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414화
2부 20장 4화 이주(2)
사절단 출신 장인이 지시를 내려 제재소를 만드는 동안 도면을 그리면서 19세기 초창기의 개념인 경량목구조에 대한 보고서, 아니, 장계를 작성하였다.
장단점이 극명하기에 조금 염려스러운 물건이다.
“명칭은 경목조(輕木造: 가벼운 나무 구조)로 하고 장점만 따지면 휘황찬란하긴 하지. 목재 소모량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만드는 방법을 알면 초보자도 두 달 정도의 교육만 거치면 만들 수 있고 공사 시간도 단축되니까.”
경량목구조는 지금까지의 건축 방식과 정반대로 대치되는 목조 주택이다. 기껏해야 가로 2인치, 세로 6인치의 목재를 엮어내 틀을 만들고 벽을 적당한 재료로 채워서 마무리한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효율성이 너무 좋아 전원주택으로 자주 사용하는 녀석이니 마음대로 도입하고 싶었지만 시대로 인한 단점도 존재한다.
아직 제재소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인근에 있는 대목장을 불러 물어보았다.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나무를 가공하여 각목을 만든다 하였을 때 효율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를테면 가로세로 열 치(34.7×34.7㎝)의 각기둥을 만든다면?”
“어휴! 목재가 아주 좋다면 모르겠지만 나무껍질과 겉의 연한 부분을 깎아내고 심재만 각기둥으로 만들면 지름이 최소 열여섯 치(55.5㎝)는 되어야 합니다.”
“그러하면 가공비용과 시일이 얼마나 되는가?”
“가공비용이요? 말도 마십쇼. 원기둥은 자귀로 깎으면 끝나니 대목장 한 명이 하루에 두 개는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기둥은 톱질을 시작으로 먹줄로 계속 수평을 잡아가며 자귀로 쳐내고 끌로 깎아내며 대패로 밀어야 하지요. 이틀에 한 개를 만들면 대단한 겁니다.”
예상대로의 결과물이다. 현대라면 전동공구로 밀어버려서 모두 간편하게 끝내지만 이 시대에 전동공구가 있을 리가 없지.
임시로 작성한 도면을 보여주니 대목장은 끔찍한 물건을 보았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하였다.
“이 흉물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모든 기둥이 다 각기둥으로 되어있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입니다! 나무야 적게 사용할 수 있지만 톱으로 켜내다 시일을 다 허비하겠군요!”
“만약에 말일세. 만약의 일이긴 하지만 원목을 가로세로로 잘라내 네 조각으로 만든다 하여도 가공에 시일이 소모되겠는가? 원목을 잘라내는 노임은 계산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게.”
“그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겠군요. 재목을 완벽하게 잘라낼 수 있는 뛰어난 대목장이 죽도록 애써야 하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잘린 재목을 축에 맞게 깎아내면 충분하니까요. 각기둥보다 훨씬 쉽습니다.”
제재소만 잘 가동되면 어떻게든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견을 첨부해 보고서를 작성하니 이게 통과가 될지 의문이다.
“목재를 연결하는 데 필요한 철물이 한옥의 몇 배나 필요하겠군. 이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어.”
현대에는 공장에서 싼값에 찍혀 나오는 쇠못과 연결철물로 목재를 이었지만 이 시대의 못은 가공 난이도도 높고 연결철물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다.
이걸 어쩔까 하다가 발칙한 생각이 떠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기술부족으로 수명도 줄어들어서 십 년 이내에 한옥으로 갈아타야 하는 건물이잖아. 기존에 사용하던 목재는 서까래로 재활용하면 충분하다 하고 아예 철물을 모조리 구리로 만들어서 재활용하면 충분하지!”
구리는 가공하기도 쉽고 표면의 녹만 긁어내면 다시 녹여서 재활용하기도 쉽다. 강도야 철보다 부족하지만 두 배정도의 두께로 밀어붙이면 충분하겠지.
보고서의 서두는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집이라 하였지만, 중간쯤 가니 빠른 시일 내에 망가져 임시 주거지로 쓰고 새집을 짓는 재료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튀어나왔다.
“지금 중요한 건 목재 부족이지 철물이나 가공비용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 십만 명을 이주시키고 집을 지으려면 이만 채는 필요하지. 전통 한옥 기준으로 나무가 최소한 이백만 그루는 들어가는데.”
기둥에 들어가는 든든한 재목 12개, 서까래를 비롯한 구조물에 들어가는 팔뚝 굵기의 나무가 60개 이상, 거기에 벽선이나 기타 재목으로 사용하는 나무를 합치면 이런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고 가마를 만들어 대량생산한 벽돌로 만든다? 벽돌이 최소 10억 장이 들어간다.
