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20화
2부 20장 10화 하면 된다(1)
익숙하지 않은 전장은 움직이는 것으로도 막대한 피로가 쌓이는 법이고 막는 사람은 적의 움직임을 쉽게 꿰뚫을 수 있다. 여기에 동래부터 방어진을 만든다면 적의 피해를 끝없이 부풀릴 수 있으리라.
여기에 훈련원 출신 병사들이 조금만 합류하고 지방 수비체계를 개편하면 왜군과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반드시 지켜낼 수 있겠지.
그 과정에서 왜군이 입을 막대한 피해를 감안하면 효율적이지만 이건 잘못된 방법이다.
“전하! 아니 되옵나이다! 왜를 토벌하자는 목적에 눈이 멀어 백성들이 피폐해질 수단을 사용하면 아니 되는 법이옵나이다.”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백성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이해득실을 따지기 이전에 백성들이 전화에 휩싸이지 않도록 여러 번의 숙고(熟考)를 거쳐야 하옵나이다.”
이이가 고개를 숙이며 간언을 올리니 목소리에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나 또한 이이의 의견에 동조하여 고개를 숙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해도 이는 백성의 목숨이 걸린 수단이다.
역사가 변한 이 시대에는 통촉하다, 사극에서는 밥 먹듯 나오는 아랫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헤아려 달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사용하더라도 절육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나 사용하지.
하지만 지금까지 이십 년 넘게 관료생활을 해오며 묵묵히 일만 하던 내 입에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말이 나오자 주상전하도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한참을 생각하던 주상전하께서는 손을 들어 우리를 제지하면서 사과하였다.
“경들의 충심을 시험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네. 과인이 너무 앞서 나간 것이니 이를 제지하여 주어 참으로 고맙군. 일 할 오 푼에 달하는 백성들이 기거하는 경상도가 전장이 되면 참으로 염두에 둘 것이 많은 법이네.”
“신의 뜻을 헤아려 주시니 은덕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일단 비변사가 완전히 소집되기도 전에 성과를 거두었으니 논의를 시작하세나. 신임 병판(兵判)부터 각 군관들과 의정부 관원까지 모두 소집할 것이네.”
최소한 목적이 명확하다면 수단이라도 확실해야 한다.
이이와 따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눈빛을 주고받아 주상전하에게 반박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주상전하의 눈빛을 보니 뭔가가 어색한 점이 있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지만 최근 삼 년 동안 서신만 주고받았던 사이라 눈치챌 방법이 없어서 답답한 노릇이다.
“우선 아국이 십만의 정병과 십만의 보인 그리고 모든 수영을 앞세워 왜를 토벌할 경우 얼마나 많은 예산이 소모되겠는가. 짐작할 방도는 차고 넘칠 것이니 논의하여 보세.”
도성에서 업무를 진행하던 관리들이 모조리 집결하였고 편전에는 거대한 탁자를 여럿 붙여 논의를 실시할 준비를 마쳤다.
전지(全紙) 크기로 확대시킨 일본 전도를 확인한 윤두수는 먼저 의견을 제시하였다.
“신 윤두수 아뢰옵나이다. 개전 이후 왜추(倭酋)를 대번에 추포할 수 있다면 길게 잡아 여섯 달이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이후의 일은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옵니다.”
신임 병조판서인 윤두수는 일본 전도에 압정을 꽂아가며 공격 경로를 예측하였다. 일본의 수도 교토까지 경로는 해운을 통한 보급으로 여섯 달이면 충분해 보였고 계산도 금방 끝났다.
“우선 여섯 달 이내에 경도를 함락시킨다 하면 대략 여섯 번 정도 적도를 무찔러야 하옵니다. 아국이 육전에서 화약을 사용할 적에 정병 네 명당 한 근의 화약을 사용하옵니다.”
“화약은 대략 십오만 근을 사용하겠군. 하지만 수군은 훨씬 많은 양을 사용할 것이네.”
“수군의 경우도 적의 함선을 모조리 진멸(殄滅)한다고 여기면 대략 십오만 근을 사용할 것이옵나이다. 여기에 여유분의 화약을 감안하면 사십만 근이 필요하옵나이다.”
