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25화
2부 21장 3화 재전 준비
스님들과 서로 인사를 올리니 조만간 불씨들과 협력하였다고 탄핵할 놈들이 생겨날까 걱정이 들었다.
수많은 승려를 대표하는 서산대사도 이런 걱정을 했나 보다.
“왜국의 불자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이는 꿈만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저희를 지나치게 배려해 주시면 삿된 이들이 서애 대감의 책을 잡아 탄핵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이들이 있어도 염려하지 마시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어떠한 당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고루 교분을 나누었소. 여기에 불자들이 추가되어도 큰 흠은 아닐 거요.”
스승은 상초충인 이황이요, 장인어른은 하초충인 조식이다. 친구이자 정치적 파트너는 극한의 입신체비를 자랑하는 율곡 이이고 이외에도 수많은 이와 척을 지지 않고 온건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나다.
친구는 많고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정적(政敵)이 없도록 인생을 무탈하게 살아왔으니 정철 같은 놈 외에 나를 책망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승병은 이미 소집된 상태이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을 기다리기만 하라니 조금 비효율적이긴 하다.
잠시 머리를 정리하다 겨울이 되어 바짝 메마른 산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영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구려. 생각해보니 산속에서 장총통을 마음대로 쏘아대면 화승(火繩)의 불씨도 튈 것이고 장총통에서 뿜어지는 화염도 튈 거요.”
“그…… 그렇긴 하겠지요. 듣자 하니 임해도감 병사들에게 듣기로 산불을 염려해 보총은 드물게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승군 모두가 장총통을 쏘아대면 산불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산불이 일어나도 산성까지 미치지 않는다면 충분하지 않겠소?”
지금 생각해 보니 화공 대책도 필요하다. 주상전하의 본대에 박살 난 일본군이 퇴각 경로에 있는 마을에 불을 붙이지는 않겠지만 산성의 병사들을 고립시키려고 불을 놓을지도 모른다.
산성 자체야 우물을 파고 샘물을 비축해 불길이 미치지 않겠지만 그 아래 산이 모조리 불타버리면 숲이 복원될 때까지 산사태와 홍수에 시달리리라.
하지만 이 대책도 마련할 수 있었다.
“산세를 잘 읽는 분들이니 전쟁이 벌어지기 전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이 있소이다.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려 승병들이 각지의 산림을 간벌(間伐)하고 터를 파내 적의 화공을 막아낼 장소를 마련하도록 만들 것이오.”
“깊은 뜻에 이 노승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화공을 막기 위해 수없이 많은 나무를 벌채하라는 뜻이 아닙니까. 이 목재로 불타 버린 사찰을 재건할 수 있겠군요.”
“어허 무슨 말이시오. 그저 산불이 번지지 않게 쉰 자(17m)의 산림을 벌채하여 불이 미치지 않는 맨땅을 열어두는 거요. 더군다나 낙엽을 긁어내고 잔가지를 쳐내니 그 고난을 감내할 수 있겠소?”
서로 웃고 있었지만 화공이라는 변수를 결합하자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가 도포 자락을 희게 만들 때 어중간한 잿물이나 비누 대신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솔로몬 제국에서 들여온 홍회(紅灰)라는 녀석을 사용했지.
홍회는 솔로몬 제국의 핏빛 호수에서 캐낸 광물인데 순도가 높은 녀석은 표백용으로 비싼 값에 팔린다.
하지만 순도가 낮은 녀석은 중조(重曹: 탄산수소나트륨)라 불리며 탈취제 취급을 받았었지.
그러나 금화도감(禁火都監)이 화재 진압을 하다 우연히 다른 용도를 찾아냈다.
물동이를 집어 던지다가 중조가 담긴 항아리를 집어 던졌는데 불길이 단번에 사로잡혀서 화재 진압용으로 비축하기 시작했다던가.
이걸 산불 진압에 쓰면 초기 진화가 쉬워지리라.
“도성의 창고에는 중조라는 물건이 쌓여 있소. 솔로몬국에서 들여온 홍회에서 나온 부산물인데 이를 불에 던지면 맹렬하던 불길도 바로 잡히더구려.”
“그런 신묘한 기물이 있습니까? 하지만 값진 기물을 함부로 사용한다면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신묘한 기물도 아니오. 평상시에는 권세가의 화장실에서 분변의 냄새를 줄이는 데 쓰니 마음대로 얻어간다면 충분하지 않겠소. 이를 호리병에 담아 두었다가 불이 날 때에 던지면 산불을 잡을 수 있을 거요.”
