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22화
2부 20장 12화 근육이 하면 된다(3)
자신감을 드러내며 나섰지만 조금 걸리기는 한다.
고려시대에 몽골에 의해 파괴되었어도 여전히 문화재가 넘쳐나는 경주를 지키려는 마음과 나에게 복수하려고 이를 가는 일본군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자네를 진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네. 자네와 함께 이만에 달하는 정군(正軍)과 이에 대응하는 유생들을 포함한 보인을 붙인다면 적은 아예 발길을 돌리겠지.”
“하지만 적이 발길을 돌린다면 경주를 비롯한 다른 고장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일세. 진주에서 적과 맞서 싸우려면 군사도 적게 두고 진주 일대에 성을 축조하지도 않아야 한다네. 그리하면 자네가 가진 이점의 상당수를 포기하는 일이라네.”
이게 문제다. 주상전하가 내년을 기대하라 했으니 전쟁 준비에 1년 6개월 정도를 사용할 것 같다.
축성을 한다면 성형요새는 쌓을 수 없어도 주변의 치성(雉城: 보조 성채)으로 겹성이나 문구성은 쌓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걸 쌓는다면 내 악명을 아는 놈들이 발길을 돌려서 문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 진주 일대에 있는 성과 시설을 이용한 방어를 해야 한다.
“부족하더라도 진주 일대의 산성을 보수하고 각 시설과 요충지에 장대(將臺)와 보(堡: 작은 성)를 만들어 적과 맞서야겠군요. 하지만 적의 규모를 예측할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염려하지 말게. 왜국에서 보내올 수 있는 군대의 규모는 잘해야 이십만, 십만의 정군과 십만의 보인이 한계가 아니겠는가. 왜추가 미쳐서 전군을 진주로 향하지 않는 한 기껏해야 삼만 내외의 적을 보내오는 게 전부이네.”
이이의 말을 듣자 현대에서 봤던 사극이 떠올랐다.
본래 조선시대에 진주성 전투는 두 번 치러졌었고 첫 전투는 3만에 달하는 왜군이 진주성을 기습했었지.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이 사망하였지만 3만에 달하는 왜군을 격퇴하였고, 이후 아무런 전략적 목적도 없이 전공 쌓기와 김시민에 대한 복수 하나만을 목표로 삼은 채 9만에 달하는 왜군이 쳐들어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 함락당했다.
이이는 상식적인 선에서 적의 공세를 예측했지만 이미 나는 적의 자존심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장수이다.
내가 진주성에 머문다는 소리를 들으면 히데요시는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대를 동원할 것이 분명했다.
“제가 보기에는 오만에 달하는 적의 군세가 몰려들 것 같습니다. 왜장 등길랑(히데요시)이 주공에 합류하지 않는다면 오만, 주공에 합류한다면 삼만 정도겠지요.”
“진주성은 기껏해야 구천 명이 머무를 수 있는 성일세. 주변의 돈대와 산성을 감안해도 일만 육천 명이 전부이지. 더군다나 절반은 보인(保人)이니 실질적인 병력은 팔천일세. 이들로 오만에 달하는 병사를 막을 방법은 없으니 문제이네.”
“익히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전라도 일대에서 올라온 지방군을 후방에 두어 적의 공격을 유도함은 어떠한지요. 여차하여 성이 함락될 위기에 놓이면 바로 지원에 나서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수성전이 아니고 공방(攻防)전이 된다네. 결국 막아내도 큰 타격을 입으니 이 어찌 답답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수성전은 제한된 면적으로 싸우는 전투이다.
공격하는 쪽은 삽을 들고 해자를 메우게 만들면 충분하지만 수비하는 쪽은 규모보다 많은 병력을 밀어 넣어봤자 식량과 보급만 축낼 뿐 전선에 나서서 싸울 방법이 없다.
진주성의 규모를 보면 4,500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창칼을 휘두르며 적을 막고 이와 같은 수의 보인들이 돌을 던지고 끓는 물을 부어대거나 파손된 성벽을 보수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뭐라 했었지? 입신체비사?
“유생들을 보인으로 쓸 수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수효가 얼마나 됩니까?”
“아국의 인구 중에 양반은 일 푼(1%)이 조금 넘고 이들 가운데 장성한 남성이자 전선에 나설 수 있으며 사지가 멀쩡한 이들을 감안하면 대략 일 리(0.1%) 정도인 일만사천여 명의 유생들이 합류하겠지.”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전라도 전체의 유생들이 보인으로 합류한다면 구천 명이 머무는 성이 아니고 세 배에 달하는 삼만 명이 지키는 성과 대등한 힘을 보여줄 겁니다.”
진주성의 전투력을 끌어올릴 방법은 단 하나이다. 모든 보인을 입신체비사로 채워서 전부 인간 흉기로 만드는 방법이지.
