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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24화 (424/573)

근육조선 424화

2부 21장 2화 화합(和合)

기술이 발달하고 자료가 축적된 현대에도 지도를 믿고 찾아간 장소가 오차가 심각한 상황이 빈번한데 이 시대에는 오죽할까.

당연히 주요 피난 경로를 확인할 때마다 지도와 다른 현황이 드러났다.

“벽화(碧華)산성까지 백성들을 소집한 결과 가장 먼 마을에서는 사흘이 걸리더군요. 비록 쓰이는 삽이나 곡괭이를 마을에서 가져오라 하였지만 실지로는 이보다 더 걸릴 겁니다.”

“여기는 이틀 동안 피난할 경로라 하였는데 이래서는 사흘보다 더 걸리겠는걸.”

측량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근현대와 비교하면 부족하리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약간의 오차가 아닌 심각한 오차라면 작전 계획 자체를 수정해야 하리라. 지금도 생각보다 마을에서 산성까지 향하는 길이 멀어서 문제다.

칠곡부터 남하하며 각지의 산성까지의 피난 경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벌써 세 번째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이제야 저 멀리서 걸어오는 백성들은 겨울 추위에 시달렸는지 사지를 덜덜 떨고 있었다.

“저들에게 어서 따듯한 숭늉을 먹이고 하루 동안 푹 쉬도록 조처를 취하게. 구들이 좁지만 따스한 방 안에서 몸을 풀지 않으면 산성에서 무슨 일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은 1584년 11월이다. 남쪽으로 내려오며 산성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각 지역의 백성들을 다시 소집하여 업무를 시켰고 이들은 피난 경로로 이동하며 피난 기간을 측정하는 데 쓰였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이들이 숭늉을 들이켜고 바닥에 널브러지자 너무 추위에 시달려서 몸살이라도 생겼나 걱정되었다.

다가가서 이들의 상태를 보니 제법 지쳐 있을 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말이라도 해봐야지.

“괜찮은가? 혹여나 여기까지 오면서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다면 푹 쉬다 돌아가게.”

“다친 곳은 없지만 꽤나 고생을 하였습니다. 다른 마을에서 부역(負役)에 참가한 사람들의 집에 머물며 몸을 쉴 수는 있었지만 눈칫밥을 먹는 게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었지요.”

“예끼 이 사람아! 눈칫밥이 아니고 고봉밥이지! 양반들께서 자신의 사재를 털어 우리에게 식량을 잔뜩 내어주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대감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정말 왜적들이 쳐들어오겠습니까?”

“요즘 왜적이 쳐들어온다며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모든 미곡을 주상전하께서 관아에 두라 하시니 곳간은 텅텅 비어 있지요. 인력거를 끌어 한 달마다 쌀을 한 섬씩 받아가는 형편이 아닙니까.”

조정에서야 일본이 조선에 침략해 막대한 손해를 입도록 이미 작전을 다 짜두었지만 그런 정보를 모조리 흘리면 백성들과 하급 군관들이 불만이 폭주할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당상관 이상 관료들이야 입단속을 철저히 하고 다른 관료들에게는 일본의 침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정보만 뿌렸다.

나도 이들과 말을 맞추기 위해 태연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왜추가 이미 아국의 영토를 공격하고 명국의 영토인 육주성을 침범하였다네. 하지만 왜병을 모조리 소탕하지 못하여 아직 삼십 만에 달하는 대군이 남아 있다 하더군. 아마 삼 년 이내로 십만 이상의 왜적들이 쳐들어올 걸세.”

삼 년 이내에 십만 대군 이상의 왜구가 쳐들어온다. 이게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준 정보였고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는 저지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한다며 전쟁의 시작을 알리리라.

하지만 농민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놈의 새끼들은 밥 먹고 전쟁만 한답니까? 그래서 삼십 만 대군으로 공격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부역은 누가 합니까? 세금은 누가 내구요?”

“왜국의 세금은 기본이 오 할이라 병사들을 지탱할 수 있다더군. 왜인들이 아국을 공격한다 생각해 보게. 이들에게 사로잡혀 노비 신세가 되면 아마 세금이 칠 할에 달할 것이네.”

“아이고 대감님! 저희가 무지하여 함부로 나라를 탓하였습니다! 필사적으로 일할 것이니 부디 저희 가족들을 왜적의 손에서 지켜주십시오!”

“자네들이 쌓은 산성이 가족들을 지키는 보루가 되는 법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자네들의 가족이 몸을 더욱 굳건히 지킬 수 있겠지.”

