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15화
2부 20장 5화 이주(3)
지방 향교에는 유음자제(有蔭子弟),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여도 증조부 혹은 그 아래의 조상이 양반인 덕분에 양반 신분을 유지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아무리 사람을 많이 뽑는다지만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는 과거시험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평생 지방에서 입신체비와 학문수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꾸준히 단련만 하면 어느 정도, 대략 삼대운동 500근 정도까지는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입신체비를 즐기게 마련이며 대대로 입신체비를 익힌 덕분에 쌓인 재산 중에 쓸모 있는 물건이 많았다.
“부제조 영감께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하주도의 백성들을 이주시키기로 하였는데 제가 체면이 있으니 곳간을 열고 제 입신체비 기물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바로 산더미처럼 쌓인 철물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미곡 생산량이 감소하고 무기에 사용하는 철이 부족하며 은을 비롯한 화폐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니 요긴하게 쓸 수 있겠지.
반가운 일이지만 웃으며 이를 만류하려 하였다.
“입신체비 기구를 모조리 새로 장만할 작정이시오? 이리 많은 물건을 새로 사들이려면 참으로 고단할 것인데.”
“수양자께서는 입신체비를 처음 행하실 적에 철물을 다루시며 대군으로 쌓아둔 재산의 대다수를 털어내셨는데 저희가 하는 일이라고는 대대로 쌓아온 입신체비 기구를 털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제발 이 철물을 받아주십시오.”
수양대군이 입신체비를 퍼트린 것이 백 년 전이기에 4대에 걸쳐 쌓인 입신체비 기구만 따져도 한 집안에서 일천 근(640㎏)에 달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대충 일만 근의 입신체비 기구가 나왔는데 개성에서 이 정도 수량이 나왔다면 이주민들이 도착할 장소의 유생들도 어느 정도의 입신체비 기구를 내놓을 것이고 근력 제재소를 얼마든지 지을 수 있으리라.
스페인 목공장에게 쓸 만한 물건을 추려 내놓았다.
“여기 대역기봉 마흔 개가 더 도착했소. 크게 휘어지지 않은 물건만 따로 뽑아냈으니 어서 홈을 파내고 치륜(齒輪: 톱니바퀴)을 꽂아 넣으시오.”
대역기봉의 공령을 꽂는 두꺼운 곳에 홈을 파고 톱니바퀴를 박아 넣는 공정을 반복하던 스페인 출신 대장장이와 치수를 지정하던 목공장은 한숨을 쉬며 이를 받아들였다.
대장장이는 하나하나를 망치로 두드려 보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질문을 시작했다.
“이런 강철봉이면 잘라서 무기로 만들어도 될 것인데 조선에서는 지천에 널려 있군요. 그리고 대체 얼마나 많이 단련한 철이기에 이다지도 강하단 말입니까?”
“대역기봉은 대장장이 한 명이 한 달을 걸려서 만드는 기물이오. 요즘에야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서 열흘 만에 만드는 속성법도 개발되었다 하는데 직접 본 적은 없소.”
“한 달이나 반복하다니요! 이론상 가능하지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이 창이나 칼은 가격대 성능을 따지니 한 개를 만드는 데 이틀이 걸리지 않는다. 절세보검 열 자루보다 평범한 검 이백 자루가 전쟁에 쓰기 좋은 법이니까.
하지만 대역기봉이 무슨 물건인가. 400근은 기본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하고 하체 괴물인 조식의 제자들은 500근을 버틸 수 있는 거대 대역기봉을 사용한다. 당연히 숙련된 장인이 한 달 내내 철을 붙잡고 씨름한다.
단조 작업으로 각도와 형태를 보정하고 담금질로 경도를 증가시키고 기름에 넣어 식히고 다시 저온 가마에 넣어 적당한 온도로 올리는 뜨임질이라는 공정을 반복하며 탄력을 불어넣는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니 대장장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였다.
“그런 무게를 버티려면 이런 공정이 필요하긴 하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대역기봉이라는 기물이 있으니 황당한 노릇입니다. 대체 뭔 생각으로 이런 기물을 쌓아놓고 사는지…….”
“부모님께 효심을 드러내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데 돈을 아끼면 쓰겠소? 재물이야 언제든지 쌓을 수 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다시는 보지 못하는 법이 아니오.”
“참 반박할 수 없는 논리이기는 합니다.”
