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17화
2부 20장 7화 밑작업(1)
조정에 장계를 올리고 다른 고장으로 찾아갈지 아니면 복귀하여 다른 업무를 시작할지 기다리는 동안, 하주도 백성들을 적당히 보살피며 이들의 적응을 도왔다.
갑자기 조선 땅으로 옮겨온 이들이니 풍습이 달라 적응에 시일이 걸릴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언어가 어중간하게 같다는 점이다.
상인을 소집하여 글을 가르치니 문제가 드러났다.
“예끼! 이보시오! 쌀밥을 왜 고환이라 부르는 것이오?”
“와타시타치(저희)가 배운 바로는 고항(밥)이 고항입니다.”
“와타시타치는 저희라는 단어고 고항은 밥이라는 단어인데 대체 왜 이러시나. 내가 왜국의 말을 좀 알고 있기는 한데 대화하기가 오히려 왜인보다 힘들어서 이를 어쩌나.”
하주도는 조선의 문법을 사용하고 일본어의 단어를 사용한다. 눈치가 생명인 상인들은 조선의 단어를 익히거나 일본어의 문법을 익혀서 어느 한 언어에 통달한 경우가 많았지만 백성들은 아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본의 히라가나 대신 훈민정음을 배운 사람이 많다는 거다.
훈도는 상인들에게 속성으로 익힐 수 있도록 단어집을 작성하겠다 말하였고 상인들은 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올렸다.
“저희를 다스리셨던 관찰사님이 저희에게 말을 가르쳐 주신다 하시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심혈을 기울여 한 사람의 상인으로 재기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단어만 익힐 수 있다면 말이 온전히 통할 것 같으니 몇 년 안에 다른 이들과 온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구려. 참으로 고단한 일이지만 앞으로 시일을 내어 열심히 힘써주시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쫄쫄 굶어야 하는 상인들이니 배움은 빠르겠지. 이들 가운데 훈민정음을 익히지 않은 이가 오히려 적은 편이니 조선 기준으로 상당한 인재들이다.
이들을 가르친 훈도를 불러 물어보니 그도 충격을 받았는지 한숨을 쉬었다.
“하주도에서 백성들과 대화를 나눌 적에는 말재주가 좋고 아국의 말을 온전히 익힌 이들이 나서서 대화를 행하였지요. 하지만 지금 평범한 이와 대화를 나누니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옳은 말이네. 관리를 만날 적에야 촌장이 나서야 편한 법이지 백성끼리 어울리려면 언어의 벽을 넘어서야 할 것이네. 혹여나 아국의 말을 익히게 이들을 가르친다면 어떻겠나?”
“기껏해야 겨울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할 적에 아이들을 데려다 서당에서 말을 가르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아이가 말을 배우면 부모도 이를 따라 배우는 격입니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앞으로 고생할 사람들에게 이런 말 외에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유감이다. 그렇다고 전근대에 백성들을 잡아놓고 속성강의를 시킬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지만 단어만 빠르게 익히면 만사가 해결되는 법이다. 회화와 단어를 결합하여 현대의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것과 유사한 서적을 만들려 했다.
작업에 착수하고 보니 이것도 수양대군이 이미 만들어두었더라.
“부제조께서 저술하시는 서적은 일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세조대왕께서 원손(元孫: 왕세자의 장남)으로 계실 적에 수양대군께서 이와 흡사한 물건을 창안한 적이 있습니다.”
“수양대군께서 대체 개입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린 시절에는 이런 녀석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 내 아이들도 모두 정음부터 깨우치게 하였고.”
“그거야 수양대군께서 창안한 물건은 안평대군께서 회화를 다시 그리셨기에 진귀한 물건이 되어버린 덕분이지요. 뭇 백성들이 읽을 수 있는 서적에는 회화를 세밀히 묘사하지 못합니다.”
나보다 먼저 빙의한 수양대군이지만 한계는 있었다.
본래 역사의 단종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만들어서 요구 사항이 지나치게 높았고 왕실이나 세도가에 알음알음 전해질 뿐 민간계층에는 보급하지 못한 것이다.
민간에 보급할 물건이니 단색 인쇄가 한계이며 판화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며 지나치게 간격이 넓지 않고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도 명색이 건축과 출신이라 배운 바가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깃털펜을 놀리니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자고로 마감패널(panel) 만들 때 글은 최소화하라는 교수님의 뜨거운 욕…… 아니, 열정이 있었지.”
건축과 생활의 꽃은 마감패널이다. 한 학기 내내 설계한 건물의 모형과 함께 건물의 설명, 도면 그리고 이론을 축약해 만드는 일종의 설명 포스터이지.
하지만 여기에 글은 가급적 줄이고 회화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패널을 5미터 넘는 거리에서 지켜보는 교수들이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최대한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알아보기 쉽게 아이소노매트릭을 사용하라고 계속 지적을 받았지.
