 장소를 뚫은 참인데 이미 상당한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네.”

예상보다 거센 저항이다. 이쯤 되면 조선군이 자신들의 침략을 유도하였다 생각했지만 히데요시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불순한 생각을 날려버렸다.

이가류 닌자들의 자료를 살펴보니 조선은 이번 전쟁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인명이 아닌 자금 피해이다.

백성들을 피난시키는 자금도 문제요, 전쟁으로 파손된 가옥과 시설을 복구하는 자금도 문제이다. 어느 누군가가 조선에 은자 오백만 냥이라도 내놓지 않는다면 이런 미친 짓을 벌일 이유는 없으리라.

다케다 카츠요리는 히데요시를 보더니 제안을 하였다.

“지금 김해 일대의 산성에 고립된 조선 놈들을 격멸하려는 별동대를 편성하려던 참이었는데 자네가 여기에 합류하게나. 비록 많은 전훈을 세울 수는 없어도 일만 정도의 병사라면…….”

“감히 말씀드리겠지만 그것이 조선의 수에 넘어가는 길입니다. 지금 저희는 엄연한 공격자이며 조선은 지금 함대를 파견한 채 허를 찔려 수세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미 패장의 신세가 된 구로다는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침묵하였기에 카츠요리는 히데요시의 말을 듣자 등을 꼿꼿이 펴며 경청하였다.

히데요시는 카츠요리와 눈을 마주치며 당당하게 말하였다.

“애초에 원정을 벌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각 다이묘들이야 자신들의 항구를 지킬 방법이 없어 조선에 피해를 입히고자 원정에 참가하였지요. 하지만 주군께서 품으신 뜻은 권위와 치적을 쌓기 위해 조선에 큰 타격을 입혀서 강화를 마치는 겁니다.”

“가급적이면 조선 왕을 사로잡아야 하겠지.”

그 빌어먹을 조선 왕을 사로잡는다는 개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뱃속으로 눌러 삼킨 히데요시는 표정을 철저히 관리하며 김해 일대의 산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그러하면 지방의 산성을 부수고 백성을 사로잡는 게 조선에 큰 타격을 입히는 길입니까? 보급이 약간 부족하여도 한시라도 빨리 한양으로 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별동대를 편성하는 건 옳은 방법입니다.”

“그러하면 자네 생각으로는 별동대를 어디에 파견해야 좋겠나?”

“저라면 진주로 나아갈 것입니다. 전라도에서 소집될 원군은 반드시 진주를 거쳐 육로로 당도할 것이니 진주를 틀어막지 않으면 후방을 유린당할 겁니다.”

이가류 닌자의 보고서에 의하면 진주 일대를 순찰하고 온 결과 주변의 산성은 어느 정도 축조하였지만 고을 안의 성은 예전 기록에도 남아 있는 진주성 단 하나라 하였다.

더군다나 피난을 마치지 못해 사로잡힌 조선 백성들의 -기껏해야 수백 명 내외지만- 정보를 취합하니 진주에 남아 있는 장수는 서애 대감, 유성룡이라 하였으니까.

히데요시는 자신이 살길과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전에는 이 년 넘게 준비한 유성룡을 상대로 참패하였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성 하나와 주변 산성을 둔 유성룡을 상대하는 격이 아닙니까. 저를 진주로 보내신다면 유성룡을 죽이고 조선의 원군을 진주로 돌아가게 만들 것입니다.”

고개를 숙인 히데요시의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카츠요리는 이 모습을 보더니 적잖이 감동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진주는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향하는 길목이니 조선군이 최소 삼만 이상은 밀려올 것이네. 자신이 있다면 후군 사만(정군 2만, 보인 2만)을 이끌고 진주로 나아가게.”

이제 일본군은 함안을 시작으로 진격하는 본대 7만, 진주로 향하는 별동대 4만, 그리고 거제도로 향하는 수군을 포함한 별동대 3만으로 분열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예상은 진군 직후부터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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