입신체비를 익혔으니 힘은 충분하고 육예(六藝)에 속하는 활쏘기를 기본으로 익혀 활을 150보(270m)까지 날릴 수 있다.
따라올 머슴이나 여식들이면 보인의 숫자를 채우고 남는다.
그리고 이들이 체면을 지키겠다며 가져올 보급까지 합쳐진다면? 5만에 달하는 적의 군세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
이이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감탄하며 말하였다.
“어차피 진주가 뚫린다면 전라도로 향하는 길목이 열리니 유생들이 무조건 호응할걸세. 최소한 이천오백 명에 달하는 유생들이 합류하면 적이 얼마나 비참한 몰골로 짓뭉개질지 상상조차 안 되는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공성전을 생각하였는데 근육을 포함한 공성전을 생각이라도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하주도 방비에서는 근육을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무렴, 누가 남긴 말인지는 모르지만 왜인은 통제해야 하고 통제는 근육일세. 더군다나 입신체비사는 근육을 통제할 수 있다네. 고로 왜인은 근육하면 충분하지. 자네의 말이 이치에 맞는군.”
성을 쌓지 못하면 근육으로 성을 대신하면 된다. 여기에 타치바나를 시작으로 무용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녀석들을 추가로 들인다면 진주성은 절대 뚫을 수 없는 요새가 되리라.
물론 히데요시가 와서 오만 대군으로 석 달 내내 몰아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만큼 전쟁이 길어지겠는가.
진주성의 문제는 해결했으니 이제 군대를 배분할 차례가 되었다.
“대계(大系)는 세워놓았으니 이제 상세하게 군을 배분할 차례가 되었소이다. 문제는 각 지방에서 올라올 군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배분하면 일을 두 번 하는 격이 되어서 문제이지.”
“닷새는 걸릴 것이니 그동안 지도를 좀 더 크게 넓히는 것은 어떠합니까? 제법 커다란 지도이지만 기껏해야 전지(全紙: 자르지 않은 종이, 신문지 크기)에 불과합니다.”
“정지운 영감처럼 환갑이 넘은 사람은 애체(礙滯: 안경)를 사용해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나와 이이야 노안(老眼)이 오지 않아서 큰 문제가 아니지만 오십이 넘은 관료들은 슬슬 눈이 침침해질 시기이기에 상세한 전략을 수립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그런데 기왕 닷새의 시간이 있다면 지도를 개량하는 게 더욱 좋겠지.
“닷새의 시일이 남는다면 제가 지도를 조금 더 개량해 보겠습니다. 일전에 제 부친께서 의주에 재직하시며 지형을 진흙과 나무로 쌓아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 지도를 크게 키워 만들며 지형을 표현하면 좋을 것 같군요.”
“하긴 목업(木業: mockup)이라고 선박을 나무로 표현해 만드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지도를 나무를 깎아 만든다면 공이 너무나 많이 들어갈 것이네.”
“나무를 깎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다 생각이 있으니 종이와 풀을 비롯한 기자재를 준비해 주십시오.”
기왕 막아내려면 철저히 막아내야지. 상세한 지형도를 만들면 주민의 피난 계획도 잘 세울 수 있고 혹시나 모르는 왜군의 침입 경로도 봉쇄할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모형을 만들면 지형을 파악하기 쉬워지는 법이다.
이이가 지휘자이고 내가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관료들은 그러려니 하고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자네가 가장 큰 책무를 떠안게 되어 유감이지만 어느 누가 자네를 대신 할 수 있겠는가. 닷새 동안 각 지방의 서류를 점검할 것이니 자네는 지도를 생각한 대로 만들어두게나.”
관원들이 물러나고 이제 나 혼자 남았다. 어느새 도공(圖工: 화가)들이 다가와 지도를 몇 배 크기로 키우는 동안 나는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다.
현대에 지형을 나타낸 모형이야 매번 건축과 설계 마감 때마다 만들었다. 당시에는 값싼 재료인 우드락으로 등고선을 따라 하나하나 잘라나가며 접착제로 붙여서 만들었지.
하지만 여기는 조선시대고 플라스틱은 꿈도 못 꿀 상황이다. 대신에 내게 주어진 모형 재료는 현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이 호화로운 녀석, 짚을 섞어 만든 한지였다.
비록 장판으로 사용하는 녀석이지만 양이 많으면 값이 비싸기는 매한가지이다.
문짝만 한 거대한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내가 모형을 만드는 데 사용할 지도, 산세만 대충 표현한 복사본 지도가 있었다.
“쌓아서 모델을 만들려면 등고선이 필요하지. 높이야 일정하지 않고 제대로 정해져 있지도 않지만 감안해서 쌓으면 충분하니까. 산의 표현이 중요하지 수치가 중요한 건 아니야.”