역시 근육은 훌륭하다니까! 처음에야 근육을 피하고 입신체비를 거부했지만 히데요시를 상대하며 근육의 위대함을 다시금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자신들이 쌓아둔 입신체비기구를 털어낸 유생들은 근력 제재소에 들려 나무를 켜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유생들도 생각 외로 단련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예 조를 짜서 휴식과 단련을 반복하였다.
“벌써 여섯 그루를 켜내었네! 반으로 잘린 나무를 다시 켜내는 일은 여기 이 어린 녀석들에게 일임하고 자네들은 어서 내려오게!”
“어허! 여섯 그루를 켜내어도 둘레가 두 자에 미치지 못하는 소목(小木)만 켜내었으니 하체가 충분히 단련되지 않았다네! 그렇지 아니한가!”
“그만두게나! 입신체비를 하면 할수록 좋지만 관절이 틀어지거나 몸살이라도 생겨 쓰러지면 한 달의 단련이 열흘 안에 사라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부디 넘치지 않게 적당히 하게.”
어느새 목재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점차 입신체비가 과열될 조짐이 보여 점잖게 만류하였다.
근력제제소가 완전 가동해 보니 하루 동안 150그루의 나무를 썰어낼 수 있었고 그 이상 나무를 썰어내면 거대한 톱이 다 닳아버리더라.
경력이 많은 대목장이건 적은 초보 목수건 일제히 달려들어 4조각으로 만들어낸 나무를 각목으로 가공하였고 이제 내 지시에 따라 최초의 경량목구조를 시공할 차례가 되었다.
이 시대에 건물을 시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장비가 아닌 노동자의 숙련도이다. 기존 목조 주택은 숙련공 한 명이 비숙련공 다섯 명의 업무를 할 수 있는데 바로 목재의 이음 난이도가 높아서이다.
목재와 목재의 접합은 일종의 3D 모델링과 유사하며 한 번이라도 잘못 깎으면 이음부위가 틀어지며 돌이킬 수 없어지지.
하지만 경량목구조에 이음은 필요가 없으니 도면을 확인한 대목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도본(도면)을 보니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목재를 이을 적에 철판에 못을 박아서 이어낸다 하셨습니까? 민가인데 모조리 철물을 쓴다니요?”
“잘 알고 있군. 알다시피 건물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목재의 이음이지 않는가. 경목조가 편리한 이유는 이 이음을 모조리 철물로 대신하기 때문일세.”
나이가 지긋한 대목장이 내가 작성한 도면을 보더니만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확인하였다. 모든 목재에 구리판을 감아 못으로 마감하니 상상조차 못 한 방식이겠지.
하지만 이런 방식이니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대목장은 내 도면과 해설을 듣더니 휘하 목수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내려 시험 주택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방식입니다. 보통 건물을 만들 때에는 사용하기 힘든 철물을 한낮 민가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데다 건물 수명도 십여 년에 불과하다니요.”
“일단 만들어봐야 결과를 알지 않겠나. 도면에 지시한 내용을 고스란히 지켜서 만들게.”
“초석도 필요가 없고 아예 회반죽으로 만든 기초에 커다란 나무못을 심고 구멍을 뚫은 각목을 대서 기초를 잡는다니요. 이거 정말 버티는 것 맞습니까?”
각목을 세우고 옆의 각목과 철물로 연결하길 반복하니 어느 경량목구조의 기본 틀이 완성되었고 임시로 판재를 못질해 벽까지 세우니 한 채의 건물을 세우는 데 닷새가 걸렸다.
대목장은 혀를 내두르며 건물을 바라보더니 오히려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렇게 얇은 각목을 대서 건물이 버틸 수나 있겠습니까?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비바람만 세차게 불어도 건물이 날아갈 것 같군요.”
“충분히 버티고도 남는다네. 더 얇은 각목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너무 얇은 각목은 휘어지니 내 계산보다 두꺼운 각목을 사용하였어.”
현대에는 가로 2인치, 세로 6인치로 대략 가로 5㎝에 세로 15㎝의 각목을 사용한다. 하지만 전근대이다 보니 안전을 감안해서 가로 3치, 세로 6치로 10.4×20.8㎝의 각목을 사용하였다.
혹시나 몰라 넘쳐나는 입신체비사를 불러 비바람에 버티는 풍동(風洞)실험 대신 근력 시험을 시작하였다.
밧줄을 엮어 건물을 뒤흔들어 보고 일제히 어깨로 밀어 보았지만 생각보다 잘 버티니 목수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과연! 예부터 전해진 방식으로 만들면 재료 하나가 힘을 받으면 연결된 재료 몇 개만 힘을 전달받지만 경목조라는 집은 한 곳이 힘을 받으면 집 전체가 이를 받아내는군요.”
