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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10화 (410/573)

근육조선 410화

2부 19장 10화 퇴각

일본 4군의 선박을 격침한 다음 날부터 이순신과 최호는 육상과 해상의 합동 작전으로 망루를 하나씩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전선에 합류하였다.

이미 해상에서 계속 격침당하는 망루 탓에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던 오우치의 병력들은 뭍으로 밀려났지만 지금까지 하카타를 방어하던 권율이 있었다.

권율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계속 몰아쳐라! 제법 피해를 입더라도 전열을 붕괴시켜야 한다!”

권율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열 안에 있던 보총수들이 앞으로 나아갔고 이내 서로의 거리가 60보(96m)가 되자 숨을 죽이고 전방을 향해 보총을 조준하였다.

천여 명의 병사가 서로 동일한 병기를 주고받았지만, 권율은 둔덕 위에서, 오우치는 둔덕 아래에서 보총을 쏘았기에 오우치의 전열이 사정없이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권율은 망원경으로 전장을 살펴보더니 재차 명령을 내렸다.

“적을 쏘아 죽이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놈들의 전열이 붕괴하였으니 창수들이 바로 앞으로 나서라! 배운 대로 여러 겹의 진형을 만들어 놈들을 밀어내라!”

병사들은 권율의 명령을 듣자마자 14자(4.8m)나 되는 거창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우치의 병사들도 필사적으로 창을 높게 세우고 전열을 형성하였지만 같은 병기를 사용함에도 두 진영은 상반된 전술을 사용하였다.

조선군이 일자진을 여러 겹으로 겹쳐 거대한 창날의 벽을 만들어 적을 밀어낸다면, 오우치는 일본 특유의 때리고 찌르고 제치는 창술을 사용하였다. 말이 그렇지 실질적으로는 타작(打作)이라 불리는 방식이었다.

일제 사격에서 제법 큰 피해를 입었지만 조선군이 지척까지 진격했음을 알아차린 오우치의 장수도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미 일이 글렀지만 조금이라도 버텨야 도주할 가망성이 높아지니 필사적인 항전을 개시하였다.

“창을 들어라! 놈들의 창보다 우리의 창의 길이가 길다! 신호를 보내면 바로 내리쳐라!”

하늘 높이 치솟은 창날이 조선군의 진형을 향해 떨어지자 머리를 두들겨 맞은 조선 병사들도 투구가 일그러지고 코에서 피를 뿜으며 자리에 자빠지는 이들이 생겨났다.

오우치를 비롯한 일본 전국시대의 주 병력은 농민 출신의 아시가루(足輕)이다.

이들이 배운 창술은 집단으로 얇은 열을 형성하여 오로지 창을 들고 내리치는 반복동작 하나였다.

“놈들이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러하면 계속 내리쳐라!”

전술이 단순하니 병기의 질, 정확히는 여러 번의 타격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창대와 더욱 길어서 적을 먼저 타격하며 위력을 키울 수 있는 큰 창을 선호하였다.

하지만 조선군은 이미 몇 번이고 병종을 융합하여 대열을 갖추고 훈련하였으니 다양한 전술을 즉석에서 도입할 수 있었다. 위에서 내리 찍히는 창날은 조선 진형의 최전선에 선 방패수가 모조리 받아내었다.

권율은 피해를 점검하며 보총수에게 재차 장전 명령을 내리고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응수하였다.

이미 이긴 전투이지만 오우치를 빠르게 제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놈들의 뱃가죽에 구멍을 내 버려라! 계속 밀어라! 방패수는 어서 단검으로 놈들의 허벅지를 꿰뚫어 버려라!”

자신의 몸통만 한 거대한 방패를 들고 창날을 막아내던 방패수들은 마침내 조선군의 창날이 오우치에게 닿자 방패를 집어 던지고 창날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처음 맞붙을 때에는 조금 더 길고 튼튼한 창으로 재미를 보았던 오우치이지만 몇 걸음 접근하자 정반대의 구도가 되었다.

머리 위부터 배꼽 위까지 사정없이 밀려오는 창날에 오우치의 느슨한 진형은 점점 압박당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똑같이 창을 세워 응수하라! 놈들이 창을 들고 있으니 따라 하면 우리가 이긴! 아윽!”

특유의 타격창술에서 조선과 흡사한 밀집 진형으로 전환한 오우치이지만 숙련도가 달랐다. 4개의 열이 한 몸이 되어 창을 앞세운 조선과 달리 오우치는 창을 내리치는 이와 앞세우는 이가 섞여 있었다. 더군다나 방패수도 힘을 보탰다.

방패를 집어 던진 방패수들은 조선군이 만든 거대한 창날의 벽 아래로 기어들어 가 단검을 꺼내고서 오우치 병사들의 허벅지와 정강이를 유린하였다.

