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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27화 (427/573)

근육조선 427화

2부 21장 5화 전살이가도이(戰殺易假道易)(2)

신기전은 편리하면서 편리하지 않은 병기였다. 단순히 튼튼한 화포에 화약을 다져 넣고 탄환을 넣어 방포하면 되는 각종 화포와 달리 많은 공임이 소모되는 병기이다.

시대가 변하며 소신기전의 화력은 조선 기준으로 효율성이 전무하였다.

그래서 조선은 차선책을 택하였다. 공임을 따지자면 중신기전이나 소신기전이나 큰 차이는 없으니 중신기전의 크기를 한계까지 키우기로.

결국 조선에서 사용되는 중신기전은 화약의 양이 넉 냥(150g)이나 들어가는 흉기가 되었다.

“이걸 만들면서 군기시 장인들이 밤을 새우고도 남았겠지! 야근 날아간다!”

“왜놈도 날아가고! 아 왜놈들은 환생하나? 놈들은 불교를 믿잖아?”

“혹시 몰라. 그 천주교인지 뭔지를 믿을지도. 그런데 거기는 영원히 지옥에 간다든가?”

매캐한 화약 연기를 뿜으며 날아간 신기전이 재차 일본군의 진형에 쏟아졌다.

여기에 있는 신기전기화차만 스무 대요, 스무 대에서 일제히 발사되는 중신기전은 서른 발이니 총 육백 발의 중신기전이 날아들었다.

소발화(小發火)라 하여 중신기전 앞에 매달린 화약통에 들어 있는 화약의 양만 따져도 육백 발을 합치면 30㎏에 달하니 신형 비격진천뢰의 열 배에 가까웠다.

병사들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거리는 적진을 보며 손을 재차 놀렸다.

“역시 신기전은 중신기전은 쏴야지! 소신기전 그건 못 써먹는다니까!”

“통제사 영감께서는 배 위에 올려놓고 잘만 써먹는다 하던데요?”

“통제사 영감은 사람의 경지가 아니니 잘 쓰는 법이야! 저 멀리 바다를 보게! 수군에다 머나먼 한산도에 진영을 차렸는데도 벌써 후방을 예의주시하고 계시지 않은가!”

어느새 바다 위에 떠 있는 판옥선 선단을 보니 만에 하나라도 적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왔을 경우를 대비하여 후방을 노리려는 이순신 휘하 함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송상현은 만에 하나라도 이순신이 상륙하여 일본군 선봉대를 궤멸시킬 것이라 염려하였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선단은 뒤늦게 퇴각하던 세키부네 삼십여 척을 부수고 돌아갔다.

작전이 틀어질까 염려하였는데 모두 제대로 된 계획을 따르고 있었다.

“천만다행이군. 통제사 영감이 공훈을 노려 적도를 엄습하였다면 아예 진멸시킬 수는 있어도 본대가 상륙할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네. 그랬다면 일이 영영 틀어지겠지.”

송상현이 노리는 바는 하나였다. 선발대를 완전히 궤멸시켜 이들을 수습하는데 더욱 오랜 시간을 들이게 만든다.

다만 완전히 진멸(殄滅: 모조리 죽임)시키는 일은 피해야 한다.

씨도 남기지 않고 죽이면 본대가 돌아갈 것이요. 이들은 모두 일본을 정벌하는 다음 전쟁에서 화근이 되리라. 그러니 본대가 도달할 때까지 적을 온존하되 극도로 시달리게 만들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송상현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졌다.

“소장이 보기에는 적도가 진멸하려 스스로 나오고 있습니다. 아예 군을 물리면 나아가 싸우지 않을 것인데 계속 진군하는군요.”

정발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송상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산개 진영으로 진군하다 사방으로 허우적거리던 왜병들이 어느새 말을 타고 달려온 장수들의 지시를 듣고 재차 진군하였다.

