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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23화 (423/573)

근육조선 423화

2부 21장 1화 미끼를 물다

사카이 인근의 벌판에는 오늘도 인근에서 징집된 아시가루와 사무라이들이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책임지고 방면한 장수, 본래 역사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훈련을 지휘하고 있었다.

“서로 창을 곧게 앞으로 세우고 찔러 들어가라! 조선의 병법을 배워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높아지는 법이 아니겠느냐! 우리의 창술로는 놈들을 상대하지 못한다!”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아시가루들은 평소에 사용하던 느슨한 진형이 아닌 조선과 흡사한 네 겹의 밀집대형을 형성하였다.

훈련이어서 창날을 빼낸 창대만 사용하였지만 서로의 대열이 나무 몽둥이에 짓뭉개질 신세가 되자 점차 다가오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계속 걸어가라! 눈앞에 있는 것이 솜방망이라 생각하고 걸어가라고! 창날도 빼내었으니 기껏해야 피멍이 들 뿐이다! 뼈가 부러질 정도는 원하지도 않는다!”

접근하라는 말은 자신의 얼굴과 몸통을 스스로 짓뭉개라는 말과 같다.

결국 서로의 창대를 코앞에 두고 진군이 멈추자 히데요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이건 못 해먹겠는데. 고작 훈련이잖아!”

“고작 훈련이라고! 네놈들의 명줄이 달렸는데 고작 훈련이라 하다니! 한 번만 그런 소리를 지껄이면 네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

평상시라면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답게 아시가루를 다독이고 기세를 북돋웠을 히데요시지만 초조함과 절박함은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여름의 끔찍한 더위에 고개를 휘저으며 땀을 털어내던 히데요시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잠시 세수를 하고 올 것이니 기다리도록.”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두툼한 갑주를 입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올라오니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사실 땀이야 흘릴 수 있지만 더 큰 문제가 투구 속에서 벌어졌다.

“아교로 붙여도 가발이 떨어지는데 뭘 어쩌라는 거지. 이제는 머리카락도 없는데.”

투구를 벗은 히데요시의 머리에서 아교로 억지로 고정하던 촌마게(상투)가 흘러내렸다. 본래 젊은 시절부터 탈모가 진행되었지만 그의 머리에는 온전한 머리카락이 존재하지 않았다.

연이은 패전과 의도치 않은 퇴각 그리고 감옥에 수감된 이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몇 달이 지났기에 그의 탈모도 극단적으로 가속화 되었다. 결국 온전한 대머리가 된 히데요시는 아교로 붙인 가발을 착용하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오고 한 달이 지났지만 죽어버린 모근은 살아나지 않았다.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아교를 바른 촌마게를 시종을 시켜 다시 부착한 히데요시는 군막(軍幕)을 걷고 들어온 부관, 도도 다카토라의 보고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지…… 키노시타 님, 아시가루들이 훈련을 건성건성 하는데 정말 목을 베어야 합니까?”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줄 것이니 잠시 대기하라 하게.”

동생의 부하였던 도도 다카토라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자 히데요시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자신과 흡사하게 미천한 출신에 능력을 인정받은 자이다. 만약 자신이 사형당하면 도도가 자신을 대신해 군을 지휘하리라.

아끼는 사람이기에 희생양이 되는 꼴을 보느니 조금이라도 감싸고 싶었다. 그러니 조선이 최소한 일 년 이상 전쟁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는 동안 훈련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야 하리라.

밖으로 나서니 일렬로 도열한 아시가루들이 불볕더위에 구슬땀을 흘렸지만 대열을 나름 정돈하였다.

히데요시는 차분한 표정으로 아시가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각기 네 열씩 나와 대형을 구성한다. 우측은 도도 자네가 기존에 사용했던 카와우치(川打ち: 강 때리기. 아래로 창을 내려치는 방법)를 쓰고 좌측은 내 지시에 맞추어 조선이 사용한 방식대로 접근한다. 사무라이들은 조선이 했던 방법대로 아시가루를 보조하라.”

각자 창대만 들고 서로에게 슬금슬금 접근한 아시가루 가운데 먼저 움직인 이는 조선의 방식대로 창을 곧게 들고 걸어가기만 하는 좌측 대형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창이 닿을 거리가 되자 우측 대형의 아시가루들이 거대한 창대를 세차게 내려쳤다.

하지만 그 순간, 사무라이들이 커다란 방패를 머리 높이 치켜세우며 떨어지는 창대를 막아댔다.

점차 접근하는 창대 여러 개가 자신의 몸에 닿을 지경이 되자 우측 대형의 아시가루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다! 아래로 기어들어 가 상대의 발목을 잘라내라!”

