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16화
2부 20장 6화 균열
지난 넉 달 동안 정신없이 일했다. 하늘이 우중충하게 변하며 기나긴 여름 장마의 시작을 알렸고 더 이상의 건축이 힘들어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내 계획보다 빠르게 이주민을 위한 마을이 완성되었다.
“드디어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집을 마련하게 되었군. 아직 다른 고장에는 천막에서 사는 이들이 많지만 다들 다른 고장으로 나아가 내가 설계한 경목조 주택을 세울 것이라 믿겠네.”
다른 고장이면 지금 막 경목조 주택이 올라가겠지만 올해 말은커녕 한가위쯤 되면 어엿한 마을이 완성되리라.
심지어 대목장들도 경량목구조 주택의 장단점을 알고서 이를 만들기 위해 찾아오는 실정이었다.
“경목조라는 방식은 사람이 살 집을 만드는 것보다 곳간이나 창고를 만드는데 더욱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아예 겉에 역청(타르)을 바르면 습기도 스미지 않는군요.”
“본래 경목조를 계획할 때에 큰 집을 짓는 방식으로 만들려 하였다네. 하지만 일이 틀어져서 민가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지.”
앞으로 창고나 곳간은 죄다 경량목구조로 만들 것 같다. 사실 경량목구조는 한반도의 가혹한 환경보다는 미국같이 평온한 곳에서 효과가 좋다.
나도 조만간 미주 관찰사로 부임할 것 같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니 그때 쓰면 좋으리라.
하지만 이 마을에 유일하게 한옥 양식으로, 정확히는 사당(祠堂) 양식으로 만든 건물이 있으니 내 제자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복원당(福元堂)이라 하여 후쿠시마의 이름 앞글자를 딴 사당인데 여기에 녀석의 위패를 안치했다.
“내 제자야. 네가 의를 보이기 위해 행한 일은 대대손손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네 아들이 대대로 이 사당에 제사를 올리도록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렸으니 염려하지 말고 푹 쉬어라.”
단 이 년을 가르쳤지만 제자 여섯이 죽었다 했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제자인 타치바나 무네시게와 함께 사당에 봉안식을 마치고 절을 올리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위패 대신 부러진 칼날을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정녕 이렇게 위패를 대신하여도 됩니까?”
“되고말고. 주상전하께서 하사하신 벽사검이 위패를 대신한다면 대대손손 조정의 복록(福祿)을 섬기는 일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녀석의 위패를 대신한 물건은 무너진 창고 안에서 발견된 벽사검의 파편이었다.
폭사한 시신은 찾지 못하였지만 화약을 터트리는 데 쓴 벽사검은 남았고 손잡이는 후쿠시마의 어린 아들에게 가보로 물려주었고 칼날은 잘 보존해 위패로 사용하였다.
내 열두 제자는 본래 역사에 있지만 변한 역사로 인해 사라진 생육신(生六臣)과 사육신(死六臣)으로 불리며 존경과 질시(疾視)의 대상이 되었다. 수단이 과격해도 너무 과격했으니까.
살아남은 제자는 공을 인정받아 각기 하주도 백성들이 이주한 고장의 토관(土官)이 되었으며, 죽은 제자는 공신으로 인정받아 후손이 녹봉을 받게 되었다.
이제 새 관원이 부임하면 인수인계를 마치고 떠나려 하였는데 웬 사람들이 임시 부설된 관아로 끌려왔다.
“야 이 새끼들아! 대체 뭘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치도곤을 들고 달려들어! 정신 나갔어?”
“지금 뭐라 하였나? 이 자들은 대체 뭘 하였기에 관아로 끌고 가는 겐가?”
“부제조님 아니십니까! 세상에 이놈들이 하주도에서 이주한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일이 커지기 전에 발각하였지만 잘못하면 사람이 여럿 다칠지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백성들이다. 조금 옷차림이 부유하지만 어디까지나 백성 가운데 부유한 수준이지 유생들과는 견줄 수 없는 이들이다.
위패를 사당에 안치하고 울적했는데 이 분노를 놈들을 심문하며 해소하려고 관아로 달려갔다.
“자네들이 치도곤을 들고 사람들을 핍박하려 했다더군. 정말 벌어진 일이니 추포를 당했을 것인데 왜 하주도에서 힘겹게 이주한 이들을 핍박하는가? 이들에게서 뭘 얻어내려 했는가?”
“이 땅은 저희들이 농토로 개간하려고 점찍어둔 땅이었습니다. 한 결 정도의 농토를 만들려고 각자 돈을 공출하여 은자 스무 냥을 모아뒀었지요. 하지만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내쫓으려고…….”
