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07화 (407/573)

근육조선 407화

2부 19장 7화 붕괴(2)

지금까지 목도한 참상은 전국시대의 전쟁을 거치며 단련된 히데요시의 정신을 무너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병사들이 짚단처럼 죽어 나가자 바지에 똥을 지리고 혼절한 히데요시는 본영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렸지만 할 말을 잃었다.

히데요시는 멍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엄선한 정예병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몰골을 믿을 수 없던 그는 병사의 비명을 귓전으로 흘린 채 참모인 구로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구로다…… 다시 한번 말해보게. 피해가 얼마라고?”

“팔만사천의 병사 중 일만삼천이 죽고 육천 이상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개중 보인은 삼천에 불과하니 실질적으로 정병 일만 육천이 죽었지요. 더군다나 화약의 절반이 날아갔습니다.”

첫 전투에서 자신의 책략에 당해 피해를 입은 조선 장수는 어느새 후방을 급습해 가장 중요한 화약고를 두 개나 터트리고 도망갔다.

이만 근에 달하는 화약을 네 장소에 분배해 뒀는데 개중 절반이 손실되었다.

“적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 전열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을 뿐 이 할이 넘는 피해를 입었으니 아예 병사들을 다시 편성해야겠군. 그래도 괜찮아 아직 한 번 더 기회가 있어.”

“병사들이 아예 반란을 일으키려 할 수도 있습니다.”

“저 미친 둔덕 아니! 오니(鬼)가 들끓는 성을 공략하진 않겠네! 하지만 겹성이나 문구성을 함락시키면 우회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전국시대의 험악한 전쟁을 몇 번이고 경험한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이 희생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지금까지의 승전 덕분에 사기가 바닥에서 조금 위에 머무는 상황이다.

전국시대에는 5푼, 5%의 병력이 손실되면 큰 피해라 여기고 1할, 10%의 병력이 손실되면 대패라 계산한다.

정말 1할의 병력이 소실되면 당장 주군을 배반해도 의리를 지켰다 여긴다.

“그나마 적이 조선이라 다행이야.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항복하려는 이도 없으니 아직 사기를 유지할 수 있다네. 조만간 사나다의 5군이 화약과 식량을 보내올 것이니…….”

“후지와라 님! 급보입니다!”

창백한 몰골로 막사에 뛰어들어 온 가토는 숨을 한참 고르더니 다급히 전해진 것이 분명한 쪽지를 보여주었다.

후방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단 말인가? 하지만 히데요시는 내용을 읽더니 뒤로 자빠져 버렸다.

[14일 반란이 일어남, 다이묘로 임명한 요네키쿠마루(米菊丸: 시마즈 다다쓰네의 아명)와 부친 시마즈 요시히로가 사고로 사망하고 유폐된 전 다이묘 시마즈 요시히사와 동생 도시히사가 탈주함.]

“이게 무슨 개소리야! 왜 반란이 일어나! 대체 어떤 놈이야! 그래! 이치마츠(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아명) 녀석이 정권을 장악하면 되겠지. 이치마츠 녀석은 어디 있는가?”

“서신에는 없지만 소문은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폭사(爆死)하였다 합니다.”

“후쿠시마가 폭탄인가! 왜 터진단 말인가! 왜 터지냐고! 차라리 지진이라도 일어나 땅속으로 꺼졌다 말해주게! 뭔 놈의 폭사야! 이치마츠야! 대체 뭔 일을 당한 것이냐!”

가토도 구로다도 히데요시를 말리려 하였지만 히데요시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바닥에 등을 뭉갰다. 마치 한 마리의 똥 벌레가 똥 위에서 꿈틀거리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 * *

일본의 전국시대는 나름 규칙을 지켜가며 영지 간의 전쟁을 일으킨다.

패배한 자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으며 대부분 이전 다이묘의 친인척이 새 다이묘로 임명되며 기존 가신들은 이를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오늘도 자신의 사촌 후지와라 토키치로, 히데요시의 명령을 수행하는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비롯한 유성룡의 제자들에게는 끔찍한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적도와 달라붙은 모습을 보면 스승님께서는 한숨을 내쉬시겠군.”

자신의 아버지도, 자신의 부하들도 모두 정당한 일이라 여겼지만 전혀 정당하지 않았다.

비록 조선처럼 군왕(君王)은 아니라지만 군왕을 대신하는 제후가 아닌가.

후쿠시마와 마주친 아리마 하라노부도 울적한 표정으로 후쿠시마에게 인사를 올렸다.

“타치바나 그 친구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방 안에 틀어박혀 콧김만 내뿜고 있더군요.”