“오히려 철물 대신 연성(延性)이 강한 구리판을 사용했으니 더욱 잘 버틸 수 있는 법이지. 이제 방법을 알았는데 이런 주택을 얼마 만에 만들 수 있겠나?”
“지금은 다들 숙련되지 않아서 오래 걸렸지만 차츰 숙련도가 늘어나면 한 채를 만드는 데 모두 합쳐 보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필부(匹夫) 여럿이 모여도 만들 수 있겠군요.”
현대에도 가끔 도면을 받아가서 기초공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건물을 혼자 만드는 건축주들이 있기는 했다. 간편함이 이 경량목구조의 장점이지.
이후 벽란도 일대에 몇 채의 경량목구조 건물을 시공하며 기술을 전하였다.
조정에서도 장계가 내려와 며칠 뒤에 하주도 백성들이 이주하니 서둘러 자리를 정하라 하였고 처음 사람들이 이주할 해남 간척지로 향하였다.
* * *
해남 간척지는 15년 전에 간척을 마쳐 아직 염분을 빼내는 목화밭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염분이 충분히 빠졌지만 일손이 부족해 논밭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배정된 하주도 백성은 도합 육천 명에 달하지만 처음 도착할 이들은 이천 명이며 약 사백 호의 건물을 한 달 이내에 지어야 한다.
서둘러 근력 제재소를 설치할 장소를 지정하고 추가로 업무를 지시하였다.
“지금부터 경목조를 활용해 가로 열 칸, 세로 여섯 칸(30×18m)의 거대한 창고를 만들게. 하부에 불길이 지나갈 공간을 두고 바깥을 나무판자를 두 겹으로 붙여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들게.”
“네? 나무판자를 두 겹으로 붙이고 바닥에 불길이 지나갈 공간을 만든다 하셨습니까? 이걸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재를 쪄서 말려내야 하지 않겠는가. 본디 목재를 그늘에서 삼 년 정도 말려야 하지만 지금은 시일이 급하니 바깥에서 화기(火氣)를 스미게 하여 수분을 모두 날려버릴 것이네.”
목재 건조도 시급하다.
재료로 사용할 목재가 잘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각목을 만들면 틀어지기에 십상이다. 이걸 빨리 말리려면 70도 정도의 고온으로 쪄내서 수분을 날려버려야 한다.
목재를 건조하며 토지를 지정하고 필요한 물건을 모조리 받아들이는데 편지 한 통이 왔다. 누가 보냈는지 궁금했는데 형님의 편지라니.
읽어 보니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형님도 참 황당한 일을 겪고 계시는군. 사옹원에 계속 근무하시며 종3품 제거(提擧)로 승진하시고. 승진 이후 잠시 외관으로 탐라에 부임하셨는데 왜인이 표류하였다고?”
형님은 주상전하의 명으로 작년부터 제주도에 근무하고 계신다.
형식상으로는 관찰사 휘하 수령관(首領官)으로 근무하지만 실제로는 각지의 물산을 받아들여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던가.
평상시에는 귤과 함께 편지를 보내던 형님에게 편지 한 통만 도착했는데 필적이 비뚤어져 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이리저리 먹물이 튀어 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신을 모욕한 왜인을 근육 하였다. 왜인은 근육 해야 하지만 제주도까지 밀려온 왜인이면 이순신에게 된통 당한 일본 수군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어부겠지. 그나저나 왜인들을 다 북방으로 보내 도로와 교량을 만들게 하다니. 차라리 여기에 쓰지.”
일손이 부족해 죽겠는데 나라의 뜻이니 뭘 어찌하겠는가.
목재가 차곡차곡 쌓일 무렵 이천 명에 달하는 하주도 백성들이 도착하였고 그들은 내 얼굴을 알아보더니 절을 하며 인사를 올렸다.
“관찰사님을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살던 고장에 계속 머물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지경이라 이주를 택했는데. 관찰사님께서 저희가 살 고장을 만든다 하시니 마음이 놓이더군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고 천막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그러는가? 염려하지 말게.”
지금이야 풀을 베어낸 허허벌판이지만 내 계산이 틀리지 않다면 한 달 이내에 이 사람들이 살 집 정도는 마련하고도 일손이 남아서 여기에 배정된 6,000명이 머무를 1,200호의 집을 세우고도 일손이 남을 거다.