“저 멍청한 놈의 새끼는 매 맞기를 좋아하나? 하긴 거리를 벌려서 계속 신기전에 당하느니 차라리 보총을 쏘고 단병전을 벌이면 된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판단이야 아예 틀리진 않은데 저 병사들을 가지고 진군하다니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송상현이 전장을 가만히 돌아보니 말을 탄 장교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의 틈으로 들어가 이들의 진로를 전방으로 바꾸었다.

항해로 인한 피로에 시달리던 일본 병사들이지만 삶에 대한 갈망은 피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기세를 다시 찾은 놈들을 상대해야 하네. 전차(戰車)를 준비하라! 망암(望庵: 변이중의 호) 찰방의 지시에 맞추어 전차를 활용하여라! 백운(白雲: 정걸의 호) 자네도 전선으로 나가 병사를 진두지휘하게!”

조선은 이번 전쟁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심지어 백여 년 전의 기록을 살펴 병기를 개수하고 이를 새로운 병기와 합쳐 사용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중 좋은 발상을 내놓은 자가 변이중이었다. 경진만란에서 활약한 유성룡의 화차가 제한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파악하고 이를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유사한 병기의 장점만 취합하려 하였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영 곳곳의 둔덕 사이를 메운 수레의 구멍 사이로 15자(5.2m)가 넘는 거대한 장창이 튀어나오고 병사들이 수레에 올라탔다.

전차라 불린 물건을 대견스러운 표정으로 쓰다듬은 변이중은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이미 몇 번이고 훈련하지 않았는가! 효행기(孝行器)를 앞뒤로 두 개 엮은 물건이라 튼튼함은 보장되어 있고 속도야 느려도 지독하게 튼튼하니 화포를 올려서 쏠 수 있다네. 그러니 마음대로 싸우고 돌아오게!”

“훈련이야 많이 하였지만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백 년 전에 경음당 대감(홍윤성) 시절에 잠시 쓰이고 다시 쓰이지 않아서 걱정됩니다.”

“다시 쓰이지 않은 이유? 우마차를 억지로 개수하였으니 당연히 힘이 들어서 다시 쓰이지 않았지! 사람과 소는 힘이 들어가는 방향도 방식도 다르니까! 하지만 이 녀석은 회령군께서 어린 시절 창안한 물건을 기반으로 하였으니 염려하지 말게!”

훈련도감 초창기에 사용되었던 전투마차는 빠르게 도태되었다. 기본적으로 우마차를 개수한 물건이니 축력(畜力)이 너무 많이 소모되고 적의 기동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이중은 발칙한 상상을 하였다. 무릇 입신체비사라면 인력거로 부모를 모시니 효행기라 칭하고 두 부모를 모실 수 있게.

심지어 조부와 조모를 모실 수 있게 4인승으로 크고 튼튼하게 만드는 이가 넘쳐났다.

이 튼튼하고 사람이 끌고 다니기 좋은 기구를 두 개를 엮어서 판자를 두른다면 방어력도 보존할 수 있고 사람이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총통과 화포 그리고 보총을 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전차를 밀기 시작한 병사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체 단련용으로 크고 우람하게 만든 인력거 두 개에 사람 여섯 명을 올리고 판자를 둘렀으니 거북이가 비웃을 속도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씨부럴 뭐 이리 크고 튼튼해! 내가 전에 우차(牛車)를 끌어본 적도 있는데 그 무게의 몇 배는 되는 것 같아!”

“당연하지! 유생 나리들이 하체를 단련할 때 쓰는 물건인데 여기에 나무판과 창까지 얹고 총통 수십 개를 붙인 데다 사람이 올라타잖아! 차라리 남생이가 더 빠르겠다!”

전차라 불린 물건. 변이중은 스스로 변이중식 화차라 칭하는 기물들은 멀리 나가지도 않고 조선군이 쌓아둔 돈대에서 20보(36m) 앞으로 나아간 뒤 멈추었다.

장점만 합친 물건이지만 무게만큼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 되었다.