그리고 여기서 배운 결과를 조선시대에 맞게 변형해 보았다.
“선 몇 개만 가지고 기물을 표현할 수 있다 하셨는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둥그런 원과 선 몇 개를 엮어 과일이랍시고 보여준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붓을 놀려 세밀하게 표현하였다간 판본을 계속 인쇄하며 뭉그러질 것이네. 거기 타치바나 있는가? 이 회화가 무엇으로 보이나?”
귤, 사과, 배 그리고 복숭아를 최대한 단순화한 회화를 보여주자 타치바나는 한참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말하였다.
“이건 아래에 골이 파여 있으니 복숭아군요. 가장 왼쪽은 귤 꼭지가 있으니 귤이고 하나는 꼭지가 작고 잎이 없으니 배 그리고 마지막은 꼭지가 크고 잎사귀가 달렸으니 사과입니다.”
타치바나처럼 눈치가 없는 사람이 단번에 알아차리면 말은 다 했지.
훈도가 뭐라 하건 나는 우모필로 계속 그려 빈칸을 채워나가면서 말했다.
“보게나. 이런 방식으로 회화를 단순화하여 단어집을 만들면 아국의 말을 배우는 것이 몇 배는 쉬워질 것이네. 이를 주상전하께 올려 대량으로 인쇄하도록 만들 것이라네.”
제자들에게 유학과 입신체비도 가르쳐보고 고란에게 훈영제식도 가르쳐보았는데 이제 아이들과 문맹까지 가르치게 되었구나.
짬을 내어 서적을 작성하다 보니 조정에서 답신이 내려왔다.
[지난 몇 년의 고난을 겪어 고단하겠지만 과업을 하나 더 내리겠노라. 겨울을 잘 버틴 고구마 이백 관(750㎏)을 거둬 각기 산음(현 산청군)의 덕천서원과 안동의 도산서원에 하사하고 오라.]
과업이라 했지만 이건 조정이 바빠 휴가를 줄 수 없으니 합법적으로 밀린 집안일을 해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내 장인어른인 남명 조식이 명을 달리하였고 기껏해야 위문의 말만 전했을 뿐이다.
과중한 업무로 불만이 쌓여가는 와중에 바로 조정으로 복귀하지 말라 했으니 합법적인 휴가를 받는 격이다.
또한 내가 작성 중인 하주도 백성용 그리고 훗날에 빠른 언어 교육을 위한 교재도 스승인 이황에게 검사를 받으면 좋겠지.
* * *
남명 조식의 장남인 조차산은 변화된 풍속대로 삼년상, 엄밀히는 일 년 동안 상복을 입고 생활하고 나머지 이 년 동안 처신을 조심하는 기간을 지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를 만나자마자 깊게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선친(先親)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자네에 대한 걱정에 온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네. 사위가 다 마음에 들어도 막냇사위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셨지.”
“매부께서 이토록 진중하게 말씀하시니 제 마음이 아려올 지경입니다. 선대인(先大人)께서 저를 걱정하여 주셨으니 몸이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조식의 위패에 절을 올리니 49재를 집에서 홀로 지냈을 아내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졌다. 히데요시 그놈만 아니었어도 장인어른 조식의 장례도 49재도 온전히 지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족족 죽어 나가서 가슴이 울적해지는데 조차산은 잘라낸 역기봉을 두 개 가져오더니 나에게 건네주었다. 뭔가 했더니만 조식이 허리춤에 패용하던 역기봉을 다시 자른 녀석이다.
뭔가 하고 눈을 마주치지 엉뚱한 대답이 들려왔다.
“선친께서는 더 이상 경의봉을 패용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고단해지니 이를 절반으로 나누어 패용하셨고 팔순이 될 무렵 이마저도 패용하지 아니 하셨네. 하지만 자네라면 쓸 곳을 마련할 수 있다 하였지.”
“스승님께서 사용하신 경의봉은 수양대군께서 사용하신 기물이 아닙니까!”
조식이 허리에 항상 착용하고 다닌 대역기봉인 경의봉의 역사에 대해 듣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지. 백여 년 전의 물건이며 수양대군이 말년에 사용한 대역기봉이라고.
수양대군의 집안에 가보로 내려온 대역기봉이지만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가운데가 휘어버렸고, 이를 하체에 두각을 보이는 조식의 단련을 돕기 위해 반으로 잘라주었다더라.
그리고 수양대군의 흔적이 이 대역기봉에도 남아 있었다.
[수양대군, 말년에 쇠해진 근육을 불쌍히 여기며 임진년(壬辰年: 1472년) 정월에 주문하다.]