“자네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네. 아직 모내기를 할 수 없으니 장정들은 지시에 따라 밭벼나 보리를 심도록 하고 아녀자와 노약자들은 지시하는 대로 건초를 모아두게.”
“건초라 하셨습니까? 혹시나 저희가 소나 말을 치라 하시면 방법을 모릅니다.”
“자네들이 살 집의 벽으로 쓸 물건을 만드니 염려하지 말게! 어서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경량 목구조는 조선시대에 사용하는 회벽(灰壁)을 사용할 수 없다.
대나무 살대를 박아 틀을 만들고 진흙으로 속을 채우고 겉을 석회 반죽으로 마감하는 방식인데 이걸 경량목구조에 시공했다간 가벼운 외벽이 뒤틀어지게 마련이다.
현대라면 고품질 단열재를 넣고 합판을 붙인 다음 외부를 방수성이 뛰어난 필름으로 마감하지만 전근대에는 건초를 뭉친 일종의 건초벽돌과 멍석으로 마감했지. 이미 주변 농가에 지시를 내려 건초를 잔뜩 사들여 뒀다.
“길이가 길고 성한 건초는 손으로 비벼 새끼를 꼬아 다시 멍석을 만들고 성하지 않은 건초는 틀에 넣어 밟아 벽돌 형태로 뭉치게. 다 자네들의 집에 사용할 물건이네.”
“이래서야 겨울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들은 하주도에서 거주하던 이들이라 물이 얼어붙는 추위를 경험한 적이 없을 텐데요.”
“삼남에서도 따스하기로 소문이 난 해남이 아닌가. 물이 얼어붙지 않으니 구들만 때면 충분히 살 수 있으며 불편하더라도 참고 살면서 훗날이 되어 번듯한 집을 지으면 충분하다네.”
벽의 사이에 건초를 채우고 멍석을 대서 건초가 새어나가지 않게 한 다음 바깥에 대충 나무판자를 덧대 막아냈다. 습기가 쉽사리 스미겠지만 구들을 통해 불을 좀 때면 습기야 금방 사라지는 법이다.
“지붕은 산자이음(나뭇가지를 엮어 진흙을 바르는 방법, 민가에 주로 쓰인다)으로 마무리하고 위에 초가 이엉을 엮어두게! 건초가 부족하다면 임시로라도 켜낸 너와를 엮어 비가 스미지 않도록 막아두게나.”
“관찰사님. 제 조부님께서 회피집(檜皮葺: 히와다부키, 노송나무 껍질을 엮는 일본 고유의 지붕 양식)이라는 방식으로 지붕을 엮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걸 활용하면 어떨까요?”
“참으로 좋은 생각이야. 나무껍질이라면 습기에도 강하고 시공하기도 편하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이 돌아갔다.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지급하고 기존에 해남에 머무는 관원들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인원을 배분하며 물자를 도입한다.
“부제조님! 철물이 부족합니다! 동판의 소모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철물이 부족하니 조정으로 사람 두 명을 보내고 급한 철물은 주변 유생들이 제공한 공령을 녹여서라도 만들어내게. 야장(冶匠) 여섯 명을 고용하되 급료는 먼저 지급하게.”
한 눈으로 도면을 보며 다른 눈으로는 건물 시공 정도를 가늠하고 인원을 배정하며 내부에서 전해지는 보고를 듣고 업무를 한다.
어디서 하냐고? 일손이 고갈된 근력 제재소에서 손을 움직이면서 하지!
“부제조께서는 정녕 천고의 기재일세. 몸을 놀리고 눈으로 보고 머리를 굴리는데 한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이 한 몸이 된 것 같군!”
“자네들은 뭘 그리 놀라고 있는가. 나의 벗 여해는 스무 척의 전선을 한 몸처럼 움직였는데 나야 고작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지 않는가. 자네도 한 사람 몫은 하게나!”
동시에 네 가지 일을 진행하고 있었군. 뒤에서 뭐라 쑥덕거리는 인부들에게 대꾸하니 인부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고작 보름이 지났지만 업무 분배 덕분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주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마 한 달이면 이천 명이 머무를 마을이 완성될 것이고 이들은 첫 거주민이 되어 다음 거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전해주리라.
아마 올해 말이 되면 십만 명의 하주도 백성들이 살 집과 내년에 농사를 지을 농토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작가의 말
미역이 제주도까지 왔습니다. 내일 미역일대기와 이주계획의 끝을 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