이건 미친 짓임은 물론이요, 해안 일대의 나무라는 나무는 모조리 연료로 소모하리라.
큰 기대는 안 했지만 보고서의 답변은 열흘 만에 돌아왔다. 조정에서도 생각한 바가 있으며 서류로만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이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이를 모조리 시험하지 말고 몇 개의 간척지에 시험 삼아 실시한 다음 퍼트리라 하였다.
“어차피 새로운 공정이니 대목장이든 소목장이든 기술을 처음 배우고 전파할 장소는 필요했지. 다들 나무야 잘 다루는 사람들이니 큰 문제는 아니야.”
답신을 곱게 접어 넣고 상세 도면을 작성하고 있으니 스페인 출신 목공장도 소식을 전해왔다.
어느새 제재소가 완성되었고 조정 작업이 필요하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수력 제재소는 거대한 수차에 맞물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원형 톱날이 나무를 켜내는 녀석이었지만, 여기서는 축력으로 돌리는 자그마한 축력기(蹴力機), 사람이 밟아 움직이는 바퀴에 톱니바퀴를 통해 힘을 받아 수직으로 운동하는 거대한 톱이 달려 있었다.
아마 기술력이 부족한 시대이다 보니 원형 톱을 만들 재주가 없어서 수직 톱을 움직이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스페인 출신 목공장은 오히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규모를 조금 작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황소는 아니고 적당한 짐말이 밀어내는 힘을 가정하고 만들었는데 이게 정말 사람의 힘으로 작동한다 하셨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내가 직접 해보겠소. 근데 이 축력기는 무엇이고 반대편에 달린 손잡이는 또 뭔가? 혹여나 두 방법으로 힘을 전달하게 만들었나?”
발로 밟아 움직이는 축력기 반대편에는 자그마한 바퀴와 이 바퀴를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다.
혹시 동력이 부족할까 염려해 한 조가 발로 밟아 돌리고 다른 조가 손을 움직이나?
하지만 장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본래 제재소는 사람의 힘이 들어가지 않고 물의 힘으로 움직이니 수차가 돌며 두 힘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톱을 움직이는 힘과 목재를 갈고리에 엮어 끌어당기는 두 힘을 사용하지요. 하지만 사람이 이 작업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축력기가 자기 멋대로 덜컹거리겠군.”
“결국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려면 팔로 바퀴를 돌려 목재를 당겨오는 사람 한 명과 다리로 축력기를 움직여 톱을 움직이는 사람 한 명이 필요합니다.”
톱으로 썰어내는 힘과 목재를 당기는 힘을 한 명이 동시에 가한다면 톱으로 썰어내는 목재가 움직이며 힘이 멋대로 분배될 거다.
결국 축력기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며 힘을 주는 사람의 관절이 틀어지겠지.
결국 두 명이 완벽한 호흡을 맞춰 한 명이 하체의 힘으로 톱을 움직이고 다른 한 명이 톱의 움직임에 맞추어 바퀴를 돌려 밧줄을 감아야 한다.
하지만 목공장은 이렇게 말해놓고 또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노예가 수십 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서 포기하고 축력으로 전환하시거나 효율이 떨어져도 수차를 사용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직접 시험해 보겠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아무 말도 없이 웃옷을 훌러덩 벗고 속에 입은 입신체비복을 드러냈다. 이미 수차가 완성되었다는 말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왔으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
신발 대신 입신체비용 샌들까지 신으니 몸에 생기가 차오르는 기분이다.
“윤 훈도! 자네는 한강(寒岡: 이황의 제자 정구의 호)의 제자이니 상체에 능하겠지. 어서 와서 이 손잡이를 잡고 바퀴를 돌리게나.”
친구인 정구의 제자를 불러 작은 목재를 잘라 보았는데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
나무를 썰어내는 톱이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지 않고 조금씩 걸리는 느낌이 있는데 이 정도면 관절에 무리가 갈 수준은 아니다.
어느새 걸리적거리던 느낌이 사라져서 뒤를 보니 나무가 절반으로 잘려 뒤로 흘러내렸다.
장인은 우리 둘의 몸을 보더니 아예 창백해진 얼굴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축력기에서 내려 손을 털어내니 윤 훈도도 슬쩍 웃으며 다가왔다.
“어떠한가? 나야 쉬운 일이었지만 톱의 힘을 받아내는 자네는 조금 곤란했을 것 같은데.”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워서 오히려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목재의 무게가 몇 배에 달하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부하도 줄 것이며 톱질에 자기 멋대로 흔들리지 않았겠지요.”
“당신들이 사람입니까? 세상에! 사람 여섯 명 분량의 일을 둘이서 하다니!”