“주상전하께서 정하신 뜻이네! 자네들이 은자 스무 냥을 모아뒀다면 마름에게 편의를 봐달라 하고 빈 땅에 소작농으로 들어가도 충분했을 것 아닌가!”
“지금 여기에 빈 땅이 어디 있습니까?”
하주도 백성들 입장에서야 정든 고향에 반쯤은 도적인 육주성 백성들이 밀려왔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든 집도 대대로 일구던 땅도 버리고 왔겠지.
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꼴이다.
드넓은 간척지에 소작농으로 들어가 집안의 부담을 덜어내려던 청년들. 어느 정도 중농(中農)이 되어 더욱 많은 땅을 경작하려던 사람들이 괜한 수작질을 부린 것이다.
아예 분통이 치밀어 올라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화를 피하여 목숨을 걸고 아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인데 삿된 말로 심기를 어지럽히고 자신들도 혜택을 누리겠다며 달려들다니! 고향을 잃은 이들을 매몰차게 대하여 뭐가 나오는가!”
“정녕 왜국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저희가 농사를 지을 새 소작지를 앗아간 사람들이라 생각하였고 술김에 치도곤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지금 유생들이 집안에 쌓인 철물을 내놓고 지주들은 새로 농사를 지을 소작지를 분할하고 있는데 무슨 망발인가! 이자들을 어서 관찰사에게 압송하라!”
아마 십 년은 형무소에서 썩어야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병졸들에게 지시를 내려 순찰을 강화하라 하였는데 이런 알력다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양반들이야 사태가 심각함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재산을 털어놓지만 백성들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소식이 늦은 조선시대이니 왜인들이 준동을 벌여도 자신들의 코앞에 왜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오히려 석 달을 참고 나서 다툼이 생기니 조선 사람들이 여유 넘치는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이다.
타치바나 무네시게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중얼거렸다.
“이래서는 십 년이 지나도 다툼이 벌어지겠는데. 하주도 백성들은 엄연히 외부인이고 얼마 전에야 우리 백성으로 인정하였는데 한번 차별이 시작되면 끝이 없을지도 몰라.”
“조선 사람들은 같은 말을 사용하고 같은 풍습을 따르면 조선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해귀(흑인)들이나 신농도인(폴리네시아인)들도 같이 본다 하였습니다.”
“그거야 한 사람씩 따질 때의 일이지. 땅이 부족하여 농토를 개간해야 하는데 바다를 건너온 하주도 백성들이 개간하기 좋은 땅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상황일세. 그것도 전화(戰禍)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눈으로 보는 것이지.”
타치바나도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넘기고 하주도 백성들에 대한 질시를 걷어내려면 정말 본토에 일본군이 상륙해 일대 격전을 벌여야 하리라.
그래야 전쟁이 자신들에게도 화를 입힐 수 있음을 알게 된 조선 백성들이 하주도 백성들과 융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조선의 손해가 막심한가?
이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거대한 일본열도의 산길을 오가며 장기전을 벌이느니 아예 일본 놈들이 경상도를 침공하게 만들어 이순신의 해군과 오위 정예병으로 압살한다면? 차라리 손해가 적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명국 황상께서 왜가 침략함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열려 한다 말하였지.”
“네? 지금 뭐라 하였습니까? 다케다가 설마 명국을 침략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까?”
“육주성을 침공한 것이 곧 정명가도가 아니겠는가. 본토가 아닌 외방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네.”
만력제가 신료들의 반발에 직면하여 화를 참지 못하고 뱉어댄 말이지만, 현실이 된다면 아마 명국 조정에는 피바람이 불고 그 피바람에서 거둬들인 은자가 모조리 조선으로 쏟아지리라.
어차피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든든한 명나라의 자금 지원과 충분한 방어를 할 수 있는 조선 땅에서 적을 격멸하고 비어버린 일본 열도를 밀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미역이 미역에서 미역하다-
와키자카가 발작적으로 고토열도에서 탈출한 지 닷새가 지났다.
식사는 없어도 이키시마(赤島)에 자생하던 대나무로 만든 수통의 물을 마셨지만 이는 이틀 만에 고갈되었다.
“그냥 조선 놈들에게 항복할걸…….”
발을 놀려 해류를 거스를 힘도 사라진 와키자카는 튼튼한 판자 위에 몸을 기댄 채 정처 없이 물결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희미하게 사다리꼴의 독특한 산의 모습이 들어왔다.
“산? 화산? 조선에는 화산이 없다 했어! 저렇게 봉우리가 깎인 산이라면 화산이 분명해! 어느새 일본으로 돌아왔다니! 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조선에도, 정확히는 조선 건국 초창기의 조선 팔도에도 화산은 두 개가 있었으니 백두산과 한라산이었다.