명령에 따라 방패를 집어 던진 사무라이들이 바닥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간적인 대응은 나름 능력 있는 장수인 도도 다카토라도 할 수 있었다.

“지금 뭘 하는 것이냐! 어서 창대를 내려쳐 사무라이들의 등을 짓뭉개라!”

하지만 창대는 사무라이에게 닿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진형에서 뻗어 나온 네 겹의 창대는 서로 조금씩 엇갈려 창대의 벽을 형성하여 아시가루들이 내리친 창대를 대부분 튕겨내었다.

점차 우측 대형이 뒤로 물러나며 마침내 창대 아래로 기어들어 간 사무라이들이 아시가루들의 발목을 잡고 넘어트리자 우측 대형은 삽시간에 붕괴하였다.

진형 재정비를 위해 크게 뒤로 물러난 우측 대형을 본 히데요시는 그 사이로 나아가 크게 외쳤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내려치기가 왜 조선군에게 통하지 않는지 이유를 이제 알겠나? 저렇게 다양한 수를 쓸 수 있는 밀집대형 앞에서 내려치기는 소용이 없다.”

경험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어느 정도 숙련된 병사라면 진형이 밀집될수록 효과가 극대화하는 병기가 창이었다.

그리고 장점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또한 이런 밀집대형을 갖춘다면 조선군의 기병을 물릴 방법도 생겨난다. 창의 벽에 뛰어들 기병이 있다면 그 기병들은 죽음을 불사한 멍청이거나 더 크고 긴 창을 가진 녀석들이겠지. 물어볼 것이라도 있나?”

아시가루 한 명이 앞으로 크게 나서서 고개를 숙이고 말하였다. 나름 전선에서 구른 사람인지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자였다.

“하지만 조선군도 사람입니다. 창을 찔러서 죽이려면 방패 틈을 타고 들어간 창날이 머리를 으스러트리고 팔과 어깨를 부러트릴 겁니다.”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놈들이 뭉쳐 있으니 창을 내려치면 족족 머리를 두들길 겁니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니 밀집대형이 스스로 붕괴하겠지요.”

“놈들이 전술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거짓 퇴각을 하거나 아예 패색이 짙어져 퇴각한 일은 있어도 사기가 떨어져서 붕괴한 일은 내가 알기로 지난 백 년간 한 번도 없다. 머리통이 뭉개져 뇌수가 쏟아져도 창을 들고 서 있을 놈들이다.”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충신이라 하여도 봉건사회 특유의 느슨한 충성심이 기본인 일본에서는 병력의 5푼(5%)이 당하면 막대한 피해라 여기고 퇴각한다.

이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훗날을 도모하는 방법이니 전술적으로는 옳은 행동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침묵한 아시가루들에게 다시 강조하여 말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조선 놈들은 아무리 패색이 짙어져도 최후의 한 명까지 남아 항전을 거듭할 거다. 삼 할이 죽어 나가고 오 할이 부상을 입어도 차라리 싸우기를 택하겠지.”

“그게 사람입니까? 아니면 강철과 피로 벼려진 괴물입니까?”

“사람이 아니고 괴물이라 생각하라. 항복하여 포로로 잡을 수 있다면 모를까 어중간한 부상을 입은 놈은 가급적 목을 따내 죽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창대를 잡고 곧추세웠다.

이제 오십이 다 되어가는 몸이었지만 여전히 젊은 시절의 힘이 남아 있었는지 창대는 흔들림이 없이 곧게 세워졌다.

“이 장창 대형을 익힌다면 최소한 조선 놈들을 상대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곧게 세운 창대가 너희의 목숨을, 너희 동료의 목숨을 지키고 침략할 조선 놈들을 몰아낼 벽이라 생각하라.”

출세를 거듭한 장수가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라 말하니 누가 듣지 않겠는가.

아시가루들이 창대를 높이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훈련에 몰두하였고 히데요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도 밑바닥부터 출세한 사람이지만 토키치로 어르신처럼 병사들을 다독일 방법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전부일세. 이 창술을 모든 병사들에게 퍼트려야 그나마 승산이 보일 텐데. 놈들과 텟포(조총)로 교전을 벌인다면 아예 승산이 없어.”

“조선군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도 듣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어지간한 병사는 들지도 못하는 거대한 텟포를 누구나 사용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이 부족한 것은 장창진영 하나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구경이 13㎜에 불과한 아르케부스를 사용하는 일본군과 달리 조선군은 충분한 근력을 갖추고 풍부한 화약을 사용하기에 구경이 18㎜에 달하는 헤비 머스킷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가까스로 입수한 조선군의 표준 총기인 보총이 도도 다카토라의 손에 들려 있었다. 무게가 조선 기준 11근(7.04㎏)에 달하기에 오오텟포(대조총)에 가까운 물건이며 위력 또한 끔찍하였다.