사람이 맞거든? 근육량이 보통 사람의 두 배고 숙련도가 두 배라서 사람 네 명 어치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그나저나 톱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목재를 베어냈는데 이거 얼마나 큰 목재를 자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지금 잘라낸 목재는 한 자(34.7㎝)의 지름에 불과한데 대체 얼마나 큰 목재를 자를 수 있소? 최대한 크게 잘라낸다면 얼마나 거대한 목재까지 가능한 거요?”
“보름 내에 만들어내느라 중간 크기의 제재소를 만들었습니다. 길이는 조선의 길이로 쉰 자(17.35m)까지 가능하고 두께는 넉 자(1.39m)까지 가능하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큰 목재는 부담을 주는 법이니 조금 작게 자르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표정이 영 좋지 않으니 어디까지나 이론상 최대치로 자를 수 있는 물건이겠지. 다음 날 사람도 소집하고 잘 말려진 거목도 준비하였다.
“이 물건은 중간이 썩어들어 가서 용골로 사용하려다 사용하지 못하고 잘라낸 목재입니다. 이걸 가로세로로 켜내서 각목으로 바꿔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만에서 목재를 수입하였지만 바다를 건너오면서 수액이 빠져나오고 물이 가득 찬 목재는 말리는 과정에서 이렇게 버려지는 녀석이 생겨난다.
개성에서 입신체비에 뛰어난 유생 넷이 합세해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나무를 잘라내기 시작하였다.
“잠깐! 중단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러다가 제재소가 무너질 지경이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축력기에서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 소리를 질러 작업을 중단하였다.
자세히 보니 축에 균열이 생겼는데 거대한 나무를 썰었다고 망가지다니?
하지만 장인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크기에 비해 힘이 너무 강하니 벌어진 일입니다. 거대한 수차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밟는 방식이니 축의 두께가 얇아졌고 힘에 비해서 목재의 내구성이 약해졌지요.”
“결국 톱니바퀴를 돌리는 힘을 키우려면 나무 축의 크기도 키워야 하고. 사람이 쓰지 못하는 물건이 된다고? 혹여나 해결책이 있던가?”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길이가 대략 3바라(vara, 스페인 야드이며 1바라는 0.84m)에 달하는 아주 단단하고 곧은 철봉을 사용하면 되겠지요. 그런 물건을 당장 구할 수 있다면요!”
이제는 못 하겠지? 그만 사람으로서 체면을 지키고 동물을 사용해라!
이런 의도가 엿보이는 말이었지만 그런 물건은 조선에 넘쳐난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사람을 시켜 대역기봉 여러 개를 가져왔다.
대역기봉은 이황이 창안한 회역기(생석회를 사용한 역기)를 공령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이만 마구잡이로 늘린 물건도 있고, 탄력이 부족하여 역기봉의 길이로 이를 보강한 녀석도 있었다.
장인이 원하는 치수의 대역기봉이야 지천에 널려 있다.
“이거면 충분하겠소? 길이가 조금 부족하지만 오히려 크기를 더 줄이면 될 것 같구려. 알다시피 대역기는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물건이라 대역기봉 정도는 어디에나 있소.”
“이런 물건이 집안 어디에나 있단 말입니까! 조선은 대체 뭘 하는 나라입니까! 수호성인이시어! 저를 굽어살피소서!”
갑자기 수호성인을 왜 찾나. 근육으로 단련하면 조상님이 봉 무게를 들어줄 필요도 없는데. 우리의 근육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하나?
장인은 어떻게든 대역기봉을 망가트리려고 애썼지만 지나치게 단단하다는 사실 하나만 확인하였다.
결국 포기하고 흠을 내어 톱니바퀴를 끼우며 며칠 동안 수력, 아니, 근력 제재소의 설계를 수정하였다.
계속된 개조로 완벽한 근력 제재소로 탈바꿈한 녀석은 내 상상 속의 물건과는 지나치게 달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다르면 뭘 하겠는가? 입신체비에 능한 유생 네 명과 함께 기록적인 시험 운행에 들어갔다.
“이미 몇 번이고 시험해 보았으니 이번에는 둘레가 석 자(1.1m)의 거목을 잘라보세나!”
거목이 톱날에 닿자 축력기가 엄청난 부하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축력기의 축을 굳건히 잡고 발에 온 힘을 가하니 뻐근한 느낌이 들며 천천히 톱날이 움직였다.
“하나! 두울! 셋! 네엣!”
“당겨! 둘! 셋! 넷!”
“성 요셉(예수의 양아버지, 목수의 수호성인)이시어! 끔찍한 비극을 멈춰주십시오!”
끔찍한 비극은 나무에게 벌어지는 일이고 이건 근육의 기적이지!
전력을 다해 축력기를 돌리니 톱밥이 사방으로 날리며 머리 위에 쌓이고 우리의 움직임에 맞추어 손잡이를 돌리는 이들도 호응하였다.