일본군도 신기전의 최소 사거리인 200보(일본 거리 기준 240m)에서 대열을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은 지금까지의 전술과 다르게 조선식 밀집대형을 택하였고 정발은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가 놈들을 아예 몰살시킬지도 모르는데. 매를 벌어도 한참 벌었건만 이제는 아예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군.”

대나무로 만든 방패인 죽속(竹束: 타케타바)을 앞세운 일본군 대형은 후방의 조총수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려 하였다. 하지만 구경이 더 크고 사거리가 더 긴 조선군의 보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놈들이 산개 진형이 아니고 밀집 진형을 쓰다니! 뭘 배워도 잘못 배웠군! 계속 쏘아 붙여라! 날붙이로 싸우게 두지 말고 계속 밀어붙여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조선의 보총수는 수비용으로 축조한 둔덕이 아닌 전차 위에 올라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마음대로 보총을 쏘아댔다. 간혹 일본 조총의 탄환이 전차의 나무판에 박혔지만 뚫리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얄팍한 대나무 방패에 의지하여 벌판에 선 일본군 열 명이 보총에 맞아 죽어갈 때 전차 안의 조선군은 한두 명이 죽어 나가는 게 전부였다.

천천히 대열을 좁혀나가던 일본군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장창을 앞으로 뻗으려는 순간 정발의 명령이 떨어졌다.

“총통을 일제히 방포하라!”

변이중 화차는 유성룡이 경진만란 시절에 임시로 만든 화차와 백여 년 전 훈련원에서 창안한 수레방진의 장점을 결합한 물건이었다. 평상시에는 판자로 가로막은 일렬의 총안(銃眼)이 있었고 여기에 총통기화차의 총통이 결합되었다.

지금까지 굳건한 요새처럼 보였던 변이중 화차의 전면에 총열이 20여 개가 튀어나오며 일제히 불을 뿜었다. 평상시 일본군의 느슨한 진영이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밀집대형이었다.

눈먼 탄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네 겹으로 빼곡하게 대열을 갖춘 일본군은 이 탄환의 세례를 일제히 두들겨 맞았으며 가장 앞 두 열이 핏물을 뿜으며 널브러졌고 총열이 다음 것으로 교체되자 일본군은 최대한 대열을 온존한 채 퇴각을 실시하였다.

숫자로 밀어붙이려 하여도 병사들의 피로도가 막심하니 어떠한 방법도 취할 수 없으리라.

그나마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해안가에 최대한 밀착한 채 결사 항전의 진형을 갖추었고 송상현과 정걸도 이를 추격하지 않았다.

“놈들이 거북이처럼 칩거하였다! 거북이는 구워서 먹어야 제맛이 아니겠느냐!”

추격하지 않는다 하여 적을 내버려 둔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음 날부터 변이중 화차를 앞세운 조선군은 차츰차츰 적진으로 진격하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백성을 피난시키고 돌아온 병사들과 교대하며 피로를 최소화하였다.

밤이면 미리 조준한 신기전 세례가 쏟아지고 낮이 되면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의 반복 사격이 이어지며 일본의 선발대를 무참히 유린하였다.

이윽고 사흘이 지나, 다시 먼 바다에서 선단이 발견되었을 때 조선군은 퇴각을 단행하였다.

“적의 본대가 도착하였다! 다들 고생이 많았으니 어서 퇴각하라! 이미 퇴각로에 보급을 갖추어두었으니 무거운 병장기들은 파괴하여도 좋다! 어차피 새로 벼려내면 충분하다!”

생각 같아서는 속 시원하게 싸워보고 싶었지만 이제 화약도 슬슬 떨어져 가는 형편이었다. 중신기전이야 제법 남아 있었지만 굳이 화차에 올려서 쏠 필요는 없는 병기이다. 차라리 각종 산성이나 돈대에 두어 요긴하게 쓸 수 있으리라.

또한 이미 피로와 사기저하에 시달리던 선발대를 수습하려면 최소 닷새는 소모되리라.