“지금 군기시에 비축된 화약이 이십만 근에 각지의 요새와 산성에 비축된 화약을 합치면 삼십만 근에 달할 것이네. 천축에서 여유를 감안해 삼십만 근의 염초를 수입하면 충분하겠군.”
하주도 방어선에서 화약을 실컷 사용해서 6만 근 정도 사용했었지. 사극인지 어디인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비축한 화약이 2만7천 근이라 했는데 이쯤 되면 근육이 아니고 화약의 나라가 아닐까.
하지만 군비에 화약값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오나 십만에 달하는 정병의 녹봉도 문제이옵니다. 원정으로 인한 추가 녹봉 지급과 승전으로 인한 보상을 감안하면 한 명당 녹봉을 은자 여섯 냥은 더 지급함이 법도이옵나이다. 또한 보인도 은자 두 냥은 받아야 이를 감내할 것이옵나이다.”
“그리되면 수군을 감안할 경우 은자 이백만 냥이 추가로 들어가는군. 이 또한 비축한 자금으로 융통할 수 있는 법일세. 하지만 왜추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놈은 아닐 텐데.”
적을 이길 수 있지만 도주하여 전쟁을 질질 끌 경우 벌어질 군자금 소모에 대한 계산이 필요하다.
윤두수는 지도 위의 장기짝을 들고 잠시 고민하더니 의견을 내놓았다.
“만에 하나라도 왜추가 도주를 택한다면 옛 영토인 갑비(甲斐: 가이, 현 야마나시 현)로 도주할 것인데 산속에 있다 합니다. 듣자 하니 파촉(巴蜀)과 버금가는 천혜의 요새라 하옵니다.”
“갑비 지역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입수한 이가 있던가?”
“없사옵니다. 불민하게도 왜추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경도(교토) 일대에만 상단을 빙자한 간자를 보냈을 뿐 험지에 속하는 갑비는 인근 항구에만 사람을 보냈사옵니다.
정보가 부족해도 위치는 알고 있었는지 다케다 세력을 상징하는 장기짝의 위치는 멀리 동쪽으로 옮겨갔다.
윤두수는 빈약한 지도를 못마땅해했는지 붓통을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건네주며 말하였다.
“자네는 항복을 하였으니 정보를 실토함이 마땅하네. 지장(智將)으로 명성이 있는 자이니 어떠한 산이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모른다 하면 세 살 아이도 비웃을 것이네.”
다케다의 가신으로 오랜 시간 일한 사나다 마사유키는 아예 세필을 들어 지도에 산을 그려 넣었다.
빼곡하게 그려진 산에 모두가 질겁하였지만 설명을 들으니 더욱 가관이었다.
“가이는 북쪽에 간토(関東) 산지와 서쪽에 아카이시(赤石)산맥 그리고 동남쪽에 후지 산과 거대한 수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내부를 평정하는데 두 대에 걸쳐서 노력한 지역이지요.”
“산맥이 높다 하면 대관령에 견주는가? 왜국의 지리에 대해 상세히는 모르지만 혹여나 백두산과 견줄 수 있다면 참으로 곤란할 걸세.”
“백두산이 어떠한 산인지 모르지만 후지 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날이 추울 때에는 정상의 눈이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곳입니다. 나머지 산도 여기에 부족할 뿐 일본 전체에서 가장 험한 산입니다.”
지금은 소빙하기가 시작될 무렵이라 백두산에도 가끔 만년설이 생긴다. 하지만 훨씬 남쪽이고 따스한 일본의 후지 산도 가끔 만년설이 생기다니.
다들 입을 열지 못하니 내가 한마디를 보탰다.
“그럼 궁금한 점이 풀린 것 같군. 왜장 등길랑(히데요시)이 퇴각할 때에 험준한 고산준봉을 헤집었는데 여기에 갑비 지역 출신의 산지기가 앞서 나가 산세를 파악했겠군. 구중산(큐쥬산)과 견준다면 어떤가?”