아무리 봉급을 받는 일이라 해도 덮어놓고 시키면 효율이 없다. 듬성듬성 일하며 시간을 때우는 꼴을 보느니 열심히 일할 목적을 부여해 줘야지. 내 말을 들은 이들도 산성 보수현장으로 달려갔다.

현대의 공사장에서 야리끼리, 업무량을 채우면 언제든지 돌아가도 좋다는 속어로 현장 소장이 말한 순간 세 배에 달하는 속도로 작업에 몰두하는 인부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벽화산성 담당 군관은 이 모습을 보더니 지도를 확인하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였다.

“역시 업무에 능숙하신 분답게 백성들을 잘 다루는 법을 알고 계시는군요. 저 같은 사람이야 백성들을 윽박지르고 타박하여 억지로 공사에 몰두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 말을 하다니 내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군. 내가 보기에는 자네의 재주가 내 벗인 언신(권율의 자)과 비견할 정도이거늘. 이번 전쟁에서 경험을 쌓고 공훈을 세워 출셋길을 열게.”

“기껏해야 미관말직에 불과한 제가 어찌하여 재주가 있다 하십니까.”

본인은 모르겠지만 재주가 넘쳐나지.

이 양반은 인근에서 종6품 지방 군관인 절제도위로 복무하던 김시민이다. 진주대첩의 주인공이지만 임진왜란보다 8년이 빠른 시기이니 아직 목사는커녕 벽화산성 방어 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잘 노려서 목숨도 보전하면 좋겠지.

다시 보고서를 조정에 올려 전략을 수정할 것을 부탁하였는데 성 아래에서 수십 대의 수레가 어마어마한 양의 미곡을 가져왔다.

“서애 대감께서 열심히 일하시니 저희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아직 관직에도 오르지 않은 한낱 유생이지만 조상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이 풍족하니 한 힘을 보탤 것입니다!”

지금까지 백성들이 큰 고난을 겪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각지에 있는 양반들이 하나같이 가문의 여유 재산을 털어 예상외의 지출을 벌충하고 오히려 예산이 남아돌 지경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시대는 인구의 1%에 불과한 양반계층이 전체 부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꿔 말하면 이들이 재산의 반만 털어내도 백성의 30%를 먹여 살리는 수준이다.

대표로는 젊은 유생이 맨 앞에 섰는데 다른 이들은 죄다 머슴이니 아마 혼자 쌀 수백 섬에 달하는 재산을 내놓았으리라.

도포 자락 사이에 뭔가 붉은빛과 수실이 새겨진 운문(雲文: 구름무늬)이 꿈틀거리는데 뭔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어 악수를 나누며 물어보았다.

“자네 가만히 보니 신체가 단련된 모습이 어지간한 입신체비사와 비견하여도 부족함이 없다네. 그리고 안에 갖춰 입은 옷은 혹여나 입신체비복이 아닌가?”

“아뿔싸, 지금에야 부제조께 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친께 한없이 많은 은혜를 받아 유곡 입신체비장의 체장으로 일할 예정인 현풍 곽 씨의 재우라 합니다, 호는 망우당이지요. 제 스승께서는 남명 선생님이십니다.”

누군가 했더니 홍의장군 곽재우 아니야?

조식에게 편지를 몇 번 받아본 적 있는데 출세에 관심도 없고 대업(大業)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 제자가 생겼다 해서 투덜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체가 곽재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두툼한 굳은살은 물론이요, 땅을 뒹굴며 쓸려댄 귀가 유도선수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곽재우 이 양반 내수린을 얼마나 한 거지?

“제가 학문이나 출세에 인연이 없어 입신체비만 익혔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재산이 많으니 비단으로 입신체비복을 만들어 이를 홍내갑주(紅內甲冑: 붉은색 내갑)라 하고 삼대운동 팔백 근(512㎏)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입혔지요.”

“삼대운동 팔백 근 이상만 홍내갑주를 입을 수 있다 하였는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 웃음이 나오는군.”

영직이가 말하기를 요즘 삼대운동 500 이하는 이너아머를 입을 수 없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이 많아서 골치가 아프다 하였다.

그런데 곽재우는 정말 삼대운동 500 이상에게 비단옷을 선물해 주지 않는가.

그럼 홍내갑주를 입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혹여나 삼대운동 팔백 근 이하가 되면 홍내갑주를 단속하지는 않는가. 자네 귀를 보니 내수린에 능통한데 자네 입신체비장에는 홍내갑주를 훔쳐 입은 이를 단속하려고 내수린꾼이 서른 명에 달할 것 같군.”