우리 집에도 커다란 장독 하나 가득만큼의 중조가 있다.
아내가 홍회 덩어리를 사와서 쓸 만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도끼로 깨내서 탈취제로 사용하였지. 아마 도성 전체를 헤집으면 톤 단위의 탄산수소나트륨이 나오리라.
훗날의 승병들은 산불 감시대가 되어 불법 침입자를 산탄총으로 쏘고 불이 일어나면 도끼와 소화기를 들고 진화작업에 나서지 않을까. 이렇게 승려들이 일거리를 찾으면 불교 부흥도 큰 문제는 아니리라.
서산대사는 내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를 올렸다.
“불초 소승에게 혜안을 비춰주시니 오늘 하루의 대화가 제 평생보다 값진 것 같았습니다. 부디 침략한 왜적들이 서애 대감의 위엄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하길 빌 뿐입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소. 부디 전쟁이 끝나고 왜국의 불법을 새로 세울 수 있기를 빌 뿐이오.”
마지막 인사를 마치자 승려들은 성큼성큼 걸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자신들이 평소에 산을 정비하듯 산성 주변과 왜군들의 진격 경로 인근의 화공 방지를 위해 도끼를 들고 산으로 달려가겠지.
호환을 염려하였지만 조선 초부터 호랑이를 때려잡은 덕분에 백 년이 지난 한반도는 함경도와 평안도 그리고 지리산이나 태백산 같은 고산준령에만 호랑이가 서식하니 죽거나 다치는 승려는 적겠지.
이제 마지막으로 나에게 배정된 진주로 향했다.
진주를 방비하는 계획을 수립하였지만 일본군의 별동대가 침략할 수 있는 경로로 보이게 만들려면 이런저런 고안을 많이 해야 한다.
성을 덮어놓고 쌓아대면 분노에 차서 복수의 칼날을 갈아대던 장수들도 역겨움에 질려 발길을 돌릴 거고 계획이 헝클어지리라. 미리 배정된 부관은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힘겹게 성을 쌓고 있었다.
진주성의 보조 담당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일이다. 한때 나와 같이 얽혀 문제도 일으켰고 출세 가도도 달려왔지만 그놈의 부관을 잘못 둬서 품계가 대폭 깎인 사람이지.
그는 산에서 뛰어 내려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보고서를 먼저 제출하였다.
“서애 대감께 보고를 올립니다. 백성들을 소집하여 여섯 곳의 망루와 두 곳의 보(堡)를 축성하였고 산성을 보수하며 도로를 정비하였습니다.”
“어디 지도를 좀 보세나. 기존에 쓰이던 망루와 장대를 보수하였으니 고생이 참으로 많았소.”
아예 한직으로 빠지지는 않았고 남경에 파견된 오위 부대에 소속되어 사방의 방어체계를 검수하고 남경 일대의 요새를 다시 세웠다더라.
하지만 역시나 교과서대로의 방어체계이다.
감히 평가하자면 맨밥에 간장 종지를 준다 치자. 권율은 김치도 꺼내 썰어 먹고 김도 굽고 반찬도 내와 칠첩반상을 차릴 사람이다. 이순신은 밥이 갑자기 구첩반상으로 변할 사람이고.
하지만 이일은 맨밥에 간장으로 밥을 먹는 것이 전부이다.
병법서에 나온 정석대로 뭘 한다면 부족함은 없지만 히데요시 같은 녀석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지.
진주성을 바라보면서 이일이 나름 힘써 개수한 모습을 보니 기본은 해서 차라리 나쁘지 않았다.
“주변의 방비는 부족함도 없고 넘쳐남도 없으니 흡족하구려. 하지만 진주성 자체의 방비는 기껏해야 망루를 고쳐 세우고 여장을 보수한 것이 전부이구려.”
“제 판단이 어긋날 경우 오히려 대감의 업무에 지장을 끼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오. 어떤 왜장이 진주 일대로 침략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상대할 자는 등길랑이라는 왜장일 거요. 등길랑의 장기가 무엇인지는 아시오?”
이일은 직접 싸워본 사람이 왜 묻느냐는 듯이 눈을 굴리면서 답하지 못하였다.
애초에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교과서대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참고서를 써주면 충분하다.
히데요시의 책략엔 공통점이 있었다. 적이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고 대응을 취하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이득을 챙기니 그 판단력 하나는 대단하다. 그래서 공격도 빨랐고 퇴각도 빨랐지.
그렇다면 한 달이 걸릴 대응을 열흘 만에 끝내면 어떨까?