“이걸 어떻게 막으라고! 처음부터 똑같이 응수하면 되었잖아!”

“나리들! 놈들이 기어들어 와 저희의 허벅지를 노립니다!”

“창을 내리치면 기어들어 오는 놈이 없지 않겠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이 창날의 벽을 어떻게 내리쳐서 뚫습니까!”

오우치의 병사 가운데 몇 명은 어설픈 지시를 듣고 창을 들어 올려 내리쳤지만 조선군이 여러 겹으로 만든 창날의 벽에 가로막혔다.

상체와 하체가 모두 꿰뚫린 전열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쓰러졌지만 조선군의 진격은 계속되었다.

“퇴각! 퇴각하라! 당장 퇴각하라!”

“놈들이 퇴각한다! 피해를 최대한 입혀 재집결을 막아야 한다! 창을 내려놓고 단창을 집어 던져라! 보총수는 놈들의 뒤통수를 노려라!”

쏟아진 단창이 오우치 병사들의 등판에 쑤셔 박혀 재차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 서둘러 보총수가 나아가 일제사격을 날렸다.

압도적인 승리를 치하할 새도 없이 권율은 재차 진격 명령을 내렸다.

“조금이라도 더 빨라야 놈들을 추포할 수 있을 것인데.”

평소의 여유 넘치는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권율은 재차 진격 명령을 내렸다. 평상시라면 화포를 사용하여 압도적으로 적을 분쇄했겠지만 이 자리에는 다루기 쉬운 자모포 몇 문과 황자총통이 전부였다.

저 멀리서 판옥선 다섯 척이 돌아오며 도주하는 오우치 병력에게 화포를 쏟아붓고 권율에게 접근하였다.

권율은 익숙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판옥선이 닿는 해안으로 향했다.

“언신(권율의 자) 자네는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지금도 서애가 적도와 맞서 싸우고 있을 것이네. 차라리 서애를 지원하고 나와 최 수사에게 일임하게!”

“적도라? 자네가 출병한 직후 소식을 들었네! 적장 등원 등길랑(히데요시)이 이틀 전에 필사적으로 도주하였다네! 자네와 함께 퇴로를 막아서지 않는다면 놈들이 왜국으로 귀환하는 일을 눈 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네!”

이순신은 멍한 눈으로 남서쪽의 산을 바라보았다. 소식을 듣기로는 적의 본군은 한 번 공성전을 실시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어 피해를 추스르고 있다 했으니까.

본래 큰 패배를 당한 이후에는 자신의 입지를 생각해서라도 최소한의 전공을 거둔 뒤 퇴각하는 법이다. 이순신도 이를 당연하다 여겨 적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이마를 감싸 쥐고는 한탄하였다.

“그놈은 돌아가서 목이 잘릴 생각인가? 아무리 위세가 대단한 장수라 하여도 자신이 인솔하던 본군 병력의 이 할을 몰살시킨 다음에는 엄중한 문책을 당할 걸세!”

“그뿐이겠는가? 육주성을 점거한 진전창행(真田昌幸: 사나다 마사유키)이 같이 퇴각했을 리가 없네! 놈은 최소 이만 명의 정병을 버리고 도주할 생각이야!”

* * *

히데요시에게 아주 제대로 당했다. 엄밀히 따지면 전략(戰略)적으로는 완승을 거뒀지만 전술(戰術)적으로는 패배하였다.

이 미친놈이 혼자 내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17일 크게 패배한 놈의 진영은 19일까지 침묵하였다. 처음에는 패배를 수습하고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책이라 여겨 산발적인 포격과 기병 돌격으로 견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21일 아침의 보고는 내 뒷골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놈들이 보인 일만여 명을 버리고 퇴각하였습니다! 어제저녁에 퇴각한 게 분명합니다!”

“보인을 아예 버리고 퇴각하였다고!”

퇴각의 징후도 없었다. 병력을 재편성하니 우회로를 뚫으려고 산성을 향해 공세를 취할 것이라 여겨 병력 배분을 변경하였는데 놈들의 재편성은 퇴각을 위한 재편성이었다.

군량도 화약도 대부분 버려둔 채 퇴각을 실시하였고 바로 추격에 나섰다.

퇴각은 자연스럽게 대열을 길어지게 만드니 매복에만 당하지 않으면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퇴로를 확인한 남상정은 혀를 내둘렀다.

“등원 등길랑(히데요시)이 미친 것이 분명하군요. 척후가 놈들의 퇴각로를 잡았는데 웅본(구마모토)으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놈은 바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요. 저 험난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다니. 구중산(九重山)은 약초꾼들도 혀를 내두르는 산이잖소!”

퇴각하더라도 구마모토까지 돌아가 후위대와 합류한 이후 아소(阿蘇) 분지를 거쳐 벳푸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놈의 퇴각로는 큐슈에서 가장 거대한 산인 큐쥬산(九重山)이었다.

