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29화
2부 21장 7화 당신의 보급
본래 수운(水運)의 효율은 육로의 열 배 이상에 달한다. 심지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황이라 따져도 다섯 배 이상에 달하니 낙동강 하구인 동래를 장악한 왜군의 움직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미 김해 일대의 백성들도 피난을 완료한 상태이기에 이들은 낙동강 하구를 따라 단숨에 진격하였으며 양산의 바로 앞인 각성산 인근에 진영을 차렸다.
“강이 넓으니 고바야부네는(小早船) 물론이고 세키부네까지도 다다를 수 있겠군. 확실히 도하를 성공시키게 세키부네 서른 척을 강 상류로 보내라.”
“그렇다면 세키부네를 앞세워서 돌격하시겠습니까?”
“아니다. 놈들이 동래에서 우리를 맞서 싸운 전략을 잊지 말라. 놈들은 거대한 수레를 동원해 진형을 만들었으니 원하는 장소까지 후퇴한 뒤 우리를 유인하고 화포를 쏘아대겠지.”
현대 토목 기술로 철저히 정비한 낙동강과 달리 이 시대의 낙동강은 범람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이 범람지는 겨울이 되어 진창으로 변했다.
카츠요리는 벌판을 바라보며 다음 전략을 수립하라 하였고 부장인 구로다 간베에는 한참을 바라보다 말하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놈들의 거대한 수레는 저 진창에서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강을 도하해 진영을 갖추면 화포를 쏘아대겠지요. 제가 보기엔 사방을 에워싸고 도하하여야 합니다.”
“피해가 막심하지 않겠나?”
“별문제는 없습니다. 어차피 뭉쳐 있다 포탄에 맞아 죽느니 나뉘어 있다 포탄에 맞아 죽는 것이 피해가 적은 법이지요. 더군다나 아무리 보급이 풍부해도 전선에 가져올 수 있는 화약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구로다 간베에는 드넓은 범람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조선군은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자신들을 맞이하였다. 기껏해야 별동대로 기병을 동원해 후방을 유린했을 뿐이지 언제나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 자신들을 맞이하였다.
“일단 이 범람지의 폭은 일 리(일본 기준 4㎞)에 달합니다. 적이 기껏해야 일만여 명만 나와 있으니 범람지를 틀어막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옳은 말이네. 각 병사를 한 자 간격(30㎝)으로 배치하여 얇은 선을 만든다면 적장이 바보 멍청이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방으로 소선(小船)을 보내 닥치는 대로 상륙하게 만들면 놈들은 화포를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요, 가장 취약한 도하 시점을 노려 병사를 사방으로 분열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진창을 오가는 병사들이 피로가 누적될 것이고 사방으로 상륙하니 화포도 큰 효과가 없겠군. 결국 공방전이 아닌 소모전(消耗戰)이 될 것이 분명해.”
얇은 대형을 만든다면 집중된 병사들에게 가로막힐 것이요, 그렇다고 덮어놓고 내륙으로 나서서 수비한다면 범람지의 연약한 지면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전차를 사용하지 못하리라.
구로다는 카츠요리를 바라보며 자신하였다.
“교두보를 여럿 만들고 부교(浮橋)를 만드는 척 놈들의 화포를 받아내는 겁니다. 부교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니 화포를 닥치는 대로 쏘아댈 것이고 세키부네 서른 척이 쐐기를 박는 겁니다. 지친 조선 병사들이 가까스로 퇴각이라도 하면 다행이겠지요.”
이미 강 하구에는 김해와 부산 일대에서 거둬들인 나룻배와 뗏목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나룻배를 동원해 상륙하고 동시에 부교를 만드는 척 기만한다.
부교가 부서지건 말건 마무리는 서른 척의 배에서 도하한 병사들이 담당하니 적은 이를 쉽사리 막을 수 없으리라.
카츠요리는 입술을 문 채로 강 너머의 양산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만약 양산이라는 장소를 제압하지 못하면 낙동강을 이용할 수 없겠지. 지금이야 놈들이 침묵하고 있지만 미곡을 운반한다면 놈들은 어떻게든 이를 방해할 걸세. 그렇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다들 알지 않겠는가.”