“역도의 봉록을 받아먹지 못하겠다고 대놓고 말한 덕분이 아닌가. 덕분에 저택 전체가 적의 병사들에게 포위당했으니 너무 앞서 나갔네.”

“저도 속 시원하게 호통을 치면서 응했어야 하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마지막까지 토키치로와 맞서 싸운 아버지께선 저를 뭐라 여기시겠습니까.”

비록 천자(天子)는 없지만 제후가 있었고 자신들은 제후의 신하이다. 제후가 항복한 일은 원통하다 못해 분했지만 이후의 일은 유교 지식을 주입당한 이들에게 끔직한 비극이었다.

왕은 왕으로서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신하로서 왕을 보좌해야 한다. 만약 왕이 불의를 자행한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의(義)는 바닥에 떨어졌다.

“주군과 주군의 형제들(시마즈 삼형제, 모두 우애가 깊다)이 모두 유폐되고 여덟 살 피붙이인 요네키쿠마루를 제후로 올리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조심하십시오. 지금 조선말로 대화하고 있어서 다들 알아차리지 못하였지 이 소문이 퍼져나가면 타치바나처럼 유폐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한두 명이 불만을 털어놓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여러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면 눈에 걸리는 법이다.

후쿠시마는 이를 악물고 조선의 왕 이연이 하사한 벽사검을 어루만졌다.

“이 칼이면 사람 서른 명 정도는 썰어버릴 수 있겠지.”

“예순 명이 달려들어 텟포(조총)를 쏘아 죽이겠지요. 다들 이 사실을 알기에 가만히 있습니다. 사나다 유키무라는 나이가 어린 편이지만 철두철미한 자가 아닙니까.”

“그래, 철두철미한 자이니 함부로 나설 수 없는 법이라네. 나는 종형(사촌형)께서 내린 책무를 다 하기 위해 잠시 화약고로 다녀와 보겠네.”

후쿠시마의 임무는 군량의 운송이었지 화약의 운송이 아니었다. 굳이 조선말로 화약고로 다녀오겠다는 말을 들은 아리마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후쿠시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후쿠시마 님, 여기는 화약고입니다. 후지와라 님께서 명하신 군량의 운송은 반대편입니다.”

“그러한가? 내가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서 말이네.”

아무리 철두철미한 사나다 마사유키라 하여도 십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보급을 운반하기에는 일손이 부족하였다.

군량이야 부피가 지나치게 커서 어느 정도 분산해 두었지만 화약은 가장 안전한 성 인근의 창고 세 곳에 나눠두었다.

보급로가 길어져서 병사들도 고작 스무 명만 배치해 두었다. 병사들의 배치를 확인하고 가장 중요한 조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쿠시마는 뒤로 돌아가려는 듯이 몸을 돌리다 칼을 휘둘렀다.

“화약고를 터트릴 것이다! 죽기 싫으면 당장 도망쳐라!”

사검이 번뜩이자 단단한 갑주를 입은 수비병의 목이 잘려나가며 허공에 떠올랐다.

종이 울리고 창병들이 달려들었지만 후쿠시마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후쿠시마 님이 미치셨다!”

“창으로 밀어! 아무리 장수라도 우리는 스무 명! 뭐야!”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창대가 잘려나가니 창수들이 삽시간에 목이 꿰뚫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적이 침입할 때를 대비해 만든 엉성한 대나무 사다리, 검으로는 부술 수 없고 사지를 틀어막는 사다리를 들이댔지만 후쿠시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끄랴아아아아앗!”

세 명의 병사가 사다리를 몸통으로 들이댔지만 후쿠시마가 어깨를 들이밀며 달려들자 역으로 밀려나며 사다리의 엉성한 노끈이 끊어졌다.

병사들을 짓밟고 베어내며 달려든 후쿠시마는 전력을 다해 두꺼운 자물쇠를 내리쳤다.

자물쇠에서 불꽃이 튀었고 잠시 멈춘 후쿠시마의 몸에 주변에서 날아온 화살을 두어 발이 틀어박혔지만 후쿠시마는 재차 팔을 움직여 자물쇠를 끊어내고 화약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뚫렸다! 당장 들어가! 설마 자기 목숨이 중요한데 화약에 불을 붙이겠어?”

“애초에 목숨이 중요했다면 이런 짓을 안 했을 텐데…….”

서로 시선을 교차한 병사들은 훤히 열린 화약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눈치를 보며 화약고만 주시하였다. 화살을 맞은 후쿠시마는 흘러내린 피 덕분에 부싯돌이 적셔진 것을 확인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스승님께서 제 재능이 폭발적이라 하셨지만 정말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의(義)를 올바로 세우려면 누군가 나서야 하는 법입니다. 이 불초제자를 용서하십시오.”