이 시대의 지도에서 산세를 표현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산등성이부터 산 정상까지 선을 그리고 산세가 험하면 선이 두꺼워지는 방식이다. 여기에 등고선을 감안해 표현하였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 이걸 써야지 뭘 하겠는가.
이걸 하급 관원들과 칼로 잘라내어 모형을 쌓아나가니 관원들은 영문을 모르고 내 지시에 맞게 칼을 놀려 종이를 잘라 나갔다.
“어떤 물건이 완성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이 선들은 무엇입니까? 이런 선이 있으니 복잡해 눈이 아플 지경입니다.”
“등고선(等高線)이라네, 지형의 높낮이가 다른데 같은 높이끼리 선을 이어가면 얼마나 험한 산인지, 혹은 느슨한 능선이나 골짜기가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등고선이야 내가 임시로 만든 녀석이지만, 등고선을 만들려면 평지부터 높이를 하나하나 규정해야 하는데 이건 현대처럼 GPS 측량기가 없다면 수십 년이 걸리는 고된 작업이다.
대학 시절로 돌아와 거대한 마감 모형을 만들 때처럼 정신없이 종이를 썰어내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종이의 높낮이도 일정하지 않고 접착제로 쌀을 쑤어 만든 풀을 사용하니 종이가 조금 울기 시작했지만 나도 경험이 없는 놈은 아니다.
“종이가 울기 시작했으니 다리미를 가져오게. 이럴 때에는 다리미와 인두로 지져서 습기를 날리고 형태를 바로잡으면 된다네.”
현대에는 드라이기를 사용했지만 여기는 다리미로 눌러 지져야지 방법이 없다.
종이가 차츰차츰 쌓여가자 관원들도 눈을 굴리며 완성되는 거대한 모형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대체 이걸 어디서 배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수없이 많은 종이를 낭비한다 생각해 허탈하였는데 점점 산의 모습이 바로잡히는군요.”
“부친께서 의주에 근무하실 때 점토와 나무를 섞어 지형을 묘사한 적이 있다네. 이를 온전히 표현하려고 고민해 왔는데 지금에 와서 부친께 배운 것을 재현하는군. 이를 목업과 마찬가지로 지업(紙業)이라 하세.”
아마 이 역사에서는 지업이라고 한지나 두꺼운 종이를 잔뜩 사용한 모델이 건축과 학생들의 표준 모형 제작방법이 되지 않을까.
참 비극적인 일이고 건축과 학생들의 지갑이 남아나지 않겠지만 먼 미래의 일이다.
나흘 동안 쉴 새 없이 모형을 만드니 남북으로는 동래부터 성주(현대의 칠곡군)까지, 동서로는 포항부터 진주 너머 하남(남해와 하동을 합친 지역)까지 표현한 문짝만 한 지형도가 완성되었고 도공이 와서 채색까지 마쳤다.
여기에 도성 전체에 퍼진 변형 승근도. 내가 세스페데스를 이기게 만들려고 만든 근육마블에서 사용하는 향교와 주택의 작은 모형을 올리니 그럴싸한 지형도가 완성되었다.
“마치 솔개가 되어 머나먼 하늘에서 땅을 바라본 것 같습니다. 지도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으니 지업이라는 물건은 참으로 요긴하게 쓰이겠군요.”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네. 등고선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으니 산세를 잘 아는 이가 온다면 대번에 지도의 허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네.”
축척을 추산하면 대략 5만 분의 1, 등고선도 대충 만든 지도를 기반으로 한 모형에 불과한 데다 지형의 고저 차를 과장해서 표현하기 위해 높이를 10배로 부풀렸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다시 소집된 관원들이 지도를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자네가 이런 기물을 창안할 줄은 몰랐다네. 아무렴! 지형을 알아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법인데 왜인들이 기껏해야 손바닥 크기의 지도로 눈을 굴릴 때 우리는 훤히 전장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거 애체를 가져왔는데 이래서야 애체가 필요하지도 않겠군. 그나저나 산세가 험한 것 같은데. 이거 북방의 산세와 버금갈 정도가 아닌가.”
“산세는 알아보기 쉽게 열 배 정도 부풀려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길목이 훤하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정지운도 안경을 벗고 흡족하게 말하였고 이이는 내 작업을 이미 알고 있어서 바둑알 대신 군사를 표현한 작은 모형을 여러 개 가져왔다.
아마 대충 사람을 표현한 모형이 병사 오천 명을 나타낸 것이리라.
“작전대로 진행하면 수군은 왜의 사국(시코쿠)을 공격하고 돌아올 것이네. 온전히 육군만 따져 보았을 때 각 지방의 치안을 담당할 최소한의 병사를 제외하면 정병으로 대략 십이만의 군대를 다룰 수 있겠지.”