조선의 상세한 지도는 입수할 수 없었어도 간단한 지도는 입수하여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 지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왜장들이었다.
양산으로 진격해 보았자 경주라는 도시만 얻어낼 수 있을 뿐 내륙으로 진격할 경로를 확보하지 못한다.
결국 이번 전투의 목적은 전군을 동원한 진격이 아닌 적을 몰아내고 교두보를 장악하는 목적이었고 투입하는 병사도 정병(正兵) 기준 일만오천 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니 양산을 수비하는 장수는 지난 일 년 동안 철저히 준비한 권율이었다.
권율은 적의 진영을 낱낱이 살피며 규모를 예측하고 적의 전략 또한 계산하였다.
“내가 놈들의 수를 다섯 가지로 예상해 보았는데 적중하였군. 왜장도 보통내기는 아니지만 천하의 명장은 아니야. 나라면 아예 포기하거나 본대를 동원해 사방으로 공격했겠지.”
망원경으로 상대의 도하 규모를 가늠한 권율은 실망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놀란 표정도 아니었다. 상대는 어디까지나 보급 경로에 있는 적을 걷어낼 정도의 병력을 파견했다.
기껏해야 이만 정도의 병력을 동원해 보고 정 뚫어낼 수 없다면 낙동강 수운을 포기하고 김해를 거쳐 육로로 운송하리라.
평상시의 밀집 대형과 다르게 125명 단위로 구성된 병사들에게 권율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놈들이 사방에서 도하할 것이다. 지금부터 내 지시에 맞추어 각 여(旅)가 도하 장소를 수비한다! 한 몸처럼 움직이고 적도가 많다면 두 개의 여가 뭉쳐서 사방에서 도하하는 놈들을 막아내라!”
낮은 증산이라 하여도 양산 일대의 유역을 모두 보고 파악할 수 있는 높이였다.
산 위의 권율이 크게 소리치자 병사들은 함성으로 화답하였다. 이 함성이 적진 너머에서 들렸는지 상대는 화답하듯 배에 올라 거침없이 노를 저었다.
“십삼 번 여는 십삼 번 장소로 나아가 적도를 맞이하라! 십사 번 여가 후방을 사수하라!”
“놈들이 온다! 대형을 철저히 유지해!”
권율을 비롯한 조선군은 큐슈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대상으로 모의전과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이런 도하 저지의 답은 이미 도출되어 있었다.
일만에 달하는 병사 가운데 절반인 5,000명을 125명 단위로 쪼개 40개의 부대로 나누었다.
이 부대들은 양산 일대의 상륙 지점을 40개로 나누어 담당하였으며 각 부대가 무너질 때를 대비해 예비대도 두었다.
가장 먼저 나룻배 다섯 척이 상륙을 시도하자 오를 담당하던 장교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지시를 하달하였다.
“방패수는 앞으로 나서서 적을 막도록! 장검수가 없으니 창수는 단창을 날려 적을 꿰뚫어라! 보총수는 보총에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서 쏘아라!”
조선 초에 정립된 방식, 졸 - 오 - 대 - 여로 구성된 125인의 병사는 5종의 병사로 구성되었다.
여러 척의 나룻배가 합류하여 도하를 시작하자 화살이 날아들기 무섭게 방패수가 앞으로 나섰다.
범람지를 뚫고 달려와 온몸에 차가운 진흙을 덕지덕지 묻힌 방패수였지만 이미 사로잡힌 왜인 포로들과 몇 번이고 싸워보았기에 이를 악물고 방패를 앞세운 채 달려들었다.
“으랴차아아아앗!”
소규모 접전의 왜병들은 창을 내리치지 않는다. 전열에 선 이들이 칼날만 세 척에 달하는 커다란 일본도를 내리쳐 전열을 붕괴시키고 창수는 창을 찔러대며 붕괴한 전열을 들쑤신다.
하지만 크게 칼을 휘두른 왜병은 금속을 테두리에 들러 보강한 원패에 칼이 가로막히고 오히려 방패에 두들겨 맞으며 피를 뿜었다.