후쿠시마는 화살에 맞은 몸을 휘청거리며 스승이 있는 북쪽으로 절을 올렸다.

십만 대군을 맞서 싸우는 유성룡을 구원할 수 없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뜻을 지킬 수 있으리라.

화약 포대를 찢은 후쿠시마는 자물쇠를 쪼개느라 이가 빠진 벽사검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빛나는 벽사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화약고 바닥을 내리치자 불똥이 튀었다.

“충서(忠恕)는 위도불원(違道不遠)하니 시저기이불원(施諸己而不願)을 역물시어인(亦勿施於人) 이니라[충과 서는 도에서 멀지 않으니 나에게 베풀어짐을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그건 뭔 불경이오? 혹여나 불자시라면 어서 머리나 깎고 절로 들어가시구려.”

성 인근의 저택에서 정좌를 한 채 마음속 깊이 새겨둔 중용(中庸)의 경구를 외우던 타치바나 무네시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뜻에 응하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당장 칼을 뽑았으리라.

당장 저택을 포위하고 자신을 놀리는 병사들을 도륙해도 끝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죽음이다.

무의미한 죽음을 피하기 위한 이성과 한시바삐 올바른 뜻을 행하라는 감성이 대치하고 있었지만 그 대치는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깨어졌다.

-쿠웅!

“어이고 세상에! 성에서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거야?”

“저기 화약고 방향 아닌가? 어떤 미친놈이 화약고에서 담배라도 피우다 변을 일으켰나?”

“무슨 소리인지 나는 알 것 같다네. 반정(反正)을 알리는 소리이지.”

“반정? 지금 뭐라 했소? 조선에서 먹물 좀 드셨다고 어려운 말이나 하나 본데 그게 뭐요?”

거대한 폭연을 노려본 타치바나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마 누군가가 올바른 뜻을 세우기 위한 반정을 결행하자 자신의 목숨을 소모했으리라.

“거 왜 책을 집어넣고 그러시오? 반정이라는 말이 옥편(玉篇)이라도 찾아야 나오는 해괴한 말이던가? 어이고 옥편 한번 두껍구려.”

옥편을 챙기더니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사무라이를 바라보며 같이 웃은 타치바나는 옥편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세차게 내리쳤다.

“누오오옷!”

쇳소리가 나며 투구가 뭉개지고 칠공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옥편 가운데에서 자그마한 공령이 굴러떨어지고 다른 병사들이 칼을 뽑으려 하였지만 무네시게는 이미 쓰러진 상대에게서 칼을 얻어낸 뒤였다.

“책으로 사람을 때려죽이다니!”

번개같이 몸을 놀려 네 명의 병졸을 쓸어버리고 밖에 보관된 자신의 벽사검을 집은 타치바나는 밧줄을 완력으로 끊고 칼을 뽑으며 소리쳤다.

“반정을 실행하자! 삿된 일을 물리치고 주군을 되찾아 의(義)를 올바로 세우자!”

이미 타치바나의 부하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호응했다.

삽시간에 저택 안의 병사들을 도륙한 타치바나가 밖으로 나오자 아리마 하루노부가 피에 절은 벽사검을 휘둘러 마지막 병사의 목줄을 따내고 있었다.

“후쿠시마 님이 스스로를 바쳐 신호를 보냈네. 나는 어린 주군을 구할 것이니 자네는 서둘러 성으로 나아가 주군을 구하게! 선친(先親)께서 명을 달리한 장소에서 모이세!”

명장으로 손꼽히는 사나다 마사유키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반란, 아니, 반정이 시작되었다.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반정의 끝은 전신에 적의 피를 묻힌 타치바나 무네시게가 시마즈 요시히사를 구해내며 막을 내렸다.

후쿠시마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 가운데 네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어 스스로 후위를 자처하였지만 나머지 여섯 제자는 가고시마 만까지 나아가 배를 타고 나가사키로 향하였다.

* * *

경상도 수군절도사 최호가 인솔하는 경상수영의 함대는 며칠 간의 격전 끝에 오우치의 화공선과 무라카미 수군의 해적선을 간몬 해협 안으로 몰아넣어 권율의 숨통을 틔워줬다.

하지만 다음 목표인 간몬 해협은 천혜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육로로 상륙해서 망루를 하나하나 걷어냈어야 하는데…… 내 실책 덕분에 애꿎은 병사들이 피해를 입었군.”

“박 우후(박홍)께서 실종되었습니다. 해류를 따라 해협 안쪽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간몬 해협을 넘어 벳푸(別府)를 타격한다면 적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간몬 해협은 어중간한 수군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여든 개에 달하는 망루에 현자총통(본래 역사의 천자총통) 수준의 화포가 몇 개씩 있다.