와키자카는 몰랐지만 그가 밀려온 장소는 다른 어디도 아닌 제주도의 동쪽 해안에 있는 성산 일출봉이었다.
“물! 샘물! 화산에는 샘물이 있다 했어! 해안가에서 샘물이 솟아오른다 했다고!”
현무암으로 구성된 화산 일대의 토양은 물을 품지 않고 흘려보내 농사에는 부적합했지만 지하로 흡수된 빗물이 해안 인근에서 용출되는 특성을 지녔다.
옹달샘에 머리를 박고 물을 들이켠 와키자카는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해안을 둘러보았다.
“어딘가에는 농가가 있겠지. 염치는 없지만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거나 아예 훔쳐서라도 배를 채워야지. 그나저나 뭔가 좀 다른데?”
굶주린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던 와키자카의 눈에 노란색 물체가 매달린 나무가 보였다. 다른 지역의 귤이라면 모두 수확이 끝났겠지만 일본에서 반년 동안 귤을 수확하는 고장이 단 한 군데 있었다.
“귤! 귤이다! 이런 세상에! 여기가 사쿠라지마(가고시마의 화산)이란 말인가!”
와키자카는 알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귤나무에 매달려 있던 귤들을 따서 껍질도 벗기지 않고 우적우적 씹어댔다.
아직 품종 개량이 부족해 시큼한 즙 사이로 씨앗이 터져 나왔지만 그에게는 천상의 맛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본 와키자카의 눈에는 치렁치렁한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두른 농부가 눈을 부라리며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 거기! 너 뭐냐고? 이놈의 개자식아!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이 귀한 귤을 처먹어!”
“미안하구려! 나는 장수인데 너무 굶주린지라 귤을 조금 훔쳐 먹었소.”
백여 년 전 대양도의 개척 이후 제주도에 부과되던 막중한 공납품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 할당되었다. 말과 사슴은 북방에서 사들이면 되며 해산물은 원시 자연이 남아 있는 대양도의 질을 따라올 수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공납품인 표고버섯은 수양대군이 가져온 농서(農書)를 연구한 이현전의 학자가 오십여 년 전 재배법을 개발하였기에 제주도에 남은 유일한 공납품이 귤이었다.
그리고 공납을 내고 남은 진귀한 귤이 와키자카의 입안에 있었다.
“이 개놈의 새끼! 홀딱 벗은 알몸으로 귤을 먹어? 너 어느 동네에서 왔어! 일단 처맞아!”
농부가 휘두른 몽둥이를 가까스로 피한 와키자카지만 아직 몸이 온전치 않았기에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등판에 몽둥이가 찍히자 와키자카는 몸을 뒤틀며 바닥을 뒹굴었다.
“귤을 열 개 정도 먹었으니 백 대만 맞자! 거기 양 서방! 김 서방! 이 도둑놈의 새끼를 보게!”
“뭐야? 도둑놈이 귤을 먹었다고? 어떤 새끼야! 멍석 가져와!”
“으어! 으어어어어! 어어어어억!”
현무암 토양 때문에 농사가 감자나 보리로 제한되는 제주도에서 쌀을 사 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금줄이 공납을 내고 남은 귤이었다. 그리고 이 귤을 닥치는 대로 입에 넣은 와키자카를 농부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온몸에 피멍이 들어 실신한 와키자카를 끄집어낸 농부들은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귀한 귤을 훔쳐 먹었어도 때려죽일 생각까지 들지 않았기에 꿈틀거리는 와키자카의 몸을 몽둥이로 뒤집으며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거 어디서 굴러떨어진 놈인지 모르겠는데 귤을 훔쳐 먹으면 이런 신세 된다니까.”
“이봐. 이놈 상투를 틀지 않았는데? 봉두난발(蓬頭亂髮)이지만 앞머리가 비어 있어.”
“그러네? 가만히 보니 체격도 작고 굶주린 것이 분명하네. 이거 설마 왜인 아니야?”
“우리가 지금 물고기를 잡다 표류한 왜인을 두들겨 팬 건가? 어이구! 이 친구 말이나 하지!”
이미 수십 대의 몽둥이를 두들겨 맞고 기절한 와키자카가 들으면 게거품을 물 이야기지만 이미 기절한 그의 입에선 게거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군관의 보고를 들은 제주관찰사 김응남(제주도에는 관제개편으로 관찰사가 부임한다)은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인 와키자카를 보고 골머리를 썩였다.