“이제는 둘 곳이 없으니 자네가 마음대로 다뤄달라 하였다네. 허리에 패용하여도 좋고 아궁이를 뒤적일 때 사용하여도 좋다 하였지. 하지만 자네라면 어디에 쓸지 알고 있겠군.”
이 쇳덩어리를 어디에 쓸까. 개조해서 한 손 역기용으로 사용하기도 뭣하고 정말 아궁이를 뒤적일 때 사용하면 조식이 무덤에서 뛰어나와 농담을 진담으로 여기지 말라 호통을 칠 수도 있지.
일단 장인어른의 유품이니 고맙게 받아들였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혹여나 수양대군의 손길이 깃든 기물을 제가 아닌 더 나은 방법으로 사용할 사람에게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그리하여도 좋네. 이거 가만히 보니 조금만 깎아내면 편곤(鞭棍)으로 사용해도 괜찮을 무게가 아닌가. 사용하려면 맹장 중의 맹장이어야겠지만.”
듣고 보니 그럴싸하지만 사용할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는다. 대역기봉을 4조각으로 잘랐으니 5㎏이 넘는다.
조선에서 사용하는 편곤은 나무를 철판으로 감싸고 못을 박아 고정한 물건이니 보통 장수는 사용할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다.
감사 인사를 올리고 도성으로 돌아가면 혼자 49재를 치렀을 아내에게 이 물건을 보여주려 하였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어느 곳도 아닌 이황이 말년을 보내는 도산서원이다.
본래 1570년 노환으로 사망하는 이황은 역사가 변한 덕분에 아직도 살아 있었다.
입신체비를 시작으로 비누의 도입과 해외에서 들여온 약재의 사용 등의 변수가 결합한 덕분이지만 몸은 온전치 못하였다.
“내가 수많은 제자를 두었음에도 너와 같이 빼어난 제자를 두었음은 진심으로 하늘에 감읍할 수밖에 없구나. 수천에 달하는 백성들의 거처를 고작 넉 달 만에 만들었구나.”
입신체비사는 환갑이 넘어가면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근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체형이 점점 줄어들고 칠순이 넘어가면 대부분 관절염이 시작된다. 당연히 84세의 이황도 관절염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있었다.
그나마 우공이라는 사람이 창안한, 아마 수양대군의 지식을 기반으로 만든 재활의학을 바탕으로 치료를 받아 거동을 할 수 있지만 입신체비는 관둔 지 팔 년이 지나갔다던가.
이제 근골이 두툼한 노인이 된 이황에게 깊게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불초 제자가 없는 꾀를 내어 세상을 속인 것에 불과합니다.”
“없는 꾀라 하였느냐. 내가 여송(필리핀) 관찰사로 있을 적에는 구풍으로 수해를 입은 백성들을 기껏해야 대나무를 엮어 만든 움집에 기거하게 하였지.”
그런 적이 있었나. 하지만 이황이 나를 제자로 두고 나에게 이 좋은 입신체비를 가르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기억이 떠오르며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황은 내 표정을 뚫어져라 보더니 같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많이 나아졌구나. 처음에는 입신체비도 즐기지 않고 쉬이 질리는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입신체비를 정말 즐기게 되었지.”
“모두 스승님의 공입니다. 이렇게 좋은 입신체비를 익혀 대성할 수 있었으며 벗이자 새로운 스승으로 좌찬성 대감을 사귈 수 있게 되었지요.”
“아무렴. 입신체비보다 좋은 것이 몇이나 있겠느냐? 그리고 입신체비에 두각을 드러낼수록 네 성품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더냐? 네가 처음 관직에 오를 적에 행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찔해지는구나.”
역시 스승님이다.
초임 관료 시절에는 효율성만 따지는 현대인의 시선으로,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부작용을 무시하고 적용한 일이 제법 있었다. 스승인 이황은 언제라도 받아치거나 무마할 방법이 있었음에도 나를 지지하면서 응원해 주었고.
나도 경험이 쌓이며 부작용을 걱정해 정책을 수정하며 가급적 부작용이 적은 정책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마음속에 담아두며 정말 급하면 어쩔 수 없이 적용하지만 그거야 감당할 수 있는 부작용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이제야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으니 스승님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이번에 이주한 하주도의 백성들이 한시라도 빨리 글을 배우도록 제가 꾀를 내어보았습니다. 스승님께서 보시기엔 어떠하신지요.”
“글을 빨리 배우도록 꾀를 내었다 하였느냐? 보통 정음을 배우게 하여 말문을 트는 일이 우선이라 하였는데 무슨 방법인지 궁금하구나.”
이황은 내가 목판이나 동판의 새기기 이전의 원본을 한참 동안 보더니 감탄을 몇 번이고 늘어놓으며 안경을 아예 벗어 던졌다.
노안이 심해졌지만 남녀노소 모두 읽을 수 있도록 글자와 단순화한 회화를 최대한 크게 만든 덕분이다.