“참으로 귀신같은 분이시군요! 저희 유곡 입신체비장은 내수린이 주력입니다. 영남에서 제일가는 내수린꾼이 모인 곳이라 서른여섯 명이나 되지요.”

뭐 이리 재산이 많아?

내수린꾼 서른여섯 명이면 일 년에 먹는 식량만 따져도 은자로 팔백 냥이 넘어갈 거다. 흔히 말하는 천석꾼도 아니고 만석꾼은 되어야 감당할 수 있으리라.

아마 내수린꾼과 곽재우 소유의 입신체비장의 유생까지 합치면 진주와 버금가는 끔찍한 장소가 되겠지.

벽화산성의 침입 경로가 양면으로 트여 있어 걱정했는데 이쯤 되면 어지간한 왜병들이 몰아쳐도 역으로 철저히 짓밟을 수 있겠지.

“내 주상전하께 간언하여 이런 빼어난 인재가 입신체비장의 체장(관장)으로 머물고 있다고 간언을 올리겠네. 부디 이번 왜인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관직에 뜻이 없으니…….”

한직으로 배정해 달라는 말이겠지. 아까운 일이지만 본인에게 뜻이 없으면 뭘 어쩌겠는가. 경주는 권율이 알아서 막을 테니 진주로 향해 내려가는데 마을 한복판에 스님들이 몰려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스님은 익숙한 얼굴이다. 예전에 진주에서 흰개미를 소탕할 때 만났던 의곡사 주지스님인데 이십 년이 넘게 지나 이제는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시주(施主)께서 당도하였으니 이 노구를 이끌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의곡사가 불탔을 적에는 원망하였지만 폐사지에 놓인 불상을 보니 마음이 풀렸습니다. 오히려 의곡사를 더욱 중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시주? 내가 베푼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나를 시주라 하시오?”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전해졌습니다. 주상전하께서 경주를 수호하기를 정하셨고 여기에 맹장인 언신 장군을 길목인 양산에 천거한 사람이 서애 대감이라는 소문이지요. 덕분에 천년고찰 불국사가 왜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승려 일동이 깊게 절을 올렸는데 이를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야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이 없고 그저 오래된 물건을 지키면 좋다는 정도의 인식만 있지.

이번 방어 계획도 각지에 난립한, 정확히는 조선 초기의 숭유억불 기세에 밀려 산속에 멋대로 자리 잡은 사찰들에 대한 방어 계획은 없다.

오히려 나라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욕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경주는 세 갈래로 길이 열린 장소이니 틀어막았을 뿐이오. 내 아무런 뜻을 두지 않았으며 각지의 산사(山寺: 산속의 절)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니 어서 돌아가시오.”

“아닙니다. 왜적들이 약탈할 귀중한 물건이야 땅속에 파묻어 숨기면 되고 초석이 남은 절은 새로 지으면 됩니다. 이미 서애 대감께서 창안한 도본(圖本: 도면)으로 건물을 복원하는 법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무가 썩어 문드러져 새로 지어야 할 건물은 불타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천년고찰을 수호하기로 정하였으니 불교의 근본을 주상전하께서 지켜준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네. 본래 역사에서도 각종 사찰이 유생들에게 트집 잡혀 불타버리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승려들은 원망을 늘어놓으면서 계속 복구했다더라.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해인사나 천년고찰인 불국사는 유생들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였지만 손을 대지 않았을 뿐 아무런 혜택을 내리지 않았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불교에 대한 공식적 지원이 내려진 셈이다.

아마 이들은 사찰의 재산을 털어 전쟁 자금으로 쓰라고 하겠지.

나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들이 백성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였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나 아국의 병사는 충용(忠勇)한 이들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차라리 사찰의 재산을 백성들에게 내주어 고달픈 피난생활을 겪을 백성들을 돕는 데 쓰시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입신체비가 전해지며 본래 역사보다 체격이 굳건해진 스님들이지만 백병전에 돌입하면 한계는 명확하다.

싸움이 어디 힘 하나로 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보디빌더들이 검도대회 우승을 석권하리라.

하지만 예순에 가까운 노구(老軀)를 이끌고 걸어 나온 다른 스님이 있었는데 등이 꼿꼿하고 눈빛이 부리부리하니 장수인지 스님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스님은 고개를 숙이더니 상상조차 못 한 말을 하였다.