최단 경로이지만 지나치게 험한 산이라서 병력을 보낼 수 없는 산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병장기와 낙오병 그리고 변을 당한 시신이 즐비한 죽음의 길이다.

“다들 말에서 내려라! 이런 험지에서 말을 타다간 말도 죽고 사람도 죽는다!”

장수는 말을 타는 법이지만 지나친 험로니 말의 다리가 꺾일 지경이다. 히데요시가 끌고 온 조랑말은 도축되어 식량으로 쓰였고 조선에서 가져온 큰 말들이 이 험로를 견딜 방법은 없어서 내려야 했다.

절로 분통이 치밀어 올랐다.

“이 미친놈의 새끼 설악산과 버금가는 산길을 따라 도주한다고? 정신이 나갔나?”

“건널 수만 있다면 나흘, 아니면 사흘 안에 벳푸까지 나아갈 길이긴 합니다.”

아케치의 뻔한 말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건널 수만 있다면! 이런 험로를 통과할 노오력을 할 수 있다면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이 길을 천천히도 아니고 이런 속도로 행군한다면 최소 이 할의 병력이 행군하다 명을 달리할 것이네! 지금 우리의 피해도 오 푼(5%)에 달해!”

“하지만 그냥 조선군을 상대했다가는 이 할은커녕 오 할이 죽고 자신도 죽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이 산은 최소 북한산 급의 봉우리 수십 개와 설악산 급의 산봉우리가 있다.

더군다나 일대의 산 모두가 활화산의 영향을 받았다. 분화는 없지만 이놈의 쇄석(碎石)이 문제다.

“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밧줄을 단단히 동여매라 하지 않았는가!”

저 뒤에서 한눈을 판 병사가 쇄석을 밟고 미끄러져 골짜기를 향해 떨어지다 서로에게 엮은 밧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는 토양을 메마르게 만들고 모든 식물을 죽인 결과물이다.

화산에서 날아온 쇄석과 식물이 자취를 감춰 유실된 표토(表土) 아래의 자갈이 길을 빼곡히 메우니 발을 조금만 잘못 놀려도 자빠지게 마련이다.

어느새 발가락 사이에 끼인 돌을 빼니 앞서 나갔던 신립이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병사들이 계속 시신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행색을 보니 둔덕이 무너지며 수십 명의 발이 미끄러져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 같습니다! 중상자도 보입니다!”

“병사를 따로 배정해 시신을 염습하여 태우도록. 아무리 왜인이라지만 너무 잔혹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중상자는…… 살아날 가망이 있다면 치료하되 가망이 없다면 알아서 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히데요시의 상식을 초월한 퇴각은 상식을 초월한 피해로 돌아오리라.

본대 병력, 정군과 보인을 합쳐 추정 병력 6만5천 가운데 집계된 낙오자와 사망자를 합치면 육천 명에 달한다.

급속행군으로 도주한 덕분에 뭘 챙기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으며 대다수가 지나친 행군을 견디지 못한 보인(保人)이다. 그리고 이 보인들 가운데 아예 우리에게 합류한 이들도 있었다.

“나리! 아마 저 앞쪽에 매복이 있을 겁니다! 제가 큐쥬산의 약초꾼으로 일한지라 잘 알고 있습죠! 한 일천 명 정도가 매복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좋은 정보이네. 정말 매복이 있다면 자네들에게 은자 열 냥을 내려주겠네.”

손을 싹싹 비비며 조선군에 합류한 보인들? 대부분 큐슈에서 징집된 보인이었고 우리에게 달려오면서 모가지를 하나씩 들고 당당하게 합류하였다.

아케치의 말로는 본래 전국시대의 풍습은 패배한 군대가 생기면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패잔병을 집단으로 폭행하고 목을 잘라가 포상금을 받는다던데 이 풍습을 고스란히 실행했다.

생각해 보니 소름이 돋았다.

“아케치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만약 아국이 패배하여 후지와라가 요새를 점거했다면 이들이 지금처럼 행동하여 아국 병졸들을 사냥했겠는가?”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가족들을 먹이고 재워준 보답으로 스스로 나서지는 않았겠지요. 대신 토키치로 녀석의 군대에 합류해서 추격 작업에 합류했을 겁니다.”

그게 그거잖아 이 멍청한 놈아! 아케치는 당연한 일을 왜 묻느냐는 표정이지만 역시 왜인은 신의가 없다니까. 지금 남쪽에 있을 내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르겠지만 신의는 지켰겠지.

반란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협조하지 않거나 협조하는 척 업무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해도 충분하다. 오히려 반란을 일으키면 대다수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것이다.

신립을 대신해 앞으로 나선 황진이 보고를 올렸다.

“후위대가 항전을 벌입니다! 나무를 긁어모아 진형을 만들었습니다!”