히데요시는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우리가 쓰는 텟포는 갑주에 막히는 일이 빈번하지만 조선이 쓰는 텟포는 갑주는커녕 카부토(투구)를 대번에 부수는 일이 빈번하였지. 듣자하니 이것보다 더 무서운 텟포가 있다던데 그 정체는 모르겠군.”

“듣자 하니 이백 보(240m) 밖에서 머리통을 꿰뚫는 텟포가 있다더군요. 하지만 운이 좋아 텟포가 적중한 것을 사거리가 길다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정체도 모르는 물건에 현혹되면 아니 되네. 사거리가 길어봤자 어차피 전쟁은 서로가 칼날로 배를 쑤시면서 승패가 갈리는 법이야.”

조선군이라면 뭔가 더 끔찍한 전술을 들고 올 것 같았지만 싸워보지도 않은 적을 상상하여 뭔 일을 하겠는가.

히데요시는 세차게 고개를 휘젓고 다시 떨어진 가발을 붙인 다음 밖으로 나섰다.

아직도 조정에서는, 정확히는 다케다 가문을 중심으로 모인 다이묘들의 집합체에서는 제대로 된 의견을 내놓지도 못하였다.

어느새 모든 불합리를 떠맡은 상황이 되었지만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난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이 미친 세상에서도 반드시 굳건한 뜻을…….”

“키노시타 어르신! 지금 사카이의 항구에 난리가 났습니다. 포도아(포르투갈) 상인들이 떼로 몰려와 닥치는 대로 귀중품을 구매한다 합니다!”

“그게 뭐 대수라고. 군자금이 모이게 되니 차라리 좋은 일이군.”

“양이 문제입니다. 놈들이 아예 보름 동안 걸터앉아 은자 사십만 냥에 달하는 물건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값을 두 배를 줘도 좋다 하니 팔라 하면서 은자를 더 내놓더군요.”

금병풍은 히데요시도 알고 있었다. 감옥과 같은 후지와라 가문의 저택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던 금박을 씌운 병풍이 아닌가.

히데요시는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훈련을 도도 다카토라에게 일임하고 항구로 나아갔다.

항구에는 각지에서 모인 상인들, 심지어 다이묘의 가신들이 직접 방문해 금병풍을 비롯한 사치품을 사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상인의 물결을 본 히데요시는 멍한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미쳤군, 진짜 미쳤어. 정녕 한 개의 선단이 저 막대한 물량을 사들인단 말인가?”

서양인이 사카이에 들르는 일은 흔하였지만 저렇게 많은 물자를 한 번에 사 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 기껏해야 한 선단이 머물며 은자 십만 냥의 교역을 실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눈에는 문제점이 대번에 보였다.

오다 노부나가 휘하에서 질 좋고 값싼 물자를 사들이며 이를 첫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던 히데요시의 입장에선 상인으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음 좋아! 이건 은자 이천 냥!”

“은자 이천 냥이라니 이렇게 값을 쳐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허름한 금병풍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려나갔다. 그럼에도 포르투갈 상인이라 자칭한 이들은 덤터기를 쓰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물건을 사들였다.

히데요시는 침을 꿀꺽 삼키고 상인들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었다.

“지금 사카이에 소란을 벌인 자가 누구인가! 이렇게 상인들을 끌어모아 시세를 붕괴시키다니 내 쇼군님의 신하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네! 상단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조용해진 상인들의 대열 사이로 히데요시가 파고들었고 이변을 눈치챈 포르투갈 상인, 실제로는 조선에 방문했던 사절단이 웅성거리더니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후안 마르티네스 데 레칼데는 히데요시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상단의 대표인 후안입니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하지만 저희도 모든 물량을 털어내야 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무례를 범했습니다.”

“무례는 되었고 대체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구려. 어서 해명하시오.”

“밖에서 말씀드릴 이야기가 아닌지라 도리가 없습니다. 거기 자네! 그 상점 나에게 팔게!”

옆에 있던 상점을 아예 사들인 후안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렸다.

어차피 조선에서 받은 오십만 냥의 은자를 사용하니 지나치게 돈을 쓴다고 책잡힐 일도 없었다.

히데요시가 찬물을 한 잔 들이켜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후안은 미소를 가득 머금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히데요시에게 진상을, 정확히는 동맹인 조선이 원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스페인이 조선과 싸운 이후로 저희 포르투갈은 필사적으로 조선과 교역하기를 원했고 마침내 길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조선에서 입수한 정보가 있기에 모든 자금을 털어 넣어 물자를 사들였습니다.”

“정보라 하였소? 조선에서 대체 무슨 정보를 입수한 거요?”

히데요시의 고개가 앞으로 움직였고 자신을 상인이라 자처한 후안은 돈에 미친 상인을 연기하며 손가락을 두 개 벌렸다.