서로의 진영에서 창이 짓쳐 나왔지만 거대한 일본 창이 휘적거리는 것과 달리 조선군은 거리낌 없이 단창(短槍)을 투척하였다.
단창으로 왜병의 창수를 요격한 이후 튀어나온 병사들의 무장은 편곤이었다.
남아 있는 장창을 방패수가 도끼로 두들겨 부러트리고 앞으로 나아간 편곤수가 왜군의 두개골을 두들기니 병력은 삽시간에 붕괴하였다.
“역시 편곤이 제일이라니까! 이런 무기를 왜 기병들만 사용하고 있었지?”
“그거야 이런 방식으로 싸우는 게 언신(권율의 자) 영감께서 처음 창안한 거니까 그렇지!”
첫 접전은 당연히 조선의 승리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의 싸움에 몰두한 병사들이 눈길을 돌리자 다른 두 척의 나룻배는 도하를 포기한 채 다른 장소로 도하하는 적에게 합류해 일곱 척의 나룻배가 동시에 상륙을 실시하였다.
“궁수! 보총수! 어서 쏘라고! 놈들이 계속 도하하고 있잖아!”
도하하는 입장에서는 든든한 무장을 갖출 수 없어서 전투에는 불리하지만 공격 경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화살과 보총이 우회하는 나룻배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다음 장소에는 바로 옆의 오가 달려들었다.
산발적인 도하가 이어지자 진흙 위에서 뒹구는 조선군도 피로가 누적되었고 일본군 또한 시체를 쌓아가며 도하를 이어갔다.
하지만 조선군의 기동력도 한계가 있었고 마침내 일본군은 십여 척의 나룻배를 동원해 삼백여 명의 병사를 도하하는 데 성공했다.
“삼 번 화포장은 이십이 번 지역에 포화를 쏟아부어라! 이십이 번과 이십삼 번 오는 후방으로 퇴각하라! 놈들의 교두보를 분쇄하되 부교에는 화포를 쏘지 마라!”
아직까지 예비대가 나올 이유도 없었다. 삼백여 명이 뭉친 일본군이었지만 그렇게 만든 교두보는 권율 특유의 화포 일제사격에 붕괴하였다.
권율의 미소와 달리 구로다는 눈썹을 일그러트린 채 신경질적으로 답하였다.
“벌써 쉰 척의 나룻배를 소모하지 않았는가! 부교는 언제쯤 완성되겠는가!”
“거의 다 되어갑니다. 놈들이 교두보를 내버려 두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니 부교의 완성도 늦어지고 있어서…….”
예상보다 적의 수준이 높지만 아주 높지는 않았다. 천천히 완성되는 부교를 대가로 벌써 이천오백 명의 병사들이 죽거나 중상을 입고 널브러졌다.
하지만 구로다는 여전히 전장을 보며 조선군의 움직임을 확인하였다.
“녀석들이 무리하게 움직여서 피로가 누적되는군. 진창 위를 오가며 병사들을 상대하였으니 조만간 제풀에 지쳐 쓰러질 것이야.”
전략을 조금 수정해서 부교를 완성하고 일제히 공격하여 적을 무너트려도 좋으리라.
점차 둔해지는 조선군의 움직임을 보던 구로다의 눈에 저 멀리 서쪽, 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선단이 보였다.
“부교에 뭔 화공선이야! 저걸 당장 막아! 불을 끄란 말이다!”
한 나룻배가 화공선에 접근하여 물을 끼얹었지만 선창(船倉) 깊숙이 화약을 숨겨두고 양초를 세워 심지를 만들어 둬서 불을 쉽사리 끌 수 없었다. 그리고 화공선이 부교에 충돌하자 나룻배 한 척과 함께 폭발하였다.
하지만 화공선 네 척이 일정 간격으로 밀려 내려왔다.
애써 완성하던 부교가 하나씩 밀려오는 화공선에 파괴되자 구로다는 분통을 터트렸고 권율은 미소를 지었다.
“상륙 저지 용도로 화공선을 못 쓸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로베르토인지 뭔지 하는 친구는 보선을 동원해 화공선을 만들었는데?”