“소승은 묘향산에서 수련을 쌓던 휴정(休靜)이라 합니다. 본디 금강굴에 머물며 속세와 연을 끊으려 하였지만 소식을 듣고 불자들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법명(法名)이 휴정? 이 승려가 서산대사 휴정이라고? 본래 역사의 임진왜란에서 조직된 의병 가운데 불교 의병들의 대장격인 사람?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하고 침묵하자 서산대사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올리며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이미 승병을 조직하기 시작하여 전국팔도의 사찰과 북방의 사찰 모두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시골 곳곳의 사찰은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아니하였지만 몇 달이 지나면 이들도 합류할 것입니다.”

“사찰이 대체 무슨 힘이 있다고 승병(僧兵)을 조직한단 말이오. 기껏해야 산세를 잘 아니 백성들을 보호하고 왜적의 경로를 알아차려 이를 대응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오.”

조선군이 강해도 너무 강하니 승병들은 전장 주변에서 보조업무나 하라고 잘 타이르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님들이 꺼낸 물건은 모두 다 잘 닦여진 장총통이었다.

“장총통(보총의 불량품을 개수한 화승총, 총열의 길이가 절반이다)이 아닌가? 대체 이걸 어떻게 구하셨소?”

“본래 절마다 시주를 받은 장총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절의 대부분은 산사(山寺)이며 들짐승들이 해를 입히는 일이 잦지요. 살생계(殺生戒: 죽이지 말라는 계율)는 지켜야 하지만 승냥이나 매화범을 상대로 몸을 지키는 일이 있었지요.”

“더군다나 연복사에서 저희를 위해 힘을 썼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 받은 자금과 시주를 털어 스스로 납과 숯을 사들여 산탄을 매일 수십 근씩 벼려내고 있습니다.”

“주상전하께서 경주와 천년고찰을 지키고자 마음을 먹었으니 저희도 모든 자금을 털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힘쓰려 합니다. 하지만 병장기라 해봤자 작대기를 휘두르는 게 전부이니 차라리 장총통을 사들여 무장하였지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야 문화재를 지키겠다고 나섰지만 피해를 모면한 불교계는 이를 은혜로 여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격이다.

아무리 구식 장총통이라도 위력 하나만큼은 일본이 사용하는 조총보다 앞서 있고 오히려 숲속에서는 길이가 짧은 장총통이 유리하다. 더군다나 이들이 쓰는 탄환은 산탄이다.

“매일같이 산성 인근의 산야를 오가고 있으니 산세는 손금 보듯 훤하고 산을 오르는 솜씨는 임해도감이라는 병사들과 견줄 수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내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리겠소. 하지만 왜인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말고 부디 적의 허점을 노리고 별동대를 요격하는 방식으로 싸워주시오.”

등산로도, 표지판도 없는 시대의 험준한 산이다. 어떻게든 주변 백성 가운데 뒤처진 자를 포로로 잡아 산성을 공략하려 해도 이런 산속에서는 경험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스님들은 느긋하게 편안한 우회로로 나아가 시야의 사각을 노려 장총통으로 산탄을 마구 쏟아붓고 도주하리라. 이렇게 두어 번만 노려도 공격은 무조건 돈좌(頓挫) 당한다.

내가 말을 마치자 서산대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하였다.

“본래 살생계는 목숨이 경각이 달할 때에 어쩔 수 없이 어기는 계율이지만 이번만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깨트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상전하께서 내린 은덕을 저버릴 수 없는 몸이기에 이 노구를 바치겠습니다.”

“무슨 말이시오. 왜적의 침략을 막아낸 뒤에는 왜추(倭酋)를 토벌할 것이오. 왜국의 불자들은 속세에 해를 입히며 오계를 밥 먹듯 어기는 이이니 부디 오래오래 살아 왜국의 불자들을 바로잡아 주시구려.”

본래 역사에서는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나서 각지에서 합류하였던 의병장과 인재들이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속속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을 보이며 합류하였다.

이미 이길 전쟁이지만 피해를 극도로 줄일 수 있으리라.

#작가의 말

의병장들이 가난한 상황에서 칼 한 자루나 활 하나만 들고 나섰다 여기시는 데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양반 생활을 하려면 체면치레를 위해 현대 기준으로 대략 20억 이상의 재산이 필요합니다.

제가 계산한 게 맞을지 모르지만 이순신의 경우에는 본가 재산이 현대 기준으로 약 40억, 처가 재산이 최소 200억 정도고 외제차에 해당되는 준마 4필을 기본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곽재우의 재산은 최소 수천억이 넘어갈 겁니다. 아버지 곽월도 지방 유지였고 아내의 가문이 무남독녀라 지방 유지의 재산 둘이 결집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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