“지금 아국의 병사 가운데 팔도에 있는 병사를 모두 합쳐도 십사만 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대양도의 병사를 빼내 구주(큐슈)를 방비한다고 봐도 너무 많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가운데 조상(여진족 국가인 금나라, 북인들은 고구려를 첫 조상이라 칭한다)처럼 배를 타고 왜를 정벌하겠다는 놈들이 많아 골머리를 썩이니까. 적게 잡아도 이만 명 정도는 합류할 걸세.”
정지운은 호분위의 수장이자 부총관(副摠管: 종2품 무관)에 불과하지만 북인들의 우상이자 정신적 지주이다.
조선 왕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믿어야지.
이이는 우선 대구에 군대를 표현한 말을 올려두었다.
“북인들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다 하였으니 이들이 최소 이만, 많으면 삼만 기의 기병을 끌고 내려온다고 가정한 숫자일세. 그렇다면 우선 주상전하가 인솔할 군을 따로 빼내야겠지.”
대구에 주상전하를 상징하는 손바닥 크기의 어기(御旗)가 올라가고 오위를 상징하는 듯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말 12개가 올라왔다.
그리고 각지에서 지방군을 나타내는 검은색 말이 지형 곳곳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경주로 향하는 길목인 양산에는 빼어난 장수인 권율과 일만 오천의 정병을 두어 적도가 엄습할 겨를도 두지 않을 작정이네. 그리고 우회로로 삼을 고령에도 일만의 정병을 두고…….”
진주로 향하는 길목인 함안은 열렸지만 나머지 우회로 혹은 지형이 어설프게 열려 있어 적이 공격하기 좋은 장소에는 하나같이 말이 놓였다.
합천, 밀양, 양산 그리고 고령까지 거대한 포위망이 형성되었고 이이는 한참 동안 모형을 내려다보다 말하였다.
“임시로 왜의 정병 십여만 명이 침공한다고 가정하고 백성이 피난할 시일이 얼마나 되는지 예측하여 보게. 적을 얼마나 막아내면 좋을지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도의 한 치가 실지로는 넉 리가 조금 넘습니다. 왜병들이 하루에 오십 리(20㎞)를 진격할 수 있으니 전투가 끝나고 하루 휴식을 취한 뒤에는 열두 치(41.6㎝)를 움직이면 될 것입니다. 백성들은 절반 정도 움직이겠지요.”
몇 번의 가상 전투가 반복되었다.
아예 동래가 하루 만에 뚫렸다 가정하면 김해와 밀양의 백성들까지 포로로 잡히지만, 동래가 삼 일을 버티고 다시 창녕과 영산이 이틀을 버티는 식으로 적의 진군을 하루 단위로 끊어내니 대다수의 백성의 활로가 열렸다.
한 달 동안 대구까지 활로를 뚫어낸 왜군의 경로를 계산한 이이는 군관들과 함께 논의를 하며 다시 우리 군이 필요한 병사를 충원하기를 반복하였다.
거의 이틀 동안 이어진 군의(軍議)는 기본 목표를 수립한 채 막을 내렸다.
“서애 자네가 만든 지업이 없었다면 아직도 지도를 잡고 씨름하고 있겠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병졸들을 맹렬히 훈련시키고 각지의 부족한 방비를 더욱 벌충하는 방법이라네.”
“하지만 작전은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죽어 나가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정지운이 초를 쳤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철저히 계획을 세워도 며칠이 지나면 적의 움직임이 망가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이는 오히려 활짝 웃으며 정지운을 보고 답하였다.
“그러하면 북인 병력을 따로 떼어 오천을 진주에. 오천을 합천에 두어 별동대로 삼으면 충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기에 찬 북인들이 토벌을 원하지 않습니까.”
전쟁이 시작되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서류를 잡는 시점은 끝났고 어서 경상도로 내려가 전장으로 쓰일 땅을 미리 정비해 둬야 하리라.
#작가의 말
축척을 가진 최초의 조선 지도는 동국대지도라는 유물입니다. 영조 시대의 녀석인데 이게 대동여지도의 증조할아버지뻘 되는 녀석이지요.
지금 사용하는 조선 전도는 도량형 혼돈은 없지만 대동여지도보다 조금 부족한 지도이기에 축척이 조금 불안정할 뿐 엄연히 축척이 있는 지도입니다.
성룡이가 만든 녀석은 아래와 같은 지형 모델입니다. 축적도 불안정하고 등고도 과장되어 있지만 이 시대에는 두고두고 쓰일 물건이지요.
출처 : https://www.geograph.org.uk/more.php?id=412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