사실 조금 더 늦게 사용할 화공선이지만 적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미리 다섯 척을 흘려보냈다. 이미 서른 척의 화공선을 준비했으니 적의 다음 수를 막아낼 수 있으리라.
일본군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잘못해서 화공선에 휩쓸리면 시체조차 건지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열 척의 배가 내려오자 일본군은 질겁하여 도하를 일시 중단하였다.
하지만 열 척의 배는 화공선이 아니었다.
저 멀리 모래톱에 박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배를 확인한 일본군은 아무것도 없다 하였고 구로다는 목에 핏대를 세운 채 발을 동동 굴러댔다.
“개새끼! 개놈의 새끼! 사람을 엿을 먹여! 똥이나 처먹어라 개새끼야!”
화공선에 도하가 잠시 중단된 사이 화포가 쏟아지고 병사들이 달려들며 기껏 만들어 둔 교두보가 모조리 붕괴되었다.
거의 혼절할 지경의 구로다의 눈에 강 하류에서 올라온 세키부네가 보였다.
“그래! 차라리 세키부네를 엮어 부교를 대신하면 더 효과가 좋겠지! 화공선 한두 척이야 몸으로 때우라…… 그런데 왜 두 척만 왔지?”
서른 척이 아닌 두 척의 세키부네에서 나온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채 양산이 아닌 일본군 본영으로 달려왔다. 이미 부상을 입어 팔을 감싸 쥔 사무라이는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예순 척을 동원하여 개중 서른 척을 낙동강으로 보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수군이 달려들어 쉰여덟 척이 침몰하거나 사로잡히고 저희 두 척만 살아남았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나! 적장이 사람인가 귀신인가!”
“차라리 귀신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움직이기도 전에 서른 척의 조선 배가 달려들더니 사방을 에워싸고 두들겨 팼습니다. 그나마 저희도 간신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아예 게거품을 물고 혼절한 구로다 대신 전장을 지휘한 카츠요리는 병사들을 퇴각시켰다.
양산을 함락시키지 못하였고 오히려 해로와 연계하여 낙동강을 통한 보급선이 가로막힌다는 사실 하나만 증명한 꼴이었다.
도하는 일제히 종료되었다. 아예 전군으로 양산을 몰아친다면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전쟁이 길어지며 계속 고통을 겪으리라.
카츠요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장수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육로로 김해라는 장소까지 나아간 이후 수운으로 보급한다.”
처절한 패배지만 아직 수적 우위가 있으니 충분하다 여겼다.
더군다나 김해를 제압하면 인근 산성도 제압하는 꼴이니 충분한 보인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산성 위의 상황은 카츠요리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 * *
전쟁이 시작되고 12일이 지난 음력 10월 29일.
양력으로 따지면 12월 20일이 되었고 소빙하기의 기후변동은 한밤중에만 영하로 내려갔어야 할 경상도 남부의 기후마저 뒤틀었다. 일본군은 추위에 시달리며 조선 백성들이 지쳐서 산 아래로 내려오길 바랐다.
하지만 산성 위의 상황은 일본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현대의 김해시, 조선 시대에는 김해도호부로 불리는 지역의 백성들이 피난 온 마현산성에는 오천 명이 넘는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쪽의 무척산에는 더욱 많은 일만여 명의 백성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낙들이 가마솥을 걸어놓은 채 밥을 지었고 산성 곳곳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밥상을 본 최 서방은 눈을 찌푸렸다.
“오늘 반찬도 감자야? 피난 생활이 고생이 많긴 하겠지만 이럴 줄은 몰랐는걸.”
“그냥 드세요. 찬거리야 차고 넘치지만 덮어놓고 먹어대다가는 망하는 법이잖아요.”
평상시라면 고기반찬은 드물게 먹었어도 대마도에서 만든 젓갈과 다른 반찬들로 배를 채웠겠지만 피난 생활의 피폐함은 밥상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반상은 없고 대충 나무 그루터기를 밥상으로 삼았지만 산더미 같은 고봉밥에 묵은김치와 찐 감자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최 서방의 앞에 군관이 와서 나물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이 생원(이대형,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 중 하나)께서 사재를 털어서 만들어 두신 며느리 두부(부죽: 腐竹)일세. 물에 불려서 무쳤으니 어서 드시게나.”