“책략을 모조리 알아챌 방법은 없었지만 들어올 때와 물러날 때를 알며 상대의 허점을 즉각 파악하는 신묘한 장수요. 그러니 지금부터 영회(시멘트)를 구워낼 가마도 만들어 주시오.”
“제가 알기로 영회는 굳는 시일이 석회보다 몇 배나 빠르지만 겨울이 되면 모조리 깨져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영회로 성을 축조하면 몇 년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어차피 겨울이 지나면 깨져나갈 물건이니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설치하면 충분하겠지.”
나도 제자인 진해대군에게 배운 것이 있다. 성이 폭약에 무너질 것을 예상하고 축성하여 오히려 더 높은 방어력을 갖추게 된 곳이 역작인 삼ㄱ…… 아니, 겹(裌)성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무너질 성을 만들고 전쟁에만 쓴 다음 해체하면 어떨까? 이론상 벽돌 구조물은 하루에 1m 이상을 쌓을 수 있다.
놈이 바보는 아니니 선발대를 보내 진주 일대를 정찰하고 보름 가까이 지나야 본군이 도착하리라.
열흘이면 6m 높이의 벽돌과 석재를 결합한 성을 축조할 수 있고 이 녀석들은 닷새가 지나면 어느 정도 강도를 보장한다.
적당한 칠판을 잡고 필요 물량을 계산한 다음 이일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열흘 만에 쌓을 수 있으며 삼 년을 버티지 못할 치성(雉城)의 계획을 수립하겠소. 팔백만 장의 벽돌과 성 내부에 채울 잡석을 준비하고 성의 기초로 쓰일 거대한 기초를 미리 만들어주시오.”
“정녕 열흘 안에 성을 쌓을 수 있다 하였습니까? 그 노동력은 누가 제공합니까?”
“한 명의 입신체비사는 네 명의 잡부와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인력은 넘칠 예정이오. 먼저 터를 닦고 주민들을 소개(疏開)시켜 성의 기초만 만들어두고 적의 선봉대가 진주 일대를 시찰하고 돌아간 직후 공사를 시작할 거요.”
히데요시는 진주의 방어가 허술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원한을 품은 채 여기로 오리라.
하지만 놈의 병사들이 도착할 때쯤 진주성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 성채가 완성된다.
누각이 없지만 치성과 옹성(甕城)은 어중간한 성도 천혜의 요새로 바꾸는 법이다. 성의 내부는 미리 진주 남강에서 퍼낸 모래와 진흙으로 판축(板築) 다짐을 하여 만에 하나 벌어질 화약병기의 공격에 대응하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이일은 반색하며 만류하였다.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회령군께서 창안하신 영회는 겨울철의 추위를 만나면 몇 달이 지나도 굳지 않고 물렁물렁한 상태가 유지된다 하더군요.”
“그렇다면 불을 때서 구울 정도는 아니고 뜨겁게 덥혀 빨리 굳히면 되는 법이오. 민가를 해체하여 성을 쌓을 예정이니 주변에 땔감은 널려 있지 않소?”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성 내부에 있는 민가를 부숴서 불을 피운다. 현대에도 건물 안에 갈탄을 잔뜩 쌓아두고 비닐로 덮어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한 다음 불을 피우는데 뭐가 대수란 말인가.
어차피 방화구획을 진주에도 설정해야 하니 집을 다시 지을 목재는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
이미 내가 다시 써준 참고서를 몇 번이고 읽은 이일은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검을 마친 채 돌아갈 시기가 되었지만 방문할 장소가 있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이자 최고의 장수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거처가 한산도로 옮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 * *
본래 경상도에는 두 개의 수영(水營)이 있었다. 한 도의 수사는 한 명만 배정되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보좌관 역할인 수군우후(水軍虞候)를 두기에 수군절도사가 우수영, 수군우후가 좌수영을 담당하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최소 10만, 최대 20만에 달하는 일본군이 쳐들어온다. 압도적인 적을 만나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경상좌수영은 동래에서 울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실질적인 해군 사령부 역할을 담당하는 경상우수영 또한 이순신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왜 거제도 깊숙이 있는 오아포(현재의 가배량)의 수영을 한산도로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겠지.”
“거제도에 당도하신 삼도수군통제사께서 섬을 돌아보시더니 수영을 즉각 한산도로 옮기라 하였지요. 영문을 알 길이 없지만 이후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군관은 영문을 몰랐지만 본래 역사에서 한산도 대첩이 일어났던 장소를 지나가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간몬해협의 포대를 삼 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걷어낸 이순신이다.