“이런 방법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기껏해야 흑판(칠판)에 회화를 그려 알려주는 방법만 생각하였고 여송에서도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 생각했거늘. 그래! 말을 배우려면 단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지.”
“자고로 단어만 알고 있어도 손짓과 발짓으로 어떠한 의사인지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이후에 문법을 익히면 단어를 알고 있으니 훨씬 빠르게 적응하는 법이지요.”
“이런 서적을 온 세상에 퍼트리면 아국의 기세는 더욱 맹렬해질 것이다. 여송은 물론이요, 미주에도 이 서적을 보낸다면 아국의 백성으로 들어올 이들이 더욱 많아질 거다.”
아직 미주와 호주를 비롯한 외방 이주는커녕 이주한 하주도 백성의 뒷바라지를 하고 일본의 재침공 혹은 역공을 고려하며 예산을 퍼붓고 있지만 이황의 마음에는 흡족했나 보다.
하지만 이황은 안경을 다시 쓰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사소한 일은 되었으니 너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 조만간 조정에 왜를 정벌하자는 의견이 빗발칠 것이다. 하지만 아국이 왜를 정벌함에 있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협력하는 이를 만들지 않은 채 홀로 나섰다가는 험난한 전쟁의 늪에 빠질 것이다.”
일본의 침략은 노신(老臣)이자 정계의 각계각층에 제자를 둔 이황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 대 맞은 상황에 반격하지 않으면 이건 호구 인증이다.
“하오나 명국이 침묵하고 있으며 머나먼 구주(歐洲: 유럽)의 강국인 서반아만이 아국과 협력할 뿐입니다. 이들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가 협력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느 나라가 협력하겠느냐고? 아국과의 교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왜국과의 교역을 끊고 압박을 가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요. 좁게 보자면 왜국 내부에서 협력할 이가 있겠지.”
협력이라? 생각해 보면 일본은 인도산 초석을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선을 통해 사들이고 소수의 무역선단을 대월, 현대의 베트남 일대까지 파견해 무기를 사들이는 일이 잦다.
만약 이 무역이 끊긴다면?
“만약 왜국이 무역을 행하지 못한다면 전쟁에 쏟을 힘이 빠져나갈 것이며 불만은 내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또한 내부에서 호응하는 이가 생긴다면.”
“호응하는 이 가운데 부족한 자를 앞세워 아국의 괴뢰(傀儡)로 삼을 수도 있으며 능력이 빼어난 이라 하여도 아국에게 복속한 것과 마찬가지로 만들 수도 있겠지.”
과연 나의 스승님이자 본래 역사의 위인인 이황이다. 이제 거동도 힘들어지고 눈빛도 침침해져 가는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황은 괜히 하늘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명국이 육주성을 할양하여 왜의 땅인 구주(九州: 큐슈)가 온전히 아국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구주를 온전히 지키려면 왜를 평정하여 아국의 기휘(忌諱)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느냐.”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기껏 구주를 얻어내도 왜국이 예전과 같이 혼란하여 왜구가 들끓으면 아니 되는 법입니다. 이미 폐주(廢主)나 마찬가지인 족리(아시카가)씨를 내치고 새 주군을 올려야 하는 법입니다.”
“왜국이 지나치게 비대하니 이를 흡수하는 일은 불가한 법이지. 그러하면 믿을 수 있는 이, 엄밀히는 싸움에 재주가 없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재주가 있는 이를 새 주인으로 삼으면 되는 법이다.”
흡수할 수 없는 상대가 있다면 우두머리를 갈아치우라고?
이거 참 좋은 의견이다. 대체 누구를 일본의 새 주인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지금도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는 왜장들에게 물어보면 후보자 목록을 작성할 수 있으리라.
다시금 이황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자 이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받아주었다.
몸을 숙여 서원 밖으로 나서는데 이황은 나에게 직접 전해줄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서신을 전해주었다.
[만약 이 노구가 명을 달리하거든 나라의 일에 힘쓰고 훗날이 되어 나의 죽음을 위문하여라. 앞으로 기나긴 세월 조정을 위해 일할 사람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면 아니 된다.]
아마 이 말을 들었다면 길길이 날뛰며 절대 안 된다고 반박하리라 여겨 억지로 서신을 전해줬으리라.
이황의 유언일지도 모르는 말을 품속에 고이 접고 도성으로 올라갔다.
#작가의 말
성룡이가 만든 아동·문맹자용 교재의 회화는 이런 녀석입니다. 현대에는 아이소노매트릭이라 불리는 녀석이지요.
현대에는 쉽고 간편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회화지만 이 시대에는 판화라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최대한 단순화를 추구하여 적용했지요.
출처 : https://www.pinclipart.com/pindetail/ixoRJi_apple-icons-free-black-and-white-frui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