히데요시가 시종을 시켜 은이 담긴 자루를 내밀자 후안은 천연덕스럽게 정보를 흘려댔다.

“조선이 모든 함선을 동원하여 일본의 항구를 닥치는 대로 부술 것이라 공언하였습니다. 이미 각지에서 병사들이 집결하고 맹렬한 훈련을 거듭하더군요. 그리되면 저희가 먹고 살길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조금 불편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지금 뭐라 하였소! 조선이 모든 항구를 부순다 하였소?”

히데요시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함정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조선이 원하는 전략이 있어서 서양 상인을 움직였다면 조선 왕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은을 줘서 사치품을 사들이는 행동은 돈 지랄이나 마찬가지이다. 금박에 밥을 싸 먹는 수준이 아니라면 절대 못 할 일이다.

그러니 아직 한 가지 확인 절차가 남았다.

“그러하면 말이오. 다음 상단은 값을 더 치를 것이니 차라리 초석을 파는 것은 어떠시오? 내가 보니 평소에 팔아대던 초석은 없고 오로지 은만 있구려.”

“실은 저희도 초석을 팔아 노예를 사들이려 하였지만 조선에서 짐을 단속하더니 보호용으로 사용할 화약을 제외하고 모조리 웃돈을 주고 사가더군요. 공급을 끊겠다고 막대한 돈을 들이고 있지 뭡니까.”

지금까지 스페인을 비롯한 서양 상인들은 인도에서 초석을 사들여 일본에 몇 배의 가격에 팔며 전쟁포로와 은을 사들였지만 이미 조선과 한 배를 타기로 한 몸이었다.

당연히 사절단의 선창에도 초석이 그득하게 쌓여 있지만 이를 팔면 조선을 배신하는 일이라 내놓지 않았다.

후안의 말을 들은 히데요시는 침을 삼키며 간청하였다.

“어떻게 아니 되겠소? 전쟁을 준비하려면 초석이 필요한데.”

“조선과 척을 질 수는 없으니 조금 우회하겠습니다. 대월(베트남)이라 불리는 나라에 초석을 잔뜩 팔면 시세가 떨어지겠지요. 그러니 어떻게든 대월까지 다녀오시면 될 겁니다.”

“알겠소. 그나저나 전쟁이 언제 벌어지는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조선의 함대가 출병한다는 말이구려. 참으로 고마운 정보이니 내 주군께 간언하여 더욱 많은 물자를 싼값에 구할 수 있게 융통해 보겠소.”

생각대로 조선이 움직였지만 마음이 영 좋지는 않았다. 교토로 돌아와 자신의 주군이라 자처하는 다케다 가츠요리를 접견한 히데요시는 차근차근 보고를 올렸다.

“결국 조선이 택할 방식은 하나입니다. 모든 함대를 동원하여 항구라는 항구를 모조리 불태우고 짓뭉개는 방법이지요. 그러니 정예 병력을 상륙시켜 놈들의 군대를 격파하고 진군하며 강화 협상을 맺는 것입니다.”

택할 방법은 히데요시가 보기에는 하나였다. 소수의 정예 병력을 진격시켜 가급적 빠르게 조선군이 결집하기 전에 격파하고 피해를 가중시켜 강화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쟁이 늘어지면 조선은 사방에서 병사들을 쏟아부어 병력을 돈좌시키며 손실을 누적시키고 마침내 돌아온 함대가 퇴로를 차단하리라.

하지만 다케다 가츠요리는 보고를 듣자 다시 히데요시의 뇌를 뒤흔들 말을 하였다.

“그렇게 되면 조선 왕을 사로잡아 가신으로 삼으면 되겠군.”

“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조선 왕이 전선에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가? 지금 알고 있는 일은 절대 비밀로 하게. 항구가 박살 나건 말건 가능한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 조선을 초토화시키고 왕을 사로잡아 군공을 쌓아야 하네.”

히데요시의 정신이 아득해지며 머리가 휘청거렸다.

강화 협상을 벌이면 전쟁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다케다 가문에 집중되리라. 하지만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억지로 강화 협상이라도 벌이는 게 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다케다 가츠요리는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지금 강화 협상을 벌여봤자 조정이 다시 엉망이 되고 다이묘들이 내란을 일으킬 걸세. 그리되면 내 지위는 어떻게 되겠는가? 자네도 생각이 있으면 말을 해보게.”

히데요시는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간언하였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자신도 살길을 찾아야 하리라.

그 방법이 무엇이든 오로지 목숨이 중요해진 히데요시였다.

#작가의 말

지금쯤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히데요시는 본래 역사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당했던 불합리를 모두 자신이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일은 고니시가 당한 불합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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