“아이고 감사합니다! 세상에 만들기도 힘든 며느리 두부를 이렇게 많이 비축해 두셨다니요!”
구깃구깃한 천 형태인 며느리 두부는 현대에 부죽이라 불리는 음식이었다.
두부를 만들 때 표면에 생기는 막을 계속 걷어내 만드는 유부에 가까운 녀석인지라 만들기 힘들지만 소금에 절여 말리면 오래 보존할 수 있었다.
산성 위로 옮겨진 비상식량은 차고 넘쳤다.
지난 일 년 동안 양반들은 사재의 상당량을 털어 근어(황태)나 말린 두부 혹은 산나물 말린 것을 잔뜩 쌓아두었고 이것들 모두가 전쟁이 벌어지고 식량이 되었다.
오히려 보존식량이니 평상시에 먹기 힘든 진귀한 반찬들이 계속 나오리라.
최 서방이 게 눈 감추듯 밥을 먹고 그릇을 지푸라기로 대충 닦아내자 군관들이 젖은 수건을 하나씩 건네주기 시작하였다.
“혹여나 돌림병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마른 수건으로 재차 닦게. 물이 부족하니 손과 발만 비누로 씻어서 병을 막으면 될 것일세.”
따듯한 물에 적셔 김이 올라오는 뜨끈뜨끈한 면 수건이 건네졌고 최 서방은 배정된 천막 안으로 들어와 몸을 구석구석 닦은 다음 물기를 다른 수건으로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서애 대감이라는 분의 혜안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알 길이 없어. 우물 다섯 개와 연못을 파내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우물도 없었으면 수천 명의 사람이 샘물에 매달려 있었겠지.”
“누가 아니라 하겠어요. 동네 사람 모두가 달려들어서 흙덩어리가 되어 돌아왔는데 이렇게 편안히 살 줄은 몰랐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빨래를 할 수 있다면 좋았겠는데.”
“어이고 소름 끼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니까. 당시에 서애 대감께서 빨래를 하려면 우물 다섯 개를 더 파내야 한다 말했는데 모두 손사래를 치며 만류하였지.”
임진왜란 당시 대다수의 백성들이 사로잡힌 이유는 산성이 자멸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보름 내외의 단기전을 상정하고 설계하였으나 전쟁이 몇 달 단위로 이어지자 모두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아는 유성룡은 산성 내부의 보급을 완비하였으며 가장 필요한 물자인 물만 따져도 두 달, 아끼고 아끼면 석 달 가까이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물이 땅속에만 있지는 않았다.
“어이고 이거 눈 아니야? 눈을 알뜰살뜰하게 모으면 솥단지 하나는 채우고도 남는데 옷을 빨 수 있겠어. 비누는 많이 챙겨왔던가?”
하늘에서 내리는 함박눈은 산성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보배나 다름없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눈을 손으로 받아 혓바닥 위에서 녹여 먹는 최 서방 앞으로 동네 주민이 다가왔다.
“자네 힘 좀 쓴다 하였는데 일이라도 해 볼 생각 있는가?”
“양 서방 아니야? 힘 좀 쓴다니 뭐 성벽이라도 더 높게 쌓을 작정인가?”
“왜놈들이 십 리 밖의 길목까지 진격하였는데 인근 산길로 보급을 옮긴다더군. 싸움이야 곽 체장님과 승병들이 할 것이니 우리는 짐을 옮기고 놈들의 군량을 운반하면 된다네.”
최 서방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이어졌다. 백성들에게도 입신체비에 대한 소문이 퍼졌으며 유곡 입신체비장에는 수많은 내수린꾼과 입신체비사가 거주한다 하였다.
이들이 나선다면 왜인들을 기습하여 물리칠 수 있을 것이요, 잘만 하면 왜국에서 들여온 쌀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리라.
여의치 않으면 군량을 태우고 도망가면 충분한 법이다.
#작가의 말
육로로 대체되었다
작은 왜놈들 의병이라고 들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