평범한 장소라면 함대를 동원해 일제 포화를 날리겠지만 해류가 거칠어 배를 함부로 몰 수 없으며 해류가 온전할 때를 노려도 삼백 척에 달하는 무라카미 수군이 해협을 수비한다.

망루 한 개를 파괴하고 세 개를 침묵시킨 대가로 한 척의 순방선과 한 척의 상무선이 침몰하여 사실상의 패전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상륙을 준비하는 최호였지만 머나먼 서쪽에서 다른 함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경기수영이 벌써 남경에서 여기까지 당도할 리가 없는데. 저건 전라수영이 아닌가? 장기(나가사키)에 가야 할 전라수영이 명을 어기고 왜 여기 왔단 말인가!”

지금은 2월 21일이다. 전라도 수영이 장기를 구원하고 돌아온다 치면 아무리 빨라도 2월 말일이나 당도할 수 있으리라.

전라도 수영의 기함이 앞으로 나서자 최호는 반색을 하며 이순신의 배 위에 올랐다.

“자네!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시길 분명 장기를 수호하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여기에 당도하였는가. 자네의 판단이 아무리 옳다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양도 수군절도사이신 이 수사(이윤범)께서 소장에게 전령을 보내시어 며칠 이내로 장기와 녹아도(鹿兒島: 가고시마) 일대를 급습한다 하셨기에 여기로 왔습니다.”

“대양도 수영이 당도하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릴 것인데!”

“듣자하니 서반아인들이 아국에게 사죄를 표하며 왜인들을 응징하는 데 힘을 보탠다 하였습니다. 그러하니 제가 최 수사님을 지원하기 위하여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변한 최호는 병력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적의 수군을 견제하고 절반은 망루를 걷어내자는 작전을 이야기하였다.

적진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순신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최호에게 답하였다.

“소장이 재주가 조금 있어 이러한 일을 대응할 방법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부디 소장을 믿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루는 판옥선이라면 적도의 계책에 능히 맞설 수 있습니다.”

“능히 맞선다 하였는가?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물살이 거세 닻을 내려도 배가 떠밀려 다니고, 애초에 물살이 거세니 화포를 쏘아도 제대로 날아가는 것이 일 할에도 미치지 못하네!”

“제가 우후로 부임할 적부터 군기시 제조로 일하시는 자헌(김지의 호) 영감님과 협업한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살이 격한 장소나 전력을 다해 움직일 적에 화포를 올바로 쏘는 기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최호는 고개를 저으며 이순신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배 위에서 쏘는 화포는 물살이 격한 장소에서는 제대로 날리는 것이 기적이다.

정확히 조준해도 화포에 심지를 꽂아 쏘거나 불붙은 화승을 쑤셔 넣어 쏘면 조준 이후 발사까지 숨 한 번을 쉴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배가 요동치며 화포의 각도가 틀어지니 운이 좋아야 명중시킬 수 있었다.

자신도 기함에서 뇌력포 2문과 천자총통 6문을 일제 발사하였지만 망루 근처에 떨어진 것은 두 발에 불과하였다. 결국 망루 하나를 무너뜨리는 데 화포를 90발이나 쏘아댔다.

하지만 이순신의 눈빛이 진중하였기에 최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신중하게 나서게. 이미 내 함선 두 척을 잃었으니 얕볼 장소가 아니라네.”

“소장을 이리도 믿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들 배를 몰아라! 거친 바다이니 판옥선을 앞세우고 순방선과 순주선은 함선을 엄호하도록!”

대장선 대신 가장 큰 판옥선 위로 올라탄 이순신은 천천히 배를 몰아 간몬 해협의 세찬 물살에 휩쓸려 아예 노를 거꾸로 저어가게 만들어 제자리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판옥선이라 해도 사방으로 뒤흔들렸다.

다시 조선 함선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 세 개의 망루에서 화포를 쏟아부었다. 그나마 적의 사정거리보다 아주 약간 바깥에 있었기에 적중하는 탄환은 없었다.

이윽고 판옥선의 측면에 설치된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이 불을 뿜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이 쏘았을 때에는 근처에도 닿지 않던 포탄이 망루 인근을 단번에 타격한 것이다.

“이게 가능해? 저게 말이 돼? 이 수사 휘하 병졸들이 아무리 사격에 도가 터도 조준하는 솜씨가 좋지 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판옥선은 차근차근 위치를 교대하며 포격을 이어갔다.

사과 껍질을 도려내듯 가장 바깥쪽의 망루부터 순차적으로 정확한 사격이 떨어졌고 스무 발의 포격이 끝날 때쯤 망루 하나가 굉음을 내며 붕괴하였다.

#작가의 말

이 역사의 일본은 후쿠시마에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0