여기서 배운 것이 있었나 보다.
물골을 따라 내려가니 거제도 일대에 요충지마다 망루가 있는데 하나같이 배를 우회하거나 대열이 늘어지는 구간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저 망루를 보게. 간몬해협이야 덮어놓고 망루만 설치해서 물량으로 막아냈지만 여기서는 최적의 장소만 찾아냈군. 나니까 발견했지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발견했겠어.”
“네? 저게 망루란 말입니까? 저 장소는 물골이 휘어져서 배가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장소인데요?”
“시야가 트여 있지 않고 적도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장소에 망루를 설치했다면 섬 안쪽은 흉악하기 그지없겠군. 혹여나 임해도감 병사들이 섬에 주둔하지 않는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천여 명이 거제도에 주둔하기로 정해졌습니다!”
이순신 휘하의 군관이 감탄했지만 나도 감탄했다. 완성이 된 직후라서 발견했지 여름이 지나면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망루의 사방에 흙을 깔아 덧대고 위에 관목(灌木)을 심어뒀는데 이건 거대한 위장막이나 마찬가지이다.
임해도감 병사들은 야전에서 람보(藍輔: 쪽풀을 바르게 하다)복이라고 현대와 흡사한 위장복을 사용한다는데 이걸 건물에 적용할 줄은 몰랐다.
이걸 보니까 이순신의 노림수를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어차피 20만에 달하는 일본군이 쳐들어온다면 수군을 억제하려 힘쓸 것이고 거제도 자체가 전장이 된다. 적이 상륙해 수영 인근을 들쑤시고 다닌다면 제대로 된 작전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거제도를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어 상륙하는 왜적들을 모조리 도륙하려는 모습이다. 이쯤 되면 구첩반상도 아니고 후식까지 챙겨 먹는 수준이 아닐까.
충청·전라·경상도의 수군을 통합한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임시 관직을 수여받은 이순신은, 원래 충청수영에서 수군 업무를 시작하여 전라수영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경상 수영의 조련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아직 수영 안에 있었는지 병사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여해 거기 있는가? 나 서애일세, 경상도 일대의 방비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마지막으로 담소나 나누고자 하네. 잠시 만나볼 수 있겠는가?”
이순신은 눈 아래가 시커멓게 죽은 채로 나를 마주하였다. 근손실이야 없었지만 어마어마한 피로와 책임감이 그를 짓누른 것 같았다.
사실 나 같아도 갑자기 직급이 두 품계나 올라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 책임감이 막중하리라.
“서애 아닌가. 자네가 경상도 일대의 방비를 철저히 단속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기껏해야 수군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군. 애초에 내 잘못이 크다네.”
“자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나. 스무 척의 배로 삼백여 척의 적선을 도륙하였으면 그 군공이 어느 누구보다 크지 않겠는가. 주상전하께서도 이를 알고 계신다네.”
“하지만 나는 왜장들을 모두 놓치고 해적에 불과한 자 하나만 사로잡았다네. 내가 만약 조금만 더 힘을 써서 등길랑을 사로잡았다면 놈들이 재침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이제야 이순신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무리해서 퇴각하는 일본 수군을 공격하였다면, 만에 하나라도 히데요시를 죽였다면 놈들은 당장 강화 협상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더군다나 이번 전쟁에서 이순신이 처음 실시할 전술은 전면전이 아니다. 놈들의 보급과 인원 보충을 옥죄어 놈들이 고통스러운 진군을 거듭하게 만들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번 전쟁은 적을 끌어들여 몰살시키는 것이지 패주시키는 게 아니다.
이순신이라면 적을 해상에서 모조리 격퇴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계획이 헝클어진다. 아마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임무가 자신을 책망하는 주상전하의 뜻이라 멋대로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순신은 갑자기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네. 정 수사(정걸) 대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주상전하께서는 전쟁의 시작을 내년 시월 중순으로 예정하고 계시더군.”
“시월 중순이라 하였는가. 참으로 좋은 정보이니 내 마음속에 담아두겠네.”
지금은 1585년 4월, 시간이 정신없이 흐르지만 앞으로 여섯 달 뒤에는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활용할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도성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내려오면서 스승님께 인사를 올려야 하리라.
#작가의 말
예상 작전지도입니다. 조선군 총동원 인원은 육군 기준 정군 87,500명. 보인 14만 명입니다. 수군은 정군 12,000명 보인 2만 명이지요.
계속 돈좌시키고 이순신의 공격으로 소모시키며 꾸역꾸역 진군하게 만들다 대구에서 결정타를 날리겠다는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