“얼마나 두들겨 팼기에 이틀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가! 하긴 왜에서 여기까지 표류하였다면 적게 잡아도 나흘은 굶주림에 시달렸겠지. 일단 기력이라도 채워야겠는데.”
“관찰사께서 심려가 깊으시니 제가 한번 나서보겠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저를 믿으시어 탐라까지 보내셨는데 부족한 솜씨를 발휘할 자리가 생겼군요.”
수령관의 직무와 함께 요리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던 유운룡이 와키자카의 식사를 책임지기로 하였다.
유운룡은 오래간만에 요리를 대접할 사람을 만나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에서 안간힘을 썼다.
“미음에 소화하기 편한 참마 즙과 생강을 좀 넣으면 되겠지. 조청을 따로 섞어서 적당히 힘을 돋궈줘도 충분하겠고.”
와키자카는 나름 무인의 몸이었으니 이틀 만에 정신을 차렸고 다음 날부터 죽을 먹었다. 하지만 정성껏 만들어낸 전복죽을 받은 와키자카는 참으로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와키자카는 금이 간 어금니에서 밀려오는 통증을 억누르며 죽을 한 수저씩 천천히 먹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느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
이를 확인하는 유운룡은 와키자카의 태도에 감탄하였다.
몇 날 며칠을 굶주림에 시달렸다면 걸신들린 듯이 퍼먹어도 누가 탓하지 않을 것인데 저런 올바른 모습을 보이니 저절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인이 기력을 되찾게 특식을 준비하였다네. 비록 옥에 갇혀 있지만 충실히 대접하여야 입을 여는 법이 아니겠는가.”
와키자카의 특식으로 고기 대신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참기름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갈치와 매운맛이 남아 있는 김치 대신 일본인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장아찌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심지어 국은 이틀 동안 심혈을 기울여 끓여낸 작품이었으니 만족하리라.
특식을 감옥 안으로 넣자 와키자카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봉밥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밥이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국이 식지 않게 뚜껑으로 덮어두었군.”
국그릇 안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생선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던 와키자카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 하며 뚜껑을 젖히고 젓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젓가락에 딸려온 물건은 미역 줄기였다.
“국에 다 미역만 들었어!”
젓가락을 쉴 새 없이 굴려도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은 오로지 미역, 그것도 얼마나 삶아댔는지 흐늘흐늘하게 물러진 미역이었다.
무인도에서 미역만 먹은 와키자카의 입장에서는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며 절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나를 지금 놀리나! 미역만 넣은 국이 세상에 어디 있어!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에도 미역을 조금만 넣는다고!”
치통으로 인한 분노까지 겹친 와키자카는 자신에게 배정된 소반을 뒤엎었다.
잘 구워진 갈치도 산더미처럼 쌓인 고봉밥도 그리고 유운룡이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끓인 미역국도 바닥에 쏟아졌고 유운룡은 소리를 듣고 바로 감옥 안으로 달려왔다.
“자네 지금 뭐가 문제인가! 이렇게 귀한 물건들만 준비해 왔는데 왜!”
“닥쳐! 닥쳐! 지금 이딴 흉물을 먹으라고 줬냐!”
황급히 달려온 유운룡과 와키자카의 시선이 교차하였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한 와키자카였지만 상대의 덩치가 자신과 견주어도 한 배 반은 거대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움츠러들었다.
유운룡은 동생인 유성룡에게 자극을 받아 입신체비에 정성을 다하였다. 물론 수라상의 기미(氣味: 맛과 향)를 살펴야 하는 숙수이기에 절육(커팅)에는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대신 그의 몸은 여느 유생과 견주어도 거구로 손꼽힐 정도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으며 젊은 시절에는 삼대운동이 850근을 돌파하였고 이는 40이 넘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한없이 작아진 와키자카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하였다.
“저기……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제가 미역을 싫어하는데 지금은 미역을 먹을 수! 악!”
“왜인은 근육 하는 것이 제격이라 하였다. 내 네놈을 근육할 것이다.”
튼튼한 감옥 문을 걷어차서 부숴버린 유운룡이 달려들고 와키자카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감옥을 지키던 나졸들이 달려들어 유운룡을 제지하였지만 이미 와키자카는 뼈가 부러지고 입과 코에서 피를 쏟으며 혼절하였다.
그의 표류는 미역으로 시작하여 미역으로 끝났다.
다음 날부터 보름 내내 꽁보리밥과 산더미처럼 끓여둔 미역국만 퍼먹은 와키자카는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마지막으로 사로잡힌 왜장으로 분류되었다.
#작가의 말
미역이 지나치게 불운하다구요? 이순신을 상대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이순신을 상대로 살아난 행운의 역풍이 불운으로 돌아오니 정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