“큐쥬산도 산세가 험하다 하지만 가이 일대에서는 그리 높은 산은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기타다케 산(北岳) 주변의 산과 비견하여도 낮은 산이니 동네 뒷산 정도겠지요.”
내가 지나가 보니 최소 설악산 수준이었는데?
하지만 현대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번째로 근무한 회사의 부장이 등산 중독자였는데 일본까지 가서 해발 3,000m가 넘는 기타다케 산을 오르다 다 가지도 못하고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던가.
아무리 험해도 사람 사는 동네이지만 적의 피난처인 가이 지방까지 공격하려면 최소 태백산맥, 험한 길로 우회해야 하면 거의 개마고원을 종주하는 공격로를 뚫어내는 격이다.
주상전하께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결국 정공법으로 나선다면 최소한 관동을 넘어 군을 움직이는 고난을 겪는다는 말이로군. 만에 하나도 아닐세, 내가 왜추라면 아국이 총공세를 펼치자마자 다른 왜장들이 도륙당하는 동안 옛 분토(糞土)로 들어가 칩거할 것이네.”
“임해도감의 장졸들을 동원해 적의 산세를 우회하여 공격을 취하면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것이옵나이다.”
“그리하면 수군의 병사로 동원된 임해도감의 병력을 재편성하는 일이 필요하겠지. 또한 임해도감의 특기는 기습이지 전면전이 아닐세.”
임해도감이 산을 잘 탄다 해도 어디까지나 가벼운 장비만 갖춘 병력이다. 철저하게 틀어박혀 수비하면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리라.
윤두수는 마지못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오나 아국을 막아낼 수 있어도 결국 험준한 산 속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할 것이옵니다. 훗날이 되면 내란으로 자멸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피폐해진 왜국에 갑비 금광(甲斐金山: 가이 긴잔)에서 나온 금을 풀어 각 영주를 달랜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아국을 침공한 적의 수괴를 벌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이네.”
결국 적이 틀어박혀 수비 태세를 갖추면 험준한 고산준령을 억지로 뚫으며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요, 뚫지 않으면 금광을 캐내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남겨두는 상황이다.
물론 재정을 죄다 털어내면 어떤 방어라도 돌파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최소 십 년 이상 성장 동력으로 사용할 재정이 고갈되리라.
아마 이지함이 예견한 조선의 미래는 여기서 덮어놓고 공격한 미래일 것이다.
성장 동력으로 쓰일 자금이 소실되고 이주 계획이 동결되며 차츰 늘어나는 인구에 짓눌리는 상황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가.
주상전하는 한참을 고민하다 괜히 눈을 위로 올리고 중얼거렸다.
“그러하면 전쟁은 이 년이 넘어가겠군. 한 해에 군비로 오백만 냥의 은자를 추가로 소모하니 군비를 보충하기 위하여 세율을 사 할로 증액하면 충분할 것이네.”
지금 조선의 세율은 2할, 여기에 지방세가 더 달라붙어서 5푼이 증액인데 이걸 4할로 올리면 전국시대의 일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결국 견디지 못한 박순이 청을 올렸다.
“전하! 차라리 수군을 모조리 동원하여 왜국의 각 항구를 파괴하고 모든 선박을 불태워 저들이 스스로 싸우다 지치게 하시옵소서.”
“왜인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 분명하다네. 아국이 함선을 먼저 보내 일방적으로 공세를 취하면 이를 기회로 삼을 것일세. 이를테면 아국에 최대한 많은 대군을 보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거는 격이지.”
세금을 사 할로 올린다고 전쟁 비용을 충당한다면 진작 올리자 했겠지. 주상전하는 세금을 올릴 생각은 없었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유도하기 위한 운을 띄운 것이다.
이후에는 나와 이이가 들었던 대화의 흐름대로 이어졌다. 어느새 주상전하의 의견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게 만들어 최소한의 이득으로 최대한의 손실을 보자는 의견으로 돌변하였다.
여기에 한 가지 의견이 덧붙여졌다.
“명국 황상께서 혜안을 보이셨네.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던 왜국이 아국을 침공하여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열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셨지. 만약 이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겠는가?”