“당장 몰아붙이게! 놈들도 피해가 누적되었을 것이니 조금의 피해는 감수하게!”

벌써 이 험난한 산속을 행군하고 이틀이 지났다. 우리의 추격이 한나절 늦은 데다 히데요시의 병력들은 거추장스러운 장비들을 모조리 버리고 퇴각하는지라 놈들의 꽁무니는 보일 듯 말 듯 잡히지 않았다.

병사들의 피로가 깊어지는데 이대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추격을 계속 이어갔다.

결국 남은 병력이라고는 오위 소속 병력이고 말조차 끌지 못하는 병사 일만 명이 전부이지만 단병(短兵)전투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험난한 산길을 진군하고 여러 번의 후위대를 격파하길 나흘, 마침내 1월 24일이 되자 침략군이 점거한 항구인 벳푸에 닿았지만 내 예상보다 적의 퇴각이 조금 더 빨랐다.

“당장 적들을 추격하라! 놈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지독한 퇴각을 겪고도 놈의 병력 가운데 상당수, 대충 추산해 보니 4만가량이 가까스로 퇴각을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병력들은 하나같이 아우성을 치며 수백 척의 선박으로 기어올랐다. 신각은 내 명령에 난색을 표하며 답했다.

“관찰사님! 지금 저희의 피로도 심각한 지경입니다! 이대로 맞서 싸웠다간 피해가 눈 더미처럼 불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저 몰골이 보이지 않는가? 놈들은 짐을 내릴 힘도 없어서 배에 쌓인 미곡을 바다에 내버리고 있다네! 지금 놈들을 무너트리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걸세!”

하지만 적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솔직히 말해 저 수많은 선박에서 아직까지 피해를 입지 않은 적의 수군이 대응한다면 지친 오위의 병사들도 큰 피해를 입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적은 모든 병사들을 배 위에 올리지도 않고 바로 먼 바다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혹시나 태풍이 몰려와 퇴각했을까? 하지만 적의 잔존 병력을 포로로 만드는 과정에서 태풍보다 더한 존재가 나를 맞이하였다.

난공불락의 요새라 생각했던 간몬 해협을 뚫은 이는 이순신의 전라수영과 최호의 경상수영이었다.

어느새 판옥선에서 내려와 적병을 사로잡는데 합류하던 병력 속에서 이순신이 달려왔다.

“서애! 조금 늦었다네! 놈들이 저리도 빨리 퇴각할 줄 알았다면 다소의 피해를 감수할 것을! 내 실책이 아주 크다네!”

“여해 자네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적의 병선이 팔백여 척에 달하는데 무찌를 수 있다…… 아니지! 자네라면 적어도 패하지는 않겠군.”

내 앞에서는 도착이 늦었다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이순신이지만 도착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잔존 병력을 모조리 태우고 도주했으리라.

하지만 이순신이 여기에 왜 있지?

“자네는 본래 장기(나가사키)를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여기에 오다니. 혹여나 대양도 수영이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나왔단 말인가?”

“대양도 수영이 마침 서반아의 사절단과 접촉하여 북상하던 중에 전쟁이 벌어졌다네. 서반아 사절단은 아국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아마 지금쯤 소식도 듣지 못한 장기와 녹아도(가고시마)를 급습하고 있겠지.”

대양도수영이면 경상과 전라수영을 합친 전력과 대등하다.

여기에 스페인 사절단이라는 놈들도 사실상 수군과 마찬가지이니 아예 봉변을 당했겠지.

이미 큐슈를 침략한 16만가량의 병력 가운데 도주한 이는 기껏해야 놈의 수군에 속한 3만 정도와 지금 퇴각한 4만 내외. 여기에 대양도수영의 공세를 피해 달아난 이들은 많아야 1만 명 내외겠지.

도합 8만 명 이상이 이 큐슈에서 죽거나 포로가 되리라.

사실상 전쟁이 끝나 긴장이 풀리고 제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이순신도 피로가 심한 얼굴이지만 나를 잡아 일으켰고 웬 거지 몰골의 왜장이 잡혀 오더니 깊숙이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저는 후루타 오리배라 합니다. 장수가 아니고 다인(茶人)으로 합류한 사람이니 조선의 장수분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변변치 않지만 솔잎을 뽑아둔 것이 있지요.”

“이 친구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왜장으로 분류할 수 있겠군. 옥에 가두어 주상전하께 올려보내게.”

다인은 뭔 다인이야. 거지 몰골이지만 나름 대접받는 위치이니 여기 있었겠지?

놈이 뭐라 항변을 하건 말건 이제는 좀 자고 싶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근손실이라고!

#작가의 말

큐슈 전역이 종료되었습니다. 히데요시의 필사적인 퇴각 덕분에 병력 손실은 16만 가운데 8만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다음 화에는 남쪽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전후처리와 내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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