허벅지에 뻐근한 느낌이 들 무렵 길이가 40자에 달하는 거목이 반으로 썰려 뒤로 내려왔다.
저절로 환호성이 솟구쳐 오르며 축력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어떠한가! 자네들도 느꼈는가? 종아리부터 엉덩이까지 짜릿한 느낌이 솟구치더군. 이는 하체가 단련되었음을 뜻하니 우리는 용면세(龍面勢: 백 더블 바이셉스)를 실시하겠네!”
“저희는 상체를 모조리 단련하였습니다! 특히 광배근이 단련되었으니 호면세(虎面勢: 프론트 렛 스프레드)를 취할 것입니다!”
“용면과 호면이 만나니 이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이 아니겠습니까!”
용호상박 맞네? 나를 비롯해 축력기를 돌린 세 명이 하체에 힘을 잔뜩 주고 후면 근육을 자랑함과 동시에 바퀴를 돌린 둘이 전면 근육을 자랑하였다.
“으아아악 조선의 귀족들은 모두 괴물이야!”
스페인 목공장이 아예 겁에 질려 달아났지만 기분이 아주 좋다. 생활필수품인 대역기봉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며, 동력도 많지는 않지만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시기이다.
생각해 보니 이 근력 제재소는 입신체비 입문자도 사용할 수 있다!
“제재소의 도본을 작성하고 만드는 방법을 내가 직접 퍼트리겠네! 이 물건이 입신체비에 너무 좋으니 너도나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널리 이롭게 할 것이네!”
이쯤 되면 충분하다.
입신체비사 다섯 명이 조를 이루어 세 명이 축력기를 돌리고 두 명이 밧줄을 감아 나무를 네 토막으로 썬다 치면 평범한 나무 기준으로 30그루는 가능하리라.
두 조가 교대하면 60그루요 하루 종일 일해 4조가 교대하면 120그루다.
120그루의 나무가 각목이 되면 960개의 각목이 나온다. 이 정도의 각목이면 경량목구조 주택 10채의 기본 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 주택이 복사가 된다 이 말이야!
하지만 도면을 작성하다 보니 괜히 울적해졌다.
“그래도 철물이 고민인데…… 이걸 어쩌면 좋나?”
“춘부장(春府丈)님! 저 항복이 왔습니다! 이현전에서 아주 좋은 기물을 만들었는데 이를 새로운 주택에 사용하라는 주상전하의 명을 받아 여기까지 당도하였습니다!”
이항복, 내 아들의 친구이자 훗날 오성과 한음의 ‘오성’이 되는 녀석이 갑자기 와서 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현전에서 한동안 철물에 매달려 있다 했는데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나?
“아주 좋은 기물이라? 대체 무슨 녀석이기에 이렇게도 날뛴단 말인가. 이건 동판이 아닌가? 그런데 동판치고는 낭창낭창하고 질긴 느낌이 드는군. 그리고 종류가 여러 가지군?”
“계획하신 경목조 주택에 철물을 사용하고 십 년 뒤에 해체하여 재활용할 것이니 구리를 사용하자 제안하셨지요. 그래서 이현전에서 연구 중인 구리판을 종류별로 가져왔습니다.”
하나하나 휘어보고 뒤틀어보니 공통적으로 구리치고는 강도가 조금 약하고 탄성이 강한 편이다. 아마 가벼운 물건은 아연을 섞었을 것이요 무거운 물건은 납을 섞었겠지.
이걸 어디에 쓰는지 궁금한데.
“이걸 대체 어디에 쓴단 말인가? 값진 구리판을 내어주다니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군.”
“듣자 하니 훗날 건조되는 선박의 바닥에 구리판을 깔 예정이라 하였습니다. 구리는 바닷물에 쉽사리 녹슬지 않고 따개비나 바다 벌레가 달라붙지 않습니다.”
“값비싼 선박의 수명을 늘리려고 구리판을 준비하였단 말인가? 잠깐, 내가 건물을 짓는 장소가 모두 해안가이니 십 년이 지나면 바닷바람에 녹이 올라오겠군.”
“그렇습니다! 주상전하께서는 배의 하부에 설치하여 내구성을 확인하기 전에 바닷바람으로 먼저 시험해 보자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철물 대신 마음대로 사용해 주십시오!”
돈지랄이나 마찬가지인 구리판을 연구용으로 제공한다 이거지? 이제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돌아간다.
각지에 제재소를 세우고 피난민을 돕자는 명목으로 유생들을 끌어들이면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고!
#작가의 말
경량 목구조는 한옥과 정반대로 대치되는 각목 주택입니다.
각목과 합판으로 틀을 잡고 철판과 못으로 이어나가는 방식이지요.
출처 : https://pixy.org/49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