당연히 일본의 조선 침략 소식을 만력제가 자신에게 반대한, 정확히는 육주성의 온전한 할양에 반대한 신하들을 역모 혐의를 붙여 목을 칼춤을 추며 무 베듯 썰어버릴 거고 압수한 재산은 모조리 조선에 전달될 것이다.
실패해도 문제는 없다. 만력제는 이미 태업과 축재(蓄財)를 일삼으며 최소 일천만 냥이 넘는 내탕금을 축적하였다더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 조선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내리겠는가.
결국 일본이 발끈해 조선을 침략한 순간 전쟁 비용은 명나라에서 제공할 것이며 외교 관계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수다.
하지만 이이는 여전히 계획에 반대하였고 나 또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오나 전하, 군비(軍費)가 많이 소모된다 하여도 군병(軍兵)은 결국 적과 맞서 싸우거나 아국의 기휘를 범한 적도를 무찌르려는 목적으로 있사옵니다. 하오나 백성들이 전란에 시달리게 만들어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그릇된 일이옵니다.”
“좌찬성이 보기에는 무엇이 필요한 것 같은가. 내 이러한 계책을 세운 연유는 태종대왕께서 옛 북인들 가운데 난폭한 이들을 아국의 강역으로 유도하여 격멸함을 떠올린 덕분이네.”
“하오나 당시 경원은 전가사변(全家徙邊)당한 죄인이 해를 입었고 경상도는 옛적부터 아국의 강역이었사옵니다. 백성들 모두가 전화에 휩싸이지 않고 온전히 피난할 방법이 필요하옵나이다. 이를테면 각지의 산성을 정비하고 산성을 정비…….”
이이가 왜 날 뚫어져라 보는지 뒤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이십 년 전에 이현전 부수찬으로 일할 적에 지방으로 내려가 각지의 산성을 정비한 적이 있었다. 강원도부터 경상도까지 각지의 산성을 정비했었지!
주상전하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나는 상세한 일은 모르겠으니 상세한 일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태도가 아닌가.
본래 의도와 반대로 이이와 언쟁을 시작하기 전 사양하는 말을 하였다.
“제가 이십여 년 전에 이현전에 근무할 당시 각지의 산성을 보수하였습니다. 하오나 영서(嶺西) 지방부터 남부로 큰 산성 십여 개를 보수하고 측량한 것이 전부이옵나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유성룡이 아닌가? 왜장 등길랑의 공세를 저지하고 역으로 적을 어육으로 만든 사람이 젊은 시절에 온 힘을 다한 흔적이 남아 있다네. 좌찬성이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게나.”
이이와 함께 합을 맞춰 주상전하를 말려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새 주상전하를 대신해 이이의 공격을 받아내는 방패 신세가 되었지만 이런 흐름을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의 시야가 좁은 거다.
이이는 어느새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일단 군량이 문제라네, 적도가 엄습하면 곡창(穀倉)을 노리는 일은 당연하네. 적을 약탈해 보급을 취하려는 자는 졸장 중의 졸장이지만 적의 보급을 강탈하는 일은 당연하네.”
“진해대군께서 북한산성의 행궁을 만들 때 제가 의견을 낸 적이 있습니다. 곳간에 여유가 있으면 어디에도 쓰일 수 있으니 가급적 여유분의 건물을 많이 두라 하였습니다. 당연히 각지의 산성에도 곳간 용도의 건물이 넘쳐납니다.”
“백성들의 식량은 큰 문제가 없다 하여도 소의 여물이 문제라네. 산속 어디에 여물이 있단 말인가? 소를 왜인들의 식량으로 내모는 꼴이 아닌가.”
“소는 초록색으로 변해 독이 올라온 감자를 먹을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산성에 공터가 있으면 감자 씨앗을 뿌려 찬거리로 삼으라 하였고 산성 안이 죄다 감자로 뒤덮였습니다.”
내가 해온 업무는 완벽함 그 이상을 추구했는데 세월이 지나 모조리 쓰이다니 나도 황당할 지경이다.
내가 해온 일이 쌓이고 쌓여 희대의 천재 이이의 공격을 막는 방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