고작 12,000명의 병사로 두 배 이상의 적을 상대하여 열흘 가까이 지연시킨 병사들은 승리를 치하하며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퇴각하니 우리가 진 건가? 아니, 우리는 기껏해야 칠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는데 왜놈들은 최소 오천 명이 넘게 죽었다면서? 그럼 이긴 거지! 그럼 이기고 돌아가는 거네?”

“이기고 돌아가다니 그게 뭔 소리인가! 이기고 후방으로 진군하는 거지!”

“거 마음에 드는 말이군! 그래! 후방으로 진군해서 방어선에 합류한 다음 더 많은 왜놈들을 죽이자고! 주상전하께서 친정(親征)을 뜻하셨으니 왜놈들의 기력을 뽑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동래 일대의 지방군 대다수가 첫 전투를 경험하였다.

화약병기를 이용한 제압과 거점을 이용한 수비, 그리고 적의 허를 찌르는 전술을 체험하였으니 이들 모두 다른 전선으로 흩어져 다른 지방군을 가르치리라.

* * *

조선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다케다 가츠요리도 나름 심혈을 기울여 가장 확실한 수를 사용했다. 그의 기준에서 선발대를 담당할 장수로 히데요시는 적합한 이가 아니었다.

큐슈 전선에서의 비정상적인 퇴각 속도를 생각하면 적이 조금만 거세게 저항해도 즉시 배를 돌려 도주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 다케다 신겐의 신하이자 다케다 가문의 4명신이라 불리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장수로 삼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라도 해보게!”

하지만 이런 비참한 패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기껏해야 고전을 겪고 동래 인근까지 쳐들어갈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해안에서 거지 신세로 뒹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야마가타는 고개를 땅에 박으며 사죄의 말을 반복하였다.

“주군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조선군의 방비가 너무나 철저하여 이를 분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 오히려 우리를 몰아붙였으며 주군이 당도하자 가까스로 퇴각하였습니다.”

“그 화약을 모조리 몸으로 받아내기라도 했단 말인가! 조선의 고을인 동래를 점령하고 진군 경로를 확보하라는 병력이 모조리 어육(魚肉)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어육이라는 비유는 매우 적절하였다. 지금도 사지가 끊어진 채 숨을 껄떡거리는 병사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고 시신은 끝없이 쌓여 아예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조선군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까지 상대할 정도의 보급이 없어서 후방으로 자리를 옮겼으리라.

오히려 이런 괴물 같은 군대를 다시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츠요리의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한 군의 지휘관이 아닌 가신의 입장이 된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백사장에 머리를 쾅쾅 찧어댔고 가츠요리는 그에게 처벌 아닌 처벌을 내렸다.

“선발대를 수습하는 동안 자네에게 보급 임무를 일임하겠네. 조선 백성들을 잡아들여 보인으로 삼고 곡창과 권세가의 창고를 수색하여 미곡을 벌충해 오게.”

“이 노구(老軀)가 아둔하여 조선의 함정에 빠져들었습니다. 부디 벌을 내려주십시오.”

“훗날 조선 왕을 사로잡을 때까지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할복하게. 하지만 이후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면 할복 명령을 물릴 것이네.”

본래 보급은 적에게서 강탈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충당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하지만 보급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나 다케다 가츠요리의 귀에 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 올립니다! 조선의 함대 마흔 척이 보급선을 기습하였습니다! 필사적으로 도주하였지만 여든 척의 함선이 격침되고 마흔 척가량이 나포되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큐슈 전투에서 조선의 이순신이라는 장수가 나섰다 하는데 이번에도 그자가 나섰는가?”

“구키 님께서 말씀하시길 후방에 분단된 선단을 일제히 포위하여 격멸하는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하였습니다.”

원정대의 보급을 담당하는 선박은 이번 본대 병력 중 이백 척에 불과하였는데 이순신이라는 장수는 얌체같이 보급선만 갉아먹은 채 내빼 버렸다.

다케다 가츠요리는 여전히 백사장에 머리를 박은 야마가타를 내려 보았고 그 또한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선발대를 수습하고 계속 충원되는 병력이 진군하는 동안 그는 잔존한